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8년1월 26일, 죄수를 실은 11척의 영국 함대가 마침내 뉴 사우스 웨일즈에 도착했습니다. 호주는 원래 형벌 식민지로 계획되었습니다. 1786년 10월, 영국 정부는 아서필립 선장에 영국 죄수들을 위한 농업 노동 수용소를 설립하도록 위임했습니다. 처음에는 떠날 함대를 모으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경험 많은 농부를 원했던 그의 요청은 거부되었고, 자금과 장비도 부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해병대와 장교들를 포함해 1000명( 그중 700명은 죄수)이 아프리카에서 호주 동부로 향했습니다. 항해는 8개월 동안 지속되었으며, 약 3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정착 첫 해는 거의 재앙에 가까웠습니다. 척박한 땅과 낯선 기후, 농사에 무지한 일꾼들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식민지는 기아 직전의 상황에 있었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파견된 해병대는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필립 선장은 죄수들을 감독에 임명하며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는 “새로운 나라에서는 노예 제도가 없을 것이며 따라서 노예도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필립선장은 1792년에 영국으로 돌아갔지만 식민지는 19세기로 접어들면서 번영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의 시기를 극복한 후, 새로운 애국심을 느낀 이들은 1818년부터, 1월 26일을 ‘식민지 건국 기념일’로 축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호주의 날은 백인 식민화의 시작이기도 하기에 ‘침략의 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제 1월 26일은 한쪽에서는 축하 기념행사가, 다른 한쪽에서는 시위가 벌어집니다.
2022년 5월 총선에서 집권한 노동당 정부는휴무일로 정한 지난 정부의 결정을 뒤집었습니다. 이제 공무원들은 이날 자율적으로 근무하거나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중 노선을 이끌던 자유당정부와 달리 노동당의 집권 후 호주와 중국관계도 변화가 보입니다. 중국은 호주 제1의 무역상대국으로, 중국의 호주산 철광석·천연가스·금 수입액은 약 137조원에 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