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하나 나 하나, 함께 쌓는 이태원 레고트리

전효진 조선비즈 인턴기자 mycitystory.korea@gmail.com

이태원 가로수에 레고로 만든 집이 걸렸다.

오는 7일부터 진행되는 이태원 레고트리 하우스(Lego-Tree House) 전시를 위해 녹사평 역에서 해밀턴 호텔 사이의 가로수 20여 개에 레고블럭으로 만든 집이 설치됐다. 이번 프로젝트는 공공미술의 일환으로 백해영 갤러리에서 주관하며 레고를 다룰 수 있는 시민들이면 누구나 작품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

조각가 제이 문(Jaye Moon, 한국명 문재원)씨는 “많은 사람들이 작품 제작에 참여해 대중과 소통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사람들이 어느 곳에서든지 레고트리를 본다면 제이 문을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의 첫 작품은 녹사평 역 횡단보도 근처의 가로수에 설치됐다. 문 씨가 레고 블럭이 가득한 가방을 바닥에 펼쳐놓자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었다.

HykDhuB_E9R2ZXaRHwJeSWoYE7YwHfJYsU7MUbGNxsuCfK11stgOj4B3cbGZ7FZgyka60LxZ0PgW7CllRxQQi7C17GONJ0RJYl4JVezSVIE-U0FYoYs
▲ 레고트리 제작에 참여하는 시민들

아버지와 레고를 쌓은 나라 루이스(7.미국) 양은 “나무 모양에 따라 집 모양도 달라져 재미있다”며 “손이 시려웠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쌓았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한국에 놀러온 에릭 (11.미국) 군은 “집에도 레고가 다섯 박스가 있을 정도로 레고를 좋아한다”며 “투바이투(2×2) 블럭 다섯개만 달라”면서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레고트리는 어른들의 발걸음도 붙잡았다. 대전에 사는 이태훈(32)씨는 “어렸을 때 레고를 가지고 많이 놀았다”며 “장난감이 작품으로 바뀌니 친근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박순자(65)씨는 “용돈을 레고 사는데 모조리 썼던 아들이 생각난다”며 블럭을 얹었다.

z3aLS3aAJ4o3ItckymxUOa6JuXX6fKL5mtuuXLGM0mZEgb0Mp0ewR_oVCIhNjjb4T7o7GRLuU1btiX3KICNpEqG9jAtlXHcTF1zsA-x-ddRYrWFJ16I
▲ 문재원 작가와 함께 레고트리 하우스를 만드는 시민들

레고트리에는 항상 문이 달려있다. 문 작가는 “문은 열고 닫는다는 면에서 환영과 거절을 의미한다”며 “소통하는 장소로서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레고하우스가 나무에 설치되는 순간,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난다. 시민의 참여로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레고 벽이 두꺼워 지기도 하고 색도 다양해진다. 문 씨는 “누군가 레고 블럭을 떼거나 이어 붙여 모양이 바뀌어도 변화한 모습 자체가 대중과 소통했다는 의미”라며 “나는 문을 닫았는데 누군가 열어놓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집의 모양이 바뀌어 있는 모습을 보면 즐겁다”고 덧붙였다.

◆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던 조각가 문재원

PmOy98-w_M7_3nyTcpG-loKMSIlHOJDJsOtUjMp_l1DvxqeqI2cET3ixl5k78dLV3Uo38N7lx-vjMApzfzSc9sVjqG9gItfsMFKlHnfdZ1fPJ9EElFM

“공공 미술은 시민들의 참여로 작품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 할 수 없어요. 그 모습이 우리 인생사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문 작가는 1990년 뉴욕으로 건너가 조각가로 활동했다. 당시 공공 미술계는 보수 세력에 대해 반항하는 어두운 작품이 주를 이뤘다. 90년대 뉴욕 미술계에서 문 씨는 유명세를 타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대세에 휩쓸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7년 동안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다. 결국 문 씨는 레고 블럭을 사용한 밝고 친근한 작품으로 뉴욕 공공미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레고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조립할 수 있으며, 사람들에게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불러내는 소재다. 이 같은 특징 때문에 레고는 공공미술품 소재로 제격이었다. 문 씨는 “누구에게나 차별없는 레고를 좋아한다”며 “쌓을수록 견고해지는 매력이 있어 조각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작가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작품으로 오롯이 평가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문 씨는 공공미술을 하며 이에 대한 생각도 바꿨다. “시민과 함께하는 공공미술에는 내가 조절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며 “나 자신만의 작품이 아닌 시민들과 소통한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다”고 문 작가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