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뉴포트는 MIT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조지타운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입니다. 자신의 전공분야 연구를 하면서 《뉴욕타임스》, 《뉴요커》, 《와이어드》 등에 글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이기도 합니다.

뉴포트는 딥 워크, 디지털 미니멀리즘, 하이브 마인드 등 여러권을 썼는데 그의 주된 관심사는 생산성입니다. 하이브 마인드에서는 이메일이 직장안에서 남발되면서 본래의 일에 집중못하고 이메일 송수신에 매달리는 직장 문화를 날카롭게 밝혔습니다. 딥 워크는 어떻게 해야 몰입하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를 다뤘습니다.

뉴포트는 팬데믹을 통해 재택근무과 보편화되는 가운데 직장인들이 이른바 소진(번 아웃) 현상에 시달리는 것을 관찰하면서 ‘슬로우 워크’라는 개념을 고안했습니다.

뉴포트의 슬로우 워크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일을 줄이자

둘째, 일을 자연스러운 리듬에 따라 천천히 하자

셋째, 일의 퀄리티를 높이자

뉴포트의 새 책(슬로우 워크)에서 ‘유사 생산성의 흥망’편을 골라서 10줄로 요약했습니다. 유사생산성이란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을 측정할 때 농공업과 달리 수치화가 어렵기에 일하는 티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의 실체와 상관없이 이메일이나 슬랙을 주고 받거나, 미팅이라 회의를 갖고 문서를 만드는 행위가 생산성의 척도가 됩니다. 따라서 지식 노동자는 일하는 티를 많이 내서 생산성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뉴포트의 분석을 접하고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이 속한 회사를 한번 둘러보세요. 일하는 티 내느라 근무 시간만 때우고 있지 않은지.

1.더 많은 시간을 일해라

CBS 방송국, 금요일 오후 3시 30분인데도 사무실 자리 중 4분의 3이 비어 있었다. 불만에 가득 찬 문베스사장은 이른 퇴근을 책망하는 과격한 메모를 직원들에게 보냈다.

메모는 ‘우리 방송사 시청률은 3위입니다. 금요일 3시 30분이면 ABC와 NBC 직원들은 아직 일하고 있을 시간입니다. 향후 이런 근무 태만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일화는 20세기 지식산업 부문이 생산성을 고려하게 된 여러 방식을 보여주는 식상한 일례다. ‘일’이란 뭐가 됐든 직원이 사무실에서 하는 것이다. 일은 적게 할 때보다 많이 할 때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 관리자의 업무는 직원이 ‘충분히’ 일하도록 감독하는 것이다.

가장 성공한 기업에는 가장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있다.

2.지식노동자의 생산성이란?

700여 명의 지식 노동자에게 “귀하가 속한 특정 전문 분야에서는 ‘생산성’ 및 ‘생산적’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합니까?”라고 질문했다.

이 질문에 업무 ‘유형’을 그냥 열거한 답변이 가장 많았다. 달성해야 할 구체적인 목표나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판가름할 수 있는 성과 척도를 제시한 답변은 아예 없었다.

모두가 생산성 용어에 온갖 불만을 품어왔건만, 지식 노동자들은 ‘생산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정의조차 합의해서 내놓은 적이 없었다.

2.1 피터 드러커

1999년 피터 드러커는 지식 노동자 생산성이라는 논문에서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을 다루는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됐다”라고 공표했다. 하지만 드러커 조차 생산적인 일을 뒷받침할 ‘법한’ 요인들을 지적하고 있을 뿐, 측정할 구체적 특성이나 개선해야 할 과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2.2 토머스 대븐포트

‘핵심 인재 경영법’저자 토머스 대븐포트는 이렇게 말했다.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은 좀처럼 측정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측정하는 경우에도 학자의 연구 성과를 논문의 질이 아니라 편수로 측정하는 등 정말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하죠. 지금도 여전히 꽤 초기 단계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대븐포트가 집필하거나 편집한 책은 총 25권중에서 ‘핵심인재 경영법’이 가장 적게 팔렸다.

2.3 표준 정의 부재

지식 노동만큼 규모가 큰 경제 부문에 생산성을 규정하는 유용한 표준 정의가 없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 밖에 거의 모든 경제 분야에서 생산성은 명확하게 정의된 개념일 뿐만 아니라 업무를 진행하는 방식의 중심이 되곤 한다.

3.생산성의 뿌리, 농업과 공업

농업에서 생산성의 의미는 단순하다. 토지 구획당 생산성은 토지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양으로 측정할 수 있다. 이런 투입량 대비 산출량 비율은 농부가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수단을 탐색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3.1 공업 생산성

공장 소유주는 시급당 자동차 생산량에 관심을 기울인다. 공장 소유주는 생산공정을 연속 흐름 조립라인으로 바꿔서 지표를 개선할 수 있다. 이러한 예에서 생산되는 산출물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방법을 바꾸도록 촉진하는 힘은 한결같이 ‘생산성’이다.

3.2 부상과 탈진 상쇄

이처럼 측정 가능한 개선을 중시하다 보면 당연히 인적 비용이 발생한다. 조립라인에서 실행하는 작업은 반복적이고 지루하며, 모든 동작에서 효율성을 강요하면 부상과 탈진을 부르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부문에서 놀라운 경제성장을 일으킨 생산성의 위력은 이런 염려들을 대부분 덮어버렸다

4.지식노동의 생산성, 양인가 질인가?

지식 노동자들은 복잡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업무량과 씨름해야 할 때가 많다. 회사 웹사이트에 올릴 추천글을 모으고 오피스 파티를 준비하는 동시에 고객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인사 담당자가 이메일로 보낸 이해상충 성명서도 수정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산출량을 콕 집어 추적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작년에 내가 당신보다 학술 논문을 더 많이 발표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어쩌면 당신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만 중요한 업무인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정말로 내가 생산성이 더 높은 직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5.지식 노동자, 감독 지휘하기 어렵다

지식산업 부문에서 업무 조직화 및 실행에 따르는 결정은 대체로 직원 개개인이 스스로 내려야 한다. 직원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기업이 통일하는 경우는 있지만 작업을 할당, 관리, 조직, 협력, 최종 실행하는 시스템은 대개 개인이 각자 알아서 짜기 마련이다.

피터 드러커는 1967년에 발표한 명저 ‘자기경영노트’에서 “지식 노동자는 가까이에서 낱낱이 감독할 수 없다. 그저 도울 수 있을 뿐이다. 나아갈 방향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6.지식노동에 도입된 유사생산성

유사생산성(pseudo-productivity)는 실제 생산 노력을 어림잡아 측정하는 주요 수단으로 눈에 보이는 활동을 이용하는 방식을 뜻한다.

‘생산성’을 정의하라는 물음에 독자들이 그토록 혼란스러워했던 까닭은 이 철학의 모호함에 있다.

이는 손쉽게 설명할 수 있는 정식 시스템이 아니다. 오히려 일종의 분위기, 즉 바쁘게 돌아가는 움직임으로 유지되는 의미 있는 활동이라는 포괄적인 기류에 가깝다.

7.컴퓨터와 네트워크, 유사생산성에 혼란 초래

1990년대 사무실에 네트워크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유사생산성의 지속가능성이 나락에 떨어졌다. 활동이 생산성을 가늠하는 대용물인 환경에서 최소한의 노력으로 바쁘다는 신호를 눈에 띄게 보낼 수 있는 이메일이나 슬랙 같은 도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지식 노동자는 끊임없이 전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최대한 빠르고 정신없이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일과 시간을 쓰게 됐다.

7.1 모바일 환경

노트북과 스마트폰이라는 형태로 휴대용 컴퓨터와 통신수단이 등장하면서 이런 경향은 한층 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근면함을 증명하라는 요구가 근무시간을 넘어서서 퇴근 후 저녁시간이나 아이가 축구 시합을 하는 주말에까지 미치게 됐다.

7.2 소진 증후군 유발

컴퓨터와 네트워크는 여러모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하지만 유사생산성과 결합해 과부하와 주의 산만에 시달리는 감각을 지나치게 자극한 결과, 우리를 괴로운 소진 증후군 위기와 정면충돌하는 경로로 내몰았다.

7.3 일하는 티 내기

마이라라는 가상 비서는 자신이 여러 지식 노동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알게 된 사실을 요약해 독자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마이라는 “고객들은 무척 바쁘지만 하고 싶거나 해야 할 일을 감당하기가 너무 벅차서 우선순위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아요. 그래서 무턱대고 일을 많이 하려고 애쓰면서 그런 식으로 발전해나가기를 바라곤 합니다”라고 말했다.

8.소진 증후군 현상 일반화

맥킨지 앤드 컴퍼니와 비영리단체 린인이 공동으로 지식산업 부문에 종사하는 북미 지역 종업원 6만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자주’ 혹은 ‘거의 항상’ 소진 증후군을 경험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수가 크게 증가했다.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미국 노동자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집단에 속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스티브라는 전략 기획자는 “소진 증후군이 정말로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관심을 기울이고 싶은 일이 있어도 그 밖에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 까닭에 그 일을 제대로 하면서 열정과 온전한 주의, 창의력을 쏟을 여력이 없어지거든요”라고 말했다.

9.유사생산성 재평가 필요

이처럼 음울한 현실에 완전히 굴복하기에 앞서 유사생산성이 과연 불가피한 개념인지 재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CBS 일화는 고군분투하던 방송국이 전세를 역전시켜 결국 시청률 꼴찌에서 1위로 올라서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는 희망찬 결말로 끝났다.

하지만 이런 전세 역전이 일어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레슬리 문베스가 직원들에게 요구한 노동시간 연장은 시청률 상승과는 거의 무관했을 가능성이 높다.

10.CBS의 실적이 호전된 경위

앤서니 자이커가 기획한 ‘CSI’프로그램이 2000년 가을에 첫 방송이 나가자마자 히트를 치면서 시청률이 급증했다. 문베스가 직원들에게 더 많이 일하라고 압박함으로써 방송국을 살리고자 했다. 하지만 결국 방송국을 되살린 것은 앤서니 자이커라는 ‘CSI’시리즈 기획자가 3년 넘게 기울인 집요한 노력덕분이었다.

첨단 기술을 도입해 요구를 멈추지 않는 유사생산성과 비교하면 ‘느리다’고 할 법한 속도에서 나오는 그 마법은 장기간에 걸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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