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정 시티스토리 편집장 mycitystory.korea@gmail.com

– 싱글맘 눈으로 본 겨울비 내리는 타이페이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지난 12일 김포에서 출발해 대만(臺灣) 송산 공항으로 가는 이스트항공 ZE887 편. 기내 안은 승무원이 마련한 깜짝 이벤트에 후끈 달아올랐다. 전 승객이 참가하는 가위바위보 대회다. 웃음꽃이 활짝 피어오른 몇몇 엄마들의 얼굴이 앳되다. ‘싱글맘’이다.

“올해엔 아들 녀석이랑 해외여행 한번 꼭 오려고 했는데, 대만 힐링 여행에 당첨되다니요. 처음 타는 비행기 안에서 아기가 울지도 않으니 정말 신나죠.”

저비용 항공사 이스트항공과 자유여행 전문여행사 파란여행이 싱글맘 10쌍을 위한 특별한 여행을 기획했다. 결혼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용감하게 아이를 낳아 당당하게 기르는 엄마들에겐 그야말로 선물이 되는 대만에서의 2박3일 휴식. 연말연시를 맞아 취지도 좋아 대만관광청도 지원에 나섰다.

71년생부터 89년생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엄마 10명, 돌을 막 지난 아기부터 7살까지 ‘공주’와 ‘왕자’ 10명, 그리고 지원 인력까지 합하면 30명에 달하는 대부대가  ‘힐링(치유)’라는 주제로 대만 타이베이 ‘접수’에 들어 갔다.

◆ 고궁박물관부터 타이페이101, 그리고 야시장

대만은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국 푸젠성과 마주하는 나라다. 중국에서 약 150㎞ 떨어져 있다. 12월과 1월이 한겨울인데, 이때를 제외하고는 고온다습하다. 겨울에도 영상 10도를 웃도는 날이 많다.

서울과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를 2시간 30분 만에 연결하는 김포 ~ 송산 간 정기 노선은 지난 1979년 대만 타오위엔 국제공항이 생기면서 사라졌다가 지난 5월 34년 만에 부활했다.

특별한 여행의 첫 행선지는 대만이 자랑하는 국립고궁박물관. 1948년 가을, 중국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밀린 국민당은 중국 베이징 자금성에서 관리해왔던 진귀한 보물들을 들고 이곳 대만까지 후퇴했다. 타이베이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의 소장 유물수는 60만점이 훌쩍 넘는다. 박물관 안은 중국 관광객들로 그야말로 초만원이다. 4년 전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이 불편했던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관광 문호를 개방한 이후 중국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세계 최다 고궁 유물을 자랑하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도 최고 인기 작품은 ‘비취 배추’다. 청나라 말 통치자 서태후(西太后) 며느리가 예물로 가져왔다는 배추 모양 비취에는 여치 두 마리까지 조각돼 신비함과 정교함이 예사롭지 않다.

관람을 마치고 앞뜰로 나오자 윤빈(가명, 4세)이가 낯선 사람들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윤빈아~!’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이내 엄마 품에 푹 안기고는 활짝 웃었다. 윤빈이 엄마(80년생)는 “기획사에서 아역 배우로 키워보라고 여러 번 연락 왔다. 표정이 매우 살아있다고 한다”고 은근히 아들 자랑을 했다.

‘모전자전(母傳子傳)’일 것이다. 여행 내내 윤빈이 엄마도 표정이 참 밝았다. 빠듯한 살림에 아들을 혼자 키우느라 늘 팍팍한데 여행 내내 분위기를 주도했다.

“호텔 너른 공간에서 욕조물을 받아 목욕하는데 신이 나서 감탄을 연발하는 아이를 보며 정말 흐뭇했어요.”

충렬사(내전과 항일운동 때 전사한 군인과 열사의 영령을 모신 곳)를 거쳐 ‘타이페이101 빌딩’(타이베이 국제금융센터)에 도착했을 때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타이베이도 비가 내리면 꽤 춥다. 엄마들이 아기들을 입힐 두꺼운 옷들을 일제히 꺼냈다.

타이베이101은 이름 그대로 101층의 초고층 빌딩. 101은 100이라는 숫자를 하나 더 능가하는 완벽함을 상징한다. 2010년 두바이에 163층 ‘부르즈할리파’ 빌딩이 완공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자리를 오랫동안 지켰다. 누가 봐도 ‘동양스러운’ 건축물이다. 대나무 위에 꽃잎이 겹겹이 포개진 모양에 부(富)를 상징하는 엽전 모양의 둥근 장식이 인상 깊다.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끈 것은 역시 초고속 엘리베이터. 전망대까지는 꼭대기까지 35초 내에 주파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비행기가 이륙할 때처럼 귀가 아프다.

젊은 엄마들이라 역시 지칠 줄 몰랐다. 저녁을 두둑히 먹고 나자 여독이 풀렸나 보다. 이번엔 대만 야(野)시장을 구경 가자는 엄마들의 여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틀 밤을 묵을 호텔로 향하던 관광버스는 스린 역 쪽으로 길을 틀었다.

대만은 더운 나라라 저녁에 먹고 즐기는 야시장이 발달해 있다. 타이베이 시내에만 10개 야시장이 있는데 ‘스린 야시장(士林夜市)’이 유명하다. 대만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들을 한눈에 구경할 수 있고 젊은이들을 겨냥한 패션 가게부터 게임장까지 한낮처럼 영업하는 곳이 많다.

◆  겨울비 내리는 지우펀…운치 넘치네

대만 여행 둘째 날, 겨울비가 더 세차게 내린다. 서울에서 들고 온 오리털 파카를 둘렀지만 정말 쌀살하다. 돌이켜보면 음습한 날씨가 이날 일정과 굉장히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대만의 어둡고 힘겨운 시절을 담아낸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1989,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를 아는가. 너무 오래된 영화라면, 800만 신(神)들의 향연이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 그것도 아니라면 드라마 제작 세계를 생생히 그려낸 한국 드라마 <온에어>(2008)는?

타이베이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지우펀은 <비정성시>와 <온에어>의 배경으로 등장한 곳이고 <센과 치히로…>제작팀이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영감을 준 곳이다. 추적추적 비오는 날씨가 지우펀의 멋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지우펀은 1920~30년대는 아시아 최대 광석 도시였다고 한다. 산비탈에 구불구불한 골목에 비좁게 들어선 찻집과 소품 가게들은 골드러시 당시 번화한 옛 거리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경사진 낡은 시멘트 계단을 오르면, 바다와 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탁 트인 전망대도 있다.

긴 생머리의 가장 나이 어린 엄마(89년생), 단발머리인 한 살 언니뻘인 또 다른 엄마(8년생) 둘은 비 속에 인파를 뚫고 중국 전통 조끼와 모자를 사고는 그렇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물론 중국 전통 의상들은 이제 막 한살, 두살 된 아기들 것이다.

“엄마들은 아이들 것밖에 눈에 안들어온답니다.”

단발머리 엄마가 황비홍 스타일 모자를 아들한테 씌워주고는 하늘까지 닿을 듯 번쩍 들어 올렸다.

◆  싱글맘에게 필요한 것은…형, 삼촌, 이모

싱글맘에게서 아빠의 빈자리를 본 것은 이날 오후 ‘진용구완(金湧泉)’’이라는 온천장으로 왔을 때다. 지우펀에서 타이베이에서 50분 거리의 항구도시 기륭 근처 예류지질공원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기암괴석을 관람한 후였다. 온천욕은 온종일 떨었던 몸을 녹여주기에 안성맞춤이다. 대만도 꽤 온천으로 유명한데 진용구완은 일본 시골에 온 듯한 예스러움이 묻어나온다. 대만은 일본 식민지 지배를 51년간(1895~1945)이나 받아 곳곳에 일본풍이 스며 있다.

“노~ 노!”

온천장에 들어서려는 엄마와 아들을 관리인이 강력히 저지한다. 우리나라는 어린 남자 아이를 여탕(女湯)에 데려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데, 대만에서는 엄격히 금지하는 행위 중 하나란다. 노천에서 수영복을 입고 온천욕을 할 때는 괜찮았는데 실내탕에 들어가려고 하니, 엄마도 없이 어린 아들을 혼자 들여보낼 수도 없고 곤란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엔 이스트항공과 파란여행에서 파견된 남자 스탭들이 즉석에서 ‘삼촌’이 돼 줬다. 삼촌들이 실내탕에서 아이들과 잘 놀아줬나 보다. 한바탕 목욕을 한 뒤에는 남자 아이들이 유난히 삼촌들을 잘 따랐다.

나중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된 고참 싱글맘이 말한다.

“그래서 싱글맘을 지원하는 단체에서는 ‘사회적 형과 삼촌을 만들자’는 취지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합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보통 결혼이라는 것이 ‘양가’라는 시스템이 있어서 육아에 많은 도움을 받는다. 싱글맘은 남편 지원, 시댁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고 대로는 친정에서도 딸의 선택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형과 삼촌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다면 그야말로 든든할 것이다. 비난 목욕탕 가는 일뿐일까. 부부가 공동으로 해도 쉽지 않은 가사와 육아 문제가 얼마나 많겠는가.

엄마와 딸, 엄마와 아들의 잊지 못할 여행은 그렇게 엄마들이 그동안 감내한 수많은 사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우여곡절 속에 종반부로 치닫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3일째날.
싱금맘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모처럼 날씨가 화창하게 개였다. 대만 하늘도 맑고 눈부셨다. 돌이 갓 지난 지훈(가명)이는 2박 3일 그 짧은 시간에도 훌쩍 큰 것 같았다. 그리고 싱글맘 엄마, 아이들은 어느새 이모와 사촌들이 돼 있었다.

※ 한가지 더 알면 좋은 것

현재 미혼모 중 직접 아이를 키우는 양육모와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내는 입양모 비율이 3대 7정도로 입양모가 월등히 많다. 보통 계획 임신이 아니기 때문에 임신 상태에서 입양 동의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 8월에는 입양숙려제를 만들었다. 성급히 입양을 결정해야 하는 관행을 줄이기 위해 아기가 태어난 지 1주일이 지나야 친부모가 입양을 동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양육모가 되는 것은 용감한 일이 아니예요. 아이를 낳고 한 달만 같이 지내면, 대부분 엄마는 양육모로서의 삶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보통 아이를 낳기도 전에 입양을 동의하고 얼굴도 못 보고 애들과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싱글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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