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9일에 다음과 같은 기사(“美월풀 제친 LG전자, 가전 세계 1위 지켰다”)가 실렸고, 나는 이 기사에 대해 (“그래서 1등하면? 글로벌 수준의 디지털 전략은 어디? “가전도 센서다”라고 생각하면 달리 보이겠지만..)라고 페이스북에서 기사를 인용하면서 덧붙였다.

이와 같은 맥락의 예시적 글을 나는 지금까지의 10편의 글에서 틈틈이 제시했다. 상기의 예시적 글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나의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의 핵심을 이해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글을 이어가는 이유는 남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긴 시간 동안 글을 아래와 같이 길게 이어왔다. 특히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의 내용은 (1) 데이터론, (2) 디지털 공간 핵심 구성요소, (3) 디지털 공간 인증체계 그리고 (4) 설계 고려 사항(considerations)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번 글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의 다섯번째 글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디지털 공간 인식체계의 재검토 https://wp.me/p2zVkV-kj (0525 수)

디지털 산업과 잠재성장률 https://wp.me/p2zVkV-l6 (0531 화)

디지털 공간 제원리와 신뢰 https://wp.me/p2zVkV-lu (0607 화)

디지털 공간론 3가지 원리 1 https://wp.me/p2zVkV-lx (0613 월)

디지털 공간론 4가지 관점 https://wp.me/p2zVkV-lN (0621 화)

디지털 공간론 3가지 원리 2 https://wp.me/p2zVkV-mk (0628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1 https://wp.me/p2zVkV-mq (0705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2 https://wp.me/p2zVkV-mv (0712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3 https://wp.me/p2zVkV-my (0719 화)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4 https://wp.me/p2zVkV-mC (0726 화)

그러고도 아직도 남길만한 글이 남아 있는가? 스스로 자문한다. 오늘 남길 담론(discourse)의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1. ‘디지털 공간론’과 ‘제4차산업혁명’·‘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여러번 묻고 있지만, 제4차산업혁명은 무엇을 목표로 하는 것인가?

새로운 ‘산업’혁명의 시대이므로 경제주체이고 산업주체인 “기업’은 당연히 제4차산업혁명의 대열에 참여하여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제5편의 글에서는 이렇게 적었다. “제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AI, 플랫폼, 사물인터넷, 3D프린터, 드론, 자율주행차, 비행(자율)자동차, 자동화공장, 기계와 기계의 소통, 가상현실, 탈중앙화와 블록체인, 주문생산, 기계학습, 원격조종, 원격치료, 로봇, 양자컴퓨터, 나노산업, 신재료공학, 스마트시티와 신도시공학, 공유경제 등은 제4차 산업혁명의 다양한 응용과 적용의 모습을 보여준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은 무엇을 말하는가?

ㅡ IDC (International Data Cooperation), “프로세스, 경험 그리고 가치를 변화하는 데에 적용한 기술을 기반으로 고객 및 마켓(외부환경의 변화에 따라 디지털 능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제품 서비스를 만들어 경영에 적용하고 주도하여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

ㅡ Bain & company, “디지털 엔터프라이즈 산업을 디지털 기반으로 재정의하고 게임의 법칙을 근본적으로 뒤집음으로써 변화를 일으키는 것”

ㅡ AT Kearney, “모바일,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디지털 신기술로 촉발 되는 경영 환경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현재 비즈니스의 경쟁력을 획기적 으로 높이거나 새로운 비즈니스를 통한 신규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 활동”

ㅡ PWC, “기업경영에서 디지털 소비자 및 에코시스템이 기대하는 것들을 비즈니스 모델 및 운영에 적용시키는 일련의 과정”

ㅡ Microsoft, “고객을 위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지능형 시스템을 통해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새롭게 구상하고 사람과 데이터 프로세스를 결합하는 새로운 방안을 수용하는 것”

ㅡ IBM, “기업이 디지털과 물리적인 요소들을 통합하여 비즈니스 모델을 변화(transform)시키고 전산업(entire industries)에 새로운 방향(new directions)을 정립하는 것”

ㅡ WEF(World Economic Forum), ”디지털 기술 및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하여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아래와 같이 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ㅡ “기업이 진행하거나 추진하는 혁신과정 중 하나로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인공지능(AI), 블록체인, 가상현실, 빅데이터, 애널리틱스 등 방대한 디지털 기술을 하나로 통합해 전사적인 혁신을 추진하는 것”

ㅡ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소유 중인 하드웨어 사용자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되, 구독 기반 클라우드 서비스에 의존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새롭고 빠르고 자주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

그럼 ‘제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은 어떤 관계로 파악할 수 있을까? 두 개념은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라는 동일한 뿌리를 가지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이끌어내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과거와는 다르다’라는 기준은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 그것은 이 연재글이 던지는 주제어로서의 “디지털 공간”에서 찾아보자는 것이 나의 제언이다. 물론 ‘제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과 ‘디지털 공간’은 3가지 현상이지만 같은 지향의 측면과 차원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감히 정리할 수가 있다.

따라서 전편 10편의 글 전부가 이러한 3위일체로서의 요소 개념들을 풀이하면서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을 풀어나간 것이다.

대부분의 예능적 전문가들처럼 딱 부러진 정의와 개념을 통해 설명하는 흔한 방식을 나는 채택하지 않은 것은 본래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것이고, 그것이 바로 어느 한 순간에 머무르지 않는 디지털 공간의 본연적 속성 때문이다. 일의적으로 설명한다는 모든 것들은 과거 2,000여년 동안의 철학적 설명 구조로서 이는 늘 거대 담론을 지향하고 거시적 관점을 이끌어 내는 일이지만, 이러한 설명 구조는 칸트와 헤겔을 끝으로 이미 거의 불가능해졌고, 현상학과 실존주의의 흐름과 두번에 걸친 세계대전에 대한 반발 속에서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철학 흐름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영미 철학을 특징짓는 분석철학(Analytical Philosophy)은 철저하게 ‘탈’거대담론의 길을 걷는다.

‘디지털 공간론’을 현재 시대적 핵심 개념으로 부각시킨 것은 세상의 모습이 이제는 파르메니데스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헤라클레이토스적인 유연한 인식 체계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작금의 시대에는 이런 생각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오히려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에 기초하는 존재론적 철학적 사변을 펼치는 학자들이 더 신기한 관심을 끌고 있는 요즘이다. 제1편의 글에서 ‘디지털 공간의 인식체계’를 재검토 하자는 나의 주장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다.

따라서 물리 공간론 자체가 거대 담론이므로 “디지털 공간론”도 당연히 그렇게 읽힐 수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일의적인 것으로 디지털 공간론 논변을 펼칠 수가 없다. 전편의 여러 글에서 언급했듯, 너무나 다양하고 다채로운 디지털 공간이 무수히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현재에는 디지털 공간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그런 수많은 디지털 공간을 각양각색으로 산출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평행우주(平行宇宙. Parallel Universe/World)처럼 디지털 평행공간이 물리 공간에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공간론’의 3가지 원리(제3, 4, 6편), ‘디지털 공간론’의 4가지 관점(제5편), ‘디지털 공간론’의 3가지 고려요소(제10편) 그리고 이 글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 요인으로서의 3가지 설명 개념(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디지털 공간)은 전부 거대 담론 방식의 설명을 흉내내는 궁여지책의 용어들이다. 여러번 말했듯, 편의적, 방편적 설명도구라는 뜻이다.

거대 담론(metadiscourse)과 거대 서사(grand narratives)와 거대 철학의 해체는 고유한 철학이 다른 학문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아니 다른 학문들이 철학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이를 철학의 종말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이는 철학의 새로운 전개라고 말하는 게 더 옳을 것이다. 지금의 서양 철학은 근현대를 거치면서 쌓은 과학과 기술의 장쾌한 성과를 소화하여 담지 못하면 철학자로서의 행세를 하기가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도 아주 일부의 선각자적인 철학자를 제외하고는 많은 철학자들이 기원전 출현한 동서양의 철학적 논변을 그대로 읊는 일이 여전하다.

이러한 근대까지 이어 지던 거대 담론의 철학은 근대 자체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다양한 현상을 낳았고, 그 현상이 바로 거대 철학을 해체하는 원인이 되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irony)를 역사에 남긴 것이다. 그런데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로 집약되는 ‘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디지털 공간’ 현상이 또 한번 강한 힘으로 작금의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나는 이러한 개념들을 버무려 철학적 주제보다는 현실 정치경제적 이슈로서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철학적 접근은 오히려 제7편의 글에 인용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이순석 박사에 의해 전개되고 있고, 훨씬 더 깊이 있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거대 철학의 해체 또는 전통 철학의 해체를 여러가지 관점에서 풀이할 수 있지만 내가 다루는 주제와 관련해서는 하이데거가 말한 “기술의 질주” 현상을 작금에 되풀이하는 새로운 차원의 “기술의 질주”현상을 바로 위 문장에서 언급한 현상들을 통해 시대적 전환 현상으로 설명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1889-1876)가 인식론에 치우친 서양의 근대철학을 존재론으로 전회시킨 전환기적 사상가였는데, 그의 기술철학 사상은 여전히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 현상 하에서도 유효한 관점으로 수용될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기술철학서인 ≪기술에 대한 물음(기술에 대한 논구)(Die Frage nach der Technik)≫ (1954)와 ≪기술과 전향(技術─轉向, Die Technik und die Kehre)≫ (1962)는 당시 산업혁명을 온 몸으로 체험한 그가 ‘도구 이상의 그 무엇인 기술’에 관한 본격적인 사유를 펼치면서, 자연 뿐만이 아니라 인간 자체도 도구로 변모시키는 기술의 질주(Gestell) 현상에 대한 비관적 관점을 통해 본래 그대로의 존재에의 응시를 통한 존재 자체의 드러남을 주장하였는 바, 자연과 인간 자체가 데이터화하는 오늘날의 ‘기술 질주’의 제4차산업혁명의 시대에도 울림을 주는 사상이 아닐 수 없다. 대표적인 하이데거 전문연구가인 이기상 박사의 책과 글에 그렇게 소상하게 설명되어 있다.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 주장 자체가 실체가 없다는 뭇사람의 반론 또한 많지만, 그의 논변은 묘한 공명을 만들기도 한다.

2. 디지털 공간 기술의 질주 –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

이런 기술 현상은 스스로 모순과 부조리를 잉태한 것들이라는 관점을 곰곰히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수많은 이슈들의 근원적인 문제점을 새로이 발굴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300조원을 들여 사막 한 가운데에 짓고 있는 미래첨단도시 ‘네옴’(NEOM)은 170km의 거대한 거울식 반사유리 건물을 자랑하는데, 규모만 2만 6,500㎢로 벨기에 국가 전체, 서울과 비교하면 44배에 달하는 크기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석유로 짓는 신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 사상거대누각(沙上巨大樓閣)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디지털 네옴’을 짓는 일을 바로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를 통한 ‘디지털 공간’을 짓는 일에 비유할 수 없을까? 세계화를 추진하는 일을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를 통한 ‘디지털 공간’을 짓는 일에 비유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현상 – 유럽 ‘혹독한 겨울나기’ 대비 땔감 쌓는 獨… 조명 끄는 佛 (2022년 7월 15일 한국경제 기사 제목) -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새로운 세계화(Flat Globe) 현상의 균열과 역설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공급망의 파괴로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경제사회적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다. 이 사태도 이미 전편 제8편의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네옴(NEOM)을 만들듯, 세계화(globalization)를 몰아부치듯, 거대한 초연결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제4차산업혁명의 시대는 바로 그 현상 자체에 거대한 모순과 부조리를 잉태하고 있는 ‘기술의 질주’ 시대를 열어가는 것은 아닐까? 초거대연결은 초거대 AI를 필요불가결하게 만들고, 이는 초거대 파라미터들(parameters)을 생성하여 거대 data를 쌓아야 하는 일을 확장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네옴(NEOM)이든 디지털 공간이든 이 모든 현상이 그 자체에 파괴 인자를 키우는 일은 아닐까? 여기에는 인간의 지혜가 필요하고 그 지혜를 보다 강력하게 뽑아내기 위한 초거대 AI는 불가결하고 무한 확장 중이니 그래서 이는 과거 산업혁명이 남긴 어두운 유산 즉 “문제 해결이 또 다른 문제를 남기는 격”의 답습이 불가피할 것인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이 현상이 역설적으로 거대 담론과 거대 철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고 이는 그리하여 중세 기독교 시대의 일의적 질서에 기반한 안정적(?) 시대 인식을 이제는 되살릴 수 없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한 새로운 “기술의 질주”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3.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4 – 오토노미 담론에로의 전환

나는 이번 글에서 다루는 주제를 바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는 동인인 3위일체적 설명 개념(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디지털 공간)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가를 탐구하면서 제시할 것이다.

⑴ 오토메이션(automation)과 오토노미(autonomy)

디지털 공간이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것은 삶과 세상의 거의 모든 활동과 현상을 ‘자동화’(automation)하고 사람들은 이를 통해 주인으로서의 ‘자율성’을 가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과학기술의 성과를 미리 예견하고 정당화하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의 논거는 국민과 시민에게 삶의 질(quality of life)의 향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즉 이런 목표를 최고의 범주적 표현으로 담아내면 바로 오토메이션(automation)과 오토노미(autonomy)이다. 이 표현은 전체 연재글을 통하여 제5편에서 딱 한번 언급하였다. 이런 주제 개념을 놓고 많은 고민과 사색을 하였고 관련 서적을 찾아 읽었지만, 안타깝게도 거의 ‘오토메이션’(automation)이라는 주제어만 온통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위 ‘자동화 담론’에 관한 것이다. ‘기술의 질주 시대에 인간은 기술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존재의 목소리를 스스로 들어야 한다’라는 균형잡힌 하이데거의 철학적 사유를 ‘자동화 담론’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다만, 대한민국에서는 ‘자동화 담론’에 관한 글 자체를 찾기도 어렵다.

간략하게 훑어보자. ㅡ 아론 베나나브(Aaron Benanav)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Automation and the Future of Work)≫ (2022년 1월)

ㅡ 베르나르 스티글러(Bernard Stiegler) ≪자동화 사회 1: 알고리즘 인문학과 노동의 미래(La Societe Automatique Vol.1 L’Avenir Du Travail)≫ (2019년 4월)

ㅡ 칼 베네딕트 프레이(Carl Benedikt Frey) ≪테크놀로지의 덫 – 자동화 시대의 자본, 노동, 권력(The Technology Trap)≫ (2019년 9월)

이런 책의 서술체계는 거대 담론을 지향하면서, 세계경제성장율의 유지 가능성, 고용과 노동 구조의 변화 가능성, 더 나은 삶의 성취 가능성, 경제사회구조의 변화 가능성 등의 이슈를 다룬다. 따라서 이들의 ‘자동화 담론’은 독자 스스로 읽어 소화하기 바라고 나는 ‘자동화 담론’을 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그리고 디지털 공간에 관한 현상의 궁극적 목표로서의 주제라고 생각하고 이를 논변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동화 담론’은 스마트 팩토리로 대변되는 제조업 분야에서 특히 부각되고 있고 이는 독일의 인더스트리 4.0(Industry 4.0)이라는 표현으로부터 비롯된다. 또한 이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활발한 현상이지만 이는 이제 모든 산업 분야에서의 핵심적인 전환 이슈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전편의 여러 글에서 이미 언급한 내용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냥 쉽게 이야기하면 ‘디지털 공간’ 없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없이 그 어떤 재화와 서비스를 출시하지 말라는 나의 이야기에 이미 담겨 있다. 게다가 이제는 ‘테슬라와 같은 전기자동차 시장’과 ‘통신 시장’과 ‘해외물류해운 시장’은 이제 동일한 비즈니스 모델로 변화하고 있다는 나의 빈번한 언급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들이다.

그런에 자동화 담론에 내가 느끼는 커다란 흠결은 바로 ‘자동화’(automation)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없이 기존의 산업화를 통한 생산자와 공급자에 관한 혁신 즉 제4차산업혁명에 의한 혁신의 방편으로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오토노미’(autonomy)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⑵ 오토메이션(automation) 담론에서 오토노미(autonomy) 담론으로의 전회

나는 최근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게시했다. “플랫폼 기반 택시 서비스는 수도권에서는 실패다. 이용자 편의 정보 제공을 무시하는 디지털 공간설계에 매달리는 한 기술과 자본의 해악만을 남길 것이다.” 이 게시글은 플랫폼 기반 택시 서비스의 실태를 보면 그 플랫폼은 사실 내가 말하는 ‘오토노미’(autonomy)라는 고객 가치의 제공을 아예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이고, 애초부터 그런 고객 가치를 제공하려는 설계가 통째로 빠져 있는 것이다. 즉 공급자의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오토메이션’(automation)’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서 제4차산업혁명의 기술도구들을 일방적으로 공급자의 편의 위주로만 만들었다는 비판이다. 그럼 독자들은 나의 ‘자동화 담론’을 비판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별론의 이야기이지만, ‘오토노미’(autonomy) 담론에는 ‘개인정보보호’(personal information protection, privacy protection)의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함의가 숨겨져 있다. “강력한 개인정보의 보호 가치”와 “강력한 개인맞춤형 서비스의 가치” 상호간의 충돌을 타개하고, 그리고 PID와 DID의 구조체계를 정립 가능케 하며, 디지털 시대의 기본소득 논의를 새롭게 다듬는 핵심적인 논거가 숨어있다. 디지털 공간의 설계 기초의 핵심적인 내용이 될 것이지만 물론 이는 후속 편의 글에서 언급할 수 밖에 없다.

아무튼 거의 압도적으로 일방적인 ‘자동화(automation) 담론’에 상응하는 고객과 소비자와 데이터를 생산하는 궁극적인 개체인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주도성/주체성/자율성(autonomy) 담론’이 거의 망각되고 있다는 점을 나는 매우 강하게 비판하고자 한다.

고객인 소비자, 이용자, 가입자에게는 어떤 가치를 ‘자동화’를 통해 제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논의가 없다는 점이다. 철저한 공급자 중심의 ‘자동화 담론’이 과연 얼마나 세계적인 디지털 흐름의 정곡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아직까지는 아주 불완전한 ‘자동화 담론’에 머물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고 균형잡힌 디지털 공간론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작금의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주도하는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로 집약되는 ‘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디지털 공간’은 여전히 공급자 및 생산자 중심 즉 경제주체로서는 정부와 기업 중심의 논의에 극히 치중되어 있다. 즉 ‘자동화 담론’ 위주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자동화 담론’을 굳이 거론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창하는 ‘디지털 공간론’ 만큼은 국민·소비자·고객·개인·사용자·이용자라는 다양한 명칭을 가진 경제주체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는 ‘오토노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⑶ 오토노미(autonomy) 담론의 함축(implications)과 개요

자, 그러면 ‘오토노미(autonomy) 담론’은 어떻게 시작하여야 할까? 과연 오토노미(autonomy) 담론은 얼마나 강력한 주제일까? 나는 감히 말하지만 지금까지 10여년을 글로벌 경제의 주도권을 휩쓴 지금까지의 공급자와 생산자 중심의 디지털 공간인 플랫폼 경제구조를 전복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는 오토노미(autonomy) 담론에 내재되어 있다고 감히 말한다.

이러한 논의에 앞서 나는 오토노미(autonomy) 담론의 주제를 명쾌히 정리하기 위한 기본 고려사항을 탐색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이제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선언하고자 한다.

① “정부와 기업은 오토메이션(automation)으로 무장하고, 국민·소비자·고객·개인·사용자·이용자에게는 오토노미(autonomy)를 제공하여야 한다.”

그러면 도대체 ‘오토노미’(autonomy)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옥스포드 사전에 따르면 ‘오토노미’(autonomy)의 유사어는 다음과 같다.

ㅡ self-government, independence, self-rule, home rule,

ㅡ sovereignty, self-determination, freedom, autarchy

ㅡ self-sufficiency, individualism

나는 ‘오토노미’(autonomy)의 속성으로 아래와 같은 개념을 제시한다.

ㅡ Personalization

ㅡ Total Visibility at a Glance/Transparency

ㅡ Curation/Control/Manageability/Responsiveness

ㅡ Performance/Quality Monitoring

ㅡ Steering/Measurement/Streamlining/Convenience

ㅡ Intuitive Understanding/UI·UX/Insight/Prediction

ㅡ Treatment/Optimization/Protection/Prevention

ㅡ Credibility/Happiness/Satisfaction

내가 제안하는 ‘오토노미’(autonomy)의 속성 개념을 예시하지만, 수많은 디지털 공간에 따라 전술한 오토노미의 유사어의 의미를 수용할 수도 있고, 또한 바로 위 언급한 속성의 일부 또는 추가적인 속성을 더하여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일은 당연하다.

②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는 디지털 공간이 제공되어야 하고, 동시에 그 디지털 공간은 오토노미(autonomy)를 구현하여 고객에게 제공하여야 한다.”

이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 고객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도성/주체성/자율성(autonomy) 담론’이 활성화되어야 생산자와 공급자가 디지털 공간을 통하여 고객에게 제공하여야 할 다양한 가치를 구현하는 작업이 보다 더 정밀하게 진행될 수 있다. 흔한 말로는 고객 만족(customer satisfaction)이라고 하지만 이런 구닥다리 개념과 접근 방법으로는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 이는 공급자와 생산자의 CEO 등 책임자의 리더십(leadership)에 강력한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가 요구된다는 이야기와 맥락이 같다. 사실 작금의 대한민국의 CEO 중에 그들의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오토노미’(autonomy)를 논할만한 디지털 지식과 디지털 경험을 가진 자는 얼마되지 않을 것이다. 장담한다.

그렇다. ‘오토노미’(autonomy)에 가장 중요한 개념은 여러번 언급했는데 바로 경험(experience)이다. 나는 제5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최근에서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수장이 ‘고객 경험’을 회사의 최우선 과제라고 기사를 뿌렸다. 물론 디지털 고객 경험이다.

ㅡ 삼성전자, ‘고객경험’에 미래 걸었다… ‘뉴삼성’ 밑그림 완성 (21.12.12)

ㅡ 조주완 사장 한 마디에 … LG전자 ‘고객경험 실험’ (21.12.23)

적어도 아직도 대한민국에서는 ‘IDC’(Internet Data Center)의 우아한 표현으로 남용되는 ‘클라우드’(Cloud)라는 개념이 (10여년 전에 – 표현 추가) 등장할 때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의 키워드인 ‘디지털 고객 경험’은 이미 중요 요소로서 사업 전략에 포함되었어야 했다. 언제나 이를 가로막는 것은 전시적, 예능적 사업기획 문화가 아닌가? 결국 이것도 디지털 공간 설계 능력 부족이라고 할 수 밖에.. 다른 말로는 철학의 부재라고 할 수 밖에..”

③ “생산자와 공급자는 디지털 공간을 통하여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고객 경험과 고객 반응을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파악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끊임없이 줄 수 있도록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여야 한다.”

이러한 선언을 구현하려는 생산자와 공급자가 구축하여야 하는 디지털 공간은 일응 일반적으로 CEMP(Customer/Subscriber Experience Management Platform)라고 부른다. 이것도 일종의 디지털 공간이다. 이는 당연히 다른 디지털 공간의 일부일 수도 있고, 독립적인 디지털 공간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CEMP를 제대로 구축하여 운용 중이라는 기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데이터에 대한 우선 순위 감각도 없고, 디지털 방식에 의한 즉 자연스러운 방법에 의한 고객 반응의 수집 체계도 없고, 그 반응에 대한 피드백이라는 반응성 또는 책임성에 대한 고려도 별로 없다. 한마디로 CEMP라는 디지털 공간에 대한 심각한 고려가 없다. 그러고도 디지털 산업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소위 ‘데이터론’ 또는 ‘데이터 과학’ 또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는 바로 이런 CEMP에 집중되어야 한다.

수많은 데이터 기반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산자와 공급자는 ‘개인맞춤형서비스’를 최고의 품질로 제공한다고 자랑하고 광고하며 떠들지만 바로 이것이 클라우드 기반 위에 AI를 통하여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으로서 이는 과정산업(過程産業)의 핵심적 특징이다. 즉, 고객에게는 매일매일 다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고, 동일하게 계약된 재화와 서비스이지만 매일매일이 서로 다른 재화와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고객맞춤형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아주 세밀한 파라미터들을 통해 얻어진 개인정보를 고객은 어떻게 가공되어 전달받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설정(settings) 기능의 정밀한 설계에 의해 가능하게 되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제4차산업혁명이 낳은 재화와 서비스의 정의가 될 것이며, 이는 바로 디지털 공간에 의해 제공 가능하다는 것을 어찌 알지 못할까?

④ 이제는 재화와 서비스는 궁극적으로는 또는 결과적으로는 소위 생산자와 공급자가 만드는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고객’ 스스로가 만드는 시대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객 설정 기반 서비스가 가능한 디지털 공간 설계가 재화와 서비스의 경쟁력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산업의 생산물인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제4차산업혁명 이전과 이후에 내리는 정의는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다만 이 선언의 기본 전제는 생산자와 공급자가 생산과 공급을 위하여 도입하는 AI에 설정하는 기천억개 또는 기조개의 파라미터들(parameters)의 일부라도 고객의 손에 쥐어줄 수가 있느냐라는 것이다.

기존의 재화와 서비스의 정의는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라는 새로운 요인에 의하여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 정도는 고객에게 쥐어주는 파라미터들(parameters)의 숫자에 의존하는 것이다. 나는 제10편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귀사의 초거대 AI 프로젝트 설계에서 고려하는 2,000억개의 파라미터 중에 인간 자체에 관한 것은 몇개인가요?’ …. 그런데 이에 관한 질문은 파라미터 기준 인간과 비인간의 비중이 얼마나 다른가였는데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천만의 말씀.”

바로 이런 질문에서 알 수 있는 인간에 관한 데이터 즉 고객에 직접 관련 있는 데이터의 파라미터들(parameters)이 바로 고객이 스스로 만드는 ‘재화’와 ‘서비스’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정보를 포함하여 각각의 디지털 공간에 가장 적합한 오토노미(autonomy)의 구체적 항목들을 정밀하게 설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와 변이는 기존의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불가피하고, 규제법령의 개편이 불가피해지는 시대로 돌입하게 하고 있다. 이런 변이와 변화의 양상을 확장하면 바로 ≪유동적 근대성(liquid modernity, 流動的 近代性)≫이라는 책에서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년 – 2017년)이 주장하는 액체적 근대성을 설명하는 설득력 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이것이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관점을 결여한 상태가 바로 디지털 일리터러시(digital illiteracy)의 상태이고 이런 사람을 디지털 일리터러티(digital illiterate)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4. 디지털 공간론이 플랫폼 경제에 던지는 전복적 함의

지금까지의 플랫폼 경제(platform economy)는 오토메이션(automation) 담론의 성공적 수단이었고, 앞으로의 지능화와 초연결화를 통한 디지털 공간 경제는 과학기술 진보의 여정이지만, 한편으로는 하이데거적 ‘기술의 질주’로도 읽혀진다. 초연결사회가 주는 ‘희망’의 크기만큼 ‘불안’의 크기도 증대된다. 그 불안은 디지털 공간을 구성하는 네트워크가 원래 생성 당시의 설계에 따른 best effort의 packet 네트워크에 가혹한 설계 변경을 가하여 QoE(quality of experience) 또는 QoS(quality of service)를 보장하는 네트워크로의 변환을 기도하는 것 자체가 ‘기술의 질주’이고 오토메이션(automation)의 불안한 미래를 한 구석에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굳이 예를들자면 전기자동차의 ‘원격’ 자율주행을 기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라는 점이다. 거의 무한 변수의 발생이 예상되는 차도에서의 주행 판단은 현장의 전기자동차에 설치된 자율주행시스템의 ‘자체’ 판단에 의거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어야 하는데, ‘원격’ ‘실시간’ 정보처리 과정을 통하여 시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무모한 일은 아닐까? 이런 기술적 추구는 ‘유동적 근대’ 이상으로 ‘유동적 현대’를 만들어나가는 현상의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물론 특정 단일의 네트워크를 통한 통합 자율주행을 원격으로 처리하는 특수한 경우까지 배제하자는 뜻은 아니다. 초연결사회의 미래를 너무 과장하여 그려나가는 일은 무모하지만, 다양하고 다채로운 디지털 공간을 만들어가면 그 중에 QoE 또는 QoS를 보장하는 디지털 공간은 얼마든지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새로운 플랫폼은 오토노미(autonomy) 담론에 기초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로서의 ‘디지털 공간’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이는 기존의 플랫폼 경제구조를 전복(顚覆)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디지털 공간론’은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 이슈를 넘어 데이터중립성(data neutrality) 이슈를 관통하며, 또한 ‘개인정보보호’ 이슈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하여 개인맞춤형서비스와의 서로 가치 충돌하는 문제를 극복하는 아이디어도 얻게 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디지털 시대의 기본소득론 아이디어도 마찬가지이다. 덧붙인다면 전통적인 산업화에서 야기한 후유증인 소외(疏外. alienation)는 이제는 디지털 공간에서 오토노미(autonomy)의 부여를 통해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주제까지 다 담아내는 나의 주장을 바로 ‘오토노미(autonomy) 담론’과 ‘디지털 공간론’으로 펼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8월 2일 화요일)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newdhjj@gmail.com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연락처는 newdhj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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