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in강연후기

정종현_제국대학의조센징

역사를 좋아했지만 역사가 그냥 이야기 같아서. 아름다운 이론체계가 없어서 실망했던 적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개념의 허망함과 인간의 욕망을 알게 된 후, 역사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종현교수는 문학전공자입니다. 방대한 자료에 바탕한 정종현 교수는 친일과 반일이라는 이념적 평가적 잣대를 넘어 바로 그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국대학생이란 엘리트와 조센징이란 차별받는 식민지출신이라는 분열적 존재에 관해서 말입니다.

형제라는 주제로 한국 근현대사를 보는 새로운 책이 내년 초에 나온다고 합니다. 무척 내년이 기다려집니다.

Posted in10줄서평

[10줄서평]스티븐 존슨의 ‘인류 모두의 적’

스티븐 존슨이 영국의 해적을 소재로 쓴 ‘인류 모두의 적’이 한국어로 출간됐습니다.

과학저널리스트 존슨은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감염 도시’ 등을 통해 과학 지식을 활용하여 숨어 있는 맥락과 의미를 재미있게 빚어내는 솜씨를 발휘하여 명성을 얻었습니다.

존슨이 이번에 잡은 테마는 전설적 해적인  ‘헨리 에브리’입니다.

헨리 에브리는 1695년 해적선 팬시호를 지휘하여 무굴제국의 메카 순례선인 건스웨이를 공격하여 막대한 보물을 약탈하고 건스웨이 탑승객을 악랄하게 고문했습니다.

또 메카 순례길에 올랐던 왕실 여인들을 대상으로 악행을 저질러 무굴의 아우랑제브 황제를 격노케 했습니다.

의도치 않은 한 해적의 약탈로 인해 무굴제국와 분쟁에 휩싸인 영국 정부는 에브리에게 당대 최고액의 현상금을 걸고 인간 사냥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부를 거머쥔 에브리는 아일랜드에 상륙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헨리 에브리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다양한 사람에 의해 다양한 시각으로 각색되면서 인구에 회자되었습니다. 보물과 해적선 스토리는 지구촌 누구나 흥미를 갖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스티븐 존슨은 어쩌면 뻔한 해적 이야기에 자신만의 관점을 덧붙여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시도합니다.

즉, 해적왕이 자신도 모르게 대영제국 시대를 여는 방아쇠를 당겼다고 봅니다.

존슨은 이런 관점아래 마치 추리 소설을 쓰듯이 대항해 시대의 역사속을 파집고 들어갑니다.

그의 시도 덕분에 한국인에게 다소 생소한 영국과 무굴제국, 그리고 동인도 회사의 실체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1695년에 어떤 일이 있는지 연표를 찾아보았다. 흥미롭게도 1695년은 조선과 일본사이 독도 소유를 놓고 분쟁이 있었다.

3부 약탈 편 10줄 요약

1.케이프세인트존 서쪽 인도양 1695년 9월 7일. 새로이 결성된 해적 함대는 계절풍이 불기 시작할 때를 한 달이 넘도록 기다렸다. 그때는 남서풍이 불며 상선들이 바브엘만데브해협을 통해 수라트로 돌아가는 게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오랜 기다림에 선원들은 헨리 에브리의 계획에 잘못이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점차 깊어졌다.

에브리는 자신이 지휘하는 배가 적어도 인도양에서 가장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슬림 상선단을 추적해 앞지를 수 있는 배가 있다면 단연코 팬시호였다.

2.열흘째 되던 날, 망꾼들이 처음으로 육지가 보인다고 소리쳤다. 봄베이 북쪽에 위치한 케이프세인트존의 윤곽이 아스라이 보였다. 무슬림 선단이 정박후에 화물을 내리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가장 큰 배는 마트마흐마마디호로,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압둘 가파르가 주인었다. 에브리는 이 배를 공격하라고 명령했고, 6만파운드 가치가 넘는 금과 은을 찾아냈다. 에브리와 선원들에게 삶을 바꿔 놓을 만한 재산의 획득이었다. 그러나 은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계산을 해냈을 것이다.

3.팬시호는 건스웨이호(무굴제국의 메카 순례선)를 추적했다. 이 배는 1000명 수용능력과 80문의 대포, 수백정의 머스킷총을 갖추고 있었다. 에브리와 그의 선원들은 굶주렸고 용맹무쌍했다. 그들은 ‘넘치는 보물’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4.팬시호의 공격 과정에서 세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 건스웨이호 대포가 폭발하여 6명 포수가 즉사하고 갑판은 불바다가 되었다. 팬시호의 포격이 건스웨이호 돛대를 때리며 주된 돛과 그에 연결된 모든 삭구가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으로 배에는 금 은 장신구와 상아 몰약과 유향 샤프란 등 숱한 향료가 가득했다.

5.건스웨이에는 순례에 나섰던 궁녀들이 타고 있었고 그중에 아우랑제브 왕의 손녀가 있었다. 에브리가 공주를 어떻게 대했는가를 놓고 다양한 이야기가 지어졌다. 그중에 에브리가 공주에 연민을 느끼고 청혼했다는 러브스토리와 강제로 공주를 능멸했다는 스토리가 섞여 있다.

6.당시 수라트에 머물던 카피 칸이라는 특사는 사람들을 조사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그들이 건스웨이와 압둘 가파르의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심히 야만적으로 학대했고, 돈을 감춘 곳을 알아내려고 온갖 고문을 가했다고 확신합니다.

메카를 순례하고 돌아오던 위대한 움브로의 아내가 그 배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 여자가 왕의 친척이었습니다.

해적들이 지체 높은 여자를 욕보였고 다른 여자들도 학대했습니다.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을 남편에게 보이지 않으려 자결한 여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7.무함마드의 눈에 왕실 순례선 포획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신성모독이었다. 무슬림에게 가장 신성한 행위로 여겨지는 성지 순례에 참여한 여인들에게 끔찍한 성폭력을 저질렀던 것이다.

아우랑제브는 수라트 동인도 무역 사무소의 자산을 압류하고 봄베이캐슬 공격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동인도회사는 아우랑제브의 통치를 위협하고 그의 종교적 믿음을 훼손하려는 침략군이었다. 이제 그들을 축출할 때였다.

8.에브리의 약탈 사건과 관련해 영국의 핵심 관계자들은 각자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를 정확히 몰랐다. 해적, 기업, 국가라는 뚜렷히 구분되는 세 범주가 있었지만 각 범주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었다.

헨리 에브리의 행동이 야기한 세계적인 위기는 결국 이런 근원적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9.에브리의 약탈로 인해 동인도회사를 앞세운 영국의 글로벌 무역 네트워크이 무력화될 위기가 발생했다.

결국 영국 정부는 대 인도 무역망을 유지하기 위해 동인도회사의 지원을 받아 현재 가치로 5만달러 상당의 현상금을 걸었다. 에버리 일당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것도 허용되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촌 차원의 범죄자 체포를 시도한 것이다.

10.세계 전역에 주둔한 군사력, 지역 법 집행관들, 외딴 식민지 전초기지의 총독들, 상선 서선원, 아마추어 현상금 사냥꾼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한 명의 지명 수배자를 추적하고 나섰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에브리의 머리에 가격표를 붙이고 본격적으로 인간 사냥을 시작한 때는 헨리 에브리가 수라트를 떠난지 10개월이 지난 뒤였다.

Posted in강연후기

한대웅_아버지는머슴이었다

‘아버지의 첫직업은 머슴이었다’는 가족의 이해와 화해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 한일순이 구술하고 아들 한대웅이 써가면서 아버지와 아들은 처음으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알아갑니다. 모든 삶은 기록할 가치가 있다, 평범한 사람의 인생도 기록되면 하나의 역사가 된다는 말도 모두 거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가족의 행복이니까요..

Posted in10줄서평

주경철의 ‘질문하는 역사’

“우리는 왜 강대국 역사만을 배우는가?”

“서구는 언제부터 역사의 주역이 되었으며, 중국은 왜 서쪽으로 가지 않았나?”

“권력이 늘 역사를 필요로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사)의 ‘질문하는 역사’는 2002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주교수는 20년만에 다시 책을 내면서 역사에 던지는 질문의 의미를 재차 강조합니다.학문은 결국 묻고 또 묻는 지난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인문학의 경우 누구나 만족하는 답을 얻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질문의 과정 자체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즉 묻고 잠정적인 답을 찾고 다시 그 다음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사고가 넓어지고 깊어집니다.주교수가 20년에 던졌던 질문은 현 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임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중국이 서쪽으로 가지 않았을까’는 질문은 ‘시진핑은 왜 일대 일로를 밀어붙일까’와 연결됩니다.

중국이 서쪽으로 가지 않은 까닭은 편

근대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현상은 무엇일까? 가장 유력한 후보중의 하나는 ‘유럽의 세계 팽창’일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유럽 세력이 15~16세기 이후 그 아류인 미국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서 군사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온 지구를 지배하게 됐을까?

중세만 해도 서구는 압박받는 불쌍한 소수 민족에 가까웠다. 이슬람의 세력팽창으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긴 유럽이 처음 가까운 바깥으로 힘을 써본 것이 12~13세기 십자군 운동이었다. 약간의 자신감을 갖고 먼 곳까지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 15세기 이후의 아프리카 해안 탐사나 아시아 여행이라 할 것이다. 포르투갈인 바스코 다 가마가 1497년 리스본을 떠나 아프리카 동부의 말린디를 거쳐 인도의 캘리컷에 도착했다. 다 가마는 “우리는 기독교도와 향료를 찾아서 왔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이 만난 사람은 모두 힌두교도였고, 향료와 교환하려고 유럽에서 가지고 간 직물은 비웃음을 샀다.

다 가마 일행은 인도사람으로부터 50년전에 당신들과 비슷하게 흰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왔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명나라 환관 정화가 이끈 대 함대의 항해를 가르키는 것이었다. 1405년~1433년 사이 300척의 배와 2만8천명의 선원으로 구성된 대규모 원정대를 바다로 내보냈다. 정화 함대가 아프리카 동부 해안을 순항한 것은 분명하고 일설에 희망봉 근처까지 간 것으로 되어 있다. 내친 김에 아프리카를 돌아 유럽까지 항해하여 런던 앞바다를 가로막고 행패를 부리고 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지만 정화의 항해는 평화적이었다. 대표적인 충돌사건으로 실론섬의 어느 국왕이 시비를 걸어와서 소규모 전쟁정도를 벌인 것일 정도로 평화적이었다.중국은 종교에 대해 관대했다. 정화가 실론섬에 세운 비석은 세 개의 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정화가 절에서 부처님께 공양을 드렸다는 내용은 한자로, 명 황제가 힌두의 신을 찬양한다는 내용은 타밀어로, 알라의 영광을 기린다는 내용은 페르시아어로 새겨져 있다.

정화 함대를 파견한 이유는 생사를 알 수 없는 건문제(정난의 변에서 영락제에게 제위를 빼앗김)를 찾는 것이었으나, 실제 중국의 힘과 위엄을 과시하여 중화 세계의 질서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인도양 순항이후 중국이 내린 결론은 해외의 오랑캐들은 중화에 필요치 않다는 점이었다. 이런 태도에 만주족의 위협이 심각해지자 남해보다는 북방대륙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또 유교적 관료들이 황제의 총애를 받는 정화 등 환관을 비판하자 해외 탐험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배는 쪼개서 땔감으로 쓰고 민간인이 바다로 나가는 것 자체를 법령으로 금지시켜버렸다.(해금령) 해금령으로 인해 중국은 ‘제국주의 없는 제국’ 자기 내부로 갇혀버린 제국이 되었다. 머지 않아 왜구들이 중국 해안을 제집 드나들 듯 헤집고 다녀도 제어하지 못하고, 포르투갈인을 비롯한 서양 오랑캐들이 집적대도 마땅히 대응할 방도가 없게 된 것이다.

근대 초입, 중화제국은 여전히 세계 최정상에 있었다. 상업을 천시하는 중화제국의 황제의 눈에 포르투갈 왕이 아시아에 보낸 선단을 보내고 나서 ‘상업과 항해의 왕’이라는 촌스럽기 그지 없는 이름을 쓰는 것을 알았다면 눈물나게 웃었을 것이다.그러나 장거리 경주에서 최후의 승자는 뒤에서 뛰쳐나오기 십상이다. 포르투갈 뒤편에는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같이 훨씬 더 지독한 종자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을 황제가 알리가 없었다

Posted in강연후기

김태우_냉전의마녀들

김태우교수는 ‘냉전의 마녀들’을 외면할수 없는 운명같았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국제여맹이 10여일 동안 북한을 돌아다니며 목격한 민간인 대상 폭력의 참상을 담은 책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이야기는 어쩔수없이 논쟁적일 일 수 밖에 없고. 머뭇거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책은 프랑스에 살던 피카소가 지구 정반대편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터의 학살을 소재로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을 떠올리게 합니다. 피가소의 그림은  프랑스 공산당의 주문에 따라 그려졌다는 통설 탓에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물론 서구 화단에서도 외면당했던 그림입니다. 국제여맹의 보고서도 매카시즘의 광풍을 맞고 소련의 선전 팸플릿으로 폄하돼 잊혀져었습니다.

20년 전 보고서를 처음 접한 김태우교수도 소련이나 북한의 정치선전물로 쉽게 단정했었다고 합니다. 하나 이후 미군의 이른바 ‘초토화 정책’에 관한 연구들을 접하면서 국제여맹 활동에 다시 주목하게됩니다. 그는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와 미 공군의 기록, 조사위원들이 본국에 돌아가 남긴 개인 기록·언론 활동들을 접하고, 그들이 역사적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70년전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조사위원들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질문은 “전쟁이 언제 끝날까요”였다고 합니다. 전쟁이 왜 아직 끝났다고 말할 수 없을까요? 그 수행방식은 왜 그토록 잔인했을까요?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더 진지하고 집요하게 물어보아야 한다고 그는 이야기 합니다.

Posted in강연후기

이한우_지혜의 바다에서 고전을 낚는법

서양철학에서 동양의 정치론으로 옮겨간 그의 질문은 한문번역이라는 큰 산도 넘게 했습니다. 그야말로 동양고전과의  20여 년에 걸친 악전고투의 방황기는 흥미진진했습니다.

이한우선생이 집필한 책의 역사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역사였습니다. 공부하고 질문하고 다시 공부하고..질문의 답을 책으로 출간하는…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동양고전까지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실록에  사람을 보는 눈을 논어를 통해 길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논어가 그런 책인가?’ 의문을 품으며 논어를 읽었습니다.  이제 그는  논어가 심신수양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조직에서 살아가는 일종의 조직심리학이라고 생각하게되었습니다. 곧 왕과 신하가 조직에서 어떻게 주장하고 소통하느냐, 다른말로 “정치행위”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지요.

심지어 주역도 점쾌라기 보다는 조직적 현실에 패턴에 따른 대응법이라 그는 생각합니다. 고전은 더이상 고전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Posted in10줄서평

[10줄서평]클라이브 해밀턴의 ‘중국의 조용한 침공’

클라이브 해밀턴 중국 전문가가 쓴 ‘중국의 조용한 침공'(Silent Invasion)을 소개합니다.

해밀턴은 2016년 호주의 유력 정치인이 중국으로부터 뒷 돈을 받고 정치활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중국의 대호주 침투 전략을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조사를 통해 중국이 공산당이 통제하는 기업을 통해 항만, 전력, 통신, 농업 등 호주의 주요 자산을 큰 그림(일대일로)아래 사들이고 있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또 정치인, 학자 등 여론 주도층을 매수하여 미국에 등을 돌리고 중국 편을 들도록 은밀하게 여론 공작을 하고 반중 인사을 고립되도록 한 점도 알아냅니다. 특히 저자는 이 책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여러 출판사로부터 출판 거부를 당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호주가 아니라 한국 이야기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호주의 권력층은 친미과 친중으로 갈려져 있습니다. 해밀턴 처럼 중국 종속화를 비판하면, “미국의 속국 처지인데, 친중이 대수냐”라는 비난을 받습니다.

해밀턴은 시진핑의 세계 패권 전략의 진짜 무서운 점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이대로 두면 호주 기관 내부는 전복되고 베이징의 끈질긴 외부 압박이 계속되면서 민주주의 가치를 점점 잊게 되고 결국 호주가 부활한 중화의 조공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10줄 요약_6장 중국에 저당잡힌 경제 편

1.중국 자금이 흘러 들어가는 첫 번째 목적지가 미국이고 그 다음이 호주다. 2007년 이후 중국이 미국에 새로 투자한 누적 총액은 1000억 달러이며 같은 기간에 호주에 투자한 총액은 900억달러에 이른다. 호주가 미국의 13분의 1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미국보다 무려 12배 가까운 중국 돈이 호주에 유입된 셈이다.

2.세계적인 은행들은 중국의 호주 농지 매입을 돕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2016~2017년 중국인 소유 농지가 급증했다. 무려 10배가 증가해 중국이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호주에서 가장 큰 농지를 소유한 나라가 되었다.

3.중국의 호주투자는 미국, 일본과 분명히 다르다. 미국 기업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맞춰 행동하라는 워싱턴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다. 중국 대호주 투자에 대한 의심은 정치적 진실에 근거한 것이다. 호주를 장악하려고 작정하고 덤비는 전체주의 정권이 호주를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모든 주요 기업에 상주하며 정치적고 전략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업의 결정을 조종하거나 직접 통제한다. 현재 중국 기업의 이사회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당위원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오죽했으면 마윈같은 슈퍼스타 사업가도 베이징의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톈안먼 광장에서 시위하는 학생들을 탱크로 진압한 일을 ‘옳은 결정’이었다고 말했을까.

5.중국은 세계를 장악하기 위해 호주, 뉴질랜드를 서구에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을 점검하는 시험장으로 활용했다. 중국은 세계 금융위기이후 금융시스템을 미국에 믿고 맡기는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금융위기를 기회로 삼아 중국은 ‘신중 절제 유보’ 정책을, ‘명료 주장 야망’ 정책으로 바꾸었다.”(폴 키팅 전 호주 총리)

6.중국 공무원들은 호주 정치인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중국에서 사업하면서 중국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쉽게 속는다. 예를 들어 앤드루 포레스트 같은 광산업자는 호주 정치인들이 중국이 제공하는 것에 감사할 줄 모른다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7.중국의 자유무역협정 전략은 베이징에 의존하게 만들고 미국으로부터 떼어내는 것이다. 미국 동맹을 깨뜨리는 것이 베이징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인 것이다.

(친중 정치인)앤드루 롭은 중국과 호주 자유무역협정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고 호주의 다윈항을 99년 기간으로 임차한 랜드브리지그룹 등 여러 중국 기업을 위해 일했다. 그가 랜드브리지에서 받은 연봉만 88만 달러였다.

8.중국 기업이 2015년 다윈항을 99년동안 임대하는 조건으로 인수했다. 2014년 중국 자오상쥐그룹은 세계 최대 석탄 수출항인 뉴캐슬항만공사를 인수했다.

또 중국은 퀸즐랜드주의 타운즈빌 항구 부지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시드니 서부 배저리스 크릭에 건설하는 국제 공항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중국이 공항을 인수하면 CCTV와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하여 비디오 감시 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9.중국과 연결된 기업이 호주의 전력, 통신 회사 지분을 사들였다. 더 큰 걱정거리는 중국이 호주 전력망과 가스 공급망을 소유한 기업을 대표하는 최고기관인 호주에너지 네트워크의 이사 절반을 장악한 것이다.

이 기관은 2016년 호주의 10년간 전력망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는 베이징이 로드맵을 이미 알고 있음을 뜻한다.

10.시진핑이 2013년에 발표한 일대일로 전략은 경제적 목적을 뛰어넘는 야심이다.  일대일로를 따라 인민해방군을 배치해 중국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미국 펜타곤은 2017년 중국의 경제적 자산이 늘어남에 따라 인민해방군의 국제적 입지도 커질 것이며, 아데만 지부티의 중국 해군기지는 인민해방군 최초의 해외기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Posted in10줄서평

[책방서평단] 윤석남·김이경의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서유경

윤석남 화백과 김이경 작가의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를 소개합니다.

일제강점기 아래 14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대해 윤 화백이 초상화를 그리고 김이경 작가가 고증을 하여 글로 썼습니다.

윤 화백은 조선시대 초상화에 대해 공부를 하다보니 수백년 동안 그려진 초상들 중에서 여성 초상화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여성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윤 화백은 일제강점기 시절 여성들 또한 나라가 망할 때 슬퍼하고 분노하며 목숨을 걸고 일제에 대항을 하였으나, 남성 독립운동가처럼 자랑스럽게 기억되기는 커녕 기록조차 제대로 남지 않아 기억에서 점차 잊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윤 화백은 김이경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그 여성들의 삶을 활자로 추적해 기록하고 초상화로 반추하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즉, 여성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어려웠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찾으며 일제에 항거했던 여성들의 삶이 초상화와 이야기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이 책은 두 테마로 분류되는데, 첫 테마로 “세상에 외치다”에서는 김마리아·강주룡, 정정화·박진홍·박자혜·김옥련·정칠성 7인의 이야기가, 두 번째 테마로  “전선에 서다”에서는 남자현·안경신·김알렉산드라·권기옥·김명시·박차정·이화림 7인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10줄 요약

  1. 대한애국부인회 재판정에서 판사가 김 마리아에게 언제부터 조선의 독립을 생각해왔는지, 어째서 여자가 남자와 함께 운동을 했는지 물어보자, 김 마리아는 “한시도 독립을 생각하지 않은 일이 없다. 세상이란 남녀가 협력해야만 성공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1. 동아일보 오기영 기자는 을밀대 투쟁에서 강주룡의 연설을 듣고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독립투사가 된 것인지 묻자, 강주룡은 “조선에서 어떻게 하면 투사가 안 되고 살 수 있습니까? 친일 부호라면 몰라도 우리 같은 노동자는 싸우기 싫어도 싸워야 하는 게 현실이지요. 따지고 보면 기자 선생도 지금 붓으로 싸우고 있는 거 아닙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1. 조선에서 구한 독립자금을 갖고 압록강을 건넜던 정정화는 《회고록》에서 “얻고 싶었던 것을 얻었고 가고 싶었던 곳을 찾아가는 지금, 나는 그토록 갈망했던, 제 한 몸을 불살랐으나 결국 얻지도 못하고 찾지 못한 채 중원에 묻힌 수 많은 영혼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을 대신해 조국에 가서 보고해야만 한다. 싸웠노라고, 조국을 위해 싸웠노라고.”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1. 일제 치하 제주도에서 해녀들이 수탈을 당하던 시절, 김옥련은 해녀들의 투쟁에 참여했다. 김옥련은 “해녀로서 독립을 바라며 일제와 싸운 것은 똑같은데 왜 거기에 차등을 두나? 속상한 마음이 들 때면 바다로 가. 파도를 보면서 강관순 선생님이 지은 해녀의 노래를 함께 부르면 시름이 잊히는 것 같아.”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1. 조선 최고의 기생에서 사회운동가가 되었던 정칠성. 그녀는 《삼천리》라는 잡지에 〈여류문장가의 심경 타진〉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오늘날까지 걸어온 길이란 오로지 조선 여성을 위해서이지만 글로써 발표한 것이나 말로써 부르짖은 것이나 모두 조선의 여성에게 각성하라는, 현실을 잘 파악하는 여성이 되라는 것 뿐이었지요. 다시 말하면 가장 현실을 잘 알고 현실을 똑바로 보는 사람이 되라는 것 뿐이었지요.”라고 하였습니다.
  1. 남자현은 임종 전 아들에게 “내 가진 돈은 모두 249원 80전이다. 그중 200전은 조선이 독립하는 날 축하금으로 바치거라. 만일 네 생전에 독립을 보지 못하면 자손에게 똑같이 유언하여 독립 축하금으로 바치도록 하라.”,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라고 유언하였습니다.
  1. 안경신은 임신한 몸으로 평남도청 경찰부 폭파 사건에서 일제를 향하여 폭탄을 던졌던 여성입니다. 대한애국부인회에서 활동했던 최매지는 “안경신같이 시종일관 무력적 투쟁에 앞장서서 강렬한 폭음과 함께 살고 죽겠다는 야멸찬 친구는 처음 보았다. 너무 강폭한 투쟁으로 오히려 해를 입는다면 항일투쟁에 가담, 활동하지 아니함만 못한게 아니냐고 물으면 그녀는 잔잔한 미소만 띠고 긍정하지 않았다.”라고 하였습니다.
  1. 강물이 검은 용 같다고 하여 중국인들이 흑룡강이라 부르는 아무르강에서 총살을 당하여 생을 마감했던 김 알렉산드라. 러시아 우랄지역의 조선인 노동자 김시약은 김 알렉산드라를 러시아어, 조선어, 중국어에 능통한 통역관으로서 정중하게 노동자들을 대했고 사업주 앞에서 그들의 권익을 옹호했기에 러시아인, 조선인, 중국인 노동자들은 그를 사랑하고 신뢰하였다고 회고하였습니다.
  1. 최초의 여성 비행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권기옥. 그러나 권기옥은 ‘최초’라거나 ‘여성비행사’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서가 비행기를 조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잡지 《여원》 인터뷰에서 권기옥은 “어린 마음이었지만 항일투쟁에는 무조건이었습니다. 감옥이 아니라 죽음도 두렵지 않았지요. 나이가 어리고 여자라는게 참으로 원통했습니다. 그때 하늘을 날며 왜놈들을 쉽게 쳐부술 수 있는 비행사가 되려고 마음을 다졌지요.”라고 답했습니다.
  1. 춘실, 동해, 화림 세 이름으로 살았던 이화림은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하다가 중국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여성입니다. 그녀는 “끝까지 혁명의 길을 걷겠다고 결정한 이상 작은 가정에 연연할 수는 없었다. 비록 희생이 뒤따랐지만 당연히 해야 될 일이었다. 평양을 떠나고 어머니를 떠나면서 나는 이미 희생을 치렀다. 나는 이미 이 길에 올랐고, 후퇴할 이유도 없으며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회고록을 남겼습니다.

서평_서유경 변호사

Posted in그야말로 역사

권오영의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권오영 교수(서울대 국사학과)의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권교수는 발굴 예산권을 지닌 정부 기관과 고대사에 관심이 많은 지식 대중에 할 말이 참 많은 듯합니다.

고대사 관심층에게는 사료나 프레임에서 벗어나 유물, 유구, 유적 발굴 조사를 통해 획득한 팩트를 통해 보자고 말합니다.

특히 새로운 과학기술과 공학 등 인접 학문과의 협업 연구를 통해 밝힌 팩트가 역사적 실체를 제대로 보여주는 실제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권교수의 이런 접근법은 한국인의 시야를 확 넓혀줍니다.

우선 발굴조사를 통해 획득한 팩트는 한반도와 중앙아시아, 중동,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을 구체적으로 연결해줍니다. 그동안 한국 고대사는 중국의 한나라와의 관계에만 매달렸던 것입니다.

나아가 새로운 고대사 연구를 통해 단일 민족 프레임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다문화 사회를 새로 정의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한국이 해외 발굴 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고대 한국의 다양성과 다문화를 복원함으로써, 현대 한국의 새로운 구성원이 통합될 수 있는 역사적 뿌리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교류의 길, 글로벌 삼국 시대를 열다 편 10줄 요약

1.우리는 한국사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대외관계를 이야기할 때 유라시아 동부라는 안경을 쓰고 역사를 보면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이라는 초강대국에 맞서 고조선, 흉노,오손, 월지, 사카란 세력이 있었다. 미얀마 쪽에는 퓨 종족이,  중국 운남성 지역에는 디안이, 베트남쪽에선 남월, 복건성의 민월 등이 마치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를 둘러싼 진돗개 무리처럼 한을 둘러싸고 있었다.

2.페르시아 문명을 답사하면서 한국의 고대 사회가 페르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여러 세력과 친구 관계를 맺었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스탄’으로 끝나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을 맹렬히 찾아다니며 연구 범위를 확장했다.

3.삼국시대에 이웃을 맺은 나라들이 동남아시아에도 있음을 깨닫고,범위를 더 확장해 베트남과 캄보디아,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을 돌아다녔다. 너무 오래 연구의 공간적 범위를 한정했던 실수를 고백하며 역사학자로서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4.드 넓은 영토를 다스리던 고구려가 빗장을 걸어 잠근 채 단일민족으로 남아 있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어떤 거대제국이 단일민족만으로 구성될 수 있을까? 몽골과 스키타이, 무굴 등 우리가 제국이라고 부르는 모든 국가는 사실 다문화 사회였다.

5.2018년 국립중앙박물관은 ‘황금인간전’이란 이름으로 기원전 6세기에 살았던 사카족 왕자의 무덤(쿠르간에서 출토된 부장품)을 전시했다. 이 무덤의 구조와 부장품은 5세기 무렵의 신라 왕릉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것들과 매우 유사하다.

두 유적 사이에 천 년이라는 시차가 있지만 유사성을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사카와 오손의 문화에 관심을 가져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6.수나라와 당나라는 물론 신라와 일본까지 진출해 장사를 벌였던 이들이 바로 소그드족이다.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대개 소그드와 투르크, 몽골의 혼혈이다.

사마르칸트 소그드 도시 국가의 궁전 벽화에 동양인 두 명이 등장한다. 사마르칸트에서 고구려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당시 연개소문이 권력을 잡고 있던 시기이어서, 당나라의 침략 위협을 타개하기 위해 소그드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외교 사절을 파견한 것으로 해석된다.

7.1998년 인도네시아 벨리퉁 섬에서 아라비아의 배 한 척이 발견됐다. 830년 무렵 당나라에서 도자기 등 6만여점을 싣고 물건을 가다가 이 지점에서 침몰됐다.

이 시기는 장보고가 동북아시아의 해상왕으로 활동했다. 그가 취급하던 상품 중에는 중국 이외에 동남아시아 인도, 아라비아의 것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장보고에 대해 연구하려면 동북아시아를 벗어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동서 문화가 만나는 지역까지도 시야에 담아야 한다.

8.광동-광서지방과 베트남 북부를 다스렸던 남월은 중국 동남부와 베트남 북부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광서성 합포에 널려 있는 한나라 무덤에는 이란과 이라크를 무대로 발전하던 파르티아 도자기, 동남아시아산 유리그릇, 유리 구슬이 많이 발견된다. 따라서 이 물건들이 한반도까지 전해지지 않았다고 볼 이유는 없다.

9.후손들에게 넓은 세계를 바라보는 통찰력과 시각을 전해줘야 한다. 앞으로 ‘코리안’이란 정체성은 태어난 장소와 얼굴 형태, 핏줄을 통해 정해지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코리안의 인종적 스펙트럼은 훨씬 넓어질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이기에 총을 어깨에 짊어지고 야간 보초를 서며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젊은이들의 얼굴도 지금보다 다양해질 것이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겨야 한다.

10.대한민국도 민족사를 넘어 세계사 연구에 공헌할 때가 되었다. 비록 한국사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더라도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라면 조사와 보존에 뛰어들어야 한다. 민족사를 넘어서서 인류 공동의 역사 연구에 앞장서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진정한 선진국이라 할 수 있겠다.

Posted in강연후기

임명묵_K를 생각하다

임명묵작가는 땀을 흘리며 책방에 도착했습니다. PT없이 시작한 그의 이야기는 깊었고. 청중들과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수를 차지했던 586세대들은 그를 선생님이라고 호칭했습니다.

90년대생은 어떤 존재인가?

글로벌 분업체계가 만든 세계화와 정보화가 진전된 90년대에 태어나. 스마트폰이 만든 디지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세대입니다. 90년대생은 한국에서 부모 세대의 계층이 최초로 대물림된 세대입니다. 저성장 국면이 이어지면서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기대도 낮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주관적 불행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거리로 나가던 586세대와 달리 그들은 온라인세상에서 그들은 분출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세계로 향하고 있는 이른바 K-는 지독히 매운 자극을 원하는 90년대생의 취향과 분출이 만들어낸 콘텐츠입니다. “인생은 한강물 아니면 한강뷰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울대생이나 고졸 친구나 한탕주의가 깔린 웹소설, 웹툰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콘텐츠에서 ‘신분 상승’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전생’ ‘타임슬립’ 등을 통해 미래 정보를 알고 몇 배의 돈을 버는 이야기 구조입니다.”

이제 그 K-콘텐츠가 글로번 디지털세상에서 보편적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미국을 제외하고 세계적 문화를 만들어낸 나라는 없습니다. 90년대생의 문화가 만들어낸 이 놀라움을 폄하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다면, 그래도 괜찮은 586이 아닐까 합니다.

저자소개

임명묵은 충남 조치원에서 태어나 2013년 서울대 인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 농어촌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 부모님은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라는 대표 학부와 다문화가 익숙한 읍 단위 행정구역이라는 두 세계를 왕복하며 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