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의달의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혁명’

2011년 3월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종합일간지 가운데 최초로 온라인 기사 유료화를 시작해 2020년 12월 말 기준 669만 명의 디지털 유료 가입자를 확보했다. 이제 뉴욕타임스의 경쟁사는 더 이상 ‘워싱턴포스트(WP)’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아니라 넷플릭스(Netflix)와 스포티파이(Spotify)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의 성장과 영욕의 역사, 최근 10년간의 디지털 전환 과정과 성공 비결을 다룬다.

인구 3억명이 넘는 미국의 미디어 기업으로 세계 최대 공용어인 영어로 서비스하기 때문에 NYT의 디지털 전환 성공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저자는 “처음엔 나도 태평양 거리 만큼 한국과 미국의 언론 환경과 디지털 환경이 다르니, NYT 얘기를 자꾸하는 건 사대주의적 발상이라고 여겼다”면서 “하지만, NYT가 디지털 전환에 뛰어들 당시 상황은 지금 우리나라 언론 기업이 처한 상황 보다 훨씬 힘들었다. 절대절명의 백척간두 상황에서 NYT는 디지털 전환을 마지막 구명 보트로 여기고 전력을 쏟아 부어 오늘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혁명 요약

1.1851년 창간 후 경영난에 빠진 뉴욕타임스가 1896년 시장에 매출로 나오자, 당시 38세의 독일계 유태인인 아돌프 옥스(Adolph Ochs)가 이를 사들였다. 옥스는 권력에 편들거나 눈앞의 재정적 이익이 아니라 독자를 가장 앞세우며 경영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것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의 사후, 사위인 아서 헤이즈 설즈버거가 2대 발행인이 됐다. 이후 120년 넘게 옥스-설즈버거 단일 가문이 대주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24명의 클래스 B주식 보유자들은 모두 설즈버거 가문의 직계 자손들이며, 이들은 NYT컴퍼니 이사회의 70%를 선출한다.

2.NYT 3대 발행인에 오른 펀치 설즈버거는 학창 시절 성적 부진으로 사립학교들을 전전했다. 난독증 진단도 받았다. 2대 발행인 부부는 당시 37세인 그를 도박하는 심정으로 새 발행인으로 지명했다. 펀치는 소극적이고 주먹구구식인 전 근대적 경영과 결별하고 NYT를 증시에 상장시켰고 미 종합지 최초로 경제 섹션을 발행했다. 그가 발행인으로 재임하는 29년 동안, 회사 매출은 170배 성장했고 기자들은 31개의 퓰리처상을 받았다. 美 행정부의 치부를 다룬 펜타곤 문서 추가 보도를 두고 펀치는 두 마디를 했다. “계속 기사를 내보내라(Go Ahead).” 펀치의 말은 짧았지만, 의미는 적지 않았다.

3.2005~2010년 NYT는 ‘죽어가는 시한부 환자’와 같은 신세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 남부와 서부의 지역 신문사, TV, 라디오 방송국, 잡지, 부동산, 인터넷 회사, 제지 공장, 합작회사, 심지어 프로야구 구단(보스턴 레드삭스) 지분까지 사들여 2006년 당시 14억달러에 달하는 회사 부채 등 금융 비용이 회사를 짓누르고 있었다.

4.핵심 자산을 제외한 모두를 팔아 벼랑 끝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NYT는 2번의 실패 끝에 2011년 3번째 온라인 기사 유료화(metered paywall)에 나선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종이신문을 기반으로 한 광고와 구독매출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붕괴한 게 결정적이었다. ‘언론사들이 만드는 상품인 뉴스는 무료’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 기사를 읽는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5.2011년 3월 온라인 기사 유료화를 시작할 당시 회사 안에는 “온라인 뉴스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고, 그 대신 늘어난 트래픽으로 디지털 광고 매출을 늘리면 감소하는 지면 광고 매출을 상쇄할 것”이라는 믿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는 NYT 같은 개별 언론사보다는 구글,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 빅 테크 기업의 배만 불렸다.

6.2013년 들어 온라인 유료 구독자수가 갑자기 꺾였다. 아날로그(종이신문)로는 ‘달러(dollar)’를 버는 반면, 디지털로는 ‘푼돈(penny)’을 번다며 ‘온라인 유료화 필패론’로 다시 제기됐다. NYT Now, NYT Opinion, 타임스 프리미어(Times Premier) 등 3개 디지털 유료 상품이 연속으로 실패했다.

7.경영진은 후퇴하지 않고 2014년 5월 ‘혁신 보고서’로 정면 돌파했다. 오너 가문의 A.G. 설즈버거(2018년 1월 발행인 취임)가 주도한 혁신 보고서팀은 6개월 동안 354명을 인터뷰한 뒤 “편집국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암호를 충분히 해독하지 못해 왔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는 마크 톰슨 CEO와 2014년 5월 회사 최초의 여성 편집인에 오른 질 에이브럼슨이 사사건건 충돌하자 설즈버거 주니어는 에이브럼슨을 전격 해고했다. 디지털 전환을 성공시키겠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사내외에 던진 것이다.

8.2017년 1월 NYT의 ‘2020 보고서’는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는 페이지뷰(page view) 경쟁을 하거나 싸구려 광고를 팔려 하지 않는다. 우리의 비즈니스 전략은 전 세계 수백만 명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려는 강력한 저널리즘을 제공하는 것이다. 구독자 최우선(subscription first)으로 우리는 더 강력한 광고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9. 2020년 2분기 창사 이래 처음으로 디지털 구독 부문 매출이 종이신문 구독 부문 매출을 앞질렀다. 이제 NYT 총매출액(2020년 기준)에서 구독 부문 비중은 67%이고 광고 부문은 22%이다. 2009년 1분기 4달러대로 떨어졌던 주가는 2021년 3월 50달러를 웃돌고 있다. 뉴스 혁신의 아이콘이던 ‘버즈피드’와 ‘쿼츠’의 전직 편집국장들과 IT기술 전문 온라인 매체 ‘리코드’, 가십 전문 인터넷 매체 ‘고커’, ‘복스’의 창업자 등이 NYT에 합류했다.

10.뉴욕타임스 역사에 등장하는 동아시아 현대사 대목이 책의 흥미를 더한다. 3대 발행인인 펀치는 미 해군 제대 후 한국전쟁이 터지자 재입대해 한국 판문점 공보장교와 맥아더 장군의 비서 등으로 복무했다 . 1945년 8월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Enola Gay)’에는 NYT 과학 담당 기자가 동승했다. 역사를 기록할 언론으로 미국 정부가 NYT를 지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