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 마음도 누워가는 사찰, 현통사

– 창호지 넘어 들리는 폭포소리와 바람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 자연에 내려놓는 각자의 고민들

– 도심 속 자연이 주는 영감으로 예술가들 자주 찾아

민경인 조선비즈 인턴기자 mycitystory.korea@gmail.com

“제월당 안에서 달을 바라보면 처마에 가려 달이 보이지 않습니다. 달을 보기 위해 고개를 비스듬하게 해야 비로소 달을 볼 수 있어서 月(월)을 눕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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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통사의 제원당, 현판의 적힌 月(월)자가 누워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현통사의 위치와 역사를 새겨놓은 비석에는 ‘한강을 굽어보며 수 백리를 연이어 뻗쳐 내리는 삼각산 정기는 이곳의 백사골에 이르렀고 세검정을 싸고 도는 맑은 물줄기를 따라 오르면 넓적한 바위 위에 삼각산 현통사라 새긴 일조문이 울뚝 솟아있다’라고 쓰여 있다. 현통사는 세검정초등학교에서 동쪽으로 500m 정도 떨어져 있어 도보로 10분이면 찾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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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현통사는 자연의 소리만 들릴 뿐 고요했다. 기자가 예정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사찰의 주지인 부암 스님은 미리 다과를 준비하고 묵주를 돌리고 있었다.

비가 내려 수량이 많아진 폭포 소리와 사찰의 창호지 넘어 들려오는 빗소리가 들뜬 마음을 진정시켜 줬다.

현통사는 고려시대부터 현재 자리를 지켜왔다. 이 사찰은 조선시대까지 ‘장의사’라 불렸다. 이후 한국 전쟁으로 사찰이 소실되고 1958년 이름을 보문사로 변경했다. 1967년 재건 작업이 시작돼 1971년에 이르러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이후 1987년 사찰명을 ‘현통사’로 변경했다.

현통사의 역사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사찰에 남아있는 사료(史料)와 스님들로부터 전해진 내용으로 현통사의 역사를 정리했다. 약 500평 부지에 건물들이 오밀 조밀 모여있는 현통사에는 주지 스님 한 분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지 스님은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차를 마시며 자연을 즐깁니다”며 “현통사는 근처에 폭포가 있는 서울에서 보기 힘든 사찰입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도심을 떠나 현통사에서 스스로 마음의 위안을 찾거나 희망을 기도하기도 한다. 그는 “매년 대입 수능일이 다가오면 학부모들이 사찰을 많이 찾습니다”라며 “수능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을 실감하곤 하죠”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학부모들의 정성을 보면 스스로 마음이 경건해집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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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 스님을 만난 현통사의 제월당은 사랑채와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손님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신발을 벗고 제월당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라 독특한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제월당 현판 속 月(월)은 오른쪽으로 누워있다.

현통사 제월당霽月堂의 月자가 옆으로, 누워 있다 계곡 물소리에 쓸린 것인지 물 흐르는 방향으로 올려 붙은 달, 물에 비친 달도 현통사 옆에선 떠내려 갈 듯하다

비 오는 날 숲의 모든 소리는, 물소리 뒤에 숨는다

<조용미, 소리의 거처 中>

이처럼 문 앞부터 재치를 느낄 수 있는 제월당은 산의 경치를 감상하며 ‘힐링’하기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그는 “제월당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면 늘 시 한편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며 “출가 전 연애편지도 많이 썼는데 상대방이 늘 감동했지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이 같은 매력 때문에 화가·서예가·시인들이 현통사를 자주 찾습니다”라며 “도심 속의 자연이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듯 합니다”고 말했다.

또 주지 스님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라며 “주로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지인보다 스님인 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편이 안심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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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월당 내 ‘금강경 병풍’, 금강경 병풍은 동방대학원대학교 이영철 교수가 금으로 직접 글을 썼다.

때론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것이다.

또 대문을 활짝 열어 놓은 현통사는 차(茶)를 마시며 마음을 정화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주지스님은 “예로부터 술을 즐기는 나라는 망하고 차를 먹는 나라는 흥한다고 했습니다”며 “사찰을 찾은 사람들에게 자연과 차를 통해 삶의 여유와 사색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요즘 서울의 대도심에 지친 사람들이 서울 구석 구석을 다니며 자신만의 공간을 찾고 있다. 현통사는 지친 도시민들에게 충분한 치유의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