십자군전쟁은 11세기 말부터 약 2세기에 걸친 종교전쟁이었다. 카톨릭 교도가 이슬람에게서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초기에는 본래의 목적, 예루살렘의 지배권을 두고 카톨릭 진영과 이슬람 진영은 치열한 각축을 벌였다.
초반의 숭고한 대의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질됐다. 장거리 원정대를 보내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고, 비용을 부담하는 세력이 원정의 성격을 결정했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십자군의 4차 원정이 특히 그러했다.
1201년 이집트를 공략할 4차 십자군 원정부대 3만여 명을 모집하고, 베네치아가 준비한 500척의 선박으로 이동하는 계획이 수립됐다. 베네치아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했던 무역도시였기 때문에 이른바 물주역할을 했다. 그런데 예상인원의 3분의 1만이 베네치아에 모였고,이들은 베네치아에 약속한 비용을 낼 능력이 없었다. 베네치아는 대신 헝가리의 항구도시 차라를 공격할 것을 요구했고, 십자군은 성공했다. 교황은 같은 카톨릭을 공격한 십자군 모두를 파문했다.
마침 권력투쟁 중이었던 비잔틴(동로마) 황제는 용병으로 십자군을 불러들였다. 허나 제국의 내분으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그러자 십자군은 바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고, 도시에 대한 약탈과 살육이 사흘 동안 이어졌다. 이때 약탈된 재산은 십자군과 베네치아가 나누어 챙겼다. 베네치아는 원정의 결과로 경쟁도시인 제노바를 제치고 지중해 무역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