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전설 엘라 피츠제럴드는 1917년 4월에  버지니아 주 뉴포트 뉴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노래의 퍼스트레이디”라고 불렸는데, 그 의미는 작곡가 거쉬윈이 그녀에게 준 칭찬이 담겨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와는 별개로, 그 뒤에는 우울한 노래조차도 낙관주의로 기울어지게 만드는 따뜻함과 지성이 있습니다.빌리 홀리데이나 프랭크 시나트라는 센티멘탈한 노래의 깊은 우울함을 표현합니다. 반면에 피츠제럴드는 어떤 노래도 순수한 기쁨으로, 산소같은 청량한 멜로디로 부릅니다. 그것은 영원할 것같은 젊은소리입니다.

하지만 엘라 자신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엘라가 태어난 직후 뉴욕 북쪽으로 이주했습니다. 엘라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댄서가 되고싶어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가 갑자기 193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5세 된 엘라는 대공황이 발생한 바로 그 때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끼니때우기도 힘들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엘라는 매음굴에서 파수꾼으로 일합니다. 그녀는 곧 유색인종 고아 수용소에 수용되고, 다시 그 시설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훈련학교라 불리는 소년원으로 보내졌습니다.

1934년 11월 21일 저녁, 엘라는 아마추어 나이트에 참여하기 위해 할렘의 아폴로 극장 무대로 올라갔습니다. 모자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온 후 순전히 우연의 결과로 무대에 오른 엘라는 그순간 댄서대신 가수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엘라는 아마추어 밤에서 우승을 해버립니다. 라이브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엘라 피츠제럴드의 전설이 시작됩니다.

1950년대 중반, 프로듀서 노먼 그란츠와 레코딩 계약을 체결하고 미국의 위대한 작곡가들이 만든 ‘콘셉트 앨범’ 시리즈를 녹음했습니다. 1960년대 초반까지 콜 포터, 듀크 엘린턴, 거슈인 등의 작품들을 차례로 녹음하며 그녀의 실력과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가장 테크닉이 좋고 리드미컬하며 스캣에 능한 가수입니다. 이후 스포트라이트는 엘라를 떠나지 않았고, 그의 명성은 점차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재즈계를 넘어 대중의 큰 호응을 얻어습니다.

1917년 이날 태어난 엘라 피츠제럴드는 1996년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에서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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