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독서력]근대 저널리즘산업의 개척자, 조지프 퓰리처

[직장인 독서력]근대 저널리즘산업의 개척자, 조지프 퓰리처
조지프 퓰리처 전기를 읽고 근대 저널리즘 산업이 형성되는 과정을 공부합니다.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과 저널리즘 산업이 처한 위기의 본질을 꿰뚫고 타개책을 찾기 위해 퓰리처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글은 2017년에 쓴 펜맨 칼럼으로 미출고 원고입니다. 퓰리처 전기를 읽고 쓴 독후감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2017년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지난 7월에 읽은 제임스 맥그래스 모리스가 저술한 ‘퓰리처’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21세기 현대 언론의 틀을 만든 언론인은 헝가리계 이민자출신인 조지프 퓰리처다. 그는 영어 한마디도 못한 채 미국 북구군 용병으로 1864년 미국 땅을 밟았다. 그는 독학으로 기자가 되어 탁월한 취재력과 문장력으로 명성을 얻었고 이어 신문사 경영에 나서 큰 돈도 벌었다.
하지만 퓰리처는 생전에 존경을 받지 못했고, 심지어 라이프지가 그를 썩은 고기를 뜯어먹으면서 기생하는 조류에 비유할 정도로 깎아 내렸다. 퓰리처전기를 읽는동안 그가 활동했던 1890년대후반부터 1910년사이 미국사회의 언론에 대한 인식과 21세기 한국 사회의 언론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을 발견했다.
퓰리처가 이런 평판을 받은 것은 흔히 믿거나 말거나 식의 황색저널리즘을 시작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퓰리처에 대한 비난은 철도, 석유 등 거대 자본가들의 독점과 비리를 공격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심지어 시어도어 루스벨트같은 당대 최고 권력자도 집요하게 비판했다. 이로 인해 루스벨트는 대통령직에 오른 뒤 퓰리처를 명예훼손법으로 재판정에 세우려고 할 정도로 퓰리처를 극도로 미워했다.
퓰리처는 기득권층의 비난에 맞서 언론 산업을 키운 방식은 신문의 재정 독립과 정확한 보도였다.
퓰리처는 정당보조금과 같은 외부 지원을 끊고 구독료와 광고로만 언론을 운영하는 언론사의 재정 독립을 앞장서 이끌었다. 당시 언론들은 대부분 공화당과 민주당과 깊숙하게 연결돼 돈과 인맥이 얽혀 운영됐다. 퓰리처 또 기자들에게 정확한 보도를 강조했다. 퓰리처가 운영했던 ‘뉴욕월드’ 편집국에선 ‘정확, 정확, 정확’이라는 사시가 걸려있었다.
유럽의 왕정을 경험했던 퓰리처는 이민자로서 미국 민주주의의 성장과정을 직접보고 또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 배경과 경험으로 인해 그는 무엇보다 민주주의 공화국에는 공정한 언론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는 “내가 꿈꾸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공화국의 복리다. 공화국과 그 공화국의 언론은 함께 흥하고 함께 망하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했다.
퓰리처는 한 발 더 나아가 언론인들이 공동선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자질과 윤리의식을 갖추기 위해 언론 전문 대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컬럼비아대학에 200달러를 언론대학 설립 조건으로 기부했다. 당시 컬럼비아 대학 전체 예산의 3배에 이를 정도의 거액이었다.
퓰리처는 언론대학설립과 언론인상 제정에 돈을 기부할 때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객관적이며 공정한 정신을 품은 언론에 옳고 그름을 구분할 줄 알고 올바른 일을 실현할 용기를 가진, 제대로 훈련을 받은 언론인까지 더해진다면 공동선은 더욱 증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 앞으로 10년, 100년후에도 기득권층이 언론을 보는 시각은 100년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언론의 기본 사명이 권력을 감시하고 구조적 비리를 드러내고, 고발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언론계가 김영란법 시행과 관련해 해야할 일은 그런 기본 역할을 더 잘할 수 있는 언론인에게 자부심을 주고, 또 미래 실력과 윤리의식을 지닌 미래 언론인을 양성하는 것이다.

교재

권력의 감시자는 왜 눈먼이 되었는가, 퓰리처 16장 큰 물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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