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표트르 대제는 1725년부터 베링을 파견해 알래스카 해안을 탐험한다. 해달, 여우 등이 풍부한 알래스카로 러시아 모피 사냥꾼들이 몰려들었다. 그래도 러시아 정착민은 400명을 넘지 못했다. 해달 인구가 감소하면서 알래스카의 수익성도 사라지자, 크림 전쟁의 패배로 재정이 부족해진 알렉산드르 2세는 미국에 매각을 제안한다.

19세기 중반 미국은 태평양으로 확장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 믿는 ‘명백한 운명’의 시대였다. 알래스카 매입을 주도앴던 국무장관 슈어드(Seward)도 “태평양 연안에서 동양 문명을 만날 운명”을 주장했다. 슈어드는 남북전쟁이 끝난 후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매입한다. 

구입 후 30년 동안 알래스카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유콘에서 대규모 금이 발견된 1896년 이후 골드 러시가 촉발되고, 알래스카는 클론다이크 금광의 관문이 된다. 알래스카의 전략적 중요성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마침내 인식되었다. 알래스카는 1959년 1월 3일에 49번째 주가 된다.

Newsletter

1주1책 뉴스레터

* indicates required

댓글을 남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