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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 전쟁 후 푸틴의 러시아는 중요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러시아가 처한 지정학적 환경때문에 푸틴의 러시아의 선택, 그로인해 달라질 세계질서를 가늠해보아야 합니다.

신뢰의 이름 《르몽드》의 전문가들과 인포그래픽 팀이 만든 지정학 지도와 인포그래픽을 통해 러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날카롭게 해부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천연 자원, 나토와 러시아의 대치, 푸틴의 전쟁들,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조건을 이해해야 현재 어지럽게 돌아가는 국제 정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푸틴의 러시아는 더 이상 옛 소련의 그림자가 아닙니다. 지리적으로 축소되고 인구 위기와 경제 위기로 러시아는 쇠약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강력한 화력과 식량, 석유라는 무기를 들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이자 막대한 천연자원을 보유한 자원 대국, 세계 제2의 핵무기 보유국이 러시아입니다. 1991년 12월 25일 소비에트 연방의 공식 사망 선고가 내려졌고, 중앙아시아라는 공간에서 연방을 조직했던 15개 공화국이 독립했습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변화는 여러 곳에서 긴장과 분쟁을 낳았고, 그 여파가 오늘날까지도 미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21년 뒤인 2022년 2월 말, 푸틴은 유럽인들에게 전쟁이 어떤 것이었는지 상기시켰습니다. 대규모 공습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은 서로 충돌했고, 무엇보다 러시아가 이러한 파괴적인 계획을 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돌이켜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 관계는 이 전쟁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이며, 우크라이나는 그 희생양입니다. 양국 관계는 상호 몰이해가 어떻게 원한과 적대감을 키웠는지, 푸틴이 5명의 미국 대통령을 상대하면서 어떻게 국제무대에서 배척당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미국에 대한 불신은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터지면서 더 심해졌습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과 신보수 세력이 잘못된 정보에 기초해 전쟁이라는 모험을 감행했기 때문입니다.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미국의 신뢰도를 깎아 먹었을 뿐만 아니라, 강자가 진실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다는 확신을 러시아에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나 푸틴은 아직 이러한 깨달음을 모두 행동에 옮김 것은 아닙니다. 아직 국내 기반을 다질 때였기 때문입니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푸틴의 힘입니다. 에너지와 안보 분야에서 벨라루스의 러시아 의존성이 강하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벨라루스에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 대가로 벨라루스는 석유 수입에 대한 특혜 관세 혜택을 받았고, 그 일부를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었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석유 덕분에 벨라루스 정부는 경제 개혁에 신경쓰지 않아도 사회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2022년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졌을 때, 벨라루스는 전략적 줄서기를 선택했습니다. 우크라이나로 진군하는 러시아 군대에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한편 2022년 2월 26일 벨라루스는 국민투표를 통해 핵무기 배치가 가능해졌고, 이에 유럽연합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국민투표는 대통령의 권한도 강화하여, 푸틴처럼 루카셴코도 2035년까지 집권이 가능해졌으며 평생 면책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내륙 지역인 중앙아시아를 노리는 이유는 천연자원, 특히 에너지 자원 때문이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소련 시절부터 가스관과 송유관 망을 통해서 수출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중국이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 그리고 이 에너지 자원을 국경 지역인 신장위구르 자치구까지 운송하기 위한 운송망 시설 건설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의 경쟁 관계를 완화하려는 카자흐스탄 대통령(1991~2019년 재임)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면서도 상대국들과 균형 있는 협력을 추구하는 ‘멀티벡터리즘(multivectorism)’ 외교 정책을 펼쳤습니다

쿠릴 열도를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영유권 분쟁은 1945년 이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열도의 남쪽에 있는 4개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서 두 국가 간 강화 조약을 맺지 못하고 있으며, 이 문제는 무역 관계에도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나토와 미국의 허를 찌르며 손쉽게 크림반도를 합병했습니다. 흐루쇼프가 집권했던 1954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양도한 크림반도의 주민은 대부분 러시아인입니다. 1만 5000명의 병사가 크림반도에 진입했지만, 우크라이나 군대와 실제 충돌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러시아는 국제법을 침해한 것이며, 부다페스트 안전보장각서(1994년)로 우크라이나에 약속했던 사항도 위반한 것입니다. 각서 체결 당시 우크라이나는 안전 보장을 대가로 핵무기를 포기했습니다. 러시아 군대 진입 이후 주민 투표가 서둘러 이루어졌고 크림반도는 러시아에 합병되었습니다. 푸틴은 “고향 항구에 돌아간” 것을 기뻐했습니다. 일종의 행복감과 애국심의 도취가 관영 매체들을 통해 전해지며 러시아 국민 대부분을 사로잡았습니다. 잃어버렸던 자존심이 회복된 사건입니다.  유럽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많이 수입하자 러시아는 신뢰하기 어려운 우크라이나를 우회하기 위해 해저 가스관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우크라이나에 통행료를 내지 않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스관을 하나 더 짓는다는 것은 불필요한 시설을 추가하는 것이며 지역 갈등 및 국제사회의 갈등만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실 흑해는 ‘러시아의 호수’가 아니라 ‘나토의 호수’입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 오히려 흑해 주변 나토회원국들의 안보전략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2016년 이지스와 같은 탄도미사일 방어 체계를 루마니아의 군사기지에 배치합니다. 조지아와 우크라이나가 자국의 안정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 나토 가입을 원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낀 칼리닌그라드주는 나토 한가운데 놓인 러시아 영토입니다. 이 지역은 독일의 주였던 동프로이센의 북부로 통하는 전략 지역입니다. 푸틴이 북방 함대를 키우려고 했을때, 2022년 2월 전투기를 보낸 곳은 발트 함대가 있는 칼리닌그라드였다. 이로 인해 푸틴은 나토 진영 한가운데에 자국의 무기를 확충할 수 있었습니다.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기 2주일 전이었다. 칼리닌그라드는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러시아의 핵 심 요새로 탈바꿈합니다.  

2022년 2월 24일 새벽에 개시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를 세계 지도의 중심에 다시 서게 합니다. 지난 30년간 세계는 1991년 소련 붕괴의 여파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 충격의 파도는 지금도 세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푸틴의 러시아는 더 이상 옛 소련의 그림자가 아닙니다. 지리적으로 축소되고, 인구와 경제 위기로 쇠약해진 러시아이지만, 강력한 화력과 식량, 석유라는 무기를 들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건 없습니다. 그것은 2022년 2월 24일 푸틴이 이웃 국가를 굴종시키려는 ‘특별 군사 작전’일 뿐입니다. 전쟁이란 상대국이 독립 국가라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머리 속에선 전쟁이 아닙니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은 적어도 전쟁 첫 단계에서 러시아의 계획을 망쳐 놓았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전쟁’이라는 말만 해도 15년 형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러시아 독립 언론 매체조차 자진 폐업했습니다.

끝까지 전쟁을 할 것인가? 잠깐의 마비 상태가 지나고, 시리아에서 그랬듯이 정보를 장악하려는 움직임이 우크라이나에서도 보입니다. 매일같이 러시아 군대의 대변인들은 적군이 입은 피해에 관한 (확인 불가능한) 통계를 말합니다. 목격자가 넘치는 러시아군의 수탈에 관해서도 부인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사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평화 회복 작전’으로 가르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교사들에게 전달된 자료에는 2월 24일 푸틴의 대국민 연설 요약본도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우크라이나는 20세기까지 존재하지 않던 나라였다, 2014년에 우크라이나에서 쿠데타가 터졌다, 크림반도는 러시아 땅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학생들이 할 질문에 미리 정해둔 답변까지 전달되었습니다. “왜 군사 행동이 진행 중인가요?” “러시아 국경으로 나토가 점점 밀고 들어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위험하기 때문이에요.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도 만들 수 있어요.” 

역사적으로 전쟁을 많이 했던(오스만 제국과 제정 러시아는 14번 전쟁을 치렀다)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관계는 그만큼 복잡합니다. 러시아가 바라보는 튀르키예는 나토와 서방의 동맹국 하나를 빼앗아 오는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러시아가 시리아 문제와 관련한 협상을 진행할 때 제네바에서 튀르키예, 이란과 협력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러시아를 바라보는 튀르키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리아 문제로 서방 국가들을 제치고 ‘트로이카’를 만들면서 튀르키예는 북부에 개입할 운신의 폭이 넓어졌고, 쿠르디스탄 노동자당(PKK)이 후진 기지를 만드는 것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튀르키예 대통령은 계속 양다리 전략을 쓰면서 러시아가 반대하는 사안에 대해 나토 회원국들과 공동 전선을 펼치고 있습니다.

유럽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자 단 2주 만에 지정학적 노선이 남아메리카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파급효과는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못지않습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모두 러시아가 유럽을 ‘새로운 시대’로 몰아넣었다고 평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1991년 소련 붕괴로 시작된 30년 동안의 포스트 냉전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요? 20세기에 일어난 분쟁은 ‘2대 강국’이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려 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나름의 규칙과 소통 채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번 위기가 서방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핵 강대국이자 유엔의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무력 침공으로 국경을 위협하자 ‘잠자는 공주’ 유럽도 흔들거립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례가 없던 일입니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당시 총리는 가을에 의회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유럽 땅에 탱크전이라니, 다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다.” 그런데 러시아 탱크가 우크라이나에 진격했습니다. 이제 갑작스럽게 세계가 변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서이후 세계는 어떻게 요동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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