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 다카시는 호사카 마사야스, 사노 신이치와 더불어 일본 3대 논픽션 저널리스트로 꼽힌다.

다치바나는 문예춘추에 입사해 기자로 활동하다가 1966년 입사 2년 만에 퇴사했다. 그는 1970년대부터 프리랜서 기자 활동을 시작했고, ‘1979년 ‘문예춘추’에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금맥과 인맥’을 발표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 뒤 1979년 ‘일본 공산당 연구’를 발표하여 고댠사 논픽션상을 수상했고 1998년에 시바 료타로 상을 수상하는 등 독보적인 입지를 굳혔다.

다치바나는 그 뒤 권력 비리나 정치 이슈를 넘어서 원숭이, 뇌, 우주, 인터넷 등 인류 문명의 핵심 테마로 취재 영역을 넓혔다. 다치바나의 책은 늘 일본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지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어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는 일본 지적 하향화 문제점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또 ‘죽음은 두렵지 않다’ ‘임사 체험’ 등은 암을 앓은 자신의 경험과 환자, 병원 관계자 취재를 통해서 일본 사회에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했다.

그는 어떤 테마를 잡으면 자신의 키 높이 만큼 자료를 꼼꼼히 읽고 취재에 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독서와 취재 목적으로 모은 도서를 보관하고 활용하기 위해 직접 설계하여 빌딩을 지었다. ‘네코 빌딩’이라고 불리는 이 빌딩은 다치바나의 지적 세계를 상징하는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월터 아이작슨은 2019년 천재화가 다빈치 전기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출판했다. 2015년엔 세계 최고 소프트웨어 개념을 고안한 여성 수학자 에이다 러브레이스 삶을 다룬 ‘이노베이터’를 발표했다. 아이작슨이 2011년에 쓴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전기는 이미 경영분야 고전으로서 대접을 받는다. 세계 최초로 퍼스널 컴퓨터와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러면서 균형있게 기록한 잡스 실록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심하고 전기작가로 아이작슨을 선택했다. 이는 어떤 제국의 황제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업적과 함께 잘못을 기록해줄 사관으로서 언론인을 선택한 셈이다.

잡스와 아이작슨의 인연은 아이작슨이 타임지 편집장으로 일했던 시점에 맺어졌다. 아이작슨은 당시 잡스에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잡스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고 잡스와 잡스 관련 인물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하고, 불편한 이슈까지 집요하게 팠다.

다치바나와 아이작슨은 공통점을 많이 갖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직업적 뿌리가 저널리즘이며 모든 콘텐츠를 저널리즘 정신에 따라 제작한다.저널리즘이 과학, 문학 등 다른 분야와 다른 점은 직접 보고, 듣고, 읽은 사실을 제3자가 객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엮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작슨은 다빈치 전기를 쓰기 위해 다빈치가 남긴 모든 기록물 원전을 찾아서 직접 읽고 분석하는 작업을 7년동안 벌였다.

두 번째 공통점은 특정 언론사 소속이 아니라 프리랜서로서 독립 저널리스트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들의 저술은 순전히 개인 작품이다. 그러면서 성과도 개인이 차지하고, 비판이나 비난도 소속 조직이 아니라 개인이 감당한다.

세 번째 공통점은 이들의 활동 플랫폼으로서 단행본을 삼은 점이다. 두 사람은 잡지에 기고하거나,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활동 중심 플랫폼이 단행본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기고나 방송출연은 자신이 출판한 단행본을 더 널리 알기 위한 마케팅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공통점은 두 사람은 책을 낼 때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함으로써 어젠더 세팅, 새로운 사실 발굴, 사초 기록 역할 등 저널리즘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안정적인 보상을 받아 재정적 안정성과 독립성을 구현했다. 두 사람의 책은 늘 잘 팔린다. 출판시장이 큰 일본과 영미권 독자를 대상으로 삼기에 기본 인세만 해도 엄청난 액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연 수익은 덤으로써 이들의 재정적 독립성을 뒷받침한다.

다치바나와 아이작슨의 사례는 현재 언론 산업과 현장 저널리스트에게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디지털 시대가 시작된 이후 종이와 공중파에 뿌리를 둔 언론 산업이 추락하고 아울러 전통 미디어에 속한 저널리스트의 영향력도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저널리스트로서 은퇴이후 미래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언론사 소속 저널리스트들은 짧게 하루에서 길게 한달 정도를 콘텐츠 생산에 사용하는 것이 관행이다. 모든 사람이 빛의 속도로 뉴스가 쏟아내고 소비하는 디지털 시대에 프로페셔널 저널리스트가 현재의 콘텐츠 생산 속도와 량으로는 존재감을 발휘할 수 없다. 또 당파적 시각과 이해관계를 담은 가짜뉴스와 진영 논리가 판치는 디지털 공간에서 객관주의 저널리즘도 인정받기도 어렵다. ‘기레기’라는 모욕적인 언론에 대한 비판적인 용어의 뿌리도 실은 새로운 디지털 환경과 그 것에 못따라가는 낡은 저널리즘 관행간 격차에서 찾을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상대적으로 여러 팩트를 체계적으로 모아서 사안을 종합화하여 누구나 충분히 시시비비를 객관적으로 가릴 수 있는 긴 호흡의 저널리즘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진영에서 자유로운 중간층일 수록 특성 사태에 대해 종합적인 정보와 시각을 원하고 있다.

긴 호흡 저널리즘 역사는 꽤 깊다. 긴 호흡 저널리즘 기법으로는 르포르타주(일명 르포)와 탐사보도가 대표적이다. 르포르타주는 인터뷰와 현장 답사 기법으로 르포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탐사보도는 권력과 대기업의 구조적 비리를 데이터베이스, 제보자 등을 활용하여 입체적으로 폭로하는 기법이다. 긴 호흡 저널리즘의 출간 플랫폼은 주로 단행본과 다큐멘터리 영상이다.

긴 호흡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저널리스트는 ‘배드 블러드’를 쓴 존 캐리루 기자(월스트리트 저널), ‘공포’를 쓴 밥 우드워드(워싱턴포스트)는 언론사에 소속돼 활동하는 형태와 호사카 마사야스나 월터 아이작슨 처럼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형태로 나뉜다.

한국의 긴 호흡 저널리즘은 그리 활발하지 않다. 최근 주진우 기자,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 등이 탐사보도 기법으로 단행본을 출간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양과 질 측면에서 미국과 일본 긴 호흡 저널리즘 시장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프리랜서 형태 긴 호흡 저널리즘도 그리 활발하지 않다.

다만 소설가 장강명작가가 올해 ‘당선 합격 계급'(5월), ‘팔과 다리의 가격’(7월) 등 르포 2권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이 1936년 영국 북부 탄광촌을 직접 찾아가 보고 들은 사실을 바탕으로 ‘위건 항구로 가는 길’을 1937년에 발표했다. 오웰의 이 작품은 르포분야에서 걸작으로 꼽힌다. 현장을 생생하게 고발하면서 문학적 품격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장작가는 조지 오웰처럼 소설쓰기를 기본 중심축으로 삼으면서 르포와 같은 논픽션 장르를 개척하기 위해 르포집을 낸 것으로 보인다.

장장명작가는 ‘당선, 합격, 계급’에서 “내가 취재한 내용이 최소한 1차 자료로서의 가치는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신문기자로 10년 이상 일했다. 저널리스트로서 기본 교육은 잘 받은 편이라 자부한다. 몇 번 특종도 했고, 기자상도 여러 개 받았다”면서 저널리스트 DNA를 르포집필에 활용한 점을 털어놓았다.

독립 저널리스트와 단행본 저널리즘이 크게 확대되지 않고 제한적 시장안에 머무는 것은 역시 투자의 문제다. 긴 호흡 저널리즘을 실행하려면, 탐사전문기자 또는 전업 작가를 표방해야 한다. 테마를 잡고 자료 조사, 관련자 인터뷰, 현장 답사 등 집필에 필요한 작업을 하려면 최소 1년 이상 넉넉하게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시간 뉴스를 다루면서 오리지널 단행본을 제작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언론사가 탐사보도 전문기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후방 지원을 제공하려면 수익성을 따져야 한다. 독립 저널리스트은 단행본을 준비하는 동안 생활비와 자료조사비용을 충당해야 한다. 또 단행본 출간이후는 인세, 강연료, 출연료 등으로 재투자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처럼 규모가 작은 출판 시장에서 단행본 출판은 불확실성을 너무 많이 갖고 있어 긴 호흡 저널리즘 투자가 선순환 구조를 구현하기 매우 어렵다. 이점이 현재까지 언론사 차원이든, 개인 차원이든 단행본을 플랫폼으로 삼는 저널리즘이 활발하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다.

단행본 기반 긴 호흡 저널리즘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은 크라우드 펀딩(Crowdfunding)과 공공기금을 활용하는 것이다. 카카오에서 4년 7개월동안 운영했던 스토리펀딩은 텍스트,영상 등 콘텐츠 제작 비용을 크라우드 방식으로 조달하는 플랫폼 역할을 했다. 콘텐츠 제작자가 기획서를 올리고 기획에 공감하는 사용자가 소액을 펀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카카오는 스토리펀딩을 통해 42만명이 4000명의 창작자에게 165억원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언론진흥재단, 삼성언론재단,방일영문화재단 등 재단에서 언론인 출판 지원사업을 통해 단행본을 준비하는 저널리스트를 지원한다. 저술지원 프로그램은 대체로 1천만원 한도안에서 저술지원금 또는 책을 구매해주는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크라우드펀딩과 공공기금 지원은 긴 호흡 단행본 저널리즘을 활성화하는데 역부족이다. 예를 들어 그나마 독립 저널리스트에 자금줄 역할을 하던 카카오의 스토리펀딩 서비스는 올 4월 중단됐다. 또 재단의 저술지원금 액수는 본격적인 르포나 탐사보도를 제작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각종 문학상 공모전의 경우 대체로 5천만원~1억원 사이다. 저술지원금이 최소한 이 정도 액수가 되어야 본격인 르포와 탐사보도를 지향하는 저널리스트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시도해볼 방안은 논픽션 센터를 공익법인으로 설립하는 것이다. 센터의 기본 기능은 르포와 탐사보도 기법으로 단행본을 제작하려는 저널리스트에게 자금과 자료 조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자금의 경우 최소 건당 3000만원 이상 규모가 되어야 한다.

자금지원보다 자료 수집과 분석 등 자료 조사 지원 기능이 더 중요하다.

디지털이 대중화되기 이전까지 각 언론사는 조사부라는 이름으로 전문 사서를 확보해 저널리스트의 기초 자료 조사를 지원했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사는 조사부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면서 저널리스트에 대한 자료 조사 기능이 거의 사라졌다.

단행본 저널리즘을 수행하려면 문헌조사, 통계조사, 섭외 등 자료조사와 기초 업무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빅데이터 시대의 특성을 고려해 데이터 분석 전문가를 확보하여 데이터 가공과 분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논픽션센터는 또 저널리스트 지망자와 현장 저널리스트에게 르포와 탐사보도 기법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기능을 갖춰야 한다. 아울러 자서전쓰기 교육과 같이 일반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설해 잠재적 논픽션 작가를 육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치바나는 논픽션 기법을 일반인에게 전파하기 위해 자서전쓰기 강좌를 직접 진행하고 결과물을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출간했다.

논픽션은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젖줄 역할을 할 것이다. 웹툰은 영화와 드라마에 소재 공급 역할을 한다. 웹툰의 기초 소재는 사실은 매일 쏟아지는 뉴스다. 전세계에서 쏟아지는 사건 사고는 모두 스토리텔링에 신선한 재료다.

여가 시간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에 따라 앞으로 콘텐츠 소재에 대한 수요도 많이 늘어날 것이다. 저널리스트가 보고 듣는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짜리 뉴스만 생산하다 보니 내부에서 본 리얼 드라마를 정리 정돈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논픽션 센터는 디지털 시대 실록청 역할을 할 수 있다. 먼 훗날 네이버에 축적된 뉴스만 갖고 현재 역사를 제대로 쓸 수 없을 것이다. 특정 사안에 수만건 기사가 보관돼 있어도, 대부분 내용이나 다루는 세부 사안이 비슷할 것이다. 단행본 형식은 특정 시점을 벗어나 종합화해야 하고 근거를 표기해야 한다. 따라서 르포와 탐사기법으로 제작한 단행본은 역사 연구에 중요한 사초 역할을 한다.

일본 논픽션 저널리스트 호사카 마사야스의 ‘쇼와 육군’은 일본 현대사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사에서 실록 역할을 한다. 호사카는 쇼와 천황시대 육군 지도부중에서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침략 전쟁 관련자 4000명을 인터뷰하고 전범 재판 기록을 일일이 뒤져서 방대한 자료를 책으로 엮었다. 그의 작업 덕분에 역사 연구가는 풍부한 1차 자료를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언론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고, 언론의 산업적, 직업적 전망이 어둡다. 이럴 때 일수록 저널리즘의 기본으로 돌아가 작은 희망의 빛이라도 찾아야 한다. 긴 호흡 단행본 저널리즘 또는 르포와 탐사보도 저널리즘에서 그런 희망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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