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에 초강경 성향의 레이건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미국과 소련사이는 절정으로 치닫기 시작했습니다. 레이건은 취임사를 통해 “소련을 “범죄와 거짓말과 속임수를 일삼는” 집단으로 묘사하면서 대화 무용론을 강조했습니다. 이를 두고 <LA 타임즈>는 “지난 20년동안 백악관에서 나온 가장 강력한 냉전적 공격”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소련은 1982년 11월 브레즈네프가 사망하고, 연로한 안드로포프가 서기장을 계승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983년 4월 소련 정부는 미국 소녀 사만다 스미스가 학교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안드로포프에게 보낸 편지를 소련 공산당 기관지인 프라우다에 공개했습니다.

“친애하는 안드로포프 서기장 님께

제 이름은 서맨사 스미스이고 10살입니다. 새 직책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러시아와 미국이 핵전쟁을 할까봐 걱정해왔습니다. 서기장님은 정말 전쟁을 하실 건가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전쟁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하실 건지 말해주세요. 굳이 답하지 않으셔도 되지만, 저는 서기장님이 세계 혹은 최소한 우리 미국을 정복하고 싶어하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신께서는 우리가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라고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서맨사 스미스 올림”

 4월 26일 안드로포프는 답장을 보내어, 스미스에게 소련을 직접 방문하도록 초대했습니다.안드로포프는 서방과의 긴밀한 관계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으며, 작은 소녀에 대한 그의 초대는 이러한 정치적 입장을 나타내는 한 가지 방법이었습니다.

러시아에서 2주 동안 스미스는 VIP 대접을 받았고 세심하게 계획된 소련 여행을 했습니다. 그래도 스미스는 소련이 직면한 일부 문제, 특히 식량 부족을 숨기려고 하지 않는 소련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2주 후 미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소련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세계에 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살고 싶냐는 질문에 그녀는 공산주의자들을 칭찬하면서도 “차라리 내 나라에서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소녀 스미스의 삶은 너무도 짧게 끝났습니다. 1985년 TV 출연을 마치고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비행기 사고로 숨졌습니다. 그래도 소녀의 소련 방문은 80년대 후반기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냉전종식에 하나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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