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1책]서병훈의 민주주의, 밀과 토크빌

“정치는 장삼이사(張三李四)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2400년전 그리스의 플라톤이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던진 질문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과 알렉시스 토크빌은 현대 자유 민주주의 사상을 토대를 마련한 정치철학자입니다.

한살 차이인 두 사람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 민주주의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깊게 분석하면서 각각 대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오늘날 혼돈속에 빠진 한국의 정치 현실을 마주하면서 밀과 토크빌의 사상을 다룬 서병훈 교수의 책(민주주의:밀과 토크빌)을 다시 찾아 읽었습니다.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인간이 모여서 사회를 이룬 이래 한번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고 번영시키기 위해 누가 리더가 되어야 하나.

그 리더를 정하는 절차를 어떻게 할 것인가.

리더에게 권력을 위임하기 전에 후보 리더가 공동체 이익에 부합할 것인가를 어떻게 알아보나

공동체 이익을 위해 리더와 팔로워는 어떻게 의사결정을 해야 하나.

리더가 공동체의 이익과 다르게 행동할 때 팔로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서병훈교수의 책중에서 플라톤과 밀과 토크빌의 해법편을 발췌독서했습니다.

1.플라톤의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민주주의가 사람들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평등의 이름으로 대중이 주인 행세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배를 몰거나 병을 고치는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면서 정치는 장삼이사(張三李四)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묻는다. 그는 이런 ‘무차별 평등’이 ‘멋대로 자유’로 이어지며 끝내 폭정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2.자유의 중요성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나쁘게만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플라톤은 ‘법률’에서 민주주의의 순기능을 역설하고 있다. ‘자유를 적정한 수준에서 허용했던 체제는 발전을 이룩했지만 과도하게 자유를 억압하면 그 결과가 좋지 못했다’고 봤다. 플라톤은 자유가 있어야 사람들이 나라에 대해 일체감을 느낄 수 있고 법에 대해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마음도 생긴다고 했다.

3.정치 근본에 대한 고민 오늘날 대세는 정치이론가들은 민주주의를 그저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체제’ 정도로 이해한다.

플라톤은 정치를 기능이 아니라 본질 차원에서 접근했다. 그는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도와줄 정치를 그렸다.

사람들이 나라와 일체감을 느끼고 법의 지배를 자유와 동일시하게 되는, 그런 꿈같은 정치가 민주주의 안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4.포퓰리즘에 대한 경고 플라톤은 인간의 삶에서 크고 중요한 것을 깨우친 ‘기술자’가 정치를 전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지혜는 없고 욕심만 가득한 아테네 대중이 정치의 주체 행세를 하는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 포퓰리즘의 뿌리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시대착오적인 엘리트주의로 흘러갈 개연성을 지닌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주인이라고 할 대중이 자기성찰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플라톤의 당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5.민주주의의 허점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그 자체의 속성 때문에 독재체제로 귀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400년 전 플라톤의 글을 읽으면 소름이 돋는다.

히틀러는 민주주의의 등에 올라타서 ‘국가사회주의’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오늘날에는 포퓰리즘이 ‘진짜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세상을 농락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죽음 또는 파탄을 증언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6.알렉시스 토크빌

프랑스 귀족출신 토크빌은 그의 나이 서른에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를 썼다. 그 책 한 권으로 토크빌은 민주주의이론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그는 19세기 초반 미국 대륙을 직접 현장관찰하면서 민주주의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목격했다. 토크빌은 밀과 함께 민주주의와 자유가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7.존 스튜어트 밀

영국 정치 사상가 밀은 사람들이 사적 이익에 매몰되지 않아야 올바른 의미의 대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중이 ‘주권자’ 노릇을 제대로 하자면 공익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밀은 그런 이유에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큰 목소리를 내게 해주어야 민주주의의 효율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역설했다.

지도자가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대중이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그림을 제시한 것이다.

8.밀과 토크빌의 민주주의 허점에 대한 고민

묘하게도 두 사람은 플라톤이 지적했던 민주주의의 두 가지 고질(痼疾)을 하나씩 나눠서 고민했다.

토크빌은 평등 민주주의가 자칫 민주독재로 귀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밀은 계급이익에 휘둘린 끝에 사악하고 무능한 정치체제로 타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9.밀과 토크빌의 우정

그들은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다. 한 살 터울의 영국 사람과 프랑스 사람이 찬란한 교제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들의 철학이 근사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심중의 깊은 말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밀은 “현재 살아 있는 유럽 사람들 그 누구보다 선생을 존경한다.”고 했고 토크빌은 영국인 중에서 그보다 더 기쁨을 주는 사람은 없다며 두 사람의 ‘진정한 우정’을 확신했다.

10.식어버린 우정

그러나 이처럼 아름다웠던 우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두 사람의 밀월 관계는 1844년 갑자기 깨져버렸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 토크빌이 애잔하게 회고했듯이,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는 아름다운 습관을 잃어버렸다.’

결별의 이유는 프랑수아 기조에 대해 두 사람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평가를 내렸다는 것과 밀이 표방한 ‘선의의 제국주의’를 토크빌이 매우 냉소적으로 바라봤다는 것이다.

11.단절의 속사정

나는(서병훈)두 사람이 보여준 생각의 차이 못지않게 밀의 개인적인 사정도 중요한 변수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즉 그가 《런던-웨스트민스터 평론(London and Westminster Review)》에서 손을 떼게 된 것, 그리고 그의 아내 해리엇이 토크빌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그간의 사정 또한 두 사람의 우정을 급속하게 냉각시킨 큰 변수로 작용했다는 것이 나의 최종 결론이다.

12.“자유를 향해 같이 손잡고 나가자.”

토크빌이 밀에게 보낸 마지막 말이 짙은 여운을 남긴다. 토크빌과 밀은 당시 민주주의의 어두운 측면을 날카롭게 비판했으나 비관론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참여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과 습속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토크빌과 밀의 정치이론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인가.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이 바뀌어야 민주주의가 축복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