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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창, 파리로 떠나는 도시산책

저자 박성창은 파리지앵입니다. 일년에 한번은 파리여행을 했다네요. 코로나 시대 파리를 갈 수 없어서 대신 파리에 관한 책을 썻다고 합니다. 저자는 묻습니다. 파리는 어떻게 문화예술의 수도가 되었을까요?

19세기 프랑스에서 ‘혁명’만큼 자주 쓰인 단어도 없습니다. 파리는 혁명의 분화구 위에 문화예술의 꽃을 피운 도시입니다. 혁명의 에너지가 문화예술의 혁명으로 전이된 특이한 사례입니다. 파리의 매력을 베수비오 화산에 비유한 발터 벤야민은 “파리에서는 혁명이라는 용암 위에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예술과 화려한 생활과 패션이 꽃을 피우고 있다.”고합니다.

혁명을 추동한 근대화의 동력이 사회 전반 그리고 문화예술로 확산되며 혁명이 시너지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정치’ 혁명, ‘산업’ 혁명, ‘도시’ 혁명이 ‘문화예술’ 혁명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특히 오스만의 파리 대개발(1852~1870)은 중세의 파리를 부수고 새로운 파리라는 도시를 창조합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신화의 절정입니다. 자동차, 지하철, 자전거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인상주의의 미학적 혁신이 이루어지고, 피카소로 대표되는 수많은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파리를 문화예술의 성지로 만든 요인은 재주많은 수많은 이방인을 받아들이고 서로 네트워킹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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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79년 8월 24일,베스비오화산이 폭발하고, 폼베이도 사라졌다.

수세기 동안 휴면 상태에 있던 베수비오 산이 폭발하면서 로마의 도시 폼페이가 화산재와 진흙아래에 ​​묻혔다. 폭발후 12시간 동안 화산재와 가스의 거대한 구름이 도시를 덮었고, 지름 3인치에 달하는 우박이 폼페이를 강타했다. 도시 거주자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치거나, 지하실 등에 숨었다. 그렇지만 8월 25일 아침 유독 가스 구름이 도시에 쏟아지면서 남아 있던 모든 생명을 질식시켰다.  

당시 폼페이에는 수많은 포도밭과 과수원을 개척한 상인, 제조업자, 농부를 포함하여 20,000명이 거주했다.  호화로운 빌라와 웅장한 로마식 목욕탕이 있었고. 발굴된 도박 유물과 매춘굴은 도시의 퇴폐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1748년 한 농부가 포도원 아래에서 폼페이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 이후로 현재까지 거의 중단 없이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1927년에 이탈리아 정부는 청동과 대리석 조각상과 그림을 포함한 수많은 예술 보물을 회수하면서 발굴을 재개했다.

발굴로 2,000명의 남녀, 어린이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질식으로 사망한 후, 그들의 몸은 재로 덮여 굳어지고 몸의 윤곽이 보존되었다. 도시의 나머지 부분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멈춘 상태이며 폼페이의 일상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오늘날 베수비오 산은 유럽 본토에서 유일한 활화산이다. 마지막 분화는 1944년이었고, 가까운 장래에 또 다른 분화가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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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숙의 경성 기억극장

“그냥 오늘 있었던 일도 지워 버리렴.

그럼 아무렇지 않을 거야.”

기억과 책임의 의미를 묻는 이야기

웅진주니어 문학상 장편 부문 우수상 수상작

기억을 지우면 죄의 무게도 덜 수 있을까?

누구나 잘못된 선택, 부끄러운 실수를 저지를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도 때때로 찾아오는 괴로움에 차라리 기억을 지워 버리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경성 기억 극장』은 잊고 싶은 기억을 지워 주는 ‘기억 삭제 장치’가 있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과거에서 벗어나도록 도우려는 과학자, 기억을 지워 역사를 왜곡하려는 군인, 이를 막으려는 비밀스러운 조직의 이야기가 얼떨결에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어린이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펼쳐진다. 기억을 지운다는 설정은 1945년 경성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맞물려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경성 기억 극장』은 고통스러운 기억이라고 해서 없었던 일처럼 잊어버리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거의 명암을 똑바로 바라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우리에게는 기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고민하고 성장하는 어린이

시절이 어수선할 때 가장 고통 받는 존재는 약자이다.

일제 강점기, 어른들이 전쟁터로, 군수 공장으로 끌려가면 의지가지없는 어린이들은 길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덕구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경성 땅에 홀로 남겨진다.

어머니의 병원비로 큰 빚까지 진 터라 같은 집에 사는 수현이 아저씨를 밀고하면 빚을 갚아 주겠다는 꼬임에 넘어가 버린다.

덕구는 고문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아저씨를 보고 기억을 지워 손쉽게 죄책감에서 벗어나지만, 나중에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자신의 나약하고 비겁한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로 결심한다. 덕구와 달리 경성 기억 극장을 찾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어쩔 수 없었다.”라고 변명한다.

민간인을 죽인 군인도, 독립운동가를 고문한 순사도 자신은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라면서도 결국은 죄에 짓눌려 기억을 지워 버린다.

기억을 지우고도 그 흔적에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달리 용기를 내어 자신의 과오와 직면한 덕구는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찾는다. 시련 속에서도 한 발짝 성장하는 인간 내면의 힘이 감동을 전한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경성 기억 극장』은 1945년 1월부터 8월까지, 제이 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달하던 기간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보여 준다.

해방이 머지않았음을 굳게 믿는 독립운동가,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어떤 기억이든 지워도 된다고 믿는 과학자, 원치 않는 전쟁에 내몰린 군인 등 다양한 인물을 통해 격동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작가 최연숙은 꼼꼼한 자료 조사와 고증으로 일제 강점기 경성의 풍경과 그 시절 사람들을 생생하게 그려 냈다. 그러면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순간에도 희망을 놓지 않으면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거대한 역사의 흐름으로 보여 준다.

해방의 그날, 거리를 가득 메운 태극기의 물결이 독자들에게도 각별한 의미로 전해질 것이다.<출판사 제공>

작가소개_최연숙

속상하고 힘든 날, 혼자서 어디론가 숨고 싶은 날, 어린이 친구들이 찾아 읽는 동화를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백 년 후 한성에 가다: 조선 최초 미래 공상 소설』, 『경성 고양이 탐정 독고묭』, 『세상을 움직인 동그라미』가 있다.

『경성 기억 극장』으로 제13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장편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최근작 : <경성 기억 극장>,<경성 고양이 탐정 독고묭>,<백 년 후 한성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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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년 8월 18일 칭기스칸 사망하다.

‘하늘이 도와 나는 너에게 물려줄 거대한 게국을 정복했다. 하지만 세계정복을 이루기에 내인생은 너무 짧구나. 그일은 네(오고타이)가 물려받아야겠다.’

칭기스칸은 원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몽골궁전으로 돌아가는길에 낙마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요구로 그의 무덤은 감췌졌다. 무덤건설에 관여한 사람은 모두 죽임을 당했고, 무덤의 위치는 아직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칭기스칸은 셋째 아들 오고타이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절정기 몽골제국의 영토는 중앙아시아에서 다뉴브강에 까지 이르렀다. 오코타이가 1241년 사망한후, 몽골제국은 여러 독립칸국으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칸의 후예들은 중국을 정복했고, 인도에서 무굴왕조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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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생활밀착 크리에이터, 모호연

1982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법학을 전공하고 방송국 시사프로그램 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줄곧 프리랜서의 길을 걸어왔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2da)와 함께 일상적인 예술 창작을 위한 ‘소사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뉴스레터 ‘일간 매일마감’ 제작에 참여하여 에세이와 시, 동화 등 다양한 글을 연재했다.

평소 가까운 물건의 생애와 쓸모에 관심이 많고 일상을 돌보는 살림으로서의 만들기에 진심인 편. 장래에는 공구를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을 만들어 이웃들과 교류하며 수선 문화를 확대하는 거창한 꿈을 꾸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반려물건』,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공저)』가 있다

저서 소개_반려 공구

공구가 알려준

이토록 자유롭고 흥미진진한 세계!

2022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김하나, 김혼비, 이다 작가 강력 추천!

도전과 시작, 두려움과 용기에 관한

반짝반짝 빛나는 공구생활 에세이

집 안 어딘가에 드라이버 하나쯤 있을 것이다.

드라이버나 망치, 펜치는 제법 흔한 물건이지만 ‘공구’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어쩐지 내가 쓸 법한 도구는 아닌 것 같다.

하물며 전동 공구라면 더더욱 낯설고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공구를 가까이 두고 마침내 ‘반려’라는 지위를 부여할 만큼 의지하면서 삶이 달라진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에세이스트 모호연 작가의 『반려공구』는 공구와 함께 새로운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자신의 힘으로 일상을 단단하게 돌보는 사람의 이야기다.  

모호연 작가는 스스로를 ‘일상의 만들기에 관심이 많은 탐구생활러’로 일컫는다.

그는 작게는 액세서리, 냉장고 자석, 모니터 받침대부터 책장, 회전하는 옷장, 주방 카운터, 벙커 침대 등 덩치 큰 가구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것은 뚝딱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전등갓이 깨지면 글루건으로 이어 붙이며 은하수를 수놓기도 할 정도로 삶의 곳곳을 되살릴 줄 안다.

처음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20대 중반까지 스스로를 ‘적응의 화신’이라 일컬을 만큼, 고장 난 수도꼭지며 삐걱거리는 식탁, 커튼 봉을 달지 못해 대충 가려놓은 현수막 등 일상의 불편을 그저 견디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어쩌다 전동 드라이버가 손에 들어왔고, 처음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모니터 받침대를 만들고 커튼 봉을 달면서 이 모든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을,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는 전보다 조금 더 용감해졌다. 완벽을 꿈꾸며 주저하던 시간을 멈추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단 해보는 사람,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 공구들이 있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21가지 공구는 모두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때로는 웃픈 실패를 목격하며, 일상을 함께 돌봐온 든든한 동료들이다.

망치, 펜치, 드라이버, 톱, 전동 드릴 같은 익숙한 공구부터 타카, 실리콘건, 샌딩기, 시계 공구처럼 한 번쯤 다뤄보고 싶어지는 공구들까지 다양한 공구들이 등장한다.

손때 묻은 공구들을 소개하는 저자의 글은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듯 정겹고 다정해서, 차가운 금속성의 소재가 무색하게도 따스한 온기로 가득하다.

특히 공구의 부위별 명칭, 이름의 유래, 정확한 사용법 등 공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특유의 유머와 함께 알기 쉽게 설명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공구가 친밀하게 느껴진다.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면서 얻은 자유와 해방감을 목격하는 순간, 김혼비 작가의 추천사처럼 “당장 공구를 손에 쥐어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저자에게 도전의 용기와 시작의 설렘을 안겨주었던 ‘반려공구’가 이제 당신을 반짝반짝 빛나는 생활로 초대한다.

완벽한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마음을 키워준,

인생의 소중한 반려가 된 공구들

『반려공구』는 공구의 종류와 쓰임새를 정확히 알 수 있어 유익하지만, 이 책이 더욱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공구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이다.

이를테면, ‘글루건’은 접착력이 약하기 때문에 어디에든 붙여볼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강점이라며, 저자는 글루건으로부터 대상과 목표를 가리지 않고 일단 해보는 태도를 배운다.

늘어난 줄자처럼 허술한 측정 공구들은 정확한 재단을 해야 할 땐 불리하지만, ‘대충 하자’고 타이르는 느슨한 자아가 오히려 결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살림으로서의 만들기를 지속할 수 있는 동력임을 깨닫기도 한다.

“나의 성취감은 대부분 완성보다 과정에서 온다.

완벽함을 이상으로 알던 시절에는 오히려 완벽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시도조차 못한 일이 많았다. 그러나 어설프게나마 시도한 일은 그저 하는 것만으로 나를 발전시켰다.

그 후로 나는 할 마음이 드는 것이라면 아무거나 해보기로 했다.” _본문 중에서

스스로를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고백한 모호연 작가는 공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무슨 일이든 ‘기꺼이 도전하는 여력’이 생겼다고 말한다.

수동 샌딩기로 목재를 밀 때도 몸이 가진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만족하는 법을 알고, 최선을 다했다면 ‘이 정도면 됐다’고 스스럼없이 인정하고 물러날 줄도 안다.

일상을 지속하는 힘은 완벽한 결과가 아닌 과정을 즐기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구가 알려준

이토록 자유롭고 흥미진진한 세계!

1부 ‘시작합니다, 공구생활’은 전동 드라이버, 렌치, 톱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공구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친숙한 공구들과 함께, 공구를 사용하기 전과 후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담담하게 풀어놓으며 독자를 매력적인 공구의 세계로 이끈다.

나무, 콘크리트, 석고보드 등 소재에 따라 못 박기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나무에 구멍을 뚫지 않고 나사를 박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공구 사용의 정석과 기본 원칙을 실수와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과 함께 전한다.

2부 ‘도구와 공구의 경계에서’는 가위, 커터, 접착제, 재봉틀, 왼손과 오른손처럼 도구와 공구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공구들을 소개한다.

공구의 사명이 ‘만들고 수리하는’ 것이라면, 이에 부합하는 도구는 얼마든지 공구가 될 수 있다. 가로폭이 정확히 1.5cm인 저자의 왼손 엄지손톱이 자가 없을 때 측정 공구로 활약하는 순간처럼 말이다.

저자는 좋은 공구란 대단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공구가 아닌 어떤 일이든 시도해볼 만하다는 용기를 주는 공구라고 말한다.

의욕을 자극하는 공구, 생활공간을 돌보는 데 기여하는 공구, 새로운 영역으로 생각의 지평을 뻗어나가게 하는 공구들의 이야기가 『반려공구』에 담겨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공구란 어떤 일이든 시도해볼 만하다는 용기를 주는 공구다.

대단한 공구가 있으면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어떤 일을 해내고자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공구를 든 사람이다. 사람이 의욕을 가지고 시도하지 않으면 공구는 혼자서 아무 일도 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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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 ⑫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6

물리공간에 병행하여 존재하는 무수한 디지털 공간은 거의 대부분 열린 공간이다. 많은 공간이 가입과 로그인을 공간 유영(spacewalking)의 농도에 차이를 두는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닫힌 공간으로 작동되는 디지털 공간은 국가기밀을 다룬다는 명분으로, 또는 CUG(Closed User Group)에 의하여 폐쇄적 관계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밝고 건전한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있지 못하다.

열린 공간으로서의 디지털 공간에 가입과 로그인이라는 절차를 도입하는 것은 클라우드기반시대에 구독경제라는 새로운 경제유형을 낳으면서 디지털 공간의 모습에 변형을 가져왔지만 대세로 굳어져가고 있고 강력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소위 개인맞춤형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절차로도 적용되고 있다.

디지털 공간의 유영(spacewalking)을 즐기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고 유영을 멈추는 사람들이 많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친밀하고 호기심 가득하게 유영을 한다면 디지털 공간의 구조에 조금 더 익숙하게 되고 좀 더 고쳐야 하는 것들도 찾게 되고 더 나은 공간을 만들 수 있는 혜안도 얻게 된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이러한 깊고 넓은 유영의 경험과 사색의 정도에 달려 있지 않은가?

이번 편에서는 어떤 이슈를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6으로 거론할 것인가? 특히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를 다루는 그 간의 글의 내용은 (1) 데이터론, (2) 디지털 공간 핵심 구성요소, (3) 디지털 공간 인증체계 그리고 (4) 설계 고려 사항(considerations), 그리고 (5)의 ‘오토노미 담론’(autonomy discourse)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번 글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의 여섯번째 글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고민끝에 traffic으로 쟁했다. 매우 간결하게 작성했다. DNA의 역사와 브라우저의 역사와 검색창의 역사는 아예 거론하지도 않았다. 나의 연재글의 전체 글에서는 12번째의 글이다. 말미에 목록을 붙여놓았다.

디지털 공간의 구조

디지털 공간은 그 공간에 접속되는 온갖 종류의 ⓵ 단말디바이스와 그 단말디바이스가 찾아가는 곳 즉 호스트 컴퓨터와 같은 또는 클라우드 플랫폼과 같은 ⓶ 데이터저장소 또는 콘텐츠저장소 그리고 그 찾아가고 가져오는 과정을 매개하는 수많은 라우터와 같은 ⓷ 트래픽 처리 장치 등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디지털 공간 구조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이다.

이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condition)은 연결(connected condition)이다. 또는 언제나 연결 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이들 3가지를 차례차례 다루기로 한다.

(1) 단말디바이스

단말디바이스는 스마트폰, 패드, 노트북, PC, TV, Monotor, IoT equipment, 다양한 CPE(customer premise equipment), Sensors, Camera, Watch, 의료진단측정기, 제임스웹 망원경, LiDAR, AR/VR/MR equipment, Glass, 골프측정기, Refrigerator, 세탁기, 세척기, 지진측정기, 산불감지기, 해양측정기, 수많은 디지털 솔루션이나 SW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만물지능통신의 시대에 IoT(Internet of Things)에는 인간도 thing의 하나라고 이미 내가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앞으로도 무수한 단말디바이스가 출현할 것이다, 이러한 단말디바이스의 새로운 발명과 출현을 살펴보더라도 디지털 공간이 어떻게 진화해 나갈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도대체 무슨 데이터를 사람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세계로부터, 우주로부터 디지털 공간은 얻으려고 하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어쩌면 이 지구의 진화의 방향까지도 미리 감을 잡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단말디바이스를 이렇게 설명하는 이유를 정리하자. 단말디바이스는 디지털 공간의 접속을 담당하는 장치로서 언제나 데이터의 I/O의 최종 위치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때로는 늘 연결 가능한 상태에 있다. 데이터의 생산의 기지이고 처리된 데이터의 출력의 기지이다.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는 곳, 즉 prosumer이라는 신조어의 산실이 바로 단말디바이스이다. 그 데이터의 유통의 과정은 바로 트래픽(traffic)이다. 따져보면 데이터는 정적(static) 개념이고 트래픽은 동적(dynamic) 개념이다. 비즈니스는 데이터로 준비하고 트래픽으로 수행되는 것이다. 트래픽의 지배가 글로벌 디지털 비즈니스의 핵심이 된다는 의미이다.

(2) 데이터/콘텐츠 저장소

데이터저장소 또는 콘텐츠저장소라는 것은 복잡한 기술적 구조의 설명을 다 접고 쉽고 간결하게 말한다면 크게 보아 2가지로 존재한다. 웹기반 저장소와 앱기반 저장소이다.

웹기반 저장소는 웹사이트를 말한다. 앱기반 저장소는 웹기반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변이(variation)을 보여준다. 웹사이트는 20억개 정도이고 앱은 900만개 정도이다. 바로 이것이 현재 물리 공간에 병행하여 존재하는 디지털 공간의 숫자다. 물론 웹과 앱이 동일한 데이터/콘텐츠 저장소를 두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클라우드에 두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웹은 반드시 DNS/IP Address를 채택해야 하고, 앱은 반드시 DNS를 채택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웹과 앱의 작동 기반은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 차이는 디지털 공간 생태계 또는 디지털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는 다양한 관점과 전략을 낳는다.

웹사이트는 20억개가 열린 공간에서 존재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앱공간은 그렇지가 못하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앱마켓은 구글 플레이와 애플의 앱스토어라고 우리는 알고 있지만, 최근의 글로벌 앱마켓은 그런 양상을 전환시키고 있다. 새로운 앱마켓은 중국이 주도하고 있고, 새로운 앱의 숫자는 중국계 3개의 앱마켓이 각각 1, 2,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구글은 4위, 애플은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요? 웹사이트는 무수하고 증가하여 왔지만, 앱마켓은 구글과 애플 등의 앱마켓 소유주의 정책에 의하여 등록되고 출시가 되기때문에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즉 앱공간의 크기는 구글과 애플 그리고 중국계 대형 앱마켓 3개에 의하여 사실상 지배되고 있다.

그래서 앱은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특화된 애플리케이션이기 때문에 DNS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기술적 방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디지털 공간의 존재 방식에 변이를 가져온 것이다. 물론 구글은 여러가지 목적에 의하여 2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여 ICANN으로부터 .app이라는 gTDL를 사들여 앱마켓을 DNS라는 ID체계를 적용하려고 하고 있고, 애플은 앱마켓에 DNS 대신에 Bundle ID라는 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구글은 독자적인 단말디바이스가 없는데도 구글 OS, 구글 Browser, 구글 Cloud Platform으로 강력한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고, 애플은 무엇보다도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 워치, 애플 노트북 등 강력한 성능의 단말디바이스를 토대로 애플 iOS, 애플 사파리, 애플 아이튠즈 등 그리고 독자 설계한 강력한 CPU(AP)으로 난공불락의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이 지점에서 세계적인 제품을 만드는 삼성과 엘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늘 자문에 자문을 거듭하여야 한다. 단말디바이스를 쥐고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강력한 디지털 공간, 디지털 산업의 핵심 경쟁력인데, 이를 살리지 못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만든 재화와 서비스에 핵심적 요소를 외산으로 채운다는 것은 스스로 강력한 경쟁력 요소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3) 트래픽

이제는 트래픽을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단말디바이스, 데이터/콘텐츠 저장소에 이어 3번째의 주제이다. 즉 디지털 공간의 핵심 구성요소에 관한 3번째 설명이다.

트래픽 주제 1 – DNS

기본적으로 인터넷 표준으로서의 TCP/IP는 데이터를 패킷화하여 트래픽으로 전환하는 것으로서 Head에 실린 주소 정보를 따라 하염없이 흐르고 흘러 destination에 도달하게 되어 있다. 물론 단말디바이스를 통하여 떠났다가 단말디바이스로 흘러온다. 그 과정에 트래픽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트래픽 처리에 종사하는 아카마이라거나 클라우드패어라거나 수많은 인터넷기술회사들이 BM을 나름 만들어 서비스를 하고 있고, 또한 패킷데이터의 안정적 전송을 보장하는 security 회사들도 다양한 기술을 동원하여 BM을 만들어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응용기술 회사들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트래픽은 ICANN의 DNS/IP Address 기반에 의하여 이뤄진다. 미국에 있는 Root DNS Server와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13개의 복제 서버를 통하여 DNS query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다. 가장 기초적인 트래픽을 ICANN에 의하여 조절되고 있고 없어서는 안될 가능이다. 이 기능이 없다면 디지털 공간은 와해될 것이다.

다시말하면 1969년 인터넷이 처음 출현했을 때 등장했던 많은 Alternative DNS와 같은 것들이 과열 경쟁하면서 아마도 인터넷 공간 또는 디지털 공간을 개판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블록체인공간이 탈중앙집권화를 내세우더라도 루나/테라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알고리즘에 의한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것은 즉 중앙통제가 전혀 없는 구조에서 어떤 가치를 보장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과 같은 기축통화국이 누리는 엄청난 세뇨리지 효과도 디지털 공간의 구조, 블록체인공간의 구조에 커다란 통찰을 제공하는 살아 있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또 한편으로 아마도 물리 공간에서 UN이라는 참 어설프고 약한 글로벌 정치조직이 없었다면 지구는 아마도 지금 더욱 더 개판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마 지구라는 물리 공간에서 중앙은행이라는 제도는 원래 생소했는데, Economist 창업자이자 편집자이었던 자가 ≪롬바르드 스트리트≫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한국의 체제에서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매우 강력하게 주장하여 영국의 경우 영란은행이 서서히 중앙은행으로 지위를 전환시켜 나가 경제와 금융의 위기시에 조타관리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파산과 와해의 경제금융체제를 유지하는 기능을 제도화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지구 정치는 개판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젊은 시절 경제학자였던 부친의 서가에서 롬바르트 거리라는 영문 원본을 읽었다는데 앞으로의 정책에 잘 반영되기를 바란다.

ICANN은 바로 이러한 UN 또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하는 참으로 어설픈 그러나 없어서는 안될 기능인 것이다. 특히 금융구조는 민간조직의 성격을 강하게 풍기고 있고 정치가 개입되지 않는 운영이 최적의 방법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ICANN도 비슷한 구조로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나도 과거에 ICANN 정례회의를 두어번 정도 참석한 적이 있다.

트래픽 주제 2 – 브라우저, 검색창, SNS입력창 그리고 새로운 방법

(1) 브라우저 전쟁

ICANN의 DNS/IP Address이라는 기술체계를 수용하여 운영되는 것이 바로 Browser이다. 브라우저 창은 바로 기본적으로 DNA/IP Address를 입력하는 창이다. 다른 다양한 기능과 확장 기능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에 즈음하여 블록체인 관련 기능 확장 등에 관하여는 독자들은 각자 알아서 공부하기 바란다.

바로 이 브라우즈 입력창이 디지털 공간의 트래픽을 어마무시한 힘으로 통제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트래픽이 돈이다(Traffic is Money)라고 하는 이야기는 바로 브라우즈 창에서 시작된다.

과거 인터넷 출현 초기에 등장하였다가 초라하게 사라진 Alternative DNS처럼, 브라우즈 전쟁에서도 입력창을 두고 전쟁이 벌어졌었다. 브라우즈 전쟁은 플랫폼 전쟁처럼 다른 브라우즈와의 전쟁도 매우 치열한 전쟁이지만 동일 브라우즈 안에서 입력창의 장악을 두고 벌어지는 전쟁도 엄청나게 치열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영역이었다. 그렇지만 브라우저 입력창은 convert traffic into money를 위한 전쟁이었기 때문에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ㅡㅡ 웹이 등장하고나서는 디지털 공간의 트래픽을 지배하는 도구는 브라우저가 되었다.

ㅡㅡ 브라우즈의 입력창은 당초는 주소(DNS/IP Address) 입력창이었는데, 다양한 확장 기능을 도하면서 엄청난 트래픽을 독점하거나 그 트래픽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거의 대부분 상업적 가치를 낳게 되었다.

ㅡㅡ 브라우즈 입력창을 장악하려는 싸움은 넷피아라는 회사에 의해 변형된 Alternative DNS인 자국어도메인네임체계에 의해 강력하게 전개되었지만, 전쟁도구인 브라우저 자체를 가지지 못한 상황은 절대적으로 싸움을 자기 주도로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 자국어도메인네임 체계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트래픽을 뺏기는 브라우저 소유기업으로부터 쫒겨날 수 밖에 없었다.

ㅡ 이런 전쟁은 누가 트래픽을 지배하는가?라는 쟁투를 말하는 것이다.

(2) 검색창 전쟁

그렇지만 브라우저를 가진 인터넷기업들은 브라우저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기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검색포털, 검색엔진으로 또한 생태계를 강화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는 브라우저에 도전하면서 브라우저가 독점하는 트래픽 지배능력을 나눠갖기 위한 도전을 바로 검색창에서 실현하려는 전쟁이다.

구글 검색과 네이버 검색이 디지털 공간의 트래픽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고, 사실 네이버의 검색 장악력은 구글에 비하여 너무도 약하다는 것도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구글이 브라우저로 벌어들이는 수입과 검색창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각각 얼마일까? 이렇게 단순히 질문을 할 수도 있지만 디지털 공간의 디지털 비즈니스와 디지털 전략은 이렇게 단순무식하게 질문할 수가 없다. 애플은 애플대로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를 견고한 생태계에 통합적으로 묶어 왕국을 구축하는 것처럼, 즉 구글의 디지털 공간을 엮어 나가는 것처럼, 애플도 그런 생태계를 구글보다도 훨씬 강력하게 엮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누누이 말한 CDO(Chief Data/Digital)의 역할dms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바로 CEO보다도 더 강력한 권한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여왕개미에 충성하는 일개미일뿐이고, 제갈량에게 화살을 갖다바치는 어리석은 병졸일 뿐이다. 그 뿐이랴? 디지털 시대의 지속가능한 기업으로서 유지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검색창 전쟁도 아까 말한 넷피아라는 회사를 예를들면 키워드검색이라는 신종 서비스를 출시하였지만 이 또한 검색창이라는 강력한 도구룰 소유한 구글이나 네이버에게 애초부터 싸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들이 그냥 트래픽을 뺏기는 일을 보아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방금까지의 브라우저 전쟁과 검색 전쟁을 살펴보면 파레토 법칙에 대응하여 롱테일 법칙을 들먹인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참 빈약한 주장이 아닌가? 롱테일 법칙(Long-tail Theory)이라는 현상이 관찰되는 현장을 살펴 보면 이미 브라우저와 검색엔진에 장악된 인터넷에서 롱테일 법칙은 막연한 희망을 갖도록 오도하는 질 낮은 법칙이 아니던가?

(3) 새로운 트래픽 전쟁 방법 – SNS입력창과 다른 새로운 방법

다시 살펴보자. 인터넷 공간 즉 디지털 공간은 이제 브라우저와 검색창과 앱마켓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어 있다. 앞으로 이 시장을 흔들 수 있는 묘수는 있는가? 아마 트래픽의 분점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디지털 공간에서 모든 글로벌 상업적 비즈니스(global commercial business)의 전쟁은 궁극적으로 attention 즉 traffic의 지배능력에 달려 있다.

기존의 ‘브라우저’ 시장과 ‘검색창’ 시장을 흔들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은 아마도 가장 강력한 것은 SNS의 기능과 역할의 확장에서 찾을 수 있다. ‘SNS 입력창’이 강력한 검색창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확장이 되고 있고 이것이 편의성과 유용성을 제공하면서 UI/UX를 제대로 만들면 traffic의 상당량을 분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는 최근의 카카오톡의 SNS 입력창에서의 변화를 느끼며 이해하면 감이 올 것이다. 이것은 카카오톡이 그 입력창에서 무슨 실험을 광범위하게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면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정말 강력한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 정말 다음 포털을 제대로 활용하는 강력한 생태계 구축이 다시 설계되어 집행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브라우저 전쟁, 검색창 전쟁 그리고 SNS 입력창 전쟁만이 트래픽을 지배하려는 전쟁이 아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전쟁은 어디에서 왜 가능한가? 그것은 바로 AI에 의하여 주도될 수 있다. AI에 의하여 그려지는 디지털 공간은 기존의 인터넷 규제제도 자체를 통째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가고 있다. 누누이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개인정보보호 정책과 제도의 틀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기존의 브라우즈와 검색창과 SNS입력창의 고객접점을 다른 방법으로 혁신할 수 있다. AI를 기존의 디지털 전략, 디지털 비즈니스의 개념의 맥락을 유지한 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현재의 상태를 극복하면 AI는 디지털 비즈니스의 방법을 뒤흔들 수 있다. 내가 기대하는 바는 여기에 있고, 이는 후발 주자인 글로벌 디지털 비즈니스를 주도하는 방법을 얻는 방법이 된다. 그것은 AI다. 그 단서를 오토메이션과 오토노미에서 얻기를 기대한다. 내가 제시하는 아이디어는 기존의 11편의 글에서도 수많은 힌트로 녹아들어 있다.

그렇다. 디지털 공간은 고객의 접점을 장악하는 아이디어 하나로 그 공간의 모습은 새롭게 설계 가능하다. 나는 그러한 혁신 기업이 기존의 기업이 아니라 새로운 벤처기업에서 탄생되기를 바란다.

삼성은 스마트폰으로 삼성인터넷이라는 브라우저의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통신3사는 그 강력한 인프라를 지배하면서도 디지털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을 성취하지 못하는가? 차라리 기존의 벤처들이 활개치고 글로벌로 날아가게 그들의 모든 자산을 전면적으로 개방하는 전략으로 가져가야 하지 않겠나? 둘 다 안되는 상황을 만드는 통신3사에 언제 혁신의 기회가 찾아올 것인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궁극적인 디지털 공간의 지배력은 traffic의 지배인데, traffic을 고기잡듯 몰아 잡을 수 있는 디지털 공간을 만드는 일은 앞의 11편에 걸친 나의 글에서도 상당히 많은 제안을 하였기에 여기서 재론할 수는 없지만 가장 기본적인 제안은 바로 디지털 공간 설계에 있어서의 Back to the Basic/Fundamental을 지키라는 것이다.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는 디지털 공간을 병존시키라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고객의 데이터를 착취하려고만 말고 고객에게 그 데이터로 무엇을 대신 돌려드릴 수 있을 것인가를 먼저 설계하라고 하였던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제11편의 글에서도 말했듯이 데이터를 담론의 주제로 삼은 것처럼, 오토메이션(automation)의 재료로 사용되고, 오토노미(autonomy)로 재탄생된다. 데이터론 또는 데이터학이 무엇을 말하는지 전문가들은 어찌 떠드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일종의 학문이라면, 그 학문의 내용을 채우는 수많은 인터넷 기술과 데이터 기술도 끊임없이 발전한다. 데이터는 진화하면 오토메이션과 오토노미가 된다는, 데이터의 생산이 오토메이션과 오토노미의 공급에 귀결되는 일련의 과정에는 셀수 없을 정도로 많고, 다채롭고, 다양한 디지털 공간이 개재된다. 그 과정에는 데이터의 이동과 유통이 있다.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데이터의 flow으로서 트래픽이 보다 중요하다. 데이터는 정적인 요소이지만, 트래픽은 동적인 요소이다. 디지털 공간을 살찌우고 살아 있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의 목표는 디지털 산업 경쟁력의 강화이고, 이를 위해 디지털 공간에서의 트래픽론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생각했기에 이번 제12편은 이렇게 정리하며 마친다.

(2022년 8월 11일 수요일)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newdhjj@gmail.com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이번 글 제12편은 8월 9일 화요일 게재하려 했으나 더위와 폭우와 여러가지 일들이 겹쳐 늦어졌습니다.

나의 연재 글은 Google Docs로 작성 중에 있고, 연재글의 각 편의 순서를 표시하기 위해 이라는 삽입기호를 사용하고 있는데, 문서편집기능에서 그 번호가 20번까지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길어봐야 아마 20편으로 마무리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나의 연재글의 목록을 보며 전체 골격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디지털 공간 인식체계의 재검토 https://wp.me/p2zVkV-kj (0525 수)

디지털 산업과 잠재성장률 https://wp.me/p2zVkV-l6 (0531 화)

디지털 공간 제원리와 신뢰 https://wp.me/p2zVkV-lu (0607 화)

디지털 공간론 3가지 원리 1 https://wp.me/p2zVkV-lx (0613 월)

디지털 공간론 4가지 관점 https://wp.me/p2zVkV-lN (0621 화)

디지털 공간론 3가지 원리 2 https://wp.me/p2zVkV-mk (0628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1 https://wp.me/p2zVkV-mq (0705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2 https://wp.me/p2zVkV-mv (0712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3 https://wp.me/p2zVkV-my (0719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4 https://wp.me/p2zVkV-mC (0726 화)

⑪-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5 https://wp.me/p2zVkV-mF(0802 화)

연락처는 newdhj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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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텔러]김대건,전형필,김수환 전기작가, 이충렬

이충렬은 한국 전기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전기 작가이다. 한국의 문화 및 사회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의 삶을 되살리는 데 전념하고 있다. 치밀한 자료 조사와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인물의 궤적과 시대정신을 담아내 독보적인 전기 작가의 길을 개척했다.

1994년 《실천문학》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아, 김수환 추기경》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천년의 화가 김홍도》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등이 있다. 전기를 통해 한국 문화예술계 대표 인물의 생애를 발굴·복원한 공로로 제3회 혜곡최순우상을 수상했다.

저서소개_김대건, 조선의 첫 사제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

탄생 200주년, 한국인 최초의 가톨릭 사제

김대건 신부의 삶과 길을 충실히 복원한 첫 정본 전기

김대건 신부 첫 정본定本 전기인 이 책은 2021년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교회 기념 희년禧年 선포,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 선정 등을 기리기 위해 출간되었다.

1846년 25세의 나이로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하기까지, 한국 최초의 천주교(가톨릭)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삶을 총체적으로 다룬 이 전기는, 혜곡최순우상을 수상한 대한민국 대표 전기 작가가 한국 천주교회 연구기관인 (재)한국교회사연구소의 자료제공과 감수를 받아서 펴내는 공식적인 김대건 정본 전기다. 방대하고 치밀한 자료 조사를 통해, 그동안 불확실했던 5년 반 동안의 마카오 신학교 생활과 어린 시절은 물론, 여러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했다.

특히 1845년에 한국인 최초의 가톨릭 사제가 되었음을 친필로 서약한 〈김대건 신부 서약서〉도 2021년 교황청을 통해 입수한 라틴어 원본을 170여 년 만에 정식으로 공개한다(교황청 복음화성 문서번호 Fondo S. O. C. P. vol.78, f 405). 19세기 조선을 둘러싼 세계사적 역동 속에서 온갖 박해를 이겨내고 꿋꿋하게 피어난 한국 천주교회의 다채로운 신앙 여정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어, 한국 가톨릭 신앙의 뿌리와 본질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 인세의 반은 그동안 김대건 신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재)한국교회사연구소의 연구기금으로 기부된다.

어린 시절과 교우촌에서의 생활, 8년간의 해외 신학생 생활 등

이제껏 공백으로 비워두었던 역사를 새롭게 발굴 및 검증

김대건 신부가 스물다섯 살의 젊은 나이에 순교했다고 하면 깜짝 놀라는 이가 많다. 우리나라 첫 번째 신부라는 사실은 알지만, 구체적인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200년 전, 이 땅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김대건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이 그를 사제의 길로 이끌었을까?

어떻게 조선의 첫 번째 사제가 되었으며, 왜 사제 서품 1년 1개월 만에 순교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 그리고 한국 천주교에서는 왜 김대건 신부를 모든 성직자의 모범으로 공경하는 것일까? _p.12

김대건金大建은 한국인 첫 가톨릭 사제이자 순교성인이며, 한국 가톨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다.

1984년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가톨릭의 ‘성인聖人’으로 추대되었으며, 2019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인류의 평화와 발전에 미친 기여를 인정받아 2021년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된 바 있다.

김대건 신부에 관해 그동안 많은 책과 연구 결과가 있었다.

그러나 소년 시절과 마카오에서의 신학 공부 과정은 거의 베일에 가려진 채, 편지 자료를 통해 마지막 3년 정도의 삶만 중점적으로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김대건 신부의 자료에는 공백이 많았다. 출생지가 충청도 솔뫼라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어린 시절의 삶과 경기도 용인 한덕골 교우촌에서의 소년 시절,

그리고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 임시로 설립된 조선 신학교에서의 교과과정과 교재, 심지어 외국어를 모르던 조선의 소년이 어떻게 중국어와 프랑스어, 라틴어까지 배워 능숙하게 편지를 쓸 수 있었는지 등에 대한 부분은 막연한 추측으로 남아 있었다.

전기문학의 불모지와 같은 한국에서 2010년 《간송 전형필》을 출간한 이래 《아, 김수환 추기경》과 《신부 이태석》은 물론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천년의 화가 김홍도》 등을 출간한 전문 전기 작가 이충렬(세례명 실베스테르)은,

한국교회사연구소의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주요 도서와 논문, 심포지엄 발표자료 등을 비교 검토하여 2년 6개월 동안의 대장정 끝에 그동안 공백으로 남겨져 있던 김대건 신부의 행적을 충실한 근거와 함께 생생하게 되살렸다.

조선 천주교회의 고난과 희망을 담은

청년 김대건 신부의 드라마 같은 일대기

1845년(헌종憲宗 11년) 8월 31일 상해上海의 한 선착장. 물결을 따라 흔들리는 라파엘Raphael호에 오르는 김대건 신부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작은 배가 다시 무사히 황해를 건널 수 있을까. 마포나루에 도착하면 관헌들의 눈을 피해 무탈하게 상륙할 수 있을까. 만약 그들의 눈을 피할 수 없다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십상인 위험한 길이지만 그래도 조선 천주교를 위해 가야만 하는 길이 아닌가…. _p.20

길이 7.5 미터의 작은 돛배 라파엘호에 몸을 싣고 조선을 향해 상해를 출발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이 전기의 도입부는, 뒤이어 태풍에 의해 표류하는 모습을 통해 김대건 신부의 파란만장한 삶을 상징적으로 예고한다.

서학(천주교)을 금지하고, 외국인 선교사들마저 공개 처형했던 19세기 조선. 박해와 고통의 시기에도 조선 천주교를 재건하기 위해 몰래 조선을 떠나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다시 삼엄한 경계를 뚫고 귀국하여 해외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고, 마침내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를 라파엘호에 모시고 황해를 건너게 된 드라마틱한 여정을 생생하게 재구성한다.

고향 솔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엄혹한 상황, 솔뫼를 떠나 한양의 청파와 용인의 교우촌으로 박해를 피해 다녀야 했던 유소년 시절,

어려운 신앙생활 속에서도 조선인 최초의 신학생 세 사람 중 하나로 발탁되기까지의 이야기들, 6개월 동안 1만 리를 걸어서 도착한 마카오까지의 여정,

10대 소년이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매진했던 5년 반 동안의 마카오 신학생 공부, 남경조약 조인식을 바로 곁에서 참관하는 등 견문을 넓혔던 해외 유학 생활, 프랑스인 선교사를 모시고 8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의 난관들,

상해 김가항金家巷 성당에서의 역사적인 사제 서품식, 조선의 첫 사제가 되어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한 뒤의 사목 활동들, 마침내 체포되어 치러야 했던 50여 차례의 신문과 당국의 회유,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남겼던 수많은 편지와 기록들…

한강 백사장에서 순교하기까지 김대건의 스물다섯 일대기는 말 그대로 “영웅적 신앙(프란치스코 교황)”의 증거이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다채로운 모험의 연속이다.

순교 후 미리내에 모셔지기까지의 과정과 시성諡聖, 그리고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낸 메시지까지, 이 정본 전기는 김대건에 관한 모든 장면과 기록,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담아내고 있다.

48개 자료 박스, 30여 장 컬러 지도, 19통의 편지…

새로운 발굴 자료로 김대건의 신앙여정을 새롭게 밝히다

그동안 흐릿한 사본을 통해 존재만 알려졌던 〈김대건 신부 서약서〉(교황청 복음화성 문서번호 Fondo S. O. C. P. vol. 78, f 405)도 이 전기에서 최초로 원본을 공개한다.

이 자필 서약서는 2021년 한국교회사연구소가 교황청을 통해 입수한 원본 이미지 자료로, 김대건 신부가 첫 번째 조선인 사제로서 교황청이 정한 절차를 완벽히 밟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본문 400~401쪽 수록).

또한 한국교회사연구소의 번역을 통해, 김대건 신부가 1845년 8월 17일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라파엘호를 타고 조선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인 1845년 8월 30일에 이 서약서를 작성하였고, 페레올 주교가 확인 서명을 했음을 밝혀내는 등 ‘정본 전기’에 걸맞는 새로운 사실의 확인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전에도 김대건 신부 전기는 여러 종류가 나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사료가 남아 있는 시기들만 집중적으로 다룰 뿐, 김대건 신부의 어린 시절, 교우촌에서의 신앙생활, 마카오 신학생 시절의 학습 과정 등은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았거나 왜곡된 부분이 많았다.

양반 출신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어린 시절을 다소 낭만적으로 다룬 드라마도 있었지만, 이미 집안 어른들의 잇따른 순교로 인해 용인 교우촌으로 가족들이 몸을 옮겼을 때는 이미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을 때였다.

작가는 지나친 영웅주의나 미화 대신, 지금까지 놓쳤던 주변 인물들, 스승, 후배, 친구들의 기록까지 샅샅이 뒤져서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을 찾아냈다.

그와 함께 당시 생활상과 언어의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1800년대 말 박해 시대를 배경으로 쓴 소설까지 참고하여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김대건의 삶을 복원했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 초기 한국 천주교회와 김대건 신부 삶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충실히 제시한다.

페이지 아래 109개의 주석 외에도 주요한 장면에서는 별도의 ‘자료 박스’를 48개 배치하여 더욱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컬러 고지도에 설명을 붙이거나 별도의 안내도를 제작하여 김대건 신부의 신앙 여정을 정확하게 생생하게 안내한다.

솔뫼에서 청파를 거쳐 용인 한덕골로 이동했던 초기 이주 루트, 선교사들이 북쪽 국경을 넘어 조선으로 잠입을 시도했던 선교 루트, 최초 조선 신학생 세 사람(최양업, 최방제, 김대건)의 1만 리 마카오 도보 루트, 첫 사제가 된 이후의 귀국 루트,

귀국 후 국내 선교 루트 등을 표시한 이 컬러 지도들을 통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길’을 새로이 구축해볼 수 있을 정도이다. 역사 복원을 위해 참고한 자료와 연보까지 자세하게 제시하여, 이후 김대건 신부나 초기 한국 천주교회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도 귀한 지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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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 ⑪ –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5

지난 7월 29일에 다음과 같은 기사(“美월풀 제친 LG전자, 가전 세계 1위 지켰다”)가 실렸고, 나는 이 기사에 대해 (“그래서 1등하면? 글로벌 수준의 디지털 전략은 어디? “가전도 센서다”라고 생각하면 달리 보이겠지만..)라고 페이스북에서 기사를 인용하면서 덧붙였다.

이와 같은 맥락의 예시적 글을 나는 지금까지의 10편의 글에서 틈틈이 제시했다. 상기의 예시적 글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나의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의 핵심을 이해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글을 이어가는 이유는 남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긴 시간 동안 글을 아래와 같이 길게 이어왔다. 특히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의 내용은 (1) 데이터론, (2) 디지털 공간 핵심 구성요소, (3) 디지털 공간 인증체계 그리고 (4) 설계 고려 사항(considerations)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번 글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의 다섯번째 글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디지털 공간 인식체계의 재검토 https://wp.me/p2zVkV-kj (0525 수)

디지털 산업과 잠재성장률 https://wp.me/p2zVkV-l6 (0531 화)

디지털 공간 제원리와 신뢰 https://wp.me/p2zVkV-lu (0607 화)

디지털 공간론 3가지 원리 1 https://wp.me/p2zVkV-lx (0613 월)

디지털 공간론 4가지 관점 https://wp.me/p2zVkV-lN (0621 화)

디지털 공간론 3가지 원리 2 https://wp.me/p2zVkV-mk (0628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1 https://wp.me/p2zVkV-mq (0705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2 https://wp.me/p2zVkV-mv (0712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3 https://wp.me/p2zVkV-my (0719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4 https://wp.me/p2zVkV-mC (0726 화)

그러고도 아직도 남길만한 글이 남아 있는가? 스스로 자문한다. 오늘 남길 담론(discourse)의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1. ‘디지털 공간론’과 ‘제4차산업혁명’·‘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여러번 묻고 있지만, 제4차산업혁명은 무엇을 목표로 하는 것인가?

새로운 ‘산업’혁명의 시대이므로 경제주체이고 산업주체인 “기업’은 당연히 제4차산업혁명의 대열에 참여하여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제5편의 글에서는 이렇게 적었다. “제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AI, 플랫폼, 사물인터넷, 3D프린터, 드론, 자율주행차, 비행(자율)자동차, 자동화공장, 기계와 기계의 소통, 가상현실, 탈중앙화와 블록체인, 주문생산, 기계학습, 원격조종, 원격치료, 로봇, 양자컴퓨터, 나노산업, 신재료공학, 스마트시티와 신도시공학, 공유경제 등은 제4차 산업혁명의 다양한 응용과 적용의 모습을 보여준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은 무엇을 말하는가?

ㅡ IDC (International Data Cooperation), “프로세스, 경험 그리고 가치를 변화하는 데에 적용한 기술을 기반으로 고객 및 마켓(외부환경의 변화에 따라 디지털 능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제품 서비스를 만들어 경영에 적용하고 주도하여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

ㅡ Bain & company, “디지털 엔터프라이즈 산업을 디지털 기반으로 재정의하고 게임의 법칙을 근본적으로 뒤집음으로써 변화를 일으키는 것”

ㅡ AT Kearney, “모바일,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디지털 신기술로 촉발 되는 경영 환경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현재 비즈니스의 경쟁력을 획기적 으로 높이거나 새로운 비즈니스를 통한 신규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 활동”

ㅡ PWC, “기업경영에서 디지털 소비자 및 에코시스템이 기대하는 것들을 비즈니스 모델 및 운영에 적용시키는 일련의 과정”

ㅡ Microsoft, “고객을 위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지능형 시스템을 통해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새롭게 구상하고 사람과 데이터 프로세스를 결합하는 새로운 방안을 수용하는 것”

ㅡ IBM, “기업이 디지털과 물리적인 요소들을 통합하여 비즈니스 모델을 변화(transform)시키고 전산업(entire industries)에 새로운 방향(new directions)을 정립하는 것”

ㅡ WEF(World Economic Forum), ”디지털 기술 및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하여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아래와 같이 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ㅡ “기업이 진행하거나 추진하는 혁신과정 중 하나로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인공지능(AI), 블록체인, 가상현실, 빅데이터, 애널리틱스 등 방대한 디지털 기술을 하나로 통합해 전사적인 혁신을 추진하는 것”

ㅡ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소유 중인 하드웨어 사용자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되, 구독 기반 클라우드 서비스에 의존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새롭고 빠르고 자주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

그럼 ‘제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은 어떤 관계로 파악할 수 있을까? 두 개념은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라는 동일한 뿌리를 가지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이끌어내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과거와는 다르다’라는 기준은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 그것은 이 연재글이 던지는 주제어로서의 “디지털 공간”에서 찾아보자는 것이 나의 제언이다. 물론 ‘제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과 ‘디지털 공간’은 3가지 현상이지만 같은 지향의 측면과 차원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감히 정리할 수가 있다.

따라서 전편 10편의 글 전부가 이러한 3위일체로서의 요소 개념들을 풀이하면서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을 풀어나간 것이다.

대부분의 예능적 전문가들처럼 딱 부러진 정의와 개념을 통해 설명하는 흔한 방식을 나는 채택하지 않은 것은 본래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것이고, 그것이 바로 어느 한 순간에 머무르지 않는 디지털 공간의 본연적 속성 때문이다. 일의적으로 설명한다는 모든 것들은 과거 2,000여년 동안의 철학적 설명 구조로서 이는 늘 거대 담론을 지향하고 거시적 관점을 이끌어 내는 일이지만, 이러한 설명 구조는 칸트와 헤겔을 끝으로 이미 거의 불가능해졌고, 현상학과 실존주의의 흐름과 두번에 걸친 세계대전에 대한 반발 속에서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철학 흐름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영미 철학을 특징짓는 분석철학(Analytical Philosophy)은 철저하게 ‘탈’거대담론의 길을 걷는다.

‘디지털 공간론’을 현재 시대적 핵심 개념으로 부각시킨 것은 세상의 모습이 이제는 파르메니데스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헤라클레이토스적인 유연한 인식 체계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작금의 시대에는 이런 생각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오히려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에 기초하는 존재론적 철학적 사변을 펼치는 학자들이 더 신기한 관심을 끌고 있는 요즘이다. 제1편의 글에서 ‘디지털 공간의 인식체계’를 재검토 하자는 나의 주장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다.

따라서 물리 공간론 자체가 거대 담론이므로 “디지털 공간론”도 당연히 그렇게 읽힐 수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일의적인 것으로 디지털 공간론 논변을 펼칠 수가 없다. 전편의 여러 글에서 언급했듯, 너무나 다양하고 다채로운 디지털 공간이 무수히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현재에는 디지털 공간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그런 수많은 디지털 공간을 각양각색으로 산출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평행우주(平行宇宙. Parallel Universe/World)처럼 디지털 평행공간이 물리 공간에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공간론’의 3가지 원리(제3, 4, 6편), ‘디지털 공간론’의 4가지 관점(제5편), ‘디지털 공간론’의 3가지 고려요소(제10편) 그리고 이 글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 요인으로서의 3가지 설명 개념(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디지털 공간)은 전부 거대 담론 방식의 설명을 흉내내는 궁여지책의 용어들이다. 여러번 말했듯, 편의적, 방편적 설명도구라는 뜻이다.

거대 담론(metadiscourse)과 거대 서사(grand narratives)와 거대 철학의 해체는 고유한 철학이 다른 학문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아니 다른 학문들이 철학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이를 철학의 종말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이는 철학의 새로운 전개라고 말하는 게 더 옳을 것이다. 지금의 서양 철학은 근현대를 거치면서 쌓은 과학과 기술의 장쾌한 성과를 소화하여 담지 못하면 철학자로서의 행세를 하기가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도 아주 일부의 선각자적인 철학자를 제외하고는 많은 철학자들이 기원전 출현한 동서양의 철학적 논변을 그대로 읊는 일이 여전하다.

이러한 근대까지 이어 지던 거대 담론의 철학은 근대 자체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다양한 현상을 낳았고, 그 현상이 바로 거대 철학을 해체하는 원인이 되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irony)를 역사에 남긴 것이다. 그런데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로 집약되는 ‘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디지털 공간’ 현상이 또 한번 강한 힘으로 작금의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나는 이러한 개념들을 버무려 철학적 주제보다는 현실 정치경제적 이슈로서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철학적 접근은 오히려 제7편의 글에 인용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이순석 박사에 의해 전개되고 있고, 훨씬 더 깊이 있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거대 철학의 해체 또는 전통 철학의 해체를 여러가지 관점에서 풀이할 수 있지만 내가 다루는 주제와 관련해서는 하이데거가 말한 “기술의 질주” 현상을 작금에 되풀이하는 새로운 차원의 “기술의 질주”현상을 바로 위 문장에서 언급한 현상들을 통해 시대적 전환 현상으로 설명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1889-1876)가 인식론에 치우친 서양의 근대철학을 존재론으로 전회시킨 전환기적 사상가였는데, 그의 기술철학 사상은 여전히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 현상 하에서도 유효한 관점으로 수용될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기술철학서인 ≪기술에 대한 물음(기술에 대한 논구)(Die Frage nach der Technik)≫ (1954)와 ≪기술과 전향(技術─轉向, Die Technik und die Kehre)≫ (1962)는 당시 산업혁명을 온 몸으로 체험한 그가 ‘도구 이상의 그 무엇인 기술’에 관한 본격적인 사유를 펼치면서, 자연 뿐만이 아니라 인간 자체도 도구로 변모시키는 기술의 질주(Gestell) 현상에 대한 비관적 관점을 통해 본래 그대로의 존재에의 응시를 통한 존재 자체의 드러남을 주장하였는 바, 자연과 인간 자체가 데이터화하는 오늘날의 ‘기술 질주’의 제4차산업혁명의 시대에도 울림을 주는 사상이 아닐 수 없다. 대표적인 하이데거 전문연구가인 이기상 박사의 책과 글에 그렇게 소상하게 설명되어 있다.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 주장 자체가 실체가 없다는 뭇사람의 반론 또한 많지만, 그의 논변은 묘한 공명을 만들기도 한다.

2. 디지털 공간 기술의 질주 –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

이런 기술 현상은 스스로 모순과 부조리를 잉태한 것들이라는 관점을 곰곰히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수많은 이슈들의 근원적인 문제점을 새로이 발굴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300조원을 들여 사막 한 가운데에 짓고 있는 미래첨단도시 ‘네옴’(NEOM)은 170km의 거대한 거울식 반사유리 건물을 자랑하는데, 규모만 2만 6,500㎢로 벨기에 국가 전체, 서울과 비교하면 44배에 달하는 크기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석유로 짓는 신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 사상거대누각(沙上巨大樓閣)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디지털 네옴’을 짓는 일을 바로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를 통한 ‘디지털 공간’을 짓는 일에 비유할 수 없을까? 세계화를 추진하는 일을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를 통한 ‘디지털 공간’을 짓는 일에 비유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현상 – 유럽 ‘혹독한 겨울나기’ 대비 땔감 쌓는 獨… 조명 끄는 佛 (2022년 7월 15일 한국경제 기사 제목) -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새로운 세계화(Flat Globe) 현상의 균열과 역설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공급망의 파괴로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경제사회적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다. 이 사태도 이미 전편 제8편의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네옴(NEOM)을 만들듯, 세계화(globalization)를 몰아부치듯, 거대한 초연결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제4차산업혁명의 시대는 바로 그 현상 자체에 거대한 모순과 부조리를 잉태하고 있는 ‘기술의 질주’ 시대를 열어가는 것은 아닐까? 초거대연결은 초거대 AI를 필요불가결하게 만들고, 이는 초거대 파라미터들(parameters)을 생성하여 거대 data를 쌓아야 하는 일을 확장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네옴(NEOM)이든 디지털 공간이든 이 모든 현상이 그 자체에 파괴 인자를 키우는 일은 아닐까? 여기에는 인간의 지혜가 필요하고 그 지혜를 보다 강력하게 뽑아내기 위한 초거대 AI는 불가결하고 무한 확장 중이니 그래서 이는 과거 산업혁명이 남긴 어두운 유산 즉 “문제 해결이 또 다른 문제를 남기는 격”의 답습이 불가피할 것인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이 현상이 역설적으로 거대 담론과 거대 철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고 이는 그리하여 중세 기독교 시대의 일의적 질서에 기반한 안정적(?) 시대 인식을 이제는 되살릴 수 없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한 새로운 “기술의 질주”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3.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4 – 오토노미 담론에로의 전환

나는 이번 글에서 다루는 주제를 바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는 동인인 3위일체적 설명 개념(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디지털 공간)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가를 탐구하면서 제시할 것이다.

⑴ 오토메이션(automation)과 오토노미(autonomy)

디지털 공간이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것은 삶과 세상의 거의 모든 활동과 현상을 ‘자동화’(automation)하고 사람들은 이를 통해 주인으로서의 ‘자율성’을 가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과학기술의 성과를 미리 예견하고 정당화하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의 논거는 국민과 시민에게 삶의 질(quality of life)의 향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즉 이런 목표를 최고의 범주적 표현으로 담아내면 바로 오토메이션(automation)과 오토노미(autonomy)이다. 이 표현은 전체 연재글을 통하여 제5편에서 딱 한번 언급하였다. 이런 주제 개념을 놓고 많은 고민과 사색을 하였고 관련 서적을 찾아 읽었지만, 안타깝게도 거의 ‘오토메이션’(automation)이라는 주제어만 온통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위 ‘자동화 담론’에 관한 것이다. ‘기술의 질주 시대에 인간은 기술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존재의 목소리를 스스로 들어야 한다’라는 균형잡힌 하이데거의 철학적 사유를 ‘자동화 담론’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다만, 대한민국에서는 ‘자동화 담론’에 관한 글 자체를 찾기도 어렵다.

간략하게 훑어보자. ㅡ 아론 베나나브(Aaron Benanav)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Automation and the Future of Work)≫ (2022년 1월)

ㅡ 베르나르 스티글러(Bernard Stiegler) ≪자동화 사회 1: 알고리즘 인문학과 노동의 미래(La Societe Automatique Vol.1 L’Avenir Du Travail)≫ (2019년 4월)

ㅡ 칼 베네딕트 프레이(Carl Benedikt Frey) ≪테크놀로지의 덫 – 자동화 시대의 자본, 노동, 권력(The Technology Trap)≫ (2019년 9월)

이런 책의 서술체계는 거대 담론을 지향하면서, 세계경제성장율의 유지 가능성, 고용과 노동 구조의 변화 가능성, 더 나은 삶의 성취 가능성, 경제사회구조의 변화 가능성 등의 이슈를 다룬다. 따라서 이들의 ‘자동화 담론’은 독자 스스로 읽어 소화하기 바라고 나는 ‘자동화 담론’을 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그리고 디지털 공간에 관한 현상의 궁극적 목표로서의 주제라고 생각하고 이를 논변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동화 담론’은 스마트 팩토리로 대변되는 제조업 분야에서 특히 부각되고 있고 이는 독일의 인더스트리 4.0(Industry 4.0)이라는 표현으로부터 비롯된다. 또한 이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활발한 현상이지만 이는 이제 모든 산업 분야에서의 핵심적인 전환 이슈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전편의 여러 글에서 이미 언급한 내용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냥 쉽게 이야기하면 ‘디지털 공간’ 없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없이 그 어떤 재화와 서비스를 출시하지 말라는 나의 이야기에 이미 담겨 있다. 게다가 이제는 ‘테슬라와 같은 전기자동차 시장’과 ‘통신 시장’과 ‘해외물류해운 시장’은 이제 동일한 비즈니스 모델로 변화하고 있다는 나의 빈번한 언급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들이다.

그런에 자동화 담론에 내가 느끼는 커다란 흠결은 바로 ‘자동화’(automation)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없이 기존의 산업화를 통한 생산자와 공급자에 관한 혁신 즉 제4차산업혁명에 의한 혁신의 방편으로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오토노미’(autonomy)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⑵ 오토메이션(automation) 담론에서 오토노미(autonomy) 담론으로의 전회

나는 최근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게시했다. “플랫폼 기반 택시 서비스는 수도권에서는 실패다. 이용자 편의 정보 제공을 무시하는 디지털 공간설계에 매달리는 한 기술과 자본의 해악만을 남길 것이다.” 이 게시글은 플랫폼 기반 택시 서비스의 실태를 보면 그 플랫폼은 사실 내가 말하는 ‘오토노미’(autonomy)라는 고객 가치의 제공을 아예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이고, 애초부터 그런 고객 가치를 제공하려는 설계가 통째로 빠져 있는 것이다. 즉 공급자의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오토메이션’(automation)’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서 제4차산업혁명의 기술도구들을 일방적으로 공급자의 편의 위주로만 만들었다는 비판이다. 그럼 독자들은 나의 ‘자동화 담론’을 비판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별론의 이야기이지만, ‘오토노미’(autonomy) 담론에는 ‘개인정보보호’(personal information protection, privacy protection)의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함의가 숨겨져 있다. “강력한 개인정보의 보호 가치”와 “강력한 개인맞춤형 서비스의 가치” 상호간의 충돌을 타개하고, 그리고 PID와 DID의 구조체계를 정립 가능케 하며, 디지털 시대의 기본소득 논의를 새롭게 다듬는 핵심적인 논거가 숨어있다. 디지털 공간의 설계 기초의 핵심적인 내용이 될 것이지만 물론 이는 후속 편의 글에서 언급할 수 밖에 없다.

아무튼 거의 압도적으로 일방적인 ‘자동화(automation) 담론’에 상응하는 고객과 소비자와 데이터를 생산하는 궁극적인 개체인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주도성/주체성/자율성(autonomy) 담론’이 거의 망각되고 있다는 점을 나는 매우 강하게 비판하고자 한다.

고객인 소비자, 이용자, 가입자에게는 어떤 가치를 ‘자동화’를 통해 제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논의가 없다는 점이다. 철저한 공급자 중심의 ‘자동화 담론’이 과연 얼마나 세계적인 디지털 흐름의 정곡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아직까지는 아주 불완전한 ‘자동화 담론’에 머물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고 균형잡힌 디지털 공간론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작금의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주도하는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로 집약되는 ‘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디지털 공간’은 여전히 공급자 및 생산자 중심 즉 경제주체로서는 정부와 기업 중심의 논의에 극히 치중되어 있다. 즉 ‘자동화 담론’ 위주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자동화 담론’을 굳이 거론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창하는 ‘디지털 공간론’ 만큼은 국민·소비자·고객·개인·사용자·이용자라는 다양한 명칭을 가진 경제주체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는 ‘오토노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⑶ 오토노미(autonomy) 담론의 함축(implications)과 개요

자, 그러면 ‘오토노미(autonomy) 담론’은 어떻게 시작하여야 할까? 과연 오토노미(autonomy) 담론은 얼마나 강력한 주제일까? 나는 감히 말하지만 지금까지 10여년을 글로벌 경제의 주도권을 휩쓴 지금까지의 공급자와 생산자 중심의 디지털 공간인 플랫폼 경제구조를 전복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는 오토노미(autonomy) 담론에 내재되어 있다고 감히 말한다.

이러한 논의에 앞서 나는 오토노미(autonomy) 담론의 주제를 명쾌히 정리하기 위한 기본 고려사항을 탐색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이제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선언하고자 한다.

① “정부와 기업은 오토메이션(automation)으로 무장하고, 국민·소비자·고객·개인·사용자·이용자에게는 오토노미(autonomy)를 제공하여야 한다.”

그러면 도대체 ‘오토노미’(autonomy)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옥스포드 사전에 따르면 ‘오토노미’(autonomy)의 유사어는 다음과 같다.

ㅡ self-government, independence, self-rule, home rule,

ㅡ sovereignty, self-determination, freedom, autarchy

ㅡ self-sufficiency, individualism

나는 ‘오토노미’(autonomy)의 속성으로 아래와 같은 개념을 제시한다.

ㅡ Personalization

ㅡ Total Visibility at a Glance/Transparency

ㅡ Curation/Control/Manageability/Responsiveness

ㅡ Performance/Quality Monitoring

ㅡ Steering/Measurement/Streamlining/Convenience

ㅡ Intuitive Understanding/UI·UX/Insight/Prediction

ㅡ Treatment/Optimization/Protection/Prevention

ㅡ Credibility/Happiness/Satisfaction

내가 제안하는 ‘오토노미’(autonomy)의 속성 개념을 예시하지만, 수많은 디지털 공간에 따라 전술한 오토노미의 유사어의 의미를 수용할 수도 있고, 또한 바로 위 언급한 속성의 일부 또는 추가적인 속성을 더하여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일은 당연하다.

②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는 디지털 공간이 제공되어야 하고, 동시에 그 디지털 공간은 오토노미(autonomy)를 구현하여 고객에게 제공하여야 한다.”

이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 고객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도성/주체성/자율성(autonomy) 담론’이 활성화되어야 생산자와 공급자가 디지털 공간을 통하여 고객에게 제공하여야 할 다양한 가치를 구현하는 작업이 보다 더 정밀하게 진행될 수 있다. 흔한 말로는 고객 만족(customer satisfaction)이라고 하지만 이런 구닥다리 개념과 접근 방법으로는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 이는 공급자와 생산자의 CEO 등 책임자의 리더십(leadership)에 강력한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가 요구된다는 이야기와 맥락이 같다. 사실 작금의 대한민국의 CEO 중에 그들의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오토노미’(autonomy)를 논할만한 디지털 지식과 디지털 경험을 가진 자는 얼마되지 않을 것이다. 장담한다.

그렇다. ‘오토노미’(autonomy)에 가장 중요한 개념은 여러번 언급했는데 바로 경험(experience)이다. 나는 제5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최근에서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수장이 ‘고객 경험’을 회사의 최우선 과제라고 기사를 뿌렸다. 물론 디지털 고객 경험이다.

ㅡ 삼성전자, ‘고객경험’에 미래 걸었다… ‘뉴삼성’ 밑그림 완성 (21.12.12)

ㅡ 조주완 사장 한 마디에 … LG전자 ‘고객경험 실험’ (21.12.23)

적어도 아직도 대한민국에서는 ‘IDC’(Internet Data Center)의 우아한 표현으로 남용되는 ‘클라우드’(Cloud)라는 개념이 (10여년 전에 – 표현 추가) 등장할 때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의 키워드인 ‘디지털 고객 경험’은 이미 중요 요소로서 사업 전략에 포함되었어야 했다. 언제나 이를 가로막는 것은 전시적, 예능적 사업기획 문화가 아닌가? 결국 이것도 디지털 공간 설계 능력 부족이라고 할 수 밖에.. 다른 말로는 철학의 부재라고 할 수 밖에..”

③ “생산자와 공급자는 디지털 공간을 통하여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고객 경험과 고객 반응을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파악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끊임없이 줄 수 있도록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여야 한다.”

이러한 선언을 구현하려는 생산자와 공급자가 구축하여야 하는 디지털 공간은 일응 일반적으로 CEMP(Customer/Subscriber Experience Management Platform)라고 부른다. 이것도 일종의 디지털 공간이다. 이는 당연히 다른 디지털 공간의 일부일 수도 있고, 독립적인 디지털 공간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CEMP를 제대로 구축하여 운용 중이라는 기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데이터에 대한 우선 순위 감각도 없고, 디지털 방식에 의한 즉 자연스러운 방법에 의한 고객 반응의 수집 체계도 없고, 그 반응에 대한 피드백이라는 반응성 또는 책임성에 대한 고려도 별로 없다. 한마디로 CEMP라는 디지털 공간에 대한 심각한 고려가 없다. 그러고도 디지털 산업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소위 ‘데이터론’ 또는 ‘데이터 과학’ 또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는 바로 이런 CEMP에 집중되어야 한다.

수많은 데이터 기반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산자와 공급자는 ‘개인맞춤형서비스’를 최고의 품질로 제공한다고 자랑하고 광고하며 떠들지만 바로 이것이 클라우드 기반 위에 AI를 통하여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으로서 이는 과정산업(過程産業)의 핵심적 특징이다. 즉, 고객에게는 매일매일 다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고, 동일하게 계약된 재화와 서비스이지만 매일매일이 서로 다른 재화와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고객맞춤형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아주 세밀한 파라미터들을 통해 얻어진 개인정보를 고객은 어떻게 가공되어 전달받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설정(settings) 기능의 정밀한 설계에 의해 가능하게 되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제4차산업혁명이 낳은 재화와 서비스의 정의가 될 것이며, 이는 바로 디지털 공간에 의해 제공 가능하다는 것을 어찌 알지 못할까?

④ 이제는 재화와 서비스는 궁극적으로는 또는 결과적으로는 소위 생산자와 공급자가 만드는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고객’ 스스로가 만드는 시대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객 설정 기반 서비스가 가능한 디지털 공간 설계가 재화와 서비스의 경쟁력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산업의 생산물인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제4차산업혁명 이전과 이후에 내리는 정의는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다만 이 선언의 기본 전제는 생산자와 공급자가 생산과 공급을 위하여 도입하는 AI에 설정하는 기천억개 또는 기조개의 파라미터들(parameters)의 일부라도 고객의 손에 쥐어줄 수가 있느냐라는 것이다.

기존의 재화와 서비스의 정의는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라는 새로운 요인에 의하여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 정도는 고객에게 쥐어주는 파라미터들(parameters)의 숫자에 의존하는 것이다. 나는 제10편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귀사의 초거대 AI 프로젝트 설계에서 고려하는 2,000억개의 파라미터 중에 인간 자체에 관한 것은 몇개인가요?’ …. 그런데 이에 관한 질문은 파라미터 기준 인간과 비인간의 비중이 얼마나 다른가였는데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천만의 말씀.”

바로 이런 질문에서 알 수 있는 인간에 관한 데이터 즉 고객에 직접 관련 있는 데이터의 파라미터들(parameters)이 바로 고객이 스스로 만드는 ‘재화’와 ‘서비스’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정보를 포함하여 각각의 디지털 공간에 가장 적합한 오토노미(autonomy)의 구체적 항목들을 정밀하게 설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와 변이는 기존의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불가피하고, 규제법령의 개편이 불가피해지는 시대로 돌입하게 하고 있다. 이런 변이와 변화의 양상을 확장하면 바로 ≪유동적 근대성(liquid modernity, 流動的 近代性)≫이라는 책에서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년 – 2017년)이 주장하는 액체적 근대성을 설명하는 설득력 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이것이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관점을 결여한 상태가 바로 디지털 일리터러시(digital illiteracy)의 상태이고 이런 사람을 디지털 일리터러티(digital illiterate)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4. 디지털 공간론이 플랫폼 경제에 던지는 전복적 함의

지금까지의 플랫폼 경제(platform economy)는 오토메이션(automation) 담론의 성공적 수단이었고, 앞으로의 지능화와 초연결화를 통한 디지털 공간 경제는 과학기술 진보의 여정이지만, 한편으로는 하이데거적 ‘기술의 질주’로도 읽혀진다. 초연결사회가 주는 ‘희망’의 크기만큼 ‘불안’의 크기도 증대된다. 그 불안은 디지털 공간을 구성하는 네트워크가 원래 생성 당시의 설계에 따른 best effort의 packet 네트워크에 가혹한 설계 변경을 가하여 QoE(quality of experience) 또는 QoS(quality of service)를 보장하는 네트워크로의 변환을 기도하는 것 자체가 ‘기술의 질주’이고 오토메이션(automation)의 불안한 미래를 한 구석에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굳이 예를들자면 전기자동차의 ‘원격’ 자율주행을 기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라는 점이다. 거의 무한 변수의 발생이 예상되는 차도에서의 주행 판단은 현장의 전기자동차에 설치된 자율주행시스템의 ‘자체’ 판단에 의거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어야 하는데, ‘원격’ ‘실시간’ 정보처리 과정을 통하여 시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무모한 일은 아닐까? 이런 기술적 추구는 ‘유동적 근대’ 이상으로 ‘유동적 현대’를 만들어나가는 현상의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물론 특정 단일의 네트워크를 통한 통합 자율주행을 원격으로 처리하는 특수한 경우까지 배제하자는 뜻은 아니다. 초연결사회의 미래를 너무 과장하여 그려나가는 일은 무모하지만, 다양하고 다채로운 디지털 공간을 만들어가면 그 중에 QoE 또는 QoS를 보장하는 디지털 공간은 얼마든지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새로운 플랫폼은 오토노미(autonomy) 담론에 기초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로서의 ‘디지털 공간’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이는 기존의 플랫폼 경제구조를 전복(顚覆)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디지털 공간론’은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 이슈를 넘어 데이터중립성(data neutrality) 이슈를 관통하며, 또한 ‘개인정보보호’ 이슈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하여 개인맞춤형서비스와의 서로 가치 충돌하는 문제를 극복하는 아이디어도 얻게 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디지털 시대의 기본소득론 아이디어도 마찬가지이다. 덧붙인다면 전통적인 산업화에서 야기한 후유증인 소외(疏外. alienation)는 이제는 디지털 공간에서 오토노미(autonomy)의 부여를 통해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주제까지 다 담아내는 나의 주장을 바로 ‘오토노미(autonomy) 담론’과 ‘디지털 공간론’으로 펼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8월 2일 화요일)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newdhjj@gmail.com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연락처는 newdhj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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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문학과 신경과학,앵거스 플레처

오하이오 주립 대학의 스토리 연구를 위한 세계 최고의 학술 싱크탱크인 프로젝트 내러티브Project Narrative 소속 교수이다.

그는 신경과학과 문학에서 복수 학위를 받았는데, 미시간 대학교에서 신경과학 학위를, 예일 대학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셰익스피어를 가르쳤고, 책을 두 권 출간했으며, 소설과 시, 영화, 연극 작품에 관한 학술 논문을 수십 편 발표했다.

그의 연구는 미국 국립과학 재단, 멜론 재단, 아카데미영화상 심사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진행되었다. 그는 소니,

디즈니, BBC, 아마존, PBS, NBC/유니버설의 각종 프로젝트에 대한 스토리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시나리오 작성에 대한 청각/고급코스 가이드의 저자이자 발표자이다.

그는 현재 제작 중인 J.R.R 톨킨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미들 어스Middle Earth’의 각본가이기도 하다.

저서소개_우리는 문학이 필요하다

이 책은 문학 발명품을 총체적으로 조사한 보고서이다. (원제 Wonderworks: The 25 most powerful inventions in the history of Literature)

고대 중국의 서정시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 동화, 만화책, 사랑 노래, 시트콤, 성서에 나오는 비극, 《곰돌이 푸》, 고전 로맨스, 공상 과학 영화, 범죄 소설, 노예 이야기까지, 문학사에서 가장 강력하고 유익한 스물다섯 가지 발명품의 문학적 청사진을 제시한다.

그리고 각 청사진이 어떻게 슬픔과 불안, 외로움과 비관적 기분을 덜어주면서도 창의성과 용기, 사랑과 공감과 치유를 안겨주는지, 그 숨은 신경과학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시와 스토리가 어떻게 삶의 여러 순간을 풍요롭게 개선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

너무 환상적이다. 이 책은 끝내주는 책이다! _말콤 글래드웰, 《아웃라이어》 저자

문학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회복시키는 놀라운 신경과학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

문학 속에 숨어 있는 신경과학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일깨우다!

언어와 문자를 발명한 이래로 인간은 문학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인간이 창조한 문학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문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과학적 방법론이 실용적으로 적용된 테크놀로지다. 그래서 호머와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 마야 안젤루 등 우리가 존경하는 여러 작가들은 문학이라는 독특한 발명품을 통해 과학으로 풀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해 냈다.

그들의 놀라운 작품을 읽다 보면 어떻게 불을 피우고 스마트폰을 제작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어떻게 살아가고 사랑해야 하는지, 죽음 앞에서 어떻게 용기를 유지하는지, 어떻게 상실의 아픔과 실패를 극복하는지, 기쁨과 희망과 목적의식을 찾지 못할 거라는 의심을 어떻게 떨쳐내는지는 알 수 있다.

오하이오 주립대 앵거스 플레처 교수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사료와 실험실 연구를 촘촘히 엮어 독자에게 실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고대 중국의 서정시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 동화, 만화책, 사랑 노래, 시트콤, 성서에 나오는 비극, 곰돌이 푸, 고전 로맨스, 공상과학 영화, 범죄 소설, 노예 이야기까지 문학사에서 가장 강력하고 유익한 스물다섯 가지 발명품의 문학적 청사진을 제시한다.

그리고 문학이 어떻게 슬픔과 불안, 외로움과 비관적 기분을 덜어주면서도 창의성과 용기, 사랑과 공감과 치유를 안겨줄 수 있는지 문학 속에 숨어 있는 신경과학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훌륭한 교사이자 학자가 쓴 이 책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시와 스토리가 어떻게 삶의 여러 순간을 풍요롭게 개선할 수 있는지 알려줄 것이다.

이 책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엘레나 페란테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위대한 과학 발명품에 필적하는 획기적 돌파구이자 발명품인 문학이 인간에게 미치는 심리적, 생리학적, 약리적 효과를 총체적으로 소개하며,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어떻게 향상시켰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책이나 영화와 같은 스토리의 과학을 소개하면서, 여러분이 문학 수업 시간에 배웠으면 싶었던 중요한 것들을 알려줄 것이다.

문학은 단순히 재미를 위한 읽을거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발명품’이다

우리가 문학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에 관하여 인문학과 신경과학으로 풀어내다

인간이 언어와 문자를 발명하면서 함께 탄생한 최고의 발명품이 있다. 바로 문학이다.

문학은 우리에게 수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문학이 주는 재미 덕분에 지긋지긋한 지루함을 떨쳐낼 수도 있고, 문학 속 인물에 스스로를 투영하여 간접 경험함으로써 새로운 사고와 관점을 배워갈 수도 있다.

문학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학은 우리의 인생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바로 문학에 숨겨 있는 신경과학적 효과 덕분에 말이다.

오하이오 주립대 앵거스 플레처 교수는 이 획기적인 책을 통해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혜택을 소개한다. 문학은 용기를 북돋고, 참을 수 없을 만큼 격렬한 분노를 진정시킨다.

문학을 읽으면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지, 또한 자기 자신 혹은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 것인지 깨달을 수 있다. 심지어 상실과 실패 그리고 모든 공포의 근원인 죽음에 맞서서 용기를 내고 극복해나가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앵거스 플레처는 문학이 발명한 25가지 발명품을 통해 이 모든 문학이 주는 효능 기저에 신경과학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이 책은 명작이라 불리는 문학 작품에 사용된 기법이나 장치에 대해 이 책은 왜 그런 기법과 장치가 사용되었는지 명쾌하게 설명한다.

단순히 문학이 주는 심리적, 생리학적, 약리적 효과를 밝히는 것을 넘어 문학 작품을 읽거나 쓸 때 활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글쓰기 방법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문학의 역사가 대서사시처럼 펼쳐져 있어 매우 흥미진진한 문학사의 여정을 따라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우리의 뇌와 감정만이 아니라 문학 그 자체에 대해 총체적으로 파고든 이 책은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는지 궁금해 하는 독자부터 문학을 사랑하는 애호가까지 모두에게 문학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명저라 할 수 있다.

Posted in오늘의역사

1996년8월 3일, 마카레나 빌보드 1위 등극

스페인의 남성 듀오 로스 델리오가 부른 마카레나는 1996년 8월 3일 빌보트 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그해 11월 2일까지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4주 연속 1위란 기염을 토했습니다. 플라멩코를 댄스음악으로 재해석한 마카레나는 1990년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의 뇌리에 각인된 문화 아이콘이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신나는 노래를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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