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식당 진진의 설계자. 50년 업력을 가진 백전노장이다. 부모가 중국 대륙 출신인 화교 2세다. 열일곱 살에 철가방을 든 뒤 홀을 거쳐 주방에 입성했다.
대관원, 홍보석, 사보이호텔 호화대반점, 플라자호텔 도원 등을 거쳤다. 코리아나호텔 대상해 주방장을 하다가 오너 셰프가 됐다.
인생 1막을 마치고 소일 삼아 테이블 열두 개짜리 진진을 냈다. 이 자그마한 골목가게가 미쉐린 가이드 별을 받으며 인생 2막이 다시 바빠졌다.
저서소개_진진, 왕육성입니다
요식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미쉐린 가이드 스타 ‘진진’
2016년 말, 요식업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미식가의 성서’라고 불리는 미쉐린 가이드가 한국에도 론칭한다는 소식이 퍼졌다.
특급호텔 레스토랑, 고급 요릿집 등이 수록을 기대하며 발표만 기다리고 있었다.
총 24곳이 발표됐는데 눈에 띄는 가게와 셰프가 있었다. ‘진진’ 그리고 왕육성. 진진은 마포구 서교동 골목에 자리 잡은 작은 중식당이다. 게다가 개업한 지 2년도 안 된 신생 가게나 다름없었다.
‘니가 거기서 왜 나와?’
다들 의아해 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에서 별을 받은 중식당은 단 두 곳이었다.
한 곳은 포시즌스 호텔에 위치한 유유안이고, 다른 한 곳이 바로 진진이었다.
미쉐린 가이드는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하고 수준 높은 중식을 제공하는 중식 전문점”이라 평했다. 사실 진진을 알고, 왕육성을 아는 사람들에겐 ‘역시’ 싶은 결과였다.
『진진, 왕육성입니다』는 바로 이 깜짝 스타 진진과 진진을 만든 왕육성에 대한 이야기다.
TV에 얼굴을 자주 내비치진 않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는 사실 이미 중화요리계 스타다.
왕육성은 50년 업력을 가진 백전노장이자, 대관원, 홍보석, 플라자호텔 도원 등 장안에서 이름난 중식당을 거쳐 코리아나호텔 대상해 오너 셰프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다.
‘왕육성이 망했다고?’
그런 그가 어느 날 호텔 일을 접고 동네에 작은 가게를 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의아해 했다. 후배 요리사는 식당에 다녀갔다가 울었다고 했다.
다들 왕육성이 망했다고 수근거렸다. 그런데 망한 줄 알았던 노장의 가게가 업계 내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엉? 실패한 적이 없어? 왕육성 셰프의 삶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10대에 철가방을 든 뒤 거침없이 달려왔으니 그럴 만하다. 진진 요리를 맛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진진의 성공 뒤에는 『삼국지』 뺨치는 전략과 전술이 촘촘하게 숨어 있다.
낙관과 긍정은 난관을 돌파하는 힘이다.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말은 ‘요리하는 현자’ 왕육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박정배(음식 칼럼니스트)
사실 진진은 왕육성이 50년 요리 인생에서 축적된 내공을 모두 쏟아부은 ‘작품’이나 다름없다.
모든 것을 그는 철저하게 설계했다.
가게 위치부터 메뉴 선정, 주류 판매 목록까지 허투루 정해놓은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
유동인구 거의 없는 골목 자리에서, 짜장면‧짬뽕도 없고 탕수육도 없고 단무지까지 없는 이 이상한 중국집, 결국에는 성공했다. 역시 그는 이번에도 실패하지 않았다. 한 기자가 말했다. ‘전승의 승부사 왕육성.’
짬뽕 없어요, 짜장면도 없어요. 거꾸로 가는 중국집
왕육성이 진진을 준비하며 내건 모토는 ‘동네서 즐기는 호텔 요리’였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호텔 못지 않은 수준의 요리를 부담 없는 가격으로 즐기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가게를 여는 사람들은 누구나 억 소리 나는 권리금을 주더라도 호화 상권에서 화려하게 매장을 꾸며 손님을 모시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는 권리금이 없고 시설 투자에 돈을 적게 들일 40~50평 내외의 작은 곳을 찾았다. 그 돈을 아껴 가격을 낮추고, 재료비에 투자하는 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SNS에 점심에도 문 여는 신관을 내겠다는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어요. 성급했어요. 주변 가게들 사정을 알아보지 않고 섣불리 꺼낸 말이거든요.
그 때문인지 가까이 있는 식당 주인이 편지를 보내왔어요. 장사가 안돼서 걱정인데 진진이 자기네 가게를 인수하면 어떻겠냐는 내용이었어요. …
이런 동네에서 진진이 점심에도 장사를 하면 될까 싶더군요.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손님을 진진이 빼앗을 수 있잖아요.”
메뉴판에서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없애는 파격을 시도했다.
점심 장사도 하지 않았다.
여느 중국집과 다름없이 식사 메뉴를 내고 낮부터 손님을 받는다면 가뜩이나 좁은 골목 상권에서 작은 파이를 가지고 다투는 꼴밖에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서비스 요리로 인식돼 버린 만두도 직접,정성스레 만들어 제 가격에 팔았다. 게다가 주문이 잘 들어오지 않는 채소요리와 재료 관리가 까다로운 생선요리를 메뉴에 넣었다.
남들이 보기에 거꾸로 가는 이상한 중국집은 사실 다 그의 계획이자 도전이었다.
글 쓰는 셰프 박찬일의 말을 빌리면 ‘남이 안 하는 것을 하고, 나른한 고정관념을 깨고, 손님들이 상상하는 것을 넘어서려고 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화교 2세의 숙명, 왕육성을 중국집으로 이끌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왕육성도 무턱대고 한 것은 아니다.
그의 요리 인생 50년에서 우러나온 노하우와 지혜를 바탕으로 한 시도였다. 왕육성은 열일곱 살 때 학교를 관두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대륙에서 온 화교였는데 집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나 화교 2세로서 왕육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1960년대만 해도 화교는 토지 소유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한국 사람 명의를 빌려야 했다. 토지를 빼앗기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영주권이 없던 시절 화교는 외국인출입국관리법 적용 대상이었다. 주기적으로 체류 기간 연장 허가를 받아야 했다.
공무원도 할 수 없었고, 변호사나 의사 등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증도 딸 수 없었다. 비자 문제가 까다로우니 일반 회사도 화교 채용을 꺼렸다.
왕육성은 자연스레 화교들이 많이 자리 잡은 중국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가 칼을 잡은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식칼·가위·면도 셋을 삼파도(三把刀)라고 해요.
모두 날이 달린 칼이죠. 이를 이용해서 하는 일을 삼도업(三刀業)이라 하고요. 요리점·포목점·이발소가 대표적이에요.
기술만 익히면 먹고살 수 있는 직종이니까요. 학교 문을 나섰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뻔했어요. 칼과 웍은 어쩌면 필연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위동 대성원에서 배달로 시작해 뚝섬 성수원에서 홀 근무를 거쳐 홍보석에 가서야 주방에 입성했다.
칼을 쥐게 됨에 감사하며 매일 오전 제일 먼저 출근해 칼을 갈고 주방 일을 준비했다.
퇴근하며 자취방에서 그날 보고 익힌 요리를 그림으로 그리며 복기했다.
그런 성실함과 실력을 인정받아 만다린과 해당화를 거쳐 플라자호텔 도원, 코리아나호텔 대상해까지 갔고 마침내 주방장이 될 수 있었다.
훗날 진진을 만들 때 그는 나루 진津을 이어붙여 썼다. 아버지의 고향인 중국 톈진과 지금 왕육성이 사는 마포구 양화진에 함께 들어 있는 한자를 상호로 만들며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담으려 했던 것이다.
화교로서 공부를 포기하고 칼을 들어야만 했던 자신의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그는 운명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왕육성의 힘
대상해 주방장으로서 10년을 지낼 무렵, 호텔로부터 매장을 인수받았다.
오너 셰프로 막 첫걸음을 딛는데 IMF가 터졌다.
위기를 맞은 왕육성은 이 상황을 기회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현재 경제 상황에 걸맞은 비즈니스 코스를 만들었다.
또한 식재료비를 어음으로 끊어주던 관행을 없애고 현금으로 지불하니 쪼들리던 거래처들이 반색하며 더 좋은 식자재를 공급하고 납품가를 깎아주었다.
덕분에 손님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질 좋은 요리를 손보일 수 있었다. 대상해는 IMF 위기 상황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2004년에는 주5일근무 시대가 열렸다. 광화문 근처의 직장인이 주요 고객층이어서 타격이 컸다. 다시 마주친 위기 앞에서 왕육성은 주말 스페셜 메뉴라는 대비책을 내놓았다. 휴일에도 손님들을 받았다.
그러자 매출은 회복되는데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졌다. 대충 일해도 그만이던 주말에 바빠진 직원들이 알아서 예약 전화를 줄여 받았다.
왕육성은 또 승부수를 던졌다. 월급을 없애고 매출액과 연동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월급제를 손본 것이다. 매출이 느는 만큼 가져가게 되니 직원들의 일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교토유삼굴(狡兎有三窟), 영리한 토끼는 굴 세 개를 파놓는다는 말이에요. 무슨 일을 할 때는 반드시 대안과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라는 뜻이죠. 어릴 때 어른들에게 수없이 들으며 자랐어요. 방법이 있어야죠. …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통신 결제 시스템을 두 개 회사로 나눠 놨거든요.
본관과 야연은 SK로 신관과 가연은 KT로요.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라면 통신사 두 곳이 모두 멈춰설 일은 없겠죠.
사고가 발생한 뒤 곧바로 신관은 길 건너 본관을 이용하고, 가연은 바로 옆 야연을 이용해서 결제했어요. 토끼굴처럼 위험을 분산해 둔 덕이었지요.”
왕육성은 항상 이렇게 위기를 대비하여 대비책을 마련해놓았다.
진진에서도 그의 대비하는 자세는 빛을 발했다. 2018년 11월 24일 오전, 서울 서북부에 대란이 일어났다.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KT 아현지사 통신구에 불이 나서 KT 통신망이 마비됐다.
전화와 인터넷은 물론, 매장의 결제 단말기와 POS기가 멈췄다.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카드 결제는 물론 모바일 이체도, ATM기 이용에도 애를 먹었다.
하지만 진진은 이를 피해 갔다. 진진은 매장을 늘리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결제 시스템을 두 군데로 나눠놨던 것이다.
이 시대에 요리하고 장사하며 살아간다는 것
팬데믹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많은 가게들이 코로나 여파로 어려움을 겪거나 문을 닫았다.
진진도 현재 매장 네 곳 중 두 곳만 영업한다.
하지만 뿌리가 탄탄한 진진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들이닥친 위기 앞에서 왕육성은 다른 돌파구를 찾고 있다.
밀키트를 개발하고, 짜장면을 파는 매장을 계획 중이다.
짜장면을 다시 연구‧개발하는 것은 후배들에게 먹고살 길을 찾아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그가 중식업계에 발을 들인 1970년대만 해도 선배 요리사들은 후배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주려 하지 않았다. 진진에도 젊은 후배들이 계속 오고 간다. 무엇이든 숨김없이 보여주고 가르쳐준다. 독립하고자 하면 박수치며 내보낸다.
“나이 일흔을 바라보면서도 손님에게 내놓을 만두를 직접 싸고 가게 구석구석을 살핀다. 이제 그만 쉬시라고 잔소리를 해도 듣지 않는다.
일이 그렇게 좋단다. 항상 가르침을 주는 육성 형님은 중화요리계의 BTS요, 내 인생의 스승이다.” _이연복(목란 대표)
인생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한사코 거절하다가 끝내 수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삶의 궤적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 이야기가 요리하고 장사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그 마음으로 왕육성은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중화요리계의 ‘쓰부’(사부)이자 ‘따거’(큰형님) 왕육성이 책을 쓴다 하니 벗들이 자진해서 도와주었다. 오래된 벗 이연복과 친한 후배 박찬일, 박정배 작가가 추천사를 써주었고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가 기꺼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진진, 백년가게를 꿈꾸다
“큰 굴곡 없이 여기까지 왔어요.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난 덕이죠. 이제는 돌려줄 때라고 생각했어요. 기부니 봉사니 그런 말은 너무 거창하고요.
직원들 지갑 부족하지 않게 채워주면 기부고, 손님들에게 좋은 음식 싸게 내면 봉사고, 제가 쌓아온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해주면 나눔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후배들이 성공해서 또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전해 가면 모두가 좋잖아요. 그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뜻하지 않게 진진이 주목받으며 인생 2막이 바빠졌다. 그의 원래 뜻은 조그만 식당을 열어 지인들과 함께 놀고자 했을 뿐이었다. 2017, 2018, 2019년에 연속으로 별을 받고 2020년 별을 내놓았다.
오히려 그는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진진이 반짝 스타가 아니라 오래가는 가게로서 자리잡길 바란다. 백년가게가 되기를 꿈꾼다. 오래도록, 한곳에서 자리를 지키며 단골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싶다.
그는 이제 뒤편으로 물러나고 그의 제자 황진선이 가게를 이끌어갈 테다. 왕육성은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진진의 정신은 남아 사람들의 입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길 바란다.
개업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진진에는 왕육성의 요리 인생 50년이 녹아 있으니 백년가게가 되는 길이 그리 먼 것은 아니다. 진진이 백년가게가 되길 바라는 마음과 책을 읽는 독자들이 또 다른 백년가게를 만들기 바라면서 이 책을 세상에 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