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1책]걷기의 인문학, 혼자 걷는 도시편

레베카 솔닛은 한국의 이름난 문장가 사이에서 유명한 미국 작가입니다. 솔닛은 1961년 생으로 샌프란시스코 근처 UC버클리대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후 독립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환경, 여성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책을 내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번주에 읽을 거리로 선택한 걷기의 인문학은 솔닛의 글쓰기 특성을 잘 반영한 책입니다. 걷기를 단일 테마로 삼고, 찰스 디킨스, 월트 휘트먼, 앨런 긴즈버그 등 거리와 걷기를 소재로 삼은 작가의 작품을 지그재그로 인용하면서 걷기의 역사부터 의미를 재미있게 풀어갑니다.

걷기는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인 행동이면서 또 건강유지 수단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만보걷기는 널리 보급된 운동 방법입니다. 걷기의 인문학을 통해서 걷기가 무엇이고, 내가 걷는 거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기를 바랍니다.

걷기의 인문학중에서 11장 혼자 걷는 도시 편을 골랐습니다. 이 챕터는 샌프란시스코, 파리, 런던, 뉴욕 등 서구의 주요 도시의 걷기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내용이 다소 길어 샌프란시스코 부분만 발췌독하였습니다.

11장 혼자 걷는 도시편

1.샌프란시스코 귀환

오랫동안 뉴멕시코의 시골에서 살던 나에게는 샌프란시스코가 낯설게 느껴졌다. 5월의 향기로운 낮과 밤을 여기저기 걸어 다니면서 보냈다. 산책이 수많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문 밖을 나서기만 하면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전율하기도 했다.

모든 건물 입구, 모든 가게 입구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출구인 듯했다. 다양한 인생의 가능성이 압축돼 있는 곳, 다양함이 다채로움을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일본의 시, 멕시코의 역사, 러시아의 소설이 아무렇게나 꽂힐 수 있는 책꽂이처럼, 내가 사는 도시의 건물들에는 선(禪) 연구소, 오순절 교회, 문신 시술소, 채소 가게, 부리토 가게, 극장, 딤섬 가게가 들어차 있었다.

2.가장 유럽적인 도시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 가장 유럽적인 도시라고 불렸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도시들은 점점 교외의 확장판으로 변해가는 데 비해,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고 길거리에 활기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는 직접 부딪히는 공간으로서의 도시 개념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샌프란시스코는 세 면의 경계가 바다, 한 면의 경계는 산이라서 스프롤 현상이 없는 데다 길거리에 활기가 있는 동네가 많다.

샌프란시스코는 한편으로는 돈벌이가 아닌 삶을 살아가는 화가들과 시인들과 사회적ㆍ정치적 급진주의자들의 전통을 통해 대부분의 미국 도시와는 다른 시간적ㆍ공간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3.골든게이트 걷기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첫 토요일에 나는 근처에 있는 골든게이트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야생의 장관은 없지만 다른 많은 즐거움이 있는 길이었다.

소리가 울리는 지하보도에서 악기 연습을 하는 사람들, 나란히 서서 무술 연습을 하는 중국인 할머니들, 부드러운 쇳소리가 섞인 러시아어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돌아다니는 이민자들을 보았다.

태평양의 해변까지 걸어서 닿는 길이었다.

4.샌프란시스코 거리의 역사

캘리포니아 역사연구가 맬컴 마골린(Malcolm Margolin)은 내게 『오패럴 스트리트 920번지(920 O’Farrell Street)』라는 제목의 책을 건네주었다.

1870년대부터 1880년대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란 해리엇 레인 레비(Harriet Lane Levy)가 자기의 경이로운 성장 경험을 기술한 회고록이었다.

4.1 걷기는 영화관람같이 계획적 일정

그 당시에 샌프란시스코를 걷는 일은 오늘날 영화를 보러 가는 일에 못지않은 계획적 일정이었다.

“토요일 밤이면 온 도시가 해안가에서 트윈픽스까지 수 킬로미터를 직선으로 연결하는 마켓 스트리트 산책에 동참했다. 에스파냐에서 온 사람들, 힘든 일을 하는 수척한 포르투갈 출신들, 피부가 붉은색이고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어 인디언의 피가 드러나는 멕시코 출신들 모두 집, 가게, 호텔, 비어가든을 비우고 마켓 스트리트로 나와 다인종의 강물에 뛰어들었다.

5.샌프란시스코 시내 걷기

파월 스트리트에서 키어니 스트리트까지 마켓 스트리트의 긴 블록 세 개를 내려가서, 키어니 스트리트에서 부시 스트리트까지 짧은 블록 세 개를 올라갔다가, 왔던 길을 되짚어 왔다가 하면서 몇 시간을 왕복했다.

호기심 어렸던 시선은 어느새 관심을 표하는 시선으로 발전했고, 관심을 표했던 시선은 어느새 미소로 발전했다.

5.1 변화

한때 레비가 걸었던 다운타운 마켓 스트리트를 지금은 회사원들과 쇼핑객들, 그리고 파월 스트리트의 케이블카 턴어라운드에서 쏟아져 나오는 관광객들이 걷고 있다.

하지만 마켓 스트리트를 따라 업타운으로 1킬로미터 정도 올라가면 또 다시 두세 블록 정도 활기찬 보행자 세상이 펼쳐진다. 그러고는 카스트로 스트리트와 교차하면서 트윈픽스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6.시골과 도시 보행

도시와 시골을 막론하고 보행의 역사는 자유를 찾아나서는 역사이자 즐거움의 의미를 정의하는 역사였다.

6.1 시골 보행

시골에서의 보행은 자연을 향한 사랑을 도덕적 당위로 삼으면서 시골 땅을 보호하고 시골 땅의 울타리를 부술 수 있었다. 우리 대부분에게 시골이나 자연은 걸어서 지나가는 곳, 바라보면서 지나가는 곳일 뿐, 뭔가를 산출하거나 취득하는 곳은 아니다.

6.2 도시 보행

시골 보행보다는 여러모로 원시 사회의 수렵채집을 더 닮은 것 같다.

채집자가 어느 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6개월 후에 도토리를 따러 와야겠다고 생각하거나 등나무 숲을 지나가면서 바구니를 만들 만한 줄기가 있는지 살펴보듯이, 도시 보행자는 늦게까지 문을 여는 식료품 가게나 구두 수선 가게 같은 곳을 기억해둘 수도 있고, 먼 길을 돌아서 우체국에 들를 수도 있다.

7.샌프란시스코 산책 일기쓰기

고향으로 돌아와서 처음 몇 달 동안 모든 것에 너무 매료된 나는 산책 일기를 써나갔다. 그 멋진 여름의 어느 날, 나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일곱 시간 동안 거의 꼬박 책상 앞에 앉아 있었음을 갑자기 깨달음.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등은 굽고. 필모어 스트리트 위쪽 클레이 극장에 갈까 하고 집을 나옴. 가는 길에 브로더릭 스트리트에서 처음 보는 길 하나를 발견함.

임대주택 단지 근처인데, 예쁜 단층집들이 옛날 빅토리아 시대풍이었음.

너무 잘 아는 장소에서 모르는 장소가 튀어나올 때 언제나 그렇듯 기분이 좋았음.”

8. 길거리는 건물이 없는 빈 공간

집 한 채는 빈 공간이라는 바다에 떠 있는 섬이다. 도시보다 앞서 존재한 소읍은 그저 그 바다에 떠 있는 군도였다.

그러나 건물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군도는 육지가 되었고, 바다였던 빈 공간은 넓은 땅 사이로 흐르는 강, 운하, 개울이 되었다. 예전 사람들이 시골 땅이라는 바다를 아무렇게나 지나다녔다면, 이제 사람들은 거리를 따라 지나다니게 되었다.

8.1 대도시에서는 장소뿐 아니라 공간도 설계 대상

실내에서 먹거나 자거나 신발을 만들거나 사랑을 하거나 음악을 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걷거나 주변을 둘러보거나 공공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주요한 설계 목적이라는 뜻이다.

시민(citizen)이라는 단어는 도시(city)와 관계가 있으며, 이상적 도시는 시민권(citizenship), 즉 공적 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

9.보행이 공적 공간의 공공성과 생명력을 유지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라는 유명한 책에서 제인 제이컵스(Jane Jacobs)가 설명하듯이, 인기 있고 이용자가 많은 거리는 그저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다는 이유만으로도 범죄로부터 안전해진다.

보행이 공적 공간의 공공성과 생명력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프랑코 모레티(Franco Moretti)에 따르면 “도시를 특징짓는 공간구조는 이동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데 유리하다. 여기서 이동이라는 말은 당연히 공간 이동을 뜻하기도 하지만, 주로 계층 이동을 뜻한다.”

10. 길거리, 모종의 거칠고 더러운 힘

‘길거리(street)’라는 단어 그 자체에 초라함, 미천함, 에로스, 위험성, 혁명성을 상기시키는 모종의 거칠고 더러운 힘이 있다.

거리의 남자(man of the streets)는 거리의 규칙을 따르는 남자일 뿐이지만, 거리의 여자(woman of the streets)는 창녀(streetwalker)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섹슈얼리티를 파는 사람이다.

거리의 아이(street kid)는 부랑아, 거지, 가출한 아이를 뜻한다.

‘길거리 사람(street person)’이라는 신조어는 길거리 외에 달리 갈 곳이 없는 사람을 뜻한다. ‘거리에 밝다(street-smart)’는 말은 도시에서의 생존법칙을 잘 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