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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생활밀착 크리에이터, 모호연

1982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법학을 전공하고 방송국 시사프로그램 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줄곧 프리랜서의 길을 걸어왔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2da)와 함께 일상적인 예술 창작을 위한 ‘소사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뉴스레터 ‘일간 매일마감’ 제작에 참여하여 에세이와 시, 동화 등 다양한 글을 연재했다.

평소 가까운 물건의 생애와 쓸모에 관심이 많고 일상을 돌보는 살림으로서의 만들기에 진심인 편. 장래에는 공구를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을 만들어 이웃들과 교류하며 수선 문화를 확대하는 거창한 꿈을 꾸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반려물건』,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공저)』가 있다

저서 소개_반려 공구

공구가 알려준

이토록 자유롭고 흥미진진한 세계!

2022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김하나, 김혼비, 이다 작가 강력 추천!

도전과 시작, 두려움과 용기에 관한

반짝반짝 빛나는 공구생활 에세이

집 안 어딘가에 드라이버 하나쯤 있을 것이다.

드라이버나 망치, 펜치는 제법 흔한 물건이지만 ‘공구’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어쩐지 내가 쓸 법한 도구는 아닌 것 같다.

하물며 전동 공구라면 더더욱 낯설고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공구를 가까이 두고 마침내 ‘반려’라는 지위를 부여할 만큼 의지하면서 삶이 달라진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에세이스트 모호연 작가의 『반려공구』는 공구와 함께 새로운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자신의 힘으로 일상을 단단하게 돌보는 사람의 이야기다.  

모호연 작가는 스스로를 ‘일상의 만들기에 관심이 많은 탐구생활러’로 일컫는다.

그는 작게는 액세서리, 냉장고 자석, 모니터 받침대부터 책장, 회전하는 옷장, 주방 카운터, 벙커 침대 등 덩치 큰 가구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것은 뚝딱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전등갓이 깨지면 글루건으로 이어 붙이며 은하수를 수놓기도 할 정도로 삶의 곳곳을 되살릴 줄 안다.

처음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20대 중반까지 스스로를 ‘적응의 화신’이라 일컬을 만큼, 고장 난 수도꼭지며 삐걱거리는 식탁, 커튼 봉을 달지 못해 대충 가려놓은 현수막 등 일상의 불편을 그저 견디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어쩌다 전동 드라이버가 손에 들어왔고, 처음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모니터 받침대를 만들고 커튼 봉을 달면서 이 모든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을,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는 전보다 조금 더 용감해졌다. 완벽을 꿈꾸며 주저하던 시간을 멈추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단 해보는 사람,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 공구들이 있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21가지 공구는 모두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때로는 웃픈 실패를 목격하며, 일상을 함께 돌봐온 든든한 동료들이다.

망치, 펜치, 드라이버, 톱, 전동 드릴 같은 익숙한 공구부터 타카, 실리콘건, 샌딩기, 시계 공구처럼 한 번쯤 다뤄보고 싶어지는 공구들까지 다양한 공구들이 등장한다.

손때 묻은 공구들을 소개하는 저자의 글은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듯 정겹고 다정해서, 차가운 금속성의 소재가 무색하게도 따스한 온기로 가득하다.

특히 공구의 부위별 명칭, 이름의 유래, 정확한 사용법 등 공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특유의 유머와 함께 알기 쉽게 설명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공구가 친밀하게 느껴진다.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면서 얻은 자유와 해방감을 목격하는 순간, 김혼비 작가의 추천사처럼 “당장 공구를 손에 쥐어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저자에게 도전의 용기와 시작의 설렘을 안겨주었던 ‘반려공구’가 이제 당신을 반짝반짝 빛나는 생활로 초대한다.

완벽한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마음을 키워준,

인생의 소중한 반려가 된 공구들

『반려공구』는 공구의 종류와 쓰임새를 정확히 알 수 있어 유익하지만, 이 책이 더욱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공구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이다.

이를테면, ‘글루건’은 접착력이 약하기 때문에 어디에든 붙여볼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강점이라며, 저자는 글루건으로부터 대상과 목표를 가리지 않고 일단 해보는 태도를 배운다.

늘어난 줄자처럼 허술한 측정 공구들은 정확한 재단을 해야 할 땐 불리하지만, ‘대충 하자’고 타이르는 느슨한 자아가 오히려 결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살림으로서의 만들기를 지속할 수 있는 동력임을 깨닫기도 한다.

“나의 성취감은 대부분 완성보다 과정에서 온다.

완벽함을 이상으로 알던 시절에는 오히려 완벽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시도조차 못한 일이 많았다. 그러나 어설프게나마 시도한 일은 그저 하는 것만으로 나를 발전시켰다.

그 후로 나는 할 마음이 드는 것이라면 아무거나 해보기로 했다.” _본문 중에서

스스로를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고백한 모호연 작가는 공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무슨 일이든 ‘기꺼이 도전하는 여력’이 생겼다고 말한다.

수동 샌딩기로 목재를 밀 때도 몸이 가진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만족하는 법을 알고, 최선을 다했다면 ‘이 정도면 됐다’고 스스럼없이 인정하고 물러날 줄도 안다.

일상을 지속하는 힘은 완벽한 결과가 아닌 과정을 즐기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구가 알려준

이토록 자유롭고 흥미진진한 세계!

1부 ‘시작합니다, 공구생활’은 전동 드라이버, 렌치, 톱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공구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친숙한 공구들과 함께, 공구를 사용하기 전과 후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담담하게 풀어놓으며 독자를 매력적인 공구의 세계로 이끈다.

나무, 콘크리트, 석고보드 등 소재에 따라 못 박기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나무에 구멍을 뚫지 않고 나사를 박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공구 사용의 정석과 기본 원칙을 실수와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과 함께 전한다.

2부 ‘도구와 공구의 경계에서’는 가위, 커터, 접착제, 재봉틀, 왼손과 오른손처럼 도구와 공구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공구들을 소개한다.

공구의 사명이 ‘만들고 수리하는’ 것이라면, 이에 부합하는 도구는 얼마든지 공구가 될 수 있다. 가로폭이 정확히 1.5cm인 저자의 왼손 엄지손톱이 자가 없을 때 측정 공구로 활약하는 순간처럼 말이다.

저자는 좋은 공구란 대단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공구가 아닌 어떤 일이든 시도해볼 만하다는 용기를 주는 공구라고 말한다.

의욕을 자극하는 공구, 생활공간을 돌보는 데 기여하는 공구, 새로운 영역으로 생각의 지평을 뻗어나가게 하는 공구들의 이야기가 『반려공구』에 담겨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공구란 어떤 일이든 시도해볼 만하다는 용기를 주는 공구다.

대단한 공구가 있으면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어떤 일을 해내고자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공구를 든 사람이다. 사람이 의욕을 가지고 시도하지 않으면 공구는 혼자서 아무 일도 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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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 ⑫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6

물리공간에 병행하여 존재하는 무수한 디지털 공간은 거의 대부분 열린 공간이다. 많은 공간이 가입과 로그인을 공간 유영(spacewalking)의 농도에 차이를 두는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닫힌 공간으로 작동되는 디지털 공간은 국가기밀을 다룬다는 명분으로, 또는 CUG(Closed User Group)에 의하여 폐쇄적 관계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밝고 건전한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있지 못하다.

열린 공간으로서의 디지털 공간에 가입과 로그인이라는 절차를 도입하는 것은 클라우드기반시대에 구독경제라는 새로운 경제유형을 낳으면서 디지털 공간의 모습에 변형을 가져왔지만 대세로 굳어져가고 있고 강력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소위 개인맞춤형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절차로도 적용되고 있다.

디지털 공간의 유영(spacewalking)을 즐기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고 유영을 멈추는 사람들이 많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친밀하고 호기심 가득하게 유영을 한다면 디지털 공간의 구조에 조금 더 익숙하게 되고 좀 더 고쳐야 하는 것들도 찾게 되고 더 나은 공간을 만들 수 있는 혜안도 얻게 된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이러한 깊고 넓은 유영의 경험과 사색의 정도에 달려 있지 않은가?

이번 편에서는 어떤 이슈를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6으로 거론할 것인가? 특히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를 다루는 그 간의 글의 내용은 (1) 데이터론, (2) 디지털 공간 핵심 구성요소, (3) 디지털 공간 인증체계 그리고 (4) 설계 고려 사항(considerations), 그리고 (5)의 ‘오토노미 담론’(autonomy discourse)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번 글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의 여섯번째 글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고민끝에 traffic으로 쟁했다. 매우 간결하게 작성했다. DNA의 역사와 브라우저의 역사와 검색창의 역사는 아예 거론하지도 않았다. 나의 연재글의 전체 글에서는 12번째의 글이다. 말미에 목록을 붙여놓았다.

디지털 공간의 구조

디지털 공간은 그 공간에 접속되는 온갖 종류의 ⓵ 단말디바이스와 그 단말디바이스가 찾아가는 곳 즉 호스트 컴퓨터와 같은 또는 클라우드 플랫폼과 같은 ⓶ 데이터저장소 또는 콘텐츠저장소 그리고 그 찾아가고 가져오는 과정을 매개하는 수많은 라우터와 같은 ⓷ 트래픽 처리 장치 등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디지털 공간 구조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이다.

이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condition)은 연결(connected condition)이다. 또는 언제나 연결 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이들 3가지를 차례차례 다루기로 한다.

(1) 단말디바이스

단말디바이스는 스마트폰, 패드, 노트북, PC, TV, Monotor, IoT equipment, 다양한 CPE(customer premise equipment), Sensors, Camera, Watch, 의료진단측정기, 제임스웹 망원경, LiDAR, AR/VR/MR equipment, Glass, 골프측정기, Refrigerator, 세탁기, 세척기, 지진측정기, 산불감지기, 해양측정기, 수많은 디지털 솔루션이나 SW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만물지능통신의 시대에 IoT(Internet of Things)에는 인간도 thing의 하나라고 이미 내가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앞으로도 무수한 단말디바이스가 출현할 것이다, 이러한 단말디바이스의 새로운 발명과 출현을 살펴보더라도 디지털 공간이 어떻게 진화해 나갈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도대체 무슨 데이터를 사람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세계로부터, 우주로부터 디지털 공간은 얻으려고 하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어쩌면 이 지구의 진화의 방향까지도 미리 감을 잡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단말디바이스를 이렇게 설명하는 이유를 정리하자. 단말디바이스는 디지털 공간의 접속을 담당하는 장치로서 언제나 데이터의 I/O의 최종 위치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때로는 늘 연결 가능한 상태에 있다. 데이터의 생산의 기지이고 처리된 데이터의 출력의 기지이다.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는 곳, 즉 prosumer이라는 신조어의 산실이 바로 단말디바이스이다. 그 데이터의 유통의 과정은 바로 트래픽(traffic)이다. 따져보면 데이터는 정적(static) 개념이고 트래픽은 동적(dynamic) 개념이다. 비즈니스는 데이터로 준비하고 트래픽으로 수행되는 것이다. 트래픽의 지배가 글로벌 디지털 비즈니스의 핵심이 된다는 의미이다.

(2) 데이터/콘텐츠 저장소

데이터저장소 또는 콘텐츠저장소라는 것은 복잡한 기술적 구조의 설명을 다 접고 쉽고 간결하게 말한다면 크게 보아 2가지로 존재한다. 웹기반 저장소와 앱기반 저장소이다.

웹기반 저장소는 웹사이트를 말한다. 앱기반 저장소는 웹기반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변이(variation)을 보여준다. 웹사이트는 20억개 정도이고 앱은 900만개 정도이다. 바로 이것이 현재 물리 공간에 병행하여 존재하는 디지털 공간의 숫자다. 물론 웹과 앱이 동일한 데이터/콘텐츠 저장소를 두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클라우드에 두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웹은 반드시 DNS/IP Address를 채택해야 하고, 앱은 반드시 DNS를 채택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웹과 앱의 작동 기반은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 차이는 디지털 공간 생태계 또는 디지털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는 다양한 관점과 전략을 낳는다.

웹사이트는 20억개가 열린 공간에서 존재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앱공간은 그렇지가 못하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앱마켓은 구글 플레이와 애플의 앱스토어라고 우리는 알고 있지만, 최근의 글로벌 앱마켓은 그런 양상을 전환시키고 있다. 새로운 앱마켓은 중국이 주도하고 있고, 새로운 앱의 숫자는 중국계 3개의 앱마켓이 각각 1, 2,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구글은 4위, 애플은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요? 웹사이트는 무수하고 증가하여 왔지만, 앱마켓은 구글과 애플 등의 앱마켓 소유주의 정책에 의하여 등록되고 출시가 되기때문에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즉 앱공간의 크기는 구글과 애플 그리고 중국계 대형 앱마켓 3개에 의하여 사실상 지배되고 있다.

그래서 앱은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특화된 애플리케이션이기 때문에 DNS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기술적 방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디지털 공간의 존재 방식에 변이를 가져온 것이다. 물론 구글은 여러가지 목적에 의하여 2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여 ICANN으로부터 .app이라는 gTDL를 사들여 앱마켓을 DNS라는 ID체계를 적용하려고 하고 있고, 애플은 앱마켓에 DNS 대신에 Bundle ID라는 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구글은 독자적인 단말디바이스가 없는데도 구글 OS, 구글 Browser, 구글 Cloud Platform으로 강력한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고, 애플은 무엇보다도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 워치, 애플 노트북 등 강력한 성능의 단말디바이스를 토대로 애플 iOS, 애플 사파리, 애플 아이튠즈 등 그리고 독자 설계한 강력한 CPU(AP)으로 난공불락의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이 지점에서 세계적인 제품을 만드는 삼성과 엘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늘 자문에 자문을 거듭하여야 한다. 단말디바이스를 쥐고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강력한 디지털 공간, 디지털 산업의 핵심 경쟁력인데, 이를 살리지 못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만든 재화와 서비스에 핵심적 요소를 외산으로 채운다는 것은 스스로 강력한 경쟁력 요소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3) 트래픽

이제는 트래픽을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단말디바이스, 데이터/콘텐츠 저장소에 이어 3번째의 주제이다. 즉 디지털 공간의 핵심 구성요소에 관한 3번째 설명이다.

트래픽 주제 1 – DNS

기본적으로 인터넷 표준으로서의 TCP/IP는 데이터를 패킷화하여 트래픽으로 전환하는 것으로서 Head에 실린 주소 정보를 따라 하염없이 흐르고 흘러 destination에 도달하게 되어 있다. 물론 단말디바이스를 통하여 떠났다가 단말디바이스로 흘러온다. 그 과정에 트래픽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트래픽 처리에 종사하는 아카마이라거나 클라우드패어라거나 수많은 인터넷기술회사들이 BM을 나름 만들어 서비스를 하고 있고, 또한 패킷데이터의 안정적 전송을 보장하는 security 회사들도 다양한 기술을 동원하여 BM을 만들어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응용기술 회사들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트래픽은 ICANN의 DNS/IP Address 기반에 의하여 이뤄진다. 미국에 있는 Root DNS Server와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13개의 복제 서버를 통하여 DNS query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다. 가장 기초적인 트래픽을 ICANN에 의하여 조절되고 있고 없어서는 안될 가능이다. 이 기능이 없다면 디지털 공간은 와해될 것이다.

다시말하면 1969년 인터넷이 처음 출현했을 때 등장했던 많은 Alternative DNS와 같은 것들이 과열 경쟁하면서 아마도 인터넷 공간 또는 디지털 공간을 개판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블록체인공간이 탈중앙집권화를 내세우더라도 루나/테라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알고리즘에 의한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것은 즉 중앙통제가 전혀 없는 구조에서 어떤 가치를 보장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과 같은 기축통화국이 누리는 엄청난 세뇨리지 효과도 디지털 공간의 구조, 블록체인공간의 구조에 커다란 통찰을 제공하는 살아 있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또 한편으로 아마도 물리 공간에서 UN이라는 참 어설프고 약한 글로벌 정치조직이 없었다면 지구는 아마도 지금 더욱 더 개판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마 지구라는 물리 공간에서 중앙은행이라는 제도는 원래 생소했는데, Economist 창업자이자 편집자이었던 자가 ≪롬바르드 스트리트≫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한국의 체제에서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매우 강력하게 주장하여 영국의 경우 영란은행이 서서히 중앙은행으로 지위를 전환시켜 나가 경제와 금융의 위기시에 조타관리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파산과 와해의 경제금융체제를 유지하는 기능을 제도화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지구 정치는 개판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젊은 시절 경제학자였던 부친의 서가에서 롬바르트 거리라는 영문 원본을 읽었다는데 앞으로의 정책에 잘 반영되기를 바란다.

ICANN은 바로 이러한 UN 또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하는 참으로 어설픈 그러나 없어서는 안될 기능인 것이다. 특히 금융구조는 민간조직의 성격을 강하게 풍기고 있고 정치가 개입되지 않는 운영이 최적의 방법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ICANN도 비슷한 구조로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나도 과거에 ICANN 정례회의를 두어번 정도 참석한 적이 있다.

트래픽 주제 2 – 브라우저, 검색창, SNS입력창 그리고 새로운 방법

(1) 브라우저 전쟁

ICANN의 DNS/IP Address이라는 기술체계를 수용하여 운영되는 것이 바로 Browser이다. 브라우저 창은 바로 기본적으로 DNA/IP Address를 입력하는 창이다. 다른 다양한 기능과 확장 기능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에 즈음하여 블록체인 관련 기능 확장 등에 관하여는 독자들은 각자 알아서 공부하기 바란다.

바로 이 브라우즈 입력창이 디지털 공간의 트래픽을 어마무시한 힘으로 통제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트래픽이 돈이다(Traffic is Money)라고 하는 이야기는 바로 브라우즈 창에서 시작된다.

과거 인터넷 출현 초기에 등장하였다가 초라하게 사라진 Alternative DNS처럼, 브라우즈 전쟁에서도 입력창을 두고 전쟁이 벌어졌었다. 브라우즈 전쟁은 플랫폼 전쟁처럼 다른 브라우즈와의 전쟁도 매우 치열한 전쟁이지만 동일 브라우즈 안에서 입력창의 장악을 두고 벌어지는 전쟁도 엄청나게 치열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영역이었다. 그렇지만 브라우저 입력창은 convert traffic into money를 위한 전쟁이었기 때문에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ㅡㅡ 웹이 등장하고나서는 디지털 공간의 트래픽을 지배하는 도구는 브라우저가 되었다.

ㅡㅡ 브라우즈의 입력창은 당초는 주소(DNS/IP Address) 입력창이었는데, 다양한 확장 기능을 도하면서 엄청난 트래픽을 독점하거나 그 트래픽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거의 대부분 상업적 가치를 낳게 되었다.

ㅡㅡ 브라우즈 입력창을 장악하려는 싸움은 넷피아라는 회사에 의해 변형된 Alternative DNS인 자국어도메인네임체계에 의해 강력하게 전개되었지만, 전쟁도구인 브라우저 자체를 가지지 못한 상황은 절대적으로 싸움을 자기 주도로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 자국어도메인네임 체계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트래픽을 뺏기는 브라우저 소유기업으로부터 쫒겨날 수 밖에 없었다.

ㅡ 이런 전쟁은 누가 트래픽을 지배하는가?라는 쟁투를 말하는 것이다.

(2) 검색창 전쟁

그렇지만 브라우저를 가진 인터넷기업들은 브라우저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기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검색포털, 검색엔진으로 또한 생태계를 강화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는 브라우저에 도전하면서 브라우저가 독점하는 트래픽 지배능력을 나눠갖기 위한 도전을 바로 검색창에서 실현하려는 전쟁이다.

구글 검색과 네이버 검색이 디지털 공간의 트래픽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고, 사실 네이버의 검색 장악력은 구글에 비하여 너무도 약하다는 것도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구글이 브라우저로 벌어들이는 수입과 검색창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각각 얼마일까? 이렇게 단순히 질문을 할 수도 있지만 디지털 공간의 디지털 비즈니스와 디지털 전략은 이렇게 단순무식하게 질문할 수가 없다. 애플은 애플대로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를 견고한 생태계에 통합적으로 묶어 왕국을 구축하는 것처럼, 즉 구글의 디지털 공간을 엮어 나가는 것처럼, 애플도 그런 생태계를 구글보다도 훨씬 강력하게 엮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누누이 말한 CDO(Chief Data/Digital)의 역할dms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바로 CEO보다도 더 강력한 권한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여왕개미에 충성하는 일개미일뿐이고, 제갈량에게 화살을 갖다바치는 어리석은 병졸일 뿐이다. 그 뿐이랴? 디지털 시대의 지속가능한 기업으로서 유지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검색창 전쟁도 아까 말한 넷피아라는 회사를 예를들면 키워드검색이라는 신종 서비스를 출시하였지만 이 또한 검색창이라는 강력한 도구룰 소유한 구글이나 네이버에게 애초부터 싸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들이 그냥 트래픽을 뺏기는 일을 보아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방금까지의 브라우저 전쟁과 검색 전쟁을 살펴보면 파레토 법칙에 대응하여 롱테일 법칙을 들먹인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참 빈약한 주장이 아닌가? 롱테일 법칙(Long-tail Theory)이라는 현상이 관찰되는 현장을 살펴 보면 이미 브라우저와 검색엔진에 장악된 인터넷에서 롱테일 법칙은 막연한 희망을 갖도록 오도하는 질 낮은 법칙이 아니던가?

(3) 새로운 트래픽 전쟁 방법 – SNS입력창과 다른 새로운 방법

다시 살펴보자. 인터넷 공간 즉 디지털 공간은 이제 브라우저와 검색창과 앱마켓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어 있다. 앞으로 이 시장을 흔들 수 있는 묘수는 있는가? 아마 트래픽의 분점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디지털 공간에서 모든 글로벌 상업적 비즈니스(global commercial business)의 전쟁은 궁극적으로 attention 즉 traffic의 지배능력에 달려 있다.

기존의 ‘브라우저’ 시장과 ‘검색창’ 시장을 흔들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은 아마도 가장 강력한 것은 SNS의 기능과 역할의 확장에서 찾을 수 있다. ‘SNS 입력창’이 강력한 검색창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확장이 되고 있고 이것이 편의성과 유용성을 제공하면서 UI/UX를 제대로 만들면 traffic의 상당량을 분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는 최근의 카카오톡의 SNS 입력창에서의 변화를 느끼며 이해하면 감이 올 것이다. 이것은 카카오톡이 그 입력창에서 무슨 실험을 광범위하게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면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정말 강력한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 정말 다음 포털을 제대로 활용하는 강력한 생태계 구축이 다시 설계되어 집행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브라우저 전쟁, 검색창 전쟁 그리고 SNS 입력창 전쟁만이 트래픽을 지배하려는 전쟁이 아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전쟁은 어디에서 왜 가능한가? 그것은 바로 AI에 의하여 주도될 수 있다. AI에 의하여 그려지는 디지털 공간은 기존의 인터넷 규제제도 자체를 통째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가고 있다. 누누이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개인정보보호 정책과 제도의 틀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기존의 브라우즈와 검색창과 SNS입력창의 고객접점을 다른 방법으로 혁신할 수 있다. AI를 기존의 디지털 전략, 디지털 비즈니스의 개념의 맥락을 유지한 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현재의 상태를 극복하면 AI는 디지털 비즈니스의 방법을 뒤흔들 수 있다. 내가 기대하는 바는 여기에 있고, 이는 후발 주자인 글로벌 디지털 비즈니스를 주도하는 방법을 얻는 방법이 된다. 그것은 AI다. 그 단서를 오토메이션과 오토노미에서 얻기를 기대한다. 내가 제시하는 아이디어는 기존의 11편의 글에서도 수많은 힌트로 녹아들어 있다.

그렇다. 디지털 공간은 고객의 접점을 장악하는 아이디어 하나로 그 공간의 모습은 새롭게 설계 가능하다. 나는 그러한 혁신 기업이 기존의 기업이 아니라 새로운 벤처기업에서 탄생되기를 바란다.

삼성은 스마트폰으로 삼성인터넷이라는 브라우저의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통신3사는 그 강력한 인프라를 지배하면서도 디지털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을 성취하지 못하는가? 차라리 기존의 벤처들이 활개치고 글로벌로 날아가게 그들의 모든 자산을 전면적으로 개방하는 전략으로 가져가야 하지 않겠나? 둘 다 안되는 상황을 만드는 통신3사에 언제 혁신의 기회가 찾아올 것인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궁극적인 디지털 공간의 지배력은 traffic의 지배인데, traffic을 고기잡듯 몰아 잡을 수 있는 디지털 공간을 만드는 일은 앞의 11편에 걸친 나의 글에서도 상당히 많은 제안을 하였기에 여기서 재론할 수는 없지만 가장 기본적인 제안은 바로 디지털 공간 설계에 있어서의 Back to the Basic/Fundamental을 지키라는 것이다.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는 디지털 공간을 병존시키라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고객의 데이터를 착취하려고만 말고 고객에게 그 데이터로 무엇을 대신 돌려드릴 수 있을 것인가를 먼저 설계하라고 하였던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제11편의 글에서도 말했듯이 데이터를 담론의 주제로 삼은 것처럼, 오토메이션(automation)의 재료로 사용되고, 오토노미(autonomy)로 재탄생된다. 데이터론 또는 데이터학이 무엇을 말하는지 전문가들은 어찌 떠드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일종의 학문이라면, 그 학문의 내용을 채우는 수많은 인터넷 기술과 데이터 기술도 끊임없이 발전한다. 데이터는 진화하면 오토메이션과 오토노미가 된다는, 데이터의 생산이 오토메이션과 오토노미의 공급에 귀결되는 일련의 과정에는 셀수 없을 정도로 많고, 다채롭고, 다양한 디지털 공간이 개재된다. 그 과정에는 데이터의 이동과 유통이 있다.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데이터의 flow으로서 트래픽이 보다 중요하다. 데이터는 정적인 요소이지만, 트래픽은 동적인 요소이다. 디지털 공간을 살찌우고 살아 있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의 목표는 디지털 산업 경쟁력의 강화이고, 이를 위해 디지털 공간에서의 트래픽론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생각했기에 이번 제12편은 이렇게 정리하며 마친다.

(2022년 8월 11일 수요일)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newdhjj@gmail.com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이번 글 제12편은 8월 9일 화요일 게재하려 했으나 더위와 폭우와 여러가지 일들이 겹쳐 늦어졌습니다.

나의 연재 글은 Google Docs로 작성 중에 있고, 연재글의 각 편의 순서를 표시하기 위해 이라는 삽입기호를 사용하고 있는데, 문서편집기능에서 그 번호가 20번까지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길어봐야 아마 20편으로 마무리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나의 연재글의 목록을 보며 전체 골격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디지털 공간 인식체계의 재검토 https://wp.me/p2zVkV-kj (0525 수)

디지털 산업과 잠재성장률 https://wp.me/p2zVkV-l6 (0531 화)

디지털 공간 제원리와 신뢰 https://wp.me/p2zVkV-lu (0607 화)

디지털 공간론 3가지 원리 1 https://wp.me/p2zVkV-lx (0613 월)

디지털 공간론 4가지 관점 https://wp.me/p2zVkV-lN (0621 화)

디지털 공간론 3가지 원리 2 https://wp.me/p2zVkV-mk (0628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1 https://wp.me/p2zVkV-mq (0705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2 https://wp.me/p2zVkV-mv (0712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3 https://wp.me/p2zVkV-my (0719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4 https://wp.me/p2zVkV-mC (0726 화)

⑪-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5 https://wp.me/p2zVkV-mF(0802 화)

연락처는 newdhjj@gmail.com

Posted in히스토리텔러

[히스토리텔러]김대건,전형필,김수환 전기작가, 이충렬

이충렬은 한국 전기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전기 작가이다. 한국의 문화 및 사회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의 삶을 되살리는 데 전념하고 있다. 치밀한 자료 조사와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인물의 궤적과 시대정신을 담아내 독보적인 전기 작가의 길을 개척했다.

1994년 《실천문학》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아, 김수환 추기경》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천년의 화가 김홍도》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등이 있다. 전기를 통해 한국 문화예술계 대표 인물의 생애를 발굴·복원한 공로로 제3회 혜곡최순우상을 수상했다.

저서소개_김대건, 조선의 첫 사제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

탄생 200주년, 한국인 최초의 가톨릭 사제

김대건 신부의 삶과 길을 충실히 복원한 첫 정본 전기

김대건 신부 첫 정본定本 전기인 이 책은 2021년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교회 기념 희년禧年 선포,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 선정 등을 기리기 위해 출간되었다.

1846년 25세의 나이로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하기까지, 한국 최초의 천주교(가톨릭)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삶을 총체적으로 다룬 이 전기는, 혜곡최순우상을 수상한 대한민국 대표 전기 작가가 한국 천주교회 연구기관인 (재)한국교회사연구소의 자료제공과 감수를 받아서 펴내는 공식적인 김대건 정본 전기다. 방대하고 치밀한 자료 조사를 통해, 그동안 불확실했던 5년 반 동안의 마카오 신학교 생활과 어린 시절은 물론, 여러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했다.

특히 1845년에 한국인 최초의 가톨릭 사제가 되었음을 친필로 서약한 〈김대건 신부 서약서〉도 2021년 교황청을 통해 입수한 라틴어 원본을 170여 년 만에 정식으로 공개한다(교황청 복음화성 문서번호 Fondo S. O. C. P. vol.78, f 405). 19세기 조선을 둘러싼 세계사적 역동 속에서 온갖 박해를 이겨내고 꿋꿋하게 피어난 한국 천주교회의 다채로운 신앙 여정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어, 한국 가톨릭 신앙의 뿌리와 본질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 인세의 반은 그동안 김대건 신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재)한국교회사연구소의 연구기금으로 기부된다.

어린 시절과 교우촌에서의 생활, 8년간의 해외 신학생 생활 등

이제껏 공백으로 비워두었던 역사를 새롭게 발굴 및 검증

김대건 신부가 스물다섯 살의 젊은 나이에 순교했다고 하면 깜짝 놀라는 이가 많다. 우리나라 첫 번째 신부라는 사실은 알지만, 구체적인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200년 전, 이 땅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김대건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이 그를 사제의 길로 이끌었을까?

어떻게 조선의 첫 번째 사제가 되었으며, 왜 사제 서품 1년 1개월 만에 순교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 그리고 한국 천주교에서는 왜 김대건 신부를 모든 성직자의 모범으로 공경하는 것일까? _p.12

김대건金大建은 한국인 첫 가톨릭 사제이자 순교성인이며, 한국 가톨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다.

1984년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가톨릭의 ‘성인聖人’으로 추대되었으며, 2019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인류의 평화와 발전에 미친 기여를 인정받아 2021년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된 바 있다.

김대건 신부에 관해 그동안 많은 책과 연구 결과가 있었다.

그러나 소년 시절과 마카오에서의 신학 공부 과정은 거의 베일에 가려진 채, 편지 자료를 통해 마지막 3년 정도의 삶만 중점적으로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김대건 신부의 자료에는 공백이 많았다. 출생지가 충청도 솔뫼라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어린 시절의 삶과 경기도 용인 한덕골 교우촌에서의 소년 시절,

그리고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 임시로 설립된 조선 신학교에서의 교과과정과 교재, 심지어 외국어를 모르던 조선의 소년이 어떻게 중국어와 프랑스어, 라틴어까지 배워 능숙하게 편지를 쓸 수 있었는지 등에 대한 부분은 막연한 추측으로 남아 있었다.

전기문학의 불모지와 같은 한국에서 2010년 《간송 전형필》을 출간한 이래 《아, 김수환 추기경》과 《신부 이태석》은 물론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천년의 화가 김홍도》 등을 출간한 전문 전기 작가 이충렬(세례명 실베스테르)은,

한국교회사연구소의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주요 도서와 논문, 심포지엄 발표자료 등을 비교 검토하여 2년 6개월 동안의 대장정 끝에 그동안 공백으로 남겨져 있던 김대건 신부의 행적을 충실한 근거와 함께 생생하게 되살렸다.

조선 천주교회의 고난과 희망을 담은

청년 김대건 신부의 드라마 같은 일대기

1845년(헌종憲宗 11년) 8월 31일 상해上海의 한 선착장. 물결을 따라 흔들리는 라파엘Raphael호에 오르는 김대건 신부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작은 배가 다시 무사히 황해를 건널 수 있을까. 마포나루에 도착하면 관헌들의 눈을 피해 무탈하게 상륙할 수 있을까. 만약 그들의 눈을 피할 수 없다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십상인 위험한 길이지만 그래도 조선 천주교를 위해 가야만 하는 길이 아닌가…. _p.20

길이 7.5 미터의 작은 돛배 라파엘호에 몸을 싣고 조선을 향해 상해를 출발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이 전기의 도입부는, 뒤이어 태풍에 의해 표류하는 모습을 통해 김대건 신부의 파란만장한 삶을 상징적으로 예고한다.

서학(천주교)을 금지하고, 외국인 선교사들마저 공개 처형했던 19세기 조선. 박해와 고통의 시기에도 조선 천주교를 재건하기 위해 몰래 조선을 떠나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다시 삼엄한 경계를 뚫고 귀국하여 해외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고, 마침내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를 라파엘호에 모시고 황해를 건너게 된 드라마틱한 여정을 생생하게 재구성한다.

고향 솔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엄혹한 상황, 솔뫼를 떠나 한양의 청파와 용인의 교우촌으로 박해를 피해 다녀야 했던 유소년 시절,

어려운 신앙생활 속에서도 조선인 최초의 신학생 세 사람 중 하나로 발탁되기까지의 이야기들, 6개월 동안 1만 리를 걸어서 도착한 마카오까지의 여정,

10대 소년이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매진했던 5년 반 동안의 마카오 신학생 공부, 남경조약 조인식을 바로 곁에서 참관하는 등 견문을 넓혔던 해외 유학 생활, 프랑스인 선교사를 모시고 8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의 난관들,

상해 김가항金家巷 성당에서의 역사적인 사제 서품식, 조선의 첫 사제가 되어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한 뒤의 사목 활동들, 마침내 체포되어 치러야 했던 50여 차례의 신문과 당국의 회유,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남겼던 수많은 편지와 기록들…

한강 백사장에서 순교하기까지 김대건의 스물다섯 일대기는 말 그대로 “영웅적 신앙(프란치스코 교황)”의 증거이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다채로운 모험의 연속이다.

순교 후 미리내에 모셔지기까지의 과정과 시성諡聖, 그리고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낸 메시지까지, 이 정본 전기는 김대건에 관한 모든 장면과 기록,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담아내고 있다.

48개 자료 박스, 30여 장 컬러 지도, 19통의 편지…

새로운 발굴 자료로 김대건의 신앙여정을 새롭게 밝히다

그동안 흐릿한 사본을 통해 존재만 알려졌던 〈김대건 신부 서약서〉(교황청 복음화성 문서번호 Fondo S. O. C. P. vol. 78, f 405)도 이 전기에서 최초로 원본을 공개한다.

이 자필 서약서는 2021년 한국교회사연구소가 교황청을 통해 입수한 원본 이미지 자료로, 김대건 신부가 첫 번째 조선인 사제로서 교황청이 정한 절차를 완벽히 밟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본문 400~401쪽 수록).

또한 한국교회사연구소의 번역을 통해, 김대건 신부가 1845년 8월 17일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라파엘호를 타고 조선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인 1845년 8월 30일에 이 서약서를 작성하였고, 페레올 주교가 확인 서명을 했음을 밝혀내는 등 ‘정본 전기’에 걸맞는 새로운 사실의 확인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전에도 김대건 신부 전기는 여러 종류가 나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사료가 남아 있는 시기들만 집중적으로 다룰 뿐, 김대건 신부의 어린 시절, 교우촌에서의 신앙생활, 마카오 신학생 시절의 학습 과정 등은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았거나 왜곡된 부분이 많았다.

양반 출신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어린 시절을 다소 낭만적으로 다룬 드라마도 있었지만, 이미 집안 어른들의 잇따른 순교로 인해 용인 교우촌으로 가족들이 몸을 옮겼을 때는 이미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을 때였다.

작가는 지나친 영웅주의나 미화 대신, 지금까지 놓쳤던 주변 인물들, 스승, 후배, 친구들의 기록까지 샅샅이 뒤져서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을 찾아냈다.

그와 함께 당시 생활상과 언어의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1800년대 말 박해 시대를 배경으로 쓴 소설까지 참고하여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김대건의 삶을 복원했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 초기 한국 천주교회와 김대건 신부 삶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충실히 제시한다.

페이지 아래 109개의 주석 외에도 주요한 장면에서는 별도의 ‘자료 박스’를 48개 배치하여 더욱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컬러 고지도에 설명을 붙이거나 별도의 안내도를 제작하여 김대건 신부의 신앙 여정을 정확하게 생생하게 안내한다.

솔뫼에서 청파를 거쳐 용인 한덕골로 이동했던 초기 이주 루트, 선교사들이 북쪽 국경을 넘어 조선으로 잠입을 시도했던 선교 루트, 최초 조선 신학생 세 사람(최양업, 최방제, 김대건)의 1만 리 마카오 도보 루트, 첫 사제가 된 이후의 귀국 루트,

귀국 후 국내 선교 루트 등을 표시한 이 컬러 지도들을 통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길’을 새로이 구축해볼 수 있을 정도이다. 역사 복원을 위해 참고한 자료와 연보까지 자세하게 제시하여, 이후 김대건 신부나 초기 한국 천주교회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도 귀한 지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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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 ⑪ –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5

지난 7월 29일에 다음과 같은 기사(“美월풀 제친 LG전자, 가전 세계 1위 지켰다”)가 실렸고, 나는 이 기사에 대해 (“그래서 1등하면? 글로벌 수준의 디지털 전략은 어디? “가전도 센서다”라고 생각하면 달리 보이겠지만..)라고 페이스북에서 기사를 인용하면서 덧붙였다.

이와 같은 맥락의 예시적 글을 나는 지금까지의 10편의 글에서 틈틈이 제시했다. 상기의 예시적 글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나의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의 핵심을 이해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글을 이어가는 이유는 남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긴 시간 동안 글을 아래와 같이 길게 이어왔다. 특히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의 내용은 (1) 데이터론, (2) 디지털 공간 핵심 구성요소, (3) 디지털 공간 인증체계 그리고 (4) 설계 고려 사항(considerations)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번 글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의 다섯번째 글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디지털 공간 인식체계의 재검토 https://wp.me/p2zVkV-kj (0525 수)

디지털 산업과 잠재성장률 https://wp.me/p2zVkV-l6 (0531 화)

디지털 공간 제원리와 신뢰 https://wp.me/p2zVkV-lu (0607 화)

디지털 공간론 3가지 원리 1 https://wp.me/p2zVkV-lx (0613 월)

디지털 공간론 4가지 관점 https://wp.me/p2zVkV-lN (0621 화)

디지털 공간론 3가지 원리 2 https://wp.me/p2zVkV-mk (0628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1 https://wp.me/p2zVkV-mq (0705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2 https://wp.me/p2zVkV-mv (0712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3 https://wp.me/p2zVkV-my (0719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4 https://wp.me/p2zVkV-mC (0726 화)

그러고도 아직도 남길만한 글이 남아 있는가? 스스로 자문한다. 오늘 남길 담론(discourse)의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1. ‘디지털 공간론’과 ‘제4차산업혁명’·‘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여러번 묻고 있지만, 제4차산업혁명은 무엇을 목표로 하는 것인가?

새로운 ‘산업’혁명의 시대이므로 경제주체이고 산업주체인 “기업’은 당연히 제4차산업혁명의 대열에 참여하여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제5편의 글에서는 이렇게 적었다. “제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AI, 플랫폼, 사물인터넷, 3D프린터, 드론, 자율주행차, 비행(자율)자동차, 자동화공장, 기계와 기계의 소통, 가상현실, 탈중앙화와 블록체인, 주문생산, 기계학습, 원격조종, 원격치료, 로봇, 양자컴퓨터, 나노산업, 신재료공학, 스마트시티와 신도시공학, 공유경제 등은 제4차 산업혁명의 다양한 응용과 적용의 모습을 보여준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은 무엇을 말하는가?

ㅡ IDC (International Data Cooperation), “프로세스, 경험 그리고 가치를 변화하는 데에 적용한 기술을 기반으로 고객 및 마켓(외부환경의 변화에 따라 디지털 능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제품 서비스를 만들어 경영에 적용하고 주도하여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

ㅡ Bain & company, “디지털 엔터프라이즈 산업을 디지털 기반으로 재정의하고 게임의 법칙을 근본적으로 뒤집음으로써 변화를 일으키는 것”

ㅡ AT Kearney, “모바일,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디지털 신기술로 촉발 되는 경영 환경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현재 비즈니스의 경쟁력을 획기적 으로 높이거나 새로운 비즈니스를 통한 신규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 활동”

ㅡ PWC, “기업경영에서 디지털 소비자 및 에코시스템이 기대하는 것들을 비즈니스 모델 및 운영에 적용시키는 일련의 과정”

ㅡ Microsoft, “고객을 위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지능형 시스템을 통해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새롭게 구상하고 사람과 데이터 프로세스를 결합하는 새로운 방안을 수용하는 것”

ㅡ IBM, “기업이 디지털과 물리적인 요소들을 통합하여 비즈니스 모델을 변화(transform)시키고 전산업(entire industries)에 새로운 방향(new directions)을 정립하는 것”

ㅡ WEF(World Economic Forum), ”디지털 기술 및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하여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아래와 같이 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ㅡ “기업이 진행하거나 추진하는 혁신과정 중 하나로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인공지능(AI), 블록체인, 가상현실, 빅데이터, 애널리틱스 등 방대한 디지털 기술을 하나로 통합해 전사적인 혁신을 추진하는 것”

ㅡ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소유 중인 하드웨어 사용자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되, 구독 기반 클라우드 서비스에 의존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새롭고 빠르고 자주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

그럼 ‘제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은 어떤 관계로 파악할 수 있을까? 두 개념은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라는 동일한 뿌리를 가지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이끌어내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과거와는 다르다’라는 기준은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 그것은 이 연재글이 던지는 주제어로서의 “디지털 공간”에서 찾아보자는 것이 나의 제언이다. 물론 ‘제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과 ‘디지털 공간’은 3가지 현상이지만 같은 지향의 측면과 차원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감히 정리할 수가 있다.

따라서 전편 10편의 글 전부가 이러한 3위일체로서의 요소 개념들을 풀이하면서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을 풀어나간 것이다.

대부분의 예능적 전문가들처럼 딱 부러진 정의와 개념을 통해 설명하는 흔한 방식을 나는 채택하지 않은 것은 본래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것이고, 그것이 바로 어느 한 순간에 머무르지 않는 디지털 공간의 본연적 속성 때문이다. 일의적으로 설명한다는 모든 것들은 과거 2,000여년 동안의 철학적 설명 구조로서 이는 늘 거대 담론을 지향하고 거시적 관점을 이끌어 내는 일이지만, 이러한 설명 구조는 칸트와 헤겔을 끝으로 이미 거의 불가능해졌고, 현상학과 실존주의의 흐름과 두번에 걸친 세계대전에 대한 반발 속에서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철학 흐름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영미 철학을 특징짓는 분석철학(Analytical Philosophy)은 철저하게 ‘탈’거대담론의 길을 걷는다.

‘디지털 공간론’을 현재 시대적 핵심 개념으로 부각시킨 것은 세상의 모습이 이제는 파르메니데스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헤라클레이토스적인 유연한 인식 체계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작금의 시대에는 이런 생각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오히려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에 기초하는 존재론적 철학적 사변을 펼치는 학자들이 더 신기한 관심을 끌고 있는 요즘이다. 제1편의 글에서 ‘디지털 공간의 인식체계’를 재검토 하자는 나의 주장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다.

따라서 물리 공간론 자체가 거대 담론이므로 “디지털 공간론”도 당연히 그렇게 읽힐 수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일의적인 것으로 디지털 공간론 논변을 펼칠 수가 없다. 전편의 여러 글에서 언급했듯, 너무나 다양하고 다채로운 디지털 공간이 무수히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현재에는 디지털 공간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그런 수많은 디지털 공간을 각양각색으로 산출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평행우주(平行宇宙. Parallel Universe/World)처럼 디지털 평행공간이 물리 공간에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공간론’의 3가지 원리(제3, 4, 6편), ‘디지털 공간론’의 4가지 관점(제5편), ‘디지털 공간론’의 3가지 고려요소(제10편) 그리고 이 글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 요인으로서의 3가지 설명 개념(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디지털 공간)은 전부 거대 담론 방식의 설명을 흉내내는 궁여지책의 용어들이다. 여러번 말했듯, 편의적, 방편적 설명도구라는 뜻이다.

거대 담론(metadiscourse)과 거대 서사(grand narratives)와 거대 철학의 해체는 고유한 철학이 다른 학문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아니 다른 학문들이 철학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이를 철학의 종말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이는 철학의 새로운 전개라고 말하는 게 더 옳을 것이다. 지금의 서양 철학은 근현대를 거치면서 쌓은 과학과 기술의 장쾌한 성과를 소화하여 담지 못하면 철학자로서의 행세를 하기가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도 아주 일부의 선각자적인 철학자를 제외하고는 많은 철학자들이 기원전 출현한 동서양의 철학적 논변을 그대로 읊는 일이 여전하다.

이러한 근대까지 이어 지던 거대 담론의 철학은 근대 자체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다양한 현상을 낳았고, 그 현상이 바로 거대 철학을 해체하는 원인이 되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irony)를 역사에 남긴 것이다. 그런데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로 집약되는 ‘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디지털 공간’ 현상이 또 한번 강한 힘으로 작금의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나는 이러한 개념들을 버무려 철학적 주제보다는 현실 정치경제적 이슈로서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철학적 접근은 오히려 제7편의 글에 인용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이순석 박사에 의해 전개되고 있고, 훨씬 더 깊이 있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거대 철학의 해체 또는 전통 철학의 해체를 여러가지 관점에서 풀이할 수 있지만 내가 다루는 주제와 관련해서는 하이데거가 말한 “기술의 질주” 현상을 작금에 되풀이하는 새로운 차원의 “기술의 질주”현상을 바로 위 문장에서 언급한 현상들을 통해 시대적 전환 현상으로 설명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1889-1876)가 인식론에 치우친 서양의 근대철학을 존재론으로 전회시킨 전환기적 사상가였는데, 그의 기술철학 사상은 여전히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 현상 하에서도 유효한 관점으로 수용될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기술철학서인 ≪기술에 대한 물음(기술에 대한 논구)(Die Frage nach der Technik)≫ (1954)와 ≪기술과 전향(技術─轉向, Die Technik und die Kehre)≫ (1962)는 당시 산업혁명을 온 몸으로 체험한 그가 ‘도구 이상의 그 무엇인 기술’에 관한 본격적인 사유를 펼치면서, 자연 뿐만이 아니라 인간 자체도 도구로 변모시키는 기술의 질주(Gestell) 현상에 대한 비관적 관점을 통해 본래 그대로의 존재에의 응시를 통한 존재 자체의 드러남을 주장하였는 바, 자연과 인간 자체가 데이터화하는 오늘날의 ‘기술 질주’의 제4차산업혁명의 시대에도 울림을 주는 사상이 아닐 수 없다. 대표적인 하이데거 전문연구가인 이기상 박사의 책과 글에 그렇게 소상하게 설명되어 있다.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 주장 자체가 실체가 없다는 뭇사람의 반론 또한 많지만, 그의 논변은 묘한 공명을 만들기도 한다.

2. 디지털 공간 기술의 질주 –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

이런 기술 현상은 스스로 모순과 부조리를 잉태한 것들이라는 관점을 곰곰히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수많은 이슈들의 근원적인 문제점을 새로이 발굴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300조원을 들여 사막 한 가운데에 짓고 있는 미래첨단도시 ‘네옴’(NEOM)은 170km의 거대한 거울식 반사유리 건물을 자랑하는데, 규모만 2만 6,500㎢로 벨기에 국가 전체, 서울과 비교하면 44배에 달하는 크기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석유로 짓는 신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 사상거대누각(沙上巨大樓閣)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디지털 네옴’을 짓는 일을 바로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를 통한 ‘디지털 공간’을 짓는 일에 비유할 수 없을까? 세계화를 추진하는 일을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를 통한 ‘디지털 공간’을 짓는 일에 비유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현상 – 유럽 ‘혹독한 겨울나기’ 대비 땔감 쌓는 獨… 조명 끄는 佛 (2022년 7월 15일 한국경제 기사 제목) -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새로운 세계화(Flat Globe) 현상의 균열과 역설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공급망의 파괴로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경제사회적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다. 이 사태도 이미 전편 제8편의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네옴(NEOM)을 만들듯, 세계화(globalization)를 몰아부치듯, 거대한 초연결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제4차산업혁명의 시대는 바로 그 현상 자체에 거대한 모순과 부조리를 잉태하고 있는 ‘기술의 질주’ 시대를 열어가는 것은 아닐까? 초거대연결은 초거대 AI를 필요불가결하게 만들고, 이는 초거대 파라미터들(parameters)을 생성하여 거대 data를 쌓아야 하는 일을 확장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네옴(NEOM)이든 디지털 공간이든 이 모든 현상이 그 자체에 파괴 인자를 키우는 일은 아닐까? 여기에는 인간의 지혜가 필요하고 그 지혜를 보다 강력하게 뽑아내기 위한 초거대 AI는 불가결하고 무한 확장 중이니 그래서 이는 과거 산업혁명이 남긴 어두운 유산 즉 “문제 해결이 또 다른 문제를 남기는 격”의 답습이 불가피할 것인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이 현상이 역설적으로 거대 담론과 거대 철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고 이는 그리하여 중세 기독교 시대의 일의적 질서에 기반한 안정적(?) 시대 인식을 이제는 되살릴 수 없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한 새로운 “기술의 질주”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3.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4 – 오토노미 담론에로의 전환

나는 이번 글에서 다루는 주제를 바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는 동인인 3위일체적 설명 개념(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디지털 공간)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가를 탐구하면서 제시할 것이다.

⑴ 오토메이션(automation)과 오토노미(autonomy)

디지털 공간이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것은 삶과 세상의 거의 모든 활동과 현상을 ‘자동화’(automation)하고 사람들은 이를 통해 주인으로서의 ‘자율성’을 가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과학기술의 성과를 미리 예견하고 정당화하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의 논거는 국민과 시민에게 삶의 질(quality of life)의 향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즉 이런 목표를 최고의 범주적 표현으로 담아내면 바로 오토메이션(automation)과 오토노미(autonomy)이다. 이 표현은 전체 연재글을 통하여 제5편에서 딱 한번 언급하였다. 이런 주제 개념을 놓고 많은 고민과 사색을 하였고 관련 서적을 찾아 읽었지만, 안타깝게도 거의 ‘오토메이션’(automation)이라는 주제어만 온통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위 ‘자동화 담론’에 관한 것이다. ‘기술의 질주 시대에 인간은 기술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존재의 목소리를 스스로 들어야 한다’라는 균형잡힌 하이데거의 철학적 사유를 ‘자동화 담론’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다만, 대한민국에서는 ‘자동화 담론’에 관한 글 자체를 찾기도 어렵다.

간략하게 훑어보자. ㅡ 아론 베나나브(Aaron Benanav)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Automation and the Future of Work)≫ (2022년 1월)

ㅡ 베르나르 스티글러(Bernard Stiegler) ≪자동화 사회 1: 알고리즘 인문학과 노동의 미래(La Societe Automatique Vol.1 L’Avenir Du Travail)≫ (2019년 4월)

ㅡ 칼 베네딕트 프레이(Carl Benedikt Frey) ≪테크놀로지의 덫 – 자동화 시대의 자본, 노동, 권력(The Technology Trap)≫ (2019년 9월)

이런 책의 서술체계는 거대 담론을 지향하면서, 세계경제성장율의 유지 가능성, 고용과 노동 구조의 변화 가능성, 더 나은 삶의 성취 가능성, 경제사회구조의 변화 가능성 등의 이슈를 다룬다. 따라서 이들의 ‘자동화 담론’은 독자 스스로 읽어 소화하기 바라고 나는 ‘자동화 담론’을 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그리고 디지털 공간에 관한 현상의 궁극적 목표로서의 주제라고 생각하고 이를 논변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동화 담론’은 스마트 팩토리로 대변되는 제조업 분야에서 특히 부각되고 있고 이는 독일의 인더스트리 4.0(Industry 4.0)이라는 표현으로부터 비롯된다. 또한 이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활발한 현상이지만 이는 이제 모든 산업 분야에서의 핵심적인 전환 이슈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전편의 여러 글에서 이미 언급한 내용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냥 쉽게 이야기하면 ‘디지털 공간’ 없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없이 그 어떤 재화와 서비스를 출시하지 말라는 나의 이야기에 이미 담겨 있다. 게다가 이제는 ‘테슬라와 같은 전기자동차 시장’과 ‘통신 시장’과 ‘해외물류해운 시장’은 이제 동일한 비즈니스 모델로 변화하고 있다는 나의 빈번한 언급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들이다.

그런에 자동화 담론에 내가 느끼는 커다란 흠결은 바로 ‘자동화’(automation)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없이 기존의 산업화를 통한 생산자와 공급자에 관한 혁신 즉 제4차산업혁명에 의한 혁신의 방편으로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오토노미’(autonomy)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⑵ 오토메이션(automation) 담론에서 오토노미(autonomy) 담론으로의 전회

나는 최근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게시했다. “플랫폼 기반 택시 서비스는 수도권에서는 실패다. 이용자 편의 정보 제공을 무시하는 디지털 공간설계에 매달리는 한 기술과 자본의 해악만을 남길 것이다.” 이 게시글은 플랫폼 기반 택시 서비스의 실태를 보면 그 플랫폼은 사실 내가 말하는 ‘오토노미’(autonomy)라는 고객 가치의 제공을 아예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이고, 애초부터 그런 고객 가치를 제공하려는 설계가 통째로 빠져 있는 것이다. 즉 공급자의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오토메이션’(automation)’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서 제4차산업혁명의 기술도구들을 일방적으로 공급자의 편의 위주로만 만들었다는 비판이다. 그럼 독자들은 나의 ‘자동화 담론’을 비판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별론의 이야기이지만, ‘오토노미’(autonomy) 담론에는 ‘개인정보보호’(personal information protection, privacy protection)의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함의가 숨겨져 있다. “강력한 개인정보의 보호 가치”와 “강력한 개인맞춤형 서비스의 가치” 상호간의 충돌을 타개하고, 그리고 PID와 DID의 구조체계를 정립 가능케 하며, 디지털 시대의 기본소득 논의를 새롭게 다듬는 핵심적인 논거가 숨어있다. 디지털 공간의 설계 기초의 핵심적인 내용이 될 것이지만 물론 이는 후속 편의 글에서 언급할 수 밖에 없다.

아무튼 거의 압도적으로 일방적인 ‘자동화(automation) 담론’에 상응하는 고객과 소비자와 데이터를 생산하는 궁극적인 개체인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주도성/주체성/자율성(autonomy) 담론’이 거의 망각되고 있다는 점을 나는 매우 강하게 비판하고자 한다.

고객인 소비자, 이용자, 가입자에게는 어떤 가치를 ‘자동화’를 통해 제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논의가 없다는 점이다. 철저한 공급자 중심의 ‘자동화 담론’이 과연 얼마나 세계적인 디지털 흐름의 정곡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아직까지는 아주 불완전한 ‘자동화 담론’에 머물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고 균형잡힌 디지털 공간론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작금의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주도하는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로 집약되는 ‘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디지털 공간’은 여전히 공급자 및 생산자 중심 즉 경제주체로서는 정부와 기업 중심의 논의에 극히 치중되어 있다. 즉 ‘자동화 담론’ 위주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자동화 담론’을 굳이 거론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창하는 ‘디지털 공간론’ 만큼은 국민·소비자·고객·개인·사용자·이용자라는 다양한 명칭을 가진 경제주체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는 ‘오토노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⑶ 오토노미(autonomy) 담론의 함축(implications)과 개요

자, 그러면 ‘오토노미(autonomy) 담론’은 어떻게 시작하여야 할까? 과연 오토노미(autonomy) 담론은 얼마나 강력한 주제일까? 나는 감히 말하지만 지금까지 10여년을 글로벌 경제의 주도권을 휩쓴 지금까지의 공급자와 생산자 중심의 디지털 공간인 플랫폼 경제구조를 전복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는 오토노미(autonomy) 담론에 내재되어 있다고 감히 말한다.

이러한 논의에 앞서 나는 오토노미(autonomy) 담론의 주제를 명쾌히 정리하기 위한 기본 고려사항을 탐색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이제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선언하고자 한다.

① “정부와 기업은 오토메이션(automation)으로 무장하고, 국민·소비자·고객·개인·사용자·이용자에게는 오토노미(autonomy)를 제공하여야 한다.”

그러면 도대체 ‘오토노미’(autonomy)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옥스포드 사전에 따르면 ‘오토노미’(autonomy)의 유사어는 다음과 같다.

ㅡ self-government, independence, self-rule, home rule,

ㅡ sovereignty, self-determination, freedom, autarchy

ㅡ self-sufficiency, individualism

나는 ‘오토노미’(autonomy)의 속성으로 아래와 같은 개념을 제시한다.

ㅡ Personalization

ㅡ Total Visibility at a Glance/Transparency

ㅡ Curation/Control/Manageability/Responsiveness

ㅡ Performance/Quality Monitoring

ㅡ Steering/Measurement/Streamlining/Convenience

ㅡ Intuitive Understanding/UI·UX/Insight/Prediction

ㅡ Treatment/Optimization/Protection/Prevention

ㅡ Credibility/Happiness/Satisfaction

내가 제안하는 ‘오토노미’(autonomy)의 속성 개념을 예시하지만, 수많은 디지털 공간에 따라 전술한 오토노미의 유사어의 의미를 수용할 수도 있고, 또한 바로 위 언급한 속성의 일부 또는 추가적인 속성을 더하여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일은 당연하다.

②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는 디지털 공간이 제공되어야 하고, 동시에 그 디지털 공간은 오토노미(autonomy)를 구현하여 고객에게 제공하여야 한다.”

이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 고객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도성/주체성/자율성(autonomy) 담론’이 활성화되어야 생산자와 공급자가 디지털 공간을 통하여 고객에게 제공하여야 할 다양한 가치를 구현하는 작업이 보다 더 정밀하게 진행될 수 있다. 흔한 말로는 고객 만족(customer satisfaction)이라고 하지만 이런 구닥다리 개념과 접근 방법으로는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 이는 공급자와 생산자의 CEO 등 책임자의 리더십(leadership)에 강력한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가 요구된다는 이야기와 맥락이 같다. 사실 작금의 대한민국의 CEO 중에 그들의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오토노미’(autonomy)를 논할만한 디지털 지식과 디지털 경험을 가진 자는 얼마되지 않을 것이다. 장담한다.

그렇다. ‘오토노미’(autonomy)에 가장 중요한 개념은 여러번 언급했는데 바로 경험(experience)이다. 나는 제5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최근에서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수장이 ‘고객 경험’을 회사의 최우선 과제라고 기사를 뿌렸다. 물론 디지털 고객 경험이다.

ㅡ 삼성전자, ‘고객경험’에 미래 걸었다… ‘뉴삼성’ 밑그림 완성 (21.12.12)

ㅡ 조주완 사장 한 마디에 … LG전자 ‘고객경험 실험’ (21.12.23)

적어도 아직도 대한민국에서는 ‘IDC’(Internet Data Center)의 우아한 표현으로 남용되는 ‘클라우드’(Cloud)라는 개념이 (10여년 전에 – 표현 추가) 등장할 때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의 키워드인 ‘디지털 고객 경험’은 이미 중요 요소로서 사업 전략에 포함되었어야 했다. 언제나 이를 가로막는 것은 전시적, 예능적 사업기획 문화가 아닌가? 결국 이것도 디지털 공간 설계 능력 부족이라고 할 수 밖에.. 다른 말로는 철학의 부재라고 할 수 밖에..”

③ “생산자와 공급자는 디지털 공간을 통하여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고객 경험과 고객 반응을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파악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끊임없이 줄 수 있도록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여야 한다.”

이러한 선언을 구현하려는 생산자와 공급자가 구축하여야 하는 디지털 공간은 일응 일반적으로 CEMP(Customer/Subscriber Experience Management Platform)라고 부른다. 이것도 일종의 디지털 공간이다. 이는 당연히 다른 디지털 공간의 일부일 수도 있고, 독립적인 디지털 공간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CEMP를 제대로 구축하여 운용 중이라는 기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데이터에 대한 우선 순위 감각도 없고, 디지털 방식에 의한 즉 자연스러운 방법에 의한 고객 반응의 수집 체계도 없고, 그 반응에 대한 피드백이라는 반응성 또는 책임성에 대한 고려도 별로 없다. 한마디로 CEMP라는 디지털 공간에 대한 심각한 고려가 없다. 그러고도 디지털 산업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소위 ‘데이터론’ 또는 ‘데이터 과학’ 또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는 바로 이런 CEMP에 집중되어야 한다.

수많은 데이터 기반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산자와 공급자는 ‘개인맞춤형서비스’를 최고의 품질로 제공한다고 자랑하고 광고하며 떠들지만 바로 이것이 클라우드 기반 위에 AI를 통하여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으로서 이는 과정산업(過程産業)의 핵심적 특징이다. 즉, 고객에게는 매일매일 다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고, 동일하게 계약된 재화와 서비스이지만 매일매일이 서로 다른 재화와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고객맞춤형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아주 세밀한 파라미터들을 통해 얻어진 개인정보를 고객은 어떻게 가공되어 전달받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설정(settings) 기능의 정밀한 설계에 의해 가능하게 되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제4차산업혁명이 낳은 재화와 서비스의 정의가 될 것이며, 이는 바로 디지털 공간에 의해 제공 가능하다는 것을 어찌 알지 못할까?

④ 이제는 재화와 서비스는 궁극적으로는 또는 결과적으로는 소위 생산자와 공급자가 만드는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고객’ 스스로가 만드는 시대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객 설정 기반 서비스가 가능한 디지털 공간 설계가 재화와 서비스의 경쟁력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산업의 생산물인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제4차산업혁명 이전과 이후에 내리는 정의는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다만 이 선언의 기본 전제는 생산자와 공급자가 생산과 공급을 위하여 도입하는 AI에 설정하는 기천억개 또는 기조개의 파라미터들(parameters)의 일부라도 고객의 손에 쥐어줄 수가 있느냐라는 것이다.

기존의 재화와 서비스의 정의는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라는 새로운 요인에 의하여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 정도는 고객에게 쥐어주는 파라미터들(parameters)의 숫자에 의존하는 것이다. 나는 제10편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귀사의 초거대 AI 프로젝트 설계에서 고려하는 2,000억개의 파라미터 중에 인간 자체에 관한 것은 몇개인가요?’ …. 그런데 이에 관한 질문은 파라미터 기준 인간과 비인간의 비중이 얼마나 다른가였는데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천만의 말씀.”

바로 이런 질문에서 알 수 있는 인간에 관한 데이터 즉 고객에 직접 관련 있는 데이터의 파라미터들(parameters)이 바로 고객이 스스로 만드는 ‘재화’와 ‘서비스’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정보를 포함하여 각각의 디지털 공간에 가장 적합한 오토노미(autonomy)의 구체적 항목들을 정밀하게 설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와 변이는 기존의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불가피하고, 규제법령의 개편이 불가피해지는 시대로 돌입하게 하고 있다. 이런 변이와 변화의 양상을 확장하면 바로 ≪유동적 근대성(liquid modernity, 流動的 近代性)≫이라는 책에서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년 – 2017년)이 주장하는 액체적 근대성을 설명하는 설득력 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이것이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관점을 결여한 상태가 바로 디지털 일리터러시(digital illiteracy)의 상태이고 이런 사람을 디지털 일리터러티(digital illiterate)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4. 디지털 공간론이 플랫폼 경제에 던지는 전복적 함의

지금까지의 플랫폼 경제(platform economy)는 오토메이션(automation) 담론의 성공적 수단이었고, 앞으로의 지능화와 초연결화를 통한 디지털 공간 경제는 과학기술 진보의 여정이지만, 한편으로는 하이데거적 ‘기술의 질주’로도 읽혀진다. 초연결사회가 주는 ‘희망’의 크기만큼 ‘불안’의 크기도 증대된다. 그 불안은 디지털 공간을 구성하는 네트워크가 원래 생성 당시의 설계에 따른 best effort의 packet 네트워크에 가혹한 설계 변경을 가하여 QoE(quality of experience) 또는 QoS(quality of service)를 보장하는 네트워크로의 변환을 기도하는 것 자체가 ‘기술의 질주’이고 오토메이션(automation)의 불안한 미래를 한 구석에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굳이 예를들자면 전기자동차의 ‘원격’ 자율주행을 기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라는 점이다. 거의 무한 변수의 발생이 예상되는 차도에서의 주행 판단은 현장의 전기자동차에 설치된 자율주행시스템의 ‘자체’ 판단에 의거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어야 하는데, ‘원격’ ‘실시간’ 정보처리 과정을 통하여 시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무모한 일은 아닐까? 이런 기술적 추구는 ‘유동적 근대’ 이상으로 ‘유동적 현대’를 만들어나가는 현상의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물론 특정 단일의 네트워크를 통한 통합 자율주행을 원격으로 처리하는 특수한 경우까지 배제하자는 뜻은 아니다. 초연결사회의 미래를 너무 과장하여 그려나가는 일은 무모하지만, 다양하고 다채로운 디지털 공간을 만들어가면 그 중에 QoE 또는 QoS를 보장하는 디지털 공간은 얼마든지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새로운 플랫폼은 오토노미(autonomy) 담론에 기초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로서의 ‘디지털 공간’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이는 기존의 플랫폼 경제구조를 전복(顚覆)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디지털 공간론’은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 이슈를 넘어 데이터중립성(data neutrality) 이슈를 관통하며, 또한 ‘개인정보보호’ 이슈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하여 개인맞춤형서비스와의 서로 가치 충돌하는 문제를 극복하는 아이디어도 얻게 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디지털 시대의 기본소득론 아이디어도 마찬가지이다. 덧붙인다면 전통적인 산업화에서 야기한 후유증인 소외(疏外. alienation)는 이제는 디지털 공간에서 오토노미(autonomy)의 부여를 통해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주제까지 다 담아내는 나의 주장을 바로 ‘오토노미(autonomy) 담론’과 ‘디지털 공간론’으로 펼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8월 2일 화요일)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newdhjj@gmail.com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연락처는 newdhj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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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문학과 신경과학,앵거스 플레처

오하이오 주립 대학의 스토리 연구를 위한 세계 최고의 학술 싱크탱크인 프로젝트 내러티브Project Narrative 소속 교수이다.

그는 신경과학과 문학에서 복수 학위를 받았는데, 미시간 대학교에서 신경과학 학위를, 예일 대학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셰익스피어를 가르쳤고, 책을 두 권 출간했으며, 소설과 시, 영화, 연극 작품에 관한 학술 논문을 수십 편 발표했다.

그의 연구는 미국 국립과학 재단, 멜론 재단, 아카데미영화상 심사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진행되었다. 그는 소니,

디즈니, BBC, 아마존, PBS, NBC/유니버설의 각종 프로젝트에 대한 스토리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시나리오 작성에 대한 청각/고급코스 가이드의 저자이자 발표자이다.

그는 현재 제작 중인 J.R.R 톨킨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미들 어스Middle Earth’의 각본가이기도 하다.

저서소개_우리는 문학이 필요하다

이 책은 문학 발명품을 총체적으로 조사한 보고서이다. (원제 Wonderworks: The 25 most powerful inventions in the history of Literature)

고대 중국의 서정시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 동화, 만화책, 사랑 노래, 시트콤, 성서에 나오는 비극, 《곰돌이 푸》, 고전 로맨스, 공상 과학 영화, 범죄 소설, 노예 이야기까지, 문학사에서 가장 강력하고 유익한 스물다섯 가지 발명품의 문학적 청사진을 제시한다.

그리고 각 청사진이 어떻게 슬픔과 불안, 외로움과 비관적 기분을 덜어주면서도 창의성과 용기, 사랑과 공감과 치유를 안겨주는지, 그 숨은 신경과학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시와 스토리가 어떻게 삶의 여러 순간을 풍요롭게 개선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

너무 환상적이다. 이 책은 끝내주는 책이다! _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저자

문학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회복시키는 놀라운 신경과학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

문학 속에 숨어 있는 신경과학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일깨우다!

언어와 문자를 발명한 이래로 인간은 문학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인간이 창조한 문학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문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과학적 방법론이 실용적으로 적용된 테크놀로지다. 그래서 호머와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 마야 안젤루 등 우리가 존경하는 여러 작가들은 문학이라는 독특한 발명품을 통해 과학으로 풀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해 냈다.

그들의 놀라운 작품을 읽다 보면 어떻게 불을 피우고 스마트폰을 제작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어떻게 살아가고 사랑해야 하는지, 죽음 앞에서 어떻게 용기를 유지하는지, 어떻게 상실의 아픔과 실패를 극복하는지, 기쁨과 희망과 목적의식을 찾지 못할 거라는 의심을 어떻게 떨쳐내는지는 알 수 있다.

오하이오 주립대 앵거스 플레처 교수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사료와 실험실 연구를 촘촘히 엮어 독자에게 실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고대 중국의 서정시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 동화, 만화책, 사랑 노래, 시트콤, 성서에 나오는 비극, 곰돌이 푸, 고전 로맨스, 공상과학 영화, 범죄 소설, 노예 이야기까지 문학사에서 가장 강력하고 유익한 스물다섯 가지 발명품의 문학적 청사진을 제시한다.

그리고 문학이 어떻게 슬픔과 불안, 외로움과 비관적 기분을 덜어주면서도 창의성과 용기, 사랑과 공감과 치유를 안겨줄 수 있는지 문학 속에 숨어 있는 신경과학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훌륭한 교사이자 학자가 쓴 이 책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시와 스토리가 어떻게 삶의 여러 순간을 풍요롭게 개선할 수 있는지 알려줄 것이다.

이 책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엘레나 페란테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위대한 과학 발명품에 필적하는 획기적 돌파구이자 발명품인 문학이 인간에게 미치는 심리적, 생리학적, 약리적 효과를 총체적으로 소개하며,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어떻게 향상시켰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책이나 영화와 같은 스토리의 과학을 소개하면서, 여러분이 문학 수업 시간에 배웠으면 싶었던 중요한 것들을 알려줄 것이다.

문학은 단순히 재미를 위한 읽을거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발명품’이다

우리가 문학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에 관하여 인문학과 신경과학으로 풀어내다

인간이 언어와 문자를 발명하면서 함께 탄생한 최고의 발명품이 있다. 바로 문학이다.

문학은 우리에게 수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문학이 주는 재미 덕분에 지긋지긋한 지루함을 떨쳐낼 수도 있고, 문학 속 인물에 스스로를 투영하여 간접 경험함으로써 새로운 사고와 관점을 배워갈 수도 있다.

문학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학은 우리의 인생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바로 문학에 숨겨 있는 신경과학적 효과 덕분에 말이다.

오하이오 주립대 앵거스 플레처 교수는 이 획기적인 책을 통해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혜택을 소개한다. 문학은 용기를 북돋고, 참을 수 없을 만큼 격렬한 분노를 진정시킨다.

문학을 읽으면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지, 또한 자기 자신 혹은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 것인지 깨달을 수 있다. 심지어 상실과 실패 그리고 모든 공포의 근원인 죽음에 맞서서 용기를 내고 극복해나가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앵거스 플레처는 문학이 발명한 25가지 발명품을 통해 이 모든 문학이 주는 효능 기저에 신경과학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이 책은 명작이라 불리는 문학 작품에 사용된 기법이나 장치에 대해 이 책은 왜 그런 기법과 장치가 사용되었는지 명쾌하게 설명한다.

단순히 문학이 주는 심리적, 생리학적, 약리적 효과를 밝히는 것을 넘어 문학 작품을 읽거나 쓸 때 활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글쓰기 방법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문학의 역사가 대서사시처럼 펼쳐져 있어 매우 흥미진진한 문학사의 여정을 따라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우리의 뇌와 감정만이 아니라 문학 그 자체에 대해 총체적으로 파고든 이 책은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는지 궁금해 하는 독자부터 문학을 사랑하는 애호가까지 모두에게 문학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명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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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8월 3일, 마카레나 빌보드 1위 등극

스페인의 남성 듀오 로스 델리오가 부른 마카레나는 1996년 8월 3일 빌보트 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그해 11월 2일까지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4주 연속 1위란 기염을 토했습니다. 플라멩코를 댄스음악으로 재해석한 마카레나는 1990년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의 뇌리에 각인된 문화 아이콘이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신나는 노래를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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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 ⑩ –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4

“열흘도 필요 없습니다. 화살 10만 개를 구하는데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주유(吳)로부터 요청받은 제갈량(蜀)의 말이었다. 어떻게 했을까? 제갈량은 짚단을 쌓은 배 스무 척에 병사 5명씩만 태워 밤이 어둑해질 무렵 위나라의 본진에 배를 대고 꽹과리와 북을 울렸고, 기습이라 생각한 위나라 병사들은 그 배들을 향해 수많은 화살을 날렸다. 그는 이틀을 쉬고 사흘째 단 하루만에 10만 개의 화살을 구해 왔다.

디지털 공간의 궁극적 존재 의의는 ‘화살’에 있다는 말은 여러번 했다. ‘화살’도 없이 어찌 디지털 전쟁, 디지털 경제전쟁을 치를 수 있을 것인가? 하나의 역사적 일화는 구구한 설명보다 낫다. 그러나 이런 일화처럼 디지털 공간론은 물리 공간만큼은 복잡하지는 않지만 단순하지 않다. 어떤 화살을 어떤 지역에서 어떤 방법으로 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차원에서의 숙제는 참으로 어렵다.

1. 은밀하게 침식되는 한국의 디지털 산업 패권

유쾌하지 않은 제목의 표현은 IMF가 최근 발간한 ≪달러 패권의 은밀한 침식≫ (The Stealth Erosion of Dollar Dominance: Active Diversifiers and the Rise of Nontraditional Reserve Currencies)이라는 보고서의 제목을 따왔다.

오늘날의 적은 영토침략 위협, 민주체제 위협, 식량 및 에너지 위협을 일삼는 국가만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코로나 바이러스 등의 팬데믹과 같은 인자들까지 새로운 적으로 등장하였다.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전쟁 양상 속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전쟁은 소위 “데이터 전쟁”, “플랫폼전쟁” 또는 “제4차산업혁명 전쟁”으로 불리는 디지털 경제전쟁이다. 소위 거론되는 미국 주도의 반도체(Chip 4) 동맹도 제4차산업혁명 전쟁이 아니던가.

역사적인 과거의 물량 동원 영토전쟁과는 다른 디지털 경제전쟁의 시대에 총성없는 현대의 전쟁 수행능력은 제4차 산업혁명의 성과에 의해 담보된다. 디지털 경제전쟁 전략은 전통적인 물리적인 해외 진출이 아니라, 한국 땅을 벗어나지 않더라도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지배하는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에 의해 완성된다.

지난 5년 동안 치열한 신혁명 시기에 우리는 ⓵ 시장지배적 점유율을 가진 LG TV에는 아마존의 AI인 ‘알렉사’가 탑재되고, ⓶ LG 가전 8종은 이미 AI 스피커 ‘구글 홈’과 연동을 마쳤으며, ⓷ SKT의 AI 스피커인 누구(NUGU)와 KT의 기가지니에는 LG TV가 그랬던 것처럼 아마존의 ‘알렉사’가 탑재되며, 심지어 ⓸ 삼성의 갤럭시 워치에는 빅스비가 아닌 구글 ‘어시스턴트’가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⓹ 삼성의 엑시노스를 포함한 한국의 시스템반도체 시장점유율도 처참하다는 소식이다. ⓺ 글로벌 플랫폼 하나 변변한 게 없다는 이야기는 덤일뿐인가? 대한민국의 ‘화살’을 그저 나눠주고 있는 아주 헤픈 나라인가? 이런 사례 자체에만 매달리면 또한 이는 견지망월(見指忘月)의 어리석은 일이 아니던가?

더 큰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때의 기술강국이었던 일본의 디지털 경쟁력이 추락하는 디지털 대참사의 전철을 우리나라는 밟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는가? 스마트폰, 디지털 TV, 통신 인프라 강국이라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에서 마이 데이터 사업, 데이터 댐 사업 등 ‘데이터’ 중심의 디지털 정책은 제대로 설계되고 만들어진 것인가? 적벽대전(赤壁大戰)의 일화에서 화살을 아무 생각없이 보태준 것처럼, 기껏 여왕벌에 충성하는 개미처럼, 곁가지에 치중하느라 정작 줄기에는 소홀하지 않았던가? 제4차산업혁명위원회는 그동안 과연 시장에 선도적인 메세지를 남겼던가? 자신의 예능적 권위를 챙기느라 공익에 소홀하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에 인터넷의 지배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가장 먼저 출현했다는 빈번한 자랑은 자랑이 아니다. 결과는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흉내만 내고 얼기설기 대충 만들고 그리고 실패하고 다른 나라에서 그것을 글로벌 서비스로 성공하면 나의 것을 베꼈다고 푸념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지만 그냥 그것은 전부 최소 2%가 부족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다. 총론에는 강하지만 본론과 결론에는 약한 전형적인 실패 패턴이고, 사전 설계와 준비가 약하고 무턱대고 빨리빨리 하라는 문화의 결과는 아니었던가.

왜 거의 모든 건축물과 구조물에 여름철 필수품인 에어콘의 설치 공간을 사전에 설계하여 반영하지 않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 상업용 건물 마다 방문객 관리용 구조물이나 주차관리를 위한 구조물을 가건물 형태로 짓는데 애초에 설계도에는 왜 반영하지 않고 덕지덕지 만들어 건물에 붙여놓는지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나서도 재해예방관리는 부실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철근을 빼먹고 마무리를 대충하고 그리하여 날림공사를 밥먹듯하는여 건축물의 수명을 고의로 단축시키는 그런 과거 건설문화의 유산을 보면, 이런 방식과 태도와 의식으로는 디지털 산업과 디지털 문화에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리 산업과 디지털 산업은 무엇보다도 언어가 다르고 운영 원리가 다르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엉성한 작업으로는 아무런 연결체제와 작동체제가 구현되지 않는다. 엉성하고 수준 낮은 SW 작업은 나중에 확장에 걸림돌이 되어 패치로 수정하는 것보다 다시 프로그래밍하는 것이 나은 것이 대다수의 프로젝트의 현실이다.

우리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여 전세계에 디지털 기기를 무수하게 팔고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5G망의 세계선도적 구축에 발빠르게 움직이는데, 이를 통해 데이터를 가져가는 여왕벌에 의해 그 데이터는 우리를 공격하는 화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그 공격을 받고 있다. 국내 5G 운영플랫폼을 포함하여 각종 플랫폼의 외국산 지배와 인앱결제의 종속적 시장 구조는 아주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마지막 플랫폼이 될 수도 있는 메타버스의 각광에 기회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말에는 희망보다는 심각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디지털신뢰공간의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어찌 모르는가?

2.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4 ㅡ 7가지의 고려사항(considerations)

데이터, AI, 메타버스…. 생소하지만 생활 속 깊이 들어온 이 모든 것들의 대한민국의 위상은 위기라고 진단된다. 원인은 무엇일까? 이런 위기의 진단은 디지털 공간 설계의 기초에 반영되어야 하는 것들인가?

전술한 연재글에서 ‘디지털 공간의 3가지 원리’를 제시할 때 나는 물리 공간의 공간 구성 요소 개념인 ‘영토’, ‘국민’, ‘주권’이라는 3가지 개념을 비유하며 ‘다른 공간’, ‘다른 디지털 공간물’, ‘다른 주권’에 대하여 소극적 그리고 적극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디지털 공간의 설계 기초 1, 2, 3’의 3편의 글들에 더하여 이번의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4’의 글은 물리 공간의 대표적 형식인 국가 그리고 국가 형성(nation building)의 기초 요소에 비유하여, 추가로 더할 고려사항(considerations)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법령 인프라’, ‘도량형 통일이라는 경제사회기준 인프라’와 ‘도로의 건설이라는 경제사회활동 인프라’에 비유되는 것들이다. 디지털 공간 관련 표준과 기준들은 법령 인프라와 경제사회기준 인프라로 비유되고, 이미 전편의 여러 글에서도 자주 언급하였다. 경제사회활동 인프라는 기본적으로 PKI 공간 구축과 디지털 인증체계라는 개념으로 자주 설명하였다.

(1) 과정산업(過程産業)의 성공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데이터 생태계 구축을 디지털 공간 설계에 반드시 담아야 하는데 아직도 그런 설계의 지침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생태계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하드웨어로 데이터를 생산해 낸들 외국 메이저들이 만들어 놓은 글로벌 인증시스템, 메타버스 운영체제, 블록체인 운영체제에 모두 빼앗길 것이 분명하다. 제4차 산업혁명위원회는 이러한 디지털 철학, 데이터 생태계, 디지털 산업 전략 없이 그저 아날로그적인 의식과 태도로 본질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야말로 대참사이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Presidential Committee of Digital Platform Government)도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위원회 멤버에는 예능인은 포함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저 외국의 동향 정보나 요약해서 내것 마냥 떠드는 사람들은 배제하여야 할 것인데 과연 그럴까?

글로벌 데이터 생태계를 만들지 못하는 디지털 산업은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생태계는 플랫폼으로 구현되며, 성공한 플랫폼은 곧 글로벌 디지털 실크로드가 된다. 과거 공업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신 글로벌 전략이 바로 이것이다.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과정이지 결과물이 아니다. 디지털 산업 역시 마찬가지고 과정산업이다.

디지털 산업은 최종결과물을 판매해 지배하는 시장이 아니다. 과정을 지배하는 산업이다. 이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

과정산업(過程産業)이라는 생경한 용어를 사용했지만 보다 이것은 그 매개체가 데이터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소위 경제활동에서의 ① 공급자 지위에 있는 기업과 ② 소비자의 지위에 있는 개인의 경우 모두 데이터를 매개로, 클라우드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재화와 서비스가 매일매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믈론 핵심적인 기술은 AI이다.

즉, 공급자도 매일매일 다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소비자인 다른 사람과 동일한 재화와 서비스의 구매 또는 사용 계약을 맺게 되지만,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설정에 의하여 동일 재화와 서비스라고 것이 계속 업데이터가 되면서 사용자간에는 그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개인 맞춤형 업데이트가 끊임없이 진행되는 과정의 시간이 연결된(connected) 재화와 서비스의 핵심 내용이 시대이다.

나의 이런 주장을 따른다면 소위 디지털 공간 설계자들은 그 디자인에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가? 이 논의 결과 역시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라는 주제에 핵심적인 것이다. 자문해보라. 그리고 특히 제9편의 글도 꼼꼼히 읽어봐야 한다. 이것도 또 중언부언할 수는 없지 않은가?

(2) 디지털 생태계를 설계하는 기본적인 준비도 부실하고 한국이라는 지역적 설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로봇을 만들고, 전기자동차를 만들고, 플랫폼을 만들고. 메타버스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공급하고 있다. 이를 일러 부실 공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디지털 공간은 없거나 있어도 흉내만 내거나 아예 인터넷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 재화와 서비스의 본질적인 디지털 공간, 디지털 세계를 창출하는 전략이 왜 필요한지 아니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CEO들은 알지 못하고 있고, 깊이 고민하지도 않는다.

구글, 애플, 아마존 등 글로벌 경쟁자들은 과정산업(過程産業)이면서 기하급수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글로벌 경쟁자들의 서비스와 솔루션에 모르는 사이에 종속되어 왔다. 경쟁자들은 이미 데이터 클라우드라는 짚더미가 무성한 배를 우리 앞바다에 대놓고 우리의 누군가가 몇 달간 몇 년간 밤새 만들었을 그 화살을 아주 쉽게 거둬들여 전투에 활용하고 있다. 그 화살이 나중에는 되려 우리를 공격하는 무기로 쓰이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대한민국에서의 모든 분야에서의 모든 조직들의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자들의 리더십은 불완전한 리더십이다. 국가와 조직의 경쟁력에 치명적인 상황을 우리는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한마디로 디지털 문맹(文盲)이고 디지털 일리터러티(digital illiterate)이다. 디지털 공간 설계가 부실한 것은 이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디지털 산업 경쟁력과 국가경쟁력 약화의 책임도 또한 이들이다. 지금까지 정보보안(information security)의 이슈도 끊임없이 시끄럽긴 마찬가지였지만 그에 대한 처방은 늘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디지털 산업으로서의 성장은 거의 불가능했고 여기서 문제를 제기하는 맥락에 동일하게 놓여 있다.

CSO(chief security officer)가 목소리를 높이는 기업문화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자신있게 목소리를 높이는 CSO도 없었다. 엉성하게 알고 있으니 주장을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조용히 하라고 하는 문화다. 이제는 더 나아가 CSO가 CDO(chief digital/data officer)가 되어야 하고, 정보보안을 포함한 디지털 신뢰공간을 책임지는 독립적인 조직을 두어야만 하는 시대이지만, 그런 구조를 가진 기관과 기업은 거의 없다.

디지털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획득하거나 얻는 것이 정말 어렵고 그래서 좌절하게 만드는 것이 또한 바로 이 지점에서다. ‘정보보안’은 부정적 어감의 개념이지만, 디지털 ‘신뢰’공간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개념이다. 게다가 부서를 가지는 것을 넘어 독립된 조직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디지털 논리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디지털 공간규범을 회피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은 늘 비일비재하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에서는 비용이어야 할 것이 비용이 아니고, 비용이 아니어야 하는 것이 비용으로 취급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나라인가? 이런 불합리와 부조리가 많아지면 사업을 일으키고 키운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사업 환경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국가경쟁력의 소리없는 침식이 발생한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3) 실물 세계의 생태계와 무엇이 정말 다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과 설계의 부재가 한국의 ICT 산업, 디지털 산업을 종속적으로 만들고 고도의 부가가치 실현에 실패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대참사. 과연 지나친 말인가? 삼성과 LG의 모든 전자 기기를 전 세계에 보급해도 이를 지배하는 힘은 우리가 아니다. 언제까지 플랫폼 부재를 탓할 것인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창조적 파괴”의 부재라고 할 것인가? “파괴적 혁신”의 결여라고 할 것인가? “개방적 역동성”의 결핍이라고 할 것인가?

사회문화의 개방적 역동성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그것은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국가, 더 나은 세계에 눈을 뜨는 것이지 않은가? 이를 위해 우리는 소통을 시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위기의 의식의 확장을 시도한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어디까지 확장되는가?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언어 ‘한글’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영토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 자신이 자기에게 무지하며 나는 내가 아니고 나는 타인에 의해 지배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주체성의 결여라고 한다. 우리가 디지털 언어에 무지하면 어찌되는가? 과거의 인류의 언어는 오랜 시간을 두고 사람들의 활동과 상호작용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생성되고 사용되면서 하나의 약속으로 자리잡았다. 디지털 언어는 인공 언어이기 때문에 새로이 창안되는 때부터 체계적인 약속에 의해 만들어진다. 물리 공간과 디지털 공간의 속성 차이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디지털 일리터러시(digital illiteracy)는 앞으로 심각한 경제사회의 문제를 낳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대한민국의 정책과 행정정보의 전달에도 심각한 난관을 일으키고 그 비용을 훨씬 더 증가시킬 것이다. 디지털 공간의 변칙적 설계와 공급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Back to the Basic/Fundamental을 주장하는 것은 디지털 공간의 환경의 정상화와 균형화를 도모하는 일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디지털 공간 설계와 유지 비용의 합리화를 도모하는 지름길이다.

(4) 이제는 디지털 기술 인력이 없으면 어떤 분야에서도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활동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덧붙여 상술하지 않겠지만 전쟁의 설계와 수행의 핵심 역량도 이제는 넓은 의미에서 디지털 기술에 달려 있다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정보기술(IT) 인력 부족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짚어볼 문제다. 올해 소프트웨어 분야 인력은 수요 대비 2만 명 이상 모자랄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들이 ‘즉시 전력’으로 평가하는 이공계 졸업생이 연간 5만 명이라면 수요는 7만 명 이상이라는 얘기다. 주로 반도체 쪽에서 심각하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자동차 기계 철강 화학처럼 디지털 전환과 산업 융복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에서도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대한민국 산업의 흥망성쇠는 학교와 기업들이 이런 고급 인력을 얼마나 잘 길러 내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기업과 산업을 통해 세상을 보지만, 그런 하드웨어를 실질적으로 움직여나가는 것은 언제나 인재와 기술이라는 소프트웨어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코로나 종착역에서 산업 고도화와 디지털 전환이라는 두 개의 새로운 임무를 받아들었다. 완수하면 흥할 것이요, 실패하면 망할 것이다. 교육과 노동개혁은 필수다. 성공하면 살 것이요, 물러서면 쇠락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최근 7월 20일 한국경제신문에 게재된 조일훈 논설실장의 글이다. 디지털 기술 인력이 하는 일은 우선적으로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 투입되지만 그들은 반드시 재화와 서비스에 동반하는 ‘디지털 공간’을 생산해야 한다. 누누이 이야기한 것이다. 메타버스만이 디지털 공간이라고 인식하는 어리석음에는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경제적 활동의 전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은 이제 디폴트 요소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경제를 설명하려면 그 용어로서도 ‘트랜스휴먼’처럼 ‘트랜스경제’라고 해야할 판이다.

(5) 개발자 공간을 만들어 제공할 수 없는 재화와 서비스는 경쟁력이 없다. 생태계 확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플랫폼의 형태이든 다른 디지털 공간이든 모든 공간 요소를 공급자가 전부 구비하여 제공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리더도 디지털 공간의 구성 요소에 대해 좀 깊이 있게 천착하여야 한다.

판을 잘 깔면 춤추는 사람들은 어디에서건 나타난다. 애플과 구글과 아마존의 세계개발자회의는 개발자 공간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다. 삼성도 개발자 컨퍼런스가 있다. 개발자모임과 개발자를 위한 디지털 공간은 본래의 재화와 서비스의 확장에 도전하는 개발자들의 흥미로운 활동 공간이다. 하나의 글로벌 기업이 공급하는 재화와 서비스는 다양하고 다수일지라도 전부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연계를 통한 연결 생태계를 만들어내야 하고 이는 디지털 공간에서 체계적으로 엮어진다.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회사가 운영하는 개발자를 위한 디지털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거나, 있어도 개발자들이 들끓지 않는다면 그 회사는 한마디로 그 재화와 서비스가 아무 매력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개발자 공간은 무한 확장이 가능한 협력 공간이다. 즐거운 협력 공간이다. 흥미로운 협력 공간이다. 디지털 경제, 디지털 산업에서 모든 것을 내가 공급하겠다는 자세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또한 디지털 산업의 흥미로운 본질적 특징이 아니겠는가?

(6)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 동반하는 디지털 공간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디지털 공간의 기초 공사에 필요한 것들과 채워야 할 것들은 이미 앞의 여러 편의 글에서 언급했다. 여기서는 추가적으로 염두에 둬야 할 것을 살펴볼 것이다.

AI는 사람을 닮아가는 중이다. 원래 그것이 목표였다. 2,000억여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거대 AI’를 넘어 1조개를 넘는 파라미터를 가진 ‘초거대 AI’가 등장하고 있다.

초거대 AI는 마치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학습하며 판단하고 행동한다. 초거대 AI의 최초 모델은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세운 ‘오픈AI’에서 2020년 처음 선보인 ‘GPT-3’다. GPT-3가 나온 이후 기업들의 초거대AI 개발 경쟁에 불이 붙었다. 구글은 1조 600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스위치 트랜스포머’(Switch Transformer), 중국 베이징 지위안 인공지능연구원은 1조 750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우다오(WuDao) 2.0’, MS와 엔비디아는 5300억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메가트론’, 알파고를 개발했던 딥마인드는 2800억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고퍼’를 선보였다.

대한민국에서는 네이버, 카카오, LG도 초거대 AI를 선보이고 있다. 2021년 5월 네이버는 2040억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하이퍼클로바’를 공개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카카오가 ‘코지피티’(KoGPT)를, LG AI연구원은 12월 국내 최대 규모인 300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엑사원’(EXAONE)을 공개했다.

여기서 말하는 ‘파라미터’란 매개변수라는 뜻이다. 인공지능이 고려하는 경우의 수를 말하는데, 매개변수가 클수록 더 정교한 대답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흔한 언론보도의 내용이다. 이런 기사를 보면서 나는 정말 제대로 된 AI 설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 또한 겉만 번지르르 한 상태가 아닌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초거대 AI 프로젝트의 기술적 맥락과 시스템 반도체 프로젝트의 기술적 맥락은 사실 동일하다. 과연 초거대 AI의 경쟁력이 얼마나 될 것인가? 시스템적 사고가 정말 지나치게도 부족한 상태에서 제대로 된 재화와 서비스가 이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초거대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어떤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다. “귀사의 초거대 AI 프로젝트 설계에서 고려하는 2,000억개의 파라미터 중에 인간 자체에 관한 것은 몇개인가요?” AI는 파라미터별로 미리 설정을 하여야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수집된 데이터에서 추출하여 판단에 사용하게 된다. 미리 설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과 다른 AI의 기본 특징이다. 그런데 이에 관한 질문은 파라미터 기준 인간과 비인간의 비중이 얼마나 다른가였는데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천만의 말씀.

여전히 인간은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AI를 바라보는데 그것은 정말 오류가 넘치는 설계가 될 것이다. 인간은 자연이면서도 자연이 아니다. 인간의 지구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 중에서도 자연 아닌 자연이다. 예를들어 우리가 기후변화의 양상을 AI를 통해 판단하는데 어떤 파라미터를 통해 얻어진 데이터로 분석하고 답을 내놓을 것인가? 인간에 직접 관련된 요소가 기후변화 양상의 판단에 얼마나 투입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거의 대부분의 파라미터가 인간 요인보다는 자연 그 자체에 내재된 수많은 요인에 의거하여 그에 따라 얻어진 데이터에 의존하여야 하는가?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이 초거대 AI에 녹아들어야 보다 나은 AI 설계가 가능하다. AI의 윤리 이슈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보다 나은 판단 능력을 가지는 AI의 설계에는 인간적 요소와 비인간적 요소에 관한 다양한 관점이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의 데이터 구조와 AI의 분석과 판단 구조에 관한 이슈이다. 이런 것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메머리 반도체를 뛰어나게 만들지만 시스템 반도체는 형편없는 현재의 반도체 경쟁력의 실상을 그대로 AI에도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모든 재화와 서비스는 단말디바이스와 같은 지위이고 그 단말디바이스가 장착한 센서는 데이터 수집의 도구이다. 테슬라의 전기자동차는 자동차 주행에만 필요한 데이터만 수집하는가? 국제물류선박은 선반항행에만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는가? 가정에 있는 TV는 어떤 정보를 수집하는가? 모든 IOT 장비는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는가? 누누이 말하지만 모든 연결 공간에서 단말디바이스의 역할은 센서라고 보고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고 구축하라는 말은 아주 여러번 했다.

그러니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는 개발자들이 이런 나의 주장을 반영하려고 할 유인은 별로 없다. 그런 고려를 누가 챙겨보라고 지시하는 사람도 없고 스스로도 챙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는 적어도 CEO 또는 CDO 정도에서 이를 가이드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지털 공간론에 눈을 떠야 한다. 정책결정자 또는 기업의 CEO가 디지털 일리터러티라면 그 조직 또는 기업은 이제 유지되기 어렵다.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들어보자. 샌프란시스코 항구에서 인천 항구로 오가는 물류 선박이 있다고 해보자. 당신이라면 그 선박에 어떤 디지털 공간을 붙여줄 것인가? 당신이라면 그 선박에 어떤 센서를 붙여줄 것인가? 약 1만 Km를 오가는 선박을 놀려먹을 것인가? 그 선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엄청난 데이터를 왜 그냥 방치하는가? 선박의 내부 상태에 관한 수많은 데이터에다가 그 선박의 행행수로에서 측정하여 얻을 수 있는 있는 수많은 해양데이터를 왜 그냥 방치하는가? AI는 왜 중요하다고 하고, 파라미터를 수천억개에서 수조개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은 왜 하는가? 데이터 공간을 포함한 디지털 공간 전략도 없이 AI 공간은 만들어질 수도 없다. 시간 지나면 흐지부지될 것은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7) 나는 바로 위의 글에서 대한민국도 자랑하고 대기업에서 추진하는 거대 AI 또는 초거대 AI 프로젝트 책임자에게 아직도 대규모 파라미터 중에 인간에 직접 관련된 파라미터의 비중을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유형의 디지털 공간 중에서 우선적으로 개발자 공간을 언급했다. 앞에서도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제품과 서비스가 글로벌 수준의 그것으로 인정받는 계기는 그냥 판매된다고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제화와 서비스가 디지털 신뢰공간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신뢰공간은 말 그래도 PKI 공간이어야 하는 것이고 PID와 DID의 유기적인 체계가 디지털 인증체계에 녹아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여러번 언급했다. 이것뿐인가? 개발자는 한국 또는 영어권에서만 사는 사람인가? 적어도 디지털 공간이 글로벌 수준에 이르고 개발자가 참여를 시작하려면 신뢰공간 요소의 구축 뿐만이 아니라 개발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언어의 장벽을 해소하여야 한다.

한글과 영어 이외에도 메이저 언어권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디지털 개발자 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마련에 도전히도록 지원하는 언어플랫폼이 그 디지털 공간에 깔려야 한다. 그래서 디지털 공간을 통해 그 재화와 서비스의 사용에서 얻어지는 다채로운 언어 정보를 그 디지털 공간에서 소화해줘야 한다. 즉 디지털 공간 설계가 다양한 언어가 사용 가능하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언어플랫폼이 부실하고 부족하다고 계속 외국 메이저의 솔루션을 도입하여 사용하면 우리는 눈뜨고 코 베이듯 “화살”을 잃어가는 셈이된다. 시작은 어렵더라도 “과정”의 산업 특성상 CEO와 정책결정자들은 꾸준한 언어플랫폼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접근 방법을 이해나 하는가? 이해는 해도 과감한 지원을 지속하는가? 이런 차원에서의 CEO와 정책결정자들의 무지는 앞에서도 말한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침식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디지털 공간은 기존에 없었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획득하는 인식 하에 설계되어야 한다. 단순한 인터넷 서비스라는 협소한 범주가 아니라 디지털 공간이라는 입체적 범주로 확장되어야 더 넓게 크게 깊게 보인다.

(2022년 7월 26일 화요일)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newdhjj@gmail.com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이번 제10편의 글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마무리하고 보냅니다.

연락처는 newdhjj@gmail.com

Posted in히스토리텔러

이한 ‘우리는 투기민족입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했고, 역사의 바다에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이야기를 찾고 있다.

물론 모르는 분야를 공부하는 것도 언제나 환영이다.

언제나 읽는 게 좋고 쓰는 것은 더 좋으므로.

역사의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지금까지 《은하환담》(공저), 《조선왕조실톡》(해설), 《역병이 창궐하다》 《요리하는 조선 남자》 《성균관의 공부벌레들》 《조선기담》 등을 썼다.

언젠가 본격적인 소설도 쓰고 싶다. 그때까지 말썽쟁이 고양이들, 또 가족들과 함께 어제와 다른 오늘 하루를 평온히, 또 무사히 쌓아가고 싶다.

저서소개_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

부동산부터 매점매석, 골드러시와 주식까지

조선을 뒤흔든 ‘영차’와 ‘영끌’의 한판 소동기!

사농공상의 질서 너머, 조선 사람들은 정말로 어떻게 먹고살았을까?

그들은 왜, 또 어떻게 부자가 되고자 했을까?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부터 이황의 편지까지 각종 사료에서 건져낸, 돈 버는 데 물불 가리지 않았던 이들의 천태만상을 소개함으로써, ‘재테크의 나라’ 조선의 색다른 면모를 살펴본다.

사료에서 건져내 재미를 더하다

간신히 청렴하고 은근히 밝힌

조선 사람들의 ‘쩐’내 나는 이야기

‘역사 커뮤니케이터’ 이한 작가, 조선 팔도를 누비며 누구보다 돈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다! 최근의 온갖 투자·투기 광풍을 지켜보던 작가는 문득 과거로 돌아간다면 떼돈을 벌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 빠진다.

그렇게 500년 전 조선 시대로까지 타임라인을 거슬러 올라가나, 그때에도 이미 ‘영끌’과 ‘영차’ 한마당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부자 되고 싶은 욕망, 돈에 대한 갈망은 오늘과 다르지 않았음이라.

저자는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 같은 조정의 공식 기록부터 이황의 편지, 노상추의 일기 같은 개인의 기록까지, 사료의 바다에서 돈과 관련된 온갖 소동을 샅샅이 건져냈다.

역사 전공자로서의 치밀함과 스토리텔러로서의 생생함을 겸비한 저자의 손을 거쳐 복원된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조선은 가히 ‘재테크의 나라’라 불릴 만했다.

개국 후에는 부동산 열풍이 한양을 휩쓸었고, 몇몇 상인 집단은 매점매석으로 큰돈을 벌어 유통 공룡이 되었다. 동시에 투자의 품격을 보여준 성리학자가 존재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주식 지옥도가 개항 도시 인천에 펼쳐졌다.

책은 바로 이 ‘가장 점잖은 속물’들의 인생 역전 분투기로 가득하다.

그들의 좌충우돌을 보노라면 ‘파이어족’이니 ‘경제적 자유’니 하는 것들을 금언처럼 떠받드는 작금의 현실이 자연스레 겹치는바, 우리가 ‘투기의 민족’임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경제사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원조 개미’들의 진짜 투기 잔혹사

수많은 역사책이 조선의 경제가 사농공상의 유교적 질서를 바탕으로 돌아갔다고 설명하지만, 작가는 ‘역사 덕후’의 기질을 발휘해 그 빈틈을 파고든다.

즉 법과 제도, 사상과 질서의 틈바구니에서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그 온갖 수단과 방법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조선 경제의 풍경은 매우 역동적이었다.

가령 조선 중기 이후의 은광 개발과 은화 유통은 ‘임진왜란의 영향’이나 ‘동아시아 은본위제의 성립’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거기에는 은맥 찾기에 투신한 농민들, 정제 기술을 개발한 장인들,

그 기술을 일본에 판 산업 스파이들, 큰돈을 투자해 은광을 사업화한 양반가의 물주들, 그들의 뒤통수를 노린 무뢰배들, 이들 모두에게 빨대를 꽂은 탐관오리들의 물고 물리는 이야기가 얽히고설켜 있다(204~220쪽).

책은 바로 이러한 이야기들에 초점을 맞춘다. 임금부터 천민까지 수많은 사람이 부동산부터 주식까지 나름의 패를 쥐고 펼친 ‘쩐’의 전쟁이라 하겠다.

한양 집값 앞에 장사 없다

조선의 수도 한양에는 집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자들이 많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서울 자가’가 그러하듯, 조선 사람들도 ‘한양 자가’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애민 정신의 대변자 정약용조차 아들들에게 “한양에서 10리 안에 살게 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졌을 정도다(19~23쪽).

이처럼 행정과 경제, 학문과 문화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많은 사람이 한양으로 향했고, 그만큼 땅값과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이러한 흐름에 올라타 돈을 번 인물로 어영청의 대장 윤태연이 유명했다(28~91쪽). 그는 권력을 이용해 어느 백성의 10칸짜리 집을 싼값에 사들인 다음, 전격적인 리모델링으로 방을 하루 만에 총 30칸까지 (쪼개어) 늘렸다.

그런 다음 이 쪽방들을 세놓아 월세를 받다가, 비싼 값에 집을 되파는 데 성공했다. 지금처럼 세련된 ‘집테크’는 아니었지만, 집의 가치를 올리는 방법만큼은 확실히 알았던 셈이다.

이 외에도 책은 다중 계약으로 보증금을 슬쩍한 전세 사기(51~53쪽),

도시 정비나 유력자들의 대저택 건설로 발생한 재개발 난민(33~34쪽, 59쪽, 73~76쪽),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초래한 조정의 부동산 정책(36~38쪽) 등을 소개한다. 이로써 바로 어제 일이라 해도 믿을 만한 500년 전 부동산 희비극이 펼쳐진다.

돈 앞에 양반, 상놈이 따로 없다

조선 사람들은 돈을 벌 때만큼은 자기 신분을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왕족이라도 돈이 없으면 숨죽여 살았고, 천민이라도 돈이 많으면 양반 부럽지 않게 살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선 후기가 되면 돈으로 신분까지 사니,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라는 속담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유정현은 이러한 시대정신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124~140쪽).

그는 조선 초 나라 살림을 책임진 관리로, 그 능력이 굉장히 탁월했다.

특히 화폐 발행과 정착을 진두지휘하며 시장경제 활성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부국에 이바지한 명재상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유명한 대부업자이기도 했다.

그것도 아주 악독해 고리로 번 돈만 오늘날 시세로 2000억 원에 달했다. 영의정이나 되어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어찌 보면 돈 버는 데 물불 가리지 않은, 가장 조선 사람다운 태도였다.

그렇다면 화폐 도입을 위해 애쓴 것도, 돈 빌리려는 사람을 늘리려는 수작 아니었을까.

이 외에도 책은 성실한 재테크로 오늘날 용산공원 규모(약 100만 평)의 농장을 소유하게 된 이황(114~118쪽),

인삼 밀수에 임금까지 끌어들인 역관 장현(144~148쪽),

고위 관리를 사위로 맞아 신분을 높이려 한 천민 부자 김내은달(173~175쪽), 유통 공룡이 되어 매점매석으로 폭리를 취한 경강상인(184~186쪽) 등을 소개한다.

이처럼 조선은 임금부터 천민까지 모두가 애써 부자 되려 한 나라였다.

야수의 시대, 야수의 심장

20세기에 들면 새로운 돈벌이 방법들이 조선에 상륙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식과 선물이었으니, 수많은 조선 사람이 생전 처음 보는 시장에 열광했다. ‘기업공개’나 ‘서킷브레이커’ 같은, 지금은 상식이 된 안전장치들이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아 한순간에 큰돈을 벌고, 또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신문들은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과 “실성해 자살”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253~255쪽).

이 와중에 거의 유일하게 큰돈을 벌고, 또 지켜낸 사람이 바로 조준호다(270~273쪽).

그는 일본과 영국에서 유학한 엘리트였는데, 단순히 머리가 비상한 차원을 넘어 ‘멘탈’이 대단했다. 1936년 일본에서 일어난 쿠데타로 ‘나라’의 존망을 걱정한 식민지 조선의 개미들이 ‘패닉 셀링’을 이어갈 때, 홀로 초연히 ‘줍줍’에 나서 오늘날 시세로 2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실현했을 정도다.

또한 조준호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투자처를 다양화했는데, 한국전쟁 후 곧바로 벽돌공장을 지어 큰돈을 벌기도 했다.

이에 ‘투자의 신’으로 불렸으니, ‘투기의 민족’이 낳은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이 외에도 책은 나라 팔아먹은 돈을 선물로 튕긴 매국노 윤택영(254~255쪽),

기생을 사 첩으로 삼기 위해 선물에 뛰어들어 오늘날 시세로 400억 원 가까이 번 유영섭(256~259쪽) 등을 소개한다.

낯설지 않은 이 이야기들은 100여 년 뒤에 벌어질 아수라장의 ‘프리퀄’ 아니었을까.

“그때 살걸!” “그때 팔걸!”

‘그때’로 돌아간다면 ‘떼돈’을 벌 수 있을까

이처럼 500여 년의 조선 역사에도 투자와 투기의 경계에서 웃고 울기를 반복한 수많은 사람이 존재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본 후 내린 저자의 결론은 그리 밝지 않다.

역사에 아무리 빠삭한들, 설사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부자 되기는 어렵다는 것! 왜냐?

인간은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이 소개하는 돈벌이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실패의 공식은 단 하나다. 조금만 더 벌려다가 몽땅 잃는다는 것이다.

가령 1900년대 활동한 반복창은 쌀 선물시장에서 오늘날 시세로 수백만 원의 돈을 300억 원 가까이 불리는 데 채 2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무리한 투자 끝에 그 큰돈을 몽땅 잃고는 선물거래소 근처를 전전하다가 객사했다. 그의 유언은 “쌀값이 오른다! 떨어진다!”였다고 한다(248~253쪽).

이와 비슷한 경우가 조선 역사 내내 반복되었다. 고리대까지 동원해 산 한양의 100칸짜리 기와집이 1년 만에 ‘깡통’이 되어 정말 깡통 찬 유만주(68~71쪽),

은광과 보가 돈이 된다는 소문에 앞뒤 따지지 않고 가산을 모두 처분해 뛰어들었다가 쫄딱 망한 안명관(199~200쪽, 209~211쪽),

제국주의의 피해자인데도 제국들이 계속해서 날뛰길 바라며 전쟁 관련 주식을 쓸어 담은 결과 평생 ‘존버’하게 된 식민지 조선의 개미들(266~267쪽)까지 그 예는 정말 무수하다.

하지만 이 욕심 많은 사람들을 손가락질하고 싶지 않은 건 왜일까.

오늘도 오르는 부동산 대출 금리에, 물도 못 탈 정도로 낮아지는 주가에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는 사람이라면 ‘원조 개미’들의 이야기에 빠져보자. 묘한 동질감과 카타르시스에 위로받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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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용 ‘동남아이야기’

동남아시아에는 ‘물은 연결하고 땅은 가로막는다’ 말이 있다. 곧 동남아는 언제나 바다로 열린 공간이었다. 시작하자 마자 저자 신일용은 나라의 경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편견을 깨트려버린다.

하나 더, 말레시아국기가 아마도 미국 국기를 참고해서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도 교정해준다. 사실은 한때 동남아를 지배했던 마자파힛 제국에서 영국 동인도 국기가, 미국기가 유래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동남아시아인들은 오래전 부터 항해를 해서 아프리카의 마다카스 칼섬 까지 갔다. 반대로 물길따라 상인도, 침략자도, 다양한 종교도 동남아로 몰려들었다. 언제나 열려있었던 동남아는 모든 외래문화를 받아들여 뒤섞은 카오스의 세계라고 한다.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가 모두 공존하는 곳이 동남아이다.

그는 지정학, 다양성, 중국인, 식민지, 부패, 잠재력이라는 6개의 키워드로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를 그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1990년에 동남아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그들 역사와 역동성을 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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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7월 24일, 마추픽추를 발견하다.

1911년 여름, 미국 고고학자 하이럼 빙엄(1875~1956)이 돌무덤의 폐허를 발견합니다. 그곳의 농부들은 원주민어로 “오래된 봉우리”를 의미하는 산을 마추픽추라고 불렀습니다. 잉카 지배층의 여름휴양지로 여겨지는 이곳은 16세기에 스페인 침략자들에 의해 무너집니다. 그 후 수백 년 동안 그 지역주민들만 알고있 는 비밀이었습니다. 하이럼 빙엄은 1922년 그의 탐험기 [잉카의 땅]을 출판했고, 이후 그의 발자취를 따라 관광객들이 잉카 페루로 몰려듭니다. 1980년 발매된 징기스칸의 노래 ‘마추픽추’로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현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