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식당 진진의 설계자. 50년 업력을 가진 백전노장이다. 부모가 중국 대륙 출신인 화교 2세다. 열일곱 살에 철가방을 든 뒤 홀을 거쳐 주방에 입성했다.
대관원, 홍보석, 사보이호텔 호화대반점, 플라자호텔 도원 등을 거쳤다. 코리아나호텔 대상해 주방장을 하다가 오너 셰프가 됐다.
인생 1막을 마치고 소일 삼아 테이블 열두 개짜리 진진을 냈다. 이 자그마한 골목가게가 미쉐린 가이드 별을 받으며 인생 2막이 다시 바빠졌다.
저서소개_진진, 왕육성입니다
요식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미쉐린 가이드 스타 ‘진진’
2016년 말, 요식업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미식가의 성서’라고 불리는 미쉐린 가이드가 한국에도 론칭한다는 소식이 퍼졌다.
특급호텔 레스토랑, 고급 요릿집 등이 수록을 기대하며 발표만 기다리고 있었다.
총 24곳이 발표됐는데 눈에 띄는 가게와 셰프가 있었다. ‘진진’ 그리고 왕육성. 진진은 마포구 서교동 골목에 자리 잡은 작은 중식당이다. 게다가 개업한 지 2년도 안 된 신생 가게나 다름없었다.
‘니가 거기서 왜 나와?’
다들 의아해 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에서 별을 받은 중식당은 단 두 곳이었다.
한 곳은 포시즌스 호텔에 위치한 유유안이고, 다른 한 곳이 바로 진진이었다.
미쉐린 가이드는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하고 수준 높은 중식을 제공하는 중식 전문점”이라 평했다. 사실 진진을 알고, 왕육성을 아는 사람들에겐 ‘역시’ 싶은 결과였다.
『진진, 왕육성입니다』는 바로 이 깜짝 스타 진진과 진진을 만든 왕육성에 대한 이야기다.
TV에 얼굴을 자주 내비치진 않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는 사실 이미 중화요리계 스타다.
왕육성은 50년 업력을 가진 백전노장이자, 대관원, 홍보석, 플라자호텔 도원 등 장안에서 이름난 중식당을 거쳐 코리아나호텔 대상해 오너 셰프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다.
‘왕육성이 망했다고?’
그런 그가 어느 날 호텔 일을 접고 동네에 작은 가게를 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의아해 했다. 후배 요리사는 식당에 다녀갔다가 울었다고 했다.
다들 왕육성이 망했다고 수근거렸다. 그런데 망한 줄 알았던 노장의 가게가 업계 내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엉? 실패한 적이 없어? 왕육성 셰프의 삶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10대에 철가방을 든 뒤 거침없이 달려왔으니 그럴 만하다. 진진 요리를 맛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진진의 성공 뒤에는 『삼국지』 뺨치는 전략과 전술이 촘촘하게 숨어 있다.
낙관과 긍정은 난관을 돌파하는 힘이다.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말은 ‘요리하는 현자’ 왕육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박정배(음식 칼럼니스트)
사실 진진은 왕육성이 50년 요리 인생에서 축적된 내공을 모두 쏟아부은 ‘작품’이나 다름없다.
모든 것을 그는 철저하게 설계했다.
가게 위치부터 메뉴 선정, 주류 판매 목록까지 허투루 정해놓은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
유동인구 거의 없는 골목 자리에서, 짜장면‧짬뽕도 없고 탕수육도 없고 단무지까지 없는 이 이상한 중국집, 결국에는 성공했다. 역시 그는 이번에도 실패하지 않았다. 한 기자가 말했다. ‘전승의 승부사 왕육성.’
짬뽕 없어요, 짜장면도 없어요. 거꾸로 가는 중국집
왕육성이 진진을 준비하며 내건 모토는 ‘동네서 즐기는 호텔 요리’였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호텔 못지 않은 수준의 요리를 부담 없는 가격으로 즐기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가게를 여는 사람들은 누구나 억 소리 나는 권리금을 주더라도 호화 상권에서 화려하게 매장을 꾸며 손님을 모시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는 권리금이 없고 시설 투자에 돈을 적게 들일 40~50평 내외의 작은 곳을 찾았다. 그 돈을 아껴 가격을 낮추고, 재료비에 투자하는 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SNS에 점심에도 문 여는 신관을 내겠다는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어요. 성급했어요. 주변 가게들 사정을 알아보지 않고 섣불리 꺼낸 말이거든요.
그 때문인지 가까이 있는 식당 주인이 편지를 보내왔어요. 장사가 안돼서 걱정인데 진진이 자기네 가게를 인수하면 어떻겠냐는 내용이었어요. …
이런 동네에서 진진이 점심에도 장사를 하면 될까 싶더군요.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손님을 진진이 빼앗을 수 있잖아요.”
메뉴판에서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없애는 파격을 시도했다.
점심 장사도 하지 않았다.
여느 중국집과 다름없이 식사 메뉴를 내고 낮부터 손님을 받는다면 가뜩이나 좁은 골목 상권에서 작은 파이를 가지고 다투는 꼴밖에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서비스 요리로 인식돼 버린 만두도 직접,정성스레 만들어 제 가격에 팔았다. 게다가 주문이 잘 들어오지 않는 채소요리와 재료 관리가 까다로운 생선요리를 메뉴에 넣었다.
남들이 보기에 거꾸로 가는 이상한 중국집은 사실 다 그의 계획이자 도전이었다.
글 쓰는 셰프 박찬일의 말을 빌리면 ‘남이 안 하는 것을 하고, 나른한 고정관념을 깨고, 손님들이 상상하는 것을 넘어서려고 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화교 2세의 숙명, 왕육성을 중국집으로 이끌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왕육성도 무턱대고 한 것은 아니다.
그의 요리 인생 50년에서 우러나온 노하우와 지혜를 바탕으로 한 시도였다. 왕육성은 열일곱 살 때 학교를 관두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대륙에서 온 화교였는데 집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나 화교 2세로서 왕육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1960년대만 해도 화교는 토지 소유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한국 사람 명의를 빌려야 했다. 토지를 빼앗기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영주권이 없던 시절 화교는 외국인출입국관리법 적용 대상이었다. 주기적으로 체류 기간 연장 허가를 받아야 했다.
공무원도 할 수 없었고, 변호사나 의사 등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증도 딸 수 없었다. 비자 문제가 까다로우니 일반 회사도 화교 채용을 꺼렸다.
왕육성은 자연스레 화교들이 많이 자리 잡은 중국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가 칼을 잡은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식칼·가위·면도 셋을 삼파도(三把刀)라고 해요.
모두 날이 달린 칼이죠. 이를 이용해서 하는 일을 삼도업(三刀業)이라 하고요. 요리점·포목점·이발소가 대표적이에요.
기술만 익히면 먹고살 수 있는 직종이니까요. 학교 문을 나섰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뻔했어요. 칼과 웍은 어쩌면 필연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위동 대성원에서 배달로 시작해 뚝섬 성수원에서 홀 근무를 거쳐 홍보석에 가서야 주방에 입성했다.
칼을 쥐게 됨에 감사하며 매일 오전 제일 먼저 출근해 칼을 갈고 주방 일을 준비했다.
퇴근하며 자취방에서 그날 보고 익힌 요리를 그림으로 그리며 복기했다.
그런 성실함과 실력을 인정받아 만다린과 해당화를 거쳐 플라자호텔 도원, 코리아나호텔 대상해까지 갔고 마침내 주방장이 될 수 있었다.
훗날 진진을 만들 때 그는 나루 진津을 이어붙여 썼다. 아버지의 고향인 중국 톈진과 지금 왕육성이 사는 마포구 양화진에 함께 들어 있는 한자를 상호로 만들며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담으려 했던 것이다.
화교로서 공부를 포기하고 칼을 들어야만 했던 자신의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그는 운명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왕육성의 힘
대상해 주방장으로서 10년을 지낼 무렵, 호텔로부터 매장을 인수받았다.
오너 셰프로 막 첫걸음을 딛는데 IMF가 터졌다.
위기를 맞은 왕육성은 이 상황을 기회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현재 경제 상황에 걸맞은 비즈니스 코스를 만들었다.
또한 식재료비를 어음으로 끊어주던 관행을 없애고 현금으로 지불하니 쪼들리던 거래처들이 반색하며 더 좋은 식자재를 공급하고 납품가를 깎아주었다.
덕분에 손님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질 좋은 요리를 손보일 수 있었다. 대상해는 IMF 위기 상황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2004년에는 주5일근무 시대가 열렸다. 광화문 근처의 직장인이 주요 고객층이어서 타격이 컸다. 다시 마주친 위기 앞에서 왕육성은 주말 스페셜 메뉴라는 대비책을 내놓았다. 휴일에도 손님들을 받았다.
그러자 매출은 회복되는데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졌다. 대충 일해도 그만이던 주말에 바빠진 직원들이 알아서 예약 전화를 줄여 받았다.
왕육성은 또 승부수를 던졌다. 월급을 없애고 매출액과 연동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월급제를 손본 것이다. 매출이 느는 만큼 가져가게 되니 직원들의 일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교토유삼굴(狡兎有三窟), 영리한 토끼는 굴 세 개를 파놓는다는 말이에요. 무슨 일을 할 때는 반드시 대안과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라는 뜻이죠. 어릴 때 어른들에게 수없이 들으며 자랐어요. 방법이 있어야죠. …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통신 결제 시스템을 두 개 회사로 나눠 놨거든요.
본관과 야연은 SK로 신관과 가연은 KT로요.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라면 통신사 두 곳이 모두 멈춰설 일은 없겠죠.
사고가 발생한 뒤 곧바로 신관은 길 건너 본관을 이용하고, 가연은 바로 옆 야연을 이용해서 결제했어요. 토끼굴처럼 위험을 분산해 둔 덕이었지요.”
왕육성은 항상 이렇게 위기를 대비하여 대비책을 마련해놓았다.
진진에서도 그의 대비하는 자세는 빛을 발했다. 2018년 11월 24일 오전, 서울 서북부에 대란이 일어났다.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KT 아현지사 통신구에 불이 나서 KT 통신망이 마비됐다.
전화와 인터넷은 물론, 매장의 결제 단말기와 POS기가 멈췄다.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카드 결제는 물론 모바일 이체도, ATM기 이용에도 애를 먹었다.
하지만 진진은 이를 피해 갔다. 진진은 매장을 늘리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결제 시스템을 두 군데로 나눠놨던 것이다.
이 시대에 요리하고 장사하며 살아간다는 것
팬데믹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많은 가게들이 코로나 여파로 어려움을 겪거나 문을 닫았다.
진진도 현재 매장 네 곳 중 두 곳만 영업한다.
하지만 뿌리가 탄탄한 진진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들이닥친 위기 앞에서 왕육성은 다른 돌파구를 찾고 있다.
밀키트를 개발하고, 짜장면을 파는 매장을 계획 중이다.
짜장면을 다시 연구‧개발하는 것은 후배들에게 먹고살 길을 찾아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그가 중식업계에 발을 들인 1970년대만 해도 선배 요리사들은 후배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주려 하지 않았다. 진진에도 젊은 후배들이 계속 오고 간다. 무엇이든 숨김없이 보여주고 가르쳐준다. 독립하고자 하면 박수치며 내보낸다.
“나이 일흔을 바라보면서도 손님에게 내놓을 만두를 직접 싸고 가게 구석구석을 살핀다. 이제 그만 쉬시라고 잔소리를 해도 듣지 않는다.
일이 그렇게 좋단다. 항상 가르침을 주는 육성 형님은 중화요리계의 BTS요, 내 인생의 스승이다.” _이연복(목란 대표)
인생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한사코 거절하다가 끝내 수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삶의 궤적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 이야기가 요리하고 장사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그 마음으로 왕육성은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중화요리계의 ‘쓰부’(사부)이자 ‘따거’(큰형님) 왕육성이 책을 쓴다 하니 벗들이 자진해서 도와주었다. 오래된 벗 이연복과 친한 후배 박찬일, 박정배 작가가 추천사를 써주었고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가 기꺼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진진, 백년가게를 꿈꾸다
“큰 굴곡 없이 여기까지 왔어요.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난 덕이죠. 이제는 돌려줄 때라고 생각했어요. 기부니 봉사니 그런 말은 너무 거창하고요.
직원들 지갑 부족하지 않게 채워주면 기부고, 손님들에게 좋은 음식 싸게 내면 봉사고, 제가 쌓아온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해주면 나눔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후배들이 성공해서 또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전해 가면 모두가 좋잖아요. 그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뜻하지 않게 진진이 주목받으며 인생 2막이 바빠졌다. 그의 원래 뜻은 조그만 식당을 열어 지인들과 함께 놀고자 했을 뿐이었다. 2017, 2018, 2019년에 연속으로 별을 받고 2020년 별을 내놓았다.
오히려 그는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진진이 반짝 스타가 아니라 오래가는 가게로서 자리잡길 바란다. 백년가게가 되기를 꿈꾼다. 오래도록, 한곳에서 자리를 지키며 단골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싶다.
그는 이제 뒤편으로 물러나고 그의 제자 황진선이 가게를 이끌어갈 테다. 왕육성은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진진의 정신은 남아 사람들의 입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길 바란다.
개업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진진에는 왕육성의 요리 인생 50년이 녹아 있으니 백년가게가 되는 길이 그리 먼 것은 아니다. 진진이 백년가게가 되길 바라는 마음과 책을 읽는 독자들이 또 다른 백년가게를 만들기 바라면서 이 책을 세상에 내보인다.
대항해시대의 끝자락인 1898년 홍콩에는 영국국기인 유니온 잭이 걸렸다. 시간이 흘러 정확히 99년 뒤인 1997년에 홍콩은 결국 다시 중국으로 반환되기로 되어 있었다. 끝이 예고된 한 세기 동안 홍콩은 역사적으로 유니크한 시공간이었다.
세기말인 90년대 홍콩은 특히 묘했다. 영화감독 왕가위가 바로 그 시대를 대표한다. 왕가위 감독은 1988년 ‘열혈남아’로 데뷔한 이래 1990년대 홍콩 느아르의 홍수 속에 단연 돋보이는 아티스트였다. 비현실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왕가위의 영화기법은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던 세기말의 분위기 그 자체였다. 홍콩의 중국 반환을 불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상황에서 만들어진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에는 홍콩 청춘들의 상실과 불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오늘날 중국에 반환된 새로운 홍콩은 어떤 모습인가? 이제 홍콩이란 시공간은 짐작할 수 조차 없다. 30년전 왕가위에 의해 그려진 어디인지 예측할 수 없는도시같기도 하다.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s을 맘껏 들을 수는 있을까?
이길상교수의 구라(!)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어찌나 맛갈 쓰럽던지… 커피의 세계사라기 보다는 커피가 바꾼 세계사랄까?
커피가 남북전쟁의 승리에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커피원두를 수입할 수 있는 해상 보급로를 확보한 북군만이 커피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실제 북군의 총 개머리판에 커피 원두 가는 장치까지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커피는 군인들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사기를 높여주는 식품으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전쟁승리의 주역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남북전쟁의 영웅이었던 윌리엄 맥킨리는 25대 대통령까지 됩니다. 미국과 스페인 전쟁에서도 승리합니다. 매킨리 미국 대통령이 아들의 친구였던 알렌을 조선의 공사겸총영사로 임명합니다. 남북전쟁-커피-맥킨리-알렌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얽힘이 대한제국의 운명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윌리암 매킨리 호레이스 알렌
1898년 9월의 고종 커피독살 기도사건이 있었습니다. 러시아공사관 통역관 김홍륙이 공금횡령 혐의로 유배형을 받자 불만을 품고 일으킨 사건이었다. 독립신문이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일반 백성까지 이 낯선 서양 음료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커피사건으로 수구와 개화의 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수구파는 중죄인의 처와 가족, 스승과 친척까지 처벌하는 연좌제, 심지어는 공개처형 제도까지 부활시킬 것을 주장했습니다. 갑오개혁 때 폐지한 구시대의 상징들이었습니다. 1898년 10월에 최대규모로 만민공동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적 소견을 발표하였고,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습니다. 역시 커피가 만들어낸 역사의 한 장면입니다.
김원 광장 건축환경연구소 대표는 건축사무소가 아닌 ‘건축환경연구소’에서 일한다. ‘환경’이 들어간 사명에는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필요한 만큼만 짓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는 실제로 동강, 영월댐 등 자연환경 보호 활동에 힘써왔다. 인터뷰 내내 온화한 모습 속에서도 환경에 대해서 만큼은 단호한 태도를 보인 김 대표의 건축 철학에는 ‘서촌 지킴이’ 역할을 자청하며 오랜 기간 싸워온 역사가 담겨 있었다. 팔순이 가까운 나이에도 그의 건축 철학은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오래된 벽돌담과 손으로 아무렇게나 쓴 가게 입구 팻말. 서촌은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서울과 동떨어진 동네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이어진 예스러운 상점들은 서촌만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오래된 벽돌담과 손으로 아무렇게나 쓴 가게 입구 팻말. 서촌은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서울과 동떨어진 동네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이어진 예스러운 상점들은 서촌만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지난 20일, 광화문 위워크에서 만난 김민하 로컬루트 대표는 서촌을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마을’이라고 표현했다. 20대 중반, 6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김 대표가 마주한 건 변해버린 낯선 서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서촌에선 옛 공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김 대표는 “프랜차이즈 상점이 즐비한 서울 도심과 달리 서촌은 스타벅스가 생긴 것 말고는 바뀐 게 거의 없었다”고 회상했다.
1,750억 가지의 파라미터를 가진 거대 AI 또는 구글의 감성 AI에 ‘구슬’을 집어넣으면 무엇이 나올까?
비트(bit)로 이뤄진 공간이라는 것은 바로 데이터로 이뤄진 공간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위의 속담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디지털 공간론을 통한 글로벌 신 디지털 전략을 구체적으로 논하기에 앞서, 그 내용의 일부가 되기도 하는, 몇가지의 관점을 독자들과 미리 공유하고자 한다. 이는 디지털 공간을 ‘데이터 공간’으로 치환하여 바라보는 관점이다. 다양한 목적에서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디지털 공간을 ‘데이터 공간’이라고 이름하여도 어색하다고 느낄 사람은 없을 것이다.
(1) 무엇보다도 지금은 정보화사회를 넘어 ‘데이터사회’ 또는 ‘데이터기반사회’ 또는 ‘데이터 시대’라는 것이다.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식, 정보, 데이터라는 개념 전환이야 경제사회 구조 변화와 인터넷의 진화에 따라 이뤄지는 것인데 도대체 데이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를 내릴 것인가? ‘데이터 사회’를 ‘네트워크 사회’라거나 ‘SW 기반 사회’라고도 하지 않는가? 같은 방향의 역사적 전개에 대한 표현을 어찌 하느냐는 무엇에 무게를 더 주는 가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란한 구호로 데이터 전략 (I-KOREA 4.0을 활짝 여는 데이터 산업 활성화 전략 – 데이터를 가장 안전하게 잘 쓰는 나라)(2018.06)와 같은 정책들을 발표하며, 바다에 고기를 잡듯, 산 속의 석탄을 캐듯 그렇게 데이터를 채굴하여 이용하는 것으로 쉽게 정책을 만들었겠지만, 대체 이 사회가 ‘데이터 사회’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읽지도 않는 책만들기 문화는 세계 최고이지만 우리나라를 ‘책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관련하여 기업의 입장에서 ‘데이터’를 기업 경영의 핵심으로 여긴다면 적어도 다음의 3가지 경영/경쟁 전략지침을 내부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제안도 덧붙인다. 사실은 기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원래 공공 분야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공개와 개방이라는 가치는 공공 분야의 기본 덕목이 아니던가?
즉, ⒜ 기업의 가브넌스 구조를 share-holding corporate governance 구조에 더하여 data-holding corporate governance 구조를 더하여 짜야 한다.
따라서 ⒝ 당연히 CDO (chief data/digital officer)를 운영하여야 한다. 과거에도 계속 제안되었던 기업 경영 구조 아이디어는 CIO (chief information officer) 또는 CSO (chief security officer)의 설치이지만 CDO의 제안도 그저 그런 식상한 의미밖에 주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그저 말 뿐인 ‘데이터’에 대한 과장된 강조를 회상하게하는 지금까지의 유산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또 덧붙이기 꺼려지는 것은 ⒞ 데이터 강자인 글로벌 메이저 인터넷 기업들과의 전쟁에서 공격과 방어의 수단으로 ‘데이터 중립성’ (data neutrality)라는 정책 수단에 대한 깊은 검토가 있어야 했다는 것을 지적한다. ‘망중립성’ (network neutrality)에 의하여 통신사를 넘어 인터넷 경제의 전반에 걸쳐 다양한 창발의 계기를 열었던 수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출현했듯이 ‘데이터 중립성’을 통해 또 다른 새로운 디지털 기업들이 자리를 잘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새로운 글로벌 판짜기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이런 이슈에 대한 치열한 논의를 본 적이 없다.
(2) 데이터 사회에서는 산업이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는 BM (비즈니스 모델)의 관점에서 동일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동일성을 지지하는 것은 소위 디지털 ‘고객 경험’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구독 경제 (Subscription Economy)라는 공통의 BM을 만들어낸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빅데이터, 클라우드, AI 등인데 이들이 결합되어 새로운 BM의 기회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없던 시장이다.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공되던 시장이다. 물리 공간에서의 ‘고객 경험’을 매니징하는 일은 디지털 공간을 통하여 훨씬 포괄적, 체계적, 지속적으로 가능하다. 이를 굳이 이름 붙인다면 CEPT (Customer Experience Management Platform)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슈도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의 핵심적인 일부다. 나는 지금 누구나 하는 이야기 방식을 버리고 ‘디지털 공간’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점에 입각하여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공유된 관점에 기초하여 국가 경쟁력 유지 전략과 국가 경쟁력 추락 방지 방안이 나온다. 그러므로 ‘디지털 플랫폼 정부’라고 한다면 CEPT 요소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과연 정책 담당자와 기업의 책임자 중에서 CEPT를 제대로 만들거나 이해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어딘가에는 있겠지.
(3) 데이터 사회에서는 산업이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는 거의 전부 SW가 그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과거의 공업 시대의 HW에 붙어있지도 않았던 부가가치는 이제는 새로이 만들어지며 이는 SW에 달려 있다. SW에 데이터는 포함되어 있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이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예를 든다면 테슬라 전기자동차를 예시로 할 수 있다. 아마 앞으로는 전기자동차 시장은 거의 대부분 테슬라 전기자동차와 다른 자동차 OEM들이 만드는 테슬라 호환 전기자동차가 차지할 수도 있다.
아마도 시장 상황을 보면 폭스바겐, GM 그리고 현대자동차그룹 (Hyundai Motor Group)외의 OEM들은 테슬라 호환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 이는 애플 PC에 맞서 과거 IBM 내외부를 공개하여 IBM 호환기종의 PC들을 시장에 쏟아지게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테슬라가 가진 전기자동차 SW 기술 때문이다. 테슬라 스스로 생산 공장을 과도하게 유지하는 경영 위험을 지느니 그들의 기술을 2014년 6월에 이어, 그 공개전략의 의도가 뭐든, 다시 한번 추가 공개하여 테슬라 호환 전기자동차를 만들도록 시장을 뒤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는 전기자동차 산업으로 도약을 꿈꾸는 나라가 많다.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그렇고 중동의 국가들도 그렇다. 중국처럼 내연기관차를 건너 뛰어 바로 전기자동차로 직행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 물론 전기자동차에 특화된 SW는 테슬라가 지배할 것이다.
아마 폭스바겐, GM 그리고 현대자동차그룹도 테슬라 호환 전기자동차를 일부라도 만드는 선택을 할 지도 모른다. 이게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바로 테슬라가 가진 SW의 힘이다. IP의 힘이다. 테슬라는 세계 5위의 슈퍼컴 센터를 보유하고 있고 SW 2.0을 주창한 엔지니어도 보유하고 있다.
자율주행SW든 BMS든 기타 각종의 전기자동차 기능을 전자제어하는 SW로서 펌웨어 엔지니어링이든 테슬라는 가장 앞선 전동화(electrification) 기술과 배터리 기술을 가졌으며, 이들 모두를 통제하는 강력한 SW를 보유하고 있고, 고객 차량 내부의 기백개의 센서로 차량 내외부에서 센싱된 테이터는 끊임없이 테슬라의 수퍼컴 센터로 업로드되고 있으며, SW는 끊임없이 업데이트 되고 있고, 전기자동차 전용 ‘테슬라 앱스토어’도 갖고 있다.
테슬라는 애플의 생태계를 흉내내지만 다른 점은 2014년 6월에 이어 또 한번의 전기자동차 기술 추가 공개를 감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향후 애플전기차의 행보는 테슬라의 확장 전략에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다.
이렇게 자동차의 전동화와 빌딩의 인텔리전트화와 디지털 트윈 (digital twin)을 포함한 공장의 스마트화 그리고 모든 것의 DX/IoT화는 궁극적으로 자동화 (automation)를 지향한다.
다른 말로 하면 SW-defined Everything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이는 제4차 산업혁명의 한 축이 되며, 이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이렇게 자동화로 무장한 기업과 공공분야는 고객과 소비자와 시민과 국민에게는 무엇을 공급하여야 하는가? 그것은 오토노미(autonomy)다. 오토메이션과 오토노미!
이렇듯 SW가 제품과 서비스의 결정적 퀄리티를 좌우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정책 담당자와 기업의 책임자는 얼마나 될까?
(4) 마지막으로, 데이터 사회에서는 산업이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는 이제 과거의 제품과 서비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라는 것이다.
이 차이는 기존 법령의 규제근거에 커다란 의문을 야기하는 일이다. 제품과 서비스가 항상 연결 상태에 있고, SW에 의하여 끊임없이 수정되니 구매자에게 전통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소유권이 넘어간 것이라고 할 수도 없고, 공급자의 관리와 모니터링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고객과 공급자 관계와 책임의 성격이 현격히 다르다는 것이다. 책임의 증명 방법도 다르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보면 같은 것으로 보이지만, 알고보면 차원이 다른 제품과 서비스임을 증명하는 경우가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나 있는가? 있기나 한가?
위의 4가지 공유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평가하면 현대자동차그룹도 고비를 맞고 있다. 이 고비는 이미 삼성전자도 맞고 있다고 전편의 글들에서 지적한 바 있다. 두 재벌회사가 극복 가능한가? 대답에 앞서 아래의 기사가 의미하는 함의를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도 극복 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ㅡ ‘조물주’ 저커버그, 언어장벽 없는 메타버스 만든다 (22.02.24)
ㅡ 지문·얼굴로 끝… 애플 “9월부터 비밀번호 완전 폐지” (22.06.16)
ㅡ Apple, Google, and Microsoft want to kill the password with “Passkey” standard (22.05.05)
ㅡ “2023년, 암호없는 세계가 온다”… 구글·애플·MS, 표준화 ‘맞손’ (22.05.17)
ㅡ ‘지갑 대체’ ‘자동차 제어’ 구글·애플이 그리는 스마트폰 미래 (22.06.13)
ㅡ 아마존, 미국에서 드론 배송 서비스 시작… 배달 시장 판도 바뀌나 (22.06.14)
이 기사들은 디지털 공간에서의 디지털 경험원리로 귀결되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 모두가 디지털 공간의 기반 기술로 적용되는 것이고, 그들이 선점하고 있다. 그럼 아래를 보면 우리도 이미 선도적으로 유사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하겠지만 그건 착각이다.
ㅡ 삼성 IoT 작전명 “구글처럼 개방하라” (15.08.05)
ㅡ 현대차 그룹, 멀티콥터 드론 ‘프로젝트N’ 기체 공개 (22.05.25)
ㅡ 신한은행, 부산 스마트시티에 12개 미래금융 입힌다 (22.06.07)
ㅡ 드림시큐리티, 부산 콘텐츠 마켓서 메타버스 인증서 최초 공개 (22.06.07)
ㅡ 남궁훈표 메타버스 전략 시동… 글로벌 기반 ‘카카오 유니버스’ 만든다 (22.06.07)
ㅡ KT·LGU+, 업무용 메타버스 출사표… 통신3사 ‘격돌’ (22.06.08)
ㅡ 에버랜드 메타버스 17일 문 연다 (22.06.09)
ㅡ ‘삼성페이’로 집·자동차 문 연다… “디지털 자산 조회·항공권 보관도 OK (22.06.09)
ㅡ LG유플러스, ‘구글·아마존처럼’ 데이터·AI로 돈번다 (22.06.09)
ㅡ 삼성전자 LG전자, 운명 걸고 글로벌 13억 스마트TV OS 전쟁 (22.06.22)
위의 기사에서 글로벌 메이저들의 활동과 우리의 활동의 차이를 파악해 내는 일로서도 사실 이 글의 목표는 거의 이뤄지는 셈이다. 그 차이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이라고, 그것은 글로벌 생태계, 글로벌 플랫폼을 구축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나면 청중들은 다 떠나기 시작할 것이다. 들을 것 없고 다 아는 이야기라고 치부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제 우리는 세계 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하거나 진입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서양의 근대철학은 분류(classification)와 구분(division)에 의한 범주화(categorization)를 통해 철학과 과학기술의 모든 이치를 섭렵하였고, 이에 멈추지 않고 융합(convergence)을 통해 완성하고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애초에 동양철학에 바탕을 두든 원효의 불교철학에 기초를 두든 원융(圓融)이었고 지금도 원융이다. 그러면서도 지독한 허깨비같은 진영(陣營) 사고로 갈등과 반목과 분열을 거듭하고 있고 역사이래로 사화와 당쟁과 민란과 종교전쟁과 이념전쟁을 야기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왔다. 신묘한 민족이다.
상기의 차이는 디지털 공간론에 입각해서 ‘PID와 DID의 의미’, ‘신뢰(trust)의 구조’ 그리고 ‘데이터 공간론’에라도 천착하면 읽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냥 생태계, 플랫폼 그리고 컨버전스라는 식상한 말에 다 아는 이야기라고 치부하며 떠나지는 말 것을 요청한다. 이를 위해 한 때는 방송통신융합 등 컨버전스(convergence) 개념 하나로 욹여먹고, SSO (Single Sign-On)만 구축하면 플랫폼과 생태계가 완성되듯이 만족하는 이벤트에서 멈추지 말 것을 요청한다.
좀 더 살펴보자. 더 큰 함의는 ‘결과’의 산업 생산물이 아니라 ‘과정’의 산업 생산물에 대한 경험이 일천한 대한민국 산업계의 의사결정자들은 언제나 1년 마다 경질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오너 스스로도 새로운 디지털 경험 원리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덤으로 알려준다.
부족하다는 평가는 현재 재벌그룹의 제품과 서비스의 예시에서 이미 미뤄 얼마든지 짐작 가능하다. 그래서 국가경쟁력, 디지털 산업 경쟁력, 잠재성장률의 하락을 부추기는 커다란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의 원인을 전시행정, 전시 BM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를 예능 행정, 예능 BM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의 ICT 트렌드에 대한 마당발 전파자들이, 골프장에 오지랍 넓은 아마추어 훈수꾼처럼, 심층 독설가들의 자리를 덮어 버린 지 오래고, 그들이 제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지난 5년간 채우고 오도하면서도 행세했다고 하면 과한 일일까?
문제 진단도 부족했는데 그러니 혁명은 커녕, 혁신도 비켜갔고 그리고 후퇴했다. 추락이 증거한다. 잠재성장률 급락, 국가경쟁력 순위 하락, 삼성전자의 시가총액 순위 하락이라는 추락..
물리 공간에서는 다이아몬드, 금 등의 보석이나 석탄과 석유 또는 비옥한 땅 등이 경제적 가치재로 인정받고 있지만, 디지털 공간에서는 그런 것을 설정하기 어렵다.
암호화폐와 NFT 등이 경제적 가치재로 자리잡을 것인지는 별론으로 하고, 디지털 공간에서는 ‘과정’의 차원에서 가치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플랫폼”, “OS”, “브라우저”, “생태계”, “시스템반도체”, “클라우드”, “빅데이터”, “BSS/OSS”, “AI” 어느 하나 그리고 월드와이드웹 공간, 이커머스 공간, 블록체인 공간, 메타버스 공간 등 디지털 공간을 벽돌 찍듯 만들 수 있는가?
말하자면 파르메니데스의 논변이 아니라 헤라클레이토스의 논변을 바탕으로 하는 사고체계에 의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축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빨리빨리’는 이제 더 이상 디지털 산업과는 결을 달리하고, 나아가 위험한 구호가 되고 있다. 바로 여기에 디지털과 연결 기반의 ‘데이터’가 가지는 함의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면 바로 위의 기사들의 함의는 바로 앞의 함의와는 무엇이 다를까? 애플, 구글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왜 손을 잡았을까? 손 잡은 것이 무엇일까?
그냥 새로운 디지털 기술 하나 더해지는 것일까? 이들의 협력제휴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이 끼어들 만한 비즈니스 수단과 구조를 가지고 있을까? 이로인하여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은 어떤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될까? 이런 기막힌 협력제휴를 전담할 조직과 인력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은 갖고 있을까?
2005년에 구글에 인수된 안드로이드를 만든 앤디 루빈 (Andy Rubin)이 2004년 한국 삼성전자를 방문했을 때, 그 당시의 ‘안드로이드의 꿈’을 이해한 삼성전자의 인재들은 있었을까?
작금에도 그런 새로운 기회를 읽어내는 삼성전자의 인재들이 있을까? 설마 ‘전기양’ (electric sheep)을 꿈꾼 것은 아니겠지? 왜 한국에서 ‘아인슈타인’과 ‘스티브 잡스’와 ‘당나라의 최치원’이 자랄 수 없다는 푸념이 이어질까? 이런 기사의 행간에서 대한민국의 추락 가능성을 읽어내는 일은 쉬운 일인가? 쉬운 일이다.
최근에서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수장이 ‘고객 경험’을 회사의 최우선 과제라고 기사를 뿌렸다. 물론 디지털 고객 경험이다.
ㅡ 삼성전자, ‘고객경험’에 미래 걸었다… ‘뉴삼성’ 밑그림 완성 (21.12.12)
ㅡ 조주완 사장 한 마디에 … LG전자 ‘고객경험 실험’ (21.12.23)
적어도 아직도 대한민국에서는 ‘IDC’ (Internet Data Center)의 우아한 표현으로 남용되는 ‘클라우드’ (Cloud)라는 개념이 등장할 때 구독 경제 (subscription economy)의 키워드인 ‘디지털 고객 경험’은 이미 중요 요소로서 사업 전략에 포함되었어야 했다.
언제나 이를 가로막는 것은 전시적, 예능적 사업기획 문화가 아닌가? 결국 이것도 디지털 공간 설계 능력 부족이라고 할 수 밖에.. 다른 말로는 철학의 부재라고 할 수 밖에..
이 글의 전편에서 디지털 공간론 3가지 원리를 ‘소극적’ 의미에서 설명하면서 ‘적극적’ 의미에서의 설명은 이번 편에 담을 것을 약속했지만 잠깐 쉰다. 대신에 원래 디지털 공간론을 통해 추출할 글로벌 디지털 전략의 일부를 ‘데이터 공간론’으로 치환하여 먼저 소개했다.
‘데이터 공간론’으로서의 디지털 공간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서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앞으로 독립 공간으로서의 디지털 공간 제원리의 ‘적극적’ 의미에서의 설명에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정리하여야 할 이슈들이 너무 많다. 난삽하게 보일지라도 나의 머리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긴 호흡으로 계속 전부 다룰 예정이다. 사실은 지금까지의 연재글에 앞으로 정리할 글들의 단서들은 전부 노출되어 있지만…
“구슬도 없고, 구슬이 있어도 담을 그릇도 없고 또는 그냥 버리고, 구슬이 더 필요하다고 다른 사람의 땅으로 채굴하러 도전하지도 않고, 구슬을 채굴하러 내 땅에 오는 다른 사람에게 땅사용료도 받지 않고, 구슬을 채굴해도 그냥 가져가도록 하고,
심지어 돈을 주고 남을 들어오게 하여 구슬을 채굴하도록, 심지어 내 땅에 가져다 놓은 도구를 우리 개미가 일하여 대신 채굴해주고, 구슬을 채굴할 도구도 별로 없고,
구슬을 꿸 실도 없고, 구슬을 실로 꿰맬 사람도 없고, 구슬을 어떻게 꿰매야 하는 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구슬을 꿰매라고 마구 떠든 사람들도 아무 말이 없다.” … 동렬이와 종범이를 대신할 선수들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응룡 감독의 푸념은 뚜렷하게 들린다.
/디지털신뢰공간 아키텍트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물리공간에 병행하여 존재하는 무수한 디지털 공간은 거의 대부분 열린 공간이다. 많은 공간이 가입과 로그인을 공간 유영(spacewalking)의 농도에 차이를 두는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닫힌 공간으로 작동되는 디지털 공간은 국가기밀을 다룬다는 명분으로, 또는 CUG(Closed User Group)에 의하여 폐쇄적 관계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밝고 건전한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있지 못하다.
열린 공간으로서의 디지털 공간에 가입과 로그인이라는 절차를 도입하는 것은 클라우드기반시대에 구독경제라는 새로운 경제유형을 낳으면서 디지털 공간의 모습에 변형을 가져왔지만 대세로 굳어져가고 있고 강력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소위 개인맞춤형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절차로도 적용되고 있다.
디지털 공간의 유영(spacewalking)을 즐기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고 유영을 멈추는 사람들이 많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친밀하고 호기심 가득하게 유영을 한다면 디지털 공간의 구조에 조금 더 익숙하게 되고 좀 더 고쳐야 하는 것들도 찾게 되고 더 나은 공간을 만들 수 있는 혜안도 얻게 된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이러한 깊고 넓은 유영의 경험과 사색의 정도에 달려 있지 않은가?
이번 편에서는 어떤 이슈를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6으로 거론할 것인가? 특히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를 다루는 그 간의 글의 내용은 (1) 데이터론, (2) 디지털 공간 핵심 구성요소, (3) 디지털 공간 인증체계 그리고 (4) 설계 고려 사항(considerations), 그리고 (5)의 ‘오토노미 담론’(autonomy discourse)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번 글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의 여섯번째 글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고민끝에 traffic으로 쟁했다. 매우 간결하게 작성했다. DNA의 역사와 브라우저의 역사와 검색창의 역사는 아예 거론하지도 않았다. 나의 연재글의 전체 글에서는 12번째의 글이다. 말미에 목록을 붙여놓았다.
디지털 공간의 구조
디지털 공간은 그 공간에 접속되는 온갖 종류의 ⓵ 단말디바이스와 그 단말디바이스가 찾아가는 곳 즉 호스트 컴퓨터와 같은 또는 클라우드 플랫폼과 같은 ⓶ 데이터저장소 또는 콘텐츠저장소 그리고 그 찾아가고 가져오는 과정을 매개하는 수많은 라우터와 같은 ⓷ 트래픽 처리 장치 등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디지털 공간 구조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이다.
이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condition)은 연결(connected condition)이다. 또는 언제나 연결 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이들 3가지를 차례차례 다루기로 한다.
(1) 단말디바이스
단말디바이스는 스마트폰, 패드, 노트북, PC, TV, Monotor, IoT equipment, 다양한 CPE(customer premise equipment), Sensors, Camera, Watch, 의료진단측정기, 제임스웹 망원경, LiDAR, AR/VR/MR equipment, Glass, 골프측정기, Refrigerator, 세탁기, 세척기, 지진측정기, 산불감지기, 해양측정기, 수많은 디지털 솔루션이나 SW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만물지능통신의 시대에 IoT(Internet of Things)에는 인간도 thing의 하나라고 이미 내가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앞으로도 무수한 단말디바이스가 출현할 것이다, 이러한 단말디바이스의 새로운 발명과 출현을 살펴보더라도 디지털 공간이 어떻게 진화해 나갈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도대체 무슨 데이터를 사람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세계로부터, 우주로부터 디지털 공간은 얻으려고 하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어쩌면 이 지구의 진화의 방향까지도 미리 감을 잡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단말디바이스를 이렇게 설명하는 이유를 정리하자. 단말디바이스는 디지털 공간의 접속을 담당하는 장치로서 언제나 데이터의 I/O의 최종 위치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때로는 늘 연결 가능한 상태에 있다. 데이터의 생산의 기지이고 처리된 데이터의 출력의 기지이다.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는 곳, 즉 prosumer이라는 신조어의 산실이 바로 단말디바이스이다. 그 데이터의 유통의 과정은 바로 트래픽(traffic)이다. 따져보면 데이터는 정적(static) 개념이고 트래픽은 동적(dynamic) 개념이다. 비즈니스는 데이터로 준비하고 트래픽으로 수행되는 것이다. 트래픽의 지배가 글로벌 디지털 비즈니스의 핵심이 된다는 의미이다.
(2) 데이터/콘텐츠 저장소
데이터저장소 또는 콘텐츠저장소라는 것은 복잡한 기술적 구조의 설명을 다 접고 쉽고 간결하게 말한다면 크게 보아 2가지로 존재한다. 웹기반 저장소와 앱기반 저장소이다.
웹기반 저장소는 웹사이트를 말한다. 앱기반 저장소는 웹기반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변이(variation)을 보여준다. 웹사이트는 20억개 정도이고 앱은 900만개 정도이다. 바로 이것이 현재 물리 공간에 병행하여 존재하는 디지털 공간의 숫자다. 물론 웹과 앱이 동일한 데이터/콘텐츠 저장소를 두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클라우드에 두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웹은 반드시 DNS/IP Address를 채택해야 하고, 앱은 반드시 DNS를 채택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웹과 앱의 작동 기반은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 차이는 디지털 공간 생태계 또는 디지털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는 다양한 관점과 전략을 낳는다.
웹사이트는 20억개가 열린 공간에서 존재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앱공간은 그렇지가 못하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앱마켓은 구글 플레이와 애플의 앱스토어라고 우리는 알고 있지만, 최근의 글로벌 앱마켓은 그런 양상을 전환시키고 있다. 새로운 앱마켓은 중국이 주도하고 있고, 새로운 앱의 숫자는 중국계 3개의 앱마켓이 각각 1, 2,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구글은 4위, 애플은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요? 웹사이트는 무수하고 증가하여 왔지만, 앱마켓은 구글과 애플 등의 앱마켓 소유주의 정책에 의하여 등록되고 출시가 되기때문에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즉 앱공간의 크기는 구글과 애플 그리고 중국계 대형 앱마켓 3개에 의하여 사실상 지배되고 있다.
그래서 앱은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특화된 애플리케이션이기 때문에 DNS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기술적 방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디지털 공간의 존재 방식에 변이를 가져온 것이다. 물론 구글은 여러가지 목적에 의하여 2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여 ICANN으로부터 .app이라는 gTDL를 사들여 앱마켓을 DNS라는 ID체계를 적용하려고 하고 있고, 애플은 앱마켓에 DNS 대신에 Bundle ID라는 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구글은 독자적인 단말디바이스가 없는데도 구글 OS, 구글 Browser, 구글 Cloud Platform으로 강력한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고, 애플은 무엇보다도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 워치, 애플 노트북 등 강력한 성능의 단말디바이스를 토대로 애플 iOS, 애플 사파리, 애플 아이튠즈 등 그리고 독자 설계한 강력한 CPU(AP)으로 난공불락의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이 지점에서 세계적인 제품을 만드는 삼성과 엘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늘 자문에 자문을 거듭하여야 한다. 단말디바이스를 쥐고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강력한 디지털 공간, 디지털 산업의 핵심 경쟁력인데, 이를 살리지 못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만든 재화와 서비스에 핵심적 요소를 외산으로 채운다는 것은 스스로 강력한 경쟁력 요소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3) 트래픽
이제는 트래픽을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단말디바이스, 데이터/콘텐츠 저장소에 이어 3번째의 주제이다. 즉 디지털 공간의 핵심 구성요소에 관한 3번째 설명이다.
트래픽 주제 1 – DNS
기본적으로 인터넷 표준으로서의 TCP/IP는 데이터를 패킷화하여 트래픽으로 전환하는 것으로서 Head에 실린 주소 정보를 따라 하염없이 흐르고 흘러 destination에 도달하게 되어 있다. 물론 단말디바이스를 통하여 떠났다가 단말디바이스로 흘러온다. 그 과정에 트래픽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트래픽 처리에 종사하는 아카마이라거나 클라우드패어라거나 수많은 인터넷기술회사들이 BM을 나름 만들어 서비스를 하고 있고, 또한 패킷데이터의 안정적 전송을 보장하는 security 회사들도 다양한 기술을 동원하여 BM을 만들어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응용기술 회사들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트래픽은 ICANN의 DNS/IP Address 기반에 의하여 이뤄진다. 미국에 있는 Root DNS Server와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13개의 복제 서버를 통하여 DNS query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다. 가장 기초적인 트래픽을 ICANN에 의하여 조절되고 있고 없어서는 안될 가능이다. 이 기능이 없다면 디지털 공간은 와해될 것이다.
다시말하면 1969년 인터넷이 처음 출현했을 때 등장했던 많은 Alternative DNS와 같은 것들이 과열 경쟁하면서 아마도 인터넷 공간 또는 디지털 공간을 개판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블록체인공간이 탈중앙집권화를 내세우더라도 루나/테라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알고리즘에 의한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것은 즉 중앙통제가 전혀 없는 구조에서 어떤 가치를 보장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과 같은 기축통화국이 누리는 엄청난 세뇨리지 효과도 디지털 공간의 구조, 블록체인공간의 구조에 커다란 통찰을 제공하는 살아 있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또 한편으로 아마도 물리 공간에서 UN이라는 참 어설프고 약한 글로벌 정치조직이 없었다면 지구는 아마도 지금 더욱 더 개판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마 지구라는 물리 공간에서 중앙은행이라는 제도는 원래 생소했는데, Economist 창업자이자 편집자이었던 자가 ≪롬바르드 스트리트≫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한국의 체제에서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매우 강력하게 주장하여 영국의 경우 영란은행이 서서히 중앙은행으로 지위를 전환시켜 나가 경제와 금융의 위기시에 조타관리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파산과 와해의 경제금융체제를 유지하는 기능을 제도화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지구 정치는 개판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젊은 시절 경제학자였던 부친의 서가에서 롬바르트 거리라는 영문 원본을 읽었다는데 앞으로의 정책에 잘 반영되기를 바란다.
ICANN은 바로 이러한 UN 또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하는 참으로 어설픈 그러나 없어서는 안될 기능인 것이다. 특히 금융구조는 민간조직의 성격을 강하게 풍기고 있고 정치가 개입되지 않는 운영이 최적의 방법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ICANN도 비슷한 구조로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나도 과거에 ICANN 정례회의를 두어번 정도 참석한 적이 있다.
트래픽 주제 2 – 브라우저, 검색창, SNS입력창 그리고 새로운 방법
(1) 브라우저 전쟁
ICANN의 DNS/IP Address이라는 기술체계를 수용하여 운영되는 것이 바로 Browser이다. 브라우저 창은 바로 기본적으로 DNA/IP Address를 입력하는 창이다. 다른 다양한 기능과 확장 기능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에 즈음하여 블록체인 관련 기능 확장 등에 관하여는 독자들은 각자 알아서 공부하기 바란다.
바로 이 브라우즈 입력창이 디지털 공간의 트래픽을 어마무시한 힘으로 통제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트래픽이 돈이다(Traffic is Money)라고 하는 이야기는 바로 브라우즈 창에서 시작된다.
과거 인터넷 출현 초기에 등장하였다가 초라하게 사라진 Alternative DNS처럼, 브라우즈 전쟁에서도 입력창을 두고 전쟁이 벌어졌었다. 브라우즈 전쟁은 플랫폼 전쟁처럼 다른 브라우즈와의 전쟁도 매우 치열한 전쟁이지만 동일 브라우즈 안에서 입력창의 장악을 두고 벌어지는 전쟁도 엄청나게 치열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영역이었다. 그렇지만 브라우저 입력창은 convert traffic into money를 위한 전쟁이었기 때문에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ㅡㅡ 웹이 등장하고나서는 디지털 공간의 트래픽을 지배하는 도구는 브라우저가 되었다.
ㅡㅡ 브라우즈의 입력창은 당초는 주소(DNS/IP Address) 입력창이었는데, 다양한 확장 기능을 도하면서 엄청난 트래픽을 독점하거나 그 트래픽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거의 대부분 상업적 가치를 낳게 되었다.
ㅡㅡ 브라우즈 입력창을 장악하려는 싸움은 넷피아라는 회사에 의해 변형된 Alternative DNS인 자국어도메인네임체계에 의해 강력하게 전개되었지만, 전쟁도구인 브라우저 자체를 가지지 못한 상황은 절대적으로 싸움을 자기 주도로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 자국어도메인네임 체계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트래픽을 뺏기는 브라우저 소유기업으로부터 쫒겨날 수 밖에 없었다.
ㅡ 이런 전쟁은 누가 트래픽을 지배하는가?라는 쟁투를 말하는 것이다.
(2) 검색창 전쟁
그렇지만 브라우저를 가진 인터넷기업들은 브라우저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기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검색포털, 검색엔진으로 또한 생태계를 강화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는 브라우저에 도전하면서 브라우저가 독점하는 트래픽 지배능력을 나눠갖기 위한 도전을 바로 검색창에서 실현하려는 전쟁이다.
구글 검색과 네이버 검색이 디지털 공간의 트래픽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고, 사실 네이버의 검색 장악력은 구글에 비하여 너무도 약하다는 것도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구글이 브라우저로 벌어들이는 수입과 검색창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각각 얼마일까? 이렇게 단순히 질문을 할 수도 있지만 디지털 공간의 디지털 비즈니스와 디지털 전략은 이렇게 단순무식하게 질문할 수가 없다. 애플은 애플대로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를 견고한 생태계에 통합적으로 묶어 왕국을 구축하는 것처럼, 즉 구글의 디지털 공간을 엮어 나가는 것처럼, 애플도 그런 생태계를 구글보다도 훨씬 강력하게 엮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누누이 말한 CDO(Chief Data/Digital)의 역할dms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바로 CEO보다도 더 강력한 권한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여왕개미에 충성하는 일개미일뿐이고, 제갈량에게 화살을 갖다바치는 어리석은 병졸일 뿐이다. 그 뿐이랴? 디지털 시대의 지속가능한 기업으로서 유지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검색창 전쟁도 아까 말한 넷피아라는 회사를 예를들면 키워드검색이라는 신종 서비스를 출시하였지만 이 또한 검색창이라는 강력한 도구룰 소유한 구글이나 네이버에게 애초부터 싸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들이 그냥 트래픽을 뺏기는 일을 보아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방금까지의 브라우저 전쟁과 검색 전쟁을 살펴보면 파레토 법칙에 대응하여 롱테일 법칙을 들먹인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참 빈약한 주장이 아닌가? 롱테일 법칙(Long-tail Theory)이라는 현상이 관찰되는 현장을 살펴 보면 이미 브라우저와 검색엔진에 장악된 인터넷에서 롱테일 법칙은 막연한 희망을 갖도록 오도하는 질 낮은 법칙이 아니던가?
(3) 새로운 트래픽 전쟁 방법 – SNS입력창과 다른 새로운 방법
다시 살펴보자. 인터넷 공간 즉 디지털 공간은 이제 브라우저와 검색창과 앱마켓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어 있다. 앞으로 이 시장을 흔들 수 있는 묘수는 있는가? 아마 트래픽의 분점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디지털 공간에서 모든 글로벌 상업적 비즈니스(global commercial business)의 전쟁은 궁극적으로 attention 즉 traffic의 지배능력에 달려 있다.
기존의 ‘브라우저’ 시장과 ‘검색창’ 시장을 흔들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은 아마도 가장 강력한 것은 SNS의 기능과 역할의 확장에서 찾을 수 있다. ‘SNS 입력창’이 강력한 검색창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확장이 되고 있고 이것이 편의성과 유용성을 제공하면서 UI/UX를 제대로 만들면 traffic의 상당량을 분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는 최근의 카카오톡의 SNS 입력창에서의 변화를 느끼며 이해하면 감이 올 것이다. 이것은 카카오톡이 그 입력창에서 무슨 실험을 광범위하게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면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정말 강력한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 정말 다음 포털을 제대로 활용하는 강력한 생태계 구축이 다시 설계되어 집행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브라우저 전쟁, 검색창 전쟁 그리고 SNS 입력창 전쟁만이 트래픽을 지배하려는 전쟁이 아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전쟁은 어디에서 왜 가능한가? 그것은 바로 AI에 의하여 주도될 수 있다. AI에 의하여 그려지는 디지털 공간은 기존의 인터넷 규제제도 자체를 통째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가고 있다. 누누이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개인정보보호 정책과 제도의 틀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기존의 브라우즈와 검색창과 SNS입력창의 고객접점을 다른 방법으로 혁신할 수 있다. AI를 기존의 디지털 전략, 디지털 비즈니스의 개념의 맥락을 유지한 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현재의 상태를 극복하면 AI는 디지털 비즈니스의 방법을 뒤흔들 수 있다. 내가 기대하는 바는 여기에 있고, 이는 후발 주자인 글로벌 디지털 비즈니스를 주도하는 방법을 얻는 방법이 된다. 그것은 AI다. 그 단서를 오토메이션과 오토노미에서 얻기를 기대한다. 내가 제시하는 아이디어는 기존의 11편의 글에서도 수많은 힌트로 녹아들어 있다.
그렇다. 디지털 공간은 고객의 접점을 장악하는 아이디어 하나로 그 공간의 모습은 새롭게 설계 가능하다. 나는 그러한 혁신 기업이 기존의 기업이 아니라 새로운 벤처기업에서 탄생되기를 바란다.
삼성은 스마트폰으로 삼성인터넷이라는 브라우저의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통신3사는 그 강력한 인프라를 지배하면서도 디지털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을 성취하지 못하는가? 차라리 기존의 벤처들이 활개치고 글로벌로 날아가게 그들의 모든 자산을 전면적으로 개방하는 전략으로 가져가야 하지 않겠나? 둘 다 안되는 상황을 만드는 통신3사에 언제 혁신의 기회가 찾아올 것인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궁극적인 디지털 공간의 지배력은 traffic의 지배인데, traffic을 고기잡듯 몰아 잡을 수 있는 디지털 공간을 만드는 일은 앞의 11편에 걸친 나의 글에서도 상당히 많은 제안을 하였기에 여기서 재론할 수는 없지만 가장 기본적인 제안은 바로 디지털 공간 설계에 있어서의 Back to the Basic/Fundamental을 지키라는 것이다.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는 디지털 공간을 병존시키라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고객의 데이터를 착취하려고만 말고 고객에게 그 데이터로 무엇을 대신 돌려드릴 수 있을 것인가를 먼저 설계하라고 하였던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제11편의 글에서도 말했듯이 데이터를 담론의 주제로 삼은 것처럼, 오토메이션(automation)의 재료로 사용되고, 오토노미(autonomy)로 재탄생된다. 데이터론 또는 데이터학이 무엇을 말하는지 전문가들은 어찌 떠드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일종의 학문이라면, 그 학문의 내용을 채우는 수많은 인터넷 기술과 데이터 기술도 끊임없이 발전한다. 데이터는 진화하면 오토메이션과 오토노미가 된다는, 데이터의 생산이 오토메이션과 오토노미의 공급에 귀결되는 일련의 과정에는 셀수 없을 정도로 많고, 다채롭고, 다양한 디지털 공간이 개재된다. 그 과정에는 데이터의 이동과 유통이 있다.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데이터의 flow으로서 트래픽이 보다 중요하다. 데이터는 정적인 요소이지만, 트래픽은 동적인 요소이다. 디지털 공간을 살찌우고 살아 있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의 목표는 디지털 산업 경쟁력의 강화이고, 이를 위해 디지털 공간에서의 트래픽론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생각했기에 이번 제12편은 이렇게 정리하며 마친다.
(2022년 8월 11일 수요일)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newdhjj@gmail.com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이번 글 제12편은 8월 9일 화요일 게재하려 했으나 더위와 폭우와 여러가지 일들이 겹쳐 늦어졌습니다.
나의 연재 글은 Google Docs로 작성 중에 있고, 연재글의 각 편의 순서를 표시하기 위해 이라는 삽입기호를 사용하고 있는데, 문서편집기능에서 그 번호가 20번까지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길어봐야 아마 20편으로 마무리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7월 29일에 다음과 같은 기사(“美월풀 제친 LG전자, 가전 세계 1위 지켰다”)가 실렸고, 나는 이 기사에 대해 (“그래서 1등하면? 글로벌 수준의 디지털 전략은 어디? “가전도 센서다”라고 생각하면 달리 보이겠지만..)라고 페이스북에서 기사를 인용하면서 덧붙였다.
이와 같은 맥락의 예시적 글을 나는 지금까지의 10편의 글에서 틈틈이 제시했다. 상기의 예시적 글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나의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의 핵심을 이해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글을 이어가는 이유는 남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긴 시간 동안 글을 아래와 같이 길게 이어왔다. 특히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의 내용은 (1) 데이터론, (2) 디지털 공간 핵심 구성요소, (3) 디지털 공간 인증체계 그리고 (4) 설계 고려 사항(considerations)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번 글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의 다섯번째 글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그러고도 아직도 남길만한 글이 남아 있는가? 스스로 자문한다. 오늘 남길 담론(discourse)의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1. ‘디지털 공간론’과 ‘제4차산업혁명’·‘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여러번 묻고 있지만, 제4차산업혁명은 무엇을 목표로 하는 것인가?
새로운 ‘산업’혁명의 시대이므로 경제주체이고 산업주체인 “기업’은 당연히 제4차산업혁명의 대열에 참여하여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제5편의 글에서는 이렇게 적었다. “제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AI, 플랫폼, 사물인터넷, 3D프린터, 드론, 자율주행차, 비행(자율)자동차, 자동화공장, 기계와 기계의 소통, 가상현실, 탈중앙화와 블록체인, 주문생산, 기계학습, 원격조종, 원격치료, 로봇, 양자컴퓨터, 나노산업, 신재료공학, 스마트시티와 신도시공학, 공유경제 등은 제4차 산업혁명의 다양한 응용과 적용의 모습을 보여준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은 무엇을 말하는가?
ㅡ IDC (International Data Cooperation), “프로세스, 경험 그리고 가치를 변화하는 데에 적용한 기술을 기반으로 고객 및 마켓(외부환경의 변화에 따라 디지털 능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제품 서비스를 만들어 경영에 적용하고 주도하여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
ㅡ Bain & company, “디지털 엔터프라이즈 산업을 디지털 기반으로 재정의하고 게임의 법칙을 근본적으로 뒤집음으로써 변화를 일으키는 것”
ㅡ AT Kearney, “모바일,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디지털 신기술로 촉발 되는 경영 환경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현재 비즈니스의 경쟁력을 획기적 으로 높이거나 새로운 비즈니스를 통한 신규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 활동”
ㅡ PWC, “기업경영에서 디지털 소비자 및 에코시스템이 기대하는 것들을 비즈니스 모델 및 운영에 적용시키는 일련의 과정”
ㅡ Microsoft, “고객을 위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지능형 시스템을 통해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새롭게 구상하고 사람과 데이터 프로세스를 결합하는 새로운 방안을 수용하는 것”
ㅡ IBM, “기업이 디지털과 물리적인 요소들을 통합하여 비즈니스 모델을 변화(transform)시키고 전산업(entire industries)에 새로운 방향(new directions)을 정립하는 것”
ㅡ WEF(World Economic Forum), ”디지털 기술 및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하여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아래와 같이 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ㅡ “기업이 진행하거나 추진하는 혁신과정 중 하나로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인공지능(AI), 블록체인, 가상현실, 빅데이터, 애널리틱스 등 방대한 디지털 기술을 하나로 통합해 전사적인 혁신을 추진하는 것”
ㅡ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소유 중인 하드웨어 사용자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되, 구독 기반 클라우드 서비스에 의존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새롭고 빠르고 자주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
그럼 ‘제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은 어떤 관계로 파악할 수 있을까? 두 개념은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라는 동일한 뿌리를 가지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이끌어내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과거와는 다르다’라는 기준은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 그것은 이 연재글이 던지는 주제어로서의 “디지털 공간”에서 찾아보자는 것이 나의 제언이다. 물론 ‘제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과 ‘디지털 공간’은 3가지 현상이지만 같은 지향의 측면과 차원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감히 정리할 수가 있다.
따라서 전편 10편의 글 전부가 이러한 3위일체로서의 요소 개념들을 풀이하면서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을 풀어나간 것이다.
대부분의 예능적 전문가들처럼 딱 부러진 정의와 개념을 통해 설명하는 흔한 방식을 나는 채택하지 않은 것은 본래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것이고, 그것이 바로 어느 한 순간에 머무르지 않는 디지털 공간의 본연적 속성 때문이다. 일의적으로 설명한다는 모든 것들은 과거 2,000여년 동안의 철학적 설명 구조로서 이는 늘 거대 담론을 지향하고 거시적 관점을 이끌어 내는 일이지만, 이러한 설명 구조는 칸트와 헤겔을 끝으로 이미 거의 불가능해졌고, 현상학과 실존주의의 흐름과 두번에 걸친 세계대전에 대한 반발 속에서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철학 흐름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영미 철학을 특징짓는 분석철학(Analytical Philosophy)은 철저하게 ‘탈’거대담론의 길을 걷는다.
‘디지털 공간론’을 현재 시대적 핵심 개념으로 부각시킨 것은 세상의 모습이 이제는 파르메니데스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헤라클레이토스적인 유연한 인식 체계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작금의 시대에는 이런 생각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오히려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에 기초하는 존재론적 철학적 사변을 펼치는 학자들이 더 신기한 관심을 끌고 있는 요즘이다. 제1편의 글에서 ‘디지털 공간의 인식체계’를 재검토 하자는 나의 주장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다.
따라서 물리 공간론 자체가 거대 담론이므로 “디지털 공간론”도 당연히 그렇게 읽힐 수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일의적인 것으로 디지털 공간론 논변을 펼칠 수가 없다. 전편의 여러 글에서 언급했듯, 너무나 다양하고 다채로운 디지털 공간이 무수히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현재에는 디지털 공간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그런 수많은 디지털 공간을 각양각색으로 산출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평행우주(平行宇宙. Parallel Universe/World)처럼 디지털 평행공간이 물리 공간에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공간론’의 3가지 원리(제3, 4, 6편), ‘디지털 공간론’의 4가지 관점(제5편), ‘디지털 공간론’의 3가지 고려요소(제10편) 그리고 이 글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 요인으로서의 3가지 설명 개념(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디지털 공간)은 전부 거대 담론 방식의 설명을 흉내내는 궁여지책의 용어들이다. 여러번 말했듯, 편의적, 방편적 설명도구라는 뜻이다.
거대 담론(metadiscourse)과 거대 서사(grand narratives)와 거대 철학의 해체는 고유한 철학이 다른 학문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아니 다른 학문들이 철학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이를 철학의 종말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이는 철학의 새로운 전개라고 말하는 게 더 옳을 것이다. 지금의 서양 철학은 근현대를 거치면서 쌓은 과학과 기술의 장쾌한 성과를 소화하여 담지 못하면 철학자로서의 행세를 하기가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도 아주 일부의 선각자적인 철학자를 제외하고는 많은 철학자들이 기원전 출현한 동서양의 철학적 논변을 그대로 읊는 일이 여전하다.
이러한 근대까지 이어 지던 거대 담론의 철학은 근대 자체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다양한 현상을 낳았고, 그 현상이 바로 거대 철학을 해체하는 원인이 되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irony)를 역사에 남긴 것이다. 그런데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로 집약되는 ‘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디지털 공간’ 현상이 또 한번 강한 힘으로 작금의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나는 이러한 개념들을 버무려 철학적 주제보다는 현실 정치경제적 이슈로서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철학적 접근은 오히려 제7편의 글에 인용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이순석 박사에 의해 전개되고 있고, 훨씬 더 깊이 있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거대 철학의 해체 또는 전통 철학의 해체를 여러가지 관점에서 풀이할 수 있지만 내가 다루는 주제와 관련해서는 하이데거가 말한 “기술의 질주” 현상을 작금에 되풀이하는 새로운 차원의 “기술의 질주”현상을 바로 위 문장에서 언급한 현상들을 통해 시대적 전환 현상으로 설명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1889-1876)가 인식론에 치우친 서양의 근대철학을 존재론으로 전회시킨 전환기적 사상가였는데, 그의 기술철학 사상은 여전히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 현상 하에서도 유효한 관점으로 수용될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기술철학서인 ≪기술에 대한 물음(기술에 대한 논구)(Die Frage nach der Technik)≫ (1954)와 ≪기술과 전향(技術─轉向, Die Technik und die Kehre)≫ (1962)는 당시 산업혁명을 온 몸으로 체험한 그가 ‘도구 이상의 그 무엇인 기술’에 관한 본격적인 사유를 펼치면서, 자연 뿐만이 아니라 인간 자체도 도구로 변모시키는 기술의 질주(Gestell) 현상에 대한 비관적 관점을 통해 본래 그대로의 존재에의 응시를 통한 존재 자체의 드러남을 주장하였는 바, 자연과 인간 자체가 데이터화하는 오늘날의 ‘기술 질주’의 제4차산업혁명의 시대에도 울림을 주는 사상이 아닐 수 없다. 대표적인 하이데거 전문연구가인 이기상 박사의 책과 글에 그렇게 소상하게 설명되어 있다.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 주장 자체가 실체가 없다는 뭇사람의 반론 또한 많지만, 그의 논변은 묘한 공명을 만들기도 한다.
2. 디지털 공간 기술의 질주 –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
이런 기술 현상은 스스로 모순과 부조리를 잉태한 것들이라는 관점을 곰곰히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수많은 이슈들의 근원적인 문제점을 새로이 발굴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300조원을 들여 사막 한 가운데에 짓고 있는 미래첨단도시 ‘네옴’(NEOM)은 170km의 거대한 거울식 반사유리 건물을 자랑하는데, 규모만 2만 6,500㎢로 벨기에 국가 전체, 서울과 비교하면 44배에 달하는 크기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석유로 짓는 신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 사상거대누각(沙上巨大樓閣)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디지털 네옴’을 짓는 일을 바로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를 통한 ‘디지털 공간’을 짓는 일에 비유할 수 없을까? 세계화를 추진하는 일을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를 통한 ‘디지털 공간’을 짓는 일에 비유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현상 – 유럽 ‘혹독한 겨울나기’ 대비 땔감 쌓는 獨… 조명 끄는 佛 (2022년 7월 15일 한국경제 기사 제목) -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새로운 세계화(Flat Globe) 현상의 균열과 역설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공급망의 파괴로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경제사회적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다. 이 사태도 이미 전편 제8편의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네옴(NEOM)을 만들듯, 세계화(globalization)를 몰아부치듯, 거대한 초연결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제4차산업혁명의 시대는 바로 그 현상 자체에 거대한 모순과 부조리를 잉태하고 있는 ‘기술의 질주’ 시대를 열어가는 것은 아닐까? 초거대연결은 초거대 AI를 필요불가결하게 만들고, 이는 초거대 파라미터들(parameters)을 생성하여 거대 data를 쌓아야 하는 일을 확장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네옴(NEOM)이든 디지털 공간이든 이 모든 현상이 그 자체에 파괴 인자를 키우는 일은 아닐까? 여기에는 인간의 지혜가 필요하고 그 지혜를 보다 강력하게 뽑아내기 위한 초거대 AI는 불가결하고 무한 확장 중이니 그래서 이는 과거 산업혁명이 남긴 어두운 유산 즉 “문제 해결이 또 다른 문제를 남기는 격”의 답습이 불가피할 것인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이 현상이 역설적으로 거대 담론과 거대 철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고 이는 그리하여 중세 기독교 시대의 일의적 질서에 기반한 안정적(?) 시대 인식을 이제는 되살릴 수 없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한 새로운 “기술의 질주”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3.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4 – 오토노미 담론에로의 전환
나는 이번 글에서 다루는 주제를 바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는 동인인 3위일체적 설명 개념(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디지털 공간)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가를 탐구하면서 제시할 것이다.
⑴ 오토메이션(automation)과 오토노미(autonomy)
디지털 공간이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것은 삶과 세상의 거의 모든 활동과 현상을 ‘자동화’(automation)하고 사람들은 이를 통해 주인으로서의 ‘자율성’을 가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과학기술의 성과를 미리 예견하고 정당화하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의 논거는 국민과 시민에게 삶의 질(quality of life)의 향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즉 이런 목표를 최고의 범주적 표현으로 담아내면 바로 오토메이션(automation)과 오토노미(autonomy)이다. 이 표현은 전체 연재글을 통하여 제5편에서 딱 한번 언급하였다.
이런 주제 개념을 놓고 많은 고민과 사색을 하였고 관련 서적을 찾아 읽었지만, 안타깝게도 거의 ‘오토메이션’(automation)이라는 주제어만 온통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위 ‘자동화 담론’에 관한 것이다. ‘기술의 질주 시대에 인간은 기술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존재의 목소리를 스스로 들어야 한다’라는 균형잡힌 하이데거의 철학적 사유를 ‘자동화 담론’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다만, 대한민국에서는 ‘자동화 담론’에 관한 글 자체를 찾기도 어렵다.
간략하게 훑어보자.
ㅡ 아론 베나나브(Aaron Benanav)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Automation and the Future of Work)≫ (2022년 1월)
ㅡ 베르나르 스티글러(Bernard Stiegler) ≪자동화 사회 1: 알고리즘 인문학과 노동의 미래(La Societe Automatique Vol.1 L’Avenir Du Travail)≫ (2019년 4월)
ㅡ 칼 베네딕트 프레이(Carl Benedikt Frey) ≪테크놀로지의 덫 – 자동화 시대의 자본, 노동, 권력(The Technology Trap)≫ (2019년 9월)
이런 책의 서술체계는 거대 담론을 지향하면서, 세계경제성장율의 유지 가능성, 고용과 노동 구조의 변화 가능성, 더 나은 삶의 성취 가능성, 경제사회구조의 변화 가능성 등의 이슈를 다룬다. 따라서 이들의 ‘자동화 담론’은 독자 스스로 읽어 소화하기 바라고 나는 ‘자동화 담론’을 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그리고 디지털 공간에 관한 현상의 궁극적 목표로서의 주제라고 생각하고 이를 논변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동화 담론’은 스마트 팩토리로 대변되는 제조업 분야에서 특히 부각되고 있고 이는 독일의 인더스트리 4.0(Industry 4.0)이라는 표현으로부터 비롯된다. 또한 이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활발한 현상이지만 이는 이제 모든 산업 분야에서의 핵심적인 전환 이슈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전편의 여러 글에서 이미 언급한 내용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냥 쉽게 이야기하면 ‘디지털 공간’ 없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없이 그 어떤 재화와 서비스를 출시하지 말라는 나의 이야기에 이미 담겨 있다. 게다가 이제는 ‘테슬라와 같은 전기자동차 시장’과 ‘통신 시장’과 ‘해외물류해운 시장’은 이제 동일한 비즈니스 모델로 변화하고 있다는 나의 빈번한 언급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들이다.
그런에 자동화 담론에 내가 느끼는 커다란 흠결은 바로 ‘자동화’(automation)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없이 기존의 산업화를 통한 생산자와 공급자에 관한 혁신 즉 제4차산업혁명에 의한 혁신의 방편으로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오토노미’(autonomy)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⑵ 오토메이션(automation) 담론에서 오토노미(autonomy) 담론으로의 전회
나는 최근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게시했다. “플랫폼 기반 택시 서비스는 수도권에서는 실패다. 이용자 편의 정보 제공을 무시하는 디지털 공간설계에 매달리는 한 기술과 자본의 해악만을 남길 것이다.” 이 게시글은 플랫폼 기반 택시 서비스의 실태를 보면 그 플랫폼은 사실 내가 말하는 ‘오토노미’(autonomy)라는 고객 가치의 제공을 아예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이고, 애초부터 그런 고객 가치를 제공하려는 설계가 통째로 빠져 있는 것이다. 즉 공급자의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오토메이션’(automation)’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서 제4차산업혁명의 기술도구들을 일방적으로 공급자의 편의 위주로만 만들었다는 비판이다. 그럼 독자들은 나의 ‘자동화 담론’을 비판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별론의 이야기이지만, ‘오토노미’(autonomy) 담론에는 ‘개인정보보호’(personal information protection, privacy protection)의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함의가 숨겨져 있다. “강력한 개인정보의 보호 가치”와 “강력한 개인맞춤형 서비스의 가치” 상호간의 충돌을 타개하고, 그리고 PID와 DID의 구조체계를 정립 가능케 하며, 디지털 시대의 기본소득 논의를 새롭게 다듬는 핵심적인 논거가 숨어있다. 디지털 공간의 설계 기초의 핵심적인 내용이 될 것이지만 물론 이는 후속 편의 글에서 언급할 수 밖에 없다.
아무튼 거의 압도적으로 일방적인 ‘자동화(automation) 담론’에 상응하는 고객과 소비자와 데이터를 생산하는 궁극적인 개체인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주도성/주체성/자율성(autonomy) 담론’이 거의 망각되고 있다는 점을 나는 매우 강하게 비판하고자 한다.
고객인 소비자, 이용자, 가입자에게는 어떤 가치를 ‘자동화’를 통해 제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논의가 없다는 점이다. 철저한 공급자 중심의 ‘자동화 담론’이 과연 얼마나 세계적인 디지털 흐름의 정곡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아직까지는 아주 불완전한 ‘자동화 담론’에 머물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고 균형잡힌 디지털 공간론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작금의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주도하는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로 집약되는 ‘제4차산업혁명,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디지털 공간’은 여전히 공급자 및 생산자 중심 즉 경제주체로서는 정부와 기업 중심의 논의에 극히 치중되어 있다. 즉 ‘자동화 담론’ 위주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자동화 담론’을 굳이 거론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창하는 ‘디지털 공간론’ 만큼은 국민·소비자·고객·개인·사용자·이용자라는 다양한 명칭을 가진 경제주체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는 ‘오토노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⑶ 오토노미(autonomy) 담론의 함축(implications)과 개요
자, 그러면 ‘오토노미(autonomy) 담론’은 어떻게 시작하여야 할까? 과연 오토노미(autonomy) 담론은 얼마나 강력한 주제일까? 나는 감히 말하지만 지금까지 10여년을 글로벌 경제의 주도권을 휩쓴 지금까지의 공급자와 생산자 중심의 디지털 공간인 플랫폼 경제구조를 전복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는 오토노미(autonomy) 담론에 내재되어 있다고 감히 말한다.
이러한 논의에 앞서 나는 오토노미(autonomy) 담론의 주제를 명쾌히 정리하기 위한 기본 고려사항을 탐색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이제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선언하고자 한다.
① “정부와 기업은 오토메이션(automation)으로 무장하고, 국민·소비자·고객·개인·사용자·이용자에게는 오토노미(autonomy)를 제공하여야 한다.”
그러면 도대체 ‘오토노미’(autonomy)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옥스포드 사전에 따르면 ‘오토노미’(autonomy)의 유사어는 다음과 같다.
ㅡ self-government, independence, self-rule, home rule,
내가 제안하는 ‘오토노미’(autonomy)의 속성 개념을 예시하지만, 수많은 디지털 공간에 따라 전술한 오토노미의 유사어의 의미를 수용할 수도 있고, 또한 바로 위 언급한 속성의 일부 또는 추가적인 속성을 더하여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일은 당연하다.
②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는 디지털 공간이 제공되어야 하고, 동시에 그 디지털 공간은 오토노미(autonomy)를 구현하여 고객에게 제공하여야 한다.”
이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 고객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도성/주체성/자율성(autonomy) 담론’이 활성화되어야 생산자와 공급자가 디지털 공간을 통하여 고객에게 제공하여야 할 다양한 가치를 구현하는 작업이 보다 더 정밀하게 진행될 수 있다. 흔한 말로는 고객 만족(customer satisfaction)이라고 하지만 이런 구닥다리 개념과 접근 방법으로는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 이는 공급자와 생산자의 CEO 등 책임자의 리더십(leadership)에 강력한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가 요구된다는 이야기와 맥락이 같다. 사실 작금의 대한민국의 CEO 중에 그들의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오토노미’(autonomy)를 논할만한 디지털 지식과 디지털 경험을 가진 자는 얼마되지 않을 것이다. 장담한다.
그렇다. ‘오토노미’(autonomy)에 가장 중요한 개념은 여러번 언급했는데 바로 경험(experience)이다. 나는 제5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최근에서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수장이 ‘고객 경험’을 회사의 최우선 과제라고 기사를 뿌렸다. 물론 디지털 고객 경험이다.
ㅡ 삼성전자, ‘고객경험’에 미래 걸었다… ‘뉴삼성’ 밑그림 완성 (21.12.12)
ㅡ 조주완 사장 한 마디에 … LG전자 ‘고객경험 실험’ (21.12.23)
적어도 아직도 대한민국에서는 ‘IDC’(Internet Data Center)의 우아한 표현으로 남용되는 ‘클라우드’(Cloud)라는 개념이 (10여년 전에 – 표현 추가) 등장할 때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의 키워드인 ‘디지털 고객 경험’은 이미 중요 요소로서 사업 전략에 포함되었어야 했다. 언제나 이를 가로막는 것은 전시적, 예능적 사업기획 문화가 아닌가? 결국 이것도 디지털 공간 설계 능력 부족이라고 할 수 밖에.. 다른 말로는 철학의 부재라고 할 수 밖에..”
③ “생산자와 공급자는 디지털 공간을 통하여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고객 경험과 고객 반응을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파악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끊임없이 줄 수 있도록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여야 한다.”
이러한 선언을 구현하려는 생산자와 공급자가 구축하여야 하는 디지털 공간은 일응 일반적으로 CEMP(Customer/Subscriber Experience Management Platform)라고 부른다. 이것도 일종의 디지털 공간이다. 이는 당연히 다른 디지털 공간의 일부일 수도 있고, 독립적인 디지털 공간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CEMP를 제대로 구축하여 운용 중이라는 기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데이터에 대한 우선 순위 감각도 없고, 디지털 방식에 의한 즉 자연스러운 방법에 의한 고객 반응의 수집 체계도 없고, 그 반응에 대한 피드백이라는 반응성 또는 책임성에 대한 고려도 별로 없다. 한마디로 CEMP라는 디지털 공간에 대한 심각한 고려가 없다. 그러고도 디지털 산업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소위 ‘데이터론’ 또는 ‘데이터 과학’ 또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는 바로 이런 CEMP에 집중되어야 한다.
수많은 데이터 기반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산자와 공급자는 ‘개인맞춤형서비스’를 최고의 품질로 제공한다고 자랑하고 광고하며 떠들지만 바로 이것이 클라우드 기반 위에 AI를 통하여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으로서 이는 과정산업(過程産業)의 핵심적 특징이다. 즉, 고객에게는 매일매일 다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고, 동일하게 계약된 재화와 서비스이지만 매일매일이 서로 다른 재화와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고객맞춤형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아주 세밀한 파라미터들을 통해 얻어진 개인정보를 고객은 어떻게 가공되어 전달받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설정(settings) 기능의 정밀한 설계에 의해 가능하게 되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제4차산업혁명이 낳은 재화와 서비스의 정의가 될 것이며, 이는 바로 디지털 공간에 의해 제공 가능하다는 것을 어찌 알지 못할까?
④ 이제는 재화와 서비스는 궁극적으로는 또는 결과적으로는 소위 생산자와 공급자가 만드는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고객’ 스스로가 만드는 시대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객 설정 기반 서비스가 가능한 디지털 공간 설계가 재화와 서비스의 경쟁력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산업의 생산물인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제4차산업혁명 이전과 이후에 내리는 정의는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다만 이 선언의 기본 전제는 생산자와 공급자가 생산과 공급을 위하여 도입하는 AI에 설정하는 기천억개 또는 기조개의 파라미터들(parameters)의 일부라도 고객의 손에 쥐어줄 수가 있느냐라는 것이다.
기존의 재화와 서비스의 정의는 ‘정보화·디지털화·지능화·초연결화’라는 새로운 요인에 의하여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 정도는 고객에게 쥐어주는 파라미터들(parameters)의 숫자에 의존하는 것이다. 나는 제10편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귀사의 초거대 AI 프로젝트 설계에서 고려하는 2,000억개의 파라미터 중에 인간 자체에 관한 것은 몇개인가요?’ …. 그런데 이에 관한 질문은 파라미터 기준 인간과 비인간의 비중이 얼마나 다른가였는데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천만의 말씀.”
바로 이런 질문에서 알 수 있는 인간에 관한 데이터 즉 고객에 직접 관련 있는 데이터의 파라미터들(parameters)이 바로 고객이 스스로 만드는 ‘재화’와 ‘서비스’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정보를 포함하여 각각의 디지털 공간에 가장 적합한 오토노미(autonomy)의 구체적 항목들을 정밀하게 설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와 변이는 기존의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불가피하고, 규제법령의 개편이 불가피해지는 시대로 돌입하게 하고 있다. 이런 변이와 변화의 양상을 확장하면 바로 ≪유동적 근대성(liquid modernity, 流動的 近代性)≫이라는 책에서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년 – 2017년)이 주장하는 액체적 근대성을 설명하는 설득력 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이것이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관점을 결여한 상태가 바로 디지털 일리터러시(digital illiteracy)의 상태이고 이런 사람을 디지털 일리터러티(digital illiterate)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4. 디지털 공간론이 플랫폼 경제에 던지는 전복적 함의
지금까지의 플랫폼 경제(platform economy)는 오토메이션(automation) 담론의 성공적 수단이었고, 앞으로의 지능화와 초연결화를 통한 디지털 공간 경제는 과학기술 진보의 여정이지만, 한편으로는 하이데거적 ‘기술의 질주’로도 읽혀진다. 초연결사회가 주는 ‘희망’의 크기만큼 ‘불안’의 크기도 증대된다. 그 불안은 디지털 공간을 구성하는 네트워크가 원래 생성 당시의 설계에 따른 best effort의 packet 네트워크에 가혹한 설계 변경을 가하여 QoE(quality of experience) 또는 QoS(quality of service)를 보장하는 네트워크로의 변환을 기도하는 것 자체가 ‘기술의 질주’이고 오토메이션(automation)의 불안한 미래를 한 구석에 던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굳이 예를들자면 전기자동차의 ‘원격’ 자율주행을 기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라는 점이다. 거의 무한 변수의 발생이 예상되는 차도에서의 주행 판단은 현장의 전기자동차에 설치된 자율주행시스템의 ‘자체’ 판단에 의거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어야 하는데, ‘원격’ ‘실시간’ 정보처리 과정을 통하여 시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무모한 일은 아닐까? 이런 기술적 추구는 ‘유동적 근대’ 이상으로 ‘유동적 현대’를 만들어나가는 현상의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물론 특정 단일의 네트워크를 통한 통합 자율주행을 원격으로 처리하는 특수한 경우까지 배제하자는 뜻은 아니다. 초연결사회의 미래를 너무 과장하여 그려나가는 일은 무모하지만, 다양하고 다채로운 디지털 공간을 만들어가면 그 중에 QoE 또는 QoS를 보장하는 디지털 공간은 얼마든지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새로운 플랫폼은 오토노미(autonomy) 담론에 기초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로서의 ‘디지털 공간’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이는 기존의 플랫폼 경제구조를 전복(顚覆)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디지털 공간론’은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 이슈를 넘어 데이터중립성(data neutrality) 이슈를 관통하며, 또한 ‘개인정보보호’ 이슈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하여 개인맞춤형서비스와의 서로 가치 충돌하는 문제를 극복하는 아이디어도 얻게 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디지털 시대의 기본소득론 아이디어도 마찬가지이다. 덧붙인다면 전통적인 산업화에서 야기한 후유증인 소외(疏外. alienation)는 이제는 디지털 공간에서 오토노미(autonomy)의 부여를 통해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주제까지 다 담아내는 나의 주장을 바로 ‘오토노미(autonomy) 담론’과 ‘디지털 공간론’으로 펼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8월 2일 화요일)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newdhjj@gmail.com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주유(吳)로부터 요청받은 제갈량(蜀)의 말이었다. 어떻게 했을까? 제갈량은 짚단을 쌓은 배 스무 척에 병사 5명씩만 태워 밤이 어둑해질 무렵 위나라의 본진에 배를 대고 꽹과리와 북을 울렸고, 기습이라 생각한 위나라 병사들은 그 배들을 향해 수많은 화살을 날렸다. 그는 이틀을 쉬고 사흘째 단 하루만에 10만 개의 화살을 구해 왔다.
디지털 공간의 궁극적 존재 의의는 ‘화살’에 있다는 말은 여러번 했다. ‘화살’도 없이 어찌 디지털 전쟁, 디지털 경제전쟁을 치를 수 있을 것인가? 하나의 역사적 일화는 구구한 설명보다 낫다. 그러나 이런 일화처럼 디지털 공간론은 물리 공간만큼은 복잡하지는 않지만 단순하지 않다. 어떤 화살을 어떤 지역에서 어떤 방법으로 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차원에서의 숙제는 참으로 어렵다.
1. 은밀하게 침식되는 한국의 디지털 산업 패권
유쾌하지 않은 제목의 표현은 IMF가 최근 발간한 ≪달러 패권의 은밀한 침식≫ (The Stealth Erosion of Dollar Dominance: Active Diversifiers and the Rise of Nontraditional Reserve Currencies)이라는 보고서의 제목을 따왔다.
오늘날의 적은 영토침략 위협, 민주체제 위협, 식량 및 에너지 위협을 일삼는 국가만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코로나 바이러스 등의 팬데믹과 같은 인자들까지 새로운 적으로 등장하였다.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전쟁 양상 속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전쟁은 소위 “데이터 전쟁”, “플랫폼전쟁” 또는 “제4차산업혁명 전쟁”으로 불리는 디지털 경제전쟁이다. 소위 거론되는 미국 주도의 반도체(Chip 4) 동맹도 제4차산업혁명 전쟁이 아니던가.
역사적인 과거의 물량 동원 영토전쟁과는 다른 디지털 경제전쟁의 시대에 총성없는 현대의 전쟁 수행능력은 제4차 산업혁명의 성과에 의해 담보된다. 디지털 경제전쟁 전략은 전통적인 물리적인 해외 진출이 아니라, 한국 땅을 벗어나지 않더라도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지배하는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에 의해 완성된다.
지난 5년 동안 치열한 신혁명 시기에 우리는 ⓵ 시장지배적 점유율을 가진 LG TV에는 아마존의 AI인 ‘알렉사’가 탑재되고, ⓶ LG 가전 8종은 이미 AI 스피커 ‘구글 홈’과 연동을 마쳤으며, ⓷ SKT의 AI 스피커인 누구(NUGU)와 KT의 기가지니에는 LG TV가 그랬던 것처럼 아마존의 ‘알렉사’가 탑재되며, 심지어 ⓸ 삼성의 갤럭시 워치에는 빅스비가 아닌 구글 ‘어시스턴트’가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⓹ 삼성의 엑시노스를 포함한 한국의 시스템반도체 시장점유율도 처참하다는 소식이다. ⓺ 글로벌 플랫폼 하나 변변한 게 없다는 이야기는 덤일뿐인가? 대한민국의 ‘화살’을 그저 나눠주고 있는 아주 헤픈 나라인가? 이런 사례 자체에만 매달리면 또한 이는 견지망월(見指忘月)의 어리석은 일이 아니던가?
더 큰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때의 기술강국이었던 일본의 디지털 경쟁력이 추락하는 디지털 대참사의 전철을 우리나라는 밟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는가? 스마트폰, 디지털 TV, 통신 인프라 강국이라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에서 마이 데이터 사업, 데이터 댐 사업 등 ‘데이터’ 중심의 디지털 정책은 제대로 설계되고 만들어진 것인가? 적벽대전(赤壁大戰)의 일화에서 화살을 아무 생각없이 보태준 것처럼, 기껏 여왕벌에 충성하는 개미처럼, 곁가지에 치중하느라 정작 줄기에는 소홀하지 않았던가? 제4차산업혁명위원회는 그동안 과연 시장에 선도적인 메세지를 남겼던가? 자신의 예능적 권위를 챙기느라 공익에 소홀하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에 인터넷의 지배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가장 먼저 출현했다는 빈번한 자랑은 자랑이 아니다. 결과는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흉내만 내고 얼기설기 대충 만들고 그리고 실패하고 다른 나라에서 그것을 글로벌 서비스로 성공하면 나의 것을 베꼈다고 푸념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지만 그냥 그것은 전부 최소 2%가 부족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다. 총론에는 강하지만 본론과 결론에는 약한 전형적인 실패 패턴이고, 사전 설계와 준비가 약하고 무턱대고 빨리빨리 하라는 문화의 결과는 아니었던가.
왜 거의 모든 건축물과 구조물에 여름철 필수품인 에어콘의 설치 공간을 사전에 설계하여 반영하지 않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 상업용 건물 마다 방문객 관리용 구조물이나 주차관리를 위한 구조물을 가건물 형태로 짓는데 애초에 설계도에는 왜 반영하지 않고 덕지덕지 만들어 건물에 붙여놓는지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나서도 재해예방관리는 부실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철근을 빼먹고 마무리를 대충하고 그리하여 날림공사를 밥먹듯하는여 건축물의 수명을 고의로 단축시키는 그런 과거 건설문화의 유산을 보면, 이런 방식과 태도와 의식으로는 디지털 산업과 디지털 문화에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리 산업과 디지털 산업은 무엇보다도 언어가 다르고 운영 원리가 다르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엉성한 작업으로는 아무런 연결체제와 작동체제가 구현되지 않는다. 엉성하고 수준 낮은 SW 작업은 나중에 확장에 걸림돌이 되어 패치로 수정하는 것보다 다시 프로그래밍하는 것이 나은 것이 대다수의 프로젝트의 현실이다.
우리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여 전세계에 디지털 기기를 무수하게 팔고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5G망의 세계선도적 구축에 발빠르게 움직이는데, 이를 통해 데이터를 가져가는 여왕벌에 의해 그 데이터는 우리를 공격하는 화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그 공격을 받고 있다. 국내 5G 운영플랫폼을 포함하여 각종 플랫폼의 외국산 지배와 인앱결제의 종속적 시장 구조는 아주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마지막 플랫폼이 될 수도 있는 메타버스의 각광에 기회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말에는 희망보다는 심각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디지털신뢰공간의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어찌 모르는가?
2.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 4 ㅡ 7가지의 고려사항(considerations)
데이터, AI, 메타버스…. 생소하지만 생활 속 깊이 들어온 이 모든 것들의 대한민국의 위상은 위기라고 진단된다. 원인은 무엇일까? 이런 위기의 진단은 디지털 공간 설계의 기초에 반영되어야 하는 것들인가?
전술한 연재글에서 ‘디지털 공간의 3가지 원리’를 제시할 때 나는 물리 공간의 공간 구성 요소 개념인 ‘영토’, ‘국민’, ‘주권’이라는 3가지 개념을 비유하며 ‘다른 공간’, ‘다른 디지털 공간물’, ‘다른 주권’에 대하여 소극적 그리고 적극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디지털 공간의 설계 기초 1, 2, 3’의 3편의 글들에 더하여 이번의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4’의 글은 물리 공간의 대표적 형식인 국가 그리고 국가 형성(nation building)의 기초 요소에 비유하여, 추가로 더할 고려사항(considerations)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법령 인프라’, ‘도량형 통일이라는 경제사회기준 인프라’와 ‘도로의 건설이라는 경제사회활동 인프라’에 비유되는 것들이다. 디지털 공간 관련 표준과 기준들은 법령 인프라와 경제사회기준 인프라로 비유되고, 이미 전편의 여러 글에서도 자주 언급하였다. 경제사회활동 인프라는 기본적으로 PKI 공간 구축과 디지털 인증체계라는 개념으로 자주 설명하였다.
(1) 과정산업(過程産業)의 성공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데이터 생태계 구축을 디지털 공간 설계에 반드시 담아야 하는데 아직도 그런 설계의 지침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생태계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하드웨어로 데이터를 생산해 낸들 외국 메이저들이 만들어 놓은 글로벌 인증시스템, 메타버스 운영체제, 블록체인 운영체제에 모두 빼앗길 것이 분명하다. 제4차 산업혁명위원회는 이러한 디지털 철학, 데이터 생태계, 디지털 산업 전략 없이 그저 아날로그적인 의식과 태도로 본질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야말로 대참사이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Presidential Committee of Digital Platform Government)도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위원회 멤버에는 예능인은 포함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저 외국의 동향 정보나 요약해서 내것 마냥 떠드는 사람들은 배제하여야 할 것인데 과연 그럴까?
글로벌 데이터 생태계를 만들지 못하는 디지털 산업은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생태계는 플랫폼으로 구현되며, 성공한 플랫폼은 곧 글로벌 디지털 실크로드가 된다. 과거 공업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신 글로벌 전략이 바로 이것이다.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과정이지 결과물이 아니다. 디지털 산업 역시 마찬가지고 과정산업이다.
디지털 산업은 최종결과물을 판매해 지배하는 시장이 아니다. 과정을 지배하는 산업이다. 이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
과정산업(過程産業)이라는 생경한 용어를 사용했지만 보다 이것은 그 매개체가 데이터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소위 경제활동에서의 ① 공급자 지위에 있는 기업과 ② 소비자의 지위에 있는 개인의 경우 모두 데이터를 매개로, 클라우드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재화와 서비스가 매일매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믈론 핵심적인 기술은 AI이다.
즉, 공급자도 매일매일 다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소비자인 다른 사람과 동일한 재화와 서비스의 구매 또는 사용 계약을 맺게 되지만,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설정에 의하여 동일 재화와 서비스라고 것이 계속 업데이터가 되면서 사용자간에는 그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개인 맞춤형 업데이트가 끊임없이 진행되는 과정의 시간이 연결된(connected) 재화와 서비스의 핵심 내용이 시대이다.
나의 이런 주장을 따른다면 소위 디지털 공간 설계자들은 그 디자인에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가? 이 논의 결과 역시 디지털 공간 설계 기초라는 주제에 핵심적인 것이다. 자문해보라. 그리고 특히 제9편의 글도 꼼꼼히 읽어봐야 한다. 이것도 또 중언부언할 수는 없지 않은가?
(2) 디지털 생태계를 설계하는 기본적인 준비도 부실하고 한국이라는 지역적 설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로봇을 만들고, 전기자동차를 만들고, 플랫폼을 만들고. 메타버스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공급하고 있다. 이를 일러 부실 공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디지털 공간은 없거나 있어도 흉내만 내거나 아예 인터넷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 재화와 서비스의 본질적인 디지털 공간, 디지털 세계를 창출하는 전략이 왜 필요한지 아니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CEO들은 알지 못하고 있고, 깊이 고민하지도 않는다.
구글, 애플, 아마존 등 글로벌 경쟁자들은 과정산업(過程産業)이면서 기하급수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글로벌 경쟁자들의 서비스와 솔루션에 모르는 사이에 종속되어 왔다. 경쟁자들은 이미 데이터 클라우드라는 짚더미가 무성한 배를 우리 앞바다에 대놓고 우리의 누군가가 몇 달간 몇 년간 밤새 만들었을 그 화살을 아주 쉽게 거둬들여 전투에 활용하고 있다. 그 화살이 나중에는 되려 우리를 공격하는 무기로 쓰이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대한민국에서의 모든 분야에서의 모든 조직들의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자들의 리더십은 불완전한 리더십이다. 국가와 조직의 경쟁력에 치명적인 상황을 우리는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한마디로 디지털 문맹(文盲)이고 디지털 일리터러티(digital illiterate)이다. 디지털 공간 설계가 부실한 것은 이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디지털 산업 경쟁력과 국가경쟁력 약화의 책임도 또한 이들이다. 지금까지 정보보안(information security)의 이슈도 끊임없이 시끄럽긴 마찬가지였지만 그에 대한 처방은 늘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디지털 산업으로서의 성장은 거의 불가능했고 여기서 문제를 제기하는 맥락에 동일하게 놓여 있다.
CSO(chief security officer)가 목소리를 높이는 기업문화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자신있게 목소리를 높이는 CSO도 없었다. 엉성하게 알고 있으니 주장을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조용히 하라고 하는 문화다. 이제는 더 나아가 CSO가 CDO(chief digital/data officer)가 되어야 하고, 정보보안을 포함한 디지털 신뢰공간을 책임지는 독립적인 조직을 두어야만 하는 시대이지만, 그런 구조를 가진 기관과 기업은 거의 없다.
디지털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획득하거나 얻는 것이 정말 어렵고 그래서 좌절하게 만드는 것이 또한 바로 이 지점에서다. ‘정보보안’은 부정적 어감의 개념이지만, 디지털 ‘신뢰’공간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개념이다. 게다가 부서를 가지는 것을 넘어 독립된 조직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디지털 논리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디지털 공간규범을 회피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은 늘 비일비재하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에서는 비용이어야 할 것이 비용이 아니고, 비용이 아니어야 하는 것이 비용으로 취급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나라인가? 이런 불합리와 부조리가 많아지면 사업을 일으키고 키운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사업 환경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국가경쟁력의 소리없는 침식이 발생한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3) 실물 세계의 생태계와 무엇이 정말 다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과 설계의 부재가 한국의 ICT 산업, 디지털 산업을 종속적으로 만들고 고도의 부가가치 실현에 실패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대참사. 과연 지나친 말인가? 삼성과 LG의 모든 전자 기기를 전 세계에 보급해도 이를 지배하는 힘은 우리가 아니다. 언제까지 플랫폼 부재를 탓할 것인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창조적 파괴”의 부재라고 할 것인가? “파괴적 혁신”의 결여라고 할 것인가? “개방적 역동성”의 결핍이라고 할 것인가?
사회문화의 개방적 역동성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그것은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국가, 더 나은 세계에 눈을 뜨는 것이지 않은가? 이를 위해 우리는 소통을 시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위기의 의식의 확장을 시도한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어디까지 확장되는가?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언어 ‘한글’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영토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 자신이 자기에게 무지하며 나는 내가 아니고 나는 타인에 의해 지배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주체성의 결여라고 한다. 우리가 디지털 언어에 무지하면 어찌되는가? 과거의 인류의 언어는 오랜 시간을 두고 사람들의 활동과 상호작용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생성되고 사용되면서 하나의 약속으로 자리잡았다. 디지털 언어는 인공 언어이기 때문에 새로이 창안되는 때부터 체계적인 약속에 의해 만들어진다. 물리 공간과 디지털 공간의 속성 차이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디지털 일리터러시(digital illiteracy)는 앞으로 심각한 경제사회의 문제를 낳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대한민국의 정책과 행정정보의 전달에도 심각한 난관을 일으키고 그 비용을 훨씬 더 증가시킬 것이다. 디지털 공간의 변칙적 설계와 공급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Back to the Basic/Fundamental을 주장하는 것은 디지털 공간의 환경의 정상화와 균형화를 도모하는 일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디지털 공간 설계와 유지 비용의 합리화를 도모하는 지름길이다.
(4) 이제는 디지털 기술 인력이 없으면 어떤 분야에서도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활동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덧붙여 상술하지 않겠지만 전쟁의 설계와 수행의 핵심 역량도 이제는 넓은 의미에서 디지털 기술에 달려 있다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정보기술(IT) 인력 부족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짚어볼 문제다. 올해 소프트웨어 분야 인력은 수요 대비 2만 명 이상 모자랄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들이 ‘즉시 전력’으로 평가하는 이공계 졸업생이 연간 5만 명이라면 수요는 7만 명 이상이라는 얘기다. 주로 반도체 쪽에서 심각하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자동차 기계 철강 화학처럼 디지털 전환과 산업 융복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에서도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대한민국 산업의 흥망성쇠는 학교와 기업들이 이런 고급 인력을 얼마나 잘 길러 내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기업과 산업을 통해 세상을 보지만, 그런 하드웨어를 실질적으로 움직여나가는 것은 언제나 인재와 기술이라는 소프트웨어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코로나 종착역에서 산업 고도화와 디지털 전환이라는 두 개의 새로운 임무를 받아들었다. 완수하면 흥할 것이요, 실패하면 망할 것이다. 교육과 노동개혁은 필수다. 성공하면 살 것이요, 물러서면 쇠락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최근 7월 20일 한국경제신문에 게재된 조일훈 논설실장의 글이다. 디지털 기술 인력이 하는 일은 우선적으로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 투입되지만 그들은 반드시 재화와 서비스에 동반하는 ‘디지털 공간’을 생산해야 한다. 누누이 이야기한 것이다. 메타버스만이 디지털 공간이라고 인식하는 어리석음에는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경제적 활동의 전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은 이제 디폴트 요소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경제를 설명하려면 그 용어로서도 ‘트랜스휴먼’처럼 ‘트랜스경제’라고 해야할 판이다.
(5) 개발자 공간을 만들어 제공할 수 없는 재화와 서비스는 경쟁력이 없다. 생태계 확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플랫폼의 형태이든 다른 디지털 공간이든 모든 공간 요소를 공급자가 전부 구비하여 제공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리더도 디지털 공간의 구성 요소에 대해 좀 깊이 있게 천착하여야 한다.
판을 잘 깔면 춤추는 사람들은 어디에서건 나타난다. 애플과 구글과 아마존의 세계개발자회의는 개발자 공간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다. 삼성도 개발자 컨퍼런스가 있다. 개발자모임과 개발자를 위한 디지털 공간은 본래의 재화와 서비스의 확장에 도전하는 개발자들의 흥미로운 활동 공간이다. 하나의 글로벌 기업이 공급하는 재화와 서비스는 다양하고 다수일지라도 전부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연계를 통한 연결 생태계를 만들어내야 하고 이는 디지털 공간에서 체계적으로 엮어진다.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회사가 운영하는 개발자를 위한 디지털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거나, 있어도 개발자들이 들끓지 않는다면 그 회사는 한마디로 그 재화와 서비스가 아무 매력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개발자 공간은 무한 확장이 가능한 협력 공간이다. 즐거운 협력 공간이다. 흥미로운 협력 공간이다. 디지털 경제, 디지털 산업에서 모든 것을 내가 공급하겠다는 자세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또한 디지털 산업의 흥미로운 본질적 특징이 아니겠는가?
(6)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 동반하는 디지털 공간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디지털 공간의 기초 공사에 필요한 것들과 채워야 할 것들은 이미 앞의 여러 편의 글에서 언급했다. 여기서는 추가적으로 염두에 둬야 할 것을 살펴볼 것이다.
AI는 사람을 닮아가는 중이다. 원래 그것이 목표였다. 2,000억여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거대 AI’를 넘어 1조개를 넘는 파라미터를 가진 ‘초거대 AI’가 등장하고 있다.
초거대 AI는 마치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학습하며 판단하고 행동한다. 초거대 AI의 최초 모델은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세운 ‘오픈AI’에서 2020년 처음 선보인 ‘GPT-3’다. GPT-3가 나온 이후 기업들의 초거대AI 개발 경쟁에 불이 붙었다. 구글은 1조 600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스위치 트랜스포머’(Switch Transformer), 중국 베이징 지위안 인공지능연구원은 1조 750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우다오(WuDao) 2.0’, MS와 엔비디아는 5300억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메가트론’, 알파고를 개발했던 딥마인드는 2800억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고퍼’를 선보였다.
대한민국에서는 네이버, 카카오, LG도 초거대 AI를 선보이고 있다. 2021년 5월 네이버는 2040억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하이퍼클로바’를 공개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카카오가 ‘코지피티’(KoGPT)를, LG AI연구원은 12월 국내 최대 규모인 300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엑사원’(EXAONE)을 공개했다.
여기서 말하는 ‘파라미터’란 매개변수라는 뜻이다. 인공지능이 고려하는 경우의 수를 말하는데, 매개변수가 클수록 더 정교한 대답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흔한 언론보도의 내용이다. 이런 기사를 보면서 나는 정말 제대로 된 AI 설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 또한 겉만 번지르르 한 상태가 아닌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초거대 AI 프로젝트의 기술적 맥락과 시스템 반도체 프로젝트의 기술적 맥락은 사실 동일하다. 과연 초거대 AI의 경쟁력이 얼마나 될 것인가? 시스템적 사고가 정말 지나치게도 부족한 상태에서 제대로 된 재화와 서비스가 이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초거대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어떤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다. “귀사의 초거대 AI 프로젝트 설계에서 고려하는 2,000억개의 파라미터 중에 인간 자체에 관한 것은 몇개인가요?” AI는 파라미터별로 미리 설정을 하여야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수집된 데이터에서 추출하여 판단에 사용하게 된다. 미리 설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과 다른 AI의 기본 특징이다. 그런데 이에 관한 질문은 파라미터 기준 인간과 비인간의 비중이 얼마나 다른가였는데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천만의 말씀.
여전히 인간은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AI를 바라보는데 그것은 정말 오류가 넘치는 설계가 될 것이다. 인간은 자연이면서도 자연이 아니다. 인간의 지구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 중에서도 자연 아닌 자연이다. 예를들어 우리가 기후변화의 양상을 AI를 통해 판단하는데 어떤 파라미터를 통해 얻어진 데이터로 분석하고 답을 내놓을 것인가? 인간에 직접 관련된 요소가 기후변화 양상의 판단에 얼마나 투입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거의 대부분의 파라미터가 인간 요인보다는 자연 그 자체에 내재된 수많은 요인에 의거하여 그에 따라 얻어진 데이터에 의존하여야 하는가?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이 초거대 AI에 녹아들어야 보다 나은 AI 설계가 가능하다. AI의 윤리 이슈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보다 나은 판단 능력을 가지는 AI의 설계에는 인간적 요소와 비인간적 요소에 관한 다양한 관점이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의 데이터 구조와 AI의 분석과 판단 구조에 관한 이슈이다. 이런 것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메머리 반도체를 뛰어나게 만들지만 시스템 반도체는 형편없는 현재의 반도체 경쟁력의 실상을 그대로 AI에도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모든 재화와 서비스는 단말디바이스와 같은 지위이고 그 단말디바이스가 장착한 센서는 데이터 수집의 도구이다. 테슬라의 전기자동차는 자동차 주행에만 필요한 데이터만 수집하는가? 국제물류선박은 선반항행에만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는가? 가정에 있는 TV는 어떤 정보를 수집하는가? 모든 IOT 장비는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는가? 누누이 말하지만 모든 연결 공간에서 단말디바이스의 역할은 센서라고 보고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고 구축하라는 말은 아주 여러번 했다.
그러니 디지털 공간을 설계하는 개발자들이 이런 나의 주장을 반영하려고 할 유인은 별로 없다. 그런 고려를 누가 챙겨보라고 지시하는 사람도 없고 스스로도 챙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는 적어도 CEO 또는 CDO 정도에서 이를 가이드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지털 공간론에 눈을 떠야 한다. 정책결정자 또는 기업의 CEO가 디지털 일리터러티라면 그 조직 또는 기업은 이제 유지되기 어렵다.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들어보자. 샌프란시스코 항구에서 인천 항구로 오가는 물류 선박이 있다고 해보자. 당신이라면 그 선박에 어떤 디지털 공간을 붙여줄 것인가? 당신이라면 그 선박에 어떤 센서를 붙여줄 것인가? 약 1만 Km를 오가는 선박을 놀려먹을 것인가? 그 선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엄청난 데이터를 왜 그냥 방치하는가? 선박의 내부 상태에 관한 수많은 데이터에다가 그 선박의 행행수로에서 측정하여 얻을 수 있는 있는 수많은 해양데이터를 왜 그냥 방치하는가? AI는 왜 중요하다고 하고, 파라미터를 수천억개에서 수조개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은 왜 하는가? 데이터 공간을 포함한 디지털 공간 전략도 없이 AI 공간은 만들어질 수도 없다. 시간 지나면 흐지부지될 것은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7) 나는 바로 위의 글에서 대한민국도 자랑하고 대기업에서 추진하는 거대 AI 또는 초거대 AI 프로젝트 책임자에게 아직도 대규모 파라미터 중에 인간에 직접 관련된 파라미터의 비중을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유형의 디지털 공간 중에서 우선적으로 개발자 공간을 언급했다. 앞에서도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제품과 서비스가 글로벌 수준의 그것으로 인정받는 계기는 그냥 판매된다고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제화와 서비스가 디지털 신뢰공간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신뢰공간은 말 그래도 PKI 공간이어야 하는 것이고 PID와 DID의 유기적인 체계가 디지털 인증체계에 녹아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여러번 언급했다. 이것뿐인가? 개발자는 한국 또는 영어권에서만 사는 사람인가? 적어도 디지털 공간이 글로벌 수준에 이르고 개발자가 참여를 시작하려면 신뢰공간 요소의 구축 뿐만이 아니라 개발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언어의 장벽을 해소하여야 한다.
한글과 영어 이외에도 메이저 언어권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디지털 개발자 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마련에 도전히도록 지원하는 언어플랫폼이 그 디지털 공간에 깔려야 한다. 그래서 디지털 공간을 통해 그 재화와 서비스의 사용에서 얻어지는 다채로운 언어 정보를 그 디지털 공간에서 소화해줘야 한다. 즉 디지털 공간 설계가 다양한 언어가 사용 가능하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언어플랫폼이 부실하고 부족하다고 계속 외국 메이저의 솔루션을 도입하여 사용하면 우리는 눈뜨고 코 베이듯 “화살”을 잃어가는 셈이된다. 시작은 어렵더라도 “과정”의 산업 특성상 CEO와 정책결정자들은 꾸준한 언어플랫폼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접근 방법을 이해나 하는가? 이해는 해도 과감한 지원을 지속하는가? 이런 차원에서의 CEO와 정책결정자들의 무지는 앞에서도 말한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침식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디지털 공간은 기존에 없었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획득하는 인식 하에 설계되어야 한다. 단순한 인터넷 서비스라는 협소한 범주가 아니라 디지털 공간이라는 입체적 범주로 확장되어야 더 넓게 크게 깊게 보인다.
(2022년 7월 26일 화요일)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newdhjj@gmail.com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이번 제10편의 글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마무리하고 보냅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내면서 세계의 전염병에 관한 책이 있어도, 우리의 전염병 역사에 관한 책이 없어 아쉬웠다. 마침 신병주 교수가 기록 속에 남아있는 전염병의 역사를 정리해주었다.
우선 ‘조선왕조실록’ 같은 연대기 자료는 물론이고 개인의 일기나 문집 등에 조선시대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존재한다. 전염병을 극복해 나가는 방법 또한 사회적 격리, 의학적인 방법의 동원, 의료인 양성, 전염병 발생 지역에 대한 국가적 지원 등 현재의 모습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현대적 의학이 발전하기 전이기 때문에 전염병 자체와 전파경로 등을 정확히규명할 수는 없었다. 전염병의 실체를 모르기때문에 다소 미신적인 서구의 미아즈마(Miasma) 이론과 비슷하다. 곧 콜레라 흑사병 등 질병의 발병원인이 ‘미아즈마‘ 곧 ‘나쁜 공기’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에서도 시대별로 유행하는 전염병의 특징 등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문종시대를 통해 본 조선 전기에는 잦은 기근과 역병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대부분의 역병들은 기근으로 인한 영양실조, 불결에 의해 촉발된 질환으로 여겨진다. 16세기에는 오늘날 발진티푸스나 장티푸스에 해당하는 온역(溫疫)이 유행했다. 16세기 이후 면포의 보급으로 이가 기생할 수 있는 환경 조성되어 생긴 전염병이라고 한다.
병자호란를 거쳐 숙종시대에는 천연두가 유행했다. 실제 숙종은 1683년 10월 18일에 발병해 11월 1일에는 크게 회복되어 딱지가 떨어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초상화 화첩인 『진신화상첩』에는 22명의 관리 초상화 중 5명의 인물에서 곰보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초상화 화첩인 『진신화상첩』에는 22명의 관리 초상화 중 5명의 인물에서 곰보 자국이 선명하게 보이다. 정약용도 천연두를 앓아 눈썹에 흉터가 있었다고 하니, 천연두는 그만큼 일반적인 역병이었다.
19세기 조선을 집어삼킨 전염병은 콜레라(호열자, 쥐통)이다. 개항과 함께 해외에서 온 선원에 의해 전파되었다고 한다. ‘호열자’라고도 불리는데 호랑이가 몸을 찢는 것과 같은 고통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발 뒤꿈치 근육의 경련을 수반하기 때문에 쥐에게 물린 것 같다고 해 쥐통이라고도 불렸다. 귀신을 잡는다며 고양이 그림을 붙여놓기도 했다.
역사 속 전염벼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인듯 하다. 역사학뿐만 아니라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전염병자체의 역사 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역사에 미친 영향까지도 더 깊고 넓게 연구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빌리 홀리데이 Billie Holiday 가 몇 주 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이제야 그녀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이글보다 훨씬 긴 부고를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테지만, 홀리데이는 그 누구보다도 더 오래 우리 가슴속에 살아 있을 것이기에 이 보잘것 없는 글이 조금 늦어졌다고해서 고인이나 남아 있는 우리에게 그리 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홀리데이가 세상을 등졌을 때 우리들은 모두 비탄에 잠겼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홀리데이만큼 진정으로 자기 파괴의 길을 걸었던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마흔넷의 나이에 그토록 힘겨웠던 삶의 여정이 마침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이미 육체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어떤 이들은 황폐해진 가운데서도 그녀의 예전의 목소리가 이따금 빛을 잃지 않고 묻어나는 순간을 위안 삼으며 아무렇지도 않은척 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차마 그녀의 모습을 보려고도, 그 노래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거의 구할 수도 없는, 1939년에서 1946년 사이의 전성기 음반들을 운 좋게도 갖고 있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차라리 집안에 틀어박혀 그녀에게 불후의 명성을 안겨준, 그 거칠게 굽이치는 육감적이고 참을 수 없이 슬픈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그녀의 육체적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그녀가 고통에서 벗어났음에 안도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업 감각이라곤 없었던 그녀가 술과 마약을 살 수 있게 해주었던 그 목소리를 잃고, 또한 한번 보면 잊지 못할 만큼 아름다웠던 예전의 모습도 잃어버리고, 어떻게 한창때의 모습과 노래를 기억하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변함없는 애정에만 의지해서 중년을 맞이할 수 있었겠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느끼는 슬픔이야말로 빌리 홀리데이의 예술, 누구라도 애석해하지 않을 수 없는 한 여자의 예술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다. 홀리데이와 견줄만한 다른 위대한 블루스 가수들은 그녀보다는 좀더 나은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이 암사자들은 종종 상처받거나 궁지에 몰리기는 했어도 클레오파트라나 페드라와 같은 비극의 여주인공에 비견할만하지만, 홀리데이의 경우는 가슴 깊이 상처 입은 오필리어와 같았다고 할 수 있다.
홀리데이는 블루스, 아니 재즈 가수들 중에서도 푸치니 오페라의 디바와 같은 존재였으며, 그녀가 카바레풍으로 불렀던 블루스는 가히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타고난 가창법은 팝송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녀의 독창성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그녀의 풍부한 감정표현에 팝적인 요소가 녹아들면서 만들어졌다. 그녀는 달콤한 선율을 철저히 배제한 채, 자신만의 흐느끼듯 늘어지는 목소리로 베시 스미스나 루이 암스트롱 처럼 비탄에 잠긴 곡조를 노래했다.
그 가늘면서도 거친 독특한 음색은 관능적이면서도 사랑의 고통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거슈인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에 나오는 곡들을 홀리데이만큼 노래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녀의 노래에는 잘려나간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며 누워 있는 사람과 같은 마음의 고통과 육체적 체념이 뒤섞여 있다. 그래서 흑인에 대한 폭력에 항의하는 시에 곡을 붙여 불후의 명곡이 된 ‘이상한 열매 strange fruit'(흑인이 백인에게 린치를 당해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모습을 노래한 것) 에서 우리는 그처럼 섬뜩한 전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고통은 곧 그녀의 삶이었이지만, 그녀는 그에 굴복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느끼는 슬픔이야말로 빌리 홀리데이의 예술, 누구라도 애석해하지 않을 수 없는 한 여자의 예술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다. 홀리데이와 견줄만한 다른 위대한 블루스 가수들은 그녀보다는 좀더 나은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이 암사자들은 종종 상처받거나 궁지에 몰리기는 했어도 클레오파트라나 페드라와 같은 비극의 여주인공에 비견할만하지만, 홀리데이의 경우는 가슴 깊이 상처 입은 오필리어와 같았다고 할 수 있다.
홀리데이는 블루스, 아니 재즈 가수들 중에서도 푸치니 오페라의 디바와 같은 존재였으며, 그녀가 카바레풍으로 불렀던 블루스는 가히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타고난 가창법은 팝송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녀의 독창성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그녀의 풍부한 감정표현에 팝적인 요소가 녹아들면서 만들어졌다. 그녀는 달콤한 선율을 철저히 배제한 채, 자신만의 흐느끼듯 늘어지는 목소리로 베시 스미스나 루이 암스트롱 처럼 비탄에 잠긴 곡조를 노래했다.
그 가늘면서도 거친 독특한 음색은 관능적이면서도 사랑의 고통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거슈인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에 나오는 곡들을 홀리데이만큼 노래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녀의 노래에는 잘려나간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며 누워 있는 사람과 같은 마음의 고통과 육체적 체념이 뒤섞여 있다. 그래서 흑인에 대한 폭력에 항의하는 시에 곡을 붙여 불후의 명곡이 된 ‘이상한 열매 strange fruit'(흑인이 백인에게 린치를 당해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모습을 노래한 것) 에서 우리는 그처럼 섬뜩한 전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고통은 곧 그녀의 삶이었이지만, 그녀는 그에 굴복하지 않았다.
strange fruit
홀리데이의 끔찍했던 과거에 대해서는 별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녀의 자서전 ‘블루스를 노래한 여자 Lady Sings the Blues ‘에는 실제 일어난 일들보다도 그녀의 감정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사춘기 무렵 청중들이 던져주는 동전을 허리를 숙여 집지 않고 대신 자신의 손에 직접 쥐어주도록 했을 만큼 그녀는 자존심이 강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남의 도움에 기대려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 주위엔 그녀를 돕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뛰어난 안목에 더없이 진실한 사람이었던 존 해먼드가 그녀를 발굴하여 세상에 내놓았고, 1930년대 최고의 연주자들 테디 윌슨, 프랭키 뉴턴, 레스터 영이 그녀와 함께 했으며, 그녀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았던 음악 애호가들과 수많은 대중들도 그녀 곁에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죽음으로 몰고 갈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고통스러운 생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 있었다. 10살때 강간을 당하고, 십대에 마약에 중독되는 일이 설령 없었다 하더라도, 1915년 볼티모이 흑인 빈민가에서 아름다움과 자존심을 함께 지니고 태어난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너무나 커다란 약점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파괴되어 가는 와중에도 그녀는 노래를 계속했다. 비록 이미 황폐해진 목소리였지만, 그것은 마음 깊이 애잔함을 불러일으켰다. 어찌 그녀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고, 그녀를 이렇게 만든 세상을 탓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5년 넘게 세계 정상급의 CEO, 운동선수, 배우, 각계각층의 성공한 사람들의 진정한 잠재력을 끌어낸 세계적인 브레인 코치다.
기억력 향상, 두뇌 건강, 가속학습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로 UN과 미국 백악관, 실리콘밸리, 하버드대학교 등 세계 유수의 기업과 기관, 단체로부터 ‘최고의 연사’로 뜨거운 찬사를 얻고 있다.
짐은 유년기에 사고로 뇌에 큰 손상을 입어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로 “뇌가 고장 난 아이”라는 말을 들으며 학습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학교 때까지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기 힘들었던 그는 결국 학업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두 번째 겪은 사고로 또 다시 머리를 다친 그는 ‘도대체 왜 나는 무엇을 해도 안 되는가?’라는 간절함과 함께 ‘배우는 방식’에 대한 본질적인 호기심이 생겨 이를 깊게 파고들게 된다.
뇌과학, 다중지능이론, 성공학을 다룬 자기계발서들을 토대로 인간의 정신 능력을 극적으로 향상시킨 심리학, 학습 분야의 이론과 연구, 전문가들의 의견을 치밀하게 분석해 잠재력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성공 전략을 만들었다.
이 성공 전략은 마인드셋(Mindset), 동기부여(Motivation), 방법(Method) 이 세 가지 영역을 아우르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끝까지 몰입해 나아가는 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짐은 자신처럼 “마지막으로 단 한 번 ‘여기까지’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그만의 성공 전략과 노하우를 담아 이 책을 펴냈다.
현재 《포브스》, 《허프포스트》, 《Inc.》, CNBC 등 유명 매체에 정기적으로 출연 중이며 여러 강연 활동을 통해 매년 20만 명 이상의 청중을 직접 만나오고 있다.
그가 직접 운영하는 팟캐스트 ‘퀵 브레인’(Kwik Brain)과 아카데미 기업 ‘퀵 러닝’(Kwik Learning)의 온라인 강좌는 전세계 195개국 사람들이 청취 및 수강 중이다.
책 소개_마지막 몰입
책 한 권 읽지 못했던 그는 어떻게 세계 최고의 두뇌력을 갖게 됐을까?
UN, 하버드, 구글… 세계 1%가 극찬한 두뇌 전문가 짐 퀵이 전하는 잠재력의 놀랍고 위대한 힘!
6년 전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가 더 똑똑해지고 싶다는 열망에 한 두뇌 전문가를 찾아 큰 화제가 됐다.
그 전문가는 바로 ‘짐 퀵’이었다.
그는 25년 넘게 세계 정상급의 CEO와 운동선수, 배우 등 각계각층의 성공한 사람들뿐 아니라 UN, 미국 백악관, 하버드대학교, 구글, 나이키, 자포스 등 세계적 기업과 기관, 단체에서 찾는 독보적이고 저명한 브레인 코치다.
세계적인 경제지 《포브스》에서는 “짐 퀵은 지식을 배우거나 일을 하거나 취미로 운동을 하더라도 원하는 수준 이상의 성과를 이루는 법을 알려준다”고 평했다.
짐 퀵은 나이, 배경, 교육, IQ에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뇌, 추진력, 기억력, 집중력, 습관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마인드셋, 동기부여, 방법 이 세 가지 영역을 아우르는 성공 전략을 직접 밝혀냈다.
특히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짐 퀵만의 집중, 학습, 기억력, 속독, 사고 전략은 전 세계 195개국의 수억 명이 열광한 매우 효과적이고 널리 검증된 방법들로 그 핵심이 《마지막 몰입: 나를 넘어서는 힘》에 아낌없이 담겨 있다.
짐 퀵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성공 전략만이 아니라 그의 극적인 인생 스토리에 있다. 어렸을 때 뇌를 크게 다쳐 평범한 학교생활과 학업이 어려웠던 그는 결국 대학교 중퇴를 결심한다.
책 한 권을 다 읽기 힘들 정도로 어떤 것을 배우고 익혀도 어려움을 겪자 자신의 인생에 한계를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랬던 그가 ‘배우는 법’을 깊이 연구하고 파고들어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버락 오바마, 오프라 윈프리 등 세계 상위 1%가 극찬한 최고의 두뇌 전문가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을 바꾼 잠재력의 힘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아마존 45주 연속 분야 1위! 《포브스》 2021 올해의 책 선정!
구글, 하버드, UN, 나이키… 세계 상위 1%가 열광한 최고의 성공 전략!
최근 습관, 성공, 두뇌 등을 키워드로 다룬 자기계발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기억력 향상, 두뇌 건강, 가속학습 분야의 세계적인 두뇌 전문가 ‘짐 퀵’이다.
그는 UN, 미국 백악관, 하버드대학교, 구글, 스페이스X, 나이키 등 세계 유수의 기업과 단체, 기관에서 앞다투어 초청하는 최고의 연사다.
사람들이 그를 찾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바로 IQ, 재능,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성과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잠재력을 쉽게 깨우는 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사실 짐 퀵은 대학교 때까지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기 힘들었던 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두뇌 전문가가 되어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버락 오바마, 오프라 윈프리 등 세계 상위 1%가 찾는 성공 멘토가 됐을까?
저자는 어렸을 때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로 ‘뇌가 고장 난 아이’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했다.
낮은 학업 성적과 타인의 편견 속에서 스스로 평균 이하의 머리를 가진, 성공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번째 사고로 또 다시 뇌를 다친 그는 자신의 능력이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 방법이 무엇인지 직접 찾아내기로 결심한다.
그는 우선 무엇을 하더라도 ‘배우는 법’ 자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식과 이론만 알려주는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뇌과학, 자기계발, 다중지능이론, 교육심리학 등 책들을 붙들고 읽기 시작했다. 두 달 후 그의 머리에 스위치가 반짝 하고 켜졌다.
난생처음으로 정보를 읽고 이해하기 시작했고 책 읽는 시간도 예전보다 몇 분의 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이 변화를 일으킨 것은 마인드셋과 동기부여의 강력한 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습 방법의 학습’을 파고들기 시작한 후로 누구라도 쉽게 효과를 경험할 수 있는 짐 퀵만의 집중, 학습, 기억력, 속독, 사고 전략을 개발해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그의 극적인 변화와 성공 전략을 담아낸 책이 바로 《마지막 몰입: 나를 넘어서는 힘》이다.
이 책은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소개되고 《월스트리트저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출간 이후 지금까지 45주 연속 아마존 분야 1위를 지키고 있다.
또한 스탠퍼드대학교 행동설계연구소 설립자 ‘BJ 포그’, 싱귤래리티대학교 공동설립자 ‘피터 디아만디스’, 마블 전 명예회장 ‘스탠 리’, 하버드대학교 신경학과 교수 ‘루돌프 탄지’ 등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로부터 강력 추천을 받았으며 《포브스》에서는 ‘2021년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이 책을 추천했다.
“우리 내면에는 슈퍼히어로가 있고
이 책은 그 힘을 발휘하는 법을 알려준다!”_스탠 리(마블 전 명예회장)
평범한 인생을 역전시키는 잠재력의 놀랍고 위대한 힘!
짐 퀵은 자신처럼 “마지막으로 단 한 번 ‘여기까지’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25년 넘게 쌓아온 그만의 성공 전략과 노하우를 담아 이 책을 펴냈다.
총 4개의 부에 담긴 내용은 우리가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에서부터 낡은 마인드셋을 바꾸고 강력한 동기부여를 가지고 잠재력을 터뜨려 지금의 나를 넘어서는 방법들로 이뤄져 있다.
제1부에서는 스스로를 한계의 벽 안에 가뒀던 저자의 과거 이야기와 함께 배우고 생각하는 인간의 행동과 습관을 나쁘게 길들이는 환경과 사고방식의 문제를 지적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디지털 환경이나 사람들의 통념이 우리의 능력을 오히려 퇴화시키고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며 이를 제거하고 이겨내야만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2부는 어렸을 때부터 쌓아온 자기 자신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없애고 잠재력을 가두는 7가지 오래된 통념의 거짓과 진실이 무엇인지 설명하며 마인드셋을 철저히 재설계할 것을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IQ, 환경,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변명과 편견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우를 소개한다.
‘나는 여기까지야’라는 학습된 무력감에 익숙해진 마인드가 자신의 잠재력을 가두는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족쇄임을 깨닫게 한다.
제3부에서는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강력한 동기와 지속하는 힘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아무리 재밌는 일이라도 이유가 없으면 결국 하지 않게 된다.”고 말하며 행동하게 하는 동기부여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더불어 자신을 움직이게 할 목적을 찾았다면 이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해내는 에너지원인 두뇌와 습관, 몰입의 힘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제4부는 짐 퀵만의 노하우가 담긴 집중, 학습, 기억력, 속독, 사고법의 비밀을 알려준다. 저자가 25년 넘게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이론을 살피고 직접 전문가들과 만나 그들의 성공 전략이 무엇인지 이야기 나누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더해 그 핵심을 제4부에 담았다. 여기서 소개된 방법을 직접 실천해본다면 누구라도 쉽게 집중력, 학습력,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방대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입력하는 속독법에 능수능란해질 것이며 넓고 깊은 사고가 가능해질 것이다.
《마지막 몰입: 나를 넘어서는 힘》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끝까지 몰입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아가는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최고의 책이다.
공부, 건강, 커리어, 인간관계 등 다양한 방면에서 성장하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깨워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펼쳐라!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골목길이 어떻게 동네를 풍부하게 만들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경제학을 통해 그 방법을 모색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골목길 경제학자’라고 부른다. 모 교수는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제정치경제, 세계화 등을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전 세계 매력적인 도시들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비결에 대해 궁리했다. 그리고 그 비밀 중 하나가 바로 골목길이라고 봤다. 그의 주장처럼 한국의 주요 관광지로 거론되는 홍대ㆍ가로수길ㆍ이태원은 모두 작은 골목길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