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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에노모토 히로아키의 ‘엮이면 피곤해지는 사람들’

“팀장님, 일단 제가 한 번 작성해봤습니다. 한번 봐주세요.”

“뭐? 그걸 혼자서 다 했다고?”

대개 업무는 귀찮은, 되도록 하기 싫은 일로 치부되기 때문에 이런 경우 칭찬이 뒤이어 나오기 마련이다. “수고했다”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혼자 처리했냐?” 등 다독이는 말이 다반사이지만, 어디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다. 팀장은 예상 외의 반응을 보인다.

“이제 뭐 다 알아서 하고, 내 도움이 필요 없나 봐?” 미팅으로 바쁘신 것 같아 미리 작성하고 검토를 받으려고 했다고 해명을 해봐도 소용이 없다. “이젠 혼자 그런 결정도 다 하고, 능력이 참 탁월하셔…” 아뿔싸.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배려한다는 것이 그만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

여기서 잠깐. 이번 사건에서 일을 미리 하지 않았다면 아무 꾸지람도 듣지 않았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이 정도는 혼자 알아서 좀 할 때도 되지 않았나”라는 살기 어린 비수가 날아올지 모를 일이다. 이 세상엔 그런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고, 심지어 그 수가 적지 않다. 일본의 유명 심리학자 에노모토 히로아키는 책 『엮이면 피곤해지는 사람들』(쌤앤파커스)에서 열 가지의 피곤 유형을 소개한다.

엮이면 피곤해지는 사람 열 가지 유형은 다양하다. 쿠크다스 같은 멘탈로 하소연과 푸념을 늘어놓는 ‘초예민’형부터 자기 주장이 강한 ‘내로남물’형, 관심을 구걸하는 ‘어리광쟁이’형, 과거 이야기만 꺼내놓는 ‘라떼 빌런’형 등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대개 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자각하지 못한다.

일단 그들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극하지 않는 게 중요한데, 이건 “그들의 비위를 잘 맞추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기분을 지키자’는 쪽에 가깝다. 애초에 그들은 어딘가 꼬였거나, 우리가 가진 사고와 다른 흐름을 지녔기에 우리가 ‘상식적’으로 대응했을 때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위 사례의 당사자는 인지왜곡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높다. 심리학자 니키 R.V 크릭의 ‘사회정보처리 모델’에 따르면 그들은 사회적 단서에 주의를 기울이는 ‘단서의 부호화’ 단계에서 “공격적 단서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사실 여부가 어떻든 우리의 행동을 적대적으로 해석”한다.

이는 열등감에 기인한 ‘적대적 귀인 편향’과도 연관된다. 똑같은 말을 들어도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아 할 행동을 ‘저 사람이 나를 바보 취급한다’고 느끼면서 마음 속에 ‘상대방은 가해자, 나는 피해자’라는 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곧 인지왜곡에 따라 상대의 행동을 악의적으로 조작하는 ‘관계성 공격’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저자는 그들을 바꾸려는 시도를 일찌감치 그만두라고 권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 오히려 “상대방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그 사람을 적당히 상대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조언한다.

여기서 상대하는 법이란 상대의 이상 행동의 원인을 깨달아 알아 원인을 지목하면서 ‘내가 당신을 이해한다’라는 표현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럴 경우 오히려 “열등감 콤플렉스가 활성화돼 매우 거세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고, “분위기만 망치고 더 성가신 일만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모든 사람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용하라고 저자는 충고한다.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재밌는 건 저자가 그런 사람을 대하는 법을 소개하면서 혹시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닐지 반추해보라는 점이다. 저자는 “본인이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먼저, 본인의 약점이 열등감 콤플렉스를 만들지 못하도록 약점을 솔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누군가에겐 내가 엮이면 피곤해지는 사람일 수 있으니까…

서믿음 기자 meseo@chosunbiz.com

#북스 # Books #에노모토히로야키 #엮이면피곤해지는사람들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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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 숏폼으로 브랜딩하다’

틱톡(Tiktok). 중국계 IT회사 바이트댄스가 2016년 9월 출시한 ‘도우인(音)’이 시초다. 2017년 바이트댄스가 미국의 립싱크 영상 앱 ‘뮤지컬리’를 인수하면서부터 틱톡으로 불리게 됐다. 영상을 쉽게 만들어 공유할 수 있는 앱으로 MZ세대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2017년 등장한 이래로 3년 만에 전 세계 앱 매출 3위를 기록했는데, 그 인기 요인을 『틱톡, 숏폼으로 브랜딩하다』(21세기북스)로 알아본다.

대개의 앱 플랫폼이 그렇듯 틱톡 역시 콘텐츠를 창작하는 ‘크리에이터’와 콘텐츠를 소비하는 ‘팔로워’로 구분된다. 다만 틱톡은 차별점을 띠는데, 그건 바로 ‘프로슈머(prosumer)’이다. 프로슈머란 ‘제작자이자 시청자’라는 뜻으로, “소비자와 생산자를 겸하는 구성원의 존재가 다른 분야에 비해 뚜렷하게 부각된다고 할 수” 있다.

틱톡 전문가인 9명의 저자는 틱톡을 시작하기에 앞서 “콘텐츠 채널을 통해 얻으려는 여러 목적 중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목적과 장기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구분 짓고, 이 두 사이에 접점을 만드는 데 틱톡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것으로 콘텐츠 전략을 짜면 지금 해야 할 일과 앞으로 할 일이 명확해진다”고 충고한다.

인플루언서의 경우 “틱톡에 입문해서 팔로워를 모으고 이걸 외부 소셜미디어 채널로 유도해 수익창구를 확보하는 것”을 우선 목적으로 한다. 팔로워와 실시간 방송으로 소통하는 “틱톡 라이브에서는 직접 후원금을 주거나 제품을 살 수도 있다. 유튜브 슈퍼챗이나 트위치 도네이션, 아프리카TV의 별풍선처럼 틱톡에서도 라이브 방송을 보던 시청자가 유료 스티커를 크리에이터에게 보낼 수 있다.”

기업 브랜드 홍보에 이용되기도 한다. 13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구찌(GUCCI)’의 경우 소품을 활용해 구찌 느낌을 내는 ‘구찌 모델 챌린지’ 등을 직접 제작하는 바이럴 마케팅을 전개했고, 그 결과 2억5000만 조회 수를 모으며 MZ세대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틱톡을 자사 브랜딩 도구로 사용하는 언론사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워싱턴포스트. 지난 7월 기준으로 팔로워 95만명을 보유한 워싱턴포스트의 틱톡 계정에는 보도를 상황극으로 전하는가 하면, 보도국 내에서 동료들이 틱톡에서 유행하는 챌린지 영상에 맞춰 영상을 만들어 전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당장 수익을 실현하기보다 장기적으로 브랜딩에 매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틱톡은 어떻게 이런 대중적 플랫폼으로 주목받게 됐을까? 뇌과학자 장동선은 몇 가지 이유를 거론한다. 첫째는 능동적 참여의 용이함이다. 앞에서 거론했듯, 틱톡은 프로슈머들의 이용률이 높다. 댓글, 이어찍기, 라이브 합방, 영상 공유 등 다양한 형태로 이용자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쉽다. “음악저작권, 언어 장벽, 영상 길이, 고급 영상 제작 기술 등 기본적으로 영상 제작이 지닌 네 가지 경계를 허물며 손쉬운 영상 제작 및 편집이 가능한 ‘숏폼’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쌍방향적 인터랙션도 틱톡의 인기요인이다. 장 박사는 “뇌는 소통과 교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쌍방향적, 실시간 소통과 교류의 가능성이 열려 있을 때 학습 능력과 공감 능력 등이 모두 향상된다”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직접적인 피드백이 왔을 때, 뇌의 보상 회로에서 보상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되어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게 돼 있다”고 설명한다.

예측 불가능성 역시 틱톡을 즐기는 재미다. 장 박사는 틱톡을 도박장 슬롯머신에 비견하며 “슬롯머신 앞에서 계속 레버를 당기게 되는 이유는 레버를 당길 때 이길지 질지 모르는 무작위한 확률이 우리의 뇌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틱톡 추천 페이지에서 재미있는 영상이 나올 확률은 무작위”라고 말한다. 수초 이내로 핵심내용을 전하는 콘텐츠는 주의집중 시간이 짧아지고, 요약과 큐레이션을 받기 원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충족한 것도 인기 요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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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조신의 ‘넥스트 자본주의, ESG’

“우리는 트렌드가 아니라 모델을, 단순한 용어가 아니라 개념을, 그리고 유추나 비유가 아니라 분석을 추구한다. 우리는 모델과 개념, 그리고 분석을 통해 오늘날 하이테크 산업에서 작동하는 근본 원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책 『Information Rules』 中

SK커뮤니케이션즈와 SK브로드밴드 대표를 역임, 대통령비서실 미래전략수석으로 일했다가 현재는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에 재직 중인 조신 교수. 책 『넥스트 자본주의, ESG』(사회평론)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강의노트 첫 페이지마다 위 글귀를 적어 놓는다. “사실 없는 이론은 공허하기 십상이고, 이론 없는 사실만의 조합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는 말인데, 이번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ESG투자’이다.

먼저 조 교수는 ESG의 정의를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내포한 ESG는 개념적으로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재무적 요인뿐만 아니라 환경, 사회, 지배구조 요인을 고려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일반 대중은 사회책임투자와 혼돈되기 마련인데, 사회책임투자가 “‘나쁜 기업’에 투자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지속가능투자와 맥을 같이하는 ESG투자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환경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는 데 방점을 찍는다.

그렇다고 지속가능투자와 ESG투자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지속가능투자는 ‘응당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며 ‘설득’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ESG투자는 “환경사회 문제를 잘 해결하면 그들의 장기적 재무 성과도 따라서 좋아진다는 실증론적 메시지에 더 무게를 둔다.” 대외 이미지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쓰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에 가깝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특히 사회와 기업 구조 부문에서는 모든 기업의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 조 교수는 “사회 영역에서 기업의 ESG 활동을 평가하는 이유는 그 기업에 대한 소비자, 직원, 납품 기업들의 만족도는 높은지, 사회 구성원 전체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고 있는지, 사회 문제 측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는 없는지 보기 위한 것”이라며 “다양성과 포용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규제라는 관점이 아닌 비즈니스 관점에서 잘 조율된 시스템으로 이어질 때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고 그것이 곧 기업 실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다만 ESG지표의 좋음이 꼭 수익성 제고를 뜻하지는 않는다.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ESG 투자를 제대로 하려면 먼저 중요한 ESG 이슈가 무엇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온실가스 배출이 전력 산업에서는 중요한 이슈지만, 금융 산업에서는 그렇지 않다. 특정 기업이 모든 ESG 이슈를 잘 해결하겠다고 덤벼든다면 ESG 등급은 잘 받을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에 비해 실제 수익성 제고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저자는 “기업의 목적이 무엇이건, 제도의 영속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목적이 인센티브에 합치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며 “ESG 투자가 재무 성과를 내는 데는 최소한 5~7년이 필요하다”고 첨언한다.

저자는 계속해서 ‘전략’을 강조하는데, 이는 곧 “다른 기업들과는 다른 독특한 행동들을 잘 결합함으로써 경쟁우위를 만들어내고 이윤을 창출하는 방법”이다. 저자는 “남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남다른’ ESG 활동들을 엮어낼수록 더 많은 사회적 가치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기업들이 서로를 모방하게 되고 결국엔 모든 기업의 ESG 활동이 유사해진다. 결국엔 모방과 제로섬 경쟁의 악순환이 벌어져서 ESG 활동을 통해 남들보다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도 불가능해진다”고 충고한다.

서믿음 기자 mes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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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줄 서평] 신지은의 ‘누워서 과학먹기’

질문: 얼음이 녹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이과: 당연히 물이 되겠지

문과: 봄이 오겠지

문과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복잡한 과학적 인과관계보다는 현상의 이면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누워서 과학 먹기』(페이스메이커)의 신지은 저자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경영을 전공하고, 아나운서로서 경제방송을 진행했던 뼛속까지 문과인이었다. 수학과 과학을 끔찍이도 싫어하고, 그에게 물리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매한가지인 존재였다. 그런 그가 과학에 눈을 뜬 건 2015년 아프리카 공식 과학 방송 ‘곽방TV’의 진행을 맡으면서부터다.

“2시간 동안 한 가지 과학 이슈를 풀어나가는 ‘생방송’에서, 젊은 ‘과학자들’ 사이에 앉아, 문과 대표로 과학 이야기를 ‘듣고’, 동시에 ‘진행’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참 고역이었다.” 당연히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혹시나 잘못된 지식을 전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그날그날의 방송 주제를 글로 써가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도서관에 들러 일주일에 몇 권씩 닥치는 대로 관련 서적을 읽었다.”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고백한다. “과학은 내 인생을 바꿨다”라고, “과학과 인문학으로 갈린 세상이 아니라 이 둘이 합해져서 만들어내는 큰 가능성을 상상”하게 됐다고. 그 노력의 흔적들이 이 책에 담겼다.

#10줄 요약 #챕터2 물리,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가득하다

1. 달이 지구로 떨어지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뉴턴은 복잡한 사고실험을 거쳤다. 이른바 ‘뉴턴의 대포’라고 알려진 실험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뉴턴은 여기서 ‘누군가 높은 산에서 포탄을 빠르게 발사할수록 포탄이 더 멀리 나아가 땅에 떨어질 것’이라고 가정했다. 실험과 마찬가지로 달도 누군가 빠른 속도로 던졌다고 가정해보자. 달은 직선으로 쭈욱 나아가 지구를 떠나 저 먼 우주로 달려가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지구가 잡아당기는 통에 갈 만하면 당겨지고, 갈만하면 당겨져 달은 결국 지구를 돌게 된다. 지구 역시 돌고 있기 때문에 달과 지구가 부딪힐 일은 없다.

2. 빛이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를 밝히는 과정은 그야말로 갈등의 연속이었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그의 저서 『광학』을 통해 빛이 운동하는 ‘입자’로 구성돼 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크리싀안 호이겐스라는 과학자는 빛이 입자가 아닌 ‘파동’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 논란을 잠재운 건 1800년대 초 토마스 영이란 영국 과학자의 ‘이중 슬릿 실험’이었다. 빛을 아주 얇게 구멍 낸 종이 2개에 통과시킨 결과, 그 뒤의 스크린에 서로 다른 밝기의 빛이 물결친 것이다. 뉴턴의 말대로 빛이 작은 입자들의 뭉침이었다면 나타날 수 없는 결과였다.

3. 태양이 너무나 무거운 나머지 태양계의 시공간은 태양을 중심으로 움푹 꺼져 있다. 빛의 속도인 초속 30만km로 직진하던 어린왕자의 편지는 태양 주위의 움푹한 공간을 만나면 마치 미끄럼틀에 몸을 맡기듯 공간을 그대로 타고 우리 눈에 도착한다. 그러니 이 사실을 모르고 들어온 방향을 향해 아무리 화살을 쏘다댄들 화살은 절대 그 별에 닿을 수 없다. 어린왕자는 다른 곳에서 애타게 우리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4. 그(아인슈타인)가 만든 복잡한 식에 따르면 우주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에겐 시간의 팽창이 일어난다,. 시간이 더 천천히 간다는 것이다. 동시에 공간의 길이는 줄어든다. 영화 ‘인터스텔라’ 속 밀러 행성에서의 1시간이 지구에서 7년이었던 이유다. 복잡하게 느껴지는 특수상대성이론을 정리해보자면 유일한 절대시간과 공간이란 없다. 내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내 시공간은 달라진다.

5. 1919년 아서 에딩턴이 개기일식이 태양 빛이 가려진 틈을 타 태양 뒤에 있는 별빛을 관찰하는 데 성공한다. 만일 시공간에 휘어짐이 없어 빛이 직진으로 이동했다면 절대 우리 눈에 닿을 수 없는 별이었다. 마침내 우리가 찾던 어린왕자의 별이 태양 뒤에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6. 그(아인슈타인)는 시간을 유연하고, 늘어나기도 하며, 심지어 순서가 바뀌기도 하는 것으로 봤다. 그는 “연인과 함께 보내는 1시간은 1초로 느껴지겠지만 뜨거운 난로 위에 앉아 있는 1초는 1시간처럼 느껴질 것이다”라며 시간의 ‘상대성’을 강조했다. 아인슈타인은 ‘절대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표면에서, 달에서, 비행기에서 시간은 다 다르게 흐른다는 것이다.

7. 그렇다면 아직도 왜 우리는 시간 여행을 하지 못하는 걸까? 그(아서 에딩턴)는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른다’는 열역학 제2법칙을 예로 들어 엔트로피의 증가가 시간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세상은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우주는 에너지와 물질의 출입이 없기 때문에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그는 이것을 절대 뒤로 돌릴 수 없는 ‘시간의 화살’이라고 했다.

8. 양자 역학이 얼마나 어려운지부터 설명해야겠다. 양자역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양자 역학을 연구하면서 머리가 어지럽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했다. 스티븐 호킹은 “슈뢰딩거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슈뢰딩거를 총으로 쏘고 싶다”는 과격한 표현을 쓰며 양자역학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9. 영화 ‘아이언맨’ 속의 ‘토니 스타크’가 가슴에 품고 다닌 아크 원자로는 현실에서 가능한 일일까. 태양의 핵융합을 지구상에서 태현하려면 온도가 1억℃는 되어야 한다고 한다. 1,500만℃이든 1억℃이든 아마 플라즈마가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었다면 상상도 하기 전에 우리 모두가 녹아버렸을 것이다. 결국 36.5℃의 체온을 가진 사람은 감내하기 힘든 게 ‘아크 원자로’란 말이다.

10. 빛이 ‘음굴절’하게 만드는 메타물질은 빛의 친척인 전자파나 음파 등 다른 파동들도 바꿔버릴 수 있다. 메타물질로는 전자파를 피해 가게 할 수도 있다. 메타물질을 천장에 발라 놓으면 층간 소음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메타물질을 발라놓은 마스크를 쓰고 전화를 하면 지하철에서도 마음껏 통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악당이 메타물질을 뒤집어쓰고 내 옆에 와서 원고를 쓰고 있는 나를 훔쳐본다는 생각을 하면 소름도 끼친다.

서믿음 기자 meseo@chosunbiz.com

누워서 과학 먹기

신지은 지음 | 페이스메이커 | 284쪽 |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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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70세 유튜버 ‘밀라논나’의 슬기로운 노년생활 ‘, 밀라논나 이야기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1952년생 멋쟁이 할머니 장명숙. 그는 1952년 한국전쟁 중 지푸라기를 쌓아놓은 토방에서 태어나 ‘멋있어지겠다’는 일념으로 1978년 한국인 최초로 밀라노 패션 유학길에 오른 패셔니스트다. 1986년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의상 디자인을 맡았고, 페라가모와 막스마라 등 이탈리아의 핫한 디자인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했다.

이탈리아와의 우호 증진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에는 이탈리아 정부에서 명예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유튜브(밀라논나) 크리에이터가 되어 새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데, 구독자가 90만명에 달한다. 밀라노의 할머니(논나)라는 뜻을 지닌 밀라논나, 그의 삶을 담은 책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김영사)가 최근 출간됐다.

책의 인기는 상당하다. 사전예약만 5500권 규모, 거센 반응에 장명숙씨는 “겁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걸 왜 썼어”라는 뾰족한 말이 나오진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인데, 평소 친근한 이미지를 고려하면 기우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70세의 할머니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하지 않는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해내는지 놀랍다”며 오히려 “내가 조언을 구해야 할 지경”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삶에서 우러나는 경험은 전달하는데, 그 중 하나가 ‘우울할 땐 우울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조금의 우울도 허락하지 않는 태도는 마음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 하지만 언제까지 우울함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기에 언젠가 우울에서 빠져나올 때는 햇빛이 큰 도움이 된다고 ‘귀띔’한다. 책 이름에 ‘햇빛은 찬란하고’란 문구가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일찍 결혼해 두 아들의 엄마가 되고, 밀라노 유학길에 올라 정말이지 바쁜 삶을 살아오던 저자는 느지막이 나이듦의 여유를 기대했다. 하지만 현재의 삶은 평일엔 유튜브 촬영, 주말에는 글쓰기의 연속이다.

누군가는 욕심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원체 호기심 많은 성격 탓이기도 하고, 그런 부지런함의 목적이 누군가를 향한 도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양육시설을 방문해 아이들과 청소년의 곁을 지킨다.

책 인세와 유튜브 수익은 모두 사회복지기관, 보육기관, 미혼모 지원단체에 기부된다. 저자는 “유튜브와 책 출간은 계획했던 게 아니라 덤이다. 덤으로 얻은 것이니 덤으로 드리는 게 당연한 것”이라며 “좀처럼 이런 말을 하지 않지만 좋은 일에 사용하는 것이니 ‘책을 많이 사달라’ ‘좋아요 구독 눌러 달라’고 말한다”고 설명한다.

책은 크게 ‘자존’ ‘충실’ ‘품위’ ‘책임’ 챕터로 나뉜다. 그 중 자존과 관련해서는 “남에게 보이는 삶을 살지 않는다. 내 삶의 기준은 나다. 남에게 초점을 맞추면 나는 없다. 나부터 만족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 삼풍백화점 근무 당시 살아남았던 일화를 전하며 “그때 여러 동료를 잃었는데, 하루만 차이 났어(출근하지 않는 수요일에 사고 발생)도 나도 죽었을 것”이라며 “하루라는 게 찰나인데, 결국 오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이 어제가 되기 전에 오늘을 붙들고 살자”고 권면한다.

패셔니스트인 만큼 옷 잘 입는 법에 관해 참 많은 질문을 받는데, 이에 관해 “입고 싶은 대로 입으라. 다만 색깔만 좀 맞췄으면 한다”고 대답한다.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사람들 반응이 별로고 부끄러우면 벗고, 으쓱하면 계속 입으면 된다”며 “이탈리아에서는 ‘어떻게 저렇게 입나’ 하는 패셔니스타들이 많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내가 입는 법은 이러하다. 먼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색깔을 맞춘다. 너무 요란하지 않게 색을 배합한다. 부담스럽지 않게, 편안하게, 형편에 맞게,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는다”며 “다만 상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 편하게 느끼는 옷차림을 경계한다. 억지로 젊어 보이려는 옷차림은 피하고자 한다”고 전한다.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을 만족하며 즐기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게 행복”이라는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사는 저자는 머릿속이 복잡할 땐 온갖 멍을 때린다. “모닥불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불멍, 숲을 가만히 응시하는 숲멍, 흐르는 물을 그저 쳐다보는 물멍,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소리멍” 거기에 햇살멍까지. 현실에 지친 당신에게 찬란한 햇빛과 귀한 인생을 소개하는 밀라논나멍 때리기를 권면한다.

서믿음 기자 meseo@chosunbiz.com

#북리뷰 #장명숙 #밀라논나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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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줄 서평] 제현주의 ‘돈이 먼저 움직인다’

임팩트 투자사 옐로우독의 제현주 대표가 쓴 책이다. 일찍이 기업 재무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그는 엑셀 프로그램 안에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놓고 이런저런 변화를 주어 그 결과를 확인하기를 즐겼다. 그런 과정 속에서 마치 ‘작은 조물주’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엑셀 한 줄에 집어넣은 가정이 현실에서 큰 변화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구매 원가를 줄인다는 것은 구매부서의 누군가가 납품업체와 힘겨운 협상을 벌인다는 것을 의미했고, 서비스 가격을 올린다는 것은 콜센터 상담원들이 수만 고객의 엄청난 불만을 받아내는 것”을 뜻했다.

그 엄청난 무게감에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6년간 열 권에 이르는 책을 번역하며 공부에 공부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 끝에 ‘임팩트 투자’를 전략으로 내세우는 현재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임팩트 투자는 “사회에 미치는 임팩트를 고려해 강하고도 긍정적인 임팩트를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하는 투자”로 “요즘 유행한다는 ESG 투자의 가장 적극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6년의 공부, 4년의 실무 경험을 책에 담았다. “대체 임팩트 투자가 뭐냐” “그렇게 돈을 버는 게 가능하냐”는 질문에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10줄 요약 _챕터14 거대한 기후 시장이 열린다

1. 파리협정에 따라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려면, 2050년까지는 탄소 배출 중립, 이른바 넷제로(net zero)에 도달해야 한다. 이는 경제, 사회 시스템 전반에 걸친 탈탄소화를 의미하며 시스템 전환에 필요한 비용은 2035년까지 매년 2조4000억달러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인류에게 던져진 엄청난 과제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 GDP의 2.5%에 해당하는 거대한 새 시장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2. 1.5도 억제 목표가 요구하는 넷제로에 2050년 이전에 도달하겠다고 선언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넷제로 선언은 대기 중 탄소 농도를 조금도 더 높이지 않겠다는 공언인데, 탄소 배출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므로, 배출량을 최대한 줄이고도 남는 게 있으면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하는 ‘네거티브 배출’을 시행해 총합으로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2020년 9월에 발표된 보고서 ‘넷제로 가속화’에 따르면 1541개 기업이 넷제로 목표를 공약했다. 이들의 매출을 모두 합치면 11조4000억달러로 미국 GDP의 절반을 넘는 규모다.

3. 구글과 아마존은 각각 2030, 2040년까지 넷제로에 도달하겠다고 약속했고, 바스프, 지멘스, 슈나이더일렉트릭도 2030년을 결승선으로 잡았다. 세계 석유회사인 스페인의 렙솔을 시작으로, 석유산업을 주도하는 기업들인 BP, 쉘, 토탈도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4. 소비자 역시 환경 의제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닐슨은 2015년 전 세계 60개국 3만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66%의 소비자가 지속 가능성이 높은 제품이라면 값을 더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밀레니얼 세대 중에는 무려 73%가 지속가능성이 높은 제품에 가격을 더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5. 기후기술 투자의 성장이 한때의 유행일지 모른다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2000년대 후반 환경을 깨끗하게 만드는 기술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각종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에너지원을 청정에너지로 교체하는 대체 기술인 ‘클린테크'(청정기술) 붐이 쓸쓸한 폐허를 남긴 전례 때문이다. 다만 그때와는 사뭇 다른 상황이 변화 가능성을 높인다.

6. 먼저 첫째, 클린테크 붐 이후 10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대기 중 탄소 농도가 더 높아졌다. 그 결과 기후 위기가 더 가시화되고 있어 위기감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7. 둘째는 가시화된 기후 위기는 기후기술을 특정한 분야가 아니라 전 산업, 사회 전체에 걸쳐 요구되는 솔루션으로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는 화석연료 가격에 큰 영향을 받았지만, 최근 재생에너지 비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기후기술은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요구되는 탈탄소 솔루션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8. 셋째로 10년의 세월 동안 기술 발전이 이뤄지면서 석유화학계 및 고탄소 소재의 대체재 개발을 가능케 하는 바이오 엔지니어링 기반 기술의 비용이 현저히 낮아졌다. 또 센서 및 이미징 기술 역시 급속히 발전해 탄소 배출 모니터링이 용이해졌다.

9. 기후기술 시장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세상 곳곳에 있는 기후기술 기업들을 찾아 나서면서, 비관은 줄고 낙관은 늘었다. 치열함과 명민함, 책임감과 영리함을 갖춘 많은 창업자가 기후 변화라는 우리 세대의 난제에 몰두하고 있다.

10. 한국의 변화는 특히나 여전히 느리다. 2021년 6월 말을 기준으로 넷제로를 선언한 기업은 7곳에 불과하며, 기후기술 분야 역시 벤처캐피탈의 주요 투자 영역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에 적응하기 위한 근본적 변화를 선언한 기업은 드물지만 향후 5년간 한국 기업들의 기후 변화 대응의 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다.

책 정보

돈이 먼저 움직인다

제현주 지음 | 어크로스 | 272쪽 | 1만6,000원

서믿음 기자 meseo@chosunbiz.com

#10줄서평 #북스 #임팩트투자 #E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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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줄서평]김재필의 ‘ESG 혁명이 온다’

ESG가 산업계 핫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ESG는 환경(Environmental)과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합니다. 압축하면 ESG는 지구를 위해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 이익을 추구하고, 법과 윤리를 지키는 경영을 하자는 것입니다.

ESG는 그리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속가능한 성장(SDG), 사회적 책임(CSR/CSV), 탄소 제로 등 그동안 등장했던 여러 개념을 합친 개념입니다.

세계 산업계가 올해 들어 ESG에 주목하는 것은 크게 돈과 규제 때문입니다.

먼저 블랙록같은 세계 최대 투자사가 ESG를 투자 기준으로 삼겠다고 선언하자 큰 손들이 블록록을 따라가면서 돈이 ESG테마에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규제 측면에서 EU와 미국이 탄소 국경세와 같은 강력한 규제를 법제화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국내 산업계는 ESG를 더 이상 때 되면 등장하는 기업 압박용이라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입니다. 또 선택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할 필수 사항입니다.

‘ESG 혁명이 온다'(김재필)은 ESG를 쉽게 전달하는 입문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동안 학계, 투자업계, ESG리딩 업체 사이에서 공유된 ESG 내용을 이 책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책중에서 ESG경영을 측정할 수 있도록 수치화한 ROESG 모델을 담은 5장 소개합니다.

10줄 요약 5장_ESG는 비용인가, 투자인가 편

1.경영자 입장에서 ESG를 도입할 때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은 비용으로 보느냐, 미래 가치 창출을 위한 투자로 보느냐이다. 일반적으로 ESG관련 지출은 대부분 비용으로 인식돼 영업이익에 영향을 미친다.

장기적 관점에서 ESG 도입의 중요성은 인지하면서도 당장의 재무제표 상에는 그 효과가 바로 가시화되지 않기에 ESG 도입을 주저하는 CEO들이 적지 않다. 이런 허들을 해소하기 위해 ESG를 비용인 아닌 장래 기업 가치를 올리는 투자 요소로 인식해 수치화시키는 모델들이 개발되고 있다.

2.ROESG모델은 일본 제약사 에자이(Eisai)의 야나기 료헤이 전무가 고안 것으로 ESG 비용을 미래 투자로 간주해 이익에 반영시켜 ESG스코어를 산출하는 모델이다. (일본 경제신문 닛케이는 이 모델을 활용하여 2019년부터 ROESG 100대 기업 랭킹을 발표하고 있다.)

3.ROESG모델의 근간은 PBR이다. 기업 평가 지표로 이익대비 주가를 측정하는 PER(Price Earning Ratio)와 자산가치대비 주가를 표시하는 PBR(Price Book value Ratio)가 있다.

PBR이 1 미만이라면 기업의 장부 가치보다 주가가 낮다는 의미로, 저평가된 기업으로 판단한다.

PBR이 1 이상이 되면 시장에서 주식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는 뜻이다. ROESG 모델에서는 고평가된 가치를 비재무적 자본, 즉 ESG 활동에 의한 가치로 해석을 한다.

4.야나기 료헤이는 에자이의 10년간 PBR 추이와 에자이의 ESG활동간 상관관계를 통계적 방법으로 분석했다. 이 결과 탄소배출 저감 활동, 연구개발비, 여성관리직 비율 증가 등이 PBR을 증가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에 영업이익 계산시 비용으로 간주했던 인건비, 연구개발비 등을 미래 수익창출을 위한 투자로 간주할 수 있는 근거를 확인한 것이다.

5.야나기 료헤이는 ESG활동과 자기자본 이익률(ROE)에 대한 영향을 분석했다. 같은 자본을 사용해 더 많은 이익을 내면 당연히 좋다. 자본 1억원 회사가 1000만원 이익을 내면 ROE는 10%가 된다. 주주 입장에서는 ROE가 기업 익을 평가하는데 핵심 지표다.

ROESG모델은 ESG활동이 ROE상승에 있어 중요한 상관 관계가 있다는 근거를 바탕으로 공식을 구성한다. 즉 ROE에 ESG스코어를 곱해 수치를 산출한다.

6.ROESG모델에 사용하는 ESG 스코어는 아라베스크Arabesque, 서스테이널리틱스Sustainalytics, FTSE, MSCI, 로베코Robeco 등 5개 ESG 평가기관의 평가 점수를 이용하는데, 각 사의 상위 10% 기업을 만점(1점)으로 해서 10% 단위로 0.1점씩 감점해 5사의 점수를 평균한다. 상위에는 최대 30%의 프리미엄을 줘서 최고점을 1.3으로 한다.

ROE는 각 사 IR 데이터를 참고로 해 ROE의 3기 평균을 산출한다.

마지막으로 ESG 스코어와 ROE를 곱함으로써  ROESG 수치를 산출한다.

7.이 모델을 이용해 2019년에 주식 시가총액 300억 달러(약 3.2조 엔) 이상, 자기자본비율 20% 이상의 글로벌 기업 263사를 대상으로 ‘ROESG’를 조사해 100위권의 기업들을 발표했는데, 상위 30사의 90%가 유럽과 미국 기업으로 나타났다. 대체로 미국 기업은 ROE가 높고, 유럽 기업은 ESG 스코어가 높았다

8.1위는 93포인트를 받은 덴마크 제약기업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로 ROE가 79%로 높아 수익력과 지속력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ESG 평가에서도 공장 소비전력의 77%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인슐린을 제공하는 등 사회와 경제, 환경 모두를 배려하는 ‘Triple Bottom Line 경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 기업으로는 36위에 SK하이닉스, 79위에 삼성전자가 순위에 들었고, 일본 기업 중에서 순위가 가장 높은 기업은 56위에 오른 생활용품 제조회사 가오花王이다.

9.ROESG 모델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수치나 순위보다 측정되기 어려운 비재무적 ESG 활동을 정량화하고 기업의 이익과 연결시켜 이것이 비용이 아닌 미래 가치 창출에 기여하는 투자임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점이다.

에자이의 1만여 개 이상의 ESG 데이터와 28년분의 PBR를 빅데이터 분석해 상관관계를 도출해내고, 이를 토대로 ROESG 모델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AI,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ESG를 정량화하고 가시화하려는 노력들은 현재 다른 여러 평가기관들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10.기업들도 이제는 ESG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 ESG는 기부나 자선 활동이 아니다.  명확한 비전 하에 기업 가치를 높이는 투자임을 인식하고 전략적 방향에 맞게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

가시화되고 측정 가능한 ESG추구로 자본 조달비용은 감소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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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줄서평]조원경의 ‘넥스트 그린 레볼루션’

EU(유럽연합)는 7월 14일 세계 최초로 탄소 국경세(CBAM) 도입을 공식화했습니다.

탄소 국경세는 탄소배출량이 많은 나라에서 만든 상품을 수입할 때 추가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징벌적 관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를 걱정하면서도 미온적으로 대응했던 국내 산업계가 탄소국경세 도입에 화들짝 놀라는 분위기입니다.

철강, 자동차, 화학 등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수출기업은 당장 탄소저감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적자를 감내해야 합니다.

‘넥스트 그린 레볼루션'(조원경)은 탄소와 관련된 국내외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망과 연결된 그린 수소관련 최근 동향을 잘 담고 있습니다.

10줄 요약_제2장 수소경제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1.수소경제

GM의 한 임원은 2000년 5월 전미석유화학정유협회 연차총회에서 “우리의 장기적 비전은 수소경제”라고 발표했다. 수소의 염원은 과거를 거쳐 현재까지 상당한 속도로 항해한다.

수소경제란 수소를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해 국가 경제와 사회 전반, 국민생활에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고, 경제 성장과 친환경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경제 시스템을 말한다.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저서 『수소 혁명(The Hydrogen Economy)』을 처음 접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2.기후변화/탄소세, 수소의 가치

MZ세대는 기후재앙이라는 대가를 혹독한 영수증으로 냉철하게 받아들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주역으로서 수소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 결과 수소는 산업, 운송, 전력 부문에서 다양하게 응용이 가능한 탈산소 해결책으로 부각되고 있다.

3.에너지원으로서 수소

1950년대에는 수소와 산소를 결합해 전기와 물을 생산하는 연료전지가 우주에서의 수소 사용을 위해 개발되었다. 1960년대에, 몇몇 과학자들은 물을 수소와 산소로 나누기 위해 태양 에너지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는데, 이는 훗날 연료전지로 탄생하게 된다

수소 양산 체제에서 경제성 확보가 중요하다. 비용측면에서 경제성과 편의성이 날로 좋아지면서 수소 활용이 각광을 받고 있다. 각국 정부가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민간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수소 경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4.수소의 특성

수소는 지구 표면에 산소와 규소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원소다. 또 우주에서 가장 흔한 것 중의 하나로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다.

아쉽게도 수소는 가장 가벼운 원소여서 가스로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고, 지구 대기권에 극소량이 존재한다. 지각권에서는 대부분 물 분자나 석유, 가스 같은 탄화수소, 생명체의 구성 물질과 같은 유기화합물 상태로 존재한다.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고 그 전기로 수소를 만들고, 그 수소를 수소 연료 전지에 담아 두고 필요할 때 전기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 수소에너지는 물에서 얻을 수 있어 자원의 제한이 없고, 연료로 사용된 후에는 물로 돌아가 생태학적으로 안정적이다.

5.수소연료전지 원리

한 번 사용하면 다시 쓸 수 없는 1차 전지나 전기차에 사용되면서 충전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2차 전지와 구별해서 연료 공급을 하면 전기를 지속적으로 생성하는 3차 전지가 수소연료전지다.

수소를 전기 생산에 활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인공태양’이라고 불리는 핵융합 발전은 두 수소 원자핵을 합쳐 헬륨 원자핵으로 바꿀 때 생기는 에너지를 얻는 방법이다.

두번째 수소 연료전지 방법이다.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기 위해서 수소는 자신의 전자를 버리고 양(+)이온이, 산소는 이 전자를 얻어서 음(-)이온이 돼야 한다. 그래야 서로 반대되는 전극을 가져 끌어당길 수 있다. 이렇게 전자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6.수소의 등급, 그린 수소가 핵심

색깔로 수소를 구분하는 이유는 생성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많이 발생하느냐를 구분하기 위해서다.

가장 많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브라운 수소’와 ‘그레이 수소’는 각각 화석연료인 석탄이나 천연가스로 만드는 수소다. 이런 수소를 생산하려면 온실가스 배출은 불가피하다.

그린 수소는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수소를 지칭한다.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을 이용하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이 없다.

7.그린 수소 EU 현황

유럽위원회는 2020년 7월 유럽 기후중립을 위한 수소 전략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2030년까지 수소생성과 수전해장치에 420억 유로, 이 장치와 태양광 풍력발전 연결망을 구축하는데 3400억유로를 투입한다는 것이다. 이 전략의 중심은 그린 수소다.

적기에 사용이 어려운 재생에너지 전기로 그린 수소를 대량 생산해 이를 에너지망에 연결해 유럽 산업을 번성하겠다는 계획이다.

2020년 6월 10일 발표된 독일의 ‘국가 수소 전략’은 글로벌 수소경제 확산에 불을 지폈다. 독일은 수소경제 이행의 명분부터 실행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쏟아냈다.

8.일본, 중동 지역 그린 수소 전략

일본은 세계 최대 규모의 그린 수소 생산 시설인 후쿠시마 수소 에너지 연구단지(FH2R)를 완공했다.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만든 전기를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하는 방식으로 매 시간 1,200Nm3 사용 가능한 수소를 생산한다. 이는 하루에 수소자동차 약 560대가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사우디아라비아는 580조원을 들여 첨단 도시 네옴(NEOM)을 100% 태양광 풍력 등 재생 에너지 도시로 구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세계 최대 수소 생산 기지를 세우기로 했다.

9.수소연료전지의 장애물

연료전지가 화석연료를 완전히 대체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수소는 가연성이 있고 기체 상태에서는 저장이 어려워 저장 기술이 개선돼야 하고, 연료전지에 사용되는 촉매의 가격이 매우 비싸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러한 한계점을 돌파하기 위해 많은 연구자들이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10.태양광 풍력 에너지원이 적은 한국의 수소 경제 선택

“우리나라는 풍력이나 태양광에적합한 국가가 아니다. 재생에너지에서 정제된 그린 수소 생산을 고려하고 있지만 그 규모가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는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국가에서 수입으로 충당해야 하는데 한국과 일본은 호주에서 충당할 수 있다.”(현대자동차 수소차 연구 임원)

그에 의하면 미래에는 결국 신재생 자원을 보유한 국가와 우수한 기술을 가진 국가가 협업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는 호주처럼 생산 여건이 좋은 국가에서 저렴하게 구매하고, 우리나라는 연료전지 시스템 기술을 개발해서 이것을 해외에 수출하면 된다.

<울산 수소도시 미래상>

대한민국 수소경제의 메카 울산시는 바람과 파도의 힘으로 생산한 에너지의 잉여 전력으로 수소를 만들어 지역 산업에 전기를 공급하고 수소 마을에 난방을 공급할 계획이다. 수소트램이 시민들의 발이 되고, 울산항을 오가는 선박을 수소연료전지로 운항하는 도시의 꿈은 현실이 된다.

울산은 수소를 생산·보관·수송·활용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수소로 필요한 에너지를 마련하는 세계적인 ‘수소 도시’로 부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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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줄서평]윤영호의 ‘그러니까, 영국’

영국은 한국인에게 친숙한 나라입니다.

영국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하라고 하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먼저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하지만 친숙한 것과 잘 아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특히 미디어나 책을 통해 접한 영국과 실제 영국 사회속에서 접한 영국은 다를 것입니다.

또 영국 사회 역시 새로운 상황을 맞아 변하고 있어 고정 프레임으로 영국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윤영호의 ‘그러니까, 영국’은 최근에 나온 영국 관찰기입니다.

그래서 윤작가는 영국이 왜 브렉시트를 선택했는지, 로열 패밀리를 사랑하는지 등 외신에 자주 등장하는 영국의 이슈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려고 발로 뛰었습니다.

책을 읽으면 새로운 팩트나 관점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영국에 가족과 함께 살면서 직접 보고 듣고 겪은 팩트를 많이 담으려고 애쓴 점입니다.

예를 들어 윔블던 테니스 관람권을 사기 위해 가족과 함께 텐트를 치고 밤을 새우는 과정에서 만난 영국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10줄 요약_8장 스포츠와 게임, 영국민의 발명품

1.여름 두달을 영국에서 보낸다면 골프, 테니스,경마 등 세계적인 스포츠 경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그런 행사중 최고는 역시 브리티시 오픈골프대회(The Open)다.

브리티시 오픈 모든 일정을 관람하고 식사와 음료수를 제공받는 티켓중 1200만원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 티켓은 가장 먼저 매진된다.

2.골프의 발상지는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St. Andrews)다. 제임스2세의 골프 금지령을 해제한 스코틀랜드 제임스4세는 골프를 즐긴 최초의 왕이었고, 제임스4세의 손녀 메리 여왕은 골프를 즐긴 최초의 여성이었다.

이들은 모두 세인트앤드루스에서 골프를 즐겼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는 골퍼에게 성지와 같은 곳이다. 영국인들은 올드코스를 성배(Holy Grail)이라고 부른다.

3.세인트앤드루스에서 영국 지인과 골프를 쳐보니 골프장이라기 보다 동네 공원에 가까웠다. 주민들이 자유롭게 골프장을 가로 질러 해변으로 가고 자전거로 페어웨이를 가로질러 가는 모습이 흔하다. 역사와 자연 도시와 사람이 함께 하는 골프장이다.

프로 골퍼 보비 존스는 “자신의 인생에서 모든 것을 빼앗겨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의 경험만큼은 빼앗기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4.영국인의 테니스 사랑은 유별나다. 세계 최고의 테니스 대회가 열리는 윔블던은 런던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역중 한 곳이다. 좋은 학교과 공원이 있고 시내 접근성도 뛰어나고 좋은 골프장과 테니스장이 많다. 윔블던 테니스대회 명칭은 ‘더 챔피언십’(The Championship)이다.

윔블던 관람권의 절반은 6개월전에 예약해야 하고 또 추첨을 통해 입장권이 배정된다. 절반은 현장에서 판매하기에 이틀전부터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데 큰 즐거움중의 하나다. 줄은 잘 관리되고 새치기 여지는 없고 낮에는 같이 줄 선 사람끼리 운동하고 음식을 나누기도 한다.

5.영국인들은 젠틀맨 이미지의 페더러를 전투적 이미지의 조코비치보다 더 좋아한다.

지인중 한명은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고 스포츠광이지만 테니스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이유를 물으니 “그건 귀족 스포츠잖아!”라며 농담섞인 대답을 했다. 영국 사회의 특징을 잘 함축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6.박지성선수가 뛰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왜 리버풀을 꼭 꺾어야 했을까?

두 도시는 18~19세기 산업혁명 중심지로 같이 발전하는 도시였다. 맨체스터의 방직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이 리버풀 항구를 통해 세계로 수출되었다.

후발 산업국가가 추격해오면서 맨체스터는 항구 사용료를 절감하기 위해 1885년 운하 건설을 추진했다. 이에 리버풀은 목숨 걸고 이 계획을 좌절시키려고 했다. 공동운명체였던 두 도시는 서로 잘 되는 꼴을 볼 수 없는 사이가 됐다.

7.운하를 놓고 두 도시의 싸움이 시작됐을 무렵에 두 도시에 각각 프로팀이 결성되었고, 잉글리시 축구 리그가 생겼다. 리그 초창기부터 맨유와 리버풀은 사생결단으로 축구를 했다. 그 경쟁을 통해 영국을 대표하는 구단이 되었다.

8.손흥민선수가 뛰는 토트넘 홋스퍼의 경기장은 런던 북부의 낙후 지역에 있다.

토트넘 구단주 대니얼 레비는 1조 5000억원을 들여 2019년에 호텔 인테리어 수준의 최신식 경기장을 지었다. 낙후된 주변과 대비되는 곳이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토지경제학을 전공한 레비 회장이 거액을 투자 최신 경기장을 지으면서 주변 지역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예상했을 것이다.

9.매년 6월 중순에는 에스콧 경마장에서 로열 애스콧 행사가 열린다. 영국 왕실이 주관하는 이 대회는 격조가 있다. 푸른 초장에 건설된 경마장, 화려한 족보의 명마, 연미복과 각양각색의 모자, 계층간 경계, 그리고 여왕이 등장한다. 매년 참가하는 여왕이 탄 마차를 2미터앞에서 볼 수 있다.

10.모든 영국의 경마대회가 애스콧같이 격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리버풀의 에인트리 경마장에서 개최되는 그랜드내셔널 대회를 본다면 영국다운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40필의 경주마가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나무 덤불을 서른 번 넘어야 한다. 터프하면서도 우아하다.

대회중에 기수와 말이 죽기도 한다. 그대로 대회는 멈추지 않는다. 인명경시나 동물 학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영국인은 보호와 안전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쟁도 흥분도 자유도 중요한 삶의 일부다. 그러다가 죽음이 오면 죽음은 문제의 끝이다. 모든 죽음을 다 풀어야 할 숙제라고 본다면 우리의 불행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