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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라이프와 메타버스

메타버스의 열풍이 불고 있다. 20년 전에도 그와 같은 광풍이 있었다. 2003년 필립 로즈데일이 출시한 세계최초의 가상현실서비스 세컨드라이프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가상현실 서비스로 분류되는 서비스가 있었다. 가상공간에서 규칙과 승부가 있는 게임을 즐기는 롤플레잉 게임(RPG)이나 가상공간에서 네트워킹을 하는 싸이월드 등이 있었다. 싸이월드가 제공하는 가상세계가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둔 독립적인 세계인 반면 세컨드라이프의 가상세계는 현실과 연결된 세계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주체로서 아바타가 가상세계의 중심이고, 린든 달러의 가상경제는 US달러의 현실경제와 교환된다.


세컨드라이프는 2006년 말부터 급성장했다. 로즈데일이 제시한 가상세계는 그 아름다운 상상력 때문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컨드라이프내의 영토, 아바타, 린든달러에 대해 사람들은 호기심에 들떠 격렬히 토론했다. 10불을 투자해 2년 반 만에 백만장자가 된 앤쉬청(AnsheChung)의 상업적 성공스토리로 그 열기가 더 뜨거워졌다.


그러나 현실은 혹독했다. 2007년 2월 주민수가 2천만명이었던 싸이월드와 비교하면 2007년 5월 세컨드라이프 주민수는 440만명에 불과했다. 일주일 동안 세컨드 라이프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은 평균적으로 16.6달러 밖에 안되었다. 5천 달러에서 10만 달러 이상의 개발비용을 지불하고 기업이 최대한 모을 수 있는 인원은 고작 50여명에서 100여명 사이였다.


상업적 과도한 기대는 세컨드라이프의 본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세컨드라이프는 이익을 목표로 하는 경제적 활동의 공간으로 설계되지 않았다. 상업적 이익은 네트워크를 활성화할 수 있는 윤활유 역할에 한정됐다. 세컨드 라이프의 비즈니스 모델은 파트너 관계인 프리미엄 회원과의 이익나누기였다. 현실세계의 시공간적 제약까지 그대로 복사한 세컨드 라이프의 아키텍처 때문이다. 세컨드 라이프는 한 장소에 동시적으로 대규모의 사람을 모을 수 없는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가지고 있었다.

허상을 걷어내면, 세컨드라이프의 본질은 사회적 네트워크 서비스였다. 세컨드라이프의 설레는 상상력과 매력에도 불구하고, 이용자들은 SNS서비스로 본질에 충실한, 사용하기 더 쉬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선택했다. 그렇게 세컨드라이프는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이십년이 지나 메타버스란 이름으로 가상세계가 다시 소환되어, 주식시장의 테마주가 되었다. 로즈데일이 다시 가상세계로 돌아왔고. 쥬커버그는 페이스북이 아니라 메타가 새로운 미래라고 사명까지 바뀠다.

주커버그의 메타가 그리는 가상세계는 세컨드라이프의 업그레이드 버전같다. 컴퓨팅 파워를 늘리고, 그래픽을 더 진짜처럼, 동시 번역서비스로 언어의 장벽을 낮추려 한다. 마치 세컨드라이프의 한계와 약점에 도전하듯. 이에 더하여 VR헤드셋 오큘러스로 애플에 의존하지 않는 신병기(플래폼)까지 넘보고 있다.

돈이 되는 메타버스가 가장 디스토피아적이라 생각했기에 세컨드라이프는 플랫폼으로 작동하지 않았고, 로즈데일은 필요한 투자를 할 수 없었다. 이제 쥬커버그는 천문학적 투자를 하면서 무한대의 메타버스를 만들고 있다. 그가 만드는 무한대의 메타버스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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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노벨상 수상자 ‘제니퍼 다우드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스티브 잡스』의 저자 월터 아이작슨이 신작 『코드 브레이커』로 돌아왔다. 『코드 브레이커』는 월터 아이작슨이 2011년『스티브 잡스』에 이어 10년 만에 쓴 현대 인물 전기다. 이 책은 2020년 노벨 화학상 공동수상자이자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의 선구자, 여성 과학자 제니퍼 다우드나의 첫 공식 전기이다. 아이작슨은 다우드나가 노벨상을 수상하기 전부터 그녀를 이 책의 주인공으로 삼고 집필을 시작했다. 그는 왜 제니퍼 다우드나에 주목했을까?

다우드나가 노벨 화학상 역사상 여섯 번째 여성 수상자라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

다우드나가 과학자로 성공하는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 진학 상담 교사에게서 “여자가 무슨 과학을 한다고” 같은 업신여김을 받아야 했다. 과학자가 되고 나서도 수많은 ‘알파 수컷’ 경쟁자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연구 성과를 인정받으려 노력해야 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감수해야 했던 편견을 이겨내고 세계적인 과학자로 성장하는 한 편의 드라마같을 삶을 살아냈다.

“여성이 주 저자인 논문 600만 편을 조사한 2019년 연구에 따르면, …… 여성은 자신의 연구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홍보의 의미가 담긴 단어를 남성에 비해 21퍼센트 적게 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이러한 경향의 결과로, 이들의 논문이 인용될 확률이 10퍼센트 낮아진다.”

이제 우리는 세 번째 과학혁명인 생명과학 혁명의 시대에 돌입한 참이다.

아이작슨은 또한 다우드나의 성장기를 통해 유전자 편집 기술의 발전사를 엮어내며, 21세기 생명과학의 시대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다우드나는 2012년 미생물학자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협업해, 박테리아가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후천적 면역체계인 크리스퍼 시스템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작동 메커니즘을 규명해냈다. 이 시스템은 곧 유전자 편집 기술(이하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 또는 ‘크리스퍼 가위’)로 발전해, 암과 유전병 치료의 꿈에 공헌하고 있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백신 개발, 진단 및 치료 연구에도 널리 응용되고 있다.

20세기 전반을 아우르는 첫 번째 혁명은 물리학이 이끌었다. …… 20세기 후반은 정보 기술의 시대였다. …… 이제 우리는 더 중요한 세 번째 시대, 생명과학 혁명의 시대에 돌입한 참이다. 유전자 코드를 공부한 아이들이 디지털 공부를 공부한 아이들에 합세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과학 영재들이 생명과학, 유전공학, 의학에 지원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 또한 시민과학자들과 바이오해커들이 자기 집 연구실에서 유전자 편집 키트를 가지고 생명을 재프로그래밍하고 그 과정을 전 세계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런 생명과학의 시대를 열어젖힌 것이 바로 제니퍼 다우드나가 최초로 고안해낸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이다. 이것은 기존의 유전자 편집 도구들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고 제작이 간단하며 정확도와 효율성이 높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앞으로 크리스퍼 가위가 만들어나갈 생물학과 의학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은 우리 시대에 가장 멋진 과학적 혁신 중 하나다. 누구나 이 책을 통해 그 발견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심지어 나조차도 많은 것을 배웠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호기심과 협업의 힘

월터 아이작슨은 수많은 천재들의 삶을 다루면서 무엇이 혁신을 창출하는지 끊임없이 탐구해왔다. 그런 그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다름 아닌 ‘호기심’이다. 실제로 크리스퍼 연구는 미생물학자들이 박테리아의 DNA에서 우연히 발견한 의문의 현상을 설명하려는 데서 시작되었다. 다우드나 역시 어린 시절 하와이 자연 속 미모사와 눈 없는 거미를 만나며 생명의 작동 원리를 탐구하는 과학자를 꿈꾸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는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다. 기초과학이란 호기심이 이끄는 탐구를 말한다. 연구 결과를 응용할 목적으로 시작된 학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연구가 때로는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미래를 위한 혁신의 씨앗을 뿌리기도 한다.” [제니터 다우드나]

오늘날 과학의 세계는 그저 한 명의 천재가 이끌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최고 발명품으로 매킨토시나 아이폰이 아닌, 그런 제품을 만들어내는 팀을 꼽았다. 마찬가지로 크리스퍼 가위가 이끄는 생명과학 혁명 역시 훌륭한 팀워크에서 출발했다.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 외에도 수많은 과학자들의 공동 연구가 대표적이다.

그 밖에 데이터와 의견을 공유하는 크고 작은 랩들과 모임들이 생명과학의 최전선을 이끌었다. 저자는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과학자들의 협업으로 관리되는 연구 생태계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을 촉진한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준다.

“과학 연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섬세하게 포착한 이 책에는 실험실에서의 고군분투, 순간적인 영감, 소용돌이치는 창의성, 경쟁의식과 동료 의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공통의 대의가 모두 담겨 있다.” [이코노미스트]

우리는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 현명한가: 유전자 조작과 도덕적 문제

유전자 조작이 가져올 윤리적·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룬다. 유전자를 바꾸는 문제는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장애, 동성애, 인종 등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들 뿐 아니라 부모가 자녀의 인생에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 그런 개입이 공정한지,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바람직한 것인지 같은 심오한 질문들로 이어진다.

만약 우리에게 유전자를 안전하게 편집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면역을 갖게 하는 기술이 주어진다면, 이를 사용하는 게 잘못일까 사용하지 않는 게 잘못일까? 치료를 위한 편집은 괜찮지만 능력을 개선하기 위한 편집은 괜찮지 않다는 논리는 얼마나 타당한가? 공동체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자녀의 유전자를 선택하지 못하게 정부가 막을 수 있을까?

반대로 허용한다면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유전적 격차가 생기고 그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될 가능성은 없는가? 아이작슨은 흥미로운 사고실험과 실제 연구 사례, 인터뷰들을 통해 도덕적 가늠자에 포함될 일련의 원칙들을 세울 때 우리가 무엇을 숙고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찬성 또는 절대적 금지 사이에서 균형이 필요하다는 걸 역설한다.

“이제 우리는 유전자의 미래를 좌우할 힘을 가졌습니다. 실로 대단하고 두려운 능력이지요.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힘을 존중하면서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바이러스의 습격, 생명과학의 힘으로 극복하다: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의 미래

사실 크리스퍼 연구는 경쟁이 치열한 분야 중 하나다. 그런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다우드나 측(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 버클리 대학과 빈 대학의 공동 특허)과 장 측(장과 브로드 연구소, MIT, 하버드와의 공동 특허) 간 특허권 분쟁이다. 이 분쟁은 크리스퍼 연구 분야에서 일종의 전선(戰線)을 그리며 아직도 결론을 맺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이 생명과학 ‘전사들’ 간의 동지애를 되살리며 학문과 연구실 사이의 오랜 벽을 허물고 다같이 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오늘날 모더나, 화이자 백신은 이런 변화 덕분에 팬데믹 1년여 만에 탄생할 수 있었다. 또한 크리스퍼 가위의 원리를 이용해 바이러스를 진단하는 가정용 키트나, 바이러스 유전자를 파괴해 그 활동을 억제하는 치료제도 세계 곳곳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은 기존의 규칙에 따라 진행되지 않았다. 다우드나와 장펑의 지휘하에 대부분의 학교 연구소들은 자신들의 발견을 바이러스와 싸우는 모두와 공유했고, 이는 연구자들 간에, 심지어 국가 간에 더 큰 협업을 가능하게 했다. 그 결과 전 세계 과학자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염기 서열의 오픈 데이터베이스에 기여해 2020년 8월 말까지 3만 6000건이 입력되었다. 다우드나가 베이 에어리어에 있는 랩들을 한데 모아 만든 컨소시엄만 보아도, 만일 이들이 지식재산권 협의를 걱정해야 했다면 이렇게 빨리 뭉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염병의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는 유전자 편집 기술과 생명공학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되었다. 현명하게만 사용한다면 바이러스로부터 인류를 지켜줄 기술임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기술과 지식에 신성을 위협한다거나 부자연스럽다는 낙인을 찍기 전에 긍정적이고 윤리적으로 사용될 기회를 주는 건 어떨까? 『코드 브레이커』는 위험과 기회, 희망이 혼재되어 있는 미래로 신중한 한발을 내딛을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선사한다.

[저자소개]세계적인 전기 전문 작가. 1952년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와 문학을 공부했다. 워싱턴 D.C. 소재 초당파적 교육 및 정책 연구 기관인 애스펀 연구소 대표, CNN 회장, 《타임》 편집장 등을 역임했다.《타임》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었으며 현재 툴레인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스티브 잡스』, 『이노베이터』,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벤저민 프랭클린 인생의 발견』 등이 있으며, 『코드 브레이커』는 그의 첫 번째 여성 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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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줄서평]존 미어샤이머의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

미국 시카고대학의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최근 우크라이나 상황을 미국의 잘못이라고, 오히려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미국에게 위협적인 나라는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곧 미국의 영향력을 제칠 것이고, 중국과 패권경쟁을 위해서는 러시아를 같은 편에 두어야 한다.

그는 동아시아에서 미중 갈등이 대만 해협을 두고 군사적 충돌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이 튀기는 불꽃은 두 세력이 맞닿는 지정학적 위치에 자리 잡은 한국에는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될 공산이 크다.

이렇게 섬뜩한 전망을 하는 존 미어샤이머 교수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른바 강대국의 현실외교를‘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원제 The Great Delusion)을 소개합니다.

미어샤이머는 클린턴-부시-오바마에 이르는 통치 기간을 자유주의 패권 정책이 뼈대였다고 봅니다. 이어 자유주의 패권 전략이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적 성격을 지녀 여러가지 실책을 낳았다고 해석합니다.

1. 자유주의 패권론자들은 도덕적 전략적 관점에서 탁월하며 선량한 일이라고 믿는다. 인권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고, 자유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독재국가를 소멸시킬 수있고 미국의 자유주의를 더 잘 보호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강대국이라도 자신의 생존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으며 양극 또는 다극체제속 강대국은 언제라도 공격당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그래서 말은 자유주의자처럼 하면서 행동은 현실주의자처럼 하는 것이다.

2.초대강국이 될 때 현실주의를 방기하고 자유주의적 외교정책을 택하기 마련이다. 체질적으로 십자군적 사고방식을 자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3.자유주의 패권 정책의 목표는 독재정권을 끌어내리는 정권교체 정책으로 직결된다. 하지만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며 대가를 초래한다. 영구적 전쟁에 빠져들고 핵확산과 테러리즘 문제를 악화시키게 된다.

4.자유주의 한계는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자유주의와 현실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정말로 막강한 정치 이념이다. 모든 민족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국가를 가지고 싶어 한다. 도리없이 자유주의는 민족주의와 함께 할 수 밖에 없다. 둘이 충돌하면 승리자는 언제나 민족주의다.

도시국가 city State, 공국 duchies, 제국 empires, 대공 들이 다스리는 공국들 principalities,등 여러 형태의 정치지적 단위들이 500년 전까지 존재했다. 오늘날 지구 전체가 민족국가의 의해 지배되는 곳으로 바뀌어 버렸다.민족주의의 자결론은 자유주의적 강대국이 자신의 국내정치에 개입할 경우 저항할 것을 의미한다.

5,이 세상에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탐 국가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세계국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체제는 위계적이면서 동시에 무정부적 구조인 것이다.

현실주의와 민족주의는 언제라도 자유주의를 격파할 수 있다. 가장 막강한 두 개의 추진력은 민족주의와 세력균형의 정치였다.

6. 자유주의 패권 전략은 조시 부시의 연설에 잘 녹아 있다.

“우리가 중시하는 자유는 미국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권리와 능력이 되는 것임을 믿습니다” (조지 부시)

7.나는 이 책에서 19913년부터 2017년에 이르는 기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클린턴, 부시, 오바마는 재임 기간 동안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을 열정적으로 추구했다.

8.생존은 자유주의의 핵심적인 측면이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경찰관으로서 행동하는 것이며 각 개인의 생존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개인주의적인 것이며 천부의 권리라는 개념을 대단히 강조한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하늘이 준 고유한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이것이 자유주의 국가로 하여금야심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하게 만드는 동기가 된다. 2차 대전 이후 자유주의 학술 토론들은 인권을 대단히 강조했다.

9.정치적 자유주의는 두개로 나뉘어져 있다. 이 책에서 정치적 자유주의는 진보적 자유주의와 동의의­로 사용할 것이다.

첫째 일상적 자유주의(modus vivendi liberalism)이다 권리를 전적으로 개인적인 관점에서 본다. (negative right)

둘째 진보적 자유주의(progressive liberalism) 이다. 개인적 자유를 소극적 권리라고 본다. 똑같은 권리는 정부의 개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positive right) 국가는 가능한 한 사회에 개입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10.자유주의에 대한 나의 관점은 국내적인 측면과 국제적인 측면이 다르다. 국가 내부의 자유주의는 선을 위한 진정한 원동력이다. 국제적 차원의 자유주의는 세계를 평화롭지 않게 만들고, 자국내 자유주의도 망치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내가)목표하는 바는 막강한 힘을 보유한 국가가 세력균형의 정치를무시하고 자유주의적 패권 정책을 추구하는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 가를 묘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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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

세계적인 전기 전문 작가. 1952년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와 문학을 공부했다. 워싱턴 D.C. 소재 초당파적 교육 및 정책 연구 기관인 애스펀 연구소 대표, CNN 회장, 《타임》 편집장 등을 역임했다

《타임》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었으며 현재 툴레인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스티브 잡스』, 『이노베이터』,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벤저민 프랭클린 인생의 발견』 등이 있으며, 『코드 브레이커』는 그의 첫 번째 여성 전기다

저서소개_코드 브레이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스티브 잡스』의 저자 월터 아이작슨이 신작 『코드 브레이커』로 돌아왔다. 이 책은 202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자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의 선구자, 세계적인 여성 과학자 제니퍼 다우드나의 삶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다우드나는 어린 시절 “여자가 무슨 과학을 한다고” 같은 업신여김을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연구자의 길로 나아갔다. 그리고 프랑스 미생물학자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협업해 박테리아가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후천적 면역체계인 크리스퍼 시스템의 작동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규명해냈다.

뒤이어 그녀와 과학자들은 크리스퍼 시스템을 인간 유전자 편집 도구로 탈바꿈시켰다. 유전적 난치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이 기술은 오늘날 코로나19 백신 개발, 진단 및 치료법 연구에도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있다.

이 책은 생명의 비밀을 좇는 한 여성 과학자의 성장기와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의 발전사를 능수능란하게 엮어내며, 21세기 생명과학의 시대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세상을 바꾼 한 여성 과학자에 관한

아주 특별한 이야기

“올해의 상은 생명의 코드를 다시 쓰는 것에 돌아갔습니다. 이 유전자 가위를 통해 생명과학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614쪽,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2020년 노벨 화학상은 여성 과학자 2명에게 돌아가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Emmanuelle Charpentier)였다.

둘은 2012년 박테리아가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후천적 면역체계인 크리스퍼 시스템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세계 최초로 규명해냈다.

이 시스템은 곧 유전자 편집 기술(이하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 또는 ‘크리스퍼 가위’)로 발전해, 암과 유전병 치료의 꿈에 공헌하고 있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백신 개발, 진단 및 치료 연구에도 널리 응용되고 있다.

이 책 『코드 브레이커』는 크리스퍼 연구의 선구자이자 노벨상 수상 여성 과학자 제니퍼 다우드나의 첫 공식 전기이다. 하지만 다우드나가 과학자로 성공하는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 진학 상담 교사에게서 “여자가 무슨 과학을 한다고” 같은 업신여김을 받아야 했다. 과학자가 되고 나서도 수많은 ‘알파 수컷’ 경쟁자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연구 성과를 인정받으려 노력해야 했다.

“여성이 주 저자인 논문 600만 편을 조사한 2019년 연구에 따르면, …… 여성은 자신의 연구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홍보의 의미가 담긴 단어를 남성에 비해 21퍼센트 적게 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이러한 경향의 결과로, 이들의 논문이 인용될 확률이 10퍼센트 낮아진다.” (157~158쪽)

그래서 다우드나가 100여 년 정도 되는 노벨 화학상 역사상 여섯 번째 여성 수상자라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 『코드 브레이커』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감수해야 했던 편견을 이겨내고 세계적인 과학자로 성장하는 한 편의 경이로운 드라마가 펼쳐진다.

『스티브 잡스』 저자 월터 아이작슨은

왜 제니퍼 다우드나에 주목했는가

『코드 브레이커』는 세계적인 ‘천재 전문’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이 2011년 『스티브 잡스』에 이어 10년 만에 쓴 현대 인물 전기다.

심지어 아이작슨은 다우드나가 노벨상을 수상하기 전부터 그녀를 이 책의 주인공으로 삼고 집필을 시작했다. 그는 왜 제니퍼 다우드나에 주목했을까?

“20세기 전반을 아우르는 첫 번째 혁명은 물리학이 이끌었다. …… 20세기 후반은 정보 기술의 시대였다. …… 이제 우리는 더 중요한 세 번째 시대, 생명과학 혁명의 시대에 돌입한 참이다. 유전자 코드를 공부한 아이들이 디지털 공부를 공부한 아이들에 합세할 것이다.” (12쪽)

실제로 미국에서는 과학 영재들이 생명과학, 유전공학, 의학에 지원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

또한 시민과학자들과 바이오해커들이 자기 집 연구실에서 유전자 편집 키트를 가지고 생명을 재프로그래밍하고 그 과정을 전 세계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런 생명과학의 시대를 열어젖힌 것이 바로 제니퍼 다우드나가 최초로 고안해낸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이다.

이것은 기존의 유전자 편집 도구들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고 제작이 간단하며 정확도와 효율성이 높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앞으로 크리스퍼 가위가 만들어나갈 생물학과 의학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은 우리 시대에 가장 멋진 과학적 혁신 중 하나다. 누구나 이 책을 통해 그 발견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심지어 나조차도 많은 것을 배웠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호기심과 협업의 힘

월터 아이작슨은 수많은 천재들의 삶을 다루면서 무엇이 혁신을 창출하는지 끊임없이 탐구해왔다. 그런 그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다름 아닌 ‘호기심’이다.

실제로 크리스퍼 연구는 미생물학자들이 박테리아의 DNA에서 우연히 발견한 의문의 현상을 설명하려는 데서 시작되었다. 다우드나 역시 어린 시절 하와이 자연 속 미모사와 눈 없는 거미를 만나며 생명의 작동 원리를 탐구하는 과학자를 꿈꾸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는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다. 기초과학이란 호기심이 이끄는 탐구를 말한다. 연구 결과를 응용할 목적으로 시작된 학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연구가 때로는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미래를 위한 혁신의 씨앗을 뿌리기도 한다.” (19쪽)

또한 오늘날 과학의 세계는 그저 한 명의 천재가 이끌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최고 발명품으로 매킨토시나 아이폰이 아닌, 그런 제품을 만들어내는 팀을 꼽았다.

마찬가지로 크리스퍼 가위가 이끄는 생명과학 혁명 역시 훌륭한 팀워크에서 출발했다.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 외에도 마르틴 이네크와 블레이크 비덴헤프트, 로돌프 바랑구와 필리프 오르바트, 엘리차 델체바와 크시슈토프 힐린스키, 에릭 손테이머와 루시아노 마라피니, 마라피티와 장펑 등의 공동 연구가 대표적이다.

그 밖에 데이터와 의견을 공유하는 크고 작은 랩들과 모임들이 생명과학의 최전선을 이끌었다. 저자는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과학자들의 협업으로 관리되는 연구 생태계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을 촉진한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준다.

“과학 연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섬세하게 포착한 이 책에는 실험실에서의 고군분투, 순간적인 영감, 소용돌이치는 창의성, 경쟁의식과 동료 의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공통의 대의가 모두 담겨 있다. [이코노미스트]

우리는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 현명한가: 유전자 조작과 도덕적 문제

“레즈비언 커플인 샤론 뒤셰노와 캔디 매컬로는 정자를 제공받아 아기를 임신하고자 했다. 두 사람 모두 농인으로, 이들은 청각 장애를 치료해야 할 질환이 아닌 자신의 일부로 여겼으며, 그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할 아이를 원했다.

이에 그들은 광고를 내 선천적 청각 장애가 있는 정자 기증자를 찾았고, 결국 듣지 못하는 아기를 낳았다.” (455쪽)

『코드 브레이커』는 유전자 조작이 가져올 윤리적·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룬다. 위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유전자를 바꾸는 문제는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장애, 동성애, 인종 등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들 뿐 아니라 부모가 자녀의 인생에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 그런 개입이 공정한지,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바람직한 것인지 같은 심오한 질문들로 이어진다.

만약 우리에게 유전자를 안전하게 편집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면역을 갖게 하는 기술이 주어진다면, 이를 사용하는 게 잘못일까 사용하지 않는 게 잘못일까?

치료를 위한 편집은 괜찮지만 능력을 개선하기 위한 편집은 괜찮지 않다는 논리는 얼마나 타당한가? 공동체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자녀의 유전자를 선택하지 못하게 정부가 막을 수 있을까?

반대로 허용한다면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유전적 격차가 생기고 그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될 가능성은 없는가?

『코드 브레이커』는 흥미로운 사고실험과 실제 연구 사례, 인터뷰들을 통해 도덕적 가늠자에 포함될 일련의 원칙들을 세울 때 우리가 무엇을 숙고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찬성 또는 절대적 금지 사이에서 균형이 필요하다는 걸 역설한다.

“이제 우리는 유전자의 미래를 좌우할 힘을 가졌습니다. 실로 대단하고 두려운 능력이지요.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힘을 존중하면서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486쪽, 제니퍼 다우드나)

바이러스의 습격, 생명과학의 힘으로 극복하다: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의 미래

사실 크리스퍼 연구는 경쟁이 치열한 분야 중 하나다. 그런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다우드나 측(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 버클리 대학과 빈 대학의 공동 특허)과 장 측(장과 브로드 연구소, MIT, 하버드와의 공동 특허) 간 특허권 분쟁이다.

이 분쟁은 크리스퍼 연구 분야에서 일종의 전선(戰線)을 그리며 아직도 결론을 맺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이 생명과학 ‘전사들’ 간의 동지애를 되살리며 학문과 연구실 사이의 오랜 벽을 허물고 다같이 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오늘날 모더나, 화이자 백신은 이런 변화 덕분에 팬데믹 1년여 만에 탄생할 수 있었다. 또한 크리스퍼 가위의 원리를 이용해 바이러스를 진단하는 가정용 키트나, 바이러스 유전자를 파괴해 그 활동을 억제하는 치료제도 세계 곳곳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은 기존의 규칙에 따라 진행되지 않았다. 다우드나와 장펑의 지휘하에 대부분의 학교 연구소들은 자신들의 발견을 바이러스와 싸우는 모두와 공유했고, 이는 연구자들 간에, 심지어 국가 간에 더 큰 협업을 가능하게 했다.

그 결과 전 세계 과학자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염기 서열의 오픈 데이터베이스에 기여해 2020년 8월 말까지 3만 6000건이 입력되었다. 다우드나가 베이 에어리어에 있는 랩들을 한데 모아 만든 컨소시엄만 보아도, 만일 이들이 지식재산권 협의를 걱정해야 했다면 이렇게 빨리 뭉칠 수 없었을 것이다.” (619쪽)

전염병의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는 유전자 편집 기술과 생명공학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되었다. 현명하게만 사용한다면 바이러스로부터 인류를 지켜줄 기술임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기술과 지식에 신성을 위협한다거나 부자연스럽다는 낙인을 찍기 전에 긍정적이고 윤리적으로 사용될 기회를 주는 건 어떨까? 『코드 브레이커』는 위험과 기회, 희망이 혼재되어 있는 미래로 신중한 한발을 내딛을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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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3월 6일, 아스피린 특허

전세계 인류가 하루에 1억 알 이상을 복용하는,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세기의 약’이 아스피린이다. 아스피린의 역사는 버드나무 껍질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버드나무 껍질의 효능은 기원전 파피루스의 기록에도 있고,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도 버드나무 껍질을 진통제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19세기 이후 화학자들은 버드나무 껍의 효능이 ‘살리실산’이라는 화학물질 때문임을 밝혀냈고, 살리실산을 대량으로 합성하는 방법도 알아냈다. 그러나 살리실산은 위장장애나 구역질 등 부작용이 매우 심했다. 바이엘에 근무하던 펠릭스 호프만은 ‘아세트산을 살리실산과 반응’시켜 마침내 부작용이 없는 진통제를 개발했다. 바이엘사는 1899년 아스피린에 대한 특허를 받고, ‘아스피린’이란 상품명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스피린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끈 것은 스페인 독감이 유럽을 휩쓸었던 1918년 무렵이다. 치료제는 아니지만, 독감으로 인한 합병증에 놀랄 만한 효과를 발휘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이 ‘세기의 약’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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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텔러]유창종,와당 연구

유창종 관장(유금와당박물관)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출신이다. 검사가 왜, 어떻게 기와를 연구하고, 박물관까지 짓게 되었을까?

그가 기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8년 청주지검 충주지청에서 근무할 때였다. 기와에 관심이 있던 차에 충주 탑평리에서 출토된 연화문 와당을 직접 보게 됐다. 한 개의 기와에 백제·고구려·신라의 양식이 모두 담겨 있었는데, 그 놀라움에 와당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와당 연구도 결국 수사할 때 증거물 연구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 와당이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나,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립하는 과정이었다. 범죄 현장의 증거 한두 개로 범죄 상황을 추론하는 것과 똑같았다. 돌아보면 역사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시각으로 기와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저서 소개_와당으로 본 한국 고대사의 쟁점들

30년의 검사 경력을 활용하여 수사하듯 와당의 수집과 연구를 하다가 한국 고대사의 여러 논쟁에 관하여도 나름대로의 주관을 갖게 되었다.

기와집 지붕에 사용된 건축 부속품인 와당은 고대 사회 왕권과 국력의 상징이자, 각 민족과 지역의 문화적 특성과 수준의 상징이다. 또 어떤 문화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쳤는지를 들여다보는 문화교류 현상의 축소판이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와당에 반영되어 있는 문화적 배경과 상호 교류의 흔적을 살피다보면, 세 나라 민족의 문화적 특질과 함께 문화교류의 시대적 배경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주류, 비주류 사학자 그리고 재야 사학자와 강단 사학자들 사이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국 고대사의 몇 가지 쟁점에 대하여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서울 부담동 소재 유금와당박물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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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임경선’태도에관하여’

임경선작가를 ‘동네책방은 살아있다’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났다. 당차고 똘똘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뭐랄까 실질적이어서, 직장인의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12년 간의 직장인으로 살아왔을 뿐만 아니라 “저는 아마 아프지 않았더라면…대기업 중역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임작가는 벌써 2년이나 지나버린 코로나시대의 이야기로 북토크를 시작했다. 그녀는 나처럼 마스크를 매우 힘들어했다. 하루라도 빨리 굿바이 코로나!

이어 각양각색의 질문이 이어지고, 임작가는 마치 카운셀러처럼 조언했다. 직설적인 듯 하나, 사람의 맘을 이해했기에 깊이가 있었다.

이번 북토크의 하이라이트는 ‘잘난체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질문한 남성독자이다. 임작가의 대답은 ‘상대를 바뀌라’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는 미소지을 수 밖에 없었다. 왜냐구요?! 우리끼리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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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텔러] 이승렬

근대시민의 형성과 대한민국

저자 이승렬은 한국 근대사를 다시 쓰고 있다. 한국 사회가 걸어온 근대화 과정에 관한 통설을 뒤집어 놓았다. 이 책은 식민주의와 민족주의라는 ‘풍경’을 넘어, 자유주의와 의회주의라는 ‘눈’을 통해 한국 근대사를 재조명한다. 그의 남다른 역사해석으로 교과서의 역사서술이 다시 쓰여질 수도 있다.

한국 근대사는 식민지, 분단, 전쟁이라는 난관을 넘어왔고, 한국 사람의 자존감은 무너져갔다. ‘조선의 정체성’은 과장되었고, 성공한 ‘일본의 근대화’와 비교되었다. 자본주의와 근대화는 오로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서만 가능했다고 쇄뇌되었다.

혹독한 식민의 경험때문에 항일무장투쟁을 신성시하는 민족주의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스스로 해방을 쟁취하지 못했기에 외세와 친일파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전쟁 이후 스스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역사를 만들어온 한국 사람은 이제 뭔가 다른 역사서술이필요했다. ‘근대시민의 형성과 대한민국’가 반가운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주류로 ‘타협적인 온건한 민족주의’세력에 주목한다. 그들이 타협과 통합을 통해 3·1운동을 주도했고, 분단국가 대한민국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고 해석한다. 비타협적 급진주의적 민족주의가 오히려 뜻과 다른 결과를 가져왔고, 온건주의가 사회의 진보를 이끌었다고 한다. 이것이 한국근대사의 숨겨진 사실이라고…

개항이후 관료제로부터 자유로운 호남지역의 진취적 지주는 온건한 민족주의를 주장했다. 조선왕조의 엘리트인 기호지역의 관료적 지주들이 식민지 지배체제 내로 편입될 때, 호남지역 지주들이 실질적으로 한국의 근대화를 담당하는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독립적인 부르주아지로 성장했다.

타협적 민족주의 세력은 국제질서의 변동에 유의하면서 독립을 준비했고, 현실은 그들이 희망대로 진행되었다. 그들은 전체주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의회주의와 공화주의를 견지했다.

이러 시민적 민족주의는 제헌헌법 그리고 농지개혁에서 잠재력을 발휘했다. 온건한 민족주의 정당인 한민당은 모스크바삼상회의 합의를 기반으로 통일국가를 수립하려고 했다. 또한 이승만정권이 독재에 대항하는 반독재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반면 신탁통치를 거부하고 미소공위를 실질적으로 파탄시키면서 당장의 독립을 외친 급진적 민족주의는 분열과 분단의 길, 나아가 전쟁의 길을 열었다.

[저자소개]

이승렬은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시민의 역사교육을 위한 강연 및 교재 편찬을 기획했다. 주요 연구 주제는 한말과 일제시기 부르주아지 형성과 관련된 사회경제와 식민정책이었다. 저서로는 근대 이행의 상인적 기원을 검토한 <제국과 상인>(2007)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강제병합 100년과 성장의 공공성>(2010) 외 다수가 있다.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대림대학교 교수 등으로 활동했다.

북토크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4602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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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루세프스키, 우크라이나 민족을 만들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우크라이나가 독립국가가 된 후, 우크라이나 지폐에 그려진 인물이 있다. 미하일로 흐푸세프스키(1866년~1934년)가 그다. 그는《우크라이나-루스의 역사》《삽화로 보는 우크라이나의 역사》등의 역사책을 집필한 역사가이자, 1917년 볼세비키 혁명당시 우크라이나 중앙라다의 의장이었던 정치인이었다.

19세기는 민족주의의 시대였다. 특히 동유럽지역에서 민족의식과 민족담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제국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국가를 만들거나 문화적 자율성을 갖는 것은 당연한 시대과제처럼 여겨졌다.

이런 질풍노도의 시기엔 민족들의 욕구가 민족주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가 민족을 만들기도 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는 어떤 민족이 될 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갈림길에 있었다.

본래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은 폴란드 지배 시기 폴란드와 타타르 사이의 변경지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를 일부 지식인들이 19세기 전반부터 민족을 칭하는 말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폴란드 지배 하에서는 종교가 집단적 정체성의 잣대였다. 비잔티움 정교와 로마 가톨릭으로 두 민족은 구분되었다. 한편으론 적지 않은 우크라이나 엘리트층 구성원은 카톨릭으로 개종하면서 폴란드에 동화되어 가기도 했다.

그 반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을 때에는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종교적 공통성,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의 유사성, 공통의 국가적 기원론을 뒷받침해 준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제국이 지배하던 시기, 러이사의 공식입장은 대러시아인, 소러시아인, 백러시아(벨라루스) 세개의 집단이 하나의 공동체라고 말해졌다. 이는 17세기 후반 모스크바 대공국이 동부 우크라이나를 차지하면서 성직자들이 만든 역사서술이었다.

흐루셰프스키가 [우크라이나의 역사]란 책을 쓸 때는 아직 ‘우크라이나’라고 불리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흐루셰프스키는 우크라이나 민족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독자적 정체성을 가지며, 특정한 영토적 범위를 가지는 독자적 민족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서로 구분되는 민족이라고 보았다. 키예프 국가의 법제 및 문화는 우크라이나/루스 민족의 창조물이다. 반면 블라디미르 대공국/모스크바 대공국과 그 법제 및 문화는 대러시아 민족의 창조물로 보았다.

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공유했던 문어체인 교회의 슬라브어 대신 근대 우크라이나 민중의 구어를 중시함으로써 러시아와의 언어적 공통성을 희석하고자 했다. 러시아 지배 하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언어 민족주의적 성격을 강조할 수 밖에 없었다.

1917년 러시아의 2월 혁명으로 흐루셰프스키는 새로운 기회를 맞았다. 그는 키예프에서 3월 초 결성된 중앙라다의 의장으로 선출되어,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하였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즉각적인 독립선언은 그의 역사해석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땅에는 두개의 우크라이나가 서로 다투게 되었다. 흐루셰프스키가 주도하는 키예프 중심의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과 노동자 병사 농민 소비에트가 주도하는 하르키프 중심의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정부가 양립했다.

1918년 초 볼셰비키 군대가 키예프로 들어와 도시를 장악하였다. 흐루셰프스키는 볼셰비키가 민족문제에서 옛 제정 러시아 정부와 다를 바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소비에트 정부에 반대했다. 그리고 중앙라다 정부는 독일군의 개입을 스스로 요청했다. 당시 그의 행보는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볼세비키는 전향적으로 민족을 품게 되었다. 레닌은 민족의 자치가 가능하게 설계된 연방제를 제안했다. 민족공화국들로 구성되고, 그 안에 자치공화국과 자치주가 포함된 체계, 곧 1922년 세워진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이다. 그 연방의 15개 공화국의 하나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였다. 우크라이나를 연방공화국으로 편성했으며 우크라이나의 언어적 문화적 독자성을 존중하고 장려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흐루셰프스키는 우크라이나인에 의한, 우크라이나인을 위한, 우크라이나인의 역사를 서술했다. ‘우크라이나 민족’을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역사서술로 우크라이나인의 테두리가 만들어졌고, 그가 만든 테두리가 곧 오늘날의 우크라이나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소련시기에 우크라이나 분리주의의 근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때문에, 당국의 불신을 받았던 흐루셰프스키였다. 소련 해체 후 독립한 우크라이나에서 건국의 공로자로 여겨지고 있다.

*참고문헌: 러시아연구 제24권 제 2호. 후루셰프스키의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우크라이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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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3월대선,1920년 미국대선

19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지난 4년 동안 시달린 전쟁과 전염병이 크게 영향을 미친 선거였다.

1차 세계 대전으로 10만명, 스페인독감으로 65만명의 미국인이 사망했다. 시카고 등 도시에서의 폭동, 육가공업이나 철강산업의 파업, 무정부주의자의 폭탄 테러가 전쟁 후 미국 도시를 뒤흔들었다.

수정헌법 19조에 의해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800만표 여성 유권자들이 선거의 새로운 변수였다.

민주당 현직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인기가 없었다. 그가 국제연맹의 설립을 주장했지만,정작 ‘군사적 개입이 필요할 때 의회가 평가할 권한을 보장하는’ 공화당의 수정안을 거부했다. 미국이 국제연맹의 설립을 제안했으나,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미국역사에서 우드로 윌슨만큼 압도적 거부와 반대에 부닥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평해진다.

백악관을 되찾기 위해 공화당은 워렌 G. 하딩 상원의원을 선택했다. 스윙 스테이트인 오하이오 주 출신의 신문 발행인 하딩은 미국인들이 갈망하는 정치적 위안을 전달할 수 있는 안전한 선택이었다.

하딩은 ‘정상으로의 복귀(A return to normalcy)’를 캠페인 슬로건으로 채택했다. 하딩은 ‘정상’에 대한 자신의 열망은 시계를 되돌리고 싶은 열망이 아니라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질서를 의미한다고 했다. 과도하지 않은 정상적인 절차, 자연스러운 방식을 의미한다고 했다.

하딩은 ‘프론트 포치 캠페인’으로 백악관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수많은 방문객들이 하딩의 집에 찾아와 베란다 주변에 모여서 후보자의 연설을 들었다. 그들은 하딩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고향 신문에 보내 하딩을 선거캠페인을 도왔다.

마침내 하딩은 선거인단과 대중 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미국의 29대 대통령이 되었다. 선거인단에서 4 대 1에 가까운 압도적인 차이로 민주당 후보 콕스를 이겼다. 선거의 득표율은 60.3% 대 34.1%로, 1920년 이후 현재까지도 깨지 못한 기록이 되었다.

하딩은 1923년 미국 횡단 여행을 하던 중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5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의 재임기간에 일어난 다양한 스캔들로 인해, 하딩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코로나와 러시아의 전쟁개시로 어지러운 이때, 3월의 대선과 그 이후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