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4월10일, 중국과 미국의 핑퐁 외교

1949년 공산주의 혁명 이후 중화인민공화국과 미국의 관계는 냉전상태 였습니다. 무역금수 조치, 외교적 침묵이 두나라의 관계를 상징했습니다. 한국전쟁 후 20년이 넘도록 공식적인 미국 대표단은 중화인민 공화국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1971년, 양국은 서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중소분쟁을 겪던 마오 주석은 미국과의 관계가 러시아에 대한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한편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중국 개방을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1971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가 기회가 되었습니다. 중국과 미국 선수팀이 선물을 서로 교환한 것을 계기로, 마오주석은 미국팀을 초청했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나중에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중국 이니셔티브가 탁구팀의 형태로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죽의 장막을 넘은 미국 팀은 열흘 동안 광저우, 베이징, 상하이를 여행하며 탁구 경기에 참여합니다. 중국선수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단지 경기만이 아니라 외교채널를 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베이징 인민대회당 행사에서 저우어라이는 “미국과 중국 국민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선언합니다. 미국 선수들이 저우언라이를 만난 같은 날인 4월 14일, 닉슨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여행 금지와 무역 금수 조치를 완화한다고 발표합니다. 그 해 7월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가 베이징을 비밀리에 방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