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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봄, 빌리 홀리데이 추도사

빌리 홀리데이 Billie Holiday 가 몇 주 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이제야 그녀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이글보다 훨씬 긴 부고를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테지만, 홀리데이는 그 누구보다도 더 오래 우리 가슴속에 살아 있을 것이기에 이 보잘것 없는 글이 조금 늦어졌다고해서 고인이나 남아 있는 우리에게 그리 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홀리데이가 세상을 등졌을 때 우리들은 모두 비탄에 잠겼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홀리데이만큼 진정으로 자기 파괴의 길을 걸었던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마흔넷의 나이에 그토록 힘겨웠던 삶의 여정이 마침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이미 육체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어떤 이들은 황폐해진 가운데서도 그녀의 예전의 목소리가 이따금 빛을 잃지 않고 묻어나는 순간을 위안 삼으며 아무렇지도 않은척 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차마 그녀의 모습을 보려고도, 그 노래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거의 구할 수도 없는, 1939년에서 1946년 사이의 전성기 음반들을 운 좋게도 갖고 있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차라리 집안에 틀어박혀 그녀에게 불후의 명성을 안겨준, 그 거칠게 굽이치는 육감적이고 참을 수 없이 슬픈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그녀의 육체적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그녀가 고통에서 벗어났음에 안도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업 감각이라곤 없었던 그녀가 술과 마약을 살  수 있게 해주었던 그 목소리를 잃고, 또한 한번 보면 잊지 못할 만큼 아름다웠던 예전의 모습도 잃어버리고, 어떻게 한창때의 모습과 노래를 기억하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변함없는 애정에만 의지해서 중년을 맞이할 수 있었겠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느끼는 슬픔이야말로 빌리 홀리데이의 예술, 누구라도 애석해하지 않을 수 없는 한 여자의 예술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다.  홀리데이와 견줄만한 다른 위대한 블루스 가수들은 그녀보다는 좀더 나은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이 암사자들은 종종 상처받거나 궁지에 몰리기는 했어도 클레오파트라나 페드라와 같은 비극의 여주인공에 비견할만하지만, 홀리데이의 경우는 가슴 깊이 상처 입은 오필리어와 같았다고 할 수 있다.

홀리데이는 블루스, 아니 재즈 가수들 중에서도 푸치니 오페라의 디바와 같은 존재였으며, 그녀가 카바레풍으로 불렀던 블루스는 가히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타고난 가창법은 팝송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녀의 독창성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그녀의 풍부한 감정표현에 팝적인 요소가 녹아들면서 만들어졌다. 그녀는 달콤한 선율을 철저히 배제한 채, 자신만의 흐느끼듯 늘어지는 목소리로 베시 스미스나 루이 암스트롱 처럼 비탄에 잠긴 곡조를 노래했다.

그 가늘면서도 거친 독특한 음색은 관능적이면서도 사랑의 고통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거슈인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에 나오는 곡들을 홀리데이만큼 노래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녀의 노래에는 잘려나간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며 누워 있는 사람과 같은 마음의 고통과 육체적 체념이 뒤섞여 있다. 그래서 흑인에 대한 폭력에 항의하는 시에 곡을 붙여 불후의 명곡이 된 ‘이상한 열매 strange fruit'(흑인이 백인에게 린치를 당해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모습을 노래한 것) 에서 우리는 그처럼 섬뜩한 전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고통은 곧 그녀의 삶이었이지만, 그녀는 그에 굴복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느끼는 슬픔이야말로 빌리 홀리데이의 예술, 누구라도 애석해하지 않을 수 없는 한 여자의 예술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다.  홀리데이와 견줄만한 다른 위대한 블루스 가수들은 그녀보다는 좀더 나은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이 암사자들은 종종 상처받거나 궁지에 몰리기는 했어도 클레오파트라나 페드라와 같은 비극의 여주인공에 비견할만하지만, 홀리데이의 경우는 가슴 깊이 상처 입은 오필리어와 같았다고 할 수 있다.

홀리데이는 블루스, 아니 재즈 가수들 중에서도 푸치니 오페라의 디바와 같은 존재였으며, 그녀가 카바레풍으로 불렀던 블루스는 가히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타고난 가창법은 팝송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녀의 독창성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그녀의 풍부한 감정표현에 팝적인 요소가 녹아들면서 만들어졌다. 그녀는 달콤한 선율을 철저히 배제한 채, 자신만의 흐느끼듯 늘어지는 목소리로 베시 스미스나 루이 암스트롱 처럼 비탄에 잠긴 곡조를 노래했다.

그 가늘면서도 거친 독특한 음색은 관능적이면서도 사랑의 고통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거슈인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에 나오는 곡들을 홀리데이만큼 노래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녀의 노래에는 잘려나간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며 누워 있는 사람과 같은 마음의 고통과 육체적 체념이 뒤섞여 있다. 그래서 흑인에 대한 폭력에 항의하는 시에 곡을 붙여 불후의 명곡이 된 ‘이상한 열매 strange fruit'(흑인이 백인에게 린치를 당해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모습을 노래한 것) 에서 우리는 그처럼 섬뜩한 전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고통은 곧 그녀의 삶이었이지만, 그녀는 그에 굴복하지 않았다.

strange fruit 

홀리데이의 끔찍했던 과거에 대해서는 별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녀의 자서전 ‘블루스를 노래한 여자 Lady Sings the Blues ‘에는 실제 일어난 일들보다도 그녀의 감정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사춘기 무렵 청중들이 던져주는 동전을 허리를 숙여 집지 않고 대신 자신의 손에 직접 쥐어주도록 했을 만큼 그녀는 자존심이 강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남의 도움에 기대려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 주위엔 그녀를 돕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뛰어난 안목에 더없이 진실한 사람이었던 존 해먼드가 그녀를 발굴하여 세상에 내놓았고, 1930년대 최고의 연주자들 테디 윌슨, 프랭키 뉴턴, 레스터 영이 그녀와 함께 했으며, 그녀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았던 음악 애호가들과 수많은 대중들도 그녀 곁에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죽음으로 몰고 갈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고통스러운 생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 있었다. 10살때 강간을 당하고, 십대에 마약에 중독되는 일이 설령 없었다 하더라도, 1915년 볼티모이 흑인 빈민가에서 아름다움과 자존심을 함께 지니고 태어난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너무나 커다란 약점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파괴되어 가는 와중에도 그녀는 노래를 계속했다. 비록 이미 황폐해진 목소리였지만, 그것은 마음 깊이 애잔함을 불러일으켰다. 어찌 그녀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고, 그녀를 이렇게 만든 세상을 탓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에릭 홉스봄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195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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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스타CEO의 브레인코치, 짐 퀵

25년 넘게 세계 정상급의 CEO, 운동선수, 배우, 각계각층의 성공한 사람들의 진정한 잠재력을 끌어낸 세계적인 브레인 코치다.

기억력 향상, 두뇌 건강, 가속학습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로 UN과 미국 백악관, 실리콘밸리, 하버드대학교 등 세계 유수의 기업과 기관, 단체로부터 ‘최고의 연사’로 뜨거운 찬사를 얻고 있다.

짐은 유년기에 사고로 뇌에 큰 손상을 입어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로 “뇌가 고장 난 아이”라는 말을 들으며 학습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학교 때까지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기 힘들었던 그는 결국 학업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두 번째 겪은 사고로 또 다시 머리를 다친 그는 ‘도대체 왜 나는 무엇을 해도 안 되는가?’라는 간절함과 함께 ‘배우는 방식’에 대한 본질적인 호기심이 생겨 이를 깊게 파고들게 된다.

뇌과학, 다중지능이론, 성공학을 다룬 자기계발서들을 토대로 인간의 정신 능력을 극적으로 향상시킨 심리학, 학습 분야의 이론과 연구, 전문가들의 의견을 치밀하게 분석해 잠재력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성공 전략을 만들었다.

이 성공 전략은 마인드셋(Mindset), 동기부여(Motivation), 방법(Method) 이 세 가지 영역을 아우르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끝까지 몰입해 나아가는 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짐은 자신처럼 “마지막으로 단 한 번 ‘여기까지’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그만의 성공 전략과 노하우를 담아 이 책을 펴냈다.

현재 《포브스》, 《허프포스트》, 《Inc.》, CNBC 등 유명 매체에 정기적으로 출연 중이며 여러 강연 활동을 통해 매년 20만 명 이상의 청중을 직접 만나오고 있다.

그가 직접 운영하는 팟캐스트 ‘퀵 브레인’(Kwik Brain)과 아카데미 기업 ‘퀵 러닝’(Kwik Learning)의 온라인 강좌는 전세계 195개국 사람들이 청취 및 수강 중이다.

책 소개_마지막 몰입

책 한 권 읽지 못했던 그는 어떻게 세계 최고의 두뇌력을 갖게 됐을까?

UN, 하버드, 구글… 세계 1%가 극찬한 두뇌 전문가 짐 퀵이 전하는 잠재력의 놀랍고 위대한 힘!

6년 전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가 더 똑똑해지고 싶다는 열망에 한 두뇌 전문가를 찾아 큰 화제가 됐다.

그 전문가는 바로 ‘짐 퀵’이었다.

그는 25년 넘게 세계 정상급의 CEO와 운동선수, 배우 등 각계각층의 성공한 사람들뿐 아니라 UN, 미국 백악관, 하버드대학교, 구글, 나이키, 자포스 등 세계적 기업과 기관, 단체에서 찾는 독보적이고 저명한 브레인 코치다.

세계적인 경제지 《포브스》에서는 “짐 퀵은 지식을 배우거나 일을 하거나 취미로 운동을 하더라도 원하는 수준 이상의 성과를 이루는 법을 알려준다”고 평했다.

짐 퀵은 나이, 배경, 교육, IQ에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뇌, 추진력, 기억력, 집중력, 습관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마인드셋, 동기부여, 방법 이 세 가지 영역을 아우르는 성공 전략을 직접 밝혀냈다.

특히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짐 퀵만의 집중, 학습, 기억력, 속독, 사고 전략은 전 세계 195개국의 수억 명이 열광한 매우 효과적이고 널리 검증된 방법들로 그 핵심이 《마지막 몰입: 나를 넘어서는 힘》에 아낌없이 담겨 있다.

짐 퀵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성공 전략만이 아니라 그의 극적인 인생 스토리에 있다. 어렸을 때 뇌를 크게 다쳐 평범한 학교생활과 학업이 어려웠던 그는 결국 대학교 중퇴를 결심한다.

책 한 권을 다 읽기 힘들 정도로 어떤 것을 배우고 익혀도 어려움을 겪자 자신의 인생에 한계를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랬던 그가 ‘배우는 법’을 깊이 연구하고 파고들어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버락 오바마, 오프라 윈프리 등 세계 상위 1%가 극찬한 최고의 두뇌 전문가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을 바꾼 잠재력의 힘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아마존 45주 연속 분야 1위! 《포브스》 2021 올해의 책 선정!

구글, 하버드, UN, 나이키… 세계 상위 1%가 열광한 최고의 성공 전략!

최근 습관, 성공, 두뇌 등을 키워드로 다룬 자기계발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기억력 향상, 두뇌 건강, 가속학습 분야의 세계적인 두뇌 전문가 ‘짐 퀵’이다.

그는 UN, 미국 백악관, 하버드대학교, 구글, 스페이스X, 나이키 등 세계 유수의 기업과 단체, 기관에서 앞다투어 초청하는 최고의 연사다.

사람들이 그를 찾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바로 IQ, 재능,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성과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잠재력을 쉽게 깨우는 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사실 짐 퀵은 대학교 때까지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기 힘들었던 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두뇌 전문가가 되어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버락 오바마, 오프라 윈프리 등 세계 상위 1%가 찾는 성공 멘토가 됐을까?

저자는 어렸을 때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로 ‘뇌가 고장 난 아이’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했다.

낮은 학업 성적과 타인의 편견 속에서 스스로 평균 이하의 머리를 가진, 성공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번째 사고로 또 다시 뇌를 다친 그는 자신의 능력이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 방법이 무엇인지 직접 찾아내기로 결심한다.

그는 우선 무엇을 하더라도 ‘배우는 법’ 자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식과 이론만 알려주는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뇌과학, 자기계발, 다중지능이론, 교육심리학 등 책들을 붙들고 읽기 시작했다. 두 달 후 그의 머리에 스위치가 반짝 하고 켜졌다.

난생처음으로 정보를 읽고 이해하기 시작했고 책 읽는 시간도 예전보다 몇 분의 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이 변화를 일으킨 것은 마인드셋과 동기부여의 강력한 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습 방법의 학습’을 파고들기 시작한 후로 누구라도 쉽게 효과를 경험할 수 있는 짐 퀵만의 집중, 학습, 기억력, 속독, 사고 전략을 개발해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그의 극적인 변화와 성공 전략을 담아낸 책이 바로 《마지막 몰입: 나를 넘어서는 힘》이다.

이 책은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소개되고 《월스트리트저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출간 이후 지금까지 45주 연속 아마존 분야 1위를 지키고 있다.

또한 스탠퍼드대학교 행동설계연구소 설립자 ‘BJ 포그’, 싱귤래리티대학교 공동설립자 ‘피터 디아만디스’, 마블 전 명예회장 ‘스탠 리’, 하버드대학교 신경학과 교수 ‘루돌프 탄지’ 등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로부터 강력 추천을 받았으며 《포브스》에서는 ‘2021년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이 책을 추천했다.

“우리 내면에는 슈퍼히어로가 있고

이 책은 그 힘을 발휘하는 법을 알려준다!”_스탠 리(마블 전 명예회장)

평범한 인생을 역전시키는 잠재력의 놀랍고 위대한 힘!

짐 퀵은 자신처럼 “마지막으로 단 한 번 ‘여기까지’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25년 넘게 쌓아온 그만의 성공 전략과 노하우를 담아 이 책을 펴냈다.

총 4개의 부에 담긴 내용은 우리가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에서부터 낡은 마인드셋을 바꾸고 강력한 동기부여를 가지고 잠재력을 터뜨려 지금의 나를 넘어서는 방법들로 이뤄져 있다.

제1부에서는 스스로를 한계의 벽 안에 가뒀던 저자의 과거 이야기와 함께 배우고 생각하는 인간의 행동과 습관을 나쁘게 길들이는 환경과 사고방식의 문제를 지적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디지털 환경이나 사람들의 통념이 우리의 능력을 오히려 퇴화시키고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며 이를 제거하고 이겨내야만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2부는 어렸을 때부터 쌓아온 자기 자신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없애고 잠재력을 가두는 7가지 오래된 통념의 거짓과 진실이 무엇인지 설명하며 마인드셋을 철저히 재설계할 것을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IQ, 환경,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변명과 편견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우를 소개한다.

‘나는 여기까지야’라는 학습된 무력감에 익숙해진 마인드가 자신의 잠재력을 가두는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족쇄임을 깨닫게 한다.

제3부에서는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강력한 동기와 지속하는 힘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아무리 재밌는 일이라도 이유가 없으면 결국 하지 않게 된다.”고 말하며 행동하게 하는 동기부여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더불어 자신을 움직이게 할 목적을 찾았다면 이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해내는 에너지원인 두뇌와 습관, 몰입의 힘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제4부는 짐 퀵만의 노하우가 담긴 집중, 학습, 기억력, 속독, 사고법의 비밀을 알려준다. 저자가 25년 넘게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이론을 살피고 직접 전문가들과 만나 그들의 성공 전략이 무엇인지 이야기 나누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더해 그 핵심을 제4부에 담았다. 여기서 소개된 방법을 직접 실천해본다면 누구라도 쉽게 집중력, 학습력,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방대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입력하는 속독법에 능수능란해질 것이며 넓고 깊은 사고가 가능해질 것이다.

《마지막 몰입: 나를 넘어서는 힘》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끝까지 몰입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아가는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최고의 책이다.

공부, 건강, 커리어, 인간관계 등 다양한 방면에서 성장하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깨워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펼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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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미래]⑥서촌 작은 길 연결해 주변 상권 곳곳과 연결해야 -모종린 연세대 교수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골목길이 어떻게 동네를 풍부하게 만들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경제학을 통해 그 방법을 모색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골목길 경제학자’라고 부른다. 모 교수는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제정치경제, 세계화 등을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전 세계 매력적인 도시들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비결에 대해 궁리했다. 그리고 그 비밀 중 하나가 바로 골목길이라고 봤다. 그의 주장처럼 한국의 주요 관광지로 거론되는 홍대ㆍ가로수길ㆍ이태원은 모두 작은 골목길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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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각별한 당신’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자기안의 중심을 잡고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부드럽고 은은했습니다. 과하지도 전투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묵직한 여운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좋아 더 좋은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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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7일, 트루먼은 미군을 한국전쟁에 투입했다.

트루먼 미대통령은 미 공군과 해군에 한국전쟁의 참전을 명했다. 또한 트루먼은 공산주의 중국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포모사(대만)에 미국 7함대를 배치했다. 베트남에서 공산주의 게릴라와 싸우는 프랑스군에 대한 군사 지원을 명령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인민군 9만여 명이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공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6월 25일 오후 긴급회의를 열고 ‘적대행위의 즉각적인 중단’과 ’38선 이남의 북한군의 철수’를 촉구하는 미국의 결의안을 승인했다. 당시 소련은 유엔의 중화인민공화국 승인 거부에 대해 안전보장이사회를 보이콧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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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 ④ – 디지털 공간론 3가지 원리(原理)

ㅡ 인터넷 가브넌스의 용어 사용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에 대해서는 “네트웍 상호연결의 과정(process of internetworking)”만이 있으며 “가브넌스(governance)”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면서 오직 “조정 (coordination)”만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ㅡ 이러한 제한된 의미의 조정만을 의미하는 것온 아니지만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인터넷 코디네이션(Internet coordination)이라는 용어이외에도 MIT의 David Clark는 “rough consensus and running code”라는 문구를 사용하기도 하였고, Internet Society의 의장인 Don Heath는 “rough consensus”를 “broad-based acceptance, not unanimity”라고 해석 하였다.

위의 인용문은 필자 황철증이 1999년 1월 정보통신정책 ISSUE (제11권 3호 통권 111호)로 발간한 《인터넷 가브넌스 이해 (Introduction to the Internet Governance) – IANA)와 lCANN의 역사적 분석을 통하여 -》라는 소책자에 담겨 있다. 인터넷 공간의 역사를 돕는 필자의 다른 소책자는 1998년 12월 정보통신정책 ISSUE (제10권 13호 통권 107호)로 발간된 《종합정보통신망·초고속정보통신망·인터넷·가상공간 – 새로운 법률적 이슈와 규율 (ISDN.·Information Superhighway·Internet·Cyberspace – Emerging Legal Issues and Governance)》를 참조해도 된다.

33년 전의 나의 생각과 현재의 나의 생각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글은, 누차 이야기하지만, ‘디지털 공간론’으로 ‘디지털 신 글로벌 전략’을 끌어내는 작업이다. 그 ‘공간’은 ‘신뢰’ 공간이어야 한다. ‘신뢰’는 기술적 속성일 뿐, 인간적 속성이 제거된 것을 말한다. 어쩌면 이 개념이 디지털 공간의 기초이면서 모든 것을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지털 ‘신뢰’ 공간의 응용 프로젝트로서 구현되는 것들을 우리는 플랫폼(platform)이라고 하기도 하고, 생태계(ecosystem) 라고도 한다. 급기야 메타버스(metaverse)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그렇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물리 공간 (물리 세계), 현실 공간 (현실 세계)를 묘사하라고 하면 당신은 뭐라고 답할 것인가? 엄두가 나는가? 내가 ‘디지털 ‘신뢰’ 공간 설계 능력 부족’이 대한민국 디지털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잠재성장률을 추락시키는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럼 당연히 ‘공간’을 어찌 이해해야 할 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전략적 해법을 몇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지만 그렇게 결론만 말하고 싶지 않다. 글로벌 CEO들을 만나 우리는 실제적인 해법을 원하는 욕심 때문에 사업의 해법을 직설적으로 묻는데, 그들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답변을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철학을 말한다. 한국의 CEO 중에서 월급쟁이 CEO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것들이다. 물론 오너에게서도 찾기 어렵다. 이런 지적 풍토와 토양이 디지털 산업의 경쟁력을 추락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나는 또 주장한다. 아날로그 산업, 즉 공업에서는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고 한 때는 미국과 겨뤘던 일본은 도장(圖章)과 팩스(fax)에 대한 아름다운 숭상 문화를 지키며 결국 디지털 산업에서 밀려나 침몰하고 있다.

그러니 또 성질 급하게 나에게 해법을 빨리 제시하라 요구하지만, 이어서 쓰겠지만, 이미 전편의 글에서 단서는 다 나열했다. 다시 읽어보시라.

그런데 정답만을 찾고 이를 취하려는 공부의 태도, 사유의 과정을 무시하는 자세, 그것을 나는 바칼로레아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는, 예능적 지식 축적이라고 조롱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플랫폼”, “OS”, “브라우저”, “생태계”, “시스템반도체”, “클라우드”, “빅데이터”, “BSS/OSS”, “AI” 어느 하나 변변한 게 없는 실정의 우리의 디지털 산업 경쟁력의 근본적인 추락 원인일지도 모른다.

사실 물리 공간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데 디지털 공간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요구하는 것인가. 유클리드 기하학과 뉴튼의 절대공간에 이인슈타인과 민코프스키의 상대공간이 더해졌으니, 시간과 질량과 크기에 동반하는 공간의 이해는 훨씬 어려워졌다. ‘수학적 공간’, ‘물리학적 공간’, ‘기하학적 공간’, ‘철학적 관념의 공간’, ‘예술의 상상의 공간’으로 물리 공간의 이해 확장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이 이제 우리는 ‘가상공간 (디지털 공간)’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니 도대체 ‘디지털 공간’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선’과 ‘면’을 설계하는 능력과 ‘공간’을 설계하는 능력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가 33년 전과는 다른 생각으로 점(pointland)과 선(lineland)과 면(flatland)의 연결성(connectivity)을 넘어 디지털 공간성(spatiality)을 주장하는 것은, 새롭게 생각을 해보자, 그러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는 것이다.

19세기에 출간된 에드윈 애벗 (Edwin A. Abbott, 1849 ~ 1926)의 《플랫랜드》는 20세기 물리학자들의 극찬을 받은 수학 소설인데, 《플랫랜드》 그리고 《주석 달린 플랫랜드》는 어떤 통찰을 인간에게 던지는가? “플라톤의 동굴 속에 있는 죄수처럼 플랫랜드의 사람들은 그들이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세계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세계라는 믿음, 즉 ‘차원적 편견’에 구속되어 있다. 각 도형이 ‘알고 있는’ 희미한 현실들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 편견 때문에 흐려진다.”

물리공간인 현실 세계는 어떻게 생겼을까? 굳이 답변을 하지 않더라도 알 것이지만, 그럼 디지털 공간은 어떻게 생겼을까? 얼마만큼을 설명해야 디지털 공간을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을까?

설명 방법이야 너무 다양하다. 나는 물리 공간의 국가 구성요소로서 ‘영토’, ‘국민’ 그리고 ‘주권’에 대응하는 것을 디지털 공간의 요소로서 비유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3위 일체인가? 그런데 디지털 공간은 물질(matter)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니, ‘요소’라고 하지만 나는 이를 원리(原理)라고 말할 것이다.

《디지털 공간론 제1원리》

무엇보다도 존 페리 발로우가 선언했듯이 비트(bit)로만 이뤄진 디지털 공간을 물리 공간과는 ‘단절’ 즉, ‘독립’된 공간으로 인식한다면, 나는 이를 《디지털 공간론 제1원리》로 풀어 낼 것이다. ”디지털 공간은 있는가?(존재하는가?)” “디지털 공간은 무엇인가?”라는 존재철학적 질문에 앞서, 아니 그런 질문에 대해 전통적 철학적 사유를 통한 참과 거짓의 답변이 가능한 것인지를 따지기에 앞서 논리실증주의 또는 분석철학적 사유를 통해 그 독립의 의의가 방법적 긍정에 의해 의미체계를 이론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면 과격한 독립 선언이지만 이는 디지털 공간론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유관 공간 개념들 – ⒜ 인터넷 공간(세계), 사이버 공간(세계), 가상 공간(세계) 또는 ⒝ 유비쿼터스 공간, 만물지능공간 등 또한 ⒞ 디지털 플랫폼, 디지털 생태계 등 또는 ⒟ 도메인네임 공간, IP 주소 공간 또는 ⒠ 월드와이드웹 공간, 이커머스 공간 등 또는 ⒡ 블록체인 공간, 메타버스 공간 -과 구별하고 총칭하여 독립된 공간으로서의 “디지털 공간”으로 부를 것이다. 하여튼 공통적 요소로는 기술적 공간이고, ‘인간의 냄새가 없는 차가운 공간이다.’ 공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의 활동 표현을 지금까지 웹서핑(web surfing)이라고 하였다면, 앞으로는 디지털 공간 유영 (digital spacewalking)이라고 해야할까?

《디지털 공간론 제2원리》

그리고 존 페리 발로우의 독립선언서에 등장하는 ‘그대들’(You)은 물리 세계의 정부 (Governments of the Industrial World)를 일컫고, 우리(We)는 당연히 ‘사이버 공간인’ 즉 ‘디지털 공간인’을 말하는데, 그는 이를 “our virtual selves”라고도 말했다. ‘우리(We)’를 어찌 정의하여야 하는 지는 이 글의 핵심을 관통하는 미묘한 주제어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무색, 무취, 무미, 건조한 디지털 공간의 디지털 공간’인’의 속성에 인간적 요소를 담을 것인지 말지는 더욱 미묘한 주제이다.

전편에서 나는 디지털 공간을 의인화(personification)하여 이해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DID는 DID일 뿐 PID와는 독립된 것이다. PID는 지구인이라면, DID는 행성 ‘판도라’의 토착민인 “나비(Na’vi)”이다. 의인화된 “아바타(Avatar)”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DID가 될 수도 있지만 디지털 공간인은 “나비(Na’vi)”이다.

인간은 우주 공간과 지구에서의 존재의 자기정당성을 인류 원리(人類原理. anthropic principle)로 증명하는데 이는 자기 모순의 순환논증일 뿐인 ‘인간중심원리(人間中心原理)’이다. 자연에 가하는 오염 인자인 인간의 발자국이 ‘달’에는 남았지만, ‘화성’까지에도 허용돼야 할 것인가? 더욱 ‘디지털 공간’까지에도?

그래서 나는 물리 공간의 ‘인간’으로부터의 독립에서 비롯되는 ‘디지털 공간론 제2원리’를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공간론 제3원리》

그럼 《디지털 공간론 제3원리》로서 ‘주권’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는 앞에서 언급한 2가지의 원리에서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것으로서 물리 공간에의 종속으로부터, 그 공간의 인간에 의한 지배권으로부터의 독립에서 비롯되는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3가지 원리(原理)에 대한 지금까지의 설명은 아직 ‘소극적(消極的)’ 정의에 머무른다. ‘적극적(積極的)’ 의미의 ‘디지털 공간’, ‘디지털 공간인’, ‘디지털 공간 주권’을 치밀하게 구성하여 설명하는 작업은 바로 디지털 공간 설계도에 이르는 선행 작업이고 첩경인데, 이는 좀 길어질 수 밖에 없어 다음 편의 글에서 다룰 수 밖에 없다.

신은 편견 가득하고 조변석개를 즐기며 감정에 흔들리는 인간에게 물리 공간 운행(運行)을 맡길 수 밖에 없었지만, 《신뢰》 공간을 기대하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듯 참으로 난망하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AI는 인간에게 의지하는가 스스로에게 의지하는가? 디지털 공간의 자율 운행(運行) 능력은 AI에 의해서 더욱 더 강화되고 있지 않은가? 디지털 공간의 신뢰의 구조는 쿠르트 괴델(Kurt Gödel, 1906 ~ 1978)의 ‘불완전성 정리’가 AI의 출현을 야기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그 함의를 생각해볼만 하지 않은가?

신이 우주와 생물과 인간을 창조했다고, 나는 믿지 않지만, 굳이 말할 수 있다고 해도, 신이 물리 공간의 운행(運行)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그렇듯이, 인간은 디지털 공간과 디지털 공간인을 창조했지만 인간이 설계(설정)한 기술적 구현대로, 그러나 인간이 관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디지털 공간은 저절로 운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물리 공간에서 지적 설계 (intelligent design) 논의는 사이비 과학이지만, 디지털 공간 설계에서 ‘디지털 지적 설계’ 논의는 방법적인 의미가 크지 않은가? 국가라는 공간 설계를 사전에 준비한 정도전의 조선 경국이 전대미문의 세계사적 의의를 가진 것으로서 500년 넘는 장구한 역사를 만든 것에서도 ‘디지털 공간 설계’는 심원한 도전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 디지털 공간은 물리 공간과 인간으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만 ‘디지털 《신뢰》 공간 설계’가 보다 완벽하게 가능하다.

그렇다. 나의 글은 공간 인문학을 위한 글이 아니다. 국가와 기업을 위한 전략보고서이다. ⒜ 디지털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디지털 공간 설계 능력” 확보 방안에 관한 제안이다. 이것이 이글의 본래 목표이다. 디지털 산업이 자동화를 통해 일자리를 축소시킨다는 주장도 디지털 유령으로 취급하게 될 것이다.

부수적인 제안을 하게된다면 이는 ⒝ “개인정보보호 규제체계에 대한 틀을 재정비”하는 일과 ⒞ “글로벌 데이터 플랫폼 회사와 맞짱” 뜨는 일에 대한 제안도 할 것이다. 전술한 글들에서 언급한 4가지의 디지털 유령의 문제와 앞 ③편의 글 말미에서 검토 사항으로 제시된 18가지의 이슈도 앞으로의 글들에서 해소할 것이다. 당연히 《디지털 공간론의 3가지 원리》의 소극적 측면의 내용 뿐만이 아니라 다음 편에 상술할 ‘적극적(積極的)’ 측면의 내용에 기초하여 진술할 것이다.

(2022년 6월 13일)

/디지털신뢰공간 아키텍트 황철증 디지털신뢰공간연구소 소장

서울대 법대(학사) 및 행정대학원(석사), 미국 콜럼비아 법대 (석사), 고려대 정경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행정고시 29회로 1986년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서 단기 훈련을 거친 후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을 시작하였습니다.

BH, 국무총리실, 국정원(사이버안전센터), NIA 등에서도 근무를 한 바 있으나 주로 정보통신부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끝으로 26년간의 공직을 마친 후 사회의 한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분야의 독서와 사색으로 삶을 붙들고 있으면서, 일찌기 담당한 인터넷 정책에 관한 주제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소위 디지털(인터넷) 아키텍처와 디지털(인터넷) 철학자로 스스로를 부르며 현대의 기술문명 역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을 즐깁니다.

한편으로 이병주 소설가, 박이문 철학자, 최제우 동학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진화생물학자,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 등 훌륭한 학자와 문인에게 지적 의식을 의탁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번 연재글의 게재로 IT기자클럽의 디지털문명 칼럼니스트로 소박한 의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연락처는 newdhj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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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6월 16일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에서 포드자동차를 시작하다.

회사가 설립된 지 한 달 후, 첫 포드 자동차인 Model A가 생산되었다. 2~3명의 작업자가 주문한 부품을 손으로 조립한것이다. 1903년 대한제국 고종이 재위 40년 기념으로 영국에서 구매한 자동차(어차,御車)가 바로 포드의 모델 A 자동차였다 

포드는 보통사람도 구매할 수 있는 자동차 생산이 궁극적 목표였다. 마침내 포드는 표준화된 생산라인으로 24초마다 한 대의 모델 T를 생산할 수 있었다. 1908년 10월  825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이 매겨진 포드 모델 T의 판매가 시작되었다. 1918년까지 미국 자동차의 절반이 Model T였다.

다소 혼란한 시기를 거친 후, 1927년에 포드는 현재의 본사인 디어본에 건설한 대규모 공장으로 이전했다. 공장에는 유리 공장, 제철소, 조립 라인 및 기타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모든 구성 요소가 포함되었다. 같은 해에 포드는 Model T의 생산을 중단하고, 더 나은 마력과 브레이크를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Model A를 출시했다. 그러나 Model A는 GM의쉐보레, 크라이슬러의 플리머스에 비해 부진했고, 1931년에 단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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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텔러]도시의 미식가, 디자이너 박진배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와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공부했다.

여러 인연을 거쳐 현재 뉴욕 FIT 대학교 교수, 마이애미대학교의 명예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본업은 디자이너에 가깝지만,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가 가득한 곳들을 즐겨 찾는다.

주로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한적한 시골 마을을 선호한다.

정기적으로 이탈리아의 움브리아 주, 프랑스의 소담하고 정겨운 마을들, 스코틀랜드의 양조장과 바람이 좋은 잉글랜드의 해안을 방문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서울의 ‘르 클럽 드 뱅(Le Club de Vin)’,

‘민가다헌(閔家茶軒)’,

‘베라짜노(Verrazzano)’

뉴욕의 ‘사일로 카페(Silo Cafe)’ 등을 디자인했다.

레스토랑과 외식 컨설턴트로 다수의 프로젝트를 자문했고, 뉴욕의 ‘프레임(FRAME gourmet eatery)’과 한식당 ‘곳간’을 창업해 운영했다.

아르헨티나 멘도자(Mendoza) 소재 포도밭에서 매년 와인을 만든다.

『디자인 파워플레이』 『영화 디자인으로 보기』 『호텔경영과 디자인팔레트』

『뉴욕 아이디어』 『천 번의 아침식사』 등 여덟 권의 책을 썼다.

『미래디자인 선언』 『사랑을 찾아서』를 번역했다. 십수 년 전부터 일간지에 디자인과 문화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소개_도시의 미식가

“무심코 지나친 공간들의 의미를 읽어내다.”

당신의 일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줄

다섯 가지 코드로 담아낸 공간 인사이트

평범하고 소박한 공간과 사물들에는 그들이 품고 있는 콘텐츠와 더불어 나름의 형식이 부여돼 있다.

사람마다 차원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가 예술적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거기엔 켜켜한 역사와 문화가 스며 있고, 크건 작건 하나의 서사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징이라는,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 역시 담겨 있다.

이런 들뜨지 않고 정돈된 결과물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보람차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이 책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을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방법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공간과 사물이 품고 있는 메시지는 일상을 떠나 여행할 때에 더욱 효과적으로 느껴진다. 일과에서 해방된 시간과 낯선 공간이 주는 긴장과 집중이 인사이트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조언한다. 여행하면서 맞닥뜨리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 등 숨겨진 코드를 전적으로 믿으라고.

그리고 유명 관광지를 건성건성 훑어보지 말라 한다. 아울러 여행 뒤안길에 숨어 있는 그 지역만의 상징성 짙은 공간과 사물에 보석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현지인의 대화에 귀 기울이는 것은 여행의 미덕이다.

저자 역시 오롯이 그 여행법을 실천해 왔다. 바람 좋은 잉글랜드 남동부, 맛깔난 음식 천국 프로방스, 왁자한 시칠리아 포구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삶에 밀착한다.

그 공간을 담을 수 있는 시적인 미사여구는 마을 주민들에게서 나오기 때문일 터. 사소한 듯, 쉽고 명료하게 공간과 사물에 관한 진실은 저자의 기록 속에 온전히 담겼다.

수십 년간의 다채롭고 탄탄한 디자인 실무 경험으로 다져진 그는 사소한 것 어느 하나 허투루 넘겨보지 않는다. 허름하고 정겨운 것들에 대한 유별난 관심도 흥미롭다. 무심코 지나친 도심의 계단과 신호등, 시간의 틈새에 자리한 구두 닦는 모습까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을 마주할 때 느껴지는 지적 충만함을 문학, 사상,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때론 감성적으로, 때론 이지적인 사유로 다채롭게 써 내려갔다. 그러면서도 그 시선은 한결같이 내밀하고 따스하다.

“성인은 기차를 놓치지 않는다”라는 헤밍웨이의 말처럼, 공간과 사물에 대한 감상의 본질은 안목과 축적된 연륜이 있어야만 비로소 느껴진다. 탄탄하고 깊이 있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 기록들은 공간과 사물들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안목을 높여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Wit(재치), Reversal(반전), Connection(연결), Experience(경험), Communication(소통) 등 다섯 가지 코드로 분류한 흥미진진한 구성도 읽는 이들을 공간 미식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질주의 시대를 벗어나 꿈꾸는 보헤미안의 삶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책!”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곳이 보헤미안 도시다. 메타포 짙은 고급스런 표현이다.

‘보헤미안 도시’란 원래 19세기의 전통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꿈꾸며 살고자 했던 문인과 음악가, 화가, 배우들이 모여 살던 도시를 뜻했다.

현대에 와서는 문화 예술적 수준이 높은 ‘지적 도시’를 일컫는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의 도시들도 보헤미안 도시를 꿈꾸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생각만큼 여의치 않은 듯하다.

유명 도시를 여행해도 천편일률적으로 비슷비슷한 모양의 관광 포인트가 나열돼 있고, 위압적이고 화려한 쇼핑몰만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하루 종일 다리품을 팔아 잠시 쉬고 싶을 때 찾는 공원이나 휴게 시설은 여전히 허전해 피로감만 쌓인다.

저자 박진배는 디자이너이자 실내 건축가로, 뉴욕을 주 무대로 가르치며 설계하고 동시에 레스토랑을 경영하기도 한,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언뜻 삶의 궤적만 본다면 럭셔리하고 모던한 구조물이나 공간에 치중할 것 같지만, 실상은 사뭇 다르다. 이 책은 시종일관 인문의 결에 예술적 감성으로 써 내려간 공간 탐구 에세이다.

정겹고 수더분한 문체가 무겁지 않게, 슬그머니 주변을 새롭게 보게 하는 마력이 있다. 보헤미안의 삶을 꿈꾸는 그의 인생 철학과 시선이 온전히 글과 사진에 담겼다.

닫혔던 하늘길이 서서히 열리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는 자유로운 삶 속에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 준다.

우리는 궁금증이 생기면 그 즉시 검색해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에 허우적대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클릭 한 번이면 지구 반대편의 화려하고 멋들어진 공간과 거리, 건축물이 여과 없이 포착되는 비대면의 세상에 살고 있다. 그렇다 한들 우리의 삶이 윤택해졌는가? 누구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삶을 바꾸고자 한다면, 저자의 제안대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선언해 보자. 반드시 유명한 명소,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 곁에 늘 함께해 익숙했던 공간과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자. 마음을 열고 침묵과 외로움도 삶의 의미 있는 과정인 것처럼 공간과 사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그 안에 품고 있던, 그동안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새삼 다가온다.

도시 속 보헤미안을 꿈꾸는 이들에게, 안목 있는 삶에 목마른 이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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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우’네 죄를 고하여라’ (법률과 형벌로 읽는 조선)

심재우 교수는 잘 몰랐던 조선의 ‘죄와 벌’을 이야기했습니다. 어찌보면 사소하지만 조선시대의 다양한 사례를 알아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합니다.

예를 들면 춘향이는 목에 칼을 차고 옥살이를 했지만. 춘향의 목에 씌운 칼은 여성에게 사용이 금지된 형구였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여자는 칼을 차지 않았습니다.

목민심서에 막상 당하면 평생 부모 제사지낼 수 없다고 묘사한 주리틀기는 조선후기에 등장했습니다. 주로 도적을 다스리기 위해 포도청, 진영에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백범 김구도 한말에 주리틀기를 당했습니다. 그는 해주감옥에서 정강이뼈가 허옇게 드러날 정도로 모진 주리 고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조선의 죄와 벌 규칙과 체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 무렵부터 사용된 형벌이며 형구의 크기, 횟수, 타격 부위까지 엄격히 규정되어 있어 아무나 집행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형태의 처벌이 국가에 의해서만 가능했습니다.

다만 조선시대에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사적인 처벌이 허용됐습니다. 극단적인 경우 자신의 부모나 가까운 친인척에게 해를 끼친 자를 살해했을지라도 복수 살인의 정당성이 인정되었습니다. 홍콩영화의 테마이기도 한 복수는 역사적 전통이 있었다 봅니다.

정조가 직접 처리한 1,112건 사건을 기록한 『심리록』을 통해 본 조선후기의 판례는 전기와 다르다고 합니다. 살옥죄인의 처리와 징벌이 완화되어 거의 사형을 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조선전기의 소송절차 퇴장하고 사건을 간단히 처리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요즘 새람스럽게 역사를 기록한 그림 즉 이미지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170여 컷의 컬러 도판을 보니, 그 어떤 글보다 더 직접적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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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미래]⑤ “사람이 문화 콘텐츠… 터전 잃지 않도록 지켜야죠” – 김영심 가스트로통 대표


[아시아경제 류태민 기자] 아기자기한 서촌 골목길을 걷다 보면 유럽식 창을 낸 일본식 가옥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100년이 넘은 고택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고풍스럽게 멋을 낸 이곳은 스위스 출신의 롤랜드 히니 셰프와 그의 아내 김영심 대표가 운영하는 스위스 레스토랑 ‘가스트로통’이다. 가스트로통(Gastro Tong)은 미식을 뜻하는 불어 ‘가스트로’와 통의동의 ‘통(通)’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서촌이 ‘서울 600년’이라는 정체성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고려 시대 한옥부터 조선, 일제를 지나 현대까지 주택 역사의 맥이 이 곳, 서촌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황 소장은 1990년대부터 서촌의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13일 낮 서촌에서 만난 그는 서촌이 무분별한 개발이 아닌 주민들이 역사 보존과 경제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에코뮤지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