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세 곽호빈 테일러블 대표와 대통령 옷 만든 57세 윤춘국 기술 이사의 만남
– 영화 ‘부당거래’, ‘도둑들’ 의상 제작
조선비즈 인턴기자 허미연 mycitystory.korea@gmail.com
이태원 제일기획에서 한남동주민센터 방향으로 내려가는 골목길, 흰 색과 파란색으로 깔끔하게 칠한 가게가 시선을 끌고 쇼윈도에 걸린 멋스러운 정장이 발길을 붙잡는다. 바로 2007년 처음 문을 연 맞춤 정장 숍 ‘테일러블 블루라벨(Tailorable for blue label)’이다.
지난 25일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남성이 옷을 주문하기 위해 치수를 재고 있었다. 매장 안쪽에는 아틀리에(작업실)가 보였다. 다른 옷 가게에서는 본 적이 없는 공간이다. 아틀리에가 상징하듯 테일러블 옷들의 대부분 공정은 손바느질로 이뤄지며, 이 모든 봉제 과정에 30년 이상 경력을 지닌 장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곽호빈 테일러블 대표(27)는 “저희처럼 매장 안에 아틀리에가 있는 가게는 거의 없다”며 “다른 가게들과는 포맷부터 많은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대사관 사람들부터 해외,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테일러블 관계자는 “프랑스 모델이 온 적이 있다”며 “그 모델이 프랑스에서도 이곳처럼 옷을 자신의 몸에 딱 맞춰 사 입기란 쉽지 않다고 하면서 매우 만족해 했다”고 했다. 또 “한 손님은 해외로 이민을 갔는데도 저희 옷을 원한다며 연락이 와서 해외 배송을 해주기도 했다”고 했다.
10평 남짓에서 시작한 테일러블은 약 5~6년이 지난 지금 많은 발전을 이뤘다. 영화 관계자의 제안으로 영화 ‘부당거래’, ‘도둑들’의 의상을 테일러블이 직접 맡기도 했으며, 작년 5월에는 ‘테일러블 와인라벨’이라는 명칭으로 청담동 매장도 열었다.
◆ 30년 재단 경력 윤춘국 기술이사
“사회에서 은퇴할 나이에 젊은 사람들이 손을 내민 거죠.”
테일러블의 마스터테일러 윤춘국(57)씨는 ‘테일러블에서 일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윤 씨는 “일반 회사에서는 은퇴할 나이라고 할 때, 청년들이 나를 찾았다”며 “젊은이들과 나이 많은 기술 원로들이 함께 일하게 된 거니까 극과 극의 만남 아니냐”며 반문 했다. 이에 대해 곽호빈 대표는 “좋은 맞춤복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30년 이상 현장에서 옷을 만든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누나들 속에서 자란 윤 씨는 이른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게 되면서 학업을 포기하고 취업을 택해야 했다. 그는 열 일곱 나이에 북창동의 한 양복점에 들어가 재단 일을 시작했다. 1992년부터 2009년까지 18년 간 서울 소공동 체스타필드 양복점에서 재단실장으로 일했으며 올해 8월 테일러블 블루라벨에 기술이사로 영입됐다.
이명박·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의 옷도 그의 손을 거쳤다. 윤 씨는 “소공동에 있을 때부터 대한민국에 유명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았다”며 “모 기업 회장님은 15년 째, 또 다른 분은 20년 넘게 나한테서 옷을 맞추고 있을 만큼 꾸준히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손님들도 많다”고 했다. 그만큼 윤 씨에 대한 신뢰가 두텁게 쌓였다는 의미인 셈. 그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점도 이 직업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윤 씨에게 ‘테일러블’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주로 중·장년층 정장을 만들어온 그가 20대~40대가 선호하는 젊은 스타일의 정장을 재단하게 되면서 그는 가장 먼저 자신부터 바꿨다.
윤 씨는 자신의 옷을 가리키며 “나도 젊은 사람들처럼 옷을 몸에 타이트하게 입는다”며 “젊은 사람들의 트렌드를 따라가면서 나도 많이 배울 수 있고 젊어지는 기분도 들어 기쁘다”고 했다. 그는 “열린 마음으로 변화하는 패션 경향을 읽어내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또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윤 씨는 “늦은 시간까지 일해도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며 “과거 소공동에서 일할 때보다 늦게 퇴근하지만 즐겁다”고 말했다.
지금 그의 꿈을 무엇일까. 그는 “건강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오래해야죠”라며 “곽호빈 사장이 잘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잘 되어가는 것을 보니 참 좋다”며 “이들이 잘 되도록 열심히 해주는 것, 그게 내 꿈”이라고 했다.
◆ “맞춤 정장의 가치 알리고 싶어” , 20대 곽호빈 블루라벨 대표
“좀 더 잘 만든 옷이란 어떤 것인지 탐구하면서 맞춤 정장의 가치를 깨달았다.”
곽호빈 테일러블 대표(27)는 “원래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다”며 “고민하고 탐구하면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장인들이 손 바느질해 만들어진 옷이 잘 만들어진 옷이라는 것을 알게 돼 맞춤복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고 했다. 그는 “맞춤 정장의 가치와 매력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986년 12월에 태어난 20대 청년 곽호빈 대표. 젊은 나이에 시작한 사업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있지 않았을까. “그는 지금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고, 경험을 통해 부딪쳐보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경험을 쌓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곽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맞춤 정장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 패션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패션과 정장은 또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장은 어떻게 하면 몸매의 단점을 감출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우면서도 품위를 지킬 수 있는지 연구해 만드는 옷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더욱 멋지고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는 옷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정장은 사회성을 띄는 옷”이라며 “그저 멋있기만 한 옷이 패션이라면, 정장은 상황과 장소, 드레스 코드에 맞춰 입는 하나의 사회적인 약속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단순히 멋이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인 관계, 격식과 품위까지 고려해 입는 문화가 더욱 풍부해졌으면 한다”고 했다.
곽 대표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 “사업적인 확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맞춤복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그 가치를 알리는 데 더 노력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들이 결혼할 때 비싼 해외 명품 브랜드 기성복을 많이 구입하는데, 오히려 맞춤복이 기성복보다 질이나 완성도 면에서 더 강점이 있다”며 “이를 잘 모르거나,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사람들을 ‘양복쟁이’라고 비하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인식을 바뀔 수 있도록 맞춤 정장이 갖는 가치와 매력을 많은 사람들에 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