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1책]먼저 온 미래, 전문가의 권위가 추락할 때 편

장강명작가는 동아일보 기자생활을 하다가 문학상을 받으면서 소설가로 변신해 <한국이 싫어서> <댓글 부대> 등 여러 인기 작품을 썼습니다.

저는 <한국이 싫어서’>를 통해 장작가를 처음 만났고, 이어 <당선,합격, 계급> 논픽션(2018년 출간)을 몇해전에 읽었습니다. 이 책은 장작가가 문학상제도와 공무원시험제도가 지닌 문제점을 르포형식으로 파헤쳤습니다.

개인적으로 장작가가 소설이 아닌 논픽션 장르에 관심을 갖고 사회 문제를 발로 뛰면서 분석한 것을 높이 샀습니다. 미국, 일본의 출판 시장과 달리 한국에서는 논픽션이 돈이 안되기에 제대로 된 작품을 찾기가 정말 힘들기때문입니다.

장작가는 기자출신이라는 자신의 배경을 잘 활용하여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팩트를 통해 고발하는데

취재력과 글솜씨를 십분 발휘하였습니다.

<먼저 온 미래>도 소설이 아닌 논픽션입니다. 장작가가 알파고-이세돌 대국 이후 인공지능이 바둑계에 일으킨 변화를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한 내용을 생생하고 담고 있습니다.

바둑계는 거대언어모델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인공지능에 의해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바둑이 프로야구처럼 대중적 분야가 아니어서 바둑계이외 사람들이 그 엄청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장작가가 기록한 인공지능이 침투한 바둑계의 변화는 생성형 AI가 모든 인간의 삶에 침투하면서 일으키고 있는 변화를 의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바둑계의 인공지능 영향을 너무나 생생하고 현실감있게 묘사하고 분석했기에 다른 분야에서 일어날 변화를 예측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먼저 온 미래>중 ‘전문가의 권위가 추락할 때’편을 골라 10문단으로 요약했습니다.

1.경마 중계와 흡사

바둑계 안에서만 따져보더라도 바둑 팬들의 인식이 바뀌었고, 조심스럽게 다뤄지던 몇 가지 토템도 무너졌다. 예를 들어 바둑 중계를 보자. 다소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바둑 중계는 인공지능이 도입된 이후 경마 중계와 흡사해졌다.

1.1 알파고 이전까지 바둑 중계방송에서 시청자들에게 가장 답답했던 것은 ‘누가 얼마나 우세한지 알 수가 없다’라는 점이었다.

해설자가 ‘지금 어느 기사가 더 유리한 것 같습니다’ 같은 식으로 해설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최고수들이 온 힘을 기울여 실력을 겨루는 난해한 대국에서는 진행자는 물론이고 해설자까지 대국자들의 수읽기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2.바둑 중계에 인공지능을 도입

바둑 중계에 인공지능을 도입하자 누가 몇 퍼센트 우세한지 정확하게, 그것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됐다. 바둑TV는 2019년부터 모든 대국 중계에 AI 형세판단 시스템을 도입했다.

기사들이 한 수를 둘 때마다 수치와 막대그래프로 기대 승률을 표시하는 방식이었다. 바둑TV는 돌바람, 미니고, 엘프고, 릴라제로 등 다양한 바둑 AI 프로그램들을 활용했다

2.1 실시간 관전기

“안국현 8단의 승리 확률이 5퍼센트까지 추락했다. 중국 국가대표팀에서 사용하는 최강의 바둑 인공지능 절예의 분석에서 탕웨이싱 9단(백)의 승리 확률이 95퍼센트까지 올라갔다.”

이 문장들이 ‘7번 말이 아직까지 선두를 지키고 있지만 3번 말이 치고 들어옵니다’라는 경마 중계방송 멘트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를까?

3.바둑 중계가 더 나아졌다

인공지능 덕분에 바둑 중계가 더 나아졌다고, 객관적인 분석이 가능해졌고 덕분에 학습 기회도 늘어났다고 주장한다. 남치형 교수는 “요즘 바둑TV를 보면 과거와 달리 볼만한 포인트들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안성문 바둑전문기자는 “방송하면서 ‘흑이 좀 나은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제대로 계가하면 백이 우세해서 항의를 받는 식이죠. 예전 방송국에서는 아예 계가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따로 고용하기도 했어요. 저도 그런 아르바이트를 했죠.”

4.해설자의 역량 문제

이다혜 5단은 경마중계와 비슷해졌다는 비판에 대해, “그건 해설자의 역량에 달린 문제”라고 반박했다.

“AI 승률 그래프는 정말 필요해요. 예전에는 누가 유리한지 해설을 맡은 프로기사들이 알려줬는데 그게 정확한지 아닌지는 사실 모르는 거였죠.

스포츠 경기에는 스코어가 항상 있는데, 바둑도 스포츠로 간 마당에 누가 이기고 있는지는 당연히 알려줘야죠.”

4.1 박정상 9단은 자신의 해설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전에는 해설할 때 같이 바둑을 둔다는 느낌으로 대국자의 생각에 집중했죠. 지금은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추천수나 승률 변화를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하는 쪽으로 해설자의 역할이 바뀌었어요.”

5.관전문화의 변화

바둑 중계에 인공지능이 도입되자 관전 문화도 바뀌었다. 알파고 이전에는 바둑 팬들이 존경심을 품고 초일류 기사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수를 바라봤다.

오랜 고민 끝에 나온 심오한 수라 믿으며, 조금이라도 거기에 다가가고자 했다. 그런데 이제는 기사들이 둔 수를 AI 추천수와 비교할 수 있게 됐다. 팬들은 이제 그런 일을 집에서 자기 컴퓨터로, 실시간으로 할 수도 있다.

5.1 시청자의 정보 능력

알파고 이후에는 자신이 두는 바둑의 형세를 가장 모르는 사람이 바로 그 두 대국자다.

해설을 맡은 프로기사나 그 해설을 듣는 시청자들은 인공지능 덕분에 실시간 형세와 다음에 두어야 할 수를 훨씬 더 정확히 안다.

5.2 방구석 관전객’의 입김

조혜연 9단은 “‘방구석 관전객’들 입김이 너무 세요, ‘방구석 전문가’들이 너무 많아졌어요”라고 표현했다. “예전에는 프로기사들이 고유의 이론과 기풍을 존중받았는데, 지금은 난도질을 당합니다.

6.AI의 파워와 권위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자 신진서 9단도 그런 아쉬움을 토로했다. “예전에는 저 정도의 위치라면 제가 두는 수가 거의 정답이 돼야 했겠죠. 그런데 이제 AI가 그 수를 떡수라고 하면 중계를 보시는 분들은 ‘저 사람은 랭킹 1위인데도 저런 수를 두는구나’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죠.

6.1 “AI 승률 그래프만 봐요”

바둑 전문 방송 채널인 K바둑의 임원이기도 한 김효정 3단은 “시청자들이 AI 승률 그래프만 봐요”라며 아쉬워했다. “프로 시합이든 아마추어 시합이든 겨우 초중반인데 시청자들이 승률 그래프를 보면서 승부가 결정된 것처럼 생각해요.

7.해설자의 역할 변화

김효정 3단은 바둑 중계에 인공지능이 도입되며 해설자들이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게 된 점도 안타까워했다. “해설자들이 그냥 인공지능을 돌려보고 그걸 설명하죠. 그 설명을 누가 더 간결하게 잘하느냐의 경쟁이죠. 해설자가 자기 생각을 얘기하면 시청자들이 되게 싫어해요.”

8.정체성 혼란

정수현 9단은 칼럼에서 프로기사들이 바둑 기술의 전문가 지위를 잃으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고 썼다.

“전에는 프로기사라면 바둑계에서 선생님급으로 인정을 받았는데, 인공지능이 나온 뒤부터는 그러기 어렵잖아요. 바둑 해설자들도 고수들인데 중계를 하다가 ‘인공지능에게 한번 물어볼까요’라고 말할 때가 굉장히 많습니다.”

8.1 권위의 추락

《월간바둑》 기자와 편집장을 지내고, 현재 인터넷 바둑 서비스업체인 오로바둑 임원인 정용진 전무는 바둑 AI 프로그램으로 인해 바둑 중계와 해설의 깊이가 없어지고 해설자들도 개성을 잃었다고 비판한다.

이렇게 권위가 떨어지다 보니까 해설자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자꾸 인공지능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자기 목소리는 사라지고 ‘이 대목에서 인공지능은 이렇게 둬야 한다고 하네요’ 하는 식으로 얘기하게 되죠.”

9.”다른 분야에서도 일어날 것”

정수현 9단은 이런 현상이 다른 분야에서도 일어날 거라고 예상한다. 과거 사례들이 있으면 그 패턴을 인공지능이 분석해서 현 상황에 적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9.1경영, 사법, 회계, 정치도 AI의존 가능성

“프로들이 잘 모르면 인공지능에게 물어봐야겠죠. 예를 들어 경영 분야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의사결정 아니겠어요?

새로운 사업에 투자를 할 건지 말 건지, 이런 걸 최고경영자들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야겠죠.

사법이나 경제, 회계 이런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이 나오겠죠.

정치도 지금은 여당이랑 야당이 싸우지만 인공지능에게 물어서 ‘이렇게 하는 게 정책 효과가 높다’라고 빨리 답을 얻으면 그게 좋지 않겠어요?”

10.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 걸까?

내가 운전을 할 때 늘 내비게이션이 제안하는 경로를 따라간다면, 나는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는 걸까, 내비게이션의 명령을 받는 걸까?

내비게이션이 제안하는 경로를 따르지 않고 내 마음대로 길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때마다 시간과 연료를 그만큼 낭비하게 된다면 그때 나의 상황을 ‘내비게이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처벌을 받는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까?

내가 속한 조직이나 사회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매번 인공지능의 제안을 충실히 따른다면, 내가 속한 조직과 사회는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