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3년5월18일,미 왕당파 캐나다로 이주

오늘날 미국인들은 독립전쟁을 혁명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내전이기도 했습니다. 독립에 반대하고 여전히 영국왕에 충성하는 충성파(왕당파)들이 존재했습니다. 실제 이들은 반군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었습니다. 충성파의 수는 식민지 백인 인구의 20%인 500,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충성파도 인지세법과 강압법과 같은 영국의 행동을 비판했습니다. 다만 그들은 보다 평화적인 시위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독립이 영국과의 교역을 제한하여 경제적 이익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믿었습니다.

1783년 9월 영국과 미국은 파리에서 전쟁을 끝내는 조약을 체결합니다.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지금의 캐나다와 미국사이의 경계선도 설정했습니다. 승리한 혁명세력은 충성파(왕당파)가 영국왕을 계속 지원했기 때문에 그들의 땅과 소유물을 박탈합니다.

이에 영국은 뉴욕 왕당파를 당시 영국영토, 주로 캐나다로 대피시킵니다. 대부분의 이주자는 독립 전쟁 기간 동안 왕실의 통제하에 있던뉴욕출신입니다. 각 식민지의 충성파 수는 다양했습니다. 최근 추정에 따르면 뉴욕 인구의 절반이 충성주의자였습니다. 이들은 지금의 온타리오와 노바스코샤에 정착합니다. 충성파 난민들은 각각 200에이커를 받고, 재정적 독립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영국 충성파의 캐나다 도착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인구를 이주시키게 됩니다. 현재 퀘벡에 해당하는 캐나다동부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정착하게 됩니다. 이들을 제외하고는 캐나다는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