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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줄서평]산제이 굽타의 ‘킵 샤프 늙지 않는 뇌’

인간의 평균 수명이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현재 50~60대에 해당하는 세대는 100세 시대를 불안하게 여깁니다.

오래 사는 것이 좋기는 한데 과연 제 발로 걷고 제 정신으로 살 수 있는지를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드웨어(몸)은 멀쩡하나 소프트웨어(뇌)가 망가진 불균형을 우려합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나의 정체성을 지켜, 나를 중심으로 맺은 관계와 기억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산제이 굽타의 ‘킵 샤프 늙지 않는 뇌’는 5060세대를 위한 뇌 단련 지침서입니다.

이 책의 출발점은 현대 뇌과학의 연구 성과입니다. 즉, 첨단 뇌과학이 뇌를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점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는 것입니다.

굽타는 신경과학 전문의이면서 특이하게 CNN에서 의학전문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합니다.

굽타가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뇌단련법은 매일 1시간 정도 땀 흘리면서 운동하고 외국어 등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학습하는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킵 샤프중에서 3장을 요약하였습니다.

3장 우리는 무너뜨리는 12가지 오해와 우리를 바로 세우는 5가지 기둥

뇌에 관한 12가지 오해를 벗어던지고 그 자리를 실용적 지식으로 메워보자. 이 정보는 뇌의 노화를 늦추고 오랫동안 뇌 건강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 것이다. 12가지 오해를 더티 더즌(dirty dozen)이라고 부른다.

오해1 | 뇌는 완전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오해와 애증의 관계에 놓여 있다.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므로 싫어하지만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여지를 주기때문에 이 말을 좋아한다. 신경과학 분야는 새롭고 흥미로운 혁신으로 가득 차 있다.

오해 2 | 나이 들면 잘 잊어버린다

두 번째 오해는 부분적으로만 진실이다. 일부 인지 능력은 나이가 들면 쇠퇴하며, 특히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기억력 향상 전략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러한 쇠퇴는 가속화된다.

오해 3 | 노년기에 치매는 피할 수 없다

지금쯤이면 세 번째 오해는 스스로 떨쳐낼 수 있어야 한다. 치매는 노화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다. 나이와 관련된 뇌의 변화는 질병으로 인한 뇌의 변화와 다르다. 나이와 관련한 뇌의 변화 속도는 충분히 늦출 수 있고, 질병으로 인한 뇌의 변화는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오해 4 | 노인들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다

배움은 어떤 나이에도 가능하며, 특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취미를 시도하는 등의 인지적 자극이 가해지는 활동에 참여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기억력은 역동적이라는 점, 그리고 뇌에 새로운 신경 세포의 성장(신경 생성)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뇌의 정보, 용량, 학습 강점이 지속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오해 5 | 한 언어를 완벽히 습득해야 다른 언어를 배울 수 있다

모국어와 다른 언어를 동시에 배우는 어린아이들은 두 언어를 혼동하지 않는다. 두 언어를 동시에 익히려면 시간이 걸릴 수는 있지만 나쁜 방법은 아니다.

뇌의 영역들은 충돌하지 않기 때문에 혼선이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2개 국어를 하는 아이들은 언어 구조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쉽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자의식이 덜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오해 6 | 기억력 훈련을 받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Part 2에서는 기억력 훈련법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 중 하나는 ‘사용하거나 잊어버리거나’로 근력 또는 전반적인 신체 건강을 유지하는 데 적용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기억력 훈련에 적용된다. 이 훈련은 여타의 장기 전략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오해 7 | 우리는 뇌의 10%만 활용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이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가 뇌의 10%만 활용한다는 통념은 오랫동안 존재해왔으며, 이는 우리에게 개척되지 않은 방대한 양의 뇌 능력치가 남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뇌의 90%를 낭비하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뇌는 손이 많이 가는 신체 기관이다. 태아가 자라면서 뇌를 형성할 때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 뇌의 능력을 유지하는 데에도 아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는 뇌를 일종의 동네라 생각한다. 주택, 상점 같은 중요한 구조물들은 끊임없이 사용되고, 이들은 뇌의 10~20% 정도를 차지한다. 나머지 80~90%는 이러한 주택과 상점을 연결하는 도로들이다. 도로가 없으면 정보가 필요한 곳으로 이동할 수 없다. 도로는 지속적으로 사용되지 않더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오해 8 | 학습 능력이나 지능은 성별에 따라 다르다

여성은 언어 능력에서 남성보다 뛰어나며 이는 특정 인지적 문제를 식별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뇌 스캔이 여성과 남성이 동일한 치매 단계에 있음을 보여줄 때에도 치매 초기 진단에 사용되는 표준 검사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다.

여성들은 뛰어난 언어 능력으로 증상을 숨길 수 있기 때문에 알츠하이머병을 조기에 진단받지 못하다가 인지 장애의 후기 단계에 이르러 언어 능력이 사라지면서 병증이 두드러진다.

물론 남성과 여성의 뇌는 기능의 다양성에 의한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뛰어나지는’ 않다.

오해 9 | 매일 십자말풀이를 하면 뇌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아홉 번째 오해는 십자말풀이를 하는 것이 뇌를 젊게 유지시켜줄 거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십자말풀이는 단어 찾기 능력(유창성)과 관련된 뇌의 일부분만을 자극한다. 이 부분은 뛰어난 단어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울 수 있으나 전반적인 측면에서 뇌를 똑똑하게 유지시켜주지는 않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연구 결과가 십자말풀이를 하는 행위가 뇌 기능을 향상시키거나 뇌를 똑똑하게 만들어준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다만 분명한 점은 정신 건강을 활동적으로 유지하면 인지 능력 쇠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사람들에게는 십자말풀이가 정신 건강을 활동적으로 유지하는 일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오해 10 | 사람에 따라 ‘좌뇌’나 ‘우뇌’의 지배를 받는다

우리가 단순하게 좌뇌, 우뇌로 구분해 이야기해온 것과 달리 뇌의 ‘양면(오른쪽과 왼쪽)’은 복잡한 부호에 의존한다. ‘우뇌형’ 또는 ‘좌뇌형’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뇌형은 창조적, 예술적이며 좌뇌형은 기술적, 논리적이라는 말 또한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다양한 성격 유형을 구별하기 위해 좌뇌, 우뇌 아이디어를 사용해왔다. 그러나 뇌 스캔 기술은 뇌의 두 반구가 함께 복잡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때는 좌뇌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언어 처리 능력이 이제는 뇌의 양쪽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왼쪽은 문법과 발음을, 오른쪽은 억양을 다룬다. 독서나 수학을 할 때도 뇌의 좌우 양쪽을 활용한다.

오해 11 | 사람은 5가지 감각만을 가지고 있다

5가지 감각은 보고(시각), 냄새 맡고(후각), 맛보고(미각), 느끼고(촉각), 듣는 것(청각)이다. 오감 이외에 단어 끝에 ‘셉트cept’가 붙는 다른 감각들도 있는데, 라틴어로 취하거나 받는다는 뜻이다.

셉트로 끝나는 6가지 감각(자기 수용 감각/평형감각/통각/온도 감각/시간 감각/내부 수용감각) 또한 뇌에서 처리되며 우리에게 외부 세계의 데이터를 제공한다.

오해 12 | 뇌세포는 타고나는 것이다/뇌의 배선은 고정적이다/뇌 손상은 영구적이다

뇌는 평생 가소성을 유지할 수 있고 우리의 경험에 반응해 스스로를 재배선할 수 있다. 또한 뇌는 적절한 상황에서 새로운 뇌세포를 생성할 수도 있다. 시각 장애인들은 시각을 처리하는 뇌의 한 부분을 뛰어난 청력에 활용할 수 있다.

바이올린 연주 배우기와 같은 새로운 기술을 연습하는 사람은 미세한 운동 조절을 담당하는 뇌 부분을 ‘재배선’한다.

1998년 마침내 스웨덴의 신경학자 피터 에릭손이 현재 널리 인용되고 있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해마 속에 지속적으로 보충되어 뇌의 신경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신경 줄기세포 저장소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적어도 한 번은 뇌의 특정 영역에서 발전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뇌를 재배선하고 물리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기술도 갖추고 있다.

이는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 신경 가소성이란 시냅스 연결을 형성하고 재구성하는 뇌의 능력을 말한다. 가소성이란 용어는 100여 년 전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1890년 저서 《심리학의 원리》에 처음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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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섭 등 6인의 ‘일본, 한국을 상상하다’

한국에서 일본은 늘 불편한 존재다. 일본은 늘 한반도를 침략하는 존재였다. 임진왜란에서 7년동안 한반도를 유린했고 결국 조선 왕조를 무너뜨리고 36년동안 침탈했다.식민지 지배는 침탈에 그치지 않고 민족 분단이라는 한반도 분쟁 구조를 잉태하여 현재적 고통의 원인을 제공했다. 그래서 한국인은 ‘역사속 일본’에 대해 원초적 적개심을 갖고 있다. 그 적개심은 한국인으로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갖는 소셜  DNA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적개심은 국제사회에서 생존해야 하고 또 번영해야 하는 공동체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주지 못한다. 원초적 적개심은 오히려 복잡다기한 현실 이슈를 더 꼬이게 만들고 해결의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들 수 있다. 강동국(나고야대 교수) 등 6명이 공동 저술한 ‘일본, 한국을 상상하다'(선인)는 일본 사회와 일본인은 한국과 한국인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대한 탐구 결과를 담고 있다.

6인의 필자는 1년 동안 도쿠가와 막부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의 상층부를 구성한 정치인과 지식인, 그리고 기층 서민이 갖는 대한 인식의 구조를 파헤쳤다. 또 그것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 그리고 인식 내용의 시대적 변화 추이를 검토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일본인들의 한반도 문제에 대해 잠재되거나 표현된 인식들의 구조와 한계를 규명했다.이 과정에서 필자들은 한국사회가 일본에 대해 흔히 갖고 있는 편견을 최대한 배제하고자 노력하였고 한다. 즉, 일본을 과대평가하거나 또는 필요 이상으로 과소평가하려는 한국의 지적 풍토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대표 저자인 김호섭 중앙대 명예교수가 집필한 제 1장을 10줄로 요약하였다.

제 1장 한일 인식의 시대적 모습 편 10줄 요약

1.한국 뿐만 아니라 서구사회에서도 일본 사회 혹은 일본 문화를 집단적으로 균질한 동일체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일본 스스로가 단일 민족과 단일 문화라는 ‘단일성’과 함께 우월성을 자랑스럽게 대내외적으로 발산하기 때문이다. 재삼자 입장에서 그 주장을 그대로 믿는 경향이 생기기도 한다. 균질성의 강조에는 에도 시대 말기까지 존속된 봉건적, 지역적 분열을 천황 중심의 근대 국가 형성에 방해요소로 생각한 메이지 유신 엘리트들이 천황중심의 단일성을 의도적으로 강조하여 근대국가 형성의 사회문화적 조건으로 이용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2.현실 세계에서 균질성 외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수는 환영받지 못한다. 소수자는 일본 사회 균질성에 대한 부정적 요소로서, 빛나는 우월성이라는 광택에 흠집을 내는 존재해서는 안되는 요소로 취급된다.

3.일본 유력 정치가는 일본의 코로나 전염사태가 서구에 비해 심하지 않은 이유를 일본의 민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적 현상에 대한 일종의 문화적 설명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전염병 전파 정도는 민도가 아니라 전염병 예방 수칙을 사회적으로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달려 있다.일본 대지진 사고 원인을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 문화의 습관에 뿌리가 있다”는 식으로 일본 고유의 문화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문화론은 대형 사고의 과학적 원인과 책임을 추궁하는데 방해요소다.

4.한일관계를 해석함에 있어서 음모론적 해석을 경계했다. 음모론이라는 블랙박스를 이용하여 설명하면 설명못할 대상은 없다. 민주화이후 학문적 양심에 근거한 일본 연구를 발표하기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그래서 자기검열하는 경향이 있다. 용기있는 학자라면 소신에 따라 발표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들은 순수한 학문 활동을 하는 연구자에게 특별한 용기가 필요없는 세상을 염원한다.

5.‘임진왜란과 그에 대한 한일 양국의 기억’ 은 애매하다. 김시덕은 중세 일본 민중의 임진왜란과 그 전후의 일본인의 갖고 있었던 조선인식을 다루었다. 임진왜란의 결과는 조선, 일본, 명 모두 완전한 승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었고, 세 나라의 지배집단은 피지배 집단에 대해 전쟁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어려웠다. 도쿠가와 막부는 국외적으로 전쟁에 책임을 져야 했으나,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행운으로 인해 침략전쟁과 무관함을 내세울 수 있었다.

6.제3장 ‘왜 메이지 유신은 성공하였는가’ 신상목은 동아시아 근대화는 본질적으로 서구화로서 국제적 문화접변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세계관의 전환은 메이지 유신 이전에 일본 엘리트 계층에서 태동한 점을 주목한다. 신정부 세력의 정치적 인위적 이니셔티브는 메이지유신 이전부터 엘리트 계층의 문화적 자발적 선택에 의해 점진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이다. 산업혁명의 내재화 측면에 주목하면 도쿠가와 막부시대 이래 추진된 근대화 시책의 연장선상에 놓인 연속적인 과정이었다.

7.제4장 ‘근대 일본 외교의 무사상성’김종학은 일본 외교는 장기적 국가 목표나 바람직한 국제 질서에 대한 고민이 부재한 채 그 때 그때 국제 정세에 민감하게 순응하며 오로지 자국의 대외 팽창과 안보및 경제적 실리만을 추구한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조선식민지화도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이 아니라, 1890년 이후 신제국주의가 전개되는 세계적 흐름에 낙후돼선 안된다는 초조함과 대세추종주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8.제5장 ‘근대 일본의 한국인식’ 강동국은 근대 일본 지식인들이 한국에 대해 가진 인식 내용과 그 한계를 분석한다. 일본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기초하여 한국의 주관적인 측면을 이해하면 충분할 것으로 가정하였다. 하지만 일본 나름의 한국 이해는 근본적인 몰이해로 점철되었다.후쿠자와 유키치의 한국 유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히토 히로부미는 의병을 몰이해했고, 헌병 통치 기간의총독부도 식민지 조선의 감정을 오해했다.

9.제6장 현대 한일 관계의 구조변화와 다이내미즘. 이원덕은 냉전이후 일본의 대한 인식과 전략 변화를 다룬다. 냉전체제아래에서 한일 관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전략의 큰 틀속에서 경제 협력과 안보적 차원의 공조를 유지하는 한편, 역사 민족문제 등 한일간 갈등요소는 억제되어 있었다.그러나 1990년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동북아시아 세력균형 관계 유동화되면서 한일관계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중국부상으로 인해 미국은 한일 관계를 결속시키는데 한계를 노출했다.한일 관계의 악화는 존재론적 문제라가 보다 인식론적 차원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전략적 관점이 무시되거나 전략적 사고의 영역이 점차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미소 대립속에서 유럽 국가가 유럽연합으로 간 것은 미중 양강에 끼어 있는 한일 관계의 미래비전을생각하는데 시사점을 준다.

10.제7장 ‘혐한과 한일관계의 장래’ 김호섭은  혐한의 배경을 분석한다. 첫째, 일본내 태평양 전쟁을 침략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위해 서구세력에 대항한 전쟁이라는 역사수정주의가 혐한의 배경이다. 한국 경제성장으로 인해 일본 젊은이의 일자를 빼앗았다는 피해의식도 한 몫을 했다.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도 혐한 확산의 배경이다. 예를 들어 반일 기사가 인터넷에서 번역되어 대량 유포되면서 일본내 혐한 현상을 부추겼다.한국의 반일감정과 일본의 혐한 현상은 한일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반면 자유민주적 가치와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공유하며 체제격차가 줄었다는 점은 낙관론의 근거다.한일 양국 지도자는 과거사에 대한 역사 인식 차이를 외교분쟁으로 확대시키지 않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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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시오노씨는 ‘로마인 이야기’ ‘바다의 도시 이야기’ 등 이탈리 역사를 소재로 삼은 책으로 일본과 한국에서 두터운 독자층을 지닌 작가입니다. 이번에 그녀가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이야기합니다.

시오노는 이번에 중세 시대의 한 인물을 소재로 중세가 고대와 어떻게 다르고 르네상스가 왜 일어나는지를 탐구합니다. 그 인물이 바로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입니다. 시오노는  ‘황제의 좌에 앉은 최초의 근대인’으로서 프리드리히의 생애를 탐구합니다.

한국의 문화적 배경속에서 유럽사를 접하는데 어려운 점중의 하나는 통치자의 복잡한 가계입니다. 유럽 각 지역의 왕실이 서로 혼맥으로 얽히면서, 역사서에서 이름만으로 그들의 뿌리와 관계를 머리속에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또 사방팔방 연결되어 있는 유럽의 지정학적 특징도 유럽사 공부에서 난관입니다. 마지막 허들은 종교 이슈입니다. 중세만 해도 카톨릭, 그리스정교, 이슬람이 서로 얽혀 갈등합니다.

시오노작가는 프리드리히2세 생애를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조망하면서 유럽 황실의 복잡한 가계, 황제와 교황의 관계,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국제 정치 역학 관계를 잘 묘사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시칠리아, 풀리아, 카푸아, 나폴리, 로마 등 프리드리히2세의 활동 무대가 생생하게 머리속에 그려집니다.

책은 프리드리히2세가 독일계 신성로마 제국 하인리히 6세와 노르만계 시칠리아 왕녀 콘스탄체 사이에서 탄생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하인리히와 콘스탄체가 죽고 교황 후견아래 고아처럼 자란 프리드리히 2세는 마침내 1220년에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선출됩니다. 고난끝에 황제에 오른 뒤 중세 최고 권력인 교황과 맞서 그는 가슴에 품은 야망을 실행하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을 담은 3장을 10줄로 요약했습니다.

10줄 요약 3장 황제로서 편

1.그리스도교가 지배했던 시대였던 중세를 살았던 황제들에게는 로마에서 대관식을 올리는 것이 중요했다. 대관식은 교황이 초청해야 비로소 실현된다. 1220년 5월에 교황의 초대장이 도착했다. 9월 이탈리아로 들어온 프리드리히는 로마 교황에 튜턴 기사단 단장 헤르만을 파견했다.

프리드리히의 처지는 8년 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과거의 ‘풀리아의 소년’은 지금은 밀라노가 손댈 엄두도 내지 못하는 황제로 이탈리아로 돌아온 것이다. 열일곱 소년은 스물 다섯이 되어 있었다.

2.로마 대관식은 1220년 11월 20일에 거행되었다. 금실과 붉은 실 자수가 가득한 옷에 백마를 탄 모습으로 성베드로 대성당으로 나아갔다. 교황 호노리우스3세는 금색과 백색의 자수로 가득한 예복을 입은 모습이었다.프리드리히2세는 관을 쓰고 오른손에 검을, 왼손에 홀을 든 프리드리히는 장엄한 목소리로 맹세한다.

그리스도 교회의 수호자가 되겠다, 십자군 원정에 나가겠다. 이단자를 박멸하겠다고 맹세했다. 남편 뒤에 무릎을 꿇은 콘스탄체의 머리에도 황후의 관이 씌워졌다. 의식이 무사히 끝난 것이다.

3.프리드리히는 대관식 3일후 로마에서 2백킬로미터 떨어진 카푸아에서 볼로냐 대학의 로프레도 에피파니오 법학자를 만났다. 프리드리히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성직자가 아닌 탓에 발상이 유연한 법학자의 협력이 필요했다. 프리드리히는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섬을 합친 시칠리아 왕국의 재편성을 기획했다.

또 연방제가 아니라 중앙집권제를 그렸다. 제후에서 기득권을 빼앗아 군주에게 집중시키고 군주가 정한 법에 근거해 운영하는 국가를 실현하면 완력만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4.시칠리아 왕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려면 우수한 관리를 동원해야 했다. 고위관료부터 서기같은 하급 관료까지 갖추려면 엄청난 수의 관리를 필요로 했다. 13세기 초에 문장을 쓰고 법률에 정통한 사람들을 공급할 수 있는 곳은 이탈리아 중부와 남부에 집중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교황청이라는 강력한 관료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볼로냐 대학이 창설된 것도 신학외에 교황청 관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교황청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시기 독일에 전제 군주국가를 세우고 싶어도 군주가 생각하는 정책을 실행에 옮길 관료 확보까지 기대할 수 없었다.

5.프리드리히는 법학자 로프레도의 도움을 받아 카푸아 헌장을 발표하였다. 왕국의 통치는 법에 근거해 이뤄진다. 제후라 해도 왕이 설립한 재판소에 알리고 그 판단에 따른다. 이에 반하는 사람은 자산을 몰수할 뿐만 아니라 사형까지 각오해야 한다. 제후들이 거느린 영지도 118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조사하고 만약 불법적인 수단으로 취득한 영지라면 프리드리히에 반환한 후 왕이 정당한 배려를 거쳐 분배한다. 1189년은 그의 외가인 노르만 왕조의 마지막 왕(루제로 2세의 손자인 굴리엘모 2세)이 죽은 해다.

6.독일인에게 풀리아(이탈리아 남부의 주)의 소년으로 불렸지만 프리드리히는 풀리아에 간 적이 없었다. 시칠리아에서 곧장 독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당시 풀리아는 남부 이탈리아 전체를 뜻했다. 프리드리히는 3개월 순찰하다가 풀리아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황후 콘스탄체를 말라리아로 1222년6월 23일에 잃고 팔레르모로 달려간다. 프리드리히에게 최고의 반려자였던 콘스탄체는 팔레르모 대성당에 묻혔다.

7.시칠리아는 노르만 왕족, 정교를 믿는 그리스인, 이슬람을 믿는 아랍계가 공존했다. 공존의 원칙은 왕궁에서는 통했으나, 농촌에서는 달랐다. 수확량이 문제였다. 1221년 시칠리아의 농촌지대에 사는 이슬람교도들이 일제히 봉기했다. 프리드리히는 사라센을 풀리아 지방의 루체라로 이주시키고 종교 자유까지 주었다. 프리드리히는 이 방책으로 사라센 문제를 해결하였다.

8.프리드리히는 시칠리아 왕국을 방위할 해군력을 다시 부활시켰다. 해군 재건 임무를 엔리코라는 해적출신 인물에게 맡긴다. 당시 시칠리아는 해상방위를 제노바와 피사의 군사력에 의존하고 있었기때문이다.

9.프리드리히는 루체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포자(Foggia)에 왕궁을 새로 지었다.

포자왕궁은 북유럽에서 볼 수 있는 장엄한 분위기의 차갑고 금욕적인 성이 아니었다. 넓고 개방적이며 물이 풍부하게 흐르고 나무들이 우거지고 꽃들이 만발하고 새가 지저귄다. 프리드리히는 포자왕궁을 자신의 꽤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빈관으로 활용했다. 포자는 성지 순례길 길목에 있었다.

하지만 8백년전에 존재했던 왕국은 입구 윗부분 반과 비문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프리드리히 사후 20년이 지나 교황청이 프랑스인 왕에게 철저한 파괴를 명했기 때문이다.

10.1224년 9월 29일 푸른 하늘 아래에서 장엄한 의식을 통해 프리드리히의 작품인 ‘나폴리 학문소’가 정식 문을 열었다. 제국이 모든 비용을 대고, 교과목 교수진 선정은 프리드리히의 생각에 따라 결정했다. 유럽 최초의 국립대학으로서 나폴리 대학이 출범한 것이다.

나폴리대는 아르테스 리베라레스(리버럴 아츠)를 가르쳤다. 특히 신학이나 교회법이 아니라 로마법을 가르쳤다. 나폴리대를 졸업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 신학의 시조가 되었다. 나폴리대의 교훈은 ‘지식과 교육의 원천으로 돌아가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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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현_제국대학의조센징

역사를 좋아했지만 역사가 그냥 이야기 같아서. 아름다운 이론체계가 없어서 실망했던 적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개념의 허망함과 인간의 욕망을 알게 된 후, 역사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종현교수는 문학전공자입니다. 방대한 자료에 바탕한 정종현 교수는 친일과 반일이라는 이념적 평가적 잣대를 넘어 바로 그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국대학생이란 엘리트와 조센징이란 차별받는 식민지출신이라는 분열적 존재에 관해서 말입니다.

형제라는 주제로 한국 근현대사를 보는 새로운 책이 내년 초에 나온다고 합니다. 무척 내년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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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줄서평]스티븐 존슨의 ‘인류 모두의 적’

스티븐 존슨이 영국의 해적을 소재로 쓴 ‘인류 모두의 적’이 한국어로 출간됐습니다.

과학저널리스트 존슨은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감염 도시’ 등을 통해 과학 지식을 활용하여 숨어 있는 맥락과 의미를 재미있게 빚어내는 솜씨를 발휘하여 명성을 얻었습니다.

존슨이 이번에 잡은 테마는 전설적 해적인  ‘헨리 에브리’입니다.

헨리 에브리는 1695년 해적선 팬시호를 지휘하여 무굴제국의 메카 순례선인 건스웨이를 공격하여 막대한 보물을 약탈하고 건스웨이 탑승객을 악랄하게 고문했습니다.

또 메카 순례길에 올랐던 왕실 여인들을 대상으로 악행을 저질러 무굴의 아우랑제브 황제를 격노케 했습니다.

의도치 않은 한 해적의 약탈로 인해 무굴제국와 분쟁에 휩싸인 영국 정부는 에브리에게 당대 최고액의 현상금을 걸고 인간 사냥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부를 거머쥔 에브리는 아일랜드에 상륙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헨리 에브리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다양한 사람에 의해 다양한 시각으로 각색되면서 인구에 회자되었습니다. 보물과 해적선 스토리는 지구촌 누구나 흥미를 갖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스티븐 존슨은 어쩌면 뻔한 해적 이야기에 자신만의 관점을 덧붙여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시도합니다.

즉, 해적왕이 자신도 모르게 대영제국 시대를 여는 방아쇠를 당겼다고 봅니다.

존슨은 이런 관점아래 마치 추리 소설을 쓰듯이 대항해 시대의 역사속을 파집고 들어갑니다.

그의 시도 덕분에 한국인에게 다소 생소한 영국과 무굴제국, 그리고 동인도 회사의 실체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1695년에 어떤 일이 있는지 연표를 찾아보았다. 흥미롭게도 1695년은 조선과 일본사이 독도 소유를 놓고 분쟁이 있었다.

3부 약탈 편 10줄 요약

1.케이프세인트존 서쪽 인도양 1695년 9월 7일. 새로이 결성된 해적 함대는 계절풍이 불기 시작할 때를 한 달이 넘도록 기다렸다. 그때는 남서풍이 불며 상선들이 바브엘만데브해협을 통해 수라트로 돌아가는 게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오랜 기다림에 선원들은 헨리 에브리의 계획에 잘못이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점차 깊어졌다.

에브리는 자신이 지휘하는 배가 적어도 인도양에서 가장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슬림 상선단을 추적해 앞지를 수 있는 배가 있다면 단연코 팬시호였다.

2.열흘째 되던 날, 망꾼들이 처음으로 육지가 보인다고 소리쳤다. 봄베이 북쪽에 위치한 케이프세인트존의 윤곽이 아스라이 보였다. 무슬림 선단이 정박후에 화물을 내리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가장 큰 배는 마트마흐마마디호로,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압둘 가파르가 주인었다. 에브리는 이 배를 공격하라고 명령했고, 6만파운드 가치가 넘는 금과 은을 찾아냈다. 에브리와 선원들에게 삶을 바꿔 놓을 만한 재산의 획득이었다. 그러나 은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계산을 해냈을 것이다.

3.팬시호는 건스웨이호(무굴제국의 메카 순례선)를 추적했다. 이 배는 1000명 수용능력과 80문의 대포, 수백정의 머스킷총을 갖추고 있었다. 에브리와 그의 선원들은 굶주렸고 용맹무쌍했다. 그들은 ‘넘치는 보물’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4.팬시호의 공격 과정에서 세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 건스웨이호 대포가 폭발하여 6명 포수가 즉사하고 갑판은 불바다가 되었다. 팬시호의 포격이 건스웨이호 돛대를 때리며 주된 돛과 그에 연결된 모든 삭구가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으로 배에는 금 은 장신구와 상아 몰약과 유향 샤프란 등 숱한 향료가 가득했다.

5.건스웨이에는 순례에 나섰던 궁녀들이 타고 있었고 그중에 아우랑제브 왕의 손녀가 있었다. 에브리가 공주를 어떻게 대했는가를 놓고 다양한 이야기가 지어졌다. 그중에 에브리가 공주에 연민을 느끼고 청혼했다는 러브스토리와 강제로 공주를 능멸했다는 스토리가 섞여 있다.

6.당시 수라트에 머물던 카피 칸이라는 특사는 사람들을 조사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그들이 건스웨이와 압둘 가파르의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심히 야만적으로 학대했고, 돈을 감춘 곳을 알아내려고 온갖 고문을 가했다고 확신합니다.

메카를 순례하고 돌아오던 위대한 움브로의 아내가 그 배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 여자가 왕의 친척이었습니다.

해적들이 지체 높은 여자를 욕보였고 다른 여자들도 학대했습니다.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을 남편에게 보이지 않으려 자결한 여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7.무함마드의 눈에 왕실 순례선 포획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신성모독이었다. 무슬림에게 가장 신성한 행위로 여겨지는 성지 순례에 참여한 여인들에게 끔찍한 성폭력을 저질렀던 것이다.

아우랑제브는 수라트 동인도 무역 사무소의 자산을 압류하고 봄베이캐슬 공격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동인도회사는 아우랑제브의 통치를 위협하고 그의 종교적 믿음을 훼손하려는 침략군이었다. 이제 그들을 축출할 때였다.

8.에브리의 약탈 사건과 관련해 영국의 핵심 관계자들은 각자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를 정확히 몰랐다. 해적, 기업, 국가라는 뚜렷히 구분되는 세 범주가 있었지만 각 범주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었다.

헨리 에브리의 행동이 야기한 세계적인 위기는 결국 이런 근원적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9.에브리의 약탈로 인해 동인도회사를 앞세운 영국의 글로벌 무역 네트워크이 무력화될 위기가 발생했다.

결국 영국 정부는 대 인도 무역망을 유지하기 위해 동인도회사의 지원을 받아 현재 가치로 5만달러 상당의 현상금을 걸었다. 에버리 일당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것도 허용되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촌 차원의 범죄자 체포를 시도한 것이다.

10.세계 전역에 주둔한 군사력, 지역 법 집행관들, 외딴 식민지 전초기지의 총독들, 상선 서선원, 아마추어 현상금 사냥꾼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한 명의 지명 수배자를 추적하고 나섰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에브리의 머리에 가격표를 붙이고 본격적으로 인간 사냥을 시작한 때는 헨리 에브리가 수라트를 떠난지 10개월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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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웅_아버지는머슴이었다

‘아버지의 첫직업은 머슴이었다’는 가족의 이해와 화해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 한일순이 구술하고 아들 한대웅이 써가면서 아버지와 아들은 처음으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알아갑니다. 모든 삶은 기록할 가치가 있다, 평범한 사람의 인생도 기록되면 하나의 역사가 된다는 말도 모두 거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가족의 행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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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질문하는 역사’

“우리는 왜 강대국 역사만을 배우는가?”

“서구는 언제부터 역사의 주역이 되었으며, 중국은 왜 서쪽으로 가지 않았나?”

“권력이 늘 역사를 필요로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사)의 ‘질문하는 역사’는 2002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주교수는 20년만에 다시 책을 내면서 역사에 던지는 질문의 의미를 재차 강조합니다.학문은 결국 묻고 또 묻는 지난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인문학의 경우 누구나 만족하는 답을 얻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질문의 과정 자체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즉 묻고 잠정적인 답을 찾고 다시 그 다음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사고가 넓어지고 깊어집니다.주교수가 20년에 던졌던 질문은 현 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임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중국이 서쪽으로 가지 않았을까’는 질문은 ‘시진핑은 왜 일대 일로를 밀어붙일까’와 연결됩니다.

중국이 서쪽으로 가지 않은 까닭은 편

근대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현상은 무엇일까? 가장 유력한 후보중의 하나는 ‘유럽의 세계 팽창’일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유럽 세력이 15~16세기 이후 그 아류인 미국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서 군사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온 지구를 지배하게 됐을까?

중세만 해도 서구는 압박받는 불쌍한 소수 민족에 가까웠다. 이슬람의 세력팽창으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긴 유럽이 처음 가까운 바깥으로 힘을 써본 것이 12~13세기 십자군 운동이었다. 약간의 자신감을 갖고 먼 곳까지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 15세기 이후의 아프리카 해안 탐사나 아시아 여행이라 할 것이다. 포르투갈인 바스코 다 가마가 1497년 리스본을 떠나 아프리카 동부의 말린디를 거쳐 인도의 캘리컷에 도착했다. 다 가마는 “우리는 기독교도와 향료를 찾아서 왔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이 만난 사람은 모두 힌두교도였고, 향료와 교환하려고 유럽에서 가지고 간 직물은 비웃음을 샀다.

다 가마 일행은 인도사람으로부터 50년전에 당신들과 비슷하게 흰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왔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명나라 환관 정화가 이끈 대 함대의 항해를 가르키는 것이었다. 1405년~1433년 사이 300척의 배와 2만8천명의 선원으로 구성된 대규모 원정대를 바다로 내보냈다. 정화 함대가 아프리카 동부 해안을 순항한 것은 분명하고 일설에 희망봉 근처까지 간 것으로 되어 있다. 내친 김에 아프리카를 돌아 유럽까지 항해하여 런던 앞바다를 가로막고 행패를 부리고 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지만 정화의 항해는 평화적이었다. 대표적인 충돌사건으로 실론섬의 어느 국왕이 시비를 걸어와서 소규모 전쟁정도를 벌인 것일 정도로 평화적이었다.중국은 종교에 대해 관대했다. 정화가 실론섬에 세운 비석은 세 개의 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정화가 절에서 부처님께 공양을 드렸다는 내용은 한자로, 명 황제가 힌두의 신을 찬양한다는 내용은 타밀어로, 알라의 영광을 기린다는 내용은 페르시아어로 새겨져 있다.

정화 함대를 파견한 이유는 생사를 알 수 없는 건문제(정난의 변에서 영락제에게 제위를 빼앗김)를 찾는 것이었으나, 실제 중국의 힘과 위엄을 과시하여 중화 세계의 질서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인도양 순항이후 중국이 내린 결론은 해외의 오랑캐들은 중화에 필요치 않다는 점이었다. 이런 태도에 만주족의 위협이 심각해지자 남해보다는 북방대륙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또 유교적 관료들이 황제의 총애를 받는 정화 등 환관을 비판하자 해외 탐험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배는 쪼개서 땔감으로 쓰고 민간인이 바다로 나가는 것 자체를 법령으로 금지시켜버렸다.(해금령) 해금령으로 인해 중국은 ‘제국주의 없는 제국’ 자기 내부로 갇혀버린 제국이 되었다. 머지 않아 왜구들이 중국 해안을 제집 드나들 듯 헤집고 다녀도 제어하지 못하고, 포르투갈인을 비롯한 서양 오랑캐들이 집적대도 마땅히 대응할 방도가 없게 된 것이다.

근대 초입, 중화제국은 여전히 세계 최정상에 있었다. 상업을 천시하는 중화제국의 황제의 눈에 포르투갈 왕이 아시아에 보낸 선단을 보내고 나서 ‘상업과 항해의 왕’이라는 촌스럽기 그지 없는 이름을 쓰는 것을 알았다면 눈물나게 웃었을 것이다.그러나 장거리 경주에서 최후의 승자는 뒤에서 뛰쳐나오기 십상이다. 포르투갈 뒤편에는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같이 훨씬 더 지독한 종자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을 황제가 알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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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_냉전의마녀들

김태우교수는 ‘냉전의 마녀들’을 외면할수 없는 운명같았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국제여맹이 10여일 동안 북한을 돌아다니며 목격한 민간인 대상 폭력의 참상을 담은 책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이야기는 어쩔수없이 논쟁적일 일 수 밖에 없고. 머뭇거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책은 프랑스에 살던 피카소가 지구 정반대편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터의 학살을 소재로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을 떠올리게 합니다. 피가소의 그림은  프랑스 공산당의 주문에 따라 그려졌다는 통설 탓에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물론 서구 화단에서도 외면당했던 그림입니다. 국제여맹의 보고서도 매카시즘의 광풍을 맞고 소련의 선전 팸플릿으로 폄하돼 잊혀져었습니다.

20년 전 보고서를 처음 접한 김태우교수도 소련이나 북한의 정치선전물로 쉽게 단정했었다고 합니다. 하나 이후 미군의 이른바 ‘초토화 정책’에 관한 연구들을 접하면서 국제여맹 활동에 다시 주목하게됩니다. 그는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와 미 공군의 기록, 조사위원들이 본국에 돌아가 남긴 개인 기록·언론 활동들을 접하고, 그들이 역사적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70년전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조사위원들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질문은 “전쟁이 언제 끝날까요”였다고 합니다. 전쟁이 왜 아직 끝났다고 말할 수 없을까요? 그 수행방식은 왜 그토록 잔인했을까요?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더 진지하고 집요하게 물어보아야 한다고 그는 이야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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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_지혜의 바다에서 고전을 낚는법

서양철학에서 동양의 정치론으로 옮겨간 그의 질문은 한문번역이라는 큰 산도 넘게 했습니다. 그야말로 동양고전과의  20여 년에 걸친 악전고투의 방황기는 흥미진진했습니다.

이한우선생이 집필한 책의 역사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역사였습니다. 공부하고 질문하고 다시 공부하고..질문의 답을 책으로 출간하는…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동양고전까지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실록에  사람을 보는 눈을 논어를 통해 길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논어가 그런 책인가?’ 의문을 품으며 논어를 읽었습니다.  이제 그는  논어가 심신수양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조직에서 살아가는 일종의 조직심리학이라고 생각하게되었습니다. 곧 왕과 신하가 조직에서 어떻게 주장하고 소통하느냐, 다른말로 “정치행위”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지요.

심지어 주역도 점쾌라기 보다는 조직적 현실에 패턴에 따른 대응법이라 그는 생각합니다. 고전은 더이상 고전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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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줄서평]클라이브 해밀턴의 ‘중국의 조용한 침공’

클라이브 해밀턴 중국 전문가가 쓴 ‘중국의 조용한 침공'(Silent Invasion)을 소개합니다.

해밀턴은 2016년 호주의 유력 정치인이 중국으로부터 뒷 돈을 받고 정치활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중국의 대호주 침투 전략을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조사를 통해 중국이 공산당이 통제하는 기업을 통해 항만, 전력, 통신, 농업 등 호주의 주요 자산을 큰 그림(일대일로)아래 사들이고 있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또 정치인, 학자 등 여론 주도층을 매수하여 미국에 등을 돌리고 중국 편을 들도록 은밀하게 여론 공작을 하고 반중 인사을 고립되도록 한 점도 알아냅니다. 특히 저자는 이 책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여러 출판사로부터 출판 거부를 당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호주가 아니라 한국 이야기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호주의 권력층은 친미과 친중으로 갈려져 있습니다. 해밀턴 처럼 중국 종속화를 비판하면, “미국의 속국 처지인데, 친중이 대수냐”라는 비난을 받습니다.

해밀턴은 시진핑의 세계 패권 전략의 진짜 무서운 점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이대로 두면 호주 기관 내부는 전복되고 베이징의 끈질긴 외부 압박이 계속되면서 민주주의 가치를 점점 잊게 되고 결국 호주가 부활한 중화의 조공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10줄 요약_6장 중국에 저당잡힌 경제 편

1.중국 자금이 흘러 들어가는 첫 번째 목적지가 미국이고 그 다음이 호주다. 2007년 이후 중국이 미국에 새로 투자한 누적 총액은 1000억 달러이며 같은 기간에 호주에 투자한 총액은 900억달러에 이른다. 호주가 미국의 13분의 1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미국보다 무려 12배 가까운 중국 돈이 호주에 유입된 셈이다.

2.세계적인 은행들은 중국의 호주 농지 매입을 돕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2016~2017년 중국인 소유 농지가 급증했다. 무려 10배가 증가해 중국이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호주에서 가장 큰 농지를 소유한 나라가 되었다.

3.중국의 호주투자는 미국, 일본과 분명히 다르다. 미국 기업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맞춰 행동하라는 워싱턴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다. 중국 대호주 투자에 대한 의심은 정치적 진실에 근거한 것이다. 호주를 장악하려고 작정하고 덤비는 전체주의 정권이 호주를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모든 주요 기업에 상주하며 정치적고 전략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업의 결정을 조종하거나 직접 통제한다. 현재 중국 기업의 이사회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당위원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오죽했으면 마윈같은 슈퍼스타 사업가도 베이징의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톈안먼 광장에서 시위하는 학생들을 탱크로 진압한 일을 ‘옳은 결정’이었다고 말했을까.

5.중국은 세계를 장악하기 위해 호주, 뉴질랜드를 서구에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을 점검하는 시험장으로 활용했다. 중국은 세계 금융위기이후 금융시스템을 미국에 믿고 맡기는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금융위기를 기회로 삼아 중국은 ‘신중 절제 유보’ 정책을, ‘명료 주장 야망’ 정책으로 바꾸었다.”(폴 키팅 전 호주 총리)

6.중국 공무원들은 호주 정치인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중국에서 사업하면서 중국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쉽게 속는다. 예를 들어 앤드루 포레스트 같은 광산업자는 호주 정치인들이 중국이 제공하는 것에 감사할 줄 모른다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7.중국의 자유무역협정 전략은 베이징에 의존하게 만들고 미국으로부터 떼어내는 것이다. 미국 동맹을 깨뜨리는 것이 베이징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인 것이다.

(친중 정치인)앤드루 롭은 중국과 호주 자유무역협정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고 호주의 다윈항을 99년 기간으로 임차한 랜드브리지그룹 등 여러 중국 기업을 위해 일했다. 그가 랜드브리지에서 받은 연봉만 88만 달러였다.

8.중국 기업이 2015년 다윈항을 99년동안 임대하는 조건으로 인수했다. 2014년 중국 자오상쥐그룹은 세계 최대 석탄 수출항인 뉴캐슬항만공사를 인수했다.

또 중국은 퀸즐랜드주의 타운즈빌 항구 부지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시드니 서부 배저리스 크릭에 건설하는 국제 공항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중국이 공항을 인수하면 CCTV와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하여 비디오 감시 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9.중국과 연결된 기업이 호주의 전력, 통신 회사 지분을 사들였다. 더 큰 걱정거리는 중국이 호주 전력망과 가스 공급망을 소유한 기업을 대표하는 최고기관인 호주에너지 네트워크의 이사 절반을 장악한 것이다.

이 기관은 2016년 호주의 10년간 전력망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는 베이징이 로드맵을 이미 알고 있음을 뜻한다.

10.시진핑이 2013년에 발표한 일대일로 전략은 경제적 목적을 뛰어넘는 야심이다.  일대일로를 따라 인민해방군을 배치해 중국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미국 펜타곤은 2017년 중국의 경제적 자산이 늘어남에 따라 인민해방군의 국제적 입지도 커질 것이며, 아데만 지부티의 중국 해군기지는 인민해방군 최초의 해외기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