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어수웅부장의 글을 통해 김연수 작가를 만났다. 김작가는 어부장과 동갑내기로 문학을 소재로 술 잔을 나누는 사이라고 한다. 순수 문학과 거리가 좀 멀지만, 어부장 글을 통해 김작가에 호감을 갖고 리디북스에서 책을 검색해서 한 권을 샀다. 그 책이 ‘뜨거운 피다.
뜨거운 피 초반부를 들으니, 부산의 바닷가 동네를 소재로 뒷골목 주먹 이야기였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계속 들으면서 스토리에 쏙 빠졌다. 필자도 부산에서 자랐기에 소설 속 캐릭터들이 익숙하고 또 생생했다. 스토리를 이리 저리 뒤집으면서 속도감있게 끌어가는 작가의 솜씨도 호감을 줬다.
책의 절반쯤 들었을 때, 다른 호기심이 생겨 인터넷 서점에서 다시 김연수 작가의 책을 검색했다. 김연수 작가의 고향이 김천이라는 점을 알았기에, 어떻게 부산 바닷가 조폭의 세계를 잘 묘사했는지를 궁금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뜨거운 피’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뜨거운 피’라는 제목으로 책을 찾으니, 그 책의 저자는 ‘김언수’였다.
김언수 작의 뜨거운 피를 듣고 나서, 다시 ‘캐비닛설계자를 잇따라 들었다. 모든 인연은 귀를 열고 눈을 뜨야 비로소 맺어지는 모양이다. 11월 27일 아침 신문을 펼치면서 김언수 작가가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는 소식이 눈에 확 들어왔다.
김작가 소설은 재미있다. 한국 문단이 주로 인간의 본성을 파고 드는 단편이 주류를 이루는데, 김작가는 스릴러 장편을 솜씨있게 빚어낸다. 무엇보다 김작가의 상상력이 매력적이다. ‘구암바다’ ‘푸주’ 등 가상의 공간을 무대로 설정하고, 현실 한국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드라마틱 하면서 생동감 넘치는 스토리를 만든다.
내가 읽었던 한국 소설에서 느꼈던 갑갑함을 훌훌 떨어주는 기법이다. 한반도는 삼면이 꽉 막힌 섬이다. 섬이면서도 바다로 외부 세계와 자유롭게 이어지지도 않는다. 섬은 섬이 돼 고립된 섬이다. 현실 국제 정치 질서 속에서, 배타고 중국이나 일본으로 훌쩍 떠날 수도 없다. 북으로 방향을 잡아봤자, 간첩 이미지밖에 묘사하기 어렵다.
한반도의 반쪽 안도 구조가 소설감으로 부적합하다. 한반도를 무대로 삼은 소설에선 ‘레 미제라블’의 하수구가 등장하지 않는다. 위성으로도 추적하기 어려운 아프카니스탄의 산악지대도 없고, 잠수함을 숨길만한 해저동굴 도 없다.
김작가 소설은 한반도의 소설무대로 한계를 독특한 방식으로 돌파했다.
아쉬운 대목. 한국 소설, 특히 폭력을 소재로 한 소설에서 담배와 소주가 너무 자주 등장한다. 캐릭터들이 서로 부딪히는 결정적인 장면은 꼭 담배나 술이 등장한다. 복잡 미묘한 감정을 담배 한대와 소주 한잔으로 표현하면 전달력이 있으니 남발하면 식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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