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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각별한 당신’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자기안의 중심을 잡고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부드럽고 은은했습니다. 과하지도 전투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묵직한 여운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좋아 더 좋은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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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7일, 트루먼은 미군을 한국전쟁에 투입했다.

트루먼 미대통령은 미 공군과 해군에 한국전쟁의 참전을 명했다. 또한 트루먼은 공산주의 중국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포모사(대만)에 미국 7함대를 배치했다. 베트남에서 공산주의 게릴라와 싸우는 프랑스군에 대한 군사 지원을 명령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인민군 9만여 명이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공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6월 25일 오후 긴급회의를 열고 ‘적대행위의 즉각적인 중단’과 ’38선 이남의 북한군의 철수’를 촉구하는 미국의 결의안을 승인했다. 당시 소련은 유엔의 중화인민공화국 승인 거부에 대해 안전보장이사회를 보이콧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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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 ④ – 디지털 공간론 3가지 원리(原理)

ㅡ 인터넷 가브넌스의 용어 사용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에 대해서는 “네트웍 상호연결의 과정(process of internetworking)”만이 있으며 “가브넌스(governance)”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면서 오직 “조정 (coordination)”만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ㅡ 이러한 제한된 의미의 조정만을 의미하는 것온 아니지만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인터넷 코디네이션(Internet coordination)이라는 용어이외에도 MIT의 David Clark는 “rough consensus and running code”라는 문구를 사용하기도 하였고, Internet Society의 의장인 Don Heath는 “rough consensus”를 “broad-based acceptance, not unanimity”라고 해석 하였다.

위의 인용문은 필자 황철증이 1999년 1월 정보통신정책 ISSUE (제11권 3호 통권 111호)로 발간한 《인터넷 가브넌스 이해 (Introduction to the Internet Governance) – IANA)와 lCANN의 역사적 분석을 통하여 -》라는 소책자에 담겨 있다. 인터넷 공간의 역사를 돕는 필자의 다른 소책자는 1998년 12월 정보통신정책 ISSUE (제10권 13호 통권 107호)로 발간된 《종합정보통신망·초고속정보통신망·인터넷·가상공간 – 새로운 법률적 이슈와 규율 (ISDN.·Information Superhighway·Internet·Cyberspace – Emerging Legal Issues and Governance)》를 참조해도 된다.

33년 전의 나의 생각과 현재의 나의 생각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글은, 누차 이야기하지만, ‘디지털 공간론’으로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을 끌어내는 작업이다. 그 ‘공간’은 ‘신뢰’ 공간이어야 한다. ‘신뢰’는 기술적 속성일 뿐, 인간적 속성이 제거된 것을 말한다. 어쩌면 이 개념이 디지털 공간의 기초이면서 모든 것을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지털 ‘신뢰’ 공간의 응용 프로젝트로서 구현되는 것들을 우리는 플랫폼(platform)이라고 하기도 하고, 생태계(ecosystem) 라고도 한다. 급기야 메타버스(metaverse)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그렇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물리 공간 (물리 세계), 현실 공간 (현실 세계)를 묘사하라고 하면 당신은 뭐라고 답할 것인가? 엄두가 나는가? 내가 ‘디지털 ‘신뢰’ 공간 설계 능력 부족’이 대한민국 디지털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잠재성장률을 추락시키는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럼 당연히 ‘공간’을 어찌 이해해야 할 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전략적 해법을 몇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지만 그렇게 결론만 말하고 싶지 않다. 글로벌 CEO들을 만나 우리는 실제적인 해법을 원하는 욕심 때문에 사업의 해법을 직설적으로 묻는데, 그들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답변을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철학을 말한다. 한국의 CEO 중에서 월급쟁이 CEO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것들이다. 물론 오너에게서도 찾기 어렵다. 이런 지적 풍토와 토양이 디지털 산업의 경쟁력을 추락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나는 또 주장한다. 아날로그 산업, 즉 공업에서는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고 한 때는 미국과 겨뤘던 일본은 도장(圖章)과 팩스(fax)에 대한 아름다운 숭상 문화를 지키며 결국 디지털 산업에서 밀려나 침몰하고 있다.

그러니 또 성질 급하게 나에게 해법을 빨리 제시하라 요구하지만, 이어서 쓰겠지만, 이미 전편의 글에서 단서는 다 나열했다. 다시 읽어보시라.

그런데 정답만을 찾고 이를 취하려는 공부의 태도, 사유의 과정을 무시하는 자세, 그것을 나는 바칼로레아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는, 예능적 지식 축적이라고 조롱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플랫폼”, “OS”, “브라우저”, “생태계”, “시스템반도체”, “클라우드”, “빅데이터”, “BSS/OSS”, “AI” 어느 하나 변변한 게 없는 실정의 우리의 디지털 산업 경쟁력의 근본적인 추락 원인일지도 모른다.

사실 물리 공간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데 디지털 공간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요구하는 것인가. 유클리드 기하학과 뉴튼의 절대공간에 이인슈타인과 민코프스키의 상대공간이 더해졌으니, 시간과 질량과 크기에 동반하는 공간의 이해는 훨씬 어려워졌다. ‘수학적 공간’, ‘물리학적 공간’, ‘기하학적 공간’, ‘철학적 관념의 공간’, ‘예술의 상상의 공간’으로 물리 공간의 이해 확장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이 이제 우리는 ‘가상공간 (디지털 공간)’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니 도대체 ‘디지털 공간’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선’과 ‘면’을 설계하는 능력과 ‘공간’을 설계하는 능력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가 33년 전과는 다른 생각으로 점(pointland)과 선(lineland)과 면(flatland)의 연결성(connectivity)을 넘어 디지털 공간성(spatiality)을 주장하는 것은, 새롭게 생각을 해보자, 그러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는 것이다.

19세기에 출간된 에드윈 애벗 (Edwin A. Abbott, 1849 ~ 1926)의 《플랫랜드》는 20세기 물리학자들의 극찬을 받은 수학 소설인데, 《플랫랜드》 그리고 《주석 달린 플랫랜드》는 어떤 통찰을 인간에게 던지는가? “플라톤의 동굴 속에 있는 죄수처럼 플랫랜드의 사람들은 그들이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세계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세계라는 믿음, 즉 ‘차원적 편견’에 구속되어 있다. 각 도형이 ‘알고 있는’ 희미한 현실들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 편견 때문에 흐려진다.”

물리공간인 현실 세계는 어떻게 생겼을까? 굳이 답변을 하지 않더라도 알 것이지만, 그럼 디지털 공간은 어떻게 생겼을까? 얼마만큼을 설명해야 디지털 공간을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을까?

설명 방법이야 너무 다양하다. 나는 물리 공간의 국가 구성요소로서 ‘영토’, ‘국민’ 그리고 ‘주권’에 대응하는 것을 디지털 공간의 요소로서 비유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3위 일체인가? 그런데 디지털 공간은 물질(matter)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니, ‘요소’라고 하지만 나는 이를 원리(原理)라고 말할 것이다.

《디지털 공간론 제1원리》

무엇보다도 존 페리 발로우가 선언했듯이 비트(bit)로만 이뤄진 디지털 공간을 물리 공간과는 ‘단절’ 즉, ‘독립’된 공간으로 인식한다면, 나는 이를 《디지털 공간론 제1원리》로 풀어 낼 것이다. ”디지털 공간은 있는가?(존재하는가?)” “디지털 공간은 무엇인가?”라는 존재철학적 질문에 앞서, 아니 그런 질문에 대해 전통적 철학적 사유를 통한 참과 거짓의 답변이 가능한 것인지를 따지기에 앞서 논리실증주의 또는 분석철학적 사유를 통해 그 독립의 의의가 방법적 긍정에 의해 의미체계를 이론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면 과격한 독립 선언이지만 이는 디지털 공간론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유관 공간 개념들 – ⒜ 인터넷 공간(세계), 사이버 공간(세계), 가상 공간(세계) 또는 ⒝ 유비쿼터스 공간, 만물지능공간 등 또한 ⒞ 디지털 플랫폼, 디지털 생태계 등 또는 ⒟ 도메인네임 공간, IP 주소 공간 또는 ⒠ 월드와이드웹 공간, 이커머스 공간 등 또는 ⒡ 블록체인 공간, 메타버스 공간 -과 구별하고 총칭하여 독립된 공간으로서의 “디지털 공간”으로 부를 것이다. 하여튼 공통적 요소로는 기술적 공간이고, ‘인간의 냄새가 없는 차가운 공간이다.’ 공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의 활동 표현을 지금까지 웹서핑(web surfing)이라고 하였다면, 앞으로는 디지털 공간 유영 (digital spacewalking)이라고 해야할까?

《디지털 공간론 제2원리》

그리고 존 페리 발로우의 독립선언서에 등장하는 ‘그대들’(You)은 물리 세계의 정부 (Governments of the Industrial World)를 일컫고, 우리(We)는 당연히 ‘사이버 공간인’ 즉 ‘디지털 공간인’을 말하는데, 그는 이를 “our virtual selves”라고도 말했다. ‘우리(We)’를 어찌 정의하여야 하는 지는 이 글의 핵심을 관통하는 미묘한 주제어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무색, 무취, 무미, 건조한 디지털 공간의 디지털 공간’인’의 속성에 인간적 요소를 담을 것인지 말지는 더욱 미묘한 주제이다.

전편에서 나는 디지털 공간을 의인화(personification)하여 이해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DID는 DID일 뿐 PID와는 독립된 것이다. PID는 지구인이라면, DID는 행성 ‘판도라’의 토착민인 “나비(Na’vi)”이다. 의인화된 “아바타(Avatar)”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DID가 될 수도 있지만 디지털 공간인은 “나비(Na’vi)”이다.

인간은 우주 공간과 지구에서의 존재의 자기정당성을 인류 원리(人類原理. anthropic principle)로 증명하는데 이는 자기 모순의 순환논증일 뿐인 ‘인간중심원리(人間中心原理)’이다. 자연에 가하는 오염 인자인 인간의 발자국이 ‘달’에는 남았지만, ‘화성’까지에도 허용돼야 할 것인가? 더욱 ‘디지털 공간’까지에도?

그래서 나는 물리 공간의 ‘인간’으로부터의 독립에서 비롯되는 ‘디지털 공간론 제2원리’를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공간론 제3원리》

그럼 《디지털 공간론 제3원리》로서 ‘주권’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는 앞에서 언급한 2가지의 원리에서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것으로서 물리 공간에의 종속으로부터, 그 공간의 인간에 의한 지배권으로부터의 독립에서 비롯되는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3가지 원리(原理)에 대한 지금까지의 설명은 아직 ‘소극적(消極的)’ 정의에 머무른다. ‘적극적(積極的)’ 의미의 ‘디지털 공간’, ‘디지털 공간인’, ‘디지털 공간 주권’을 치밀하게 구성하여 설명하는 작업은 바로 디지털 공간 설계도에 이르는 선행 작업이고 첩경인데, 이는 좀 길어질 수 밖에 없어 다음 편의 글에서 다룰 수 밖에 없다.

신은 편견 가득하고 조변석개를 즐기며 감정에 흔들리는 인간에게 물리 공간 운행(運行)을 맡길 수 밖에 없었지만, 《신뢰》 공간을 기대하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듯 참으로 난망하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AI는 인간에게 의지하는가 스스로에게 의지하는가? 디지털 공간의 자율 운행(運行) 능력은 AI에 의해서 더욱 더 강화되고 있지 않은가? 디지털 공간의 신뢰의 구조는 쿠르트 괴델(Kurt Gödel, 1906 ~ 1978)의 ‘불완전성 정리’가 AI의 출현을 야기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그 함의를 생각해볼만 하지 않은가?

신이 우주와 생물과 인간을 창조했다고, 나는 믿지 않지만, 굳이 말할 수 있다고 해도, 신이 물리 공간의 운행(運行)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그렇듯이, 인간은 디지털 공간과 디지털 공간인을 창조했지만 인간이 설계(설정)한 기술적 구현대로, 그러나 인간이 관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디지털 공간은 저절로 운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물리 공간에서 지적 설계 (intelligent design) 논의는 사이비 과학이지만, 디지털 공간 설계에서 ‘디지털 지적 설계’ 논의는 방법적인 의미가 크지 않은가? 국가라는 공간 설계를 사전에 준비한 정도전의 조선 경국이 전대미문의 세계사적 의의를 가진 것으로서 500년 넘는 장구한 역사를 만든 것에서도 ‘디지털 공간 설계’는 심원한 도전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 디지털 공간은 물리 공간과 인간으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만 ‘디지털 《신뢰》 공간 설계’가 보다 완벽하게 가능하다.

그렇다. 나의 글은 공간 인문학을 위한 글이 아니다. 국가와 기업을 위한 전략보고서이다. ⒜ 디지털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디지털 공간 설계 능력” 확보 방안에 관한 제안이다. 이것이 이글의 본래 목표이다. 디지털 산업이 자동화를 통해 일자리를 축소시킨다는 주장도 디지털 유령으로 취급하게 될 것이다.

부수적인 제안을 하게된다면 이는 ⒝ “개인정보보호 규제체계에 대한 틀을 재정비”하는 일과 ⒞ “글로벌 데이터 플랫폼 회사와 맞짱” 뜨는 일에 대한 제안도 할 것이다. 전술한 글들에서 언급한 4가지의 디지털 유령의 문제와 앞 ③편의 글 말미에서 검토 사항으로 제시된 18가지의 이슈도 앞으로의 글들에서 해소할 것이다. 당연히 《디지털 공간론의 3가지 원리》의 소극적 측면의 내용 뿐만이 아니라 다음 편에 상술할 ‘적극적(積極的)’ 측면의 내용에 기초하여 진술할 것이다.

(2022년 6월 13일)

/디지털신뢰공간 아키텍트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연락처는 newdhj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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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6월 16일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에서 포드자동차를 시작하다.

회사가 설립된 지 한 달 후, 첫 포드 자동차인 Model A가 생산되었다. 2~3명의 작업자가 주문한 부품을 손으로 조립한것이다. 1903년 대한제국 고종이 재위 40년 기념으로 영국에서 구매한 자동차(어차,御車)가 바로 포드의 모델 A 자동차였다 

포드는 보통사람도 구매할 수 있는 자동차 생산이 궁극적 목표였다. 마침내 포드는 표준화된 생산라인으로 24초마다 한 대의 모델 T를 생산할 수 있었다. 1908년 10월  825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이 매겨진 포드 모델 T의 판매가 시작되었다. 1918년까지 미국 자동차의 절반이 Model T였다.

다소 혼란한 시기를 거친 후, 1927년에 포드는 현재의 본사인 디어본에 건설한 대규모 공장으로 이전했다. 공장에는 유리 공장, 제철소, 조립 라인 및 기타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모든 구성 요소가 포함되었다. 같은 해에 포드는 Model T의 생산을 중단하고, 더 나은 마력과 브레이크를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Model A를 출시했다. 그러나 Model A는 GM의쉐보레, 크라이슬러의 플리머스에 비해 부진했고, 1931년에 단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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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텔러]도시의 미식가, 디자이너 박진배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와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공부했다.

여러 인연을 거쳐 현재 뉴욕 FIT 대학교 교수, 마이애미대학교의 명예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본업은 디자이너에 가깝지만,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가 가득한 곳들을 즐겨 찾는다.

주로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한적한 시골 마을을 선호한다.

정기적으로 이탈리아의 움브리아 주, 프랑스의 소담하고 정겨운 마을들, 스코틀랜드의 양조장과 바람이 좋은 잉글랜드의 해안을 방문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서울의 ‘르 클럽 드 뱅(Le Club de Vin)’,

‘민가다헌(閔家茶軒)’,

‘베라짜노(Verrazzano)’

뉴욕의 ‘사일로 카페(Silo Cafe)’ 등을 디자인했다.

레스토랑과 외식 컨설턴트로 다수의 프로젝트를 자문했고, 뉴욕의 ‘프레임(FRAME gourmet eatery)’과 한식당 ‘곳간’을 창업해 운영했다.

아르헨티나 멘도자(Mendoza) 소재 포도밭에서 매년 와인을 만든다.

『디자인 파워플레이』 『영화 디자인으로 보기』 『호텔경영과 디자인팔레트』

『뉴욕 아이디어』 『천 번의 아침식사』 등 여덟 권의 책을 썼다.

『미래디자인 선언』 『사랑을 찾아서』를 번역했다. 십수 년 전부터 일간지에 디자인과 문화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소개_도시의 미식가

“무심코 지나친 공간들의 의미를 읽어내다.”

당신의 일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줄

다섯 가지 코드로 담아낸 공간 인사이트

평범하고 소박한 공간과 사물들에는 그들이 품고 있는 콘텐츠와 더불어 나름의 형식이 부여돼 있다.

사람마다 차원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가 예술적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거기엔 켜켜한 역사와 문화가 스며 있고, 크건 작건 하나의 서사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징이라는,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 역시 담겨 있다.

이런 들뜨지 않고 정돈된 결과물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보람차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이 책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을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방법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공간과 사물이 품고 있는 메시지는 일상을 떠나 여행할 때에 더욱 효과적으로 느껴진다. 일과에서 해방된 시간과 낯선 공간이 주는 긴장과 집중이 인사이트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조언한다. 여행하면서 맞닥뜨리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 등 숨겨진 코드를 전적으로 믿으라고.

그리고 유명 관광지를 건성건성 훑어보지 말라 한다. 아울러 여행 뒤안길에 숨어 있는 그 지역만의 상징성 짙은 공간과 사물에 보석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현지인의 대화에 귀 기울이는 것은 여행의 미덕이다.

저자 역시 오롯이 그 여행법을 실천해 왔다. 바람 좋은 잉글랜드 남동부, 맛깔난 음식 천국 프로방스, 왁자한 시칠리아 포구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삶에 밀착한다.

그 공간을 담을 수 있는 시적인 미사여구는 마을 주민들에게서 나오기 때문일 터. 사소한 듯, 쉽고 명료하게 공간과 사물에 관한 진실은 저자의 기록 속에 온전히 담겼다.

수십 년간의 다채롭고 탄탄한 디자인 실무 경험으로 다져진 그는 사소한 것 어느 하나 허투루 넘겨보지 않는다. 허름하고 정겨운 것들에 대한 유별난 관심도 흥미롭다. 무심코 지나친 도심의 계단과 신호등, 시간의 틈새에 자리한 구두 닦는 모습까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을 마주할 때 느껴지는 지적 충만함을 문학, 사상,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때론 감성적으로, 때론 이지적인 사유로 다채롭게 써 내려갔다. 그러면서도 그 시선은 한결같이 내밀하고 따스하다.

“성인은 기차를 놓치지 않는다”라는 헤밍웨이의 말처럼, 공간과 사물에 대한 감상의 본질은 안목과 축적된 연륜이 있어야만 비로소 느껴진다. 탄탄하고 깊이 있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 기록들은 공간과 사물들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안목을 높여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Wit(재치), Reversal(반전), Connection(연결), Experience(경험), Communication(소통) 등 다섯 가지 코드로 분류한 흥미진진한 구성도 읽는 이들을 공간 미식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질주의 시대를 벗어나 꿈꾸는 보헤미안의 삶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책!”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곳이 보헤미안 도시다. 메타포 짙은 고급스런 표현이다.

‘보헤미안 도시’란 원래 19세기의 전통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꿈꾸며 살고자 했던 문인과 음악가, 화가, 배우들이 모여 살던 도시를 뜻했다.

현대에 와서는 문화 예술적 수준이 높은 ‘지적 도시’를 일컫는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의 도시들도 보헤미안 도시를 꿈꾸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생각만큼 여의치 않은 듯하다.

유명 도시를 여행해도 천편일률적으로 비슷비슷한 모양의 관광 포인트가 나열돼 있고, 위압적이고 화려한 쇼핑몰만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하루 종일 다리품을 팔아 잠시 쉬고 싶을 때 찾는 공원이나 휴게 시설은 여전히 허전해 피로감만 쌓인다.

저자 박진배는 디자이너이자 실내 건축가로, 뉴욕을 주 무대로 가르치며 설계하고 동시에 레스토랑을 경영하기도 한,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언뜻 삶의 궤적만 본다면 럭셔리하고 모던한 구조물이나 공간에 치중할 것 같지만, 실상은 사뭇 다르다. 이 책은 시종일관 인문의 결에 예술적 감성으로 써 내려간 공간 탐구 에세이다.

정겹고 수더분한 문체가 무겁지 않게, 슬그머니 주변을 새롭게 보게 하는 마력이 있다. 보헤미안의 삶을 꿈꾸는 그의 인생 철학과 시선이 온전히 글과 사진에 담겼다.

닫혔던 하늘길이 서서히 열리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는 자유로운 삶 속에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 준다.

우리는 궁금증이 생기면 그 즉시 검색해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에 허우적대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클릭 한 번이면 지구 반대편의 화려하고 멋들어진 공간과 거리, 건축물이 여과 없이 포착되는 비대면의 세상에 살고 있다. 그렇다 한들 우리의 삶이 윤택해졌는가? 누구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삶을 바꾸고자 한다면, 저자의 제안대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선언해 보자. 반드시 유명한 명소,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 곁에 늘 함께해 익숙했던 공간과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자. 마음을 열고 침묵과 외로움도 삶의 의미 있는 과정인 것처럼 공간과 사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그 안에 품고 있던, 그동안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새삼 다가온다.

도시 속 보헤미안을 꿈꾸는 이들에게, 안목 있는 삶에 목마른 이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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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우’네 죄를 고하여라’ (법률과 형벌로 읽는 조선)

심재우 교수는 잘 몰랐던 조선의 ‘죄와 벌’을 이야기했습니다. 어찌보면 사소하지만 조선시대의 다양한 사례를 알아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합니다.

예를 들면 춘향이는 목에 칼을 차고 옥살이를 했지만. 춘향의 목에 씌운 칼은 여성에게 사용이 금지된 형구였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여자는 칼을 차지 않았습니다.

목민심서에 막상 당하면 평생 부모 제사지낼 수 없다고 묘사한 주리틀기는 조선후기에 등장했습니다. 주로 도적을 다스리기 위해 포도청, 진영에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백범 김구도 한말에 주리틀기를 당했습니다. 그는 해주감옥에서 정강이뼈가 허옇게 드러날 정도로 모진 주리 고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조선의 죄와 벌 규칙과 체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 무렵부터 사용된 형벌이며 형구의 크기, 횟수, 타격 부위까지 엄격히 규정되어 있어 아무나 집행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형태의 처벌이 국가에 의해서만 가능했습니다.

다만 조선시대에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사적인 처벌이 허용됐습니다. 극단적인 경우 자신의 부모나 가까운 친인척에게 해를 끼친 자를 살해했을지라도 복수 살인의 정당성이 인정되었습니다. 홍콩영화의 테마이기도 한 복수는 역사적 전통이 있었다 봅니다.

정조가 직접 처리한 1,112건 사건을 기록한 『심리록』을 통해 본 조선후기의 판례는 전기와 다르다고 합니다. 살옥죄인의 처리와 징벌이 완화되어 거의 사형을 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조선전기의 소송절차 퇴장하고 사건을 간단히 처리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요즘 새람스럽게 역사를 기록한 그림 즉 이미지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170여 컷의 컬러 도판을 보니, 그 어떤 글보다 더 직접적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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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미래]⑤ “사람이 문화 콘텐츠… 터전 잃지 않도록 지켜야죠” – 김영심 가스트로통 대표


[아시아경제 류태민 기자] 아기자기한 서촌 골목길을 걷다 보면 유럽식 창을 낸 일본식 가옥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100년이 넘은 고택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고풍스럽게 멋을 낸 이곳은 스위스 출신의 롤랜드 히니 셰프와 그의 아내 김영심 대표가 운영하는 스위스 레스토랑 ‘가스트로통’이다. 가스트로통(Gastro Tong)은 미식을 뜻하는 불어 ‘가스트로’와 통의동의 ‘통(通)’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서촌이 ‘서울 600년’이라는 정체성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고려 시대 한옥부터 조선, 일제를 지나 현대까지 주택 역사의 맥이 이 곳, 서촌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황 소장은 1990년대부터 서촌의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13일 낮 서촌에서 만난 그는 서촌이 무분별한 개발이 아닌 주민들이 역사 보존과 경제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에코뮤지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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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 ③ – 디지털 공간론, 제원리(諸原理)와 신뢰(trust)’

ㅡ You have no sovereignty where we gather. 

ㅡ We have no elected government, nor are we likely to have one, so I address you with no greater authority than that with which liberty itself always speaks.

ㅡ We must declare our virtual selves immune to your sovereignty, even as we continue to consent to your rule over our bodies.

존 페리 발로우(John Perry Barlow)(1947~2018)는 상기 문장을 담아 1996년 2월 8일 다보스에서 ‘사이버공간 독립선언문'(A Declaration of the Independence of Cyberspace)을 발표했다. 인터넷에 웹(World Wide Web)이 얹어지고, 인터넷에 민간에 개방된 지 얼마되지 않아 미국의 통신개혁법이 통과되자, 인터넷 ‘자유’ 공간이 암흑 공간이 될 것을 염려한 그는 ‘디지털 공간’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의 독립선언문은 이후 가상 공간의 히피족으로 불리는 사이버펑크족을 포함한 인터넷 자유주의자, 이상주의자, 민주공화주의자들이 가상 공간의 자유와 익명성을 천명하며 모든 권력이 가하는 ‘인터넷 규제’에 저항하는 근거문이 되었다. 그들은 독재적 정부이면서 디지털 공간에 대한 식민제국주의자에게는 저항하였지만, 자유방임주의자로서 디지털 공간을 그냥 내버려두라는 낭만적 레토릭은 새로운 인터넷 제국을 출현할 수 있도록 하는 틈새를 열어주었다.  

자본주의 몰락을 예언한 마르크스의 예언서인 ‘공산당 선언’과 같이 발로우의 독립선언문도 영원히 미완의 예언이자 감상적 비과학적 선언으로 남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지만, 그의 선언문의 행간에서 (1)편에서도 언급한, 디지털 공간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인식 전환을 예비하는 아이디어를 독자들도 읽어내기를 바란다. 

나는 왜 디지털 공간론에 천착하는가? 왜 인류는 디지털 공간을 희구하는가? 왜 국가의 디지털 산업 경쟁력은 ‘연결’을 넘어 ‘공간’의 설계 능력에 달려 있는가? 

이어지는 디지털 공간론에 관한 나의 논변은 새로운 상상력으로 미지의 세계를 그리던 기존의 상상력을 파괴 또는 교체하는 것이라고 할까? 인식주체가 닿지 못하는 칸트의 ‘물자체’이든 비트겐슈타인이 ‘말할 수 없다면 입 닫고 있으라고 했던 것’이든 이것을 버젓이 인식대상으로 불러내는, 기술이론을 설파한 버트란드 러셀과 같은 초기 분석철학자들의 방편적 의미대상을 “디지털 공간”이라고 이름하여 이를 실체로 바라보자는 논변이다.

이는 디지털 공간 현상을 물리 공간인 현실 세계와 차원을 달리하는 공간 현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인데, 필립 K. 딕의 1968년 SF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물을 때 누구도 아직 답하지 않은 긍정적 답변, 즉 “그렇다”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  

“디지털 공간론에 있어서의 제원리(諸原理)”에 도달하기까지 나는 오랜 기간 디지털 공간론에 천착하는 동안 “AI 로봇 인간이 ‘전기양’ 꿈을 꾼다고?” 물으면 “그렇다”라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디지털 공간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오독과 곡해가 버무려진 공간 인식 오류와 혼돈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디지털 공간의 근본 구조를 설명하는 기본틀을 얻었다.

지금까지 제기된 다양한 디지털 공간론은 물리 공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확장된 공간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나 새로운 관점을 더해주는 만큼 경계가 불분명한 혼돈과 오류도 많이 낳았다. 

내가 제1편의 글의 말미에서 언급한 4가지의 디지털 유령(specter)은 ‘자기가 있어야 할 공간에 있지 않고, 있어서는 안될 공간에 머무는 것’으로서 공간 인식 오류에서 제자리를 잡지 못했던 것들이다. 이 외에도 혼란은 도처에서 발생해 왔다. ‘사이버 공간 속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존재론과 그 심리철학적 함축에 관한 수많은 논변들도 마찬가지이다.

심각한 것은 대한민국의 디지털 산업 경쟁력의 침식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상황들이고 이런 상황 자체도 관련 이슈에 관한 의사결정자들의 공간 이해 부족에서 야기되는 어두운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다. 

ㅡ “넘사벽 된 애플, 우린 안중에도 없다.”… 삼성전자의 탄식

ㅡ 구글 I/O 개막… ‘갤럭시 워치’에 구글 어시스턴트’ 들어간다

ㅡ 구글 ‘안드로이드폰에 신용, 교통카드, 자동차키 저장해 이용’

ㅡ 포스트 코로나 시대.. ‘DID 자기주권 신원’으로 ‘나’를 증명해야

ㅡ 삼성, 차세대통신 6G 주도 선언.. “모든 인간, 사물 초연결”

ㅡ 구글, 모질라, 애플, 스파이를 막기 위한 카자흐스탄 루트 CA 인증서 차단

ㅡ Apple, Google, and MS want to kill the password with “PassKey”

ㅡ 삼성전자, ‘고객 경험’에 미래 걸었다… ‘뉴삼성’ 밑그림 완성

ㅡ 조주완 사장 한 마디에 … LG전자 ‘고객 경험 실험’

더우기 지난 5년 동안 제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던 그 치열한 신혁명 시기에 우리가 맞이한 다음의 사건들은 과연 치명적이지 않은가?

ㅡ 시장지배적인 LG TV에는 아마존의 AI인 ‘알렉사’가 탑재

ㅡ LG 가전 8종은 이미 AI 스피커 ‘구글 홈’과 연동 완료 

ㅡ AI 스피커인 SKT 누구(NUGU)와 KT 기가지니에는 LG TV가 그랬던 것처럼 아마존의 ‘알렉사’가 탑재 

ㅡ 삼성의 갤럭시 워치에 ‘빅스비’가 아닌 구글 ‘어시스턴트’ 탑재

다음 편의 글에서 디지털 공간론의 제원리(諸原理)를 상술하여 지금까지의 논변을 계속 보충하고자 한다. 제원리는 내가 자신있게 얻었다는 디지털 공간의 기본틀에 기초하는 것으로서 그 기본틀은 아래와 같은 이슈에 대한 그 동안의 고민을 통해 얻어진 것들이다. 

ㅡ ‘소멸하지 않는 기억’의 디지털 공간의 독립성과 그 구성요소. 즉 디지털 공간의 의인화(personification)는 공간 인식의 방해요인

ㅡ 속성으로서의 연결(connection)과 접속(access)의 의미

ㅡ 접속에 사용되는 디바이스의 특징, 특히 IoT 디바이스가 아닌 인간이 상시 연결 상태를 유지하는 접속 디바이스의 공간 주체로서의 의미

ㅡ 디지털 공간과 물리 공간에서의 데이터 규범의 혼돈

ㅡ 접속이라는 디지털 공간에의 출입이 야기하는 공간 주체의 정체성을 Physical Identity (PID)와 Digital Identity (DID)로 구분 소홀

ㅡ 데이터 공간으로서의 디지털 공간 이해와 디지털 경험 경제 이해 부족

ㅡ 디지털 공간에서의 최소한의 데이터 규범 요구 사항은 “기술적 요소”로서의 신뢰(trust) 구조 설계 소홀, 관련 기술경험과 인력 부족

ㅡ 디지털 공간의 ‘기술 규범’으로서의 신뢰(trust)의 근본은 일반적으로는 DID의 도용 금지와 방지이고, 예외적으로는 PID와 DID 연계 접속 도용 금지와 방지

ㅡ 디지털 공간에 최소한의 신뢰(trust)를 담보하는 기술적 요소를 적용하여 PKI (Public Key Infrastructure) 공간 구축이 급선무

ㅡ PID로서의 생체정보 중 가장 편리한 접속 수단으로서의 성문(聲紋)에 대한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보호 설계 시급

ㅡ 디바이스가 일으키는 프라이버시(privacy)와 개인정보 문제 그리고 관련하여 접속(access)에 대한 국가와 민족에 따른 문화적 차이 그리고 결과로서의 정책 차이

ㅡ PID와 DID의 단절성 (서로 독립된 공간 주체 관계)과 연관성 (서로 연관된 공간 주체 관계)에 대한 구조적 이해 결여, 관련하여 익명성(匿名性)과 실명성(實名性) 재검토 요구

ㅡ PID를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은 나의 몸, 즉 생체정보이고, 그래서 생체인증이라는 사실상 유일무이한 물리공간의 자기 증명 수단에 대한 새로운 인식

ㅡ 디지털 공간은 DID로서만 구성되어야 하고 (국가로 말하면 영토와 국민과 주권 중에 국민이라고 할 수 있는 바), 물리 공간의 PID를 디지털 공간의 요소로 여겼던 엄청난 오류를 교정해야 하는 시급성

ㅡ 물리적 자기 증명 수단인 PID는 디지털 공간에 흘러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데이터 규범. 즉 독립된 다른 공간에 왜 인간이 어슬렁거리는가?

ㅡ 따라서 디지털 공간에 붙들려 있는 무수한 PID를 제거해야 하는 Clean Digital Space 구조로의 점진적 변경 필요

ㅡ 디지털 공간에서의 그리고 무수한 각각의 디지털 공간에서의, 수많은 메타버스와 블록체인 공간에서의 하나의 DID의 무수한 그리고 실시간 활동의 신뢰(trust) 연결을 뒷받침하는 연결 인증 (chain of authentication) 시스템의 설계 결여

ㅡ DID는 디지털 공간에서의 연결 상태에서의 데이터 생산을 하는 모든 디바이스와 장치에 부여되는 ID로서 구성 요소의 핵심 (가정의 와이파이망의 경우에도 접속 디바이스의 수가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 평균 20대, 2025년 40대 예상)

ㅡ 디지털 공간에서의 인공지능(AI)의 의미는 ‘공간성’의 강화 요소

위에 나열된 이슈들은 특히 디지털 “신뢰”공간 설계와 이해를 위해 관건이 되는 것들이다. 물리 공간에서는 포기하더라도, 디지털 공간에서만은 인간의 부조리를 막거나 최소화하는 아이디어를 ‘신뢰(trust)’공간 설계 원리 파악에서 찾으려 한다. 글로벌 메이저로 칭송 받는 삼성전자 (Samsung Electronics Co., Ltd.)마저도 ‘신뢰(trust)’의 개념과 구조에 대해 무지하고, 이를 설계하거나 구현하는 기술 인력이 부족하고, 특히 경영진들은 기초 개념 조차도 없다는데서도 디지털 산업 경쟁력 침식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다른 대기업을 거론할 것도 없다. 침식이 진행 중이고, 해서 잠재성장률에 치명적 상황이 오고 있다.

디지털 “신뢰”공간론은 물리 공간에 서있는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데이터 전략의 ‘서론’이 될 것이고, 디지털 산업론의 ‘본론’이 될 것이라고 말하려니 이 또한 아이러니한 말이다.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newdhjj@gmail.com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연락처는 newdhj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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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된 여우

시베리아 한 가운데 있는 노보시비르스크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생물학 실험이 일어나고 있는 도시다. 1959년부터 진행중인 인류의 이른바 ‘가축화’ 실험이다.

이 실험은 구 소련 과학자인 드미트리 벨야예브 박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다윈의 저서를 탐독했던 벨야예브는 모든 가축화 된 동물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가축들은 자연에 있는 친척에 비해서 짧은 주둥아리, 고뿌라진 꼬리, 얼룩진 털과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가장 쉬운 예로 늑대와 다양한 개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오늘 날에는 이른바 가축화 증후군이라 불리고 있다.

벨야예브 박사는 이러한 공통점이 같은 메커니즘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동물을 대상으로 이를 증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동물의 유용성보다는 인간 친화성에 기반한 선택이 가축화 증후군의 원인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의 실험대상은 시베리아 야생에서 사는 은여우였다. 실험의 방법은 포획된 여우 중 가장 순한 개체를 골라 번식을 시키고, 태어난 새끼들 중에 다시 가장 순한 개체를 골라 번식을 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는것이었다. 불과 6 세대가 지나지 않아 인간을 잘 따르는 여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는 이름을 붙여주어 부를 수 있었으며, 안심하고 어린 아이들과 함께 둘 수도 있었다. 벨야에브 박사의 가설대로 이들은 인간 친화성을 가짐과 동시에 가축화 증후군을 ‘앓기’ 시작했다. 주둥이는 짧아지고 몸에 점과 얼룩이 생긴 것이다. 일부는 귀가 처지고 꼬리가 말리기도 했다. 즉 여우가 ‘개’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애완 동물이 된 여우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이제 유전자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공격적인 여우와 순한 여우는 백 개 이상의 유전자가 대뇌 전두엽 부위에서 차이를 보인다. 여우의 염색체 15번의 특정 부위가 가축화 변이의 핫 스폿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또한 안면 골격, 털 색깔, 그리고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까지 결정짓는 신경능세포라는 특이한 세포가 가축화 증후군과 관련 있다는 것도 밝혀지고 있다. 벨야예브의 실험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노보시비르스크의 세포학유전학 연구소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실험은 시작하자마자 중단될 뻔 한적이 있다. 트로핌 리셍코라는 엉터리 과학자때문이다. 1920년대부터 소련의 공산당은 교육은 받지 못했으나 ‘올바른’ 사상을 가진 프롤레타리아 과학자를 정책적으로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하였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해 출세를 한사람이 바로 트로핌 리셍코였다. 자신이 개발한 농경법과 수확량을 과대 포장하여 스탈린의 신임을 얻은 그는 멘델의 유전학과 다윈의 진화론을 공격했다. 한 학회에서는 유전학을 반동적이고 서유럽적인 가짜 과학으로 몰아세우고 그 자리에 있었던 유전학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유전학을 부인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1959년 벨야예브의 실험의 시작과 동시에 리셍코는 감히 ‘유전학’이라는 이름을 붙인 연구소에 평가단을 파견하여 이를 저지하려고 시도하였다. 우연찮게도 당시 소련의 리더였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세포학유전학 연구소를 직접 방문하기로 결정하였다. 흐루쇼프도 리셍코의 지지자로서 벨라예브의 실험에는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흐루쇼프의 딸 라다가 그와 함께 연구소를 방문하였다. 라다는 생물학 교육을 받은 실력있는 기자였고 리셍코가 가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벨랴예브의 실험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였다. 흐루쇼프는 무언가는 해야 했기 때문에 연구소장을 파면했고. 부소장이었던 벨라예브가 소장이 되었다. 소장이된 벨라예브는 그의 뜻대로 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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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 태어나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미군정은 조선은행을 군정청 직속 기관으로 만들었다. 조선은행에 발권, 국고업무 등 중앙은행의 고유 업무를 부여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하면서, 군정청의 모든 국유재산이 정부에 이양되었다. 그러나 해방공간의 극심한 인플레의 요동으로 조선은행은 중앙은행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정부 수립 후 중앙은행 설립 논의가 본격화된다. 조선은행과 재무부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안을 내자, 미국 Fed에 도움을 요청한다. 1950년에 미국 Fed의 의견이 반영된 블룸필드 보고서를 채택한다. 보고서는 정치적 독립성을 위해 중립적 정책결정기구인 금통위 설립을 제안한다. 한국은행법 입법 정신은 통화가치의 안정, 금융의 민주화, 금융의 정치적 중립 이라고 할 수 있다.

▲ 1950년 7월 22일 발행된 최초의 한국은행권 100원권과 1000원권

그런데, 한국은행은 설립 2주일 만에 6.25를 만났고, 전쟁이후에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 6.25 전쟁 당시 폭격당한 한국은행의 처참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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