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은 우리나라의 로켓 과학 기술의 역사에서 전환점이 된 해라고 할 수 있다. 5월 로켓 기술의 개발에서 유리 천장 역할을 해 온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이 종료되었다. 10월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저궤도 실용 위성 발사용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거의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2022년에는 2차, 3차 시험 발사가 예정되어 있어, 발사와 위성체의 궤도 안착 모두 성공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 로켓 과학과 기술의 핵심에는 유체 역학이 있다. 유체 역학은 이공대 학생들의 필수 과목이지만, 공학 꿈나무들을 좌절로 이끄는 과목으로 악명이 높다. 대중적인 과학이야기가 인기를 끄는 요즘에도 유체 역학을 주제로 한 책이나 방송 등의 콘텐츠가 부족한 것에는 유체 역학이 가진 난해함이 한몫한다.
그 난해함에 도전한 [판타레이:혁명과 낭만의 유체과학사]가 발간되었다. 책의 저자 민태기박사는 자동차 터보 엔진 기술을 개발하고, 누리호에 국내 순수 기술로 개발한 터보 펌프를 납품한 과학자이다. 그는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이야기를 찾아 수백가지 과학역사 메모를 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조선일보》에 「사이언스스토리」라는 칼럼을 연재하면서 과학과 사람의 조화를 꿈꾸고 있다.
민소장은 마치 서로 분절된 것처럼 보이는 개별 과학을 꿰뚫는 하나의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잃어버린 고리’를 ‘판타 레이’라는 개념에서 찾는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과학사와 기술사는 사실 유체 역학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플라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을 ‘판타 레이’로 기술했다. 모든 만물은 지속적으로 흐르는 강물 속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고,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끝없는 변화 자체이다. 우리 환경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끝없이 변화하는 지속적 프로세스 속에 존재한다.
- 왜 우리는 전자의 이동을 전기의 흐름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 왜 경제학자들은 돈의 움직임을 화폐 유동성이라고 부르고 나비에와 스토크스라는 유체 역학자가 개발한 유체 방정식으로 문제를 풀고 있을까?
- 왜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다투게 되었을까? 왜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만들게 되었을까? 왜 양자 역학의 슈뢰딩거 방정식은 파동 방정식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은 최초의 전자기학 발견자들과 경제학자들, 그리고 수많은 과학자와 수학자들이 유체 역학 연구자였다는 것을 짐작케한다. 그는 단순히 과학사의 잃어버린 연결 고리인 유체 역학의 역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유체 역학에 관한 과학 지식을 친절히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 물리학자들의 생생한 사고와 탐구 과정을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과학은 자연 현상에 대한 부분적인 해석이 아니라 인간 사회 전체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사회와 격리된 어느 한 천재의 고독한 상상력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낳은 필연적 결과다. 예술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그 시대와 삶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듯, 과학자들이 살았던 시대와 그들의 삶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변화하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유체 현상으로 이해한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은 유체역학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서로 아무 상관 없는 줄 알았던 음악 사조, 정치적 사건, 유행하던 사교계 풍습 등이 과학적 발견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모여 살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과학 역시 괴짜 천재들이 외딴 섬에서 홀로 발전시켜 온 것이 아니었다. 과학이든 예술이든 정치사상이든 사람들의 모든 ‘생각’은 치열한 상호 교류 속에서 서로를 변화시키며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