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도 필요 없습니다. 화살 10만 개를 구하는데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주유(吳)로부터 요청받은 제갈량(蜀)의 말이었다. 어떻게 했을까? 제갈량은 짚단을 쌓은 배 스무 척에 병사 5명씩만 태워 밤이 어둑해질 무렵 위나라의 본진에 배를 대고 꽹과리와 북을 울렸고, 기습이라 생각한 위나라 병사들은 그 배들을 향해 수많은 화살을 날렸다. 그는 이틀을 쉬고 사흘째 단 하루만에 10만 개의 화살을 구해 왔다.
디지털 공간의 궁극적 존재 의의는 ‘화살’에 있다는 말은 여러번 했다. ‘화살’도 없이 어찌 디지털 전쟁, 디지털 경제전쟁을 치를 수 있을 것인가? 하나의 역사적 일화는 구구한 설명보다 낫다. 그러나 이런 일화처럼 디지털 공간론은 물리 공간만큼은 복잡하지는 않지만 단순하지 않다. 어떤 화살을 어떤 지역에서 어떤 방법으로 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차원에서의 숙제는 참으로 어렵다.
1. 은밀하게 침식되는 한국의 디지털 산업 패권
유쾌하지 않은 제목의 표현은 IMF가 최근 발간한 ≪달러 패권의 은밀한 침식≫ (The Stealth Erosion of Dollar Dominance: Active Diversifiers and the Rise of Nontraditional Reserve Currencies)이라는 보고서의 제목을 따왔다.
오늘날의 적은 영토침략 위협, 민주체제 위협, 식량 및 에너지 위협을 일삼는 국가만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코로나 바이러스 등의 팬데믹과 같은 인자들까지 새로운 적으로 등장하였다.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전쟁 양상 속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전쟁은 소위 “데이터 전쟁”, “플랫폼전쟁” 또는 “제4차산업혁명 전쟁”으로 불리는 디지털 경제전쟁이다. 소위 거론되는 미국 주도의 반도체(Chip 4) 동맹도 제4차산업혁명 전쟁이 아니던가.
역사적인 과거의 물량 동원 영토전쟁과는 다른 디지털 경제전쟁의 시대에 총성없는 현대의 전쟁 수행능력은 제4차 산업혁명의 성과에 의해 담보된다. 디지털 경제전쟁 전략은 전통적인 물리적인 해외 진출이 아니라, 한국 땅을 벗어나지 않더라도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지배하는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에 의해 완성된다.
지난 5년 동안 치열한 신혁명 시기에 우리는 ⓵ 시장지배적 점유율을 가진 LG TV에는 아마존의 AI인 ‘알렉사’가 탑재되고, ⓶ LG 가전 8종은 이미 AI 스피커 ‘구글 홈’과 연동을 마쳤으며, ⓷ SKT의 AI 스피커인 누구(NUGU)와 KT의 기가지니에는 LG TV가 그랬던 것처럼 아마존의 ‘알렉사’가 탑재되며, 심지어 ⓸ 삼성의 갤럭시 워치에는 빅스비가 아닌 구글 ‘어시스턴트’가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⓹ 삼성의 엑시노스를 포함한 한국의 시스템반도체 시장점유율도 처참하다는 소식이다. ⓺ 글로벌 플랫폼 하나 변변한 게 없다는 이야기는 덤일뿐인가? 대한민국의 ‘화살’을 그저 나눠주고 있는 아주 헤픈 나라인가? 이런 사례 자체에만 매달리면 또한 이는 견지망월(見指忘月)의 어리석은 일이 아니던가?
더 큰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때의 기술강국이었던 일본의 디지털 경쟁력이 추락하는 디지털 대참사의 전철을 우리나라는 밟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는가? 스마트폰, 디지털 TV, 통신 인프라 강국이라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에서 마이 데이터 사업, 데이터 댐 사업 등 ‘데이터’ 중심의 디지털 정책은 제대로 설계되고 만들어진 것인가? 적벽대전(赤壁大戰)의 일화에서 화살을 아무 생각없이 보태준 것처럼, 기껏 여왕벌에 충성하는 개미처럼, 곁가지에 치중하느라 정작 줄기에는 소홀하지 않았던가? 제4차산업혁명위원회는 그동안 과연 시장에 선도적인 메세지를 남겼던가? 자신의 예능적 권위를 챙기느라 공익에 소홀하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에 인터넷의 지배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가장 먼저 출현했다는 빈번한 자랑은 자랑이 아니다. 결과는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흉내만 내고 얼기설기 대충 만들고 그리고 실패하고 다른 나라에서 그것을 글로벌 서비스로 성공하면 나의 것을 베꼈다고 푸념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지만 그냥 그것은 전부 최소 2%가 부족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다. 총론에는 강하지만 본론과 결론에는 약한 전형적인 실패 패턴이고, 사전 설계와 준비가 약하고 무턱대고 빨리빨리 하라는 문화의 결과는 아니었던가.
왜 거의 모든 건축물과 구조물에 여름철 필수품인 에어콘의 설치 공간을 사전에 설계하여 반영하지 않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 상업용 건물 마다 방문객 관리용 구조물이나 주차관리를 위한 구조물을 가건물 형태로 짓는데 애초에 설계도에는 왜 반영하지 않고 덕지덕지 만들어 건물에 붙여놓는지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나서도 재해예방관리는 부실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철근을 빼먹고 마무리를 대충하고 그리하여 날림공사를 밥먹듯하는여 건축물의 수명을 고의로 단축시키는 그런 과거 건설문화의 유산을 보면, 이런 방식과 태도와 의식으로는 디지털 산업과 디지털 문화에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리 산업과 디지털 산업은 무엇보다도 언어가 다르고 운영 원리가 다르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엉성한 작업으로는 아무런 연결체제와 작동체제가 구현되지 않는다. 엉성하고 수준 낮은 SW 작업은 나중에 확장에 걸림돌이 되어 패치로 수정하는 것보다 다시 프로그래밍하는 것이 나은 것이 대다수의 프로젝트의 현실이다.
우리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여 전세계에 디지털 기기를 무수하게 팔고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5G망의 세계선도적 구축에 발빠르게 움직이는데, 이를 통해 데이터를 가져가는 여왕벌에 의해 그 데이터는 우리를 공격하는 화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그 공격을 받고 있다. 국내 5G 운영플랫폼을 포함하여 각종 플랫폼의 외국산 지배와 인앱결제의 종속적 시장 구조는 아주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마지막 플랫폼이 될 수도 있는 메타버스의 각광에 기회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말에는 희망보다는 심각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디지털신뢰공간의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어찌 모르는가?
2.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4 ㅡ 7가지의 고려사항(considerations)
데이터, AI, 메타버스…. 생소하지만 생활 속 깊이 들어온 이 모든 것들의 대한민국의 위상은 위기라고 진단된다. 원인은 무엇일까? 이런 위기의 진단은 디지털 공간 설계의 기초에 반영되어야 하는 것들인가?
전술한 연재글에서 ‘디지털 공간의 3가지 원리’를 제시할 때 나는 물리 공간의 공간 구성 요소 개념인 ‘영토’, ‘국민’, ‘주권’이라는 3가지 개념을 비유하며 ‘다른 공간’, ‘다른 디지털 공간물’, ‘다른 주권’에 대하여 소극적 그리고 적극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디지털 공간의 설계 기초 1, 2, 3’의 3편의 글들에 더하여 이번의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4’의 글은 물리 공간의 대표적 형식인 국가 그리고 국가 형성(nation building)의 기초 요소에 비유하여, 추가로 더할 고려사항(considerations)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법령 인프라’, ‘도량형 통일이라는 경제사회기준 인프라’와 ‘도로의 건설이라는 경제사회활동 인프라’에 비유되는 것들이다. 디지털 공간 관련 표준과 기준들은 법령 인프라와 경제사회기준 인프라로 비유되고, 이미 전편의 여러 글에서도 자주 언급하였다. 경제사회활동 인프라는 기본적으로 PKI 공간 구축과 디지털 인증체계라는 개념으로 자주 설명하였다.
(1) 과정산업(過程産業)의 성공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데이터 생태계 구축을 디지털 공간 설계에 반드시 담아야 하는데 아직도 그런 설계의 지침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생태계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하드웨어로 데이터를 생산해 낸들 외국 메이저들이 만들어 놓은 글로벌 인증시스템, 메타버스 운영체제, 블록체인 운영체제에 모두 빼앗길 것이 분명하다. 제4차 산업혁명위원회는 이러한 디지털 철학, 데이터 생태계, 디지털 산업 전략 없이 그저 아날로그적인 의식과 태도로 본질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야말로 대참사이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Presidential Committee of Digital Platform Government)도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위원회 멤버에는 예능인은 포함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저 외국의 동향 정보나 요약해서 내것 마냥 떠드는 사람들은 배제하여야 할 것인데 과연 그럴까?
글로벌 데이터 생태계를 만들지 못하는 디지털 산업은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생태계는 플랫폼으로 구현되며, 성공한 플랫폼은 곧 글로벌 디지털 실크로드가 된다. 과거 공업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신 글로벌 전략이 바로 이것이다.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과정이지 결과물이 아니다. 디지털 산업 역시 마찬가지고 과정산업이다.
디지털 산업은 최종결과물을 판매해 지배하는 시장이 아니다. 과정을 지배하는 산업이다. 이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
과정산업(過程産業)이라는 생경한 용어를 사용했지만 보다 이것은 그 매개체가 데이터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소위 경제활동에서의 ① 공급자 지위에 있는 기업과 ② 소비자의 지위에 있는 개인의 경우 모두 데이터를 매개로, 클라우드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재화와 서비스가 매일매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믈론 핵심적인 기술은 AI이다.
즉, 공급자도 매일매일 다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소비자인 다른 사람과 동일한 재화와 서비스의 구매 또는 사용 계약을 맺게 되지만,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설정에 의하여 동일 재화와 서비스라고 것이 계속 업데이터가 되면서 사용자간에는 그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개인 맞춤형 업데이트가 끊임없이 진행되는 과정의 시간이 연결된(connected) 재화와 서비스의 핵심 내용이 시대이다.
나의 이런 주장을 따른다면 소위 디지털 공간 설계자들은 그 디자인에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가? 이 논의 결과 역시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라는 주제에 핵심적인 것이다. 자문해보라. 그리고 특히 제9편의 글도 꼼꼼히 읽어봐야 한다. 이것도 또 중언부언할 수는 없지 않은가?
(2) 디지털 생태계를 설계하는 기본적인 준비도 부실하고 한국이라는 지역적 설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로봇을 만들고, 전기자동차를 만들고, 플랫폼을 만들고. 메타버스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공급하고 있다. 이를 일러 부실 공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디지털 공간은 없거나 있어도 흉내만 내거나 아예 인터넷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 재화와 서비스의 본질적인 디지털 공간, 디지털 세계를 창출하는 전략이 왜 필요한지 아니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CEO들은 알지 못하고 있고, 깊이 고민하지도 않는다.
구글, 애플, 아마존 등 글로벌 경쟁자들은 과정산업(過程産業)이면서 기하급수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글로벌 경쟁자들의 서비스와 솔루션에 모르는 사이에 종속되어 왔다. 경쟁자들은 이미 데이터 클라우드라는 짚더미가 무성한 배를 우리 앞바다에 대놓고 우리의 누군가가 몇 달간 몇 년간 밤새 만들었을 그 화살을 아주 쉽게 거둬들여 전투에 활용하고 있다. 그 화살이 나중에는 되려 우리를 공격하는 무기로 쓰이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대한민국에서의 모든 분야에서의 모든 조직들의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자들의 리더십은 불완전한 리더십이다. 국가와 조직의 경쟁력에 치명적인 상황을 우리는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한마디로 디지털 문맹(文盲)이고 디지털 일리터러티(digital illiterate)이다. 디지털 공간 설계가 부실한 것은 이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디지털 산업 경쟁력과 국가경쟁력 약화의 책임도 또한 이들이다. 지금까지 정보보안(information security)의 이슈도 끊임없이 시끄럽긴 마찬가지였지만 그에 대한 처방은 늘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디지털 산업으로서의 성장은 거의 불가능했고 여기서 문제를 제기하는 맥락에 동일하게 놓여 있다.
CSO(chief security officer)가 목소리를 높이는 기업문화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자신있게 목소리를 높이는 CSO도 없었다. 엉성하게 알고 있으니 주장을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조용히 하라고 하는 문화다. 이제는 더 나아가 CSO가 CDO(chief digital/data officer)가 되어야 하고, 정보보안을 포함한 디지털 신뢰공간을 책임지는 독립적인 조직을 두어야만 하는 시대이지만, 그런 구조를 가진 기관과 기업은 거의 없다.
디지털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획득하거나 얻는 것이 정말 어렵고 그래서 좌절하게 만드는 것이 또한 바로 이 지점에서다. ‘정보보안’은 부정적 어감의 개념이지만, 디지털 ‘신뢰’공간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개념이다. 게다가 부서를 가지는 것을 넘어 독립된 조직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디지털 논리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디지털 공간규범을 회피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은 늘 비일비재하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에서는 비용이어야 할 것이 비용이 아니고, 비용이 아니어야 하는 것이 비용으로 취급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나라인가? 이런 불합리와 부조리가 많아지면 사업을 일으키고 키운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사업 환경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국가경쟁력의 소리없는 침식이 발생한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3) 실물 세계의 생태계와 무엇이 정말 다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과 설계의 부재가 한국의 ICT 산업, 디지털 산업을 종속적으로 만들고 고도의 부가가치 실현에 실패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대참사. 과연 지나친 말인가? 삼성과 LG의 모든 전자 기기를 전 세계에 보급해도 이를 지배하는 힘은 우리가 아니다. 언제까지 플랫폼 부재를 탓할 것인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창조적 파괴”의 부재라고 할 것인가? “파괴적 혁신”의 결여라고 할 것인가? “개방적 역동성”의 결핍이라고 할 것인가?
사회문화의 개방적 역동성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그것은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국가, 더 나은 세계에 눈을 뜨는 것이지 않은가? 이를 위해 우리는 소통을 시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위기의 의식의 확장을 시도한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어디까지 확장되는가?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언어 ‘한글’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영토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 자신이 자기에게 무지하며 나는 내가 아니고 나는 타인에 의해 지배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주체성의 결여라고 한다. 우리가 디지털 언어에 무지하면 어찌되는가? 과거의 인류의 언어는 오랜 시간을 두고 사람들의 활동과 상호작용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생성되고 사용되면서 하나의 약속으로 자리잡았다. 디지털 언어는 인공 언어이기 때문에 새로이 창안되는 때부터 체계적인 약속에 의해 만들어진다. 물리 공간과 디지털 공간의 속성 차이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디지털 일리터러시(digital illiteracy)는 앞으로 심각한 경제사회의 문제를 낳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대한민국의 정책과 행정정보의 전달에도 심각한 난관을 일으키고 그 비용을 훨씬 더 증가시킬 것이다. 디지털 공간의 변칙적 설계와 공급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Back to the Basic/Fundamental을 주장하는 것은 디지털 공간의 환경의 정상화와 균형화를 도모하는 일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디지털 공간 설계와 유지 비용의 합리화를 도모하는 지름길이다.
(4) 이제는 디지털 기술 인력이 없으면 어떤 분야에서도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활동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덧붙여 상술하지 않겠지만 전쟁의 설계와 수행의 핵심 역량도 이제는 넓은 의미에서 디지털 기술에 달려 있다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정보기술(IT) 인력 부족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짚어볼 문제다. 올해 소프트웨어 분야 인력은 수요 대비 2만 명 이상 모자랄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들이 ‘즉시 전력’으로 평가하는 이공계 졸업생이 연간 5만 명이라면 수요는 7만 명 이상이라는 얘기다. 주로 반도체 쪽에서 심각하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자동차 기계 철강 화학처럼 디지털 전환과 산업 융복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에서도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대한민국 산업의 흥망성쇠는 학교와 기업들이 이런 고급 인력을 얼마나 잘 길러 내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기업과 산업을 통해 세상을 보지만, 그런 하드웨어를 실질적으로 움직여나가는 것은 언제나 인재와 기술이라는 소프트웨어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코로나 종착역에서 산업 고도화와 디지털 전환이라는 두 개의 새로운 임무를 받아들었다. 완수하면 흥할 것이요, 실패하면 망할 것이다. 교육과 노동개혁은 필수다. 성공하면 살 것이요, 물러서면 쇠락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최근 7월 20일 한국경제신문에 게재된 조일훈 논설실장의 글이다. 디지털 기술 인력이 하는 일은 우선적으로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 투입되지만 그들은 반드시 재화와 서비스에 동반하는 ‘디지털 공간’을 생산해야 한다. 누누이 이야기한 것이다. 메타버스만이 디지털 공간이라고 인식하는 어리석음에는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경제적 활동의 전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은 이제 디폴트 요소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경제를 설명하려면 그 용어로서도 ‘트랜스휴먼’처럼 ‘트랜스경제’라고 해야할 판이다.
(5) 개발자 공간을 만들어 제공할 수 없는 재화와 서비스는 경쟁력이 없다. 생태계 확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플랫폼의 형태이든 다른 디지털 공간이든 모든 공간 요소를 공급자가 전부 구비하여 제공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리더도 디지털 공간의 구성 요소에 대해 좀 깊이 있게 천착하여야 한다.
판을 잘 깔면 춤추는 사람들은 어디에서건 나타난다. 애플과 구글과 아마존의 세계개발자회의는 개발자 공간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다. 삼성도 개발자 컨퍼런스가 있다. 개발자모임과 개발자를 위한 디지털 공간은 본래의 재화와 서비스의 확장에 도전하는 개발자들의 흥미로운 활동 공간이다. 하나의 글로벌 기업이 공급하는 재화와 서비스는 다양하고 다수일지라도 전부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연계를 통한 연결 생태계를 만들어내야 하고 이는 디지털 공간에서 체계적으로 엮어진다.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회사가 운영하는 개발자를 위한 디지털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거나, 있어도 개발자들이 들끓지 않는다면 그 회사는 한마디로 그 재화와 서비스가 아무 매력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개발자 공간은 무한 확장이 가능한 협력 공간이다. 즐거운 협력 공간이다. 흥미로운 협력 공간이다. 디지털 경제, 디지털 산업에서 모든 것을 내가 공급하겠다는 자세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또한 디지털 산업의 흥미로운 본질적 특징이 아니겠는가?
(6)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 동반하는 디지털 공간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디지털 공간의 기초 공사에 필요한 것들과 채워야 할 것들은 이미 앞의 여러 편의 글에서 언급했다. 여기서는 추가적으로 염두에 둬야 할 것을 살펴볼 것이다.
AI는 사람을 닮아가는 중이다. 원래 그것이 목표였다. 2,000억여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거대 AI’를 넘어 1조개를 넘는 파라미터를 가진 ‘초거대 AI’가 등장하고 있다.
초거대 AI는 마치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학습하며 판단하고 행동한다. 초거대 AI의 최초 모델은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세운 ‘오픈AI’에서 2020년 처음 선보인 ‘GPT-3’다. GPT-3가 나온 이후 기업들의 초거대AI 개발 경쟁에 불이 붙었다. 구글은 1조 600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스위치 트랜스포머’(Switch Transformer), 중국 베이징 지위안 인공지능연구원은 1조 750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우다오(WuDao) 2.0’, MS와 엔비디아는 5300억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메가트론’, 알파고를 개발했던 딥마인드는 2800억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고퍼’를 선보였다.
대한민국에서는 네이버, 카카오, LG도 초거대 AI를 선보이고 있다. 2021년 5월 네이버는 2040억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하이퍼클로바’를 공개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카카오가 ‘코지피티’(KoGPT)를, LG AI연구원은 12월 국내 최대 규모인 300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엑사원’(EXAONE)을 공개했다.
여기서 말하는 ‘파라미터’란 매개변수라는 뜻이다. 인공지능이 고려하는 경우의 수를 말하는데, 매개변수가 클수록 더 정교한 대답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흔한 언론보도의 내용이다. 이런 기사를 보면서 나는 정말 제대로 된 AI 설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 또한 겉만 번지르르 한 상태가 아닌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초거대 AI 프로젝트의 기술적 맥락과 시스템 반도체 프로젝트의 기술적 맥락은 사실 동일하다. 과연 초거대 AI의 경쟁력이 얼마나 될 것인가? 시스템적 사고가 정말 지나치게도 부족한 상태에서 제대로 된 재화와 서비스가 이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초거대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어떤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다. “귀사의 초거대 AI 프로젝트 설계에서 고려하는 2,000억개의 파라미터 중에 인간 자체에 관한 것은 몇개인가요?” AI는 파라미터별로 미리 설정을 하여야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수집된 데이터에서 추출하여 판단에 사용하게 된다. 미리 설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과 다른 AI의 기본 특징이다. 그런데 이에 관한 질문은 파라미터 기준 인간과 비인간의 비중이 얼마나 다른가였는데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천만의 말씀.
여전히 인간은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AI를 바라보는데 그것은 정말 오류가 넘치는 설계가 될 것이다. 인간은 자연이면서도 자연이 아니다. 인간의 지구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 중에서도 자연 아닌 자연이다. 예를들어 우리가 기후변화의 양상을 AI를 통해 판단하는데 어떤 파라미터를 통해 얻어진 데이터로 분석하고 답을 내놓을 것인가? 인간에 직접 관련된 요소가 기후변화 양상의 판단에 얼마나 투입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거의 대부분의 파라미터가 인간 요인보다는 자연 그 자체에 내재된 수많은 요인에 의거하여 그에 따라 얻어진 데이터에 의존하여야 하는가?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이 초거대 AI에 녹아들어야 보다 나은 AI 설계가 가능하다. AI의 윤리 이슈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보다 나은 판단 능력을 가지는 AI의 설계에는 인간적 요소와 비인간적 요소에 관한 다양한 관점이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의 데이터 구조와 AI의 분석과 판단 구조에 관한 이슈이다. 이런 것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메머리 반도체를 뛰어나게 만들지만 시스템 반도체는 형편없는 현재의 반도체 경쟁력의 실상을 그대로 AI에도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모든 재화와 서비스는 단말디바이스와 같은 지위이고 그 단말디바이스가 장착한 센서는 데이터 수집의 도구이다. 테슬라의 전기자동차는 자동차 주행에만 필요한 데이터만 수집하는가? 국제물류선박은 선반항행에만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는가? 가정에 있는 TV는 어떤 정보를 수집하는가? 모든 IOT 장비는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는가? 누누이 말하지만 모든 연결 공간에서 단말디바이스의 역할은 센서라고 보고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고 구축하라는 말은 아주 여러번 했다.
그러니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는 개발자들이 이런 나의 주장을 반영하려고 할 유인은 별로 없다. 그런 고려를 누가 챙겨보라고 지시하는 사람도 없고 스스로도 챙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는 적어도 CEO 또는 CDO 정도에서 이를 가이드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지털 공간론에 눈을 떠야 한다. 정책결정자 또는 기업의 CEO가 디지털 일리터러티라면 그 조직 또는 기업은 이제 유지되기 어렵다.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들어보자. 샌프란시스코 항구에서 인천 항구로 오가는 물류 선박이 있다고 해보자. 당신이라면 그 선박에 어떤 디지털 공간을 붙여줄 것인가? 당신이라면 그 선박에 어떤 센서를 붙여줄 것인가? 약 1만 Km를 오가는 선박을 놀려먹을 것인가? 그 선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엄청난 데이터를 왜 그냥 방치하는가? 선박의 내부 상태에 관한 수많은 데이터에다가 그 선박의 행행수로에서 측정하여 얻을 수 있는 있는 수많은 해양데이터를 왜 그냥 방치하는가? AI는 왜 중요하다고 하고, 파라미터를 수천억개에서 수조개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은 왜 하는가? 데이터 공간을 포함한 디지털 공간 전략도 없이 AI 공간은 만들어질 수도 없다. 시간 지나면 흐지부지될 것은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7) 나는 바로 위의 글에서 대한민국도 자랑하고 대기업에서 추진하는 거대 AI 또는 초거대 AI 프로젝트 책임자에게 아직도 대규모 파라미터 중에 인간에 직접 관련된 파라미터의 비중을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유형의 디지털 공간 중에서 우선적으로 개발자 공간을 언급했다. 앞에서도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제품과 서비스가 글로벌 수준의 그것으로 인정받는 계기는 그냥 판매된다고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제화와 서비스가 디지털 신뢰공간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신뢰공간은 말 그래도 PKI 공간이어야 하는 것이고 PID와 DID의 유기적인 체계가 디지털 인증체계에 녹아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여러번 언급했다. 이것뿐인가? 개발자는 한국 또는 영어권에서만 사는 사람인가? 적어도 디지털 공간이 글로벌 수준에 이르고 개발자가 참여를 시작하려면 신뢰공간 요소의 구축 뿐만이 아니라 개발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언어의 장벽을 해소하여야 한다.
한글과 영어 이외에도 메이저 언어권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디지털 개발자 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마련에 도전히도록 지원하는 언어플랫폼이 그 디지털 공간에 깔려야 한다. 그래서 디지털 공간을 통해 그 재화와 서비스의 사용에서 얻어지는 다채로운 언어 정보를 그 디지털 공간에서 소화해줘야 한다. 즉 디지털 공간 설계가 다양한 언어가 사용 가능하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언어플랫폼이 부실하고 부족하다고 계속 외국 메이저의 솔루션을 도입하여 사용하면 우리는 눈뜨고 코 베이듯 “화살”을 잃어가는 셈이된다. 시작은 어렵더라도 “과정”의 산업 특성상 CEO와 정책결정자들은 꾸준한 언어플랫폼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접근 방법을 이해나 하는가? 이해는 해도 과감한 지원을 지속하는가? 이런 차원에서의 CEO와 정책결정자들의 무지는 앞에서도 말한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침식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디지털 공간은 기존에 없었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획득하는 인식 하에 설계되어야 한다. 단순한 인터넷 서비스라는 협소한 범주가 아니라 디지털 공간이라는 입체적 범주로 확장되어야 더 넓게 크게 깊게 보인다.
(2022년 7월 26일 화요일)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newdhjj@gmail.com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이번 제10편의 글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마무리하고 보냅니다.
연락처는 newdhjj@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