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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고발명품 도시 연구가,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도시의 승리》의 저자로, 주요 연구 분야는 도시경제학과 공공경제학과 미시경제학이다.

도시와 경제 성장 그리고 법과 경제를 주제로 다루는 논문 수십 편을 발표하는 등 지난 30년 동안 도시와 도시의 진화에 대해 폭넓게 연구해왔다.

그가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연구를 압축한 《도시의 승리》는 도시에 대한 시각을 바꿔놓은 역작으로 꼽힌다. 전 세계 언론과 학자로부터 극찬을 받았으며, 지금도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뉴욕 타임스〉에서는 “번뜩이는 통찰은 물론 가치 높은 여러 정책 제안을 담고 있다”라고 평했다.

현재 재무부 산하기관인 전미경제연구국(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에서 도시경제학워킹그룹(Urban Economics Working Group)을 이끌고 있다.

국제성장센터(International Growth Center) 내 도시 연구 프로그램의 공동 책임자다.

공공정책 싱크탱크인 맨해튼연구소(Manhattan Institute)의 선임연구위원, 〈시티 저널(City Journal)〉의 편집자 겸 기고자이기도 하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와 전국행정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Public Administration)의 회원이다.

저서소개_도시의 생존

전 세계 76%가 거주하는 도시가 위기에 처했다!

하버드대 두 경제학자가 말하는 도시의 현재와 미래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놓은 역작이라고 평가받는 《도시의 승리》의 저자이자 세계적 도시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이번에는 같은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보건경제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권위자로,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 브레인’으로도 알려진 바 있는 데이비드 커틀러와 공동으로 작업했다.

《도시의 생존》(Survival of the City)이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전공도 정치 성향도 다른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댄 것은 도시의 번영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기의식은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뒤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코로나19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도시가 쇠퇴하는 원인은 대부분 탈산업화였다.

미국의 러스트벨트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제는 팬데믹이 도시와 도시의 시민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도시의 결정적인 특징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밀집성 혹은 근접성인데, 이것이 질병을 더욱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나치게 높은 주거 비용, 일자리 간 격차, 재난과 재해에 취약한 기반 시설, 부실한 건강보험제도, 낮아진 상향 이동의 가능성, 젠트리피케이션을 둘러싼 갈등, 안전과 자유 사이의 딜레마 등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우리의 도시가 ‘내부자는 보호하고 외부자는 고통받도록 내버려둔다’는 사실”이 있다.

전염병이 다른 재해와 달리 지리적 경계가 없듯, 이 책이 다루는 범위는 역사적 사실과 전 세계를 아우른다. 오랜 전 전염병의 한복판에서 이탈리아의 도시 라구사와 베네치아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개발도상국의 인프라와 그 이외 나라의 건강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에 더해 코로나19로 인해 수면 위로 드러난 사회경제적 문제는 무엇일까?

두 저자는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싶다면 이웃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차 강조한다.

그리고 그러한 차원에서 세계적 차원의 팬데믹 대응을 위해 나토(NATO)와 같은 기구의 설립을 주장한다. 전 세계 인구의 76%, 국내 인구의 91%가 도시에 거주한다. ‘도시의 생존’에 관한 고민과 논의가 미뤄져서는 안 된다.

양극화되어 가는 시대,

도시의 역할은 무엇일까?

코로나19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은 도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도시는 직격탄을 맞았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상가는 텅 빈 채로 남아 있었으며, 공장은 한동안 가동이 멈춰 있었다.

도시가 곧 인류의 번영과 행복의 열쇠라고 주장하며,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놓은 역작으로 평가받는 《도시의 승리》(Triumph of the City)의 저자이자 세계적 도시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최근 3년간 전 세계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그의 신작 《도시의 생존》(Survival of the City)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책은 같은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의 교수이자 보건경제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권위자인 데이비드 커틀러와 함께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전공도 정치 성향(글레이저는 공화당 지지자이고 커틀러는 민주당 지지자인데, 커틀러는 오바마 정부의 ‘경제 브레인’으로 국내에도 알려진 바 있다)도 다른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댄 것은 도시의 번영이 이대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기의식은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뒤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코로나19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도시가 쇠퇴하는 원인은 대부분 탈산업화였다.

미국의 러스트벨트, 영국의 리버풀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나타난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팬데믹이 도시와 도시의 시민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도시의 결정적인 특징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밀집성 혹은 근접성인데, 이것이 질병을 더욱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나치게 높은 주거 비용, 일자리 간 격차, 재난과 재해에 취약한 기반 시설, 부실한 건강보험제도, 낮아진 상향 이동의 가능성, 젠트리피케이션을 둘러싼 갈등, 안전과 자유 사이의 딜레마 등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우리의 도시가 ‘내부자는 보호하고 외부자는 고통받도록 내버려둔다’는 사실”이 있다.

팬데믹부터 공중보건, 일자리, 인프라, 식생활, 교육, 주거, 범죄까지

도시의 역사 2,500년에 대한 회고와 도시의 미래에 대한 전망

《도시의 생존》은 총 10개의 장(1장과 10장은 각각 서론과 결론이다)으로 나뉘어 있고, 크게 보면 두 영역이라 볼 수 있다.

처음 네 장은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정신적·육체적 건강과 관련되어 있다.

비만, 약물 의존 및 중독, 깨끗한 식수 부족 등에 주목한다.

다음 네 장은 보다 넓은 차원의 접근으로 사회적·경제적 문제에 대해 다룬다. 교육, 범죄, 주거 문제, 재택근무 등이다. 모든 장에는 각 사안에 대한 저자들의 현상 진단과 정책적 대안이 담겨 있다.

팬데믹은 도시에서 도시로, 도시 내부에서, 그리고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확산된다.

2장에서는 대도시에서 대도시로의 전염병 확산을 다룬다. 이어서 팬데믹의 초기 역사와 격리를 통해 이러한 팬데믹과 싸우는 노력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살펴본다.

전염병이 발생했을 당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환경적 차이, 전염병이 두 나라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뒤덮었을 때 이탈리아의 라구사는 어떻게 건재할 수 있었을까?

이어서 미래에 발생할지 모르는 팬데믹을 대비하기 위해 세계적 차원의 대응 기구 설립을 제안한다. 보건 분야의 나토(NATO)라 할 수 있다.

3장에서는 도시 내에서 이루어지는 질병의 확산을 다루는데, 19세기의 대형 전염병들 특히 콜레라에 초점을 맞춰서 살펴본다.

이러한 질병들은 부자와 빈자 사이의 유대감을 강화했고, 이런 유대감 덕분에 높은 수준의 위생을 보장하는 상하수도 시설이 뉴욕의 워싱턴 광장에 있는 고급 타운하우스뿐만 아니라 가난한 주택가에도 보급되었다. 궁극적으로, 팬데믹의 결과는 개인과 그 질병 사이의 싸움에 달려 있다.

코로나19는 특히 노인층과 비만인층에서 치명률이 높았다.

다른 질병들은 흡연자나 불법약물 사용자 또는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하는 사람들을 상대적으로 높은 사망률로 이끈다.

4장에서는 도시의 건강 그리고 팬데믹에 대한 도시의 취약성을 결정하는 여러 행동을 살펴본다. 전염병이 소득, 학력, 거주지 등에 따른 건강 격차를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5장은 의료 제도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나 많은 돈을 의료 분야에 쓰면서도 전염병을 억제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을까?

6장에서는 팬데믹이 경제에 미치는 단기적인 영향을 살펴본다.

과거의 전염병들은 비록 사람을 죽이긴 했지만 경제에는 거의 또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았다. 심지어, 흑사병은 생존자들을 부유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농부 한 명당 더 많은 땅이 돌아가서 자급 농업인의 재산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1918~1919년의 스페인독감 역시 짧고 예리한 충격을 주었지만, 경제는 빠르게 회복했다.

7장에서는, 팬데믹의 장기적인 결과 특히 재택근무로의 이행을 살펴본다.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와 같은 미래학자들은 전자적인 방식의 상호작용이 등장하면서 대면 회의가 필요 없게 되고, 그 결과 도시를 떠나는 행렬이 대규모로 이어질 것이라고 이미 40년 전에 주장했다.

실제로는 어떤 현상이 나타났을까?

중요한 점은 재택근무가 가능한 사람과 산업이 한정적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내 한 조사에 따르면, 2020년 5월 기준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이들 중 재택근무를 하는 비율은 겨우 5퍼센트였다.

8장에서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힘을 살펴본다.

내부 갈등의 새로운 파도가 도시를 허약하게 만들어왔으며 팬데믹 대응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들었다.

예컨대 대중교통 담당자들이 마스크 착용 규정의 시행을 꺼렸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업체들은 예컨대 필라델피아에서 백인 경찰이 버스에서 흑인 남성을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동영상이 나올 빌미를 제공하게 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되는 젠트리피케이션 전투에도 초점을 맞추었는데, 이 내용은 도시 공간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은 오랜 기간 지속된 문제이지만 특별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도시에 충분한 공간이 없다면, 그런 공간을 더 많이 만들면 된다.

수요가 넘치는 곳에서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하려면 밀집 지역에서 고층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률이나 규정을 없애면 된다.

글레이저와 커틀러는 불합리한 개발 규제를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는 어떤 사람이 사는 집 부근에 미술관이 없었다면 그는 미술관이 자기 집 부근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도시 공간에 대한 제약 말고도 도시의 분쟁을 유발하는 다른 원인들이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도시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의 싸움이다. 9장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전쟁’과 같은 손쉬운 입법적 해결책이 없는 두 가지 유형의 분쟁을 살펴본다.

그것은 바로 경찰과 학교를 둘러싼 분쟁이다. 자유와 안전 사이의 딜레마, 교육 개혁과 관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정책 결론 및 근본적인 낙관론을 요약한 내용으로 10장을 채우고 대장정을 끝맺는다. 도시들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아테네 거리에서 논쟁을 벌인 뒤로 수많은 기적을 만들어왔다.

도시의 기적이 끝나야 할 이유는 없다.

아니,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도시가 외부자들에게도 한층 더 개방적이 되도록 그리고 전염병이나 끔찍한 불평등과 같은 온갖 악마에 덜 취약하도록 똑똑하게 또 실용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전 세계인의 76%, 한국인의 91%가 사는 곳,

도시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려면…

두 저자는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싶다면 이웃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자연 재해의 범위는 지리적으로 대개 한정적이다. 대형 쓰나미조차도 그렇다.

반면,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은 지리적 경계가 없다.

모든 지구인을 위협한다.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팬데믹 시기, 싱가포르 정부는 공사장 인부나 거리의 청소원 같은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건강 관리와 감염 방지 노력을 소홀히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들 사이에서 환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뒤 싱가포르에는 환자가 급증했다.

19세기 여러 도시를 덮친 콜레라로부터 배운 것도 바로 이러한 점이었다. “팬데믹의 본질은 전 세계의 어느 한 곳에서 시작되는 질병이 모든 나라에 위기를 가져온다는 데 있다.”

즉 델리의 소년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서울 혹은 뉴욕에 사는 직장인도 언제고 건강을 위협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세계적 차원의 팬데믹 대응을 위해 나토(NATO)와 같은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76%, 국내 인구의 91%가 도시에 거주한다.

도시가 계속 성장하고 번영하고, 나아가 모두에게 살기 좋은 곳이 되기 위해서는 인프라와 보건, 일자리와 주거, 교육과 치안 등 켜켜이 쌓인 여러 과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두 학자의 메시지를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해외에서는 《괴짜 경제학》의 저자 스티븐 레빗과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의 저자 리처드 플로리다를 비롯해서 여러 석학과 〈뉴욕 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 등 다수의 매체가 추천했다.

국내에서는 도시문헌학자 김시덕, 인구학자 조영태,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도시공학자 정석, 《세습 중산층 사회》 저자 조귀동이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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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덕 ‘생명의 벗, 약초’

한의사 장영덕은 ‘나는 왜 이책을 썼는가’로 강연을 시작했다. 사실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의사를 하면서 공부와 쓰기를 병행하려면, 담대한 열정이 없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 열정의 실체가 궁금했다. 그의 강연을 들으며, 역시 그가 사학도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는다.

산과 들로 약초를 찾아 헤맨 조상들을 찾아가는 그의 문제의식은 역사적이다. 인간의 질병 치료가 약초에서 시작해 물약, 알약, 항생제를 거쳤다. 그리고 항생제에 질린 인간은 천연 약초를 재발견하고 있다. 어찌보면 낡은 주제인 듯 하지만, 그가 풀어낸 약초 이야기는 새롭고, 유용하다.

저자 장영덕은 ‘약초의 힘’을 이야기한다. 그는 이야기를 매개로 이곳 저곳이 부실한 우리들과 소통한다. 말하자면 서사의학(Narrative Medicine)이다. 그는 환자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환자의 불편 또는 고통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줄 좋은 의사임이 분명하다. 다소 먼곳에 있지만, 언제가 그의 한의원을 방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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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11월 17일, 수에즈운하 개통하다.

수에즈 운하는 10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1869년 11월 17일 완성되었다.아프리카 대륙을 일주하지 않고도, 북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나일강(따라서 지중해)과 홍해를 연결하는 작은 운하는 기원전 2000년에도 있었다.

수에즈는 국제무역에 너무도 중요했기에, 분쟁의 중심에 있었다. 1888년 콘스탄티노플 협약으로 수에즈 운하는 영국의 보호 하에 중립 지역으로 운영되었다. 2차 대전이후 수년간의 협상 끝에 영국군은 1956년 수에즈 운하에서 군대를 철수한다. 나세르 대통령이 이끄는 이집트 정부가 국유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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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경 “조레스”

어떻게, 그렇게 오래, 한결같을 수있었을까?! 강연내내 노서경선생을 보면서 든 느낌이다.

이른바 586 세대는 80년대라는 시대의 산물이다. 광주사태를 방기한 대학생의 원죄론에 받아들였다. 샤르트르의 ‘지식인의 변명’을 교재처럼 읽고, 민주주의와 노동자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배웠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빨갱이 신드롬과 싸우다가, 어느덧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물론 진심이고 열정이었다.

그렇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10월의 마지막밤 가사처럼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다. 막상 밥벌이하는 세상을 살다보니, 그건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래’가 아니라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받아들였다. 인간의 욕망은 본능이다. 사회주의는 인간의 욕망에 반한다.

그런데 평생 프랑스 사회주의를, 조레스를, 진심으로 한결같이 탐구한 노서경선생이 있었다. 그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행같았던 사회주의를 따른 것이 아니다. 그녀가 외신기자로 일했던 작은 텔레타이프실에서 스스로 찾은 것이었다. 부럽게도 불어를 할 줄 하는 그녀는 세상을 향해 열린 공간에서 국경너머의 인간을 찾아냈다. 노서경 선생은 말한다. ‘지식이 인격과 단절될 때 그 지식인은 사이비요 위선자가 되고 만다’. 그녀는 ‘이즘 또는 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한결같은 인간의 진심을 말했고, 그래서 울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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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에서 역사소설가로, 손정미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조선일보사에 입사해 사회부, 문화부, 정치부에서 20년 간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문학 담당 기자 시절 고(故) 박경리 선생으로부터 소설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소설을 쓰기 위해 신문사를 퇴사해 2014년 삼국 통일 직전 경주를 무대로 한 역사 소설 《왕경》을 시작으로, 고구려 소설 《광개토태왕 1, 2》와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도공 서란》을 발표했다.

역사 소설 집필을 위해 만주와 중국 서안, 실크로드, 이란, 중앙아시아를 답사하는 등 스케일 큰 현장 답사와 사료 연구를 꼼꼼히 해오고 있다.

한국 문화재를 역사적 배경에서 다룬 《조선 막사발에서 신라 금관까지》를 쓴 계기로, 명성황후와 구한말 역사는 다시 씌여져야 한다는 생각에 《그림자 황후》를 집필했다.

최근작 : <그림자 황후 2>,<그림자 황후 1>,<조선 막사발에서 신라 금관까지>

저서소개_그림자 황후

손정미(지은이)의 말

내가 명성황후를 진지하게 만나게 된 계기는 일본의 한국문화재 약탈 역사를 들여다보면서였다.

망국의 역사가 어둡고, 억울하고 답답했다.

그러나 명성황후와 고종의 궤적을 더듬어가다 보니 잘못 알았던 부분이 너무 많았다. 명성황후의 진짜 얼굴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우리는 명성황후와 고종에게 ‘왜 부패한 조선을 개혁하지 못하고 외세에 나라를 빼앗겼느냐’고 비난한다. ‘외세에 질질 끌려다니다 결국 나라를 망하게 했다’고 돌을 던지고 있다.

명성황후와 고종의 시대는 수백 년 묵은 폐습이 쌓여 둑이 무너진 것이었다.

명성황후는 20대 중반 이후 줄곧 불면에 시달렸다. 늘 암살의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카리스마와 강인한 정신력으로 난세를 헤쳐 나갔다.

고종에 대해 ‘무능하다’는 암군暗君 이미지도 일본이 시작한 이미지 조작이었다.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측근에서 일했던 미국인 오웬 데니는 고종을 현명하고 용감하며 강인한 왕이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그를 조선에 보낸 청나라의 입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었지만 데니는 솔직하게 발언했다. 명성황후는 생전에 고종의 그림자처럼 뒤에서 기민하게 활약했다.

《그림자 황후》가 명성황후와 구한말 역사에 대한 우리의 집단무의식을 조금이라도 바꿔놓는 계기가 되길 빈다.

이번 작품을 쓰면서 어떤 때는 칼날 위를 걷는 듯 아찔했고, 어떤 때는 바람 한 점 없는 망망대해를 노 하나 들고 건너는 막막함에 빠지곤 했다. 거칠고 먼 항해를 마치고 항구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내가 《그림자 황후》를 쓰면서 역사와 대화를 나눈 것처럼, 독자 여러분도 그런 신이한 경험을 맛보길 바란다.

국난의 광풍 속에서 혼을 다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명성황후!

그녀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꾸짖고 있다.

《그림자 황후》는 손정미 작가가 명성황후의 일대기와 일본의 만행을 치밀하게 파헤친 역사 소설로서 IT조선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다.

명성황후는 고종이 사랑한 왕비이자, 누이이자, 어머니 같은 존재이면서 가장 신뢰받았던 동지였다. 그녀는 일본의 극악무도한 정치테러로 시해된 이후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그림자처럼 조용히 말을 건네고 있다.

잘못된 역사 속에 가려진 명성황후의 진짜 모습이 그려진 소설,

구한말의 역사는 다시 씌어야 한다.

일본의 몇몇 핵심 인사들은 조선이 무서운 잠재력을 가진 민족인지 알고 있었다.

아니면 그토록 조선의 역사를 말살하고 왜곡하는 데 혈안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명성황후가 꿈꿨던 조선은 행복하고 자유롭고, 힘 있는 나라였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영웅이었다. 나라의 역사는 정신이고 영혼이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를 찾아야 하는 것은 후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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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천 ‘좋은불평등’

저자 최병천은 ‘진보진영’이 지난 30년 가까이 갇혀 있었된 잘못된 통념을 뒤집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동안 진보진영은 불평등 확대의 원인을 ‘재벌,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확대’로 진단한다. 허나 그것은 이념과잉이 빚어낸 오류이고, 데이터에 근거한 현실은 아니라고 한다.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해야 불평등의 실체가 드러난다. 무엇보다 불평등은 세계경제와 중국경제의 변화 때문이다. 데이터가 말하는 불평등의 시작은 1997년 외환위기가 아니다. 실제 1994년 이후 임금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지게 된다. 한/중 수교를 계기로 노동집약적 산업들이 중국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이전에 이미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취업자의 절반이 사라졌다. 

또한 소득주도 성장론 목표에 반하는 결과는 보여준다. 1991년 이후 연평균 취업자 증가는 40만 명이었다. 그런데 민주당 정부가 최저임금을 16.4% 인상했던 2018년, 취업자는 사분의 일 수준인 9.7만 명이만 늘어났다. 이는 ‘경제위기 수준의’ 고용 쇼크였다. 

그는 경제적 세계적 링크를 분석하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몇번이나 외쳤다. 어쩌면 저자 최병천은 진보의 구세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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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미국 할로윈의 역사

할로윈, 곧 만성절은 매년 10월 31일이다. 이 전통은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유령을 쫓는 의상을 입던 고대 켈트족의  축제에서 유래했다. 11월 1일은 추수가 끝나고 어둡고 추운 겨울이 시작되는 날이다. 켈트족은 새해 전날 밤인 10월 31일에 죽은 자의 유령이 땅으로 돌아온다고 믿고 삼하인(Samhain)에 축하했다. 이후 8세기 교황 그레고리우스 3세는 11월 1일을 모든 성인을 공경하는 날로 지정했다.

이후 할로윈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했다. 각국의 유럽인과 아메리칸 인디언의 관습이 맞물리면서 미국식 할로윈 버전이 등장한다. 기근을 피해 미국에 이민온 수백만 명의 아일랜드인들은 전국적으로 할로윈 축제를 대중화했다. 그들은 의상을 차려입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음식 등을 부탁하기 시작했고, 오늘날의 “트릭 오어 트릿(trick-or-treat)” 전통이 되었다.

1920~30년대 할로윈은 지역 사회 중심의 파티가 되었다. 퍼레이드와 마을 전체의 할로윈 파티가 열렸다. 그렇지만 파티 기간 동안 지역 사회에서 아이들의 장난으로 사고가 발생하거나, 기물 파손 행위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폭력과 기물 파손은 한때 사탕과 의상만큼 일반적이었다. 할로윈과 관련된 악의적인 폭력과 약탈이 대공황 시기에 더욱 악화되었다. 할로윈은 한때 너무 위험해서 일부도시에서는 그것을 금지하려고 했다.

2차대전 이후 할로윈은 베이비 부머인 젊은세대를 중심으로 변화해갔다. 1950년대에 ‘트릭 오어 트릿’이 미국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1950년대 대량 생산된 의상이 저렴해지면서, 다양한 캐릭터로 분장하기 위해 할로윈 의상을 입었다. 이제 아이들은 공주, 미라, 광대 또는 괴물의 복장을 입게 된다. 1970년대에는 할로윈 의상에 더해 어른들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1969년 반전 시위자가 닉슨 마스크를 착용한 것이 시발이엇다. 그해 말, 백악관 할로윈 파티에서 존슨 전 대통령의 가면이 등장한다.

할로윈은 파티의 밤이자 악마의 밤이기도 했다. 1984년 방화범들은 쓰레기통이나 버려진 건물에 불을 질러 디트로이트의 밤하늘을 할로윈 오렌지색으로 바꿨다. 3일 동안 계속된 방화로 도시 전역에 800개 이상의 화재가 발생했다. 디트로이트는 보호자가 없는 18세 미만 청소년에 대해 황혼에서 새벽까지 통행금지령을 제정했다. 30,000명 이상의 자원 봉사자가 이웃 순찰에 참여했다.

한편 ‘트릭 오어 트릿’도 변화해 간다. 본래 아이들은 수제 쿠키와 케이크 조각부터 과일, 견과류, 동전,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받았다. 1950년대 캔디 제조업체는 할로윈을 맞아 자신들의 제품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할로윈을 위해 캔디는 점점 더 저렴하고 편리한 제품으로 간주되었다. 1970년대 공장에서 포장된 사탕이 대세가 된다. 독을 든 캔디때문에 어린이가 사망한 사건 이후 안전을 위한 선택이었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할로윈에 매년 약 60억 달러를 지출하여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상업 휴일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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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0월 31일 인디라간디 암살되다.

인디라 간디 총리는 1984년 10월 31일 그녀의 경호원들에게 암살됐다. 그들은 시크교도 분리독립 운동의 탄압에 반발해 범행을 저질렀다.인디라 간디는 네루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아버지와 함께 독립운동에 참가했다.네루가 수감생활을 하며 딸에게 보낸 역사 강의는 ‘세계사 편력’이란 책으로 엮여 유명해졌다. 그녀는 부모가 반대하는 페로제 간디라는 남자와 결혼하면서 ‘간디’가 되엇다. 1964년 네루가 별세한 뒤 1966년 인도 사상 첫 여성 총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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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페미니스트, 카트리네 마르살

웁살라대학교를 졸업하고 스웨덴의 유력 일간지 《아프톤블라데트(Aftonbladet)》의 편집주간을 지냈다. 현재는 《다겐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에서 금융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 금융?정치와 페미니즘에 대한 기사를 주로 다룬다. 경제학과 가부장제의 관계를 논한 저서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는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 책을 “여성, 경제, 돈에 관한 영리하고 재미있고 읽기 쉬운 책”이라고 평했다.

《지구를 구할 여자들》은 기술 발전의 역사에서 여성과 여성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어떻게 수많은 아이디어를 배제하고, 결과적으로 미래를 향한 혁신을 방해하는지를 풍부한 사례와 재치 있는 언어로 증명한다

저서소개_지구를 구할 여자

진정한 남자는 가방을 굴리지 않는다?

인류의 유서 깊은 발명품인 바퀴를 여행 가방에 다는 데 무려 5000년이 걸렸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캐리어’라고 부르는 바퀴 달린 가방이 등장해 전 세계 여행 산업의 판도를 바꾼 것은 1970년대가 지나서다.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찍고 지구로 귀환할 때까지도 손잡이로 짐가방을 들어 옮기는 것이 당연했다는 이야기이다.

고작 가방에 바퀴 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발명이라고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을까? 이 수수께끼에 매달린 로버트 쉴러나 나심 탈레브 같은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조차 놓친 답은 바로 ‘진정한 남자는 무거운 짐을 직접 든다’ ‘여자는 짐을 들어 줄 남자 없이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라는 성별 고정관념에 있었다. 과거 서구 남성들에게 자신의 완력을 놔두고 바퀴로 가방을 굴린다는 건 모욕에 가까웠다. 그런 가방은 여자들이나 쓸 만한 것이지만, 어차피 여자 혼자 어딜 그렇게 가겠는가. 지금 들으면 유치하고 어처구니없는 이런 생각이 수천 년 동안이나 기술 혁신을 지연시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바퀴 달린 가방만이 아니었다. 약 100년 전에 휘발유차와 나란히 유행했던 전기차는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나사(NASA)는 어쩌다 우주복 제작을 여성용 속옷 회사에 맡기게 되었을까? 인간만큼 집안일을 잘하는 로봇은 왜 아직 없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 역시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과 관련이 있다.

전작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에서 주류 경제학이 지워 버린 여성의 자리에 주목했던 카트리네 마르살은 신작 《지구를 구할 여자들》을 통해 이처럼 인류의 발목을 붙잡아 온 오랜 편견과 차별을 파헤치며 남성 중심의 과학기술사를 통쾌하게 뒤집는다. 과학기술여성연구그룹의 공동 설립자인 임소연(《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저자)과 하미나《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저자)가 이 책을 읽고 나눈 대담에서 하미나가 말한 것처럼, 여성의 눈으로 과학기술을 본다는 것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층위에서 접근한다. 첫째는 앞서 말한 바퀴 달린 가방(1장)처럼 성별 고정관념이 어떻게 기술 발전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는가를 역사를 통해 증명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가 전기 자동차(2장)다. 일론 머스크가 이 산업에 뛰어들기 한참 전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전기차는 이미 유럽과 미국 대도시를 달리고 있었다. 시동 걸기 힘들고 시끄러운 휘발유차가 남성을 위한 스포츠라면, 편리하고 안전한 전기차는 여성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런데 이 ‘여성적’ 이미지가 잘나가던 전기차의 발목을 붙잡았다. 안락함을 원하는 건 여자들뿐이고, 남자들은 휘발유차의 크랭크를 돌리다 턱뼈가 나갈지언정(안타깝게도 캐딜락의 최고 경영자 헨리 릴런드의 친구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여성스러운 전기차에는 눈길도 안 준다는 것이 당시 자동차 산업의 판단이었다. ‘여성적’인 가치는 인간 보편적 가치로 여겨지지 않았으며, 어떤 기술이나 상품이 ‘여성적’이라면 그건 ‘열등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결과 전기차는 휘발유차와의 경쟁에서 밀려나 사라졌고, 우리는 이 친환경적 이동 수단의 재발명을 100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이제 와서 옛날 사람들의 고리타분한 생각을 비웃기는 쉽다. 그러나 과연 오늘날 우리는 비슷한 실수를 안 할까?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어린 시절 공상과학 만화에서 보았던, 집안일을 알아서 척척 해내는 AI 로봇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또 다시 젠더와 연관된다.

그간 AI 연구자들은 교육 수준이 높은 남성 과학자들이 어려워하는 문제를 푸는 능력을 곧 지능이라고 여겼다. 그 결과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여러 능력들을 간과했는데, 그중 하나가 신체적 지능이다. 신체는 인간이 병들고 노화하는 취약한 존재이며, 타인에게 의존한다는 불편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가부장제는 여기에 ‘여성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무시하고 외면했다. 남성 과학자들은 AI가 혜성과 미사일 궤도를 계산할 수 있다면 청소나 설거지처럼 몸 쓰는 하찮은 일쯤은 자동으로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기술과 발명의 역사에서 로그아웃된 여자들

만약 더 많은 여성 과학자들이 AI 개발에 참여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성의 관점에서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두 번째 층위는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기술 발전에 참여해 왔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스물한 살에 소아마비에 걸려 15년간 목발에 의지해 살아온 아이나 비팔크는 자신이 경험한 신체적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직접 보조 보행기를 만들었다(5장). 그가 발명한 것은 단순한 신체 보조 기구가 아니라 자유라는 삶의 비전 그 자체였다. 이 책이 많은 뛰어난 여성 인물들 중에서도 특히 비팔크를 내세운 것은, 그의 사례가 ‘여자도 발명했어, 남자들이 한 것 우리도 했어’라고 말하는 것을 넘어,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들이 기술과 발명에 참여할 때 어떤 새로운 가능성과 잠재력이 열릴 수 있는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하지 않는 세상에 사는 사람은 그 세상을 개선할 방법을 더 쉽게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문제는 비팔크에게 돈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장애가 있는 여성의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이고 투자해 줄 사람이 없었다. 결국 비팔크는 싼값에 자기 아이디어를 팔았다.

집단의 측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돈과 경제적 기회가 더 적지 않은 국가는 지구상에 단 한 곳도 없다. 여성이 소유한 사업체의 약 80퍼센트가 필요한 신용 대출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벤처 캐피털의 97퍼센트 이상이 남성 창업자에게 흘러 들어간다. 오늘날의 금융 시스템이 여성을 조직적으로 배제하는 이와 같은 방식은 자연스럽게 여러 아이디어와 발명 중 어떤 것이 실현되거나 실현되지 못할지를 결정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비팔크의 이야기는 역사로라도 남았지만,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채 지워진 아이디어들은 얼마나 많을까. 그것은 분명 여성들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손실이다.

인류 최초의 도구가 창이 아니라 뒤지개였다면?

여성과 과학기술의 관계를 다루는 세 번째 층위는 기술과 발명이 무엇인가 하는 정의 자체를 다시 생각하는 데 있다. 우리가 인류의 발달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유인원에서 진화한 수염이 텁수룩한 남성이 날카로운 나무 막대기를 창으로 만들어 주위에 겨누는 모습이다.

정말 그랬을까?

우리는 기술이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무기로부터 시작된다는 남성 중심적이고 폭력적인 서사를 너무 쉽게 믿었다. 이 서사는 현대에 와서, 전쟁과 군대로부터 온갖 과학기술이 발전한다는 스핀온/오프 이론으로 이어진다.최초의 인류가 든 막대는 창이 아니라, 땅에서 고구마 같은 식물을 캐내는 뒤지개였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그 도구를 든 인간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을 확률이 높다. 창이 아닌 뒤지개가 먼저라면, 인류의 서사 전체가 달라진다. 기술과 발명이 언제나 지배하고 장악하고 착취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확실성을 잃는다. 요리와 바느질, 돌봄을 위한 기술이 핵무기나 우주 탐사선을 만드는 것만큼 인류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류의 달 탐사는 우주복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우주복은 나사가 기대한 군사 기술 전문가가 아니라 여성용 속옷을 만드는 재단사들의 손에서, 단단한 갑옷이 아니라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졌다(3장).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이런 기술을 정식 기술로 취급하지 않는다. 여성에 속한,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많은 기술이 사소하고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고, 그로 인해 정당한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여성의 손에 묶인 밧줄을 끊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

이 책은 이처럼 여성과 여성성을 무시하고 배제해 온 역사적 사례들로부터 출발해 플랫폼 노동(7장), 인공지능(8장/9장), 기후 위기(10장) 등 현재와 미래의 이슈들로 논의를 확장해 간다. ‘미래’라는 키워드 아래 놓인 마지막 두 장은 지금까지의 우리 삶을 전면적으로 바꿀 것으로 예상되는 거대 위기와 그에 대한 해결책을 다룬다.

과연 ‘제2의 기계 시대’가 도래하면 로봇과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수십억 명 인구가 유발 하라리가 말한 ‘쓸모없는 계층’으로 전락하게 될까? 산업혁명 초기, 기계의 힘이 남성의 근력을 대체하자 그 기계를 돌리기 위해 고용된 것은 여자들이었다. 공교롭게도 미래에 로봇과 AI가 인간을 따라잡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영역인 감정 지능, 관계 경제, 돌봄 노동 역시 우리가 여성적이라고 여겨 온 것들이다.

그렇다면 기술 디스토피아에 대한 대안은 ‘여성’과 ‘과학기술’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예측하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기술을 발전시킬지를 결정하고 거기에 투자하는 것은 인간이다.

지금까지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과학기술이 열심히 달려 도착한 곳이 탄소사회이고 불타는 지구라면, 이제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여성과 남성,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구분해서 무엇을 배제하고 무엇을 우위에 놓을 것인지 따위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 역사 내내 젠더 관념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류의 혁신을 방해해 왔다.

이는 “우리가 한쪽 손이 묶인 채 세상을 발명해 왔다는 뜻이다. 그 밧줄을 끊었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임소연이 말한 것처럼 “지금껏 배제되었던 것, 그래서 새로운 것, 거기에서부터 혁신과 창의성이 나올”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껏 과학기술의 영역 바깥으로 몰아냈던 여성과 여성적인 것을 다시 불러들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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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건축생산역사’

저자 박인석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항상 역사화하라!  Always historicize! 

건축학자인 그는 역사적 관점을 중요시 합니다. 서양 건축사도 유럽의 역사와 함께 이야기하니 흥미로워습니다. 그가 촛점을 두는 것은 ‘건축의 규범’입니다. 달리 말하면 건축가의 생각 또는 이데올로기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말합니다.

사실 고전주의는 역사자체라기 보다는 르네상스 이후 발견한, 의미를 부여한 역사입니다. 서로마 제국 이후 유럽 각지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농촌 중심의 로마네스크 건축 생산이 시작합니다. 점차 도시를 중심으로 상업과 수공업이 발전하면서, 교회·왕궁뿐 아니라 길드홀, 시청사 등이 등장합니다. 그에 따라 고딕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시도됩니다. 이후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이른바 모더니즘까지 변화해갑니다. 문득 모더니즘 이후는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저자 박인석은 마지막으로 ‘한국 건축사’가 쓰여지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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