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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9월 15일, 헤비급 참피언 등극

알리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같은 해 10월 프로 복싱 데뷔전에서 치르며 6라운드 만에 승리했다. 알리는 이슬람교로 개종한 후 1964년에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바꿨다. 베트남 전쟁 중 알리는 미군 입대를 거부해, 1967년 징병 기피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3년 동안 권투 선수 자격이 금지되었다. 그는 항소 중인 1970년 10월 링으로 돌아와 다시 승리를 거두었다.  1971년 3월에 알리는 ‘ 세기의 싸움 ‘에서 조 프레이저와 싸워 프로 복싱에서 첫 패배를 당했다. 1971년 6월, 미국 대법원은 병역 기피 혐의로 알리의 유죄 판결을 뒤집었다. 1974년 1월, 뉴욕에서 열린 재시합에서 알리는 프레이저를 12라운드에 이겼다. 같은 해 10월, 알리는 조지 포먼을 누르고,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되찾았다. 1978년 2월 15일 라스베거스에서 알리는 스핑크스에게 패배했지만, 17개월 후에 다시 타이틀을 되찾았다.

1979년 6월, 알리는 은퇴를 발표했지만, 1980년 10월 다시 링으로 돌아와 헤비급 챔피언에 패했다. 그는 1981년 56승 5패 37KO를 기록하고 링을 떠났다. 1984년에 그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알려졌다. 알리는 2016년 6월에 사망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쏠 수있었던” 알리는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유일한 복싱한 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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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1책]글을 잘 쓰는 메모습관

온-오프 서점 서가를 둘러보면 독서와 메모기법을 다룬 책이 꽤 많다.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은 책도 있고, 신간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왜 그럴까? 독서론 테마의 경우 독서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은 욕구가 사회 저변에 늘 깔려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다수가 독서가 당장 돈벌이나 출세에 도움을 주지 못할지라도 독서를 통해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싶어 한다.

메모론은 독서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아날로그 시절 메모론은 대체로 수첩이나 메모카드를 중심으로 할 일, 일정, 스쳐지나가는 아이디어 등을 효과적으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류가 대세였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이런 유형의 메모론 대신 독서 메모론이 인기를 끌고 있다. 책 내용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 또는 책을 어떻게 깊게 즐길 수 있는지를 소개하는 메모론이 서점에 많이 등장한다. 디지털 시대의 독성을 해독하기 위한 아날로그적 감성의 복귀가 아닌가 싶다.

2020년에 읽은 도서 목록 중에서 신정철의 ‘메모 독서법’ ‘메모 습관의 힘’과 아사다 스구루의 ‘한 줄 정리의 힘’이 독서 및 메모 테마에서 돋보였다.

신정철과 아사다는 공통적으로 메모와 요약, 그리고 독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각자 특유의 방식을 소개한다. 신정절의 메모 및 요약 기법을 먼저 소개한다.

신정철은 필사를 메모의 기본으로 삼고, 책의 여백에 추가 정보를 기입하는 것으로 보조로 삼는다. 신정철의 요약 기법의 기본은 나를 위한 서평 쓰기다. 책을 다 읽으면 자기 자신을 독자로 생각하고 서평을 작성하는 것이다. 뇌에 입력한 내용을 객관화하여 뇌 밖으로 출력하는 절차인 셈이다.

▲신정철의 ‘메모 습관의 힘’과 ‘메모 독서법’

신정철은 이런 나를 위한 서평 기법을 바탕으로 남을 위한 글쓰기로 나아갔다. 그는 서평을 블로그 등에 공개하기 전에 가상의 독자가 어떤 문제를 궁금해할지, 어떤 것을 친숙해하는지를 자신에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답하는 방식으로 서평을 썼다고 한다.

▲아사다 스구루의 ‘한 줄 정리의 힘’

신정철의 책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마인드맵 활용법이다. 그는 메모와 요약을 합친 기법으로 마인드맵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독서 모임에서 발제할 경우 책 내용은 마인드맵으로 요약하고, 그 마인드맵을 모임에 가져가서 발표하는데 사용한다. 즉, 마인드맵은 메모와 요약을 동시에 실행하는 역할을 한다.

다음 아사다의 기법을 살펴보자.

아사다의 메모 기법의 기본은 ‘1 sheet frame works’이’라는 형식이다. 종이 한 장 (A4용지 기준)에 칸을 만들어 책을 읽는 목적(Purpose)를 먼저 적는다. 이어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키워드를 칸에 기입한다. 마지막 작업은 키워드를 보면서 20자로 책의 핵심을 요약하는 20자 쓰기다.

▲아사다 스구루가 고안한 20자 요약용 한 장짜리 프레임 워크

아사다 요약 법의 특징은 20자로 요약하는 것이다. 사실,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도 책의 세세한 내용을 모두 장기 메모리에 저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핵심 내용을 20자로 요약해서 언제 어디서든지 활용할 수 있으면 그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다.

아사다도 신정철처럼 독서로 습득한 지식을 자신의 언어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지 못하면 아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사다의 출력 방법은 세 가지 질문을 상정하여 스스로 답하면서 종이 한 장에 요약하는 것이다. 즉, 왜 읽었나?(Why) 무엇을 알거나 얻었나?(What)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How)에 대한 답변을 마련해야 만 다른 사람에게 쉽고 명확하게 책 내용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사다의 출력 요약 방법에 따라 ‘한 줄 정리의 힘’ 파트II를 정리한 사례

신정철과 아사다의 메모 및 요약 기법은 외형에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지향하는 바는 서로 흡사하다.

첫째, 책을 읽을 때 (또는 지식을 습득할 때) 눈으로 읽지 말고, 손으로 읽으라는 것이다. 즉, 펜을 들고 종이에 메모하면서, 읽으라는 것이다.

둘째, 가상의 독자를 상정하고 그 독자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핵심을 잘 요약해 두라는 것이다.

셋째, 요약을 하되, 기존 지식과 또 다른 지식과 연결점을 적극적으로 생각하면서 요약을 하라는 것이다.

2021년을 맞아 체계적인 독서를 계획한다면 두 권 독서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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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9월10일, 단두대는 침묵한다

프랑스 마르세유의 교도소에서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튀니지 이민자가 단두대에서 처형된 마지막 사람이었다. 단두대는 의사이자 혁명가인 길로틴이 모든 사형 선고를 “기계 수단”으로 집행하는 법을 통과시킨 후 시작되었다. 이른바 목을 자르는 기계는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일찍이 사용되었고, 길로틴과 그의 지지자들은 이러한 장치를 교수형이나 총살이나 다른 방법의 처형보다 더 인도적인 것으로 여겼다. 프랑스 참수 기계가 제작되어 시체에 대해 테스트 되었고, 1792년 4월 25일 노상강도가 프랑스 혁명에서 이 방법으로 처형된 최초의 사람이었다. 길로틴의 이름을 따서 곧 “단두대(길로틴)”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혁명 기간 동안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포함하여 10,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단두대로 머리를 잃었다. 단두대 사용은 19세기와 20세기 프랑스에서 계속되었으며 단두대에 의한 마지막 처형은 1977년에 이루어졌다. 1981년 9월 프랑스는 사형을 전면 금지하여 단두대는 영원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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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9월12일, 한미일 정상회담

김대중 대통령은 뉴질랜드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담에 참석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클린턴 미국 대통령, 오부치 일본 총리는 사상 첫 3국 정상회담을 열고 대북한 정책을 집중적으로 조율했다. 그 이전인 1998년 10월 8일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있었다. 과거사 인식을 포함해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토대로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자는 것이 기본취지였다. 한국 내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학생 유학 교류 등이 포함됐다. 1998년 양국의 합의는 한미일 첫 3국 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3나라 정상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함께 관계개선을 희망하는 발표문을 냈다. 3국 정상들은 북한이 한반도 항구적인 평화정착의 길에 나선다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고 공동발표문을 통해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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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미국 공격받다.

화창한 화요일 오전 8시 46분경 , 20,000갤런의 제트 연료를 실은 아메리칸 항공의 보잉 767기가 뉴욕 세계 무역센터 북쪽 타워에 충돌했다. 첫 번째 비행기가 충돌한 지 17분 후, 두 번째 보잉 767기가 나타나 남쪽 타워와 충돌했다. 두 번의 충돌로 인해 주변 건물과 거리에 대규모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세계 무역 센터가 거대한 먼지와 연기 속에 무너지면서 최악의 재앙이 발생했다. 시속 200마일이 넘는 바람과 대형 화재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초고층 건물이 엄청난 열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세계 무역 센터와 그 인근에서 343명의 소방관을 포함해 거의 3,000명이 사망했다. 붕괴 당시 세계 무역 센터 타워에 있던 사람 중 6명만이 살아남았다. 한편 수 백만 명의 시민이 뉴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공포에 질려 지켜보는 있는 동안,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오전 9시 37분에 워싱턴 DC 시내 상공을 돌다가 국방부 군 본부 서쪽에 충돌했다. 여객기에 탑승한 64명을 포함해 모두 125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국방부에서 사망했다.

사우디 출신  오사마 빈 라덴 이 이끄는 ‘알카에다 ‘조직이 배후에 있었다. 그들은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  걸프 전쟁 개입 , 중동에서 지속적인 군사 주둔에 대한 보복 조치였다. 테러리스트 중 일부는 미국에 1년 이상 거주했고, 미국의 상업 비행 학교에서 비행 수업을 받기도 했다. 또 다른 대원들은 9월 11일 이전 몇 달에 걸쳐 미국으로 들어왔다. 19명의 테러범들은 동부 해안 3개 공항의 보안 검색대를 통해 쉽게 상자 절단기와 칼을 밀반입하고 캘리포니아 행 비행기 4편에 탑승했다. 장거리 대륙 횡단 여행을 위해 연료를 가득 채운 항공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륙 직 후 테러리스트들은 비행기 4대를 지휘하고 조종권을 빼앗아 일반 여객기를 마치 유도 미사일처럼 이용해 뉴욕을 습격했다. 9월 11일 이후, 세계는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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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0월 11일, 존 레논 ‘이매진’발매

1971년 10월 11일,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노래 중 하나인 존 레논의 “Imagine”이 발매되었다. 존 레논은 비틀즈의 멤버였을 때 이 곡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밴드는 전례 없는 인기를 얻었지만, 존 레논은 새로운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이 노래의 이상주의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가사는 레논의 아내이자 개념 예술가인 오노 요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나중에 “가사와 컨셉” 이 오노의 시집인 ” 자몽 에서 바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고 , 오노 요코는 2017년에 공식적으로 공동 작문 크레딧을 받았다.

비틀즈가 해체된 지 1년이 조금 넘은 뒤, 레논은 프로듀서 필 스펙터와 함께 자신과 오노의 시골 별장에서 단일 세션으로 “이매진”을 녹음했다. “Give Peace a Chance”, “Power to the People”, “Happy Xmas (War is Over)” 등 그 시대에 발매된 레논의 다른 곡들과는 달리, 이 노래에는 노골적인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을 상상하라/모든 세계를 공유하라”와 같은 대사는 더욱더 유토피아적 비전을 노래했다. 레논의 솔로 앨범 중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앨범이 되었다. 2006년부터 뉴욕시의 새해 전야에 연주됐고 , 2012년 런던 올림픽 폐막식과 2018년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도 연주되었다. ” 리버풀의 존 레논 국제공항은 “Above us, only sky”라는 노래 가사를 모토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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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9월 8일, 포드 닉슨사면

이른바 워터게이트사건은 닉슨과 그의 측근들이 재선 캠페인 기간 동안 불법 활동에 가담했을 뿐만아니라, 이후 불법 행위의 증거를 은폐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을 밝혀졌다. 의회에서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닉슨은 대중의 압력에 굴복하여 사임했다. 포드 부통령이 바로 제38대 대통령으로 임명을 통해 취임했다. 포드 대통령은 닉슨이 사임을 발표한 지 한 달 만에, 닉슨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저지른 모든 범죄에 대해 “완전하고 자유롭고 절대적인” 사면을 내렸다. 당시 사면은 널리 비난을 받았고, 1976년 대선에서 민주당 지미 카터 에게 패한 뒤 정계를 떠났다. 수십 년이 지나, 존 F. 케네디  재단은 1974년 닉슨 사면에 대해 제럴드 포드에게 2001년 용기있는 프로필상을 수여했다. 재단은 닉슨을 사면하면서 포드는 자신의 정치적 미래보다 국가에 대한 사랑을 앞세웠고, 분열을 불러일으킨 워터게이트 사건을 종결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포드는  포드는 2006년 12월 26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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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9월 7일, 하나회 척결

김영삼 대통령은 5월 24일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숙청한다. 하나회는 박정희 정권 때 성장한 군부 내 사조직이다. 하나회는 전두환을 중심으로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서울의 봄을 앗아가고 군부독재를 이어갔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100일만에 1212사태와 관련 고위장성의 예편조치를 단행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육군 고위층에 자리잡고 있던 하나회 회원중 3성장군 이상 전원과 소장급 이하도 모두 보직이 변경됐다. 취임후 100일 동안 대장 7명 포함, 19명의 장성이 전역됐다. 떨어진 별만 마흔 개가 넘었는데, 떨어진 별이 40개가 넘었다고 한다. 문민정부에서 빠르게 군대사조직을 종식했기 때문에 쿠데타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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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9월 5일, 공병우 한글타자기 상용화

구한말인 1907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난 공병우 박사는 한국인 최초 안과전문의이다. 그의 병원에서 한글학자 이극로선생을 만나면서, 공병우는 한글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일본어로 적힌 의학서적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한글 타자기의 필요성을 더욱더 절감한다. 해방 후 1949년 ‘조선발명장려회’가 한글 타자기를 공모했는데, 이때 공병우의 세벌식 타자기가 만들어졌다. 공병우 타자기에는 한글창제원리가 반영돼 있다. 그런데 1969년 정부는 네벌식 타자기를 ‘한글 기계화 표준 자판안’으로 제정한다. 이어 1983년에는 두벌식을 표준으로 바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는 입원직전까지도 PC통신 하이텔에 한글기계화운동과 세벌식 타자기의 장점을 옹호하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1995년 3월 7일, 우리나라 최초 안과 전문의이자 한글 타자기를 발명한 공병우 박사가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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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년 9월4일, 서로마제국 멸망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는 게르만용병인 오도아케르에 의해 폐위되었다.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할된 395년부터 81년이 지나 동로마제국이 멸망했다. 오도아케르는 15세였던 자신의 아들을 새 황제로 옹립하지만, 10개월 만에 게르만족 군대의 반란으로 폐위된다. 오도아케르는 동로마 황제 제노의 종주권을 인정해 서로마 황실 징표가 되는 물품들을 동로마로 보냈고 동로마제국은 오도아케르를 총독으로 인정했다. 비록 동방에서는 로마의 통치가 계속되었지만, 서로마 제국은 사라졌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도 “로마제국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