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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 ⑩ –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4

“열흘도 필요 없습니다. 화살 10만 개를 구하는데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주유(吳)로부터 요청받은 제갈량(蜀)의 말이었다. 어떻게 했을까? 제갈량은 짚단을 쌓은 배 스무 척에 병사 5명씩만 태워 밤이 어둑해질 무렵 위나라의 본진에 배를 대고 꽹과리와 북을 울렸고, 기습이라 생각한 위나라 병사들은 그 배들을 향해 수많은 화살을 날렸다. 그는 이틀을 쉬고 사흘째 단 하루만에 10만 개의 화살을 구해 왔다.

디지털 공간의 궁극적 존재 의의는 ‘화살’에 있다는 말은 여러번 했다. ‘화살’도 없이 어찌 디지털 전쟁, 디지털 경제전쟁을 치를 수 있을 것인가? 하나의 역사적 일화는 구구한 설명보다 낫다. 그러나 이런 일화처럼 디지털 공간론은 물리 공간만큼은 복잡하지는 않지만 단순하지 않다. 어떤 화살을 어떤 지역에서 어떤 방법으로 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차원에서의 숙제는 참으로 어렵다.

1. 은밀하게 침식되는 한국의 디지털 산업 패권

유쾌하지 않은 제목의 표현은 IMF가 최근 발간한 ≪달러 패권의 은밀한 침식≫ (The Stealth Erosion of Dollar Dominance: Active Diversifiers and the Rise of Nontraditional Reserve Currencies)이라는 보고서의 제목을 따왔다.

오늘날의 적은 영토침략 위협, 민주체제 위협, 식량 및 에너지 위협을 일삼는 국가만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코로나 바이러스 등의 팬데믹과 같은 인자들까지 새로운 적으로 등장하였다.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전쟁 양상 속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전쟁은 소위 “데이터 전쟁”, “플랫폼전쟁” 또는 “제4차산업혁명 전쟁”으로 불리는 디지털 경제전쟁이다. 소위 거론되는 미국 주도의 반도체(Chip 4) 동맹도 제4차산업혁명 전쟁이 아니던가.

역사적인 과거의 물량 동원 영토전쟁과는 다른 디지털 경제전쟁의 시대에 총성없는 현대의 전쟁 수행능력은 제4차 산업혁명의 성과에 의해 담보된다. 디지털 경제전쟁 전략은 전통적인 물리적인 해외 진출이 아니라, 한국 땅을 벗어나지 않더라도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지배하는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에 의해 완성된다.

지난 5년 동안 치열한 신혁명 시기에 우리는 ⓵ 시장지배적 점유율을 가진 LG TV에는 아마존의 AI인 ‘알렉사’가 탑재되고, ⓶ LG 가전 8종은 이미 AI 스피커 ‘구글 홈’과 연동을 마쳤으며, ⓷ SKT의 AI 스피커인 누구(NUGU)와 KT의 기가지니에는 LG TV가 그랬던 것처럼 아마존의 ‘알렉사’가 탑재되며, 심지어 ⓸ 삼성의 갤럭시 워치에는 빅스비가 아닌 구글 ‘어시스턴트’가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⓹ 삼성의 엑시노스를 포함한 한국의 시스템반도체 시장점유율도 처참하다는 소식이다. ⓺ 글로벌 플랫폼 하나 변변한 게 없다는 이야기는 덤일뿐인가? 대한민국의 ‘화살’을 그저 나눠주고 있는 아주 헤픈 나라인가? 이런 사례 자체에만 매달리면 또한 이는 견지망월(見指忘月)의 어리석은 일이 아니던가?

더 큰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때의 기술강국이었던 일본의 디지털 경쟁력이 추락하는 디지털 대참사의 전철을 우리나라는 밟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는가? 스마트폰, 디지털 TV, 통신 인프라 강국이라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에서 마이 데이터 사업, 데이터 댐 사업 등 ‘데이터’ 중심의 디지털 정책은 제대로 설계되고 만들어진 것인가? 적벽대전(赤壁大戰)의 일화에서 화살을 아무 생각없이 보태준 것처럼, 기껏 여왕벌에 충성하는 개미처럼, 곁가지에 치중하느라 정작 줄기에는 소홀하지 않았던가? 제4차산업혁명위원회는 그동안 과연 시장에 선도적인 메세지를 남겼던가? 자신의 예능적 권위를 챙기느라 공익에 소홀하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에 인터넷의 지배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가장 먼저 출현했다는 빈번한 자랑은 자랑이 아니다. 결과는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흉내만 내고 얼기설기 대충 만들고 그리고 실패하고 다른 나라에서 그것을 글로벌 서비스로 성공하면 나의 것을 베꼈다고 푸념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지만 그냥 그것은 전부 최소 2%가 부족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다. 총론에는 강하지만 본론과 결론에는 약한 전형적인 실패 패턴이고, 사전 설계와 준비가 약하고 무턱대고 빨리빨리 하라는 문화의 결과는 아니었던가.

왜 거의 모든 건축물과 구조물에 여름철 필수품인 에어콘의 설치 공간을 사전에 설계하여 반영하지 않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 상업용 건물 마다 방문객 관리용 구조물이나 주차관리를 위한 구조물을 가건물 형태로 짓는데 애초에 설계도에는 왜 반영하지 않고 덕지덕지 만들어 건물에 붙여놓는지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나서도 재해예방관리는 부실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철근을 빼먹고 마무리를 대충하고 그리하여 날림공사를 밥먹듯하는여 건축물의 수명을 고의로 단축시키는 그런 과거 건설문화의 유산을 보면, 이런 방식과 태도와 의식으로는 디지털 산업과 디지털 문화에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리 산업과 디지털 산업은 무엇보다도 언어가 다르고 운영 원리가 다르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엉성한 작업으로는 아무런 연결체제와 작동체제가 구현되지 않는다. 엉성하고 수준 낮은 SW 작업은 나중에 확장에 걸림돌이 되어 패치로 수정하는 것보다 다시 프로그래밍하는 것이 나은 것이 대다수의 프로젝트의 현실이다.

우리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여 전세계에 디지털 기기를 무수하게 팔고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5G망의 세계선도적 구축에 발빠르게 움직이는데, 이를 통해 데이터를 가져가는 여왕벌에 의해 그 데이터는 우리를 공격하는 화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그 공격을 받고 있다. 국내 5G 운영플랫폼을 포함하여 각종 플랫폼의 외국산 지배와 인앱결제의 종속적 시장 구조는 아주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마지막 플랫폼이 될 수도 있는 메타버스의 각광에 기회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말에는 희망보다는 심각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디지털신뢰공간의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어찌 모르는가?

2.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4 ㅡ 7가지의 고려사항(considerations)

데이터, AI, 메타버스…. 생소하지만 생활 속 깊이 들어온 이 모든 것들의 대한민국의 위상은 위기라고 진단된다. 원인은 무엇일까? 이런 위기의 진단은 디지털 공간 설계의 기초에 반영되어야 하는 것들인가?

전술한 연재글에서 ‘디지털 공간의 3가지 원리’를 제시할 때 나는 물리 공간의 공간 구성 요소 개념인 ‘영토’, ‘국민’, ‘주권’이라는 3가지 개념을 비유하며 ‘다른 공간’, ‘다른 디지털 공간물’, ‘다른 주권’에 대하여 소극적 그리고 적극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디지털 공간의 설계 기초 1, 2, 3’의 3편의 글들에 더하여 이번의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4’의 글은 물리 공간의 대표적 형식인 국가 그리고 국가 형성(nation building)의 기초 요소에 비유하여, 추가로 더할 고려사항(considerations)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법령 인프라’, ‘도량형 통일이라는 경제사회기준 인프라’와 ‘도로의 건설이라는 경제사회활동 인프라’에 비유되는 것들이다. 디지털 공간 관련 표준과 기준들은 법령 인프라와 경제사회기준 인프라로 비유되고, 이미 전편의 여러 글에서도 자주 언급하였다. 경제사회활동 인프라는 기본적으로 PKI 공간 구축과 디지털 인증체계라는 개념으로 자주 설명하였다.

(1) 과정산업(過程産業)의 성공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데이터 생태계 구축을 디지털 공간 설계에 반드시 담아야 하는데 아직도 그런 설계의 지침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생태계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하드웨어로 데이터를 생산해 낸들 외국 메이저들이 만들어 놓은 글로벌 인증시스템, 메타버스 운영체제, 블록체인 운영체제에 모두 빼앗길 것이 분명하다. 제4차 산업혁명위원회는 이러한 디지털 철학, 데이터 생태계, 디지털 산업 전략 없이 그저 아날로그적인 의식과 태도로 본질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야말로 대참사이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Presidential Committee of Digital Platform Government)도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위원회 멤버에는 예능인은 포함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저 외국의 동향 정보나 요약해서 내것 마냥 떠드는 사람들은 배제하여야 할 것인데 과연 그럴까?

글로벌 데이터 생태계를 만들지 못하는 디지털 산업은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생태계는 플랫폼으로 구현되며, 성공한 플랫폼은 곧 글로벌 디지털 실크로드가 된다. 과거 공업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신 글로벌 전략이 바로 이것이다.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과정이지 결과물이 아니다. 디지털 산업 역시 마찬가지고 과정산업이다.

디지털 산업은 최종결과물을 판매해 지배하는 시장이 아니다. 과정을 지배하는 산업이다. 이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

과정산업(過程産業)이라는 생경한 용어를 사용했지만 보다 이것은 그 매개체가 데이터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소위 경제활동에서의 ① 공급자 지위에 있는 기업과 ② 소비자의 지위에 있는 개인의 경우 모두 데이터를 매개로, 클라우드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재화와 서비스가 매일매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믈론 핵심적인 기술은 AI이다.

즉, 공급자도 매일매일 다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소비자인 다른 사람과 동일한 재화와 서비스의 구매 또는 사용 계약을 맺게 되지만,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설정에 의하여 동일 재화와 서비스라고 것이 계속 업데이터가 되면서 사용자간에는 그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개인 맞춤형 업데이트가 끊임없이 진행되는 과정의 시간이 연결된(connected) 재화와 서비스의 핵심 내용이 시대이다.

나의 이런 주장을 따른다면 소위 디지털 공간 설계자들은 그 디자인에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가? 이 논의 결과 역시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라는 주제에 핵심적인 것이다. 자문해보라. 그리고 특히 제9편의 글도 꼼꼼히 읽어봐야 한다. 이것도 또 중언부언할 수는 없지 않은가?

(2) 디지털 생태계를 설계하는 기본적인 준비도 부실하고 한국이라는 지역적 설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로봇을 만들고, 전기자동차를 만들고, 플랫폼을 만들고. 메타버스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공급하고 있다. 이를 일러 부실 공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디지털 공간은 없거나 있어도 흉내만 내거나 아예 인터넷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 재화와 서비스의 본질적인 디지털 공간, 디지털 세계를 창출하는 전략이 왜 필요한지 아니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CEO들은 알지 못하고 있고, 깊이 고민하지도 않는다.

구글, 애플, 아마존 등 글로벌 경쟁자들은 과정산업(過程産業)이면서 기하급수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글로벌 경쟁자들의 서비스와 솔루션에 모르는 사이에 종속되어 왔다. 경쟁자들은 이미 데이터 클라우드라는 짚더미가 무성한 배를 우리 앞바다에 대놓고 우리의 누군가가 몇 달간 몇 년간 밤새 만들었을 그 화살을 아주 쉽게 거둬들여 전투에 활용하고 있다. 그 화살이 나중에는 되려 우리를 공격하는 무기로 쓰이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대한민국에서의 모든 분야에서의 모든 조직들의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자들의 리더십은 불완전한 리더십이다. 국가와 조직의 경쟁력에 치명적인 상황을 우리는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한마디로 디지털 문맹(文盲)이고 디지털 일리터러티(digital illiterate)이다. 디지털 공간 설계가 부실한 것은 이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디지털 산업 경쟁력과 국가경쟁력 약화의 책임도 또한 이들이다. 지금까지 정보보안(information security)의 이슈도 끊임없이 시끄럽긴 마찬가지였지만 그에 대한 처방은 늘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디지털 산업으로서의 성장은 거의 불가능했고 여기서 문제를 제기하는 맥락에 동일하게 놓여 있다.

CSO(chief security officer)가 목소리를 높이는 기업문화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자신있게 목소리를 높이는 CSO도 없었다. 엉성하게 알고 있으니 주장을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조용히 하라고 하는 문화다. 이제는 더 나아가 CSO가 CDO(chief digital/data officer)가 되어야 하고, 정보보안을 포함한 디지털 신뢰공간을 책임지는 독립적인 조직을 두어야만 하는 시대이지만, 그런 구조를 가진 기관과 기업은 거의 없다.

디지털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획득하거나 얻는 것이 정말 어렵고 그래서 좌절하게 만드는 것이 또한 바로 이 지점에서다. ‘정보보안’은 부정적 어감의 개념이지만, 디지털 ‘신뢰’공간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개념이다. 게다가 부서를 가지는 것을 넘어 독립된 조직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디지털 논리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디지털 공간규범을 회피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은 늘 비일비재하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에서는 비용이어야 할 것이 비용이 아니고, 비용이 아니어야 하는 것이 비용으로 취급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나라인가? 이런 불합리와 부조리가 많아지면 사업을 일으키고 키운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사업 환경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국가경쟁력의 소리없는 침식이 발생한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3) 실물 세계의 생태계와 무엇이 정말 다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과 설계의 부재가 한국의 ICT 산업, 디지털 산업을 종속적으로 만들고 고도의 부가가치 실현에 실패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대참사. 과연 지나친 말인가? 삼성과 LG의 모든 전자 기기를 전 세계에 보급해도 이를 지배하는 힘은 우리가 아니다. 언제까지 플랫폼 부재를 탓할 것인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창조적 파괴”의 부재라고 할 것인가? “파괴적 혁신”의 결여라고 할 것인가? “개방적 역동성”의 결핍이라고 할 것인가?

사회문화의 개방적 역동성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그것은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국가, 더 나은 세계에 눈을 뜨는 것이지 않은가? 이를 위해 우리는 소통을 시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위기의 의식의 확장을 시도한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어디까지 확장되는가?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언어 ‘한글’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영토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 자신이 자기에게 무지하며 나는 내가 아니고 나는 타인에 의해 지배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주체성의 결여라고 한다. 우리가 디지털 언어에 무지하면 어찌되는가? 과거의 인류의 언어는 오랜 시간을 두고 사람들의 활동과 상호작용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생성되고 사용되면서 하나의 약속으로 자리잡았다. 디지털 언어는 인공 언어이기 때문에 새로이 창안되는 때부터 체계적인 약속에 의해 만들어진다. 물리 공간과 디지털 공간의 속성 차이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디지털 일리터러시(digital illiteracy)는 앞으로 심각한 경제사회의 문제를 낳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대한민국의 정책과 행정정보의 전달에도 심각한 난관을 일으키고 그 비용을 훨씬 더 증가시킬 것이다. 디지털 공간의 변칙적 설계와 공급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Back to the Basic/Fundamental을 주장하는 것은 디지털 공간의 환경의 정상화와 균형화를 도모하는 일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디지털 공간 설계와 유지 비용의 합리화를 도모하는 지름길이다.

(4) 이제는 디지털 기술 인력이 없으면 어떤 분야에서도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활동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덧붙여 상술하지 않겠지만 전쟁의 설계와 수행의 핵심 역량도 이제는 넓은 의미에서 디지털 기술에 달려 있다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정보기술(IT) 인력 부족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짚어볼 문제다. 올해 소프트웨어 분야 인력은 수요 대비 2만 명 이상 모자랄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들이 ‘즉시 전력’으로 평가하는 이공계 졸업생이 연간 5만 명이라면 수요는 7만 명 이상이라는 얘기다. 주로 반도체 쪽에서 심각하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자동차 기계 철강 화학처럼 디지털 전환과 산업 융복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에서도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대한민국 산업의 흥망성쇠는 학교와 기업들이 이런 고급 인력을 얼마나 잘 길러 내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기업과 산업을 통해 세상을 보지만, 그런 하드웨어를 실질적으로 움직여나가는 것은 언제나 인재와 기술이라는 소프트웨어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코로나 종착역에서 산업 고도화와 디지털 전환이라는 두 개의 새로운 임무를 받아들었다. 완수하면 흥할 것이요, 실패하면 망할 것이다. 교육과 노동개혁은 필수다. 성공하면 살 것이요, 물러서면 쇠락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최근 7월 20일 한국경제신문에 게재된 조일훈 논설실장의 글이다. 디지털 기술 인력이 하는 일은 우선적으로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 투입되지만 그들은 반드시 재화와 서비스에 동반하는 ‘디지털 공간’을 생산해야 한다. 누누이 이야기한 것이다. 메타버스만이 디지털 공간이라고 인식하는 어리석음에는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경제적 활동의 전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은 이제 디폴트 요소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경제를 설명하려면 그 용어로서도 ‘트랜스휴먼’처럼 ‘트랜스경제’라고 해야할 판이다.

(5) 개발자 공간을 만들어 제공할 수 없는 재화와 서비스는 경쟁력이 없다. 생태계 확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플랫폼의 형태이든 다른 디지털 공간이든 모든 공간 요소를 공급자가 전부 구비하여 제공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리더도 디지털 공간의 구성 요소에 대해 좀 깊이 있게 천착하여야 한다.

판을 잘 깔면 춤추는 사람들은 어디에서건 나타난다. 애플과 구글과 아마존의 세계개발자회의는 개발자 공간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다. 삼성도 개발자 컨퍼런스가 있다. 개발자모임과 개발자를 위한 디지털 공간은 본래의 재화와 서비스의 확장에 도전하는 개발자들의 흥미로운 활동 공간이다. 하나의 글로벌 기업이 공급하는 재화와 서비스는 다양하고 다수일지라도 전부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연계를 통한 연결 생태계를 만들어내야 하고 이는 디지털 공간에서 체계적으로 엮어진다.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회사가 운영하는 개발자를 위한 디지털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거나, 있어도 개발자들이 들끓지 않는다면 그 회사는 한마디로 그 재화와 서비스가 아무 매력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개발자 공간은 무한 확장이 가능한 협력 공간이다. 즐거운 협력 공간이다. 흥미로운 협력 공간이다. 디지털 경제, 디지털 산업에서 모든 것을 내가 공급하겠다는 자세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또한 디지털 산업의 흥미로운 본질적 특징이 아니겠는가?

(6)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 동반하는 디지털 공간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디지털 공간의 기초 공사에 필요한 것들과 채워야 할 것들은 이미 앞의 여러 편의 글에서 언급했다. 여기서는 추가적으로 염두에 둬야 할 것을 살펴볼 것이다.

AI는 사람을 닮아가는 중이다. 원래 그것이 목표였다. 2,000억여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거대 AI’를 넘어 1조개를 넘는 파라미터를 가진 ‘초거대 AI’가 등장하고 있다.

초거대 AI는 마치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학습하며 판단하고 행동한다. 초거대 AI의 최초 모델은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세운 ‘오픈AI’에서 2020년 처음 선보인 ‘GPT-3’다. GPT-3가 나온 이후 기업들의 초거대AI 개발 경쟁에 불이 붙었다. 구글은 1조 600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스위치 트랜스포머’(Switch Transformer), 중국 베이징 지위안 인공지능연구원은 1조 750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우다오(WuDao) 2.0’, MS와 엔비디아는 5300억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메가트론’, 알파고를 개발했던 딥마인드는 2800억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고퍼’를 선보였다.

대한민국에서는 네이버, 카카오, LG도 초거대 AI를 선보이고 있다. 2021년 5월 네이버는 2040억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하이퍼클로바’를 공개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카카오가 ‘코지피티’(KoGPT)를, LG AI연구원은 12월 국내 최대 규모인 300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엑사원’(EXAONE)을 공개했다.

여기서 말하는 ‘파라미터’란 매개변수라는 뜻이다. 인공지능이 고려하는 경우의 수를 말하는데, 매개변수가 클수록 더 정교한 대답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흔한 언론보도의 내용이다. 이런 기사를 보면서 나는 정말 제대로 된 AI 설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 또한 겉만 번지르르 한 상태가 아닌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초거대 AI 프로젝트의 기술적 맥락과 시스템 반도체 프로젝트의 기술적 맥락은 사실 동일하다. 과연 초거대 AI의 경쟁력이 얼마나 될 것인가? 시스템적 사고가 정말 지나치게도 부족한 상태에서 제대로 된 재화와 서비스가 이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초거대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어떤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다. “귀사의 초거대 AI 프로젝트 설계에서 고려하는 2,000억개의 파라미터 중에 인간 자체에 관한 것은 몇개인가요?” AI는 파라미터별로 미리 설정을 하여야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수집된 데이터에서 추출하여 판단에 사용하게 된다. 미리 설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과 다른 AI의 기본 특징이다. 그런데 이에 관한 질문은 파라미터 기준 인간과 비인간의 비중이 얼마나 다른가였는데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천만의 말씀.

여전히 인간은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AI를 바라보는데 그것은 정말 오류가 넘치는 설계가 될 것이다. 인간은 자연이면서도 자연이 아니다. 인간의 지구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 중에서도 자연 아닌 자연이다. 예를들어 우리가 기후변화의 양상을 AI를 통해 판단하는데 어떤 파라미터를 통해 얻어진 데이터로 분석하고 답을 내놓을 것인가? 인간에 직접 관련된 요소가 기후변화 양상의 판단에 얼마나 투입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거의 대부분의 파라미터가 인간 요인보다는 자연 그 자체에 내재된 수많은 요인에 의거하여 그에 따라 얻어진 데이터에 의존하여야 하는가?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이 초거대 AI에 녹아들어야 보다 나은 AI 설계가 가능하다. AI의 윤리 이슈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보다 나은 판단 능력을 가지는 AI의 설계에는 인간적 요소와 비인간적 요소에 관한 다양한 관점이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의 데이터 구조와 AI의 분석과 판단 구조에 관한 이슈이다. 이런 것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메머리 반도체를 뛰어나게 만들지만 시스템 반도체는 형편없는 현재의 반도체 경쟁력의 실상을 그대로 AI에도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모든 재화와 서비스는 단말디바이스와 같은 지위이고 그 단말디바이스가 장착한 센서는 데이터 수집의 도구이다. 테슬라의 전기자동차는 자동차 주행에만 필요한 데이터만 수집하는가? 국제물류선박은 선반항행에만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는가? 가정에 있는 TV는 어떤 정보를 수집하는가? 모든 IOT 장비는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는가? 누누이 말하지만 모든 연결 공간에서 단말디바이스의 역할은 센서라고 보고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고 구축하라는 말은 아주 여러번 했다.

그러니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는 개발자들이 이런 나의 주장을 반영하려고 할 유인은 별로 없다. 그런 고려를 누가 챙겨보라고 지시하는 사람도 없고 스스로도 챙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는 적어도 CEO 또는 CDO 정도에서 이를 가이드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지털 공간론에 눈을 떠야 한다. 정책결정자 또는 기업의 CEO가 디지털 일리터러티라면 그 조직 또는 기업은 이제 유지되기 어렵다.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들어보자. 샌프란시스코 항구에서 인천 항구로 오가는 물류 선박이 있다고 해보자. 당신이라면 그 선박에 어떤 디지털 공간을 붙여줄 것인가? 당신이라면 그 선박에 어떤 센서를 붙여줄 것인가? 약 1만 Km를 오가는 선박을 놀려먹을 것인가? 그 선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엄청난 데이터를 왜 그냥 방치하는가? 선박의 내부 상태에 관한 수많은 데이터에다가 그 선박의 행행수로에서 측정하여 얻을 수 있는 있는 수많은 해양데이터를 왜 그냥 방치하는가? AI는 왜 중요하다고 하고, 파라미터를 수천억개에서 수조개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은 왜 하는가? 데이터 공간을 포함한 디지털 공간 전략도 없이 AI 공간은 만들어질 수도 없다. 시간 지나면 흐지부지될 것은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7) 나는 바로 위의 글에서 대한민국도 자랑하고 대기업에서 추진하는 거대 AI 또는 초거대 AI 프로젝트 책임자에게 아직도 대규모 파라미터 중에 인간에 직접 관련된 파라미터의 비중을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유형의 디지털 공간 중에서 우선적으로 개발자 공간을 언급했다. 앞에서도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제품과 서비스가 글로벌 수준의 그것으로 인정받는 계기는 그냥 판매된다고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제화와 서비스가 디지털 신뢰공간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신뢰공간은 말 그래도 PKI 공간이어야 하는 것이고 PID와 DID의 유기적인 체계가 디지털 인증체계에 녹아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여러번 언급했다. 이것뿐인가? 개발자는 한국 또는 영어권에서만 사는 사람인가? 적어도 디지털 공간이 글로벌 수준에 이르고 개발자가 참여를 시작하려면 신뢰공간 요소의 구축 뿐만이 아니라 개발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언어의 장벽을 해소하여야 한다.

한글과 영어 이외에도 메이저 언어권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디지털 개발자 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마련에 도전히도록 지원하는 언어플랫폼이 그 디지털 공간에 깔려야 한다. 그래서 디지털 공간을 통해 그 재화와 서비스의 사용에서 얻어지는 다채로운 언어 정보를 그 디지털 공간에서 소화해줘야 한다. 즉 디지털 공간 설계가 다양한 언어가 사용 가능하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언어플랫폼이 부실하고 부족하다고 계속 외국 메이저의 솔루션을 도입하여 사용하면 우리는 눈뜨고 코 베이듯 “화살”을 잃어가는 셈이된다. 시작은 어렵더라도 “과정”의 산업 특성상 CEO와 정책결정자들은 꾸준한 언어플랫폼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접근 방법을 이해나 하는가? 이해는 해도 과감한 지원을 지속하는가? 이런 차원에서의 CEO와 정책결정자들의 무지는 앞에서도 말한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침식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디지털 공간은 기존에 없었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획득하는 인식 하에 설계되어야 한다. 단순한 인터넷 서비스라는 협소한 범주가 아니라 디지털 공간이라는 입체적 범주로 확장되어야 더 넓게 크게 깊게 보인다.

(2022년 7월 26일 화요일)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newdhjj@gmail.com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이번 제10편의 글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마무리하고 보냅니다.

연락처는 newdhjj@gmail.com

Posted in히스토리텔러

이한 ‘우리는 투기민족입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했고, 역사의 바다에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이야기를 찾고 있다.

물론 모르는 분야를 공부하는 것도 언제나 환영이다.

언제나 읽는 게 좋고 쓰는 것은 더 좋으므로.

역사의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지금까지 《은하환담》(공저), 《조선왕조실톡》(해설), 《역병이 창궐하다》 《요리하는 조선 남자》 《성균관의 공부벌레들》 《조선기담》 등을 썼다.

언젠가 본격적인 소설도 쓰고 싶다. 그때까지 말썽쟁이 고양이들, 또 가족들과 함께 어제와 다른 오늘 하루를 평온히, 또 무사히 쌓아가고 싶다.

저서소개_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

부동산부터 매점매석, 골드러시와 주식까지

조선을 뒤흔든 ‘영차’와 ‘영끌’의 한판 소동기!

사농공상의 질서 너머, 조선 사람들은 정말로 어떻게 먹고살았을까?

그들은 왜, 또 어떻게 부자가 되고자 했을까?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부터 이황의 편지까지 각종 사료에서 건져낸, 돈 버는 데 물불 가리지 않았던 이들의 천태만상을 소개함으로써, ‘재테크의 나라’ 조선의 색다른 면모를 살펴본다.

사료에서 건져내 재미를 더하다

간신히 청렴하고 은근히 밝힌

조선 사람들의 ‘쩐’내 나는 이야기

‘역사 커뮤니케이터’ 이한 작가, 조선 팔도를 누비며 누구보다 돈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다! 최근의 온갖 투자·투기 광풍을 지켜보던 작가는 문득 과거로 돌아간다면 떼돈을 벌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 빠진다.

그렇게 500년 전 조선 시대로까지 타임라인을 거슬러 올라가나, 그때에도 이미 ‘영끌’과 ‘영차’ 한마당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부자 되고 싶은 욕망, 돈에 대한 갈망은 오늘과 다르지 않았음이라.

저자는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 같은 조정의 공식 기록부터 이황의 편지, 노상추의 일기 같은 개인의 기록까지, 사료의 바다에서 돈과 관련된 온갖 소동을 샅샅이 건져냈다.

역사 전공자로서의 치밀함과 스토리텔러로서의 생생함을 겸비한 저자의 손을 거쳐 복원된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조선은 가히 ‘재테크의 나라’라 불릴 만했다.

개국 후에는 부동산 열풍이 한양을 휩쓸었고, 몇몇 상인 집단은 매점매석으로 큰돈을 벌어 유통 공룡이 되었다. 동시에 투자의 품격을 보여준 성리학자가 존재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주식 지옥도가 개항 도시 인천에 펼쳐졌다.

책은 바로 이 ‘가장 점잖은 속물’들의 인생 역전 분투기로 가득하다.

그들의 좌충우돌을 보노라면 ‘파이어족’이니 ‘경제적 자유’니 하는 것들을 금언처럼 떠받드는 작금의 현실이 자연스레 겹치는바, 우리가 ‘투기의 민족’임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경제사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원조 개미’들의 진짜 투기 잔혹사

수많은 역사책이 조선의 경제가 사농공상의 유교적 질서를 바탕으로 돌아갔다고 설명하지만, 작가는 ‘역사 덕후’의 기질을 발휘해 그 빈틈을 파고든다.

즉 법과 제도, 사상과 질서의 틈바구니에서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그 온갖 수단과 방법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조선 경제의 풍경은 매우 역동적이었다.

가령 조선 중기 이후의 은광 개발과 은화 유통은 ‘임진왜란의 영향’이나 ‘동아시아 은본위제의 성립’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거기에는 은맥 찾기에 투신한 농민들, 정제 기술을 개발한 장인들,

그 기술을 일본에 판 산업 스파이들, 큰돈을 투자해 은광을 사업화한 양반가의 물주들, 그들의 뒤통수를 노린 무뢰배들, 이들 모두에게 빨대를 꽂은 탐관오리들의 물고 물리는 이야기가 얽히고설켜 있다(204~220쪽).

책은 바로 이러한 이야기들에 초점을 맞춘다. 임금부터 천민까지 수많은 사람이 부동산부터 주식까지 나름의 패를 쥐고 펼친 ‘쩐’의 전쟁이라 하겠다.

한양 집값 앞에 장사 없다

조선의 수도 한양에는 집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자들이 많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서울 자가’가 그러하듯, 조선 사람들도 ‘한양 자가’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애민 정신의 대변자 정약용조차 아들들에게 “한양에서 10리 안에 살게 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졌을 정도다(19~23쪽).

이처럼 행정과 경제, 학문과 문화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많은 사람이 한양으로 향했고, 그만큼 땅값과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이러한 흐름에 올라타 돈을 번 인물로 어영청의 대장 윤태연이 유명했다(28~91쪽). 그는 권력을 이용해 어느 백성의 10칸짜리 집을 싼값에 사들인 다음, 전격적인 리모델링으로 방을 하루 만에 총 30칸까지 (쪼개어) 늘렸다.

그런 다음 이 쪽방들을 세놓아 월세를 받다가, 비싼 값에 집을 되파는 데 성공했다. 지금처럼 세련된 ‘집테크’는 아니었지만, 집의 가치를 올리는 방법만큼은 확실히 알았던 셈이다.

이 외에도 책은 다중 계약으로 보증금을 슬쩍한 전세 사기(51~53쪽),

도시 정비나 유력자들의 대저택 건설로 발생한 재개발 난민(33~34쪽, 59쪽, 73~76쪽),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초래한 조정의 부동산 정책(36~38쪽) 등을 소개한다. 이로써 바로 어제 일이라 해도 믿을 만한 500년 전 부동산 희비극이 펼쳐진다.

돈 앞에 양반, 상놈이 따로 없다

조선 사람들은 돈을 벌 때만큼은 자기 신분을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왕족이라도 돈이 없으면 숨죽여 살았고, 천민이라도 돈이 많으면 양반 부럽지 않게 살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선 후기가 되면 돈으로 신분까지 사니,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라는 속담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유정현은 이러한 시대정신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124~140쪽).

그는 조선 초 나라 살림을 책임진 관리로, 그 능력이 굉장히 탁월했다.

특히 화폐 발행과 정착을 진두지휘하며 시장경제 활성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부국에 이바지한 명재상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유명한 대부업자이기도 했다.

그것도 아주 악독해 고리로 번 돈만 오늘날 시세로 2000억 원에 달했다. 영의정이나 되어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어찌 보면 돈 버는 데 물불 가리지 않은, 가장 조선 사람다운 태도였다.

그렇다면 화폐 도입을 위해 애쓴 것도, 돈 빌리려는 사람을 늘리려는 수작 아니었을까.

이 외에도 책은 성실한 재테크로 오늘날 용산공원 규모(약 100만 평)의 농장을 소유하게 된 이황(114~118쪽),

인삼 밀수에 임금까지 끌어들인 역관 장현(144~148쪽),

고위 관리를 사위로 맞아 신분을 높이려 한 천민 부자 김내은달(173~175쪽), 유통 공룡이 되어 매점매석으로 폭리를 취한 경강상인(184~186쪽) 등을 소개한다.

이처럼 조선은 임금부터 천민까지 모두가 애써 부자 되려 한 나라였다.

야수의 시대, 야수의 심장

20세기에 들면 새로운 돈벌이 방법들이 조선에 상륙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식과 선물이었으니, 수많은 조선 사람이 생전 처음 보는 시장에 열광했다. ‘기업공개’나 ‘서킷브레이커’ 같은, 지금은 상식이 된 안전장치들이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아 한순간에 큰돈을 벌고, 또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신문들은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과 “실성해 자살”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253~255쪽).

이 와중에 거의 유일하게 큰돈을 벌고, 또 지켜낸 사람이 바로 조준호다(270~273쪽).

그는 일본과 영국에서 유학한 엘리트였는데, 단순히 머리가 비상한 차원을 넘어 ‘멘탈’이 대단했다. 1936년 일본에서 일어난 쿠데타로 ‘나라’의 존망을 걱정한 식민지 조선의 개미들이 ‘패닉 셀링’을 이어갈 때, 홀로 초연히 ‘줍줍’에 나서 오늘날 시세로 2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실현했을 정도다.

또한 조준호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투자처를 다양화했는데, 한국전쟁 후 곧바로 벽돌공장을 지어 큰돈을 벌기도 했다.

이에 ‘투자의 신’으로 불렸으니, ‘투기의 민족’이 낳은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이 외에도 책은 나라 팔아먹은 돈을 선물로 튕긴 매국노 윤택영(254~255쪽),

기생을 사 첩으로 삼기 위해 선물에 뛰어들어 오늘날 시세로 400억 원 가까이 번 유영섭(256~259쪽) 등을 소개한다.

낯설지 않은 이 이야기들은 100여 년 뒤에 벌어질 아수라장의 ‘프리퀄’ 아니었을까.

“그때 살걸!” “그때 팔걸!”

‘그때’로 돌아간다면 ‘떼돈’을 벌 수 있을까

이처럼 500여 년의 조선 역사에도 투자와 투기의 경계에서 웃고 울기를 반복한 수많은 사람이 존재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본 후 내린 저자의 결론은 그리 밝지 않다.

역사에 아무리 빠삭한들, 설사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부자 되기는 어렵다는 것! 왜냐?

인간은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이 소개하는 돈벌이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실패의 공식은 단 하나다. 조금만 더 벌려다가 몽땅 잃는다는 것이다.

가령 1900년대 활동한 반복창은 쌀 선물시장에서 오늘날 시세로 수백만 원의 돈을 300억 원 가까이 불리는 데 채 2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무리한 투자 끝에 그 큰돈을 몽땅 잃고는 선물거래소 근처를 전전하다가 객사했다. 그의 유언은 “쌀값이 오른다! 떨어진다!”였다고 한다(248~253쪽).

이와 비슷한 경우가 조선 역사 내내 반복되었다. 고리대까지 동원해 산 한양의 100칸짜리 기와집이 1년 만에 ‘깡통’이 되어 정말 깡통 찬 유만주(68~71쪽),

은광과 보가 돈이 된다는 소문에 앞뒤 따지지 않고 가산을 모두 처분해 뛰어들었다가 쫄딱 망한 안명관(199~200쪽, 209~211쪽),

제국주의의 피해자인데도 제국들이 계속해서 날뛰길 바라며 전쟁 관련 주식을 쓸어 담은 결과 평생 ‘존버’하게 된 식민지 조선의 개미들(266~267쪽)까지 그 예는 정말 무수하다.

하지만 이 욕심 많은 사람들을 손가락질하고 싶지 않은 건 왜일까.

오늘도 오르는 부동산 대출 금리에, 물도 못 탈 정도로 낮아지는 주가에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는 사람이라면 ‘원조 개미’들의 이야기에 빠져보자. 묘한 동질감과 카타르시스에 위로받을지 모른다

Posted in강연후기종합

신일용 ‘동남아이야기’

동남아시아에는 ‘물은 연결하고 땅은 가로막는다’ 말이 있다. 곧 동남아는 언제나 바다로 열린 공간이었다. 시작하자 마자 저자 신일용은 나라의 경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편견을 깨트려버린다.

하나 더, 말레시아국기가 아마도 미국 국기를 참고해서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도 교정해준다. 사실은 한때 동남아를 지배했던 마자파힛 제국에서 영국 동인도 국기가, 미국기가 유래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동남아시아인들은 오래전 부터 항해를 해서 아프리카의 마다카스 칼섬 까지 갔다. 반대로 물길따라 상인도, 침략자도, 다양한 종교도 동남아로 몰려들었다. 언제나 열려있었던 동남아는 모든 외래문화를 받아들여 뒤섞은 카오스의 세계라고 한다.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가 모두 공존하는 곳이 동남아이다.

그는 지정학, 다양성, 중국인, 식민지, 부패, 잠재력이라는 6개의 키워드로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를 그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1990년에 동남아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그들 역사와 역동성을 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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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7월 24일, 마추픽추를 발견하다.

1911년 여름, 미국 고고학자 하이럼 빙엄(1875~1956)이 돌무덤의 폐허를 발견합니다. 그곳의 농부들은 원주민어로 “오래된 봉우리”를 의미하는 산을 마추픽추라고 불렀습니다. 잉카 지배층의 여름휴양지로 여겨지는 이곳은 16세기에 스페인 침략자들에 의해 무너집니다. 그 후 수백 년 동안 그 지역주민들만 알고있 는 비밀이었습니다. 하이럼 빙엄은 1922년 그의 탐험기 [잉카의 땅]을 출판했고, 이후 그의 발자취를 따라 관광객들이 잉카 페루로 몰려듭니다. 1980년 발매된 징기스칸의 노래 ‘마추픽추’로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현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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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 ⑨ –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3

  • 경제, 디지털경제 그리고 트랜스경제

이 글을 착상하고 주1회 집필에 착수하던 당시 나는 디지털·인터넷·IT와 같은 키워드를 잘 버무려 지나친 이상론적 주장도 아니고 과도한 상투적 주장도 아닌 참신한 관점으로서 디지털론과 디지털공간론을 제시하되, 디지털 문명론이라는 색깔도 입혀보려고 작정했었다.

게다가 디지털·인터넷·IT가 디지털산업 자체를 구성하면서 동시에 전 산업분야의 재화와 서비스의 질과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는 혁신 요소라는 점을 다시금 일깨우면서 그 전략을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이라는 제목 아래 아래 제안하려는 의도에서 이 글이 비롯되었다. 물론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경제 경쟁력, 디지털 산업 경쟁력의 저하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이 글을 집필하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거시적으로보면 ‘경제철학의 전환’을 도모하여야 하는데, 이는 디지털 경제(digital economy)의 패러다임적 요소의 도입이 핵심적인 방향이라고 할 것이고, 미시적으로는 디지털경제의 핵심 요소를 기존 경제프레임웍의 혁신 요소로 결합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접근 방법들을 발굴하여 추진하는 것인데, 거시와 미시를 연결하는 중시적 접근방법으로서 ‘디지털 공간론’이 자리를 차지할만 하다고 생각했다.

경제로서의 디지털경제(digital economy)의 의미는 일의적으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디지털경제(digital economy)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분배, 소비 등 주요 경제활동이 ‘디지털화되고 네트워크화된 정보와 지식’이라는 생산요소에 주로 의존하는 경제를 의미한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는 아주 제한된 정의일뿐더러 유발·전환 요소인 디지털·인터넷·IT는 경제활동 뿐만이 아니라, 경제구조 자체를 급격히 변환시키는 전면적인 영향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정의가 요구된다.

즉 디지털·인터넷·IT는 기존의 생산요소에 더해 져야 할 뿐더러, 동시에 생산구조의 패러다임 차원의 변경을 초래하는 거시적 요인으로서, 따라서 디지털경제가 기존의 전통적 용어인 경제와 독립된 개념이면서 유행어로서가 아니라, ‘경제’ 자체의 정의를 바꿔야 할 정도의 속성으로서의 요소이기에 이를 담은 ‘경제’ 자체의 개념 정의가 필요한 것이다. 후술하는 ‘혁신’이라는 요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를 반영한 새로운 경제철학을 설파하는 글을 찾기는 어렵다. 어쩌면 이는 디지털·인터넷·IT에 의한 인간의 변이를 ‘트랜스 휴먼’ (transhuman)이라는 용어로는 일응 표현하지만 변이 과정의 ‘인간’을 정의 내리기가 어려운 것과 같이 제4차 산업혁명과 접목되는 경제의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것은 같은 맥락에 놓여 있지 않은가? 이와 관련된 관점은 앞으로도 ‘디지털 공간론’에 계속적으로 불려나올 것이다. 우리가 디지털·인터넷·IT가 스며든 인간(Human)을 transHuman이라고 하듯, transEconomy이라는 용어로써 경제(Economy)를 대신하는 개념으로 삼아야 할까?

2. 국가경쟁력의 현실태

거의 모든 분야에 변화와 변이를 야기하는 패러다임 변화의 시대인데도 디지털·인터넷·IT를 속성으로 내포한 개념의 정의가 어려운 이유는 왜일까? 제8편의 글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여러가지 변화의 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지만, 소위 사회과학과 기술과학의 언어의 이질성과 상호 이해의 극심한 부족 때문이다. 그 분절과 단절이 심화되는 상황은 경제 주체인 정부와 기업의 정책결정자들의 의사결정에 상당한 오류를 야기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나도 디지털·인터넷·IT에 대한 이해가 낮은데, 나의 글 마저도 어렵다고 할 지경이라는 것은 갈수록 인문사회과학과 과학기술분야의 분절과 단절의 간극은 좁혀지기 어렵고 정부정책과 시장현실과의 빙탄불상용 상태는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간극의 크기는 교육정책과 학제의 탓이든 기술폄하의 사회적 가치의 편향성 때문이든 유독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더 크게 확대되고 있다는 것도 우려할 만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이유때문이기도 하면서도 내가 제안하고 있는 ‘디지털 공간론’에 입각한 적절한 디지털 혁신 전략 부재로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경쟁력은 계속 저하 또는 추락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은가?

  • 《대한민국 국가경쟁력 순위 추락》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한국의 올해 국가경쟁력 순위는 27위(총 63개국)로, 전년 대비 4단계 하락했다. 분야별로는 인프라 순위가 1단계 소폭 상승한 반면, 경제성과(18위에서 22위로 4단계)와 정부효율성(34위에서 36위로 2단계), 기업효율성(27위에서 33위로 6단계) 모두 하락했다. G7 정상회의에도 초청받는 국격 높고 세계 10위권 이내 무역 국가인 대한민국(大韓民國)인데, 왜 27위에 불과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발표한 재정전망보고서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20년에서 2030년 사이에는 1.9%로 추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OECD 38개국 중 캐나다와 함께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 잠재성장률은 1980년대 9.0%에서 1990년대 7.2%, 2000년대 4.4%, 2011~2017년엔 3.1%로 단계적으로 하락했고 최근엔 2%내외로 추정된다. 20년만에 절반 떨어졌고, 앞으로 10년 후에 또 절반이 떨어져 1.9%로 급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ㅡ 전 분야

PwC가 2022년 3월 말 시총 기준으로 발표한 ‘2022년 글로벌 시가총액 100대 기업’에서 삼성전자(Samsung Electronics Co., Ltd.)는 22위에 올랐지만, 순위는 지난해 15위에서 7계단 하락했다. 삼성전자는 한국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100대 기업 명단에 포함됐다. 세계 경제의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100대 기업의 전체 시총은 35조 3,000억 달러로 지난해 동기 대비 11%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3,420억 달러(약 437조 7,600억 원)로, 작년 동기 4,310억 달러보다 890억 달러 감소(-21%)했다. 최근 자이언트 스텝을 밟는 사이 약 100조가 더 빠져 300조원대로 내려 앉았다. 하긴 애플도 3,000조원이 깨졌다.

ㅡ ICT 분야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는 최근 시가총액 기준 세계 ICT 100개 기업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곳만 포함되고, 각각 9위, 56위로 이름을 올렸다. 반면 미국은 56개, 중국은 9개, 일본은 8개, 인도는 4개, 대만은 3개 기업이 포함됐다. 앞으로 100대 기업에 진입할 수 있는 차세대 주자들까지 아울러 200대 그룹까지 범위를 넓혀도 우리나라 기업은 삼성SDI(114위), 네이버(120위), 카카오(133위)를 포함해 5개에 그쳤다. 200대 그룹 안에 27개 기업을 거느린 중국이나 일본(17개)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3. 국가경쟁력 저하의 배경과 ‘혁신은 기본에서’ 아이디어

한국은 삼위일체로 추락하는 중인가? 현 상태에서 희망을 말할 수는 있는가? 1990년대초 Cold War 시대에 세계정치 지형에 균열이 생겨 Pax Americana 시대로 전환되었다가 30년이 흘러 다시 이의 균열을 맞고 있는데, 남북의 갈등과 수출 등 대외 정치경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불안정 상태는 더욱 커지지 않겠는가? 물리 공간이 이 정도인데 역사가 일천한 ‘디지털 공간’인들 어찌 온전하겠는가?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일반적인 인터넷 사용자로서의 디지털 일리터러시(digital illiteracy)를 문제로 삼기도 하지만 소위 정부와 기업의 정책결정자의 지위를 붙들고 있는 자들의 디지털·인터넷·IT에 대한 무지라는 디지털 일리터러시(digital illiteracy)의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전반적으로 만연한 상태다. 상기 지표나 순위의 추락의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이런 디지털 일리터러시(digital illiteracy)에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원인의 원인은 철학적 사고와 사색의 결핍에서 연유한다고 아니할 수 없다. 결국 혁신을 낳는 상상력의 결핍으로 귀결되는 문제가 아니겠는가?

경영 지식으로 기존의 리더십, 재무, 인사와 노무관리 등에 디지털·인터넷·IT의 기술과 철학을 더하지 않으면 상기의 지표와 순위의 추락을 낳는다. 이런 추락을 방지하는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을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으로 마침 제7편의 글에 인용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이순석 박사가 최근 추천한 ≪경제철학의 전환≫의 변양균 저자의 글의 요지를 음미하면서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경제 고문으로 위촉한,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한, “혁신과 공급이라는 측면에서 4차 산업혁명 기조에 부합하는 철학을 아주 오래전부터 지닌” 변양균 저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저성장 장기 불황 시대에 접어든 우리 경제의 활로가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경제철학의 전환』. 이제까지 우리 경제정책의 기조였던 케인스식 금융·재정 중심의 단기 정책에서 벗어나 슘페터식 혁신으로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을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다른 한편으로 서울대 공대 교수 이정동은 라는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 1883~1950)는 시장경제 체제가 기술혁신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원리를 ‘발견’했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혁신(innovation)에 대한 욕구를 가진 ‘기업가’가 기술혁신을 일으킨다.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기술과 기업은 낡은 기술과 기업을 시장에서 밀어내는 ‘창조적 파괴’를 일으킨다. 그 결과 새로운 소비가 일어나고 경제는 성장한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해서 발견이라고까지 할 게 있나 싶지만, 슘페터가 명저 『경제발전의 이론』(1911)에서 명쾌하게 보여주기 전까지 기술혁신과 경제성장의 관계는 별개의 것으로 여겨졌다.” “슘페터는 노동과 자본 같은 유형적 투입이 아니라 무형의 기술혁신에 기반을 두어 성장하는 혁신국가를 꿈꿨다. 기업가 정신과 시장의 창조적 파괴 메커니즘이 민간영역인 것은 분명하지만, 민간과 겹치지 않는 곳에서 정부의 일 또한 분명히 있다.”

국가경쟁력과 경쟁성장율 상향을 위한 ‘혁신’의 요소를 경제이론에 담아야 한다는 슘페터, 변양균, 이정동 같은 분들의 주장은 누구나 수긍하는 것이나, 그들이 디지털·인터넷·IT라는 신기술 요소를 어찌 이해하고, 경제 정의와 이론에 어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더우기 이런 신기술이 어떻게 ‘혁신’적인 것인가를 이해하는지 알 수가 없다.

동 요소들이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을 얼마나 놀랍고 충격으로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그 전의 기술요소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수용할지는 모르겠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디지털·인터넷·IT라는 신기술 요소가 그 자체로 ‘혁신’ 요소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지 모르겠다. 잘못 사용하면 혁신이 아니라 오히려 ‘비용’ 요소에 엄청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모르겠다.

혁신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든 ‘파괴적 혁신’이든 이는 나의 주장의 맥락과는 다르다. 나의 연재글이 혁신을 말하되 특히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는, 디지털 공간을 구성하고 지탱하는 기술규범 그리고 WEB 3.0 등이 담고 있는, 기술규범들이 기초하고 있는 가치규범이라는 기본(fundamental, basic)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 한다고 또한 누누이 이야기했다.

4.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3≫ ㅡ 첫째 이야기

나는 제6편의 글 말미에 이렇게 남겼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이런 ‘개방형 디지털 공간 인증체계’를 가져본 적이 없다. 세계인을 모두 아우르는 플랫폼이라는 디지털 공간도 사실상 운영해본 적도 없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디지털 공간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시스템 반도체(logic chip, AI chip)의 시장점유율을 유의미하게 가져본 적도 없다. 이런 부족과 결핍은 사실상 동일한 것이다.”

나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3≫의 주제로 개방형 ‘디지털 공간 인증체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유감스럽지만 ‘디지털 공간 인증체계’에 대해서는 나 역시 그 철학적 의미를 풀어낼 수는 있지만 기술적 사양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사실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디지털 공간 인증체계’와 관련된 전문 인력은 거의 없다. 갈수록 디지털·인터넷·IT 인력의 고갈이 커다란 숙제이기도 하지만, 특히 ‘디지털 공간 인증체계’에 대한 경험과 지식과 숙련 인력은 매우 부족하다.

나는 또 제6편의 글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것이 그 철학적 의미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공간 주권은 다음과 같이 2가지로 나눠 정의될 수 있다.

(1)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모든 디지털 공간에서 연결되는 기기, 장치, 디바이스는 그리고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는 정당한(신뢰기반의) 인증체계를 갖추고 있다면 모든 곳에서 모든 시간에 연결되고 접속되는 권리 또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2)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만약 어떤 기기, 장치, 디바이스가 다른 그것들이 정당한(신뢰기반의) 인증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면 그것들과의 연결 또는 접속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또는 권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인증체계’는 애초부터 디폴트로 여겨졌고,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이고,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는 아직도 거의 아무도 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공기처럼 물처럼 여기고 있는 것같다. 디지털 공간 주권의 인증체계가 디지털 공간의 topological configuration의 기초이다. 그 인증체계는 주민등록증이 될 수도 있고, 여권이 될 수도 있는 것과 비교될 정도로 디지털 공간에서는 필수적인 것이고 더우기 원활한 유통을 보장하는 자동검역·검문소의 역할을 한다.”

이 글의 내용에서 말한 ‘디지털 공간 인증체계’는 바로 디지털 공간의 신뢰(trust) 구조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 주제는 인터넷과 패킷통신에 관한 고도의 공학적 지식을 요구한다. 글로벌 인터넷 표준화 조직인 IETF (Internet Engineering Task Force), W3C (World Wide Web Consortium), IEEE (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 Engineers), CSA (Connectivity Standards Alliance), OCF (Open Connectivity Foundation) 등이 제정한 기술 표준에 관한 기본 골격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 물리 공간에서 헌법과 각종 법률과 각종 규칙들과 고시들이 제개정되어도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숙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듯이 디지털 공간의 각종 규범들도 이해되고 숙지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망(無望)하지 않겠는가?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다양한 제안이 가능하지만 내가 주장하는 것은 그 흔한 슘페터류의 혁신 제안을 방향 제시에만 머무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혁신은 방법론상 디폴트로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전혀 새로울 것도 없다.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디지털 혁신을 말하는 것이고, 디지털 혁신의 기본은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asic/fundamental)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의 다채로운 디지털 규범은 적어도 디지털 공간 설계자인 CDO (chief data officer)의 수준에서는 파악되어 있어야 하는 일이다.

즉 디지털 공간은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제4차 산업혁명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작금의 상황에서 모든 산업 분야의 재화와 서비스에 반드시 수반하여야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재화와 서비스와 작금의 재화와 서비스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디지털 공간은 공급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공간 자체로서 경제적 가치를 새롭고 독립적으로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캐나다에 본사를 둔 ‘Sandvine’은 매년 라는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웹·모바일 서비스의 트래픽(traffic)을 발표한다. 2022년 1월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구글과 메타(옛 페이스북), 넷플릭스,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6개 기업에서 발생하는 트래픽 량은 전 세계 총량의 56.96%에 달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43.1%)에 비해 13%포인트(p) 가량 늘어난 것으로, 이들 기업이 전체 트래픽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은 조사 시행 이후 처음이다.

독자들은 이런 기업들에게서 공통적인 특징을 무엇에서 찾는가 궁금하다. 이런 글로벌 메이저 기업의 경우 나는 디지털 공간론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이런 공간에서의 ‘디지털 인증체계’에 대한 정책을 어찌 가져 가는지를 눈여겨 살펴본다. 서비스 레벨의 페이스북과 넷플릭스는 certificates transparency 메카니즘을 채택하여 정당한 단말디바이스를 파악하여 자동적으로 연결이 되는 시스템을 플랫폼의 요소로 구축되어 있지만, 구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자적인 ‘디지털 인증체계’를 구축하여 운영 중에 있고 모든 신뢰 연결을 위한 기술적 사양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들 각각의 디지털 공간의 기초 설계를 제3의 Root CA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운영한다는 것이다. Why has Google/Apple/Amazon/Microsoft maintained its own Root CA?라는 질문에 아래의 각사의 PKI 정책 개요를 참조하면서 독자들도 답변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Google trust services를 살펴보자.

Encryption is an important building block for a safer Internet. Google Trust Services provides Transport Layer Security (TLS) certificates for Google services and users helping to authenticate and encrypt internet traffic. The service is built on Google’s geographically distributed infrastructure and backed by security and compliance audits helping to provide a transparent, trusted, and reliable Certificate Authority.

Apple PKI를 살펴보자.

Apple established the Apple PKI in support of the generation, issuance, distribution, revocation, administration, and management of public/private cryptographic keys that are contained in CA-signed X.509 Certificates.

Amazon Trust Services를 살펴보자.

Amazon Trust Services is a certificate authority created and operated by Amazon Web Services. Amazon Trust Services works with the AWS Certificate Manager service to simplify certificate management and ensure secure communication between a client and a server. The AWS Certificate Manager can help an IT team overcome the complex, error-prone manual tasks involved with creating Secure Sockets Layer (SSL) or Transport Layer Security (TLS) certificates; it enables an administrator to provision, deploy and automatically renew certificates. A user can request a new certificate and deploy it to other Amazon services, including Elastic Load Balancing and Amazon CloudFront.

Microsoft PKI Security and Services를 살펴보자.

Today all the organizations are looking for internal PKI to provide digital certificates for signing and encrypting email, SSL authentication certificates for client and Server communication, access to remote services, etc. Microsoft Certificate Services provides all the software and programs needed to run an internal PKI, and is included with Windows enterprise server licenses. The software and programs may be free, but due to the mission critical nature of the PKI, securely designing, implementing and managing in accordance with standards like CA/Browser Forum needs attention. The deployment of the PKI requires physical and logical security controls, quality of service all the time.

이들의 디지털 공간 기초인 PKI 정책의 개요와 공개와 공유를 통해 그들의 디지털 공간의 신뢰와 보안의 확보, 이를 통한 글로벌 확장을 추구하는 기본 자세를 읽을 수 있는데, 관련한 디지털 공간 설계 상태를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찾아보면 세계적인 기업 삼성전자(Samsung Electronics Co., Ltd.)와 엘지전자(LG Electronics Inc.)는 그들의 디지털 공간도 부실할뿐더러, 그들 고유의 독자적인 ‘디지털 인증체계’를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있다고 해도 내외부를 향해 정책의 일목요연한 제공과 공개를 통한 디지털 공간 확대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그들은 생태계(economy)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아예 없다는 것이고, 디지털 산업에 아날로그적 자세와 생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것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니 디지털 혁신이 가능하고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국민의 또 전문가의 경고를 받아야 한다. 그러면 이 지점에서 의문이 들 수가 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경우 디지털 공간을 통한 경제행위 또는 생산공급활동을 하는 경우 어찌 독자적인 ‘디지털 인증체계’를 구축할 수 있겠느냐하는 의문이다.

물리 공간에서 글로벌 경제적 거래 행위의 기초는 공정, 투명 및 신뢰라고 한다면, 이는 디지털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더우기 디지털 공간은 기술공간이라 이런 신뢰 시스템이 ‘디지털 인증체계’로서 자동적으로 적용되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런 신뢰시스템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기업의 경우 기초로서 구비되어야 할뿐더러 나는 이를 ‘기본의 준수’(Back to the Basic/Fundamental)라는 가장 평범한 어휘로서 강조하고자 한다.

5.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3≫ ㅡ 두번째 이야기

대한민국(大韓民國)이 글로벌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기록하는 여러가지의 connected 장치들은 모두 ‘디지털 인증체계’를 기초로 갖춘 디지털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시점에서부터 진실로 글로벌 재화와 서비스로 품격이 갖춰진 것으로 간주되고, 진실로 스마트(smart) 재화와 서비스로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Back to the Basic/Fundamental을 준수하는 것을 말한다.

어쩌면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혁신(innovation)은 Back to the Basic/Fundamental으로의 귀의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 물리 공간에서 몇차례의 경제 위기에서 겪은 개방 체제에서 불가피한 글로벌 스탠다드의 준수라는 차원의 이야기와 그 맥락이 다를 것이 없다. 물리 공간보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글로벌 스탠다드의 규범 준수는 거의 이해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내가 방편적이든 편의적이든 ‘디지털 공간’의 물리 공간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지털 공간의 인증체계’의 구축과 운영은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에 비추어 도대체 중소기업은 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글로벌 presence를 높이기 위한 투자를 함에 있어서 어찌 ‘디지털 인증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대부분의 디지털 기업은 처음에는 글로벌 Root CA 기업의 인증서를 구매하여 ‘디지털 인증체계’를 갖추는 것이 상례다. 그러다가 규모가 글로벌 차원으로 커지면 독자적 ‘디지털 인증체계’를 갖추기 시작한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중소기업도 마찬가지이지만, 투자 여력이 있는 대기업의 글로벌 확장을 위한 기초 조건으로 ‘디지털 인증체계’를 갖추는 배경이 합리적 이유가 풍부한 만큼, 중소기업을 위한 이런 문제 제기는 내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규모와 역량이 부족한 글로벌 지향 중소기업을 위한 공통의 ‘디지털 인증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정책과제라는 말이다.

이런 정책 결정에 대한 기본 가치 공유가 가능하지 않으면 적극적인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 디지털 공간의 ‘디지털 인증체계’의 구축은 어떤 기업의 글로벌 제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많은 개발자를 위한 글로벌 디지털 공간 제공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글로벌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자가 동시에 함께 제공하여야 할 디지털 공간의 우선적인 대상은 개발자, 그리고 동시에 사용자를 위한 디지털 공간이다. 공급자 스스로의 디지털 공간은 당연히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재화에는 독립적으로 공급되어야 할 것이고, 서비스에는 그 자체가 디지털 공간을 형성하므로 그 요소에 사용자를 위한 요소를 정밀하게 체계적으로 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디지털 인증체계’를 강조하는 이유는 비유적으로 말하면 디지털 검역·검문소가 가지는 의미와 유용성에 착안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검역·검문소에 관하여는 전술한 바와 같이 이미 제6편에서 언급한 바 있다. “셋째, 디지털 공간론이 물리 공간의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경제적 발전 전략의 일환뿐만이 아니라 “디지털 전쟁”의 전략적 수단으로서도 그 논의의 가치가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 세계 제1국 팍스 아메리카나를 연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정보(intelligence)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으나, 디지털 세계에서의 정보 활동은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하는 제6편의 일부 글을 다시 씹어보면 검역검문소가 가지는 의미의 일단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뿐만 아니라 나의 연재글의 곳곳에서 이런 관점과 연관되는 표현들이 숨겨져 있다.

자동화된 디지털 공간에서의 설계 기초 3의 주제로 삼은 ‘디지털 인증체계’의 기반은 PKI(public key infrastructure이라는 점은 누누이 강조했지만, Root CA라는 디지털 공간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바다에서 그물을 치거나 육지에서의 검역·검문소를 설치하는 것에 비유될 것이다. 이는 경제와 비즈니스 정보 수집과 분석은 당연할뿐더러 intelligence로서의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이라는 핵심적인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6.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3≫ ㅡ 세번째 이야기

현재 메타버스(metaverse)라는 디지털 공간이 대세가 되는 시점에서의 디지털 공간 활동은 그 전의 활동과는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변화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여야 하고, 이를 위한 ‘메타버스 인증체계’에 대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일반적인 인증(authentication)으로서는 도저히 신뢰연결의 디지털 공간 활동이 불가능하기에, ‘생체인증+사설인증서’를 묶어 기존 국제표준인 ‘ITU X.509’를 기반으로 연결인증(chain of athentication)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일부 소수의 인터넷 기술전문가 있으나, 아직도 이에 대해 시장의 반응은 매우 미약하다.

연결인증에 대해서는 이미 제3편, 제5편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연결인증은 디지털 산업 차원에서도 마땅한 일이지만 디지털 공간도 부실한데 연결인증 운운은 쇠귀에 경읽기가 아니던가? 첨언하면이미 제6편에서 자세히 언급한 PKI기반의 패스키(Passkey)는 Apple·Google·Microsoft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디지털 공간의 인증체계인데, 이는 바로 메타버스와 같은 매우 복합적인 ‘디지털 공간에서의 인증체계’를 만드는, 디지털 산업을 지배할 수 있는 선도적인 협업 프로젝트로서 연결인증의 초기 버전으로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7.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3≫ ㅡ 네번째 이야기

앞에서 디지털 공간의 ‘디지털 인증체계’에 관한 아이디어를 피력하였지만, 구체적으로는 디지털 공간에 PKI 및 독자적 Root CA 구축방안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 그에 관한 기술적 내용을 상세히 기술하지는 않았다. 내가 그런 수준의 기술적 지식을 가진 전문가도 아니고 그런 지식도 없다. 물론 관련 엔지니어 중에도 관련 경험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이를 지적하는 이유는 소위 각각의 디지털 공간을 영위하는 기업들이 소위 Trust Services 또는 PKI라는 이름의 별도의 계열사 또는 별도의 전문부서를 통해 앱 및 웹페이지를 운영하면서 또는 디지털 비즈니스를 제공하면서 관련 정보와 기술규범을 매우 상세하고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공개하고 있기에 그 기업과의 협업이 필요한 모든 개발 전문가들에게는 충분한 가이드라인과 기술 지침을 공개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투명하고 공개적인 정책은 각각의 디지털 공간을 영위하는 개별 기업들의 관련 생태계를 확장하고 그들의 생태계에서의 협업 프로젝트를 창의적으로 제안하고 연결하여 그 생태계 또는 디지털 공간의 무한한 확장을 시도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Back to the Basic/Fundamental이라는 기본적이고 당연한 절차를 이행하는 것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대단히 어려운 것도 아니다. 디지털 공간의 기초적인 요소를 만들도록 하면서 확장을 위한 협업생태계를 소위 개발자 공간으로서의 디지털 공간을 만드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는 이러 기술문화와 의식이 매우 결핍되어 있고 이것이 재화와 서비스의 글로벌 presence를 가로막는 근본적인 이유인 것이다.

상기와 같은 맥락에서 지난 에피소드를 언급하여야겠다. 과거 김대중 정부에서도 전자정부특별위원회(電子政府特別委員會)까지 설치하여 강력하게 추진된 전자정부(electronic government) 프로젝트 및 이후의 국가사회정보화 프로젝트를 작금에 결과적으로 평가하면 아마 제7편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복지행정과 민원행정 및 세무행정에서의 정보화 시스템은 굉장한 성과를 이뤘다고. 그러나 이게 과연 이용자와 지식인의 편의에 중점을 둔 것이었더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히 여전히 미흡하다고 평가할 뿐더러, 나머지 국가정보화시스템은 거의 낙제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지식정보사회(知識情報社會)라는 기준에서 보면 각 부처나 기관의 대국민 정보시스템 관리·운영에서는 체계적인 콘텐츠 관리와 제공에 대한 내부 시스템은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점이다. 비난을 받아도 크게 받아야 한다.

조선의 건국 설계를 한 삼봉 정도전(三峰 鄭道傳)이 남긴 조선의 기록문화는 첨단의 문화유산이지만 당시 보다 훨씬 쉬운 기록시스템을 가진 작금의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허울뿐인 행정정보화와 정책자료 시스템의 관리 부실과 제공 미흡은 지식관리라는 허망한 조직과 정책만 양산한 꼴이다. 즉 지식기반사회(知識基盤社會)에는 전혀 쓸모없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부조직 개편이 벌어지면 기존의 각 부처의 홈페이지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자료들은 거의 사라지도록 방치하는 만큼 정부 자료를 토대로 연구개발하는 수많은 학자나 학생에 의한 발전적인 지식정보의 확장은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상기의 디지털 공간의 기초 요소로서 개발자 공간에 아무런 ‘디지털 인증체계’에 대한 정보와 가이드라인을 만들거나 남기지 않는 문화와 같은 맥락인 것이다. 긴 시간을 두고 보면 모든 행정자료는 즉흥적 이벤트 자료처럼 취급되는 현실이 바로 대한민국(大韓民國)을 지식기반사회(知識基盤社會)라는 선진국 수준의 자격을 상실토록 만드는 이유가 된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법대생이 글을 쓰면 Blue Book을 참조하여 통일된 형식의 글을 쓰는데, 이 나라의 행정문서는 그러한 통일된 작성 기준과 관리지침과 보관지침과 공개지침이라는 것이 매우 허술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는데 아무도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오호통재라!!!

이 글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전 정부의 제4차 산업혁명위원회의 폐지 소식이 들린다. 명패를 바꾸는 것은 당연하지만, 동 위원회가 지난 5년간 디지털·인터넷·IT분야에서 가장 중요했던 시기에 제4차 산업혁명을 구성하는 다채로운 포장 용어들로 말의 풍성한 향연에 젖어 심각하게 오도한 그리고 실기한 정책 오류와 예능적·전시적·상투적·답습적 과오는 새로 대체하는 기구는 되풀이 하지 않기를 바란다. 명패의 새 주인들은 새 사람들이기를 바란다.

(2022년 7월 19일 화요일)

/디지털신뢰공간 아키텍트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연락처는 newdhj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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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휴남동 서점 작가, 황보름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LG전자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몇 번의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면서도 매일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잃지 않고 있다. 지은 책으로 『매일 읽겠습니다』, 『난생처음 킥복싱』, 『이 정도 거리가 딱 좋다』가 있다.

저서소개_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이렇게 슬프고도 좋을 줄이야!”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

“책과 서점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깊이 있게 펼쳐진다.”(소설가 김금희 심사평)

서울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동네의 후미진 골목길.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은 가정집들 사이에 평범한 동네 서점 하나가 들어선다.

바로 휴남동 서점! 슬픈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얼굴에 아무런 의욕도 보이지 않는 서점 주인 영주는 처음 몇 달간은 자신이 손님인 듯 일은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책만 읽는다.

그렇게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둘 되찾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소진되고 텅 빈 것만 같았던 내면의 느낌이 서서히 사라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는다. 자신이 꽤 건강해졌다는 사실을.

그 순간부터 휴남동 서점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 된다. 사람이 모이고 감정이 모이고 저마다의 이야기가 모이는 공간으로.

바리스타 민준, 로스팅 업체 대표 지미, 작가 승우, 단골손님 정서, 사는 게 재미없는 고등학생 민철과 그의 엄마 희주 등 크고 작은 상처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휴남동 서점이라는 공간을 안식처로 삼아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우리가 잃어버린 채 살고 있지만 사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 가득한 책이다.

배려와 친절, 거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들끼리의 우정과 느슨한 연대,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 등. 출간 즉시 전자책 TOP 10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수많은 독자의 찬사를 받은 소설이 독자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마침내 종이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먼저 읽은 독자들의 요청으로

종이책으로 다시 태어난 소설

출간 즉시 전자책 베스트셀러 TOP 10에 오르고 150개의 독자 리뷰가 올라온 소설이 있다. “종이책으로 나오면 좋겠다! 소장하고 싶은 책”, “읽는 내내 위로받는 느낌”,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었으면”, “지친 일상의 피로회복제 같은 소설” 등 수많은 찬사를 받으며,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들 중 단연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황보름 장편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전자책 구독 서비스 플랫폼인 밀리의 서재에 공개된 후 종이책으로도 읽고 소장하고 싶다는 독자들의 끊이지 않는 요청으로 마침내 종이책으로 출간되었다.

자극적인 소재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로운 스토리의 영상물이 가득한 시대에 잔잔하게 흘러가는 소설 한 편이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이 소설이 우리 삶에 너무나 중요하지만 잊고 살고 있는 것들을 강하게 건드리기 때문이다. 숨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이 소설은 그 자체로 ‘숨통 트이는 시간’이 되어준다.

그리고 일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그래서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깊은 깨달음을 전한다.

“삶을 깊이 이해한 작가가 쓴 소설이 분명하다”는 독자평처럼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동네 서점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속 깊은 인생론을 펼치는 소설이다.

당신도 마찬가지로 이 서점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 따뜻한 공간에 계속 머물고 싶다

이런 사람들과 삶을 함께하고 싶다

후미진 골목길에 새로 들어선 평범한 동네 서점. 동네 사람들이 길을 걷다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들어오지만, 어딘가 아파 보이고 우울해 보이는 주인 때문에 곧 발길을 끊는다.

서점을 연 영주는 실제로 자신이 손님인 듯 어색하게 서점에 들어서고 가만히 앉아 책만 읽는다. 자신도 모르게 자주 울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눈물을 닦으며 몇 안 되는 손님을 맞았다.

그렇게 맥없이 앉아 몇 달을 보냈는데, 어느 순간 더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자신이 꽤 건강해졌음을 깨닫는다.

그제야 휴남동 서점은 진짜 서점의 꼴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반도 채워져 있지 않았던 책장도 채우고, 자기 대신 커피를 내릴 바리스타도 채용한다.

책도 늘고, 독서 모임도 생기고, 글쓰기 강의도 시작되지만, 건강해진 휴남동 서점을 완성하는 건 역시 사람들이다. 끝없는 구직 실패에 취업을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알바로 일하기 시작한 바리스타 민준,

남편 때문에 화날 일이 많은 로스팅 업체 대표 지미, 사는 게 아무 재미가 없다는 고등학생 민철과 그런 아들이 걱정되지만 닦달하지 않고 응원해주는 희주,

서점 구석에 조용히 앉아 뜨개질과 명상을 하는 정서, 삶이 공허해져 한국어 문장 공부에 매달린 작가 승우 등이 모여 휴남동 서점을 한 번 오면 영원히 머무르고 싶게 하는 공간으로 만든다.

거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들끼리의 우정과 느슨한 연대, 그리고 그들이 주고받는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에 지금 당신을 초대한다.

삶을 이해한 작가의 속 깊은 문장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소설을 만들다

소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인물들의 시선으로 ‘상처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펼친다.

특히 이 소설이 다루는 문제들은 현재, 바로 여기의 우리가 겪고 있는 것들을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다루고 있기에, 독자들은 마치 자기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이 작품이 그리는 세계에 쉽게 빨려든다.

게다가 단순한 공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기에 독자들은 이 책에서 절망이 아닌 희망을 발견한다. 그것도 막연하지 않은, 충분한 근거가 있는 희망!

그래서인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은 독자들은 이런 서점이 실제로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공통적으로 내놓는다.

아마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쁜 일상에 지치고 소진된 우리에게 잔잔한 위로와 편안한 웃음을 선물하는 책. 숨겨 두었던 나의 상처와 마주할 용기를 내게 하고, 과거를 저 멀리 흘려보내고 당당하게 살아갈 계기를 만들어주는 책.

너무나 현실적이고 친근한 이 서점 이야기에 발을 들이고 이 소설 속 인물들과 시간을 보낸다면, 당신도 결국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 진짜 성공한 삶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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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7월 21일 인류최초로 달 착륙하다.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발을 내디딘 장면은 텔레비비전으로 전세계에 생중계되어, 약 5억명이 시청했습니다.

암스트롱은 너무도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한개인에게는 사소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입니다’

20분뒤 도착한 착륙선 이글의 조정사 버즈 올드린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답고 장엄한 페허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착륙 직후 닉슨대통령과 통화했고, ‘백악관에서 건 가장 역사적인 전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달에 갔으나 달을 밟지도 못한 한사람이 있습니다. 사령선인 콜롬비아의 조정사 마이클 콜린스 입니다. 그는 달궤도를 돌며 지구로 무사히 돌아올수 있도록 시스템을 점검하고 관제센터와 연락했습니다. 그가 본것은 달의 뒷면이었고, 그 경험을 메모로 남겼습니다. ‘이것을 아는 존재는 오직 신과 나뿐이다. 온전히 홀로 있는 이순간이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다’ 고 말합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7월 24일 지구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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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미래]⑮ “놀러 오는 동네가 아니라, 살러 오는 동네가 돼야죠”

현재 서울의 주요 주거밀집지역은 대체로 사대문 밖에 자리하고 있지만, 원래는 도성 안에도 많은 사람이 살았다. 서촌을 비롯해 가회동, 익선동 등에 남아있는 한옥은 그 흔적이다. 서울이 변화를 겪으면서 이들 지역은 상업시설에 빠르게 잠식됐다. 서촌은 그나마 주거기능을 여전히 보전하고 있는 지역인데, ‘서촌의 미래’에 관해 다양하고 생생한 목소리를 내는 주민들이 그 증거다.

골목청소, 골목텃밭, 수성동 계곡 보존 등을 해온 서촌 주민들의 모임인 서촌주거공간연구회의 장민수 대표는 서촌의 주거기능 보전과 발전에 서촌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말한다. 서촌 주민들은 주차장을 찾아 늦은 밤 좁은 골목을 헤매며,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서촌에는 사람이 살아야 하며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살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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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 ⑧ –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2

디지털 공간론의 3가지 원리를 제시한 지금까지의 논변(제3편, 제4편, 제6편)를 되새겨보면 ‘물리 공간과 인간으로부터의 독립’을 속성으로 하는 디지털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언듯 모순적으로 다가온다.

여기서부터 디지털 공간을 이해하는 관점의 차이로 이해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1)’을 서술한 제7편의 글은, 예비적인 관점에서 데이터 공간론을 펼친 제5편의 글을 토대로, 인간 분석을 위해 DNA 또는 혈액을 다루듯, 디지털 공간에서의 데이터(data)를 다뤘는데, 데이터는 오직 디지털 공간의 존재 목적이고, 그 공간이 있어야만 물리 공간의 개별 목적이 보다 강력하고 지속 가능하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디지털 공간의 데이터의 흐름은 패킷(packet) 방식이라 이제는 개인간의 소통이라는 아날로그적 communication의 의미가 디지털 데이터를 교환하는 흐름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으로부터 추출되는 데이터도 그냥 internet of things의 thing으로서의 데이터와 같다는 주장을 가능하게 한다.

AI가 장차 스스로 존재하고 지속 유지되며 확장 가능할 뿐더러 인간의 판단 능력을 넘어서고 윤리적 감정을 안고 ‘산다’는 주장처럼 기술 초월의 전망과 같은 의견이 있듯이, 디지털 공간이 그런 맥락의 존재물로 구성된 것으로, ‘순수’ 독립 공간으로 그려내는 것은 이 연재글의 목적과는 맞지 않다.

이번 제8편에서는 디지털 공간의 ’독립’이라는 이슈와 관련하여 물리적 공간의 정체(PID·physical ID)와 디지털 공간’물’의 정체(DID·digital ID)라는 2가지의 ‘주체’를 주제로 삼아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2)’를 풀어갈 것이다.

주체(subject, 主體)라는 개념은 정체 또는 정체성과 혼용되는 개념인데 이를 디지털 공간에서 풀어내기 위해 나는 PID와 DID를 다시 설명하고, PID와 관련하여 자연적인 귀결로서 생체인증(biometrics)을 거론할 것이다. 지금까지 디지털 공간에서 PID와 DID는 설명 또는 작업 상황에 따라 구별되지 않고 혼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생체인증은 접속방법으로서 ID/password에 준하는 로그인 방법의 일종으로만 이해되었다.

“바이오메트릭스(biometrics)는 하나 이상의 고유한 신체적, 행동적 형질에 기반하여 사람을 인식하는 방식을 두루 가리킨다. 생체인증, 바이오인증, 생물측정학, 바이오인식, 생체인식, 생체측량 등 다양한 용어로 번역된다. 바이오메트릭스에 쓰이는 신체적 특성으로는 지문, 홍채, 얼굴, 정맥 등이 있으며 행동적 특성으로는 목소리, 서명 등이 있다.”

생체인증(biometrics)을 이렇게 설명하면서 세부 기술을 설명하는 것에 치중하기 마련이라 사람들은 엔지니어들의 일이라고 생각하여 듣기에 지루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의 의도가 아니겠는가.

생체인증이 디지털 공간론에 물리 공간과 결부하여 어떤 관계적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새롭게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생체인증이 점점 더 인간 스스로가 디지털화하는, 인간 스스로가 물화하는 작금의 변화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전편(제3편, 제6편)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디지털 공간에서의 목소리 전쟁, 즉 Google, Apple, Amazon 등 글로벌 메이저들이 주도하는 성문(聲紋)으로 디지털 성문(城門)을 장악하려는 전략은 그 의미가 감히 어마무시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 전쟁에서 어디에 서 있는가?

1. ≪물리 공간과 디지털 공간의 주체에 관한 문제≫

PID와 DID는 전부 주체에 관한 문제이다. 그런데 이를 디지털 공간에 적용하기 시작하면 물리 공간과는 다른 특징들에 부닥치게 된다.

원래 주체(subject, 主體)의 개념은 오로지 인간에 관한, 매우 어려운 철학적 개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를 디지털 공간의 공간’물’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 아쉽게도 아니 불행하게도 IT 시장에서는 또는 디지털 공간에서는 주체의 개념이 객체(object, 客體)의 개념과 함께 무지무지하게 사용된다. 아니 남용된다. 그러니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IT 엔지니어링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언어의 이질감은 근래에 들어 더욱 커지고 있다. 정치에 의한 일상의 언어 오염이 지구 오염보다도 더 큰 심각한 만큼, 인문학자와 IT 엔지니어들의 언어의 남용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끌고 간다.

20여년전 Y2K 이슈를 기억할 것이다. 그때도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전세계 인터넷 시스템과 IT 시스템이 마비될 것이라는 묵시론적 전망까지도 난무할 정도였다. 휴거 같은 종말론과 같은 맥락의 음모론이 취약한 인간의 두뇌를 파고 들기도 했다. 디지털 시스템이 성숙된 나라일 수록 난리법석이 났다. 당시 Y2K 이슈를 미리 해결하기 위하여 투입된 자금의 글로벌 규모는 3,000억 달러에 이른다고도 한다. 무사히 해결되었으니 이게 돈으로 해결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해결된 건지는 각자가 추억을 더듬어 살펴보기를 바란다.

작금의 글로벌 정치경제의 위기 상황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미중 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인한 것인데, 이를 ‘세계화의 종말’,’ 냉전시대의 부활’, 또는 ‘탈중국화의 시대’ 등으로 언급하고 있으면서 이는 과거 인터넷의 광범위한 보급과 함께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의 ≪The World Is Flat: A Brief History of the Twenty-First Century≫이 “평평한 지구”로 비유한 세계화(globalization)에 대한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들까지 끌여들여 만든 세계화 체제에서 다변화된 세계적 공급망(global chain of supply)의 연결 고리가 작금의 사태에 따라 끊어지거나 약해지는 상황은 바로 그 역설을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왜 Y2K 같은 일이 생겼는가? 글로벌 인터넷도 광범위하게 확장되고, 세계화까지 이룬 글로벌 정치경제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작 인문사회과학도와 엔지니어와는 소통이 결핍되었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소통 도구는 무진장 많아졌는데 서로는 서로를 내외하는 상태가 낳은 비극이 아니었던가? 작금도 그 간극은 여전하고 이를 디지털 일리터러시(digital illiteracy)라는 말로 치부하지만, IT 세계의 언어와 non-IT 세계의 언어는 우주의 서로 다른 행성처럼 버티고 있지 않은가? non-IT 세계의 사람들은 그저 어떤 물건의 포장지만 보고 실체를 보았다고 하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물리 공간의 토대인 법과 규정도 또는 인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디지털 공간의 규범적 토대인 표준과 기준과 SW와 알고리즘을 제대로 이해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며, 디지털 공간’물’을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 또한 어렵다. 이 지경이니 배우지도 않는데 공자가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해봐야 ‘백견(百見)이 불여일작(不如一作)’이라고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상상력이 뛰어난 인간은 보지 않고도 알아야 하는 법이라 그 상상력의 깊이에 따라 아이디어의 질은 천양지차가 아니겠는가.

다시 돌아와서 주체에 관해 서술하도록 한다. ≪IT용어사전≫에 따르면 “주체(subject, 主體)는 ‘사용자’, ‘사용자 그룹’, ‘IP 주소’ 등과 같이 정보 시스템의 객체에 접근을 시도하는 능동적인 실체를 말한다. 공개 키 기반구조(PKI·public key infrastructure)에서의 인증서의 주체 영역(subject field)에 해당되며, 이는 인증하고자 하는 대상을 지정하며, 사용자 종단 실체 또는 인증 기관(CA) 등의 실체가 지정될 수 있다.”

독자들도 “주체(subject, 主體)”라는 기술 용어에 대한 정의를 음미해 보기 바란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주체라는 개념으로 보고 이해를 해도 틀린 것은 아닐진대 PID와 DID의 구별이 전혀 없다.

같은 ≪IT용어사전≫에 따라 객체(object, 客體)의 정의도 살펴보자. “객체는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OOP·object-oriented programming)이나 설계에서, 데이터(실체)와 그 데이터에 관련되는 동작(절차, 방법, 기능)을 모두 포함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 기차역에서 승차권을 발매하는 경우, 실체인 ‘손님’과 동작인 ‘승차권 주문’은 하나의 객체이다. 실체인 ‘역무원’과 동작인 ‘승차권 발매’도 하나의 객체이다. 같은 성질(구조와 형태)을 가지는 객체는 등급으로 정의하고, 같은 등급에 속하는 객체는 그 등급의 인스턴스라고 한다.”

디지털 공간을 종속적인 것으로 보면 그 공간 내에 있는 모든 것들과 이벤트 또는 인스턴스는 인간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전부 객체다. 그러면 주체라는 용어에서 사용자와 사용자그룹이라는 범주는 인간을 말하고 그들은 PID를 가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디지털 공간을 ‘독립’ 공간으로 보는 관점에서야만이 PID와 DID의 구분이 그 의미를 가질 수 있고, 그것이 앞의 여러 편의 글에서 언급한 DID만이 디지털 공간의 주체가 될 수가 있다는 의미이다. PID는 DID와 특수한 상황에서 연결되는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things는 전부 디지털 공간에 연결된 상태로 그 자체가 DID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PID이고, 판도라의 아바타는 DID이지만 PID와 연관된 특별한 DID이고, 디지털 공간은 PID와 무관한 순수 DID의 수가 무한히 증가하고 있는 digital space of things의 공간으로 이제야 정의할 수 있게 된다. 이 특별한 DID를 두고 우리는 개인정보보호라는 어머무시한 연구와 법제도 분야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 개인맞춤형 서비스를 한다고 하면서 개인정보보호(個人情報保護)를 극단적으로 한다는 모순적 행위를 그 개인 차원에서도 정부 차원에서도 스스럼 없이 주장하고 있고, 디지털 공간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디지털 산업의 기업들은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 있다. 또한 이를 물리 공간의 새로운 무역과 자본의 이동을 가로막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정리하면 물리 공간을 두고 디지털 공간을 바라보면 주체와 객체의 관계는 분명하다. 주체는 인간이고 객체는 그야 말로 사물과 사태이다. 그런데 그런 주체의 개념에 IP address가 포함되는 개념 정의는, 실제 지금도 사용 중인데, 디지털 공간론의 제원리의 하나인 ‘인간으로부터의 독립’을 전제로 하는 디지털 공간에서의 주체에 대한 재검토를 요한다.

관련하여, 객체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기 위하여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OOP·object-oriented programming)’의 정의를 살펴보자.

“프로그램 설계방법론이자 개념의 일종이다. 프로그램을 단순히 데이터와 처리 방법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수많은 ‘객체(object)’라는 기본 단위로 나누고 이들의 상호작용으로 서술하는 방식이다.

객체란 하나의 역할을 수행하는 ‘메소드와 변수(데이터)’의 묶음으로 봐야 한다.”라고 IT용어사전은 기술하고 있는데, ≪쉽게 배우는 소프트웨어 공학≫에서는 “객체 (object, 客體)는 실세계에 존재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을 객체(object)라고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책상, 의자, 전화기 같은 사물은 물론이고 강의, 수강 신청 같은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도 모두 객체이다. 다시 말해 사전에 나와 있는 명사뿐 아니라 동사의 명사형까지도 모두 객체인 것이다. 그리고 더 넓게 보면 인간이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객체이다.”

기존의 인터넷과 소프트웨어공학의 관점에서 나의 디지털 공간론이 던지는 의미는 우선은 혼란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혼란은 상기 주체와 객체의 용어 정의에서부터 이미 겪고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를 초기에 달려들어 정리되지 못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Y2K가 소통 부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듯이 가장 기초적인 개념인 주체와 객체에 대한 개념 정의도 실제로 충분한 소통 없이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정리하자면, 디지털 공간의 차원에서 주체와 객체의 개념 정의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며, 잠정적으로 나의 주장은, 앞으로 좀 더 논의가 필요하지만, 디지털 공간에서는 주체와 객체라는 개념보다는 오직 DID만 있다고 할 것이다.

참고로 철학에서 주체와 객체의 개념 정의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가 있을 것이다. 주체와 객체의 개념은 철학의 시작에서 끝까지 독자들을 괴롭히는 개념이다. 여기서는 이를 상술하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말하는 identity는 인간의 이성에 기반한 주체적인 인간을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체 또는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이란 인간 본디의 형체가 갖고 있는 성격을 말한다. ‘identity’란 단어가 ‘확인하다(identify)’란 말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정체성이 자기가 아닌 남에 의한 확인과 증명을 통해 형성되는 것임을 말해준다. 그런 identity라는 개념을 인터넷의 진화 과정에서 그냥 사용해 왔으니 디지털 공간론에서도 어쩔 수 없이 사용하지만 소위 PID와 DID의 관계를 진술하는 과정에서 보다 특화된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

사실 디지털 공간론과 IT공학에 사용되는 모든 개념들은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것 때문에 디지털 공간의 독립성을 전제로 하는 논리의 전개에는 늘 독자들의 의문을 야기한다.

다시 정리하면 디지털 공간에서 식별 가능한 모든 것들도 실제는 디지털 데이터로 인식되고 그것들을 전부 디지털 공간’물’로 본다는 것이 전편의 여러 글에서 전제된 것이다.

1997년 PC통신 시대에 개봉된 ≪접속≫이라는 영화에서 보듯이 연결망으로서의 디지털 공간에 인간은 접속하는 주체이지만, 디지털 공간의 구성요소인 ‘디지털 공간물’에게 주체라는 또는 identity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은 인간을 전제하는 용어의 사용법의 확장이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는 DID라고 말하는 것은 PID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터넷에 사용되는 개인적 정체를 우아한 개념으로서 DID를 상정한 것이니, PID와의 뚜렷한 개념 구분도 없이, 그런 게으름은 Y2K를 야기한 원인인 게으름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DID를 제외한 모든 것은 객체라는 용어로 치부하는 셈이 아닌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는 디지털 공간의 무수한 ‘디지털 공간물’로 확대하여 이들 전부를 DID라고 하고 이를 PID와 구별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편의적이든 방편적이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의 의미가 매우 크다라고 주장하며 설득하려는 것이다. 다만, 상기 기존 정의에 따르면 ‘객체’의 개념이 매우 넓기 때문에 DID에 해당하는 대상의 범위도 구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것까지를 포괄하기에 매우 넓어진다는 점이다. 그런 확장도 디지털 공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피터 싱어(Peter Singer)가 “모든 생명은 소중하며, 인간 이외의 동물도 고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라고 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격을 동일하게 두자고 주장한 것과 비교할 만하다. 다만, 이 논의는 좀 더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2. ≪PID와 DID의 의미와 구별에 관한 문제≫

이 정도로 정리하고 지금부터는 물리 공간의 PID를 디지털 공간의 DID와 어찌 구별하고 그 구별에 따라 PID가 디지털 공간과의 관련성에서는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찬찬히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

물리 공간에서 ‘나를 나’라고 증명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난민이 난민구호소에서 ‘나는 난민 누구누구이다’라고 주장해도 난민구호 직원으로 하여금 이를 믿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에서 동사무소에 가서 ‘내가 나이다’라고 증명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디지털 공간에서는 ‘나는 나이다’라는 증명방법으로 고안된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 무엇인가? 그 방법이 무엇이든 전부 PKI에 기반하여야 한다. 디지털 공간의 기초적 토대는 PKI(public key infrastructure) 공간이고, 디지털 공간의 실체적 토대는 데이터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는 전편의 여러 글에서 매우 빈번히 진술했던 것이다. 그동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PKI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공인인증서 철폐를 주장하는 전문가가 횡행했던 것이다. 디지털 일리터러시(digital illiteracy)의 대표적 사례이다. 디지털 공간에의 접속과 연결은 바로 PKI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대원칙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지금까지 계속 디지털 공간론에서 신뢰(trust)라는 요소를 일컫는 것이다. 정과 의리로 연결된 것이 신뢰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속성’이 아니라 ‘요소’이다. 다수의 글로벌 메이저들은 이런 신뢰(trust)에 대하여 각각 대체로 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디지털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왜 이들은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공개하는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이해가 ‘디지털 공간 설계의 기초’에 해당하는 이슈이고, 이를 토대로 국가와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할 정도의 디지털 공간 인식과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 신뢰(trust)의 이슈는 ‘음성’이라는 가장 강력한 생체인증 이슈와 함께 다음 편에서 다룰 것이다.

어떤 공간에서건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하는 ‘자연적 정체’으로서의 PID는 무엇일까?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또는 여권일까?

여권에 대해 살펴보자. 올해 초의 보도된 내용이다. 국제교류전문업체 ≪헨리앤드파트너스≫가 발표한 올해 전 세계 ‘여권의 힘’ 순위에서 한국이 공동 2위를 차지했다. 공동 1위는 일본과 싱가포르로, 이들 나라 여권으로는 전 세계 192개 나라나 속령을 무비자나 간편 입국으로 여행할 수 있다. 공동 2위인 한국과 독일 여권으로는 190개 나라와 속령을 무비자와 간편 입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 북한은 104위로 하위에서 8번째였다. 한국은 2018년부터 2∼3위로 최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위대하고 대단한 나라가 대한민국이 아닌가?

그런데 물리 공간에서의 여권의 위변조는 빈번히 발생한다. 그리고 각국마다 여권의 제작방법 또는 여권의 인정 방법 등에 대한 규정들은 제법 다르고 그 전체적 이해는 매우 복잡하다. 말하자면 물리 공간에서의 자기 인증의 제도와 방법이 국가마다 다르다는 것이고 그 복잡성도 매우 크다. 이렇게 물리 공간에서의 여권도 매우 복잡한 신원증명 방법이다.

어떤 유형의 신원증명서류를 가졌더라도 주민등록증, 사회보장번호카드, 운전면허증, 여권 등을 소지해야 일단 신원증명을 통과하지만 신원증명 서류 자체의 위조 여부도 늘 면밀한 조사 대상이 된다. 다시말하면 물리적 공간에서의 신원증명 방법은 늘 불완전하다는 전제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불완전성은 디지털 공간이 PKI를 따르지 않는 만큼 불완전성을 노정하는 것과도 맥락이 동일하다. 가장 흔한 ID/password의 추방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등장한 것이 생체인증(biometrics)이다.

그런데 생체인증은 다른 인증방법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잘 이해하여 포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생체인증(biometrics)에 관한 무수한 설명과 논문들도 많지만, 나는 그것들을 범주적으로 포괄하는 생체인증의 의미, 즉 철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공간은 ‘독립’된 공간이라고 내가 주장한 것을 감안하여 SNS에서의 ID를 이야기해보자. ‘독립’이라고 했는데 70억 인구 중에 인터넷 인구인 40억명은 DID에 연결되어 있을 것 아닌가? 매우 다양하고 매우 많은 SNS 플랫폼에는 프로필과 사진까지도 가짜가 많은 것처럼, 실제 진짜라는 프로필과 사진을 노출하면서 개인의 일상의 글이나 사진은 본인의 본연의 모습과 물리 공간에서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게 활동하는 자들이 많다. 게다가 동일 SNS 플랫폼에서 여러 개의 ID를 가지고 활동하는 자들도 제법 많다. ‘자’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디지털 공간 차원에서는, 내 주장대로 한다면, 이는 DID를 말한다.

3.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관련 4가지 이슈≫

이러한 예비적 논변을 마무리하고 이제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2)’의 핵심적인 4개의 이슈를 다루고 마무리 하기로 한다.

⓵ 우선 물리 공간에서의 PID를 설명하기로 한다.

인터넷이 대중에게 확산되어 나갈 때 부상한 것이 디지털경제(digital economy)였고, 정통 경제학자들은 이를 기존 경제학의 부수적인 것으로 인식한 반면, 일부 경제학자들은 디지털 경제를 기존의 경제와는 패러다임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생산 추가 비용이 제로라거나 그래서 수확체증(收穫遞增)의 법칙이 거론되었고 급기야 the winner takes it all이라는 경제현상을 디지털경제의 속성으로 여겼다. 프로슈머(prosumer)라는 개념도 유행하였다.

디지털 공간에 접속하는 개인은 이제 데이터를 생산하는 주체이면서 데이터를 획득하는 주체로서의 이중적 지위를 가진다. data prosumer이다. 그런데 data prosumer의 지위는 인간만이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internet of things 의 thing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things 중에는 특이한 지위의 thing이 있다. things 중에 인간을 추려내면 인간은 디지털 공간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 접속할 뿐이다. 접속된 것은 인간이 아니다. 접속된 것은 thing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전편 7편에서 인간이 things의 일종이고 그래서 물화되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은 연결되어 있지 않고 연결이 불가능하다. 인간은 전기에너지로 지탱되는 thing가 아니다. 접속을 통해서 끊임없이 물화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부터 혼란이 생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디지털 공간에는 PID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의 여러 편의 글에서 나는 디지털 공간에서 인간을 배제하자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단말바이스는 전부 DID일 뿐이다.

⓶ 따라서 PID와 DID의 관계 설정의 규칙이 필요해진다.

이 규칙은 ‘디지털 공간에는 PID가 없다’는 것이다. 다채로운 디지털 공간에는 디지털 공간 내에서조차 PID를 버젓이 드러내고 자랑하는 자들이 수많이 있다. 그 공간이 바로 SNS 플랫폼 공간을 말한다. 여기서의 social이라는 것은 인간들의 사회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판도라에 침입한 자들이고 이를 아바타라고 부를 수 있다. 물론 그들 중에도 가짜도 많다. PID와 DID 관계규칙을 위배하는 자들이다. 디지털 공간을 식민지처럼 여기는 자들이다. 이런 정도의 의견은 아니더라도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이라고 설파한≪Understanding : the extensions of man≫라는 저서의 관점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반하여 오히려 데이터라는 에너지의 확보를 위해 특히 디지털 공간은 인간(PID)에게 접속을 허용하여 양질의 데이터를 인간으로부터 빨아가려는 활동을 하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아바타의 지위를 가진 DID에 대해 인간은 개인정보보호라는 규제를 하고 있다. 게다가 기존의 디지털 공간에 쌓여있는 PID를 덜어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막연하게 여겨질 것이다.

⓷ ‘생체정보로서의 PID는 네크워크를 타고 이동하지 않는다’라는 점을 디지털 규범으로 인식하여야 한다.

앞의 ‘규칙’에 관한 논변은 바로 이 문장에서 기인한다. 이 말은 바로 PID의 중앙집권적 수집, 보관, 분석, 운영,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오해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를 들이대며 소위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에서의 전자주민증 카드사업이 표류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물론 정부는 중앙집권적 지문 DB를 포기할 생각이 없으니 앞으로도 전자주민카드 사업은 쉽지 않을 것이다. PID는 물리 공간의 개별 인간이 보유하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PID는 단말디바이스로서 그 단말디바이스가 물리 공간의 ‘개인 자체의 소유로 인정’되는 단말디바이스에만 유일하게 저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만약이 그 단말디바이스가 personal 단말디바이스가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원칙적으로 그 단말디바이스에는 PID가 저장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 규범 중의 핵심 규범이라고 할 만하다.

일상 생활에서 단말디바이스는 그래서 2가지의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순수 personal한 것과 또 하나는 단말디바이스이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사용하는 non-personal한 것이다. 따라서 후자의 경우는 새로운 personal 단말디바이스 기능만을 수행하는 PID를 담은, 정체증명수단이 필요하다. 따라서 디지털 공간에서 DID와 유일하게 연결되는 PID는 PID 정보 자체가 디지털 공간으로 흘러들어가지 않으면서 PID를 암호화한 새로운 데이터가 PID를 대신하여 DID와 접속되는 것이다. 즉 “인증 기법 (authentication method)과 그 인증 정보를 주고 받기 위한 인증 프로토콜 (authentication protocol)을 “분리”하는 것을 핵심 아이디어로 한다.”이다.

전문적인 엔지니어가 아닌 다음에야 여기서의 “분리”가 얼마나 강력한 함축을 가진 개념인지를 상상해 보지를 않는 것이 현실이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기술 용어의 간결한 표현이 일반인에게 쉽게 이해되는 일은 매우 드물지 않던가? 이 논변이 디지털 공간의 ‘독립’이라는 원리를 발굴하게된 직접적인 이유이다. 아직도 이 의미가 읽혀지지 않는가? 그런데 이는 나의 고집스럽고 이상한 의견이 아니라 FIDO1, FIDO2의 표준의 기본 구조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FIDO 표준 그룹 (FIDO Alliance)은 참으로 제대로 된 ‘디지털 공간 설계의 기초’를 마련했는데, Y2K 이슈로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간 것과는 달리, FIDO 표준은 디지털 공간으로 보다 안심하게 인도하는 획기적 아이디어를 기술언어로 정리한 규범이 아니던가? 사실 FIDO는 이것만이 아니라 그동안의 접속 방법인 ID/Password 로그인이라는 디지털 공간 접속 방법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표준까지 준비하였다. 말하자면 “FIDO Specification은 비밀번호 없이 인증을 하기 위한 UAF(Universal Authentication Framework) 프로토콜과 비밀번호를 보완해서 인증을 하기 위한 U2F(Universal 2nd Factor) 프로토콜로 구성된다.” 여기서 또한 기억하여야 하는 것은 FIDO도 PKI 기반으로 작동된다는 사실이다.

2021년 2월 3일 itworld에 게재된 Josh Fruhlinger의 글, ≪비밀번호 사용을 줄이기 위한 ‘FIDO’의 의미와 인증 프로세스≫ (https://www.itworld.co.kr/news/181859#csidx8b9bdf482ab67a4bbdb79dcfbc802ff https://www.itworld.co.kr/news/181859)가 참고가 된다.

이렇듯 어느 사이 물리 공간과 디지털 공간의 언어의 간극이 커졌다는 우울한 상황뿐만이 아니라 이제 디지털 공간의 안녕과 질서를 위한 기술규범이 매우 촘촘해졌고, 반면에 더욱 어려워졌다. 이것도 디지털 일리터러시(digital illiteracy)이고 이는 물리 공간과 디지털 공간 양쪽의 건강한 전개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원인이 되고 있다.

⓸ 물리 공간에서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공간에서는 무엇보다도 DID의 도용 방지가 기본적인 ‘신뢰’ 개념의 구성조건이다.

디지털 공간의 관점에서 PID와 DID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신뢰”(trust)에 관한 주장을 펼치지만, 이런 신뢰의 작동 토대는 바로 PKI이다. 인간이 디지털 공간에 들어가는 모습보다는 디지털 공간이 데이터라는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인간을, 즉 PID를 선택한다고 보는 관점에서 살펴보자. 그러한 선택에서 PID를 확인하는 신뢰 구조는 바로 생체정보가 가장 탁월하고 거의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제8편의 글의 내용에 동의를 하든 하지 않든 그 함축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앞으로 디지털 공간이든 메타버스이든 그 어떤 형태의 인터넷 시스템의 이해를 하기 어렵다. 기술표준과 기술규범을 이해하기는 너무도 어렵더라도 그것들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다시 첨언하지만, FIDO는 주체(identity)로 인정하기 너무도 어려운 passwords를 추방하기 위해 등장했다. 그리고 passwords 추방 운동은 이제 글로벌 메이저인 Microsoft, Apple, Google 등이 동참하여 이행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디지털 공간의 신뢰 시스템으로서의 Passkey를 공동 제작하는 글로벌 동맹을 맺어 메타버스 시대에 대비한 그들의 디지털 공간을 거의 무한으로 확장하고 공고히 하고 있다.

그들의 공간에 비견되는 그 어떤 디지털 공간도 대한민국에서는 만들지 못하고 있다. 오호통재라!!! 글로벌 경제위기에서도 무역에 목 매달건 국가간의 전쟁이 벌어지건, 디지털 공간의 확장을 멈추지 않는 그들은 그들이 주도하는 공간에서 누구든지 추방할 수 있고, 추방되는 자는 추방되면 그 어떤 제품과 서비스도 물리 공간에서 출시하지 못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그리하여 변방으로 밀려나는 대한민국이 될 수도 있다는 각성이 시급하다. 이렇게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2)’를 마무리한다.

(2022년 7월 12일 화요일)

/디지털신뢰공간 아키텍트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연락처는 newdhj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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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전전후 스토리텔러, 김호연

영화·만화·소설을 넘나들며 온갖 이야기를 써나가는 전천후 스토리텔러.

1974년 서울생.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첫 직장인 영화사에서 공동 작업한 시나리오 「이중간첩」이 영화화되며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

두 번째 직장인 출판사에서 만화 기획자로 일하며 쓴 「실험인간지대」가 제1회 부천만화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만화 스토리 작가가 되었다.

같은 출판사 소설 편집자로 남의 소설을 만지다가 급기야 전업 작가로 나섰다. 이후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를 실천하던 중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로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되었다.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2013), 『연적』(2015), 『고스트라이터즈』(2017), 『파우스터』(2019)와 산문집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2020)를 펴냈다.

영화 「이중간첩」(2003), 「태양을 쏴라」(2015)의 시나리오와 「남한산성」(2017)의 기획에 참여했다.

2021년 『망원동 브라더스』에 이은 ‘동네 이야기’ 시즌 2 『불편한 편의점』을 출간했다.

저서소개_불편한 편의점

2021년 4월에 출간되어 전 연령층의 폭넓은 공감을 얻으며 소설 읽기 바람을 일으킨 『불편한 편의점』의 열기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하고 먹먹했다” “눈가에 미소와 눈물이 떠나지 않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서 읽었다”

“작은 친절과 소통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책” “힘든 시기를 버티게 해준 책” 등의 독자 리뷰 하나하나가 책이 가진 힘을 말해줍니다.

청파동 골목 모퉁이의 작은 가게, 서울역 노숙인이었던 정체불명의 야간 알바가 지키는 곳, 불편한데 자꾸 가고 싶은 봄날의 편의점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번 벚꽃 에디션에는 알라딘 독자에게 전하는 김호연 작가의 친필 사인 메시지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불편한데 자꾸 가고 싶은 편의점이 있다!

힘들게 살아낸 오늘을 위로하는 편의점의 밤

정체불명의 알바로부터 시작된 웃음과 감동의 나비효과

『망원동 브라더스』 김호연의 ‘동네 이야기’ 시즌

원 플러스 원의 기쁨, 삼각김밥 모양의 슬픔, 만 원에 네 번의 폭소가 터지는 곳!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다가온 조금 특별한 편의점 이야기

2013년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망원동 브라더스』로 데뷔한 후 일상적 현실을 위트 있게 그린 경쾌한 작품과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스릴러 장르를 오가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쌓아올린 작가 김호연.

그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이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불편한 편의점』은 청파동 골목 모퉁이에 자리 잡은 작은 편의점을 무대로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삶의 속내와 희로애락을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망원동 브라더스』에서 망원동이라는 공간의 체험적 지리지를 잘 활용해 유쾌한 재미와 공감을 이끌어냈듯 이번에는 서울의 오래된 동네 청파동에 대한 공감각을 생생하게 포착해 또 하나의 흥미진진한 ‘동네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서울역에서 노숙인 생활을 하던 독고라는 남자가 어느 날 70대 여성의 지갑을 찾아준 인연으로 그녀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덩치가 곰 같은 이 사내는 알코올성 치매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데다 말도 어눌하고 행동도 굼떠 과연 손님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게 하는데 웬걸, 의외로 그는 일을 꽤 잘해낼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묘하게 사로잡으면서 편의점의 밤을 지키는 든든한 일꾼이 되어간다.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와 그들 간의 상호작용을 점입가경으로 형상화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작가의 작품답게 이 소설에서도 독특한 개성과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해 서로 티격태격하며 별난 관계를 형성해간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다 정년퇴임하여 매사에 교사 본능이 발동하는 편의점 사장 염 여사를 필두로 20대 취준생 알바 시현, 50대 생계형 알바 오 여사,

매일 밤 야외 테이블에서 참참참(참깨라면, 참치김밥, 참이슬) 세트로 혼술을 하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푸는 회사원 경만,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청파동에 글을 쓰러 들어온 30대 희곡작가 인경,

호시탐탐 편의점을 팔아치울 기회를 엿보는 염 여사의 아들 민식, 민식의 의뢰를 받아 독고의 뒤를 캐는 사설탐정 곽이 그들이다.

제각기 녹록지 않은 인생의 무게와 현실적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독고를 관찰하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대립, 충돌과 반전, 이해와 공감은 자주 폭소를 자아내고 어느 순간 울컥 눈시울이 붉어지게 한다.

그렇게 골목길의 작은 편의점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가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웃음을 나누는 특별한 공간이 된다.

청파동 골목에 자리 잡은 작은 편의점 ALWAYS.

어느 날 서울역에서 살던 사내가 야간 알바로 들어오면서

편의점에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기피하고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인물의 변신과 반전, 아이러니한 상황 전개는 이 소설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염 여사의 편의점은 직원들 입장에서는 비교적 좋은 대우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지만 주변에 편의점이 하나둘 생기면서 경쟁에서 밀리자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상황에 봉착한다.

그러다 보니 동네 사람들에게 ‘불편한 편의점’으로 인식되는데, 이런 와중에 얼마 전까지 노숙자였던 ‘미련 곰탱이’ 같은 사내에게 야간 시간대를 맡긴다니 기존 직원들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그런데 걱정도 잠시, 그가 들어온 후 편의점에는 신선한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그는 물건을 슬쩍한 뒤 튀려는 불량학생이나 한밤중의 취객을 제법 잘 다루고, 일명 제이에스라 불리는 진상 손님까지 두 손 들고 나가 떨어지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편의점은 비싸다며 오지 않던 동네 노인들마저 독고의 싹싹한 태도에 마실 나오듯 편의점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오전 매출이 쑥 올라간다.

독고가 일으킨 변화의 바람은 동료들에게도 전해진다. 편의점 알바를 하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시현은 신참 독고에게 매장 업무 교육을 해주다 그가 불쑥 건넨 말 한마디에 자신의 숨은 재능을 발견한다.

얼마 후 그녀는 다른 편의점에 스카우트된다. 아들과의 관계 단절로 속을 태우는 오 여사는 자신의 하소연을 귀담아 들어주고 아들과 소통할 방법을 넌지시 알려주는 독고에게 큰 감명을 받는다.

그런가 하면 어떤 손님은 독고의 눈빛과 접객 태도에서 영락없는 사장의 풍모를 추리해내기도 한다.

집과 회사 양쪽에서 점점 존재감을 잃어가는 세일즈맨 경만은 퇴근길 편의점에서 하는 혼술이 유일한 낙인데, 어느 날부터 편의점의 밤을 장악한 사내를 사장이라 지레짐작하여 못마땅한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그 역시 독고의 순수한 호의 앞에서 얼어붙은 마음이 스르르 풀어지고 만다.

독고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염 여사로 하여금 독고를 쫓아내고 편의점을 팔게 하려던 민식은 그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엄마와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고, 민식의 사주로 독고의 뒷조사를 하던 곽 씨는 오히려 타깃인 독고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만다.

지친 상태로 대학로를 떠나와 마지막 글쓰기에 매달리는 희곡작가 인경은 서울역 홈리스였던 이상한 알바와 매일 밤 취재차 대화를 나누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용기를 되찾는다.

어쩌면 이곳 편의점에서는 손님이든 직원이든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과 영감을 주는 존재들인지 모른다. 애초에 염 여사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독고가 이를 받아들인 것도 살기 위한 마지막 본능에 가까웠고, 염 여사 역시 덕분에 편의점의 밤을 맡길 든든한 인재를 얻었으니 그들은 서로를 지켜낸 셈이다.

삶은 관계이자 소통,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다

소설은 일곱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편의점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의 시선으로 독고의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마지막은 독고의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편의점 일에 숙달될수록 독고는 기억을 조금씩 되찾는다.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알코올로 굳어진 뇌가 활성화되면서 기억의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어쩌다가 모든 것을 잃고 술에 빠져 살다가 기억마저 잃어버리고 노숙인이 되었을까. 분명한 것은 그가 편의점에서 두 계절을 보내면서 다시 살아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가 기억을 거의 회복할 무렵 대구 지역에서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와 함께 독고에게도 결단의 시간이 찾아온다.

불편한데도 자꾸 끌리는 이상한 편의점 이야기는 코로나로 인해 여전히 불편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침맞게 도착해 유쾌한 웃음과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삶은 관계이자 소통이며, 행복은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다는 한결같은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게 될 것이다.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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