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 갈런드 (1922-1969)

1939년 8월,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영화 될 ‘오즈의 마법사’가 미국 전역에서 개봉합니다. 17세의 주디 갈런드도 뮤지컬 영화 배우로의 경력을 공식적으로 시작합니다. 주디는 세살부터 두 언니와 함께 이미 ‘검 시스터즈’로 활동했습니다. 도로시 역을 맡은 주디는 첫 장면부터 관객들을 매료시켰습니다. 그녀가 부른 ‘오버 더 레인보우’는 누구나 아는 노래가 됩니니다. 주디는 아카데미 등 온갖 상을 받으며, 할리우드에서 사랑 받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습니다. 

열 일곱 부터 스타였던 주디는 다른 어떤 것이 될 줄 몰랐습니다. 헐리우드의 스트레스는 그녀를 육체적으로 파괴하고 신경 쇠약으로 이어졌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녀의 아이콘으로서의 위상은 너무나 커서 그녀의 목소리와 몸이 쇠약해져도 팬들을 위한 퍼포먼스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공연에 대한 스트레스는 그녀를 죽음으로 이끈 비극이기도 하지만,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아이콘으로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은 1954년 영화 “스타탄생”은 뮤지컬 영화 배우로서 주디의 명성을 새롭게 했습니다. 1961년 4월의 주디의 카네기 홀 공연은 “연예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라고 불리웁니다. 공연은 라이브로 녹음되었고, 미국 앨범 차트에 95주(1위 13주 포함)동안 자리를 지켰습니다. 수백만장의 레코드를 판매합니다. 주디는 이제 위대한 가수의 반열에 오릅니다.

도로시가 된지 30년 지나, 주디의 삶은 점점 수렁에 빠집니다. 오즈의 마법사를 촬영할 때 제작진은 각성제와 수면제를 권했고,영화촬영을 끝냈을 때 그녀는 이미 마약 중독자였습니다. 그 후, 주디의 삶이었던 세 자녀, 다섯 번의 결혼, 모두 비극으로 끝납니다. 40대 중년이 된 주디는 점점 더 몰락해 갑니다.

주디는 경력에 차질이 생길 때마다 항상 컴백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살이 찔 때마다 살을 빼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녀는 행사를 취소할 때마다,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긴 콘서트를 열었습니다.주디가 빛나는 순간은 무대 위였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두려움에 떠는 아이였습니다. 이젠 정착할 집조차 없어 전 남편에게 양육권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합니다. 마침, 그때 런던 웨스트엔드의 알려진 클럽인 ‘Talk of the Town’에서 초청을 받고 공연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주디는 아이들이 보고 싶은데다가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술과 약물에 절어 리허설도 거절하고 첫 공연도 떼밀리다시피 무대에 오릅니다. 내면의 개인적 악마와 다툼을 벌이는 처지라 공연이 잘 될 리가 없었고, 관객들로부터 야유를 받습니다. 그러나 일단 노래를 시작하면 그의 열창은 완전히 무대와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런던에서 수일간 이어진 콘서트 무대에서 그는 술에 취해 비틀대면서도 진심을 다해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약물 과다복용으로1969년 47세로 그녀는 떠납니다. 그녀의 마지막 공연은 1969년 3월 25일 덴마크 공연입니다.

연극 “무지개의 끝”을 각색한 영화 ‘주디’는 무대를 사랑하는 주디에 집중합니다. 무대는 주디에게 이중적인 공간입니다. 노래 부르며 쇼를 보여주는 것은 주디가 좋아하고, 재능을 가진 일입니다. 동시에 어린 시절에 학대 받으며 해야 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디는 무대를 사랑하면서도 무서워합니다. 그녀의 내면은 불안했고, 청중이 열광할 때 그나마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주디’는 말합니다. 주디는 악의와 풍자의 시선에서 보호 받아 마땅했던 배우였다고…그녀를포옹하는 마음으로 배우 ‘르네 젤위거’는 그녀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주디가 되어 살았던 르네는 ‘주디’가 겪은 삶의 굴곡을 말합니다. 그녀의 인생 사이사이 빈 공간에 존재하는 감정과 이런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의미까지도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르네 젤위거는 그녀가 살았던 주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디 갈런드’와 같은 사람은 정말 쉽게,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무대를 소화했기에 내가 어느정도까지 노력을 해야만 그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는 가늠이 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주디 갈런드’와 같은 수준의 노래를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이 얼마나 신체적인 부담을 주는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디 갈런드가 인생을 걸쳐 겪은 최악의 순간들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그녀처럼 노래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봤다. 그녀의 인생에서 최악의 도전을 해야하는 때, 그녀를 압도하는 순간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최악이었다. ‘주디 갈런드’가 겪어내는 모든 순간들을 보면 우린 그나마 운이 좋다고 생각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