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CEO 팀 쿡은 3월 25일 미국 쿠퍼티노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3대 구목 모델을 선보였다. 이중 ‘애플TV+’는 넷플릭스를 겨냥한 동영상 구목 모델이었다. ‘애플뉴스+’는 월 9.99달러에 애플이 확보한 모든 잡지와 신문을 볼 수 있는 구독 상품이다.
애플이 구독모델을 2019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운 것은 매월 일정한 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른바 구독 모델(Subscription Model)이 디지털 경제의 핵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구독모델은 처음에 소프트웨어, 음악, 동영상 등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 한정돼 작동했으나, 면도기, 간식,자동차 등 손에 만질 수 있는 상품 영역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흐름속에서 주오라(Zuora) 창업자인 티엔 추오(Tien Tzuo)는 ‘구독과 좋아요의 경제학(원제 Subcribed)’를 2018년 펴내고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섰다. 한국어판은 올해 1월에 출간됐다.
추오는 CRM업체 세일스포스에서 실리콘밸리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시스코웹엑스 개발자 청 조우와 토론하다가 구독모델에 필요한 새로운 IT솔루션이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해 2007년 조우와 함께 주오라를 창업했다.
주오라는 구독 모델 관리와 분석에 필요한 솔루션을 클라우드방식으로 제공하는 사스(SaaS)기업이다. 2018년 기업공개를 한뒤, 기업가치가 20억달러를 넘는 IT 유니콘 기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주오에 따르면 구독경제에서 구독(Subscription)이란 매월 일정한 돈을 지불해서 무형 또는 유형의 상품과 서비스를 반복해서 이용하는 것이다. 구독경제는 크게 무형(Intangible)과 유형(Tangible) 상품으로 구분되는데, 무형 상품에는 소프트웨어와 같은 디지털 도구류와 디지털 콘텐츠류가 대표적인 상품이다.
디지털 도구류에선 어도비, 세일즈포스,메일침프 등 사스 업체들이 구독모델 선구자로 활약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는 다시 비디오, 전자책,음악 등 개별 저작권 중심 콘텐츠와 신문, 잡지 등 매체 브랜드 중심 콘텐츠로 나뉜다.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가 구독모델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유형상품쪽에선 면도기, 기저귀, 간식,화장품 등 반복 구매 상품이 대표적 구독모델이다. 달러쉐이브클럽은 면도기를 스티치픽스는 의류제품을 정기 배달하는 서비스로 주목을 받고 있다. 패스트푸드업체 버거킹은 월 5달러에 매일 커피 한잔을 각 매장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최근에 선보였다.
구독경제의 폭발성이 가장 큰 분야는 온-오프 연계 서비스 분야다. 현대자동차는 월 72만원에 3종의 차량중에서 원하는 차를 번갈아 가면서 이용할 수 있는 구독 상품을 출시해, 구독경제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서프에어(Surf Air)는 월 2000달러에 미국과 캐나다 지역 항공기를 원할 때마다 탈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구독 모델은 전통산업 시대부터 존재했던 비즈니스 모델이다. 신문과 잡지가 대표적인 전통 구독 상품이다. 또 통신사, 자동차 리스회사, 렌탈회사 등 여러 분야에서 월 정액 서비스를 오래전부터 제공하고 있다.
그럼, 디지털 시대 구독모델이 기존 유사 모델과 차이가 무엇인가?
추오는 구독경제의 첫번째 조건으로 고객과의 연결성(Always connected)을 꼽는다. 지구촌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서 고객과 언제 어디서든지 연결되는 환경이 갖춰지면서 고객이 제품 자리를 밀어냈다는 것이다.<그림 참조>
고객과의 연결성은 많은 것을 바꿨다. 특히 주오는 제품을 만들고 나서 고객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욕구를 데이터를 통해 읽고 그 욕구에 맞춰 제품을 만드는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한다.
추오는 두번째 구독경제 특성으로 공급자와 사용자가 모두 이익을 얻는 윈윈(Win-Win) 경제라는 점을 꼽는다. 사용자는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합리적 가격에 사용할 수 있다. 또 스마트폰이나 집으로 바로 배달받아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이용의 편리성에 끌린다.
개인적으로 면도기 정기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데, 만족도가 높다. 면도기 구독전에는 면도날이 떨어질 무렵에 마트가는 것을 미루다가, 낡은 면도기를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면도날 가격도 절반 정도에 불과해 가성비에 만족했다.
공급자는 반복매출과 반복 이익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어 과감하게 새로운 투자를 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매년 80억달러 이상 투자해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은 전세계 수억 명의 정액 구독자가 내는 월 정액의 안정성 덕분이다.
추오는 구독경제의 이런 매력을 투자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구독경제 재무제표와 구독경제지수를 고안했다. 이중 구독경제 제무제표는 전통 부기방식을 버리고 반복매출과 반복 비용을 중심으로 구독기의 성장성과 가치를 보여준다. 추오는 매출이익이 안정적인 기업에 대해 “매년초 은행에 돈(반복매출)을 넣어놓고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비유한다.
추오는 구독경제의 또 다른 특성으로 소매업의 부활을 꼽는다. 인터넷 시대가 열린 이후 야후,구글,페이스북 등 플랫폼업체들이 공짜 콘텐츠와 서비스로 디지털 경제를 지배했다. 이에 따라 소매업계는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막대한 광고비를 지불하면서 플랫폼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소매업체나 브랜드업체도 고객 ID를 모으면 재투자를 할 수 있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다. 아나로그 시대 단골 고객 중심으로 소매점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치와 같다. 실제 내 고객이 누구인지, 그 고객이 어떤 제품을 얼마나 구입할 수 있는지를 측정할 수 있다면 작은 사업도 탄탄하게 경영할 수 있다.
추오는 구독경제를 뒷받침하는 인프라로서 클라우드 컴퓨팅을 꼽는다. 특히 그는 CRM,구독관리 등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월정액으로 빌려 쓸 수 있는 사스 발달이 구독경제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즉, 고객과 연결될 수 있는 아이템을 가진 스타트업이나 IT부서가 없는 전통기업이 IT투자 부담없이 구독모델을 개척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추오는 구독경제론에서 디지털 시대에 쇠락하고 있는 신문 잡지 등 퍼블리싱 업계에게 깊이 있는 조언을 제시한다. 추오는 퍼블리싱 업계가 디지털 시대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큰 고통을 겪어왔으나, 구독모델을 잘 개척하면 반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추오는 특히 “왜 벤처캐피털이 구독모델을 개척하려는 신문사에 돈을 싸들고 가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뉴욕타임스의 구독모델을 아주 높게 평가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뉴욕타임스가 소프트웨어 기업을 표방한다면 기업 가치가 지금보다 2배 더 높을 것이라고 본다.
추오는 뉴욕타임스 구독모델 사례를 모범적이기는 하지만, 특수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퍼블리싱 업계가 각자 고유의 고객을 찾아서 온라인에서 연결되어 고객의 욕구에 즉적으로 부응할 때 구독 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내 언론계는 뉴욕타임스 사례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뉴욕타임스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영어권 매체중 세계 최고 자리에 있기에 구독자를 끌어모을 수 있으며, 한국 언론계에선 불가능한 모델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추오의 구독경제 예찬과 한국 언론계의 고정관념중 어느 것이 맞을까?
부처님 손바닥 위 손오공처럼, 네이버 손바닥에서 서로 도토리 키 재기식 경쟁하는 한국 언론계 현실을 생각하면, 뉴욕타임스의 구독모델 성공은 먼 나라 동화같은 이야기가 맞다. 당장 네이버가 주는 떡고물을 받아 연명하기 바빠서, 독자 생존은 꿈조차 꾸기 어려운 현실이다.
“디즈니 인형을 월마트에서 산다면, 그 고객은 월마트 고객이지, 디즈니의 고객이 아니다. 누군가 스타 워즈를 보기 위해 AMC극장에 가면, 그는 AMC의 고객이지 디즈니의 고객이 아니다.”
추오는 한국 언론계 리더에게 이렇게 묻는 듯하다.“독자가 네이버에서 뉴스를 보면, 그 고객은 네이버 독자다. 당신의 독자 정보가 지국 PC에 있다면 그 독자는 지국의 독자다. 귀사는 진짜 독자를 몇명이나 갖고 있나요?”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다. 한국 언론계의 디지털 환경이 아무리 척박해도 오프라인 독자 1명부터 온라인에 연결하는 일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다. 뉴스 업계에 구독모델은 더이상 옵션이 아니다. 생존해서 저널리즘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구현해야 할 필수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