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 7월 9일 미국 경제의 경쟁 촉진에 대한 행정명령(Executive Order on Promoting Competition in the American Economy)에 서명했다.
바이든의 경쟁 촉진 행정명령은 72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구체적으로 망 중립성을 복원하고 기술, 의약품, 농업 등 3개 산업 분야에서 반경쟁적 관행을 개선하고 위반 사항을 강력하게 단속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담고 있다.
특히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소규모 기업에 불리한 합병을 신중히 검토하고 이미 체결된 합병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도록 지시했다. 또 빅테크 기업 등이 잠재적 경쟁자를 인수해 해당 업체의 혁신상품 개발을 중단, 경쟁을 사전 차단하는 이른바 ‘킬러 인수’를 제한하는 규칙을 FTC가 만들도록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독점규제용 행정명령을 발표하면서 개방과 공정을 위해 독점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전통으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경쟁 없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착취(exploitation)”라고 말했다.
바이든의 단호하고 강력한 메시지의 타깃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이른바 ‘빅 테크’(Big Tech)기업이다. 바이든 정부는 올 초 트럼프로부터 권력을 넘겨 받자마자 행정부와 의회에서 빅테크 기업의 독점 문제를 핵심 어젠더로 다뤄왔다.
바이든 정부의 공정 경쟁 정책의 중심에는 팀 우(Tim Wu) 컬럼비아대 교수와 리나 칸(Lina Khan)박사가 있다. 바이든은 지난 3월 팀 우교수를 대통령 기술및 경쟁정책 보좌관에 임명했고, 올 6월 30대 리나 칸을 공정정책을 총괄하는 FTC의장에 임명했다.
오바마 정부에도 참여했던 팀 우교수는 반독점법 분야에서 강경론자로서 이름을 떨쳤다. 그는 구글이 승승장구하기 시작할 때 이미 “구글의 적은 구글 자신”이라면서 구글이 공룡으로 변신해 테크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리나 칸 의장은 예일대 로스쿨 재학시절 아마존의 불공정성을 이론적으로 분석한 논문(Amazon’s Antitrust Paradox)으로 명성을 얻었다. 칸은 논문에서 아마존의 온라인 유통망 독점은 철도망을 독점한 것과 같은 성격의 독점이라는 새로운 독점 관점을 제시해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한 빅테크를 독점으로 규정할 수 있는 이론틀을 제공했다.
바이든 정부와 빅테크간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 앞으로 4년 동안 양 진영은 치고 받으면서 공방을 계속 벌일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빅테크의 인수 합병에 제동을 걸고, 심지어 반독점 소송을 통해 기업을 분할시키려고 한다. 또 의회에서 입법을 통해 개인정보를 활용한 돈벌이를 제재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물론 마크 저커버그 등 빅테크 리더의 저항도 거세다. 아마존은 FTC에 리나 칸의장에 대한 기피 신청을 하는 등 반독점 규제 흐름에 정면에서 맞서고 있다. 페이스북과 구글 역시 정부와 의회 로비 활동에 막대한 돈을 투입하고 있다.
이번 북리뷰에서는 미국 빅테크 규제 관련 이론과 쟁점을 도움을 주는 세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미국 저널리스트 라나 포루하(Rana Foroohar)의 ‘돈 비 이블(Don’t be evil)’은 바이든 정부의 빅테크 규제 움직임의 배경과 지향하는 가치, 규제 논리 등을 포괄적으로 잘 담고 있다.
책 제목은 구글의 창업초기 경영 이념에서 따온 것이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구글 초창기에 마이크로소프트사를 겨냥해 ‘사악하지 말자(Don’t be evil)’를 대내외에 줄기차게 외쳤다.
이 구호는 윈도 OS 독점력을 바탕으로 막대한 초과 이윤을 얻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악의 축으로 세워 검색엔진을 공짜로 제공하는 구글을 선의 축으로 대비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구글은 실제 지메일, 지도 등 새로운 서비스를 대부분 무료로 제공하면서 많은 지지층을 끌어모으며 승승장구했다. 구글의 도덕적 공세에 약이 바짝 올랐던 스티브 발머가 구글을 무너뜨리기 위해 별 수단을 다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포루하는 구글이 숱한 검색엔진 경쟁자를 물리치고 정상에 오른 뒤, 그 지위를 활용하여 돈을 긁어모으고, 또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과정을 파헤쳤다. 포루하는 페이스북,우버,트위터 등 디지털 혁신을 표방한 테크 기업도 독점적 지위에 오르면서 돈벌이만 추구하고 또 사악한 행위를 덮기 위해 로비활동에 막대한 돈을 사용하는 점을 고발한다.
포루하는 빅테크 등 숱한 기업들이 데이터를 수집한 후 제3자 데이터 브로커를 통해서 데이터를 판매하는 일은 미국경제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감시국가(Surveillance State)는 미국에서 더 이상 공상 소설이 아니다. 이미 미국은 감시국가가 됐다”고 말했다.
2006년 구글의 창업 스토리를 담은 ‘구글 스토리’를 한국어로 옮긴 번역자로서 이 책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윤리의식으로 거인 마이크로소프트에 당돌하게 대들던 구글이 어느새 빅브라더가 되어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다.
2020년에 출간된 팀 우교수의 ‘빅니스(The Curse of Bigness)’는 앞서 소개한 바이든의 행정명령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예를 들어 행정명령 내용을 꼼꼼히 분석한 전문가들은 팀 우가 기초 틀을 짰을 것으로 추론했다. 팀 우의 반독점 이론이 명령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팀 우는 빅니스에서 나치독재정권이 등장했던 1930년대 독일 경제와 2010년 이후 미국의 디지털 경제가 유사하고 본다. 그는 독점과 카르텔이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1930년대 독일 사회는 결국 히틀러 파시즘을 잉태했듯이, 디지털 경제에서 막강한 트러스트를 구축한 빅테크를 그대로 두면 통제받지 않는 사적 권력으로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훼손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팀 우는 디지털 경제에서는 무한 경쟁으로 인하여 독점이 구축되지 않는다는 디지털 경제 초기 주장은 이미 폐기됐다고 본다.
구글은 수십개가 경쟁했던 검색 시장을, 페이스북은 마이페이스를 물리치고 소셜 미디어 시장을, 아마존은 이커머스 시장을 평정하고 난공불락의 독점 체제를 구축했다. 빅니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부와 개인 정보데이터, 슈퍼 알고리즘을 확보해 경쟁자가 탄생할 수 있는 싹을 아예 없애 버렸다.
빅니스는 이어 인수 합병, 복제, 배제라는 기법을 통해 트러스트를 구축하였다. 페이스북은 경쟁 서비스인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인수하고, 스냅챗 기능을 복제해서 비난을 받았다. 복제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복제와 배제가 반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오로지 독점 유지가 목표인 것은 다르다.
빅테크가 신생 기업일 때 인터넷이 이전에 추구했던 개방성과 혼돈이라는 이상을 표방했었다. 하지만 구글와 페이스북 창업자는 독점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수정하기 시작했다.
팀 우는 빅테크가 정보 독점력을 바탕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민주주의 가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본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지구상의 그 어떤 단체나 조직보다 더 많은 개인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구글의 능력을 합하면 그들은 집단으로서 확실하게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빅테크의 데이터는 선거를 결정하는 수준은 아니라도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표 차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만약 그런 힘이 영원히 공직을 장악하려 마음먹은 단체나 조직의 손에 넘어간다면 그 결과는 정말 무시무시할 수 있다.
팀 우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본주의는 ‘질서 자본주의’(Ordoliberalism)’다. 질서 자본주의는 시장이 통제하지 못하는 영역이나 요소에 대해 반독점 규제 등을 통해 국가가 강하게 개입하여 자유경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팀 우는 질서 자본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국가가 소수의 사적 권력을 제어하는 ‘솜씨 좋은 정원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솜씨좋은 정원사론은 바이든 정부가 빅테크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할지를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소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의 ‘감시자본주의 시대’(The Age of Surveillance Capitalism)는 빅테크의 플랫폼 독점이 공정경쟁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서, 가정과 개인 프라이버시를 돈벌이로 삼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감시자본주의를 불러왔다고 본다.
주보프는 사람들의 모든 행위를 디지털 데이터로 수집하고 축적하고 있는 구글, 페이스북,트위터 등 빅테크 기업을 ‘빅 아더(Big Other)’라고 개념화한다. 빅아더는 그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렌더링(분석)하여 개인이 특정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여 막대한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
빅 아더의 목표물은 프라이버시의 마지막 보루인 집이다. 빅아더에게 개인의 은신처란 있을 수 없다. 온도조절기, 방범카메라, 스피커, 전등 스위치 등 각종 센서를 통해 개인의 경험을 추출하고 렌더링한다.
빅아더는 이렇게 인간의 경험을 공짜로 추출해 은밀하게 상업적 행위의 원재료로 이용하며 부와 권력을 움켜쥐었다.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데이터화하고, 그 데이터를 분석하여 상품을 구매하거나 특정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조종하는 것이다.
이어 주보프는 산업 자본주의가 자연을 파괴했다면, 감시 자본주의는 집이라는 프라이버시 성역을 파괴하고 나아가 공동체의 기반인 인간의 내면성을 파괴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주보프의 경고대로 오늘날 집에는 숱한 센서가 집안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수가 더 늘어나고 있다.
나다움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를 침탈당한 개인에게 제시하는 주보프의 해법은 반독점법과 같은 법과 규제 정도가 아니다. 그는 “분노를 결집시켜야 한다. 이렇게 살 수 는 없다”면서 전 세계 디지털 플랫폼에 종속된 ‘사용자’에게 단결해 맞서라고 외친다.
미 정부와 빅테크 기업간 전쟁은 강건너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의 네이버와 카카오도 미국의 빅테크 기업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독점력을 더 강화하고 있다.
네이버는 50%를 넘는 한국어 검색 시장 점유율을 발판으로 삼아 문어발식 확장을 넘어 지네발식 확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급기야 검색 편이성을 무기로 온라인 쇼핑 플랫폼마저 장악하고 기존 은행 등 금융 산업마저 플랫폼에 종속시킬 태세다.
카카오 역시 90%를 넘는 메신저시장 독점을 바탕으로 1백개를 넘는 자회사를 군단으로 거느리고 금융, 쇼핑, 건강, 여행, 모빌리티 등 전 산업 분야에 걸쳐 무서운 속도로 기존 산업을 삼키고 있다.
팀 우의 지적대로 네이버와 카카오는 더 이상 참신한 혁신자가 아니라 기존 모든 산업을 집어 삼키는 황소개구리와 같은 포식자의 지위에 올랐다. 더욱이 두 회사는 막강한 브랜드 파워와 자금력으로 IT인재를 빨아들임으로써, 새로운 경쟁자가 나올 수 있는 토양을 아예 없애고 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선 후보들은 네이버와 카카오 규제 전략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특히 선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포털 뉴스 서비스를 자신의 진영에 유리하도록 규제할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는 진영을 떠나 빅테크 이슈를 뉴스 독점 관점에서 보는 근시안에서 벗어나 한국 산업 생태계 전체를 놓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 사례에서 보듯이 빅테크는 산업시대 재벌처럼 플랫폼을 독점하고 새로운 경쟁자의 부상을 가로 막음으로써 근로자, 소비자, 중견및 중소기업, 스타트업 등 모든 경제 행위자를 좌절시키는 방향으로 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