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크고 확실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으므로 헛것인지 실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헛것들은 실체의 옷을 입고, 모든 실체들은 헛것의 옷을 입고 있는 모양이었다. ㅡ

김훈은 소설 ‘칼의 노래’에서 이렇게 말했다.

디지털 공간이라는 헛것에 관한 한가한 소리를 하는 이유는 한국 경제에 잠재성장률(potential growth rate) 급락이라는 한파가 몰려올 조짐을 읽고 있으면서도 그 한가한 소리라도 설파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각성에서 비롯된다.

기술혁신의 저조에 저출산과 고령화까지 덮친 상황에서 제4차 산업혁명으로 잠재성장률을 지탱하고 또한 높이는 국가 전략에 디지털 공간 전략이야말로 최선의 방책임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은밀하고 조용하게 침식되는 제4차 산업혁명 패권 즉 디지털 산업 주도권의 급격한 침식 가능성을 지적하고 그 대응방안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경제성장률보다 잠재성장률을 언급하는 것은 당장의 해법보다는 기초적 해법의 모색과 실천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한국이 국제경쟁력과 잠재성장률을 어떻게 유지하고 높일 수 있을 것인가? 디지털 산업만이 가능하다. 나아가 디지털 산업이 받쳐주지 않는 한 다른 분야의 경쟁력을 유지하거나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SW가 HW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시대, 데이터와 AI가 SW와 HW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 그런 지능정보사회,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패러다임이 모든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반도체, 시스템반도체, 통신, 인터넷, 데이터, 빅데이터, 플랫폼, 클라우드, AI, 메타버스, 블록체인 등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모든 것들이 그 자체가 산업이면서, 다른 산업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고 있다. 정보고속도로, 유비쿼터스 컴퓨팅 그리고 만물지능통신 등의 개념은 물리 공간 요소의 ‘연결’ 차원을 상징하지만, 제4차 산업혁명의 요소기술은 ‘연결’을 물리 공간과 다른 ‘공간’ 차원으로 확장하는 시대, 즉 디지털 공간의 시대를 열고 있다. 아울러, 쓰나미같은 공포를 안기며 전산업 분야에 공습을 가하고 있다.

사실 이런 요소들의 성격과 경제기여도는 제대로 평가, 받거나 측정되지 못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구글, 아마존, 애플 등이 가지는 경쟁력은 전통적 평가방법에 의한 성과와 경쟁력보다 수배에서 수십배가 더 크다는 의미다.

애플의 시가총액이 3,000조원이 넘는다는 어마무시한 소식에 반하여, 한국의 디지털 산업 경쟁력 침식은 바로 이들 메이저들의 가치와 접근법을 이해,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를 역전시키는 해법의 일부를 제시하는 것이 이 글의 최대의 목적이다. 그러면 한국에도 시가총액 1,000조원을 돌파하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도대체 나는 어떤 생각으로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을 논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현황을 짚어보자.

ㅡ 국내 잠재성장률이 윤석열정부 임기 중인 2025년 1.57%로 떨어지고 2030년엔 0%대인 0.97%에 진입하며, 2045년엔 0.60%까지 낙하할 것으로 봤다. 한국 잠재성장률은 1980년대 9.0%에서 1990년대 7.2%, 2000년대 4.4%, 2011~2017년엔 3.1%로 단계적으로 하락했고 최근엔 2%내외로 추정된다.

ㅡ 실제 성장률은 일시적으로 잠시 떨어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잠재성장률은 일단 한번 추세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다시 돌이키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하강 속도는 다른 주요국과 비교해도 월등히 빠르다. 보수와 진보 정권의 차이도 거의 없다. 20여년 만에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세계 주요국 중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빠른 추락이다.

ㅡ 전망도 어둡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발표한 재정전망보고서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20년에서 2030년 사이에는 1.9%로 추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OECD 38개국 중 캐나다와 함께 가장 낮은 수준이다.

ㅡ 요소 투입이 늘어나기 어렵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성장을 위해서는 결국 생산요소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밖에 남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것뿐이다.

잠재성장률 제고의 핵심은 결국 생산성 향상에 있다. 노동의 투입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개혁이 급선무고, 자본의 투입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규제개혁과 기술혁신이 필수다. 민간투자를 유인할 기제가 필요하다.

위 글은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가 지난 2월에 주간조선에 올린 “문제는 추락하는 ‘잠재성장률’이다”에서 인용했다.

제4차 산업혁명의 승자는 The winners take it all이라는 공리같은 시장원리의 향유자가 되는 것이니 수많은 인력과 자원이 투입되는 결과가 실패로 돌아가면 그 손실이 전통산업에서의 결과와는 달리 엄청난 규모가 될 뿐더러 다시는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를 수 있다.

이렇듯 제4차 산업의 패러다임은 all or nothing의 위험한 패권 구조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산업마저도 그런 위험한 구조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라는 점은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글로벌 메이저들이 디지털 전환 (digital transformation)을 강조하는 것이 다른 기업들에게는 주자들에게는 말에게 채찍 가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우리는 개미로 전락하고 글로벌 메이저들은 여왕벌처럼 지배하는 음울한 미래를 노래하는 소리처럼..

나는 한국의 디지털 산업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 경제를 지탱해줄 잠재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위안에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디지털 산업의 펀더멘털이 부실해지고 있어 그동안 그것이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약화시켜왔고, 앞으로 더 급속도로 추락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위험을 고발하고자 한다. 그것은 코로나 19의 초과사망(excess death)의 수가 직접 사망자수보다 3배나 많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디지털 산업의 펀더멘털에 관하여 지금까지의 접근방법과 다른 새로운 접근방법의 제안을 시도하는 것이고, 이는 범주적 차원에서는 ≪디지털 신뢰공간론≫으로 다룰 수 밖에 없다.

물론 구체적으로는 상기 인용 글의 마지막 부분의 처방의 의견 도출에 이어지는 글을 집중할 예정이다. 즉 민간 투자의 유인이 문제가 아니라 투자를 어디에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촛점을 맞추되, 그것이 기술혁신이어야만 되더라도 디지털 공간 인식체계의 이슈와 관련됨을 밝히고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밝혀볼 생각이다.

제4차 산업혁명을 선택하고 이에 집중하더라도, ‘디지털 산업시대의 처방은 분명히 공업 중심 산업시대의 처방과는 다르고, 달라도 너무 다르다’라는 점을 일깨워야 할 의무를 나는 이 글에서 지고 있다. 아울러 디지털과 데이터가 지배하는 모든 산업 분야에 이 글이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난 50여년 디지털 공간의 초기 버전부터 플랫폼 버전까지 디지털 트렌드를 선도하기는 했지만 언제나 결과는 거의 실패였다. 메타버스 버전이라고 다를 것인가? 다음 (3)편에서 디지털 공간론을 계속 펼치겠지만, 앞으로 본격적으로 분석하여야 할 디지털 산업의 주도권 침식의 원인을 단 한마디로 “디지털 공간 설계 능력 ≪결여≫”라고 미리 감히 지적하고 이 글을 마친다.

김훈은 소설 ‘칼의 노래’에 이렇게 썼다.

나는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텅 빈 바다 위로 크고 무서운 것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각사각 사각, 수평선 너머에서 무수한 적선들의 노 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환청은 점점 커지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환청을 떨쳐냈다. 식은 땀이 흘렀고 오한에 몸이 떨렸다.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newdhjj@gmail.com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연락처는 newdhj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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