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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 남북채권

[미국금융사] 4.美 남북전쟁은 채권전쟁이었다

미국은 건국 이후 북부의 산업 자본주의와 남부의 면화 농업이라는 서로 다른 경제권으로 나뉘어 있었다. 북부는 기계에 투자했고, 남부는 노예에게 투자했다. 보호무역이 필요한 북부의 산업자본은 수입관세를 부과했고, 수출 위주의 남부는 자유무역을 지지했다. 북부는 이른바 아메리카 시스템을 만들어 가면서, 부의 70%, 은행자산의 80%를 차지했다. 남부는 비록 노예제라는 후진적 경제시스템에 속했지만, 남부의 농장주는 그 어떤 부자보다 부유했다. 면화경제는 미시시피 삼각주부터 뉴욕의 은행, 유럽의 방적공장과 금융기관을 아우르는 세계 체제였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 남북전쟁(1861~1865)도 전쟁 비용의 조달이 핵심 이슈였다. 전쟁의 재정적 비용은 대략 52억달러로 추산된다. 세금을 거두는 것이 물론 첫 번째 해법이다. 북부는 실제 처음으로 소득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세금으로만 전비를 마련할 수는 없다. 전쟁 시 세금보다 채권 발행이 일반적이다. 북부와 남부 모두 지폐와 채권을 발행했다. 전비를 마련하기 위한 남부와 북부의 채권 발행 성공과 실패가 전쟁의 승리와 패배를 결정지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처음에 북부는 국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뉴욕의 은행들이 국채 매입에 협조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861년 12월28일에 뉴욕의 은행은 정부에 금의 지불을 중단하고 국채 매입의 약속도 이행하지 않을 것을 통보한다. 어찌 보면 뉴욕 은행의 반란과도 같은 선언이었다. 그 뒤에는 남부의 면화가 필요한 영국과 로스차일드 은행이 있었다. 북부와 달리 남부와 영국이 이해가 같았을 뿐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채권왕 제이 쿡(1821~1905)이 등장한다. 남북전쟁에서 북부의 지지자이자 오랫동안 노예제를 반대했던 쿡은 곧 연방을 위한 자금 조달에 참여한다. 남북전쟁 전날 필라델피아에서 사업을 시작한 쿡은 채권 판매의 대리업무를 맡는다. 위기의 상황에서 체이스 재무장관은 쿡에게 전권을 허락한다. 쿡은 전비의 70%를 채권 발행으로 조달했다.쿡은 채권 마케팅을 완전히 혁신했다. 쿡은 금융기관이 아니라 개인에게 채권을 팔았다. 그는 2500명의 판매원을 고용해 전국을 집집마다 누비며 5억달러의 국채를 팔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북부는 쿡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 그는 1861년에 1억달러 채권 발행의 4분의 1을 매각했지만, 2년 후에는 5억달러 발행의 80%를 매각했다. 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 쿡의 판매원은 하루 평균 250만달러의 채권을 팔았고 이 속도는 전쟁이 끝날 무렵 가속화됐다. 쿡은 총 10억달러 상당의 채권을 매각했다. 그는 채권 판매로 대략 100만달러를 벌었다.

1861년 연례 연설에서 링컨이 바랐던 희망처럼 미국 시민이 전쟁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채권 판매 방식에 대한 쿡의 혁신은 남북전쟁의 성패를 갈랐을 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다. 연방 국민의 5%를 소자본가로 변모시키고, 침대 매트리스 밑에 죽어 있던 자본을 해방시켜 생산적으로 소비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평가된다.남부는 북부에 비해 전반적으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건전하지 않았다. 지폐의 무분별한 인쇄는 남부와 북부 모두 전시 금융의 특징이었지만 남부에서는 훨씬 더 두드러졌다. 화폐의 가치는 절하되고 물자 부족은 인플레이션을 촉발했다. 지폐와 금화의 가치 격차를 확대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방채권을 남발해 전쟁 비용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비상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금융방법 중 하나는 ‘에링거’ 대출이라고도 알려진 1863년 발행된 면화채권이다. 독일의 은행가인 에링거가 루지애나 상원의원이자 외교관이었던 존 슬라이델에게 제안해서 발행됐다. 이후 두 사람은 장인과 사위 관계로 맺어졌다.면화채권은 면화를 담보로 발행된 1500만달러의 채권이다. 면화채권은 국채로 발행된 최초의 파생 금융상품이었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남부는 채권 흥행이 절박했고, 흥행을 위한 채권의 조건을 금융인인 에링거가 만들었다.우선 투자자에게 금화로 7% 쿠폰을 지급해야 했다. 반면 투자자는 투자금을 7개월에 걸쳐 분할 납부했다. 당장 필요한 전비를 마련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은 아니었다. 이는 남부 채권이 19세기 투기채권 발행의 조건으로 발행되기 때문이다. 흥행을 성공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유럽 투자자들이 면화채권을 사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렇지만 곧 남북전쟁의 상황에 따라 채권 가격은 출렁였다.그런데 채권 가격이 하락할 때마다 남부 정부는 가격을 방어하기 위해 환매, 곧 면화채권을 사들였다. 1863년 중순까지 발행된 채권의 절반 이상을 남부가 대리인을 통해 환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전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왜 이런 어리석은 결정을 했을까.투자자가 할부로 지불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투자가 이루어지기 전에 가격이 폭락했다면 투자자들은 손실을 받아들이고 채권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남부는 항상 채권의 성공을 위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지킬 수 없는 약속도 있었다. 면화는 바다 건너 남부에 있었고, 남부가 배달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전쟁 과정에서 북부군은 남부의 면화 생산 및 수출 요충지를 점령했기 때문이다. 결국 남부는 전쟁에서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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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5년 3월6일,미켈란젤로 태어나다

미켈란젤로 부오나 로티는 1475년 3월 6일에 태어났습니다. 13세에 견습생으로 시작하여 뛰어난 재능을 보여 발탁됩니다. 1490년부터 2년 동안 그는 로렌조 데 메디치의 궁전에서 살았습니다. 조각가 베르톨도 디 조반니의 제자가 되어 고대 로마 조각상을 포함하는 메디치 미술 컬렉션을 공부했습니다.

1494년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이 추방되자 미켈란젤로는 볼로냐와 로마로 여행을 떠나습니다. 여러작품을 의뢰받았고, 그의 애표적인 피에타(Pieta , 1498)을 만들었습니다. 피에타 의 성공으로 화가는 피렌체 대성당을 위한 다비드의 조각상을 조각하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1504년 다비드가 완성되자 미켈란젤로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1508년에 그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을 그리기 위해 로마로 갑니다. 몇 년이 걸려 완성환 천장 프레스코화는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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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지 TIME, 100년의 역사

1923년, 타임지는미국 최초의 주간 뉴스 잡지였습니다. 헨리 루스가 예일대 동창 브리튼 해든과 함께 창간했습니다. 올해 100주년을 맞이하는 타임은 표지의 강렬함으로 일반독자에게 알려졌습니다. 타임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특집 기사는 “올해의 인물” 섹션입니다. 사업상 어려움을 겪다가, 세일즈포스의 창립자인 마크 베니오프가 2018년 타임지를 인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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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3월 2일, 텍사스공화국 멕시코로 부터 독립을 선언하다.

1820년 미국 시민 모세 오스틴은 멕시코의 스페인 정부로부터 텍사스 정착을 허가를 받았습니다. 1821년에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 정부에게 카톨릭신자 300가구의 정착을 허가받습니다. 그렇지만 오스틴은 주로 미국 남부에서 개신교를 데려 왔습니다. 미국 정착민이 늘어나면서, 미국인들은 거주하는 멕시코인들의 수를 넘어섰습니다. 1826년 멕시코와 미국 정착민 간의 갈등으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1830년 멕시코 정부는 미국인 유입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합니다. 그러자 1835년 대규모 텍사스군이 멕시코 군대를 기습하여,멕시코 인을 물리 치고 산타안나를 점령합니다. 멕시코 독재자는 텍사스의 독립을 인정하고 리오 그란데 남쪽으로 군대를 철수합니다. 텍사스는 미국의 합병을 요구했지만, 멕시코와 미국의 반노예제 세력은 텍사스의 연방 가입을 반대합니다. 거의 10년 동안 텍사스는 독립 공화국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1845년에야 텍사스는 미국의 28번째 주로 연방에 가입하고, 곧 멕시코-미국 전쟁이 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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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기자클럽 2023년 주요 사업 현황

포럼/세미나/네트워킹 등 행사

[행사]언론사 생성형 AI대응 전략 토론회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023년 11월 9일 엘레나 페로티 세계신문협회 미디어정책및 홍보 수석이사를 초빙해 ‘AI와 뉴스산업 혁신’을 테마로 조찬 강연회를 가졌다. 페로티 이사는 세계신문협회에서 미디어 정책과 홍보를 담당하면서 세계 각국의 언론 관련 단체와 협력하고 소통하는 일을 맡고 있다.

페로티는 강연에서 생성형AI의 학습에서 뉴스 콘텐츠가 핵심이므로 꼭 제 값을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 전세계 언론계는 빅데크를 대상으로 집단 행동을 하면서 함께 협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페로티 이사의 강연을 소재로 회원들이 12월 22일 토론회를 가졌다.

언론사 생성형 AI 수용 대세

2022년 11월 오픈AI가 챗GPT3를 발표하면서 순식간에 생성형AI가 언론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101개 언론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0%는 이미 생성형AI를 사용하고 있고 70%는 빠른 시간안에 생성형 AI가 뉴스룸에서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비해 20%만 생성형AI 사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데 그쳤다.

응답한 언론사는 생성형 AI를 콘텐츠 요약, 교열, 기초자료 조사, 업무흐름 자동화 등에 활용하여 기자들이 더 창의적인 일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언론계는 생성형 AI에 대해 폭넓은 낙관론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회의론도 존재한다. 언론사들은 오정보, 정보의 정확성, 데이터 프라이버시, 규제 등을 우려하고 있다.

생성형 AI 규제 추세와 현황

2023년 5월 오픈 AI의 샘 앨트먼 사장이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생성형 AI를 사용할 경우 대중을 상대로 출시하기 전에 위험성을 걸러내기 위한 사전 테스트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챗GPT3출시 이후 2023년 8월 중국은 24개 항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발표함으로써 AI를 규제하는 최초의 국가가 됐다. 가이드라인에는 검열에 가까운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올해 9월 AI 안전포럼이 미국 의회에서 열렸는데 샘 올트먼, 마크 저크버거, 일론 머스크 등 참여자들은 규제에는 동의했지만 누가 규제하고 어떻게 규제하느냐는 문제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미 바이든 정부는 10월 31일 행정명령을 미국 정부의 모든 기관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의 사용과 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규정하는 행정명령을 발포했다.

또 일본 히로시마에 모인 G7은 일본의 주도로 AI개발 원칙, 개인정보보호 등 11개 항목의 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11월 1일 영국 블레츨리파크에서 열린 AI안전 정상회의에 참석한 국가는 AI의 리스크를 함께 평가하자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차기 회의는 2024년 한국에서 개최될 것이다.

유럽연합도 리스크를 수용불가, 고위험, 제한적 또는 최소 등 등급별로 분류하고 저작권법을 지키면서 모델을 학습시키는 법안을 마련했다. 또 법을 어길 경우 3천만 유로 또는 매출액의 6%까지 벌금을 매길 수 있도록 했다.

언론계 생성형AI 활용 현황과 이슈

런던정경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언론계에서 뉴스 수집, 뉴스 제작, 뉴스 배포에 AI를 폭넓게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블룸버그GPT는 금융콘텐츠에, 런던타임즈 제임스는 사용자의 행태 분석에, 로이터의 링스 인사이트는 탐사형 저널리즘 맥락적 정보 제공을 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뉴스 수집의 경우 데이터 수집, 자동번역, 텍스트 추출, 요약, 데이터분류 등에 활용하고 있다. 뉴스 제작 프로세스에서는 사실확인, 팩트체킹, 교정, 헤드라인 뽑기, 이미지 생성 등에 활용하고 있다. 뉴스 배포에서는 개인화 뉴스제공, 매체별 콘텐츠 최적화, 텍스트 오디오 전환, 검색최적화 등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어떤 매체는 미국식 영어가 아닌 영국식 영어 규칙이 있어서 특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규제하는데 AI를 활용한다.

언론사는 이런 AI활용을 통해 기자들이 반복적이거나 기계적인 일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생성형 AI의 기자직업 위협

AI는 언론인의 생계에 위협을 줄 수 있다. 올 6월 미국 매체인 인사이더의 파업은 뉴스 업계에서 최장기 파업이었다. 이 파업이 끝나고 나서 노조는 만약에 생성형 AI를 뉴스에 활용할 경우 노조가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 작가 조합(WGAW)은 146일에 걸쳐 파업하면서 할리우드 영화제작과 TV 프로그램 제작에 영향을 미쳤다. 시위에 등장한 한 피켓에는 “작가들은 연극 ‘R.U.R’에서부터 AI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고 적혀있다. (‘R.U.R’은 체코작가 카렐 차페크가 1920년에 발표한 희곡으로 로봇을 최초로 다뤘다)

독일 빌트지는 올해 200명을 해고했는데

마티아스 되프너 악셀 스프링거 CEO는 “AI가 정보를 수집하는데 사람도 곧 더 나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호주 뉴스코프의 경우 4명의 로컬 데이터팀이 매주 3천개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AI의 사용시 허위정보 리스크, 편향적 정보 리스크가 발생하고, 사람이 생성한 것과 AI가 생성한 콘텐츠를 구분하기 어렵다. 나아가 언론인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으로 인하여 다른 기회가 있다. 즉, 우수한 저널리즘이 더욱 중요하고 가치가 올라갈 것이다. 스타 저널리스트의 가치도 커질 것이다.

생성형 AI에 대한 사람의 감독

생성형 AI 활용과 관련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는 뉴스룸이 많지 않다. 올 9월에 옥스퍼드대 조사 결과 200개 중 52개만 가이드라인 가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기본적으로 내용이 유사하다.

또 경영진이 언론인들이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정한 것으로 공통적 사각지대도 있다. 예를 들어 가이드라인 위반에 대한 단속으로서 벌금이나 벌칙을 마련하지는 않았다.

아웃풋에 대한 감독은 있지만 알고리즘에 대한 감독은 제한적이며 외부협업자들과 관련된 부분이 없다. AI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소스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하는데 부족하다.

영국 가디언은 3개월 동안 편집, 기술, 법률 등 뉴스 제작의 여러 부서가 참여한 워킹그룹에서 마련했는데 사람이 감독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규정했다. 생성형 AI도구를 사용할 경우 보다 양질의 저널리즘이 가능할 때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니어 에디터가 생성형 AI가 만든 결과물을 승인했을 때만 사용해야 한다. 또 생성형 AI사용을 대중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 대규모의 데이터세트를 검색하거나 마케팅을 위한 아이디어 창출, 비즈니스 프로세스 단축 등에 활용하면 반드시 승인받아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사용하고 이를 알려야 한다.

AP의 가이드라인은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를 공유하는 책임은 언론인이 가지고 있다고 규정한다. 또 이 정보에 의구심이 있다면 이 정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챗GPT를 이용해 동영상, 사진,오디오 등을 변경해서 안되며, 또 소스 데이터를 AI에 탑재하거나 민감정보를 AI에 제공하면 안 된다고 규정했다.

AI 시스템은 발행인들에 의해 승인되어야 하고, 승인된 콘텐츠만을 사용해야 하고 기록을 제대로 남겨야 한다. 어떠한 목적으로 어디에 사용되고 승인받았는지를 기록으로 남기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마리아 레사가 국경없는 기자회와 함께 주도한 AI 저널리즘 파리 헌장에는 발행인들의 관점이 반영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뉴스룸에 AI 사용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주 성공적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AI가 규제해야 하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저작권에 대한 정당한 요구

37개의 웹사이트가 CNN,뉴욕타임스, 로이터 뉴스를 재료삼아 새로운 뉴스를 작성하는 것으로 적발됐다. 이들 사이트가 광고수익을 얻어도 출처인 언론사에 배분해주지 않는다. 언론사는 이렇게 사용된 줄 몰랐을 것이고 79%가 표절탐지기로도 찾아낼 수 없다.

챗GPT4를 사용해서 뉴욕타임스를 인용한 것인지 모르게 검색엔진 최적화되도록 쓰라고 하면 AI기 생성 한 기사인지 모르게 작성해준다. 구글의 AI 학습용 데이터인 C4 데이터세트를 분석하면 뉴욕타임스(4위) 가디언지(6위), 포브스(8위)순으로 언론사의 콘텐츠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더 이상 생성형 AI의 학습에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는다. 또 뉴욕타임스도 AI의 웹크롤링을 막고 있다.

현재 챗GPT, 바드 등 7개의 LLM(Large Language Model)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데,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과 양질의 콘텐츠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들이 절실하게 원하는, 양질의 학습용 콘텐츠는 바로 미디어가 생산하고 있다.

미국의 FTC에서는 올 7월 오픈 AI에 대해 불공정한 데이터 사용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AI 기업들은 이런 소송을 예상하고 있었다. 오픈AI는 소송이 진행되면 데이터를 사용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AP와 계약을 체결했다. 특히 영어가 아닌 언어로 발행되는 뉴스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만큼 희소성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콘텐츠가 LLM에 인풋으로 사용되면 돈을 받아야 하는데 너무 적은 돈을 받고 계약을 맺으면 안 된다. 이전에 너무 적은 돈을 받고 콘텐츠를 테크 기업이 제공했던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

생성형AI회사는 자신들이 필요하는 콘텐츠에 대해 돈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오픈 AI경우 출범 7개월만에 회사가치가 뉴스코프사의 2배를 넘어섰고, 오픈AI지분 49%를 보유중인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사상 최초로 4조달러짜리 회사가 되었다.

언론사가 할 일을 다음과 같다.페이월이라는 유료화도 AI의 크롤러로부터 완전히 콘텐츠를 보호하지 못하므로 집단 행동과 집단 협상이 필요하다. 또 미디어의 웹사이트 이용약관에 자사 데이터가 AI 트레이닝에 사용되지 못하도록 규정해야 한다.

AI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훈련시켜야 하고, AI 관련 가이드라인를 채택해야 한다. 외부 협력과 국제적인 연대를 해야 한다. 여러 AI 관련 각종 국제 모임에 참여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

질의응답시간

페로티 이사는 강연후 질의응답시간을 갖고 생성형 AI활용할 경우 사람의 역할에 대한 청중의 질문에 “웹사이트에 컨텐츠를 올릴 때 꼭 사람이 콘텐츠를 검토하고 나서 출고해야 한다. 이는 사람이 항상 읽고 편집하고 검토한다는 뜻”이라고 답변했다.

또 뉴스미디어가 LLM에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으면 편향되거나 허위정보를 학습하고 결국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존재 자체가 위험하므로 세상을 구해야 할 임무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페로티 이사는 “한 언론사가 무료로 제공한다고 하고 나머지가 제공하지 않는다하면 챗GPT는 한 언론사에서 콘텐츠를 가져오면 되므로 충분하다고 판단할 것”이라면서 “언론계 집단행동이나 단결이 없으면 기술기업이 콘텐츠를 쉽게 활용할 수 있다. 꼭 콘텐츠의 가치를 인정받고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페로티이사의 강연은 생성형AI 최신 동향 정보를 충실하게 공유해주고 또 언론계의 현실적인 대처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한국 언론계가 깊이 새겨 듣고 바로 실행에 옮겨야 할 대목이 많다. 예를 들어 생성형AI를 저널리즘에 접목하는데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빠른 시간안에 만들고 또 빅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저작권 협상을 하기 위해 언론계가 똘똘 뭉쳐 단일 협상창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개별 언론사입장에서 생성형AI의 급부상은 그리 반갑지 않다. 설사 공동 협상을 통해 저작권료를 받는다고 해도 각 언론사의 경영 상황을 극적으로 호전시킬 정도의 의미있는 금액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생성형AI가 모든 언론사의 기본 도구가 되면 차별성이 퇴색되고 결국 새로운 수익은 없고 비용만 추가할 것이다. 오픈AI가 천문학적 돈으로 개발한 챗GPT를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시장을 장악하면 결국 돈벌이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페로티 이사가 강연에서 스타 저널리즘의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한 대목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스타 저널리즘을 실현하려면 먼저 숙련 인력과 미숙련 인력이 혼재한 한국식 뉴스룸 인력구조를 확 바꿔야 한다. 아울러 스타 저널리스트에 대한 보상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할 것이다.

GPT빅뱅과 인공지능 진화 전망

챗GPT와 인공지능 생태계

특히 GPT를 개발한 오픈에이아이의 비즈니스모델이 흥미롭습니다. 누구나 쉽게 또 저렴하게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에 붙여 GPT의 막강한 알고리즘을 사용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GPT API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마치 PC통신 등장했을 때, 인터넷이 대중화되시 시작했을 때와 유사합니다.

IT기자클럽은 GPT 빅뱅을 맞아 인공지능 생태계의 진화 방향과 그 임팩트를 점검하는 포럼을 5월 10일 통의동 아이티클럽 서재에서 개최하였습니다.

참석자들은 챗GPT는 기존 인공지능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고 전 산업계에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하였습니다.

언론계 입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점은 역시 생성형 인공지능의 학습과정에서 언론사가 구축한 콘텐츠를 무단 활용하는 점이었습니다.

아울러 생성형 인공지능이 클라우드 컴퓨팅처럼 전 산업계에 스며들면 결국 모든 사용자가 록인되어 빅 테크에게 돈을 지불하며 떠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온라인 기자 교육프로그램 운영

미디어스쿨 IT취재 입문과정

시니어를 위한 미디어스쿨

직장인 글쓰기 교육

스타트업 홍보 지원 사업

테크 스타트업과 IT취재 기자 연결

저술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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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은행전쟁(BANK WAR)

은행(전쟁)은 전쟁에서 태어난다. 트라팔가 해전(1805년)에서 패배 후, 나폴레옹은 대륙봉쇄를 단행한다. 나폴레옹에 대적하여 영국은 해상을 봉쇄한다. 미국은 중립을 선언하며 모든 국가와 자유로운 교역을 요구한다. 그러나 영국은 미국상선을 나포까지 하면서 프랑스와 교역을 차단한다. 수입관세에 의존하던 미국 연방정부의 세수는 급감하고, 독립전쟁 당시 영국에 대한 적대감이 다시 달아오른다.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은 1812년 6월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드디어 캐나다를 침공한다.

언제나 전쟁비용이 이슈였다. 재무장관 갤러틴은 국채발행을 추진했으나, 1811년 제1차 중앙은행을 해산했기 때문에 채권 매각이 막막했다. 제1차 중앙은행을 인수한 스티븐 지라드가 채권을 매입해주어 한 숨 돌렸지만, 개인에 의존한 조달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영미전쟁(1812~1815)을 치르면서 미국은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다시 절감한다.

전쟁으로 인한 부채를 상환하고, 지폐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중앙은행이 필요했다. 자신의 임기 중에 1차 중앙은행을 해산했던 매디슨 대통령은 마침내 두 번째 중앙은행을 승인한다. 그렇지만 초창기 제2차 중앙은행은 역할을 하지 못했다. 1823년 니콜라스 비들이 총재로 부임한 이후, 중앙은행은 비로서 안정적인 신용과 통화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었다. 그 기반 위에 10년 동안 견실한 경제 성장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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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루이지애나 매입과 하이파이낸스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의 가장 빛나는 업적은 1803년 루이지애나를 1500만 달러에 사들인 것이다. 미시시피에서 로키 산맥까지 뻗어 있는, 당시 미국영토의 두 배 크기인 루이지애나를 1 제곱킬로 미터 당 5달러에 구매했다. 이 거래로 현재 미국 15개 주의 대부분이 탄생했다.

18세기 중반 프랑스는 뉴올리언스에서 오대호까지, 다른 어떤 유럽 국가보다 미국을 더 많이 지배하고 있었다. 프랑스가 만약 뉴올리언스의 점령하고 미국의 통행을 막는다면 미국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제퍼슨은 항구 도시인 뉴올리언스를 확보하기 위해 프랑스에 최대 1000만 달러를 제안했다. 이에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 영토 전체의 매입을 요청했다. 아이티의 노예혁명을 진압하지 못했고, 영국 해군의 봉쇄로 프랑스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나폴레옹은 무엇보다 현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팔고자 했다

프랑스와 미국 사이의 중개자 역할은 런던 베어링스 은행(Barings Bank of London)과 호프스 오브 암스테르담(Hopes of Amsterdam)이 맡았다. 두 은행은 프랑스 정부를 설득하여 해당 영토에 대한 요구 가격을 1억 프랑스 프랑에서 8000만 프랑스 프랑으로 낮추었다. 또한 거래 자금 조달은 미국정부의 대규모 채권 발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곧 미국정부가 부채를 떠맡고 보증하는 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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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해밀턴, 아메리칸 시스템의 설계자

미국 건국 공신 알렉산더 해밀턴(1757~1804)이 21세기 브로드웨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2015년 뮤지컬 ‘해밀턴’은 하나의 신드롬이었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 해밀턴은 그렇게 혁명적이며 역사적이다. 그로부터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가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가 없었다면, 19세기에 미국이 경제적으로 성취된 모든 일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연준의장을 네 번 연임한 앨런 그린스펀은 해밀턴을 ‘타고난 천재’라 평한다. 해밀턴은 신생 국가 미국이 농업이 아니라 상(공)업공화국이 되길 바랬다. 그의 아메리칸드림은 제조업, 무역, 도시가 발전한 나라 미국이다. ‘공동체에 다양한 산업이 형성되면 각각의 개인은 적절한 능력을 찾아 적성에 맞게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했다. 해밀턴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정교한 계획을 세우고 시스템을 만들어 나갔다.

그의 삶 자체가 그 누구보다 미국적이다. 건국 공신 중 해밀턴은 유일한 이민자였고, 바닥부터 올라간 사람이다. 해밀턴은 서인도 작은 섬에서 태어나, 사생아이자 고아로 자랐다. 그는 10대에 점원으로 취직하여 회계, 재고관리, 어음발행 등 상거래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익혔다. 17살에 신문에 실린 한 편의 글 때문에 뉴욕에 있는 현재의 콜롬비아대학에 갈 수 있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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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1월 26일, 영국함대 시드니에 도착하다.

1788년1월 26일, 죄수를 실은 11척의 영국 함대가 마침내 뉴 사우스 웨일즈에 도착했습니다. 호주는 원래 형벌 식민지로 계획되었습니다. 1786년 10월, 영국 정부는 아서필립 선장에 영국 죄수들을 위한 농업 노동 수용소를 설립하도록 위임했습니다. 처음에는 떠날 함대를 모으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경험 많은 농부를 원했던 그의 요청은 거부되었고, 자금과 장비도 부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해병대와 장교들를 포함해 1000명( 그중 700명은 죄수)이 아프리카에서 호주 동부로 향했습니다. 항해는 8개월 동안 지속되었으며, 약 3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정착 첫 해는 거의 재앙에 가까웠습니다. 척박한 땅과 낯선 기후, 농사에 무지한 일꾼들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식민지는 기아 직전의 상황에 있었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파견된 해병대는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필립 선장은 죄수들을 감독에 임명하며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는 “새로운 나라에서는 노예 제도가 없을 것이며 따라서 노예도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필립선장은 1792년에 영국으로 돌아갔지만 식민지는 19세기로 접어들면서 번영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의 시기를 극복한 후, 새로운 애국심을 느낀 이들은 1818년부터, 1월 26일을 ‘식민지 건국 기념일’로 축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호주의 날은 백인 식민화의 시작이기도 하기에 ‘침략의 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제 1월 26일은 한쪽에서는 축하 기념행사가, 다른 한쪽에서는 시위가 벌어집니다.

2022년 5월 총선에서 집권한 노동당 정부는휴무일로 정한 지난 정부의 결정을 뒤집었습니다. 이제 공무원들은 이날 자율적으로 근무하거나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중 노선을 이끌던 자유당정부와 달리 노동당의 집권 후 호주와 중국관계도 변화가 보입니다. 중국은 호주 제1의 무역상대국으로, 중국의 호주산 철광석·천연가스·금 수입액은 약 137조원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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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기자클럽 송년 행사

IT기자클럽 송년 행사를 12월 26일 오후 6시부터 통의동 IT기자클럽 사무실에서 가졌습니다.

우병현 IT회장을 비롯해 최혁재 부회장, 정지연 부회장, 류현정총무, 백영란 사무국장, 선주성 전 사무국장 등이 참석해 한 해 IT클럽 활동을 돌아보고 2023년 새해 트렌드를 전망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 송년행사에는 김홍진 전KT사장, 황철증 전 과기정통부 국장, 김성호 전 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 등 IT 전문가들도 참석하여 22년 IT흐름을 결산하고 23년 새로운 트렌드를 전망하였습니다.

초빙인사로 손관승 작가, 박철화 문학평론가, 추명희 작가, 한승현 로완 대표가 참석하여 인문학적 대화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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