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마가렛 미첼은 지병때문에 애틀랜타 저널의 기자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할일이 없자 마가렛 미첼은 곧 불안해졌고, 두번째 남편이 선물해준 레밍톤 타자기로 미첼은 부모와 친척들, 어린 시절에 만났던 참전용사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소재로 10년 이상 소설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남북전쟁터에서 살아내야했던 팬시 오하라(Pansy O’Hara)라는 애틀랜타 미인의 이야기입니다.
1차대전에으로 약혼자를 잃고, 스페인 독감에 걸린 어머니를 위해 애틀랜타에 돌아오게 된 미셀 그녀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내가 알고 있는 좋은 사람들, 전쟁과 남부 재건 시절을 버티고 살아남은 그들의 젊은 시절 얘기를 써보기로 마음먹게 되었다’고 합니다.
새 작가를 찾기 위해 남부를 샅샅이 뒤지던 맥밀란 출판사의 편집자는 제목이 ‘내일은 또 다른 날입니다’라는 마가렛 미첼의 소설초고를 건네 받습니다. 미첼의 소설은 전쟁 이전에 빛났으나 사라져버린 남부시대를 그리워합니다. 전쟁 속에서 꿋꿋이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1936년에 소설이 출판될 때, 소설 주인공의 이름은 ‘팬지’는 ‘스칼렛’이 되었고, 작가의 이름은 ‘페기 마쉬’는에서 결혼 전 이름인 ‘마가렛 미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책제목은 더 가슴 아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바뀌었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는 애틀랜타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계속해서 미국과 전 세계에서 수백만 부 판매되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중의 하나가 됩니다. 노예제 묘사에 대해 비판받기도 했지만, 마가렛 미첼은 1937년 풀리처 상을 수상했습니다.
출판될 무렵인 1936년 여름, 영화 프로젝트도 시작됩니다. 할리우드 거물 데이빗 셀즈닉(Selznick)이 영화판권으로 오만달러를 지불하고 제작을 결정했습니다. 제작과정은 고난의 연속있었습니다. 자금이 부족해진 셀즈닉은 MGM에 세계 배급권을 150만 달러에 판매하고, MGM은 남자 주인공이 될 영화배우 크라크 게이블을 빌려줍니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는 1939년 12월에 영화가 개봉됩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헐리리우드의 역사가 시작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했을 때,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작이기도 합니다.
마가렛 미첼도 1939년 12월 애틀랜타에서 열린 초연에 참석했습니다. 그녀는 애틀랜타의 피치트리 스트리트를 건너던 중 과속 차량에 치여, 10년후인 1949년 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