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드레스덴의 한 화랑이 소장하고 ‘잠자는 비너스’는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네(Giorgione)의 작품입니다. 조르조네는 베네치아를 무대로 활동하면서 숱한 명작을 남기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르조네의 비너스는 티치아노의 ‘우비노의 비너스’, 마네의 ‘올랭피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지오반니 모렐리( Giovanni Morelli)라는 미술평론가가 1880년 이 작품을 조르조네 작품이라고 판정하기전까지 누구 작품인지를 놓고 논란이 많았던 것입니다.
당시 가로로 누운 비너스의 그림은 분실된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원본을 사소페라토가 모사한 것이라는 추정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렐리는 귓볼,손톱 등 사소한 요소를 분석하는 새로운 감정법으로 이 작품이 조르조네의 작품이라고 정확하게 판정하였습니다.
모렐리의 기존 패러다임을 깨는 미술감정법은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정신분석학을 처음 개척한 프로이트가 사소한 것을 단서로 삼는 모렐리에 영향을 받은 점입니다.
나중에 이탈리아 역사학자 카를로 긴즈부르그는 ‘모렐리, 프로이트,셜록 홈스’라는 논문을 통해 세 사람의 학문이 갖는 공통점을 분석했습니다.
셋은 보통 사람이 눈여겨 보지 않는 사소한 것을 주목해 그 뒤에 숨어 있는 실체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기법을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문제해결스킬을 함양할 때, 사소한 단서를 포착하고 문제 구조를 파악하는 스킬은 꼭 단련해야 할 스킬입니다. 문제 구조를 파악하면 그 문제를 푸는 해법은 90% 완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셜록 홈스, 기호학자를 만나다’(움베르토 에코, 토머스 세벅 편)에서 ‘모렐리, 프로이트, 셜록 홈스’편을 발췌독서할 것을 추천합니다.
1. 모렐리의 미술감정 비법
1874년부터 1876년까지 독일 미술사 잡지 『조형 미술지』에 이탈리아 회화에 대한 일련의 논문이 연재되었다.
레르몰리에프라는 무명의 러시아 학자가 저술하고 역시 무명의 슈바르체라는 인물이 독일어로 번역한 글이었다.
연재된 논문들은 옛 거장들의 작품을 올바로 감정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면서 미술사 학계에 일대 파장을 일으켰다.
몇 년 후에 저자가 자신의 정체를 밝혔는데, 바로 모렐리라는 이름의 이탈리아인이었다(두 개의 가명 모두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2. 사소한 것을 주목하라
모렐리는 그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림 감정을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페루지노가 그렸던 하늘로 시선을 향한 인물들이라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여인의 미소 등 대가만의 특징은 쉽게 모방된다는 것이다.
그는 대신 화가가 속한 화단의 주류 스타일에서 가장 하찮게 여기는 것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귓불, 손톱, 손가락과 발가락 등 그림에서 사소한 것들이다.
모렐리는 보티첼리, 코스메 투라 등 거장들의 작품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적인 귀 (또는 다른 어떤 것)의 모양을 분석하였다. 이런 특징들은 진품에서만 발견되며 모조품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2.1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 감정
모렐리는 유럽의 주요 화랑들에서 새롭게 진품 감정을 하고 몇몇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특히 드레스덴의 어느 화랑이 소장하던 가로로 누운 비너스의 그림은 조르조네의 희귀한 그림이 분명하다고 밝혀냈다. 그전까지 분실된 티치아노의 원본을 사소페라토가 모사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3.모렐리 재조명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모렐리의 방법은 계적이며 조잡한 실증주의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모렐리의 방법을 깔본 사람들 중 다수가 모렐리의 방법을 몰래 사용했던 것 같다.
그러다 미술사 학자인 에드가 윈드 덕분에 모렐리의 작업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기 시작했다. “모렐리가 쓴 책들은 미술에 관한 다른 어떤 책과도 다르다. 그의 책에는 손가락과 귀에 대한 그림들이 가득하고, 화가들의 특징이 될 만한 (그림의) 세부 묘사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마치 지문을 통해 범죄자를 밝혀내듯이, 세부 묘사를 통해서 화가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이다.
어떤 화랑이든 모렐리의 연구를 거치고 나면 용의자의 사진 진열실로 보이기 시작한다.”
4.홈스와 모렐리와 연결
이탈리아의 미술사 학자 카스텔누오보는 모렐리의 분류 방법과 바로 몇 년 후 도일이 셜록 홈스에게 부여한 방법 사이의 유사성을 이끌어 냈다.
미술 감정가와 탐정은,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보통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는 작은 단서로부터 무언가를 발견해 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셜록 홈스는 발자국이나 담뱃재 등등을 해석하는 유명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홈스시리즈중 ‘소포’에서 홈스는 마치 모렐리처럼 행동한다. 어떤 순진한 노부인에게 두 개의 잘린 귀가 소포로 배달되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4.1 홈스의 추리
자네는 의사니까 귀처럼 가지각색인 신체 분야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걸세. 귀는 사람마다 아주 독특하고, 다른 누구의 것과도 다르지. 작년에 출간된 ‘인류학지’를 보면 이에 관한 두 개의 짤막한 나의 논문이 실려 있다네.
어쨌거나 나는 상자에 들어 있던 귀를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며 해부학적 특징들을 조심스레 관찰했지. 그러다 쿠싱 여사를 보면서 그녀의 귀가 내가 방금 관찰한 귀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게나.
절대로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었네. 귓불이 좁아지는 모양이라든가 윗부분의 넓은 곡선, 그리고 안쪽 연골의 구불구불한 모양까지 완전히 똑같았네. 본질적으로 같은 귀였던 거야.
물론, 나는 관찰 결과의 중요성을 즉시 알았지. 그건 희생자가 그녀와 혈연관계이며 아마도 매우 가까운 사람이리라는 사실이었지… (소포)
5.현대 심리학과 모렐리
모렐리를 비판한 사람들은 “개인의 노력이 가장 적게 들어간 부분에서 개인의 특성personality을 찾아야 한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심리학은 모렐리의 이런 주장을 잘 뒷받침해 준다. 즉 부주의하고 사소한 몸짓이, 우리가 세심하게 취하는 형식적인 자세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우리의 성격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6.프로이트의 고백
“부주의하고 사소한 몸짓”이라는 말을 보면 우리는 곧바로 “현대 심리학”이라는 일반적인 용어를 프로이트Sigmund Freud라는 이름으로 대체할 수 있다.
윈드가 모렐리를 언급한 덕택에 학자들은 프로이트의 유명한 에세이 ‘미켈란젤로의 모세’를 주목했다.
“그는 그림의 일반적인 인상이나 중심 인물 대신 사소한 부분 묘사, 즉 손톱이나 귓바퀴나후광의 모양처럼 쉽게 지나치는 하찮은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모사가는 그런 것들을 모방할 때 소홀히 여기고 지나치지만, 진짜 화가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나는 러시아식 가명 뒤에, 1891년에 사망한 모렐리라는 이탈리아인 의사가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매우 흥미를 느꼈다.
내가 보기에 그의 탐구 방법은 정신분석학의 기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의 방법 역시 하찮아 보이고 주의를 끌지 않는 특징들에서, 즉 우리의 관찰에서 보자면 쓰레기 더미인 것에서 은밀하고 감추어진 것들을 알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미켈란젤로의 모세 중)
프로이트는 명백하게, 은밀하게 모렐리가 자신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음을 선언했던 것이다.
7.프로이트와 모렐리와의 만남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에 대한 연구 이전에 모렐리의 글들을 접했다. 즉 정신분석의 핵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발견한 이후에 우연히 나중에 삽입된 요소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7.1 첫번째 만남, 드레스덴 화랑
1883년 12월 프로이트가 드레스덴 화랑을 방문하면서 약혼녀에게 ‘미술의 발견’에 관해 긴 편지를 보낸 이후일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프로이트는 그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당시 프로이트는 “나의 무교양을 벗어던지고 이를 숭배하기 시작했소”라고 적었다.
따라서 이렇게 쓰기 전에 프로이트가 어떤 무명 미술사 학자의 글에 끌렸으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 편지를 쓴 후에 그 글을 읽기 시작했을 수는 있다.
특히 모렐리의 첫 에세이들이 뮌헨, 드레스덴, 베를린의 여러 화랑에 소장된 이탈리아 옛 거장들에 대해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7.2 두번째 만남, 밀라노
프로이트가 모렐리의 글을 두 번째로 접한 것은, 여전히 추측이지만 좀 더 확실하게 짚어 볼 수 있다.
모렐리의 가명 출판은 1883년이었고 그뒤 1891년부터 모렐리가 죽을 때까지의 여러 판과 번역본에 그의 실명과 가명이 모두 실렸다. 이 무렵의 책을 프로이트가 보았을 수 있다.
아마도 프로이트가 레르몰리에프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 것은 1898년 9월 밀라노의 서점가를 돌아다닐 때였을 것이다.
현재 런던에 보관되어 있는 프로이트의 장서 중에는 1897년 밀라노에서 간행된 모렐리(레르몰리에프)의 책의 복사본인 ‘이탈리아 회화에 대한 역사 비평적 연구’가 있다. 그 시절 프로이트는 기억의 실수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8.모렐리의 영향
모렐리가 썼던 다음 구절의 아이러니는 아마도 프로이트를 즐겁게 했을 것이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내가 예술 작품의 정신적인 내용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니까 손이라든지 귀의 형태 같은 외적인 세부 묘사,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인가, 하다못해 손톱 같이 조잡한 것에 특별히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는 기뻐한다.
예술가가 세부 묘사들 속에서 자신이 속한 문화적 전통에 구속되지 않고 자신의 순수하고 개성적인 경향을 살려 낸다.”
모렐리는 그런 세부 묘사들은 ‘습관에 의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반복된다’면서 무의식을 언급하였다.
예술가의 가장 핵심이 되는 개성이 의식의 통제를 초월하는 요소와 관련을 맺는 방식을 언급한 것이다.
9.프로이트, 홈스와도 연결
1913년 봄, 동료인 라이크 T. Reik가 정신분석학적인 방법과 홈스의 방법 사이의 비교를 논하자 프로이트는 감정가로서의 모렐리에 대해 칭찬함으로써 그 대답을 대신했다고 한다.
위의 세 가지 경우 모두 작고 사소한 것들이 심연의 사실을 향한 유일한 열쇠가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프로이트에게는 증상, 홈스에게는 단서, 모렐리에게는 그림의 특징이 바로 그 사소한 것들이다.
9.1 도일, 모렐리, 프로이트 모두 의사
이와 같은 삼중의 유사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명백한 해답은, 프로이트가 의사였고, 모렐리는 의학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코넌 도일 역시 작가로 정착하기 전까지는 의사였다는 사실이다.
세 경우 모두 우리에게 의학 기호학, 즉 징후학symptomatology의 모델을 연상시킨다. 징후학에서는 질병을 직접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보통 사람, 심지어 의사인 왓슨이 보기에도 관련이 없을 것 같은 표면적인 징후나 기호를 근거로 진단을 내린다.
10. 징후학과 기호학
홈스, 모렐리, 프리오트의 공통점은 개인사적인 우연의 문제가 아니다. 19세기가 끝날 무렵(더 자세히는 1870~1880년의 10여 년간)에는 이러한 기호학적인 접근법, 즉 단서 해석에 기초하는 패러다임이나 모델이 인문과학 분야에서 점차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뿌리는 고대부터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