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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value of news content to newsroom transformation to fulfilling business needs, United Daily News Group has shown its competency to make this project a great success with data-driven curation approach reshaping subscription 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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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INNOVATIVE DIGITAL PRODU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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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laundry App “Digital audiences are expecting user centric products and experiences that match their current consumption habits at other apps. This is a great case that confirms how important it is to prioritise ’product’ strategies and not only ’pricing’ strategies, when we move to subscription based models.”
“This strategy showcases a combination of creativity, innovation, and tangible results. Not only did it succeed in increasing donations, but it also raised awareness with an impact on public health. Undoubtedly, a success story that stands out in Swedish society.”
”Reclaim Your Brain” from The Guardian is a transformative experience that guides readers toward a healthier relationship with their devices. Like a path unfolding step by step, each edition cleverly connects to the next, enriching the journey towards digital mindfulness. Blending humour with evidence-based advice, this newsletter not only captures attention but empowers readers to control their mobile usage. Behind each issue, there is extensive research and expertise, making complex concepts accessible and applicable day b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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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ansitions of the illustrations from the most understandable data to the least manageable figures create an attraction towards storytelling that is extremely difficult to achi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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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신문협회 총회가 2023년 6월 28일~30일 타이페이에서 열렸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뉴스룸에 미치는 영향이 핵심 이슈였습니다. 오디오 포맷의 재발견도 관심을 모았습니다. 행사 핵심 내용을 10줄로 요약하였습니다.
핵심 10줄 요약
1.생성형 인공지능시대
챗GPT가 등장하면서 생성형 거대 인공지능모델이 갑자기 6개월만에 언론계를 덮쳤다. 언론계에게 마지막 기차일수 있다. 이 마지막 기차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가짜뉴스 생성 가능성, 거대 인공지능엔진에 저작권을 보호받지 못할 가능성, 숨은 비용 등 리스크도 숱하게 존재한다.
뉴스룸에서 간단한 프로세스 대체(예_인터뷰 녹음 자동 텍스트 추출, 이미지 가공, 헤드라인 테스트 등)에 적용하고 있다. 뉴스룸에 적용한 프레임워크(윤리 가이드 등)를 만들어 실행해야할 시점이다.
인공지능시대에 휴먼터치가 확실한 휴먼 메이드가 프리미엄급으로 대접받을 수도 있다.
2.구독모델 성장세 주춤_팬데믹 여파
최근 수년동안 언론산업은 디지털 구독모델을 통해 지속가능한 미디어가 되려고 애쓰고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닛케이 등 구독모델 성공사례가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코로나사태이후 인플레이션, 금리인상 등으로 인해 생활비가 상승하자, 구독 지출 비용을 줄이려는 흐름이 나오면서 구독모델에 올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됐다. 특히 개인이나 가정입장에서 여러 매체를 구독하고 또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등 다른 구독모델을 혼재해서 사용하기에 가계에 구독 지출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따라서 무료 기사를 적게 보여주고 바로 구독을 유도하는 하드 페이월을 채택했다가 철회하는 언론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3.광고모델 재주목_구독과 광고모델 통합 트렌드
지난 10여년동안 구독모델이 대세를 이뤘지만, 최근 구독모델에서 획득한 오디어언스 데이터를 바탕으로 광고모델을 개척하려는 시도가 등장하고 있다.
구독모델 주창자이나 최고의 개척자인 뉴욕타임스는 세계 최대 스포츠 매체인 애슬릭를 인수해 경영하면서 구독자를 대상으로 한 광고모델의 가능성을 포착하고 광고프리 유료모델과 광고를 보는 저렴한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또 고품격 광고모델을 운용하기에 충분한 구독자 데이터를 확보했다고 판단하고 구독중심에서 벗어나 광고모델을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사이트와 앱을 어지럽히고 돈은 안되는 것으로 오랫동안 천대받았던 광고가 재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4.멤버십 이코노미
구독모델와 멤버십 모델은 공통분모를 가지면서도 지향점이 다른 모델이다. 둘 다 ID를 생성하고 일정한 금액을 내면 로그인 상태에서 콘텐츠, 게임, 데이터베이스 이용 등 독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기본 축으로 삼는다.
다른 점은 언론사와 회원간 유대감과 또는 회원끼리 연결성이다. 구독은 일정한 돈을 내고 정기적으로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받기만 하는 것이라면, 멤버십은 미디어에 돈을 후원하고 미디어에 의견을 내거나 회원끼리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것을 지향한다.
5.새로운 뉴스 콘텐츠 포맷_스마트 요약 등
기존 디지털 콘텐츠 포맷에서 벗어나 새로운 포맷을 서비스하는 트렌드가 포착됐다. 크게 엑시오스가 제공하는 스마트 요약형, 세마포가 선보인 새로운 뉴스포맷,파이나잇 포맷(finite formats), 오디오 포맷 등 4가지 유형을 들 수 있다.
이중 뉴욕타임스와 블룸버그 출신이 만든 세마포어는 하나의 이슈에 대해 팩트, 기자의 관점, 기자와 다른 관점 등을 구분해서 보여주는 포맷을 제공함으로써 주목을 받고 있다.
파이나잇 포맷은 스마트폰에서 수많은 정보를 접해야 하는 독자의 뉴스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짧은 시간에 뉴스 핵심을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든 포맷과 유저인터페이스를 특징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이코노미스트는 에스프레스라는 서비스를 통해 5개의 스토리만을 큐레이션해서 매일 제공한다.
파이나잇 포맷 흐름중 뉴스 소재로 소도쿠, 퀴즈를 제공하여 뉴스를 이용하는 습관을 독자들이 갖도록 하고 뉴스 기사를 읽거나 듣기에 걸리는 시간을 표시해주는 유저 인터페이스가 돋보인다.
6.오디오 포맷의 확산_보이스 노트 저널리즘
로이터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72%가 기존 구독자를 붙잡고 새로운 구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오디오 콘텐츠 투자 계획을 세우고 있다.
비욘드워즈의 오디오 인게이지먼트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음악보다 스포큰 워드 오디오 소비가 2%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미네소타의 소말리아 이주민 커뮤니터 미디어은 사한 저널은 보이스 노트를 뉴스레터로 발송하고 있다. BBC는 왓츠앱을 활용하여 보이스 노트 형태 뉴스 콘텐츠를 확산시키고 있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매일 리딩 목록을 주고 원하는 오디오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덴마크의 제트랜드는 유료 뉴스서비스로서 오디오 서비스를 간판 서비스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오디오 포맷 뉴스서비스는 크게 팟캐스트, 오디오 아티클, 오디오 뉴스레터 등으로 구분된다. 팟캐스트는 MP3파일로 각종 콘텐츠를 제작하여 웹이나 앱에서 제공하는 전통적인 디지털 오디오 서비스다. 오디오 아티클은 기존 텍스트중심 뉴스에 오디오 기능을 붙여 눈으로 읽는 대신 귀로 들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오디오 아티클은 대체로 인공지능 음성 기능(TTS)를 적용하고 있다.
7.닛케이의 디지털 혁신_FT인수 효과
닛케이는 FT를 인수한 후 FT가 축적한 디지털 미디어 전략 노하우를 흡수하여 디지털전환 선두 미디어로 자리 매김을 하였다. 예를 들어 시각화에 큰 혁신이 있었다.
닛케이는 닛케이아시아(영문 뉴스)를 통해 아시아 취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아시아 지역 뉴스와 데이터베이스 최고 지위를 구축하였다.
닛케이의 스카웃아시아는 뉴스와 같은 비정형 데이터를 정형데이터로 변환시켜주는 인공지능 회사 핸드세이크즈(싱가폴)과 협력하여 아시아지역내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구축하였다. 현재 100여개의 회사에 M&A, SCM, 기업모니터링 정보를 유료로 제공하고 있다.
8.안티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렌드
소셜미디어 등 거대 플랫폼에 콘텐츠를 다 주고 푼 돈만 받았다. 언론은 플랫폼을 무시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줬다. 이제 파트너십을 위해 싸워야 한다.
소셜미디어 플랫폼 등 대형 플랫폼에서 벗어나 작은 독자 플랫폼을 만들어 콘텐츠를 유통하고 광고도 유치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인도네시아 IDN미디어는 콘텐츠생산, 콘텐츠유통플랫폼, 광고회사, 영화제작사 등을 생태계로 구성하여 중간규모 자체 플랫폼을 구축하였다. 과거에 페이스북이 광고 수익을 대부분 가져갔다. 그래서 콘텐츠 유통 통제력을 보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9.Z세대 저널리스트와 Z세대 독자
세대는 두가지 차원에서 언론산업계의 이슈다. 첫째, Z세대가 뉴스룸에서 창의적으로 일하고 저널리즘에 보람을 갖추도록 하는 이슈다. 코로나사태로 인해 제기된 재택근무의 경우 모든 Z세대가 재택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사무실 근무를, 또는 재택근무를 더 선호할 수 있다.
Z세대가 뉴스를 접하고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 틱톡 등 쇼츠를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다. 하지만 쇼츠를 통해 뉴스 본래 체험을 갖도록 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NYT는 쇼츠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젊은세대에게 콘텐츠를 배포할 수 있는 플랫폼을 찾아서 젊은 세대 독자가 NYT를 다시 찾도록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10.구글의 대 언론 지원 정책 트렌드
언론 자유는 구글에 부담을 주는 것 만으로 해결될 것인가? 언론 자유에 대해 구글이 해결책을 낼 수 없다. 각 사회별로 해결해야 한다. 구글과 같은 단일 회사에 재정지원을 기대지 마라. 다양한 재원을 각 사회별로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인공지능을 지나치게 위험하게 보는 것은 픽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올바른 질문을 하지 않으면 잘못된 길로 갈 것이다.
스페인은 한국인에게 여행 버킷리스트에서 상단에 오르는 나라입니다.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지인에게 스페인 여행을 추천하기 마련입니다.
음식이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고 또 물가도 서유럽에 비해 쌉니다. 또 지중해 문명, 이슬람문명,카톨릭문명 등 다양한 요소가 곳곳에 섞여 있어 스토리가 풍부한 여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피카소, 가우디 등 걸출한 아티스트의 흔적을 만날 수 있기도 합니다.
여행 금언중 하나는 ‘아는 만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가보는 나라를 여행할 때 흔히 여행가이드북을 구입해 여행전에나 여행하면서 틈틈이 읽습니다. 모바일시대는 스마트폰을 통해 다양한 여행정보를 이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의 제 맛을 느끼려면 역시 그 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접하는 것입니다. 유튜브의 간략한 소개로 그런 깊이를 대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의 원 제목은 ‘A Concise History of Spain’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의 약사 시리즈 중 스페인 편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책 저자는 영국이 아니라 미국 학자입니다.
윌리엄 D. 필립스 주니어는 미네소타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로 활동하며 2001년부터 2008년까지 근세역사센터를 맡아 운영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칼라 란 필립스도 미네소타대학 비교근세사학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두 교수는 모두 스페인역사를 연구하면서 함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세계 The Worlds of Christopher Columbus’(1992)를 저술하여 스페인 정부가 주는 제2회 ‘미국 안의 스페인’ 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책은 전문 역사학자가 썼지만 일반 독자도 쉽게 스페인 역사의 전체를 굽어볼 수 있을 정도로 대중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깊이도 함께 느끼게 하는 역사서입니다.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거나 또는 한 두번쯤 다녀오신 분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1장 영토와 옛주민편을 골라서 발췌독서하였습니다. 여행가시기 전에 이 장만 읽어도 여행에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1장 영토와 옛주민 편
언어
1.라틴어 파생 로망어 계열
이베리아는 늘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 지역이었다는 점이 이러한 지역적 복잡성의 일부를 이룬다. 반도의 언어들은 대부분 라틴어에서 파생된 소위 로망어로, 수 세기에 걸친 로마의 히스파니아 점령과 통치가 남긴 유산이다.
2.스페인어의 뿌리, 카스티야어
오늘날 이베리아인과 전 세계 스페인어 화자들은 중세 카스티야에서 쓰이던 언어에서 유래한 카스티야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스페인인 외에는 대부분 이 언어를 스페인어라고 부른다. 이 언어가 아메리카와 필리핀제도의 스페인제국 지역으로 전해졌고 현재는 중국어와 영어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3.스페인어와 다양한 언어 공존
20세기 중반에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이 스페인어, 즉 카스티야어를 스페인의 유일한 언어로 만들려고 했지만, 언어의 정체성은 이에 굴하지 않았으며 그의 임기 동안 더 많은 인정과 자치를 원하는 지역주의 투쟁의 강력한 구성 요소가 되었다.
반도의 로망어들 가운데 포르투갈어는 포르투갈의 공용어이고, 가까운 사촌 격인 갈리시아어는 지역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 출판계에서 사용되며 스페인 서북부에서 부활하고 있다. 카탈루냐어는 수많은 카탈루냐 주민의 모국어로 교육과 대중매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4.카탈루냐어, 프랑스 프로방스어와 연결
카탈루냐어는 프랑스 남부의 중세어인 오크어, 즉 프로방스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중세 카탈루냐인들은 발렌시아와 발레아레스제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언어를 이곳에 들여왔다. 오늘날 이 지역 언어들은 카탈루냐어와 다소 다르지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5.바스크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구어 가장 특이한 언어는 바스크어(에우스케라 Euskerra)다. 이 언어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구어이며, 기원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무렵 언어가 쇠퇴하자 바스크 지식인들은 바스크어를 다시 사용하고 이전에 미흡했던 문어체를 발전시켰다. 그 후 에우스케라어의 사용은 바스크 민족주의로, 스페인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얻기 위한 다양한 모색으로 연결되고 있다.
6.아랍어 영향
아랍어는 8세기에 이슬람 정복자들과 함께 이베리아반도로 유입되어 알안달루스 정치인들의 언어로 자리매김했으며 17세기까지 스페인 곳곳에서 통용되었다. 또한 카스티야어와 반도 내 다른 로망어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으며, 급기야 유럽 전역의 언어에서 ‘대수학algebra’부터 ‘천정zenith, 天頂’에 이르기까지 명사 변형을 가져오기도 했다.
7.히브리어 유산
히브리어는 중세 스페인에서 수백 년간 번영을 누렸던 유대인 공동체의 공용어로, 아랍어 및 로망어들과 영향을 주고받았다. 15세기 말 유대인 추방령이 내려지자 지하로 쫓겨나거나 소멸되다시피 했던 히브리어는 모로코 및 다른 북아프리카 지역과 중동 지역 유대인 공동체의 재건에 힘입어 20세기 중엽부터 스페인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지리
1.이베리아반도 지질학적 특성
북부 산악 고지대의 빙하에서부터 동남부 엘체 인근의 사막에 이르기까지, 반도의 모든 문화는 다양한 지역으로 구성된 지질학적 특성을 근간으로 한다. 이베리아의 산맥들은 수백만 년 전에 형성되었으며, 스페인의 여러 독특한 지역을 구분하고 경계 짓는다.
2.피레네와, 프랑스와 스페인 경계
동북부에서는 3350미터가 넘는 고봉들로 이루어진 피레네산맥이 스페인과 프랑스를 가른다.
3.칸타브리아 산맥, 갈리시아와 카스티야 경계
바스크 지역의 계곡과 낮은 산들은 피레네산맥과 칸타브리아산맥(코르디예라 칸타브리카Cordillera Cantábrica)을 연결하고, 정상의 높이가 해발 2590미터쯤 되는 칸타브리아산맥은 스페인 북부 지역 대부분을 가로질러 뻗어 반도의 내륙과 좁은 해안 지역을 가른다.
칸타브리아산맥 서쪽 끝에는 위압적인 해안 절벽과 산이 많은 내지로 이루어진 아스투리아스 지방이 있다. 스페인의 서북쪽 끝, 갈리시아 해안 지역의 산과 계곡은 아스투리아스의 지형과 비슷하다. 갈리시아의 해안선은 리아스식해안으로, 대서양이 손가락처럼 들쑥날쑥한 해안선을 따라 언덕들 사이의 내륙을 탐사하는 모양새가 생동감은 덜하지만 스칸디나비아의 피오르해안을 닮았다.
4.북메세타
칸타브리아산맥 서쪽 기슭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온 레온산맥은 북北메세타라고 불리는 평균 해발고도 700~800미터의 드넓은 평원으로 이어진다. 평원의 동부는 2280미터에 달하는 고봉들로 이루어진 이베리아산맥(코르디예라 이베리카Cordillera Ibérica)과 접한다.
5.이베리아 산맥
이베리아 산맥 동쪽으로는 아라곤과 카탈루냐, 지중해 연안 발렌시아의 풍요로운 평원에 에브로 하곡河谷이 자리한다. 북메세타의 남쪽 경계는 센트랄산맥(코르디예라 센트랄Cordillera Central), 즉 마드리드 북부와 서쪽의 소모시에라, 과다라마, 그레도스를 아우르는 산맥과 접한다.
6.남메세타
남南메세타는 평균 고도가 610~700미터다. 이베리아반도 전체 면적의 약 36퍼센트를 차지하는 두 메세타 고원은 서로 떨어져 있다. 높고 광대한 이들 고원 때문에 스페인의 평균 해발고도는 670미터에 달하는데, 이는 유럽에서 스위스 다음으로 높고 유럽 평균보다는 두 배나 높은 수치다.
마드리드는 유럽의 수도 가운데 고도가 가장 높아서, 마드리드공항의 해발고도가 610미터쯤 된다.
7.베틱산맥
남메세타의 동쪽 경계는 (북메세타의 동쪽 경계이기도 한) 이베리아산맥과 훨씬 더 험준한 베틱산맥(코르디예라 베티카Cordillera Bética) 사이에 자리하며, 남메세타 및 동남부의 사막과 해안 평원지대를 가른다.
8.시에라모레나 산맥
남메세타의 남쪽 경계는 시에라모레나산맥이다. 시에라모레나산맥의 남쪽과 서쪽, 그러니까 과달키비르 하곡은 넓고 풍요로운 농경지대를 이루며 대서양을 향해 서남쪽으로 뻗어 내려간다. 거기서 더 동쪽으로 그라나다와 다른 남부 산맥들로 이루어진 시에라네바다 산악지대는 1년 내내 눈이 덮여 있어 안달루시아의 더운 평원지대나 해안 지역과는 놀라운 대조를 이룬다.
9.지질학적 특성과 산업
이렇게 험준한 지형 때문에 수백 년 이상 농업에 제약이 있었고, 장거리 수송도 제한되었으며, 항구도시들과 내륙의 도시 및 평야가 단절되어 상업 발달이 억제되었다. 그래서 철도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쉽게 옮길 수 있는 상품에 높은 가치가 매겨졌고, 가축처럼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더 가치 있게 여겨졌다.
10.강의 경계 역할
스페인의 주요 강들은 유역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데 일조하며 중요한 역사 발전의 장을 장식했다. 심지어 어떤 역사학자는 주요 하곡들을 지배한 정치 세력의 변화를 좇다보면 중세 스페인사를 가장 잘 이해하게 될 거라고도 했다.
11.에브로강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은 단 하나다. 에브로강은 칸타브리아 산악지대에서 발원해 아라곤의 계곡들을 지나 하류에 삼각주를 만들고 발원지에서 910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에 도달한다. 로마 시대에는 에브로강 유역 암포스타에 큰 항구도시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에브로강은 반도의 중앙부로 이어지는 일련의 경로들의 중추였다. 사라고사는 로마 개국 이래 에브로강을 건너는 내륙의 주요 거점이었으며, 덕분에 도시의 명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12.두에로강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큰 강들 중 최북단에 위치한 두에로강은 시에라데우르비온 산지에서 발원해 구舊카스티야와 포르투갈 북부의 곡물 및 와인 생산지를 지난다. 두에로강(포르투갈어명 도루강)과 계곡은 무슬림의 차지였던 반도의 통치권을 기독교 세력이 간신히 빼앗기 시작한 중세에 알안달루스와 기독교 왕국들 사이 경계가 되었다.
13.타호강 타호강(영어명 타구스강)은 시에라데알바라신 산지에서 발원해 톨레도의 경계가 되는 높은 언덕을 둘러싸고 흐른다. 톨레도는 로마인에 의해 건설된 이후 줄곧 군사 요충지였다. 1085년,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는 무슬림에게서 톨레도를 탈환하면서 카스티야의 수도를 이베리아반도의 중앙으로 옮기는 중요한 전환기를 마련했다. 중세 왕들이 즐겨 지냈던 톨레도에는 주요 유대인 공동체가 자리잡았다.
14.과디아나강 과디아나강(아랍어명 와디아나강)은 쿠엥카에서 발원해 라만차와 남부 엑스트레마두라를 지나 흐른다. 역사적으로 인구 밀도가 낮은 이들 지역에는 스페인의 유명한 유목 가축인 메리노 양의 겨울 목초지가 있어 13세기 이래 방대한 규모로 최상품 양모를 생산해왔다.
고대와 중세에는 과디아나강의 항행 가능한 구간을 이용하는 선박 수가 상당했다. 강은 메리다 쪽으로 흐르다가 하류에서 포르투갈 풀루두로부에 있는 폭포까지 닿는다.
15.과달키비르강 스페인 최남단의 주요 강인 과달키비르강은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앙부를 이루는 비옥한 농업지대를 지나 흐른다. 강과 농지 덕분에 풍요로워진 코르도바는 10세기부터 17세기까지 스페인 내 칼리프국의 수도 역할을 했다. 이슬람 사원을 비롯한 여러 건축물 덕분에 현재 코르도바는 스페인의 주요 문화 관광지가 되었다.
16.세비야 과달키비르강을 지나는 배들은 상류의 코르도바까지 운항할 수 있었다. 오늘날 외양선은 세비야까지만 운항이 가능하다. 세비야는 스페인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때마다 발생했던 곳이다. 헤라클레스가 발견했다는 전설이 있고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건설한 것으로 보이는 이 도시는 로마인들에게 히스팔리스Hispalis라 불렸으며 나중에 주요 이슬람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기독교 세력은 13세기 레콩키스타를 통해 과달키비르 하곡을 확실히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세비야는 16~17세기에 아메리카의 스페인제국으로 가는 모든 배가 취항하는 공식 항구였고, 그 이래로 지금껏 풍부한 건축 유산을 보유 중이다.
기후
이베리아반도는 기후가 뚜렷이 구분되는 두 지역, 즉 비가 많은 지역과 반 半 건조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지리학자들이 강우지대라 부르는 습윤 지역은 리스본에서 갈리시아를 지나 북부 해안 대부분과 서부 해안의 북쪽 절반을 아우른다.
1.습윤 지역
이곳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온화하며 연중 비가 잦다. 푸른색 산비탈은 곡물을 재배하기 좋은 환경을 보장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갈리시아의 언덕과 계곡, 넘치는 강우량은 몇 세기 동안 곡물 생산에 방해가 되었고, 주민은 바다에 의존해 식량을 수입하고 노동력을 수출해야 했다.
2.반건조 시대
반도의 나머지 반건조지대는 이웃 지중해 지역과 같은 기후대라 해안 지역은 겨울이 온화한 반면 내륙 지역은 조금 더 춥다. 여름은 덥고 건조한 편이지만, 다른 계절은 강우량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3.편서풍의 영향
편서풍이 북유럽으로 강하게 불면서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온난다습해지는 반면, 지중해 지역은 더 건조해지는 경향이 있다.
한편 북부 기압이 더 높고 아이슬란드 기압대와 아조레스 기압대가 서로 가까워지면, 북풍과 동북풍이 불어 서북 유럽은 추운 날씨가, 지중해 지역은 바람이 강하고 다습한 날씨가 된다.
이주민의 역사
이베리아반도에 인간이 거주한 역사는 환경과 극한의 지형 및 기후 조건이라는 제약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두 대륙 사이에 자리하며 동시에 두 대양을 가르는 위치는 인간의 접근이 비교적 쉬웠음을 의미한다. 수천 년 이상 이어진 이베리아반도로의 인구 이동은 선사시대와 역사시대 형성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1.초기 유럽인 화석
스페인 북부 시에라데아타푸에르카 산지의 부르고스 동쪽에서는 초기 유럽인의 화석이 아직까지 발견된다. 이들 화석은 최소 78만 년 전의 것으로, (사람속homo에 속하는) 인류의 조상이 어쩌면 100만 년 동안 이베리아반도에 거주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무척 오래된 인류 화석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꽤나 최근 것에 해당된다. 아프리카 지역에 남아 있는 인류 화석 중 일부는 700만 년도 더 된 것들도 있다. 초기 인류는 아프리카 대륙 동북쪽을 통해 그곳을 떠나기 시작했고 이 물결을 타고 아시아까지 진출했다.
얼마 뒤에는 몇몇 무리가 서유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약 170만 년 전쯤 캅카스 산악지대에 살았던 것이 확실시되며, 약 100만 년 전에는 유럽에 거주했다.
시에라데아타푸에르카 산지 모처의 지반을 깊이 깎아내자 고대 퇴적층들이 드러났다. 결국 광산 채굴은 중단되었고 철로는 1920년대에 폐선되었으며, 동물과 인간만이 그곳에 남았다. 최초이자 가장 중요한 발견은 1976년 그란돌리나Gran Dolina라고 불리는 석회암 동굴에서 발굴된 인간의 턱뼈였다.
이후 고고학 발굴이 급격히 활발해졌고, 1995년에 과학자들은 열한 살 소년의 두개골 일부와 아래턱뼈, 척추뼈를 발견했다.
2.전기 구석기 시대 인류 그란돌리나 근처에서 소위 뼈 구덩이Sima de los Huesos라는 것을 조사했는데, 그곳에서 짐승 뼈와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고인류 뼈 무더기가 발견되었다. 잘 보존된 도끼머리 한 점과 서른 명 정도 되는 사람의 뼈였다. 이 인골들의 주인은 더 늦은 시기의 인류이며, 아마 그란돌리나의 인골과는 무관할 것이다. 이들은 전기 구석기시대(50만 년에서 10만 년 전)인 약 40만 년 전에 같은 지역에서 활동한 호모하이델베르겐시스Homo heidelbergensis(하이델베르크인)로 확인되었다.
3.네안데르탈인 네안데르탈인은 약 20만 년 전에 도착해 반도 전역에 흩어져 정착했다. 사실 네안데르탈인은 1848년 지브롤터에서 처음으로 뼈가 발견되었지만, 1856년 독일 네안데르탈에서 다른 화석 자료가 발견되면서 나중에야 독립적인 종으로 분류되었다.
과학자들은 한때 네안데르탈인이 3만5000년 전 자취를 감추었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이베리아반도에서 훨씬 더 오랫동안 생존했을지도 모른다. 지브롤터에서 가장 최근에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뼈는 2만4500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
4.오리냐크–솔뤼트레인–마들렌
이베리아 최초의 현생 인류는 약 3만5000년 전에 나타나 유럽 전역으로 퍼진 오리냐크 문화의 구성원이었다. 특히 그들은 이주하면서 골각기骨角器나 사슴뿔 도구, 부싯돌 같은 좀더 발달된 기술을 전했다. 가죽과 모피를 꿰매어 옷을 지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는데, 고고학자들이 유적에서 그런 용도의 바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베리아의 오리냐크인은 약 2만 년 전에 사냥용 활을 가지고 북아프리카에서 온 솔뤼트레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이어서 약 1만7000년 전 순록을 사냥했던 북유럽의 마들렌 문화가 솔뤼트레 문화를 대체했다. 마지막으로 약 1만 년 전에 마들렌 문화 다음으로 후기 구석기 문화가 자리잡았다.
5.구석기 문화_알타미라 벽화
구석기시대 문화의 고고학 발굴 현장은 수많은 동굴벽화를 포함해 이베리아반도 전역 곳곳에 포진해 있다.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 해안지대 중심부, 낮은 해안평야의 동굴에서 발견된 알타미라 벽화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의 후기 구석기시대 벽화는 지금까지 발견된 벽화를 통틀어 최고의 전형이며, 그려진 시기는 1만8500~1만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처에서 얻은 안료에 동물 지방을 섞어 그린 벽화는 그들이 잡아먹은 동물들(특히 말, 들소, 붉은사슴, 순록)을 여러 자세로 묘사하고 있고, 그중 몇몇은 부상을 입은 모습이다.
사람들이 거주하던 동굴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안쪽에 그려진 것으로 보아 장식용 그림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사냥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의식과 관련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부족과 사냥감을 정신적·물질적으로 연결하려던 시도를 나타내는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알타미라 벽화는 인류사를 통틀어 최고最古이자 최초의 사실주의 회화다.
6.신석기 문화
약 8000년 전 신석기인들이 반도로 유입되면서 좀더 발달한 석기(신석기인이라 불린 이유다)를 들여왔지만, 더 중요한 건 이들이 농업과 목축 기술을 전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반도에 발을 들이며 새 무리가 오래된 무리를 몰아냈으며 인구 증가가 가속되었다.
수렵과 채집뿐 아니라 농업이 뒷받침되면서 신석기인들은 더 큰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고, 더욱 안정된 정착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7.청동기 시대
약 3400년 전에는 이베리아반도에 구리 도구가 등장했고, 더불어 구리 채굴과 제련의 증거가 나타났다. 이 시기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고고학 발굴 현장은 스페인 동남부 알메리아 근처의 로스미야레스다. 대부분의 동기시대銅器時代, Copper Age 유적지에는 방어 시설과 공들여 지은 돌무덤들이 있다. 약 2200년 전에는 청동기인이 이베리아에 등장했다. 반도에는 강모래 속 금광상을 비롯해 남부의 구리와 서부의 은 등 광상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8.이베리아인과 켈트
이베리아인은 (아마도 동방에서 기원하여) 북아프리카를 통해 스페인으로 유입되어 지중해 연안을 따라 퍼져 나갔다. 그들은 농업 지식과 채굴 지식, 청동 등 금속을 제련하는 지식을 들여왔다. 대형 석재는 건축에 사용하고 돌덩어리들은 깎아서 석상을 만드는 등 석물을 만들기도 했다.
그중 가장 뛰어난 것은 소위 엘체 부인Dama de Elche이라 불리는 석상이다. 그들은 지중해의 상인들에게서 글쓰기와 동전 주조법을 배우고 그리스어와 페니키아어에서 파생한 알파벳을 이용해 문자를 개발했다. 이베리아어 기록은 현재 돌이나 동전에 새겨진 것 외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8.1 켈트족의 이주
켈트 문화는 여러 차례에 걸쳐 유입되었으며 기원전 9세기~기원전 7세기가 그 정점이었다. 북부에서 온 켈트족은 피레네산맥 서쪽을 거쳐 이베리아반도에 들어온 다음 대서양 연안을 따라 확산되었고, 주로 목축생활을 했다. 청동기시대 말기가 가까워지면서 제철 지식이 켈트족의 정주지 전체로 확산되었다.
8.2히스파니
켈트 문화와 이베리아 문화가 나중에 선주민과 섞여들어, 적어도 반도의 중심부에서는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기록에 남은 복합적인 문화가 만들어졌다. 로마인들은 이 지역 사람들을 히스파니Hispani라고 불렀다. 사회 상류층은 무인 귀족이었고, 그 아래는 자유로운 노동자 계층이었다.
그보다 밑에는 노예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전쟁 포로이거나 지역 지배층의 보호를 받는 대가로 스스로 자유를 포기한 이들이었다.
9.타르테소스
타르테소스는 교역도시로 묘사되지만, 과디아나강과 과달키비르강의 하류를 따라 조성된 지역과 그곳에 정착해 터전을 개발한 정주민을 부르는 이름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타르테소스는 고대 무역의 중심지로 유명해지면서 결국 페니키아의 침입을 받게 되었고, 종국에는 그들에게 정복당했다.
10.페니키아
기원전 800년경, 페니키아인을 시작으로 지중해 상인들이 스페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페니키아인들, 그리고 이후의 그리스인과 카르타고인은 그리스어로 클레루키아clerukia라 불리던 교역소를 연이어 설립했다.
정착지당 1000명가량으로 인구가 비교적 많았던 이 상인들은 지역 공급자들과 교역한 상품을 자기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그들은 주로 은, 구리, 납 등 이베리아에 풍부한 귀금속, 그리고 해산물에 관심이 있었다.
10.1 카디스
통상적으로 페니키아인들은 기원전 1100년에 카디스를 건설해 그곳에서 3000년 넘게 역사를 일구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도시는 그보다 더 나중인 기원전 800년 이후에 건설된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그렇더라도 카디스는 서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도시의 건설자들은 그곳을 가디르Gadir라 불렀고, 로마인들은 이를 가데스Gades라고 바꿔 불렀다.
10.2 말라카와 오누바
페니키아인은 카디스 외에도 남부 해안의 말라카(말라가)와 오누바(우엘바)를 비롯해 이베리아반도 남쪽에 다른 무역 거점을 세우고 이비사섬에 거류지를 건설했다.
페니키아의 도시들(주로 티레와 비블로스)을 근거지로 둔 중개상들은 이런 거점들에 상주하면서 금과 보석, 그리스 도자기 같은 물건을 거래했다.
이베리아의 페니키아인 거주지는 기원전 6세기 고향 도시가 바빌로니아인에게 정복당하는 동안에도 살아남았다. 그들은 이베리아에서 활동을 이어갔으며 페니키아 출신 카르타고인이 조직한 새로운 무역체계에도 관여했다.
11.그리스인
그리스인은 본토로부터 아주 먼 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다(이 과정을 ‘싹틔우기’라 부르기도 했다). 인구 과잉인 그리스 도시국가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해 자녀 도시를 건설했고 그곳에서 본국의 풍습을 공유하고 유지했다.
11.1 그리스 식민지
이 풍습에 따라 아나톨리아의 해안선 전체와 흑해 주변 지역(특히 남부 해안),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남부, 프랑스 남부, 마지막으로 이베리아반도 동부에 걸쳐 그리스 식민지가 세워졌다. 이베리아반도 동부는 특히 주요 거주지에 해당했다. 지중해 서부의 그리스 식민지 대부분은 마살리아(지금의 마르세유)의 큰 정착지로부터 뻗어나왔다.
11.2 엠포리온(카타로니아)
기원전 6세기경 이베리아에 최초의 진정한 그리스 도시를 건설하고 이곳을 엠포리온Emporion이라 불렀다.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뜻의 영단어 엠포리엄emporium이 이 지명과 관련 있는데, 이는 엠포리온이 주로 교역지로서 기능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엠포리온은 이베리아 동부의 그리스 도시국가 중 가장 중요한 곳이 되었다. 로마인들은 이곳을 엠포리아이Emporiae라고 불렀다. 현대 스페인 사람들은 이 지역의 주요 도시를 암푸리아스Ampurias라고 부르며 카탈루냐인은 엠푸리에스Empuries라 부른다.
11.3 포도와 올리브 유입
그리스인과 페니키아인은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 등 수많은 주요 재배식물을 이베리아반도에 들여왔다. 그 이래로 지금까지 이 재배식물들이 이곳에 잘 적응한 덕분에 스페인은 포도주와 올리브유의 주요 산지가 되었다.
11.4 올리브의 나라
올리브나무는 비교적 고온건조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데, 스페인 국토의 3분의 2가 이런 지역에 해당한다. 올리브나무가 잘 자라려면 당연히 비도 약간 와야 하지만 무엇보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겨울에 온화해야 한다.
그래서 여름이 충분히 뜨겁지 않고 연 강우량도 너무 많은 북부와 서북부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 오늘날 스페인에서는 기후만 맞으면 거의 전역에서 올리브나무를 기르지만 주요 재배지는 반도의 남부 4분의 1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그곳에 가면 올리브나무만 사방 가득 광대하게 펼쳐진 광경을 볼 수 있다.
11.5 문자의 유입
그리스인과 페니키아인이 이베리아반도에 들여온 것이 또 있다. 바로 문자다. 아마 이베리아인은 페니키아인에게서 알파벳을 배워 자기들 말을 글로 썼을 것이다. 그리스인은 동전 주조법도 들여와(주로 은화를 주조했다) 이베리아인에게 전했다.
12.페키니아 계열 카르타고
카르타고인과 로마인은 갖은 이유로 경쟁했지만, 특히 고대에 크게 번영했던 풍요의 섬 시칠리아의 소유권을 두고 다투었다. 시칠리아는 각지에 밀을 수출하는 지중해 중앙부의 곡창지대였다.
12.1하밀카르 바르카
하밀카르 바르카는 스페인이 카르타고와 로마의 관계에 있어 훌륭한 균형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지배층을 설득했다.
그는 기원전 236년에 사실상 독립적인 군사 지휘권을 가지고 카르타고 군대를 꾸려 스페인에 입성했는데, 아마 스페인 전역을 정복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몇몇 지역의 수장과 일부 도시국가가 바르카의 군에 협력했다.
나머지 지역에서까지 협력을 이끌어내진 못했지만, 그는 군을 통솔하며 얼마간의 성공을 거두었고 주목할 만한 정복지를 연이어 획득했다.
12.2 카르타헤나 건설
하밀카르 바르카는 스페인에 수많은 요새를 세웠고 그중 몇 곳은 도시로 성장했다. 이베리아반도 동남부 끄트머리에 있는 한 소도시가 가장 성공적인 사례였다. 로마인들에게 누에바카르타고Nueva Cartago(새로운 카르타고)라 불렸던 이곳은 오늘날 스페인 사람들에게 카르타헤나라고 불린다.
12.3카르타고와 로마의 갈등
바르카가 스페인으로 들어갔을 당시 그곳에는 통합된 정치 세력이 없었다. 대신 지중해 연안의 여러 그리스 도시 및 교역소와 더불어 다양한 도시국가와 부족 집단이 사실상 서로 단절된 채 반도 전역에 퍼져 살고 있었다.
스페인에 있는 그리스인의 정주지는 고향 도시들뿐 아니라 로마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각각 독립체로 기능했다. 그리스인 정주지의 지도자들은 로마인들과 독자적인 조약을 체결했는데, 기본적으로 공격당할 시 로마군의 보호를 받기로 하고 대가를 지불한다는 내용이었다.
로마는 또 기원전 226년에 카르타고와 조약을 체결하고 에브로강을 경계로 설정하여 강 이북은 로마, 이남은 카르타고의 영향력 아래 두었다.
13.로마
카르타고인이 스페인에서 활동하면서 로마인도 점차 스페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기원전 209년에 하밀카르 바르카의 아들 한니발이 에브로강 이남의 도시 사군툼을 공격한 후 상황은 임계점에 이르렀다. 엄밀히 말해 사군툼은 카르타고의 관할이었음에도 도시 지도자들은 로마에 도움을 호소했다.
13.1 한니발의 공격
하지만 한니발이 도시를 포위해버리는 바람에 로마의 손길은 미치지 못했다. 사군툼 사람들은 마지막 한 명까지 자력으로 맞서 싸웠고, 그들의 분투는 역경을 견디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야기로 스페인 역사에 길이 남았다. 포위가 풀리자마자 로마는 카르타고를 상대로 전면전을 준비했다.
로마가 전쟁 준비를 마칠 무렵 한니발은 스페인에서 이탈리아로 침략을 개시했다. 군대와 코끼리를 이끌고 갈리아로 진입해 겨울의 알프스산맥을 넘은 그는 로마군과의 교전에서 몇 번의 승리를 거두었지만, 결국 승리한 것은 로마였다.
13.2 로마군의 최후 승리
기원전 206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의 지휘하에 로마군은 카르타고인을 스페인에서 몰아냈다. 그리고 4년 뒤 스키피오의 군대는 카르타고와 인접한 북아프리카 자마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제2차 포에니전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때 거둔 승리로 그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제 로마인들은 카르타고인에게서 빼앗은 스페인 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생성형 AI의 대중화는 직장인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AI를 잘 다루는 능력을 가진 직장인만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AI시대 일 잘하는 직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 스킬을 갖추고 지속적으로 연마해야 합니다.
첫째, 스스로 성장하고 또 성취하고자는 동기를 갖춰야 합니다.
둘째, 문서 작성 스킬이 좋아야 합니다.
또 조사 보고서, 기획서, 사업 제안서, 회의 자료 등 각종 회사의 서류를 목적에 맞게 잘 작성해야 합니다. 이른바 도큐멘테이션이라는 서류 작성 작업을 잘 해야 합니다.
도큐멘테이션은 글감 구상, 글재료 수집과 정리, 글 구조짜기, 다듬고 고치기 등 글쓰기 기본 요소로 구성됩니다.
셋째, 소통 스킬이 좋아야 합니다.
윗사람의 지시를 정확히 파악하고, 또 윗사람이 기분 나쁘지 않게 잘 설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소통비용을 유발해서는 안됩니다.
넷째, 팀원, 타부서, 타회사, 파트너와의 협업 스킬이 좋아야 합니다. 리더십도 광범위한 협업스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섯째,세상 변화 흐름을 잘 읽고 관찰해야 합니다. 즉, 트렌드 독해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입니다.
5가지 능력을 갖추는, 최고의 방안은 역시 독서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독서력이란 책을 꾸준히 읽고, 독서한 내용을 자신의 일에 활용하는 습관을 뜻합니다.
머리속에 자신만의 책장을 구축해야 합니다.
라틴어 수업 저자 한동일 신부는 머리속 책장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실 언어 공부를 비롯해서 대학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틀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학문을 하는 틀이자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세우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향후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고, 그것을 빼서 쓸 수 있도록 지식을 분류해 꽂을 책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학생들의 머릿속에 ‘책장’을 마련하는 작업은 이 책장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로 나아갑니다. 사실 그것이 수업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도 여기까지 설명을 하고 중간고사 과제부터 내줍니다. ‘데 메아 비타De mea vita’를 A4 한 장 분량으로 적어내는 것이 과제인데요, ‘데 메아 비타’는 ‘나의 인생에 대하여’라는 뜻입니다.”
1주일에 1권을 읽는 독서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만의 책장은 1~2년만에 구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도서관 서가처럼 책장 틀을 먼저 만들고 매일, 또는 매주 꾸준히 독서하면서 읽은 내용을 책장 분류에 맞게 지식을 보관해 나가야 합니다.
서점에서 독서가의 책을 읽고 부러운 마음에 따라하다가 중단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이름난 독서가를 부러워 하거나 따라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책장을 채워나가는 기분으로 거북이 마라톤을 하면 됩니다.
믿을만한 독서 가이드를 곁에 둬야 합니다.
어떤 책을 골라서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막할 것입니다. 가이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독서 멘토 또는 독서 가이드를 곁에 두면 좋습니다. 가장 좋은 독서 가이드는 책을 좋아하는 친한 친구, 선배, 후배, 동료입니다. 지인이 추천해주는 책이 자신에게 딱 맞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유행따라 인기따라 책을 고르는 것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그런 책을 쫒다 보면 책장의 균형이 생기지 않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그저 그런 책이 될 장서만으로 자신의 책장을 채우는 것입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강연가다. 무엇보다 철학적 여행가다. 저서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와 ’행복의 지도’등이 있다. 그는 NPR의 해외통신원으로 일했으며 워싱턴포스트와 여행잡지 ‘어파 등에 기고했다. 아내와 딸, 사납게 날뛰는 고양이, 강아지와 함께 워싱턴 D.C.에 살고 있다.
미루는 습관은 ‘내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나중에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고 합리화한다.
내일 하면 더 좋을 것이라는 기대는 잘못된 희망이다. 결국 마감 시간에 쫓기거나, 청구서를 제때 지불하지 않아 과태료를 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직장에서는 보고를 제때 하지 않아 질책을 받을 수도 있다.
미루는 습관은 최소한 2단계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미루고 싶은 충동이 드는 단계이다. 충동은 불안, 단조로움과 같이 부정적인 징후가 보이면 유발된다.
두 번째는 상황이 분명 나아질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암시를 거는 단계이다. 나중이 더 낫다는 생각은 곧바로 미루고 싶은 충동과 결합된다.
단계를 거치면서 미루는 습관은 능동적 측면과 수동적 측면으로 상반된 양상을 띤다. 능동적 측면은 회피하는 것을 말한다. 급한 보고서를 서둘러 작성하는 대신 낮잠을 잔다거나, 공상에 잠기는 식이다.
수동적 측면은 내일 시작하는 편이 더 좋겠다고 결정하거나, 왜 미룰 수밖에 없는지 변명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뭔가를 미루려는 사람들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식의 수동형의 표현을 많이 쓴다.
사람들은 갖은 이유를 대며 할 일을 미룬다. 그저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불편함에서 탈피하고 싶어 한다. 또 “일을 처리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등의 서투른 변명을 늘어놓으며 미루는 습관을 합리화한다.
미루는 습관을 버리기 위해서는 그런 습관을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너스의 책에서 <미루는 습관을 만드는 요소>편을 골라서 읽으면서 10줄로 요약하였다.
미루는 습관을 만드는 요소편_10줄 요약
1.미루는 습관은 복잡한 상황과 결합되어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할 일을 지속적으로 미루는 사람들은 우유부단함, 회피, 욕구 불만, 반항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무관심, 지루함, 충동 자제의 어려움과 같은 요소들에 의해 이끌려 다니며, 시기적절한 일을 나중으로 미룬다.
미루는 습관과 관련하여 발견한 네 가지의 공통적인 상황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상황들은 종종 중복되어 때로는 서로를 분리하는 일마저 힘이 든다. 그러나 핵심적인 문제 해결 방법은 상황들이 미루는 습관에 기여하지 못하도록 막아 준다.
2.욕구 불만, 불안,독백
우리들 중 아무도 욕구 불만의 감정을 완벽하게 피하지는 못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방해를 받거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장애물이 생긴 것을 발견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동료가 쉬지 않고 떠들어 댄다면? 상점에 전화를 할 때마다 분노를 느끼게 될 정도로 오랫동안 기다리게 된다면? 욕구를 해결하지 못해 불만만 한가득 쌓일 것이다.
3.당신은 욕구 불만을 간단하게 해결하지 못할 거라고 판단하고 “너무 어려워”,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은 못 하겠어”와 같은 변명거리를 이용해 자신에게 급격한 후퇴를 지시한다. 우선순위에 따라 처리하는 대신 미루기로 작정한 것이다. 자신이 느끼는 불안에 과도하게 집중할 때 미루고 싶은 경향은 더욱 커진다.
4.자기 자신 의심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행동을 망설이고 미루는 데 능숙하다. 그들은 성공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면 새로운 도전을 기피한다. 그저 생산적인 행동을 미루며, 보장이 확실하게 결정이 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기만 할 뿐이다.
자기 회의와 불안이 상호 작용하면 ‘의심-불안-회피’라는 불합리한 순환을 부추긴다. 확인되지 않은 ‘의심-불안-회피’의 순환은 자존심에도 영향을 미친다. 낮은 자존심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부정적인 기분에만 집중한 나머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일에는 소홀하다.
5.상황적 가치, 시간 낭비 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실적 지향 사회에서 사람들의 재정적 가치와 지위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는가와 결부된다. 불행하게도 시간과 생산의 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시간에 따른 성과로부터 총체적인 가치를 판단하는 우를 범한다.
‘시간을 현명하게 활용하면 가치 있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다면 가치 없는 사람이다’는 말은 상황적 가치의 공식적인 형태로, 역시 불합리한 면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6.시간을 현명하게 활용하면 이득을 얻고, 헛되이 낭비하면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시간을 잘 활용하여 훌륭한 성과를 올렸다면 가치의 지수는 상승한다. 문제는 요요yo-yo에 올라타고 있는 것과 같다는 점이다.
상승 시점을 느낌과 동시에 하락할 것을 걱정한다.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시간 활용의 효율성에 좌지우지된다는 생각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스트레스는 미루는 습관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7.완벽주의자
완벽주의자들은 미루는 습관을 공개적으로 초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 무엇이 잘못될지 생각하느라 행동을 미룬다. 실수와 실패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게 100퍼센트의 만족도를 요구하여 일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8.완벽주의자의 관점은 ‘자기 나름의 가치’로 해석되는데, 바로 그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에서 ‘요구적’ 사고가 나온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조금이라도 못 미치면 “멍청한 것 같으니, 더 잘했어야지” 혹은 “제대로 좀 못 해?” 등과 같은 고압적인 말들을 내뱉는다.
9.그 결과 멍청하다는 느낌을 피하기 위해 아픔을 느끼는 영역에서 미루는 습관을 형성한다. 대부분의 완벽주의자는 비교적 생산적으로 일을 완수하지만, 과도하게 요구적일 때가 있다. 엄중한 규칙과 기준을 준수하기를 원하며, 성과를 이루고자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스트레스를 준다. 강경한 방식으로 자신을 압박하고, 성과를 위해 흘린 땀의 대가에 대해 만족하는 일도 드물다.
10.성공에 대한 기대가 높은 사람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즉각적으로 미루는 길로 접어들고는 한다. 완벽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가치는 성공혹은 실대로 측정된다고 믿는 탓에 자신이 기준 이하로 떨어진다고 생각되면 곧바로 실패의 영역으로 들어갔다고 간주해버린다.
지식의 저주라는 개념을 익히고 지식의 저주가 어떻게 소통비용을 증가시키는가를 살핍니다. 나아가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칩히스의 여섯가지 메시지 작성 법칙을 익힙니다.
고착력을 떨어뜨리는 악당 ‘지식의 저주’편_10줄 요약
1. 어째서 우리는 탁월한 스티커 메시지들을 손쉽게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일까?
어째서 우리의 인생은 머리에 착착 달라붙는 속담이 아니라 길고 지루한 메모들로 채워져 있는 걸까? 그것은 불행히도 우리의 머릿속에 악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악당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자연스러운 심리적 경향으로, 6대 원칙(SUCCES)을 활용해 탁월한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 악당의 이름은 바로 ‘지식의 저주’다
2.뉴턴은 실험에 참가한 두 무리의 사람들에게 각각 ‘두드리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역할을 주었다. 두드리는 사람은 생일축하 노래나 미국국가 같은 누구나 알고 있는 25곡의 노래가 적힌 목록을 받았는데, 그들의 임무는 목록에 적힌 노래 가운데 하나를 골라 노래의 리듬에 맞춰 테이블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3.듣는 사람은 두드리는 사람이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노래의 제목을 맞혀야 했다. 듣는 사람들의 임무는 상당히 어려웠다. 뉴턴의 실험 과정에서 선택된 노래는 모두 120곡이었는데 듣는 사람들은 그중 겨우 2.5퍼센트, 즉 단 세 곡밖에 맞히지 못했다.
4.듣는 사람이 노래의 제목을 예측하기 전에 뉴턴은 두드리는 사람에게 상대방이 정답을 맞힐 확률을 짐작해보라고 했다. 두드리는 사람들의 대답은 50퍼센트였다.
실제로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할 확률은 마흔 번 가운데 한 번에 불과했음에도, 두드리는 사람들은 가능성을 반반으로 생각했다.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5.두드리는 사람들은 테이블을 두드릴 때 머릿속에서 노랫소리를 듣는다. 듣는 사람의 귀에 들리는 것은 조금 이상한 모스부호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는 ‘딱딱’ 소리뿐이다.
6.일단 정보(노래의 제목) 를 알게 되면 두드리는 사람은 더 이상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테이블을 두드릴 때, 그들은 맞은편에 앉은 듣는 사람이 음악이 아닌 단순하고 단절된 몇 개의 타격음밖에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지식의 저주’다.
7.두드리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이런 게임은 날마다 세계 곳곳에서 재연되고 있다. 그들은 회사의 CEO와 일선 직원들이고, 교사와 학생이며, 정치가와 유권자, 마케터와 고객, 작가와 독자다.
이들은 모두 의사소통에 깊이 기대고 있지만 두드리는 사람과 듣는 사람처럼 엄청난 정보의 불균형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의 CEO가 ‘주주가치의 극대화’라고 말할 때 그의 머릿속에는 부하 직원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멜로디가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8.‘지식의 저주’로부터 확실히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첫째는 아예 처음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메시지를 받아들여 변형하는 것이다.
CEO는 30년 동안 날마다 비즈니스 논리와 관습을 되새김질해왔을 테고, 그러한 과거를 거꾸로 돌리는 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을 되돌리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배우지 않은 상태로 되돌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9.자, 그렇다면 부하 직원들에게 ‘주주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CEO에게로 돌아가 보자. 그의 메시지는 단순한가? 그렇다. 동시에 짧고 간결하다.
하지만 속담과 같이 유용한 단순성이 부족하다. 의외성을 지니고 있는가? 천만의 말씀! 구체적인가? 전혀! 믿을 만한가? CEO의 입에서 직접 나왔다는 것 말고는 전혀! 감정을 유발하는가? 흐음, 아닌 것 같다. 스토리를 내포하고 있는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10.케네디의 달 착륙 사명은 ‘지식의 저주’를 뛰어넘은 모범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이후 10년 동안 수백만 명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진정 탁월하고 아름다운 메시지였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미국을 상징하는 인물이면서 많은 사람이 그의 삶에 대한 태도와 전략을 배우고 싶어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인쇄공으로 출발해 신문사를 경영하였고, 식민지 미국 사회 지도자로 성장하면서 마침내 미국 독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또 피뢰침을 발명하는 등 발명가로서 명성도 얻었습니다.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는 저널리스트 출신 저자(에릭 와이너)가 프랭클린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면서 그의 삶을 다시 그려낸 책입니다. 협업스킬이라는 관점에서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력은 이른바 ‘벤 프랭클린 효과(Ben Franklin Effect)’라고 불리는 협업스킬입니다.
프랭클린 효과란 ‘나를 도와준 사람은 내가 도와준 사람보다도 더 기꺼이 또 다른 도움을 베풀려 한다’는 심리를 뜻합니다. ‘도와줬다’는 우월감과 ‘투자했다’는 심리는 무의식적 호감과 믿음으로 이어져 동지를 만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현대 심리학에서 프랭클린 효과를 실험을 통해 증명하기도 하였습니다.
협업스킬의 핵심중 하나는 남의 시간을 기분좋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좀 과격하게 표현하면 기분좋게 남의 시간을 빼앗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줘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감정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잘해줬다고 해서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이 은혜를 갚을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내가 도움을 줬다는 우월감에 빠져 남 돕기만 하고 정작 본인은 도움을 받지 못하고 기분만 나빠질 확률이 높습니다.
‘프랭클린 익스프레스’중에서 <프랑프 프로젝트>편을 골라서 발췌독서하였습니다.
프랑스 프로젝트_10줄 요약
배경 요약
1.1776년 미국의 독립 전쟁당시 조지 워싱턴의 대륙군은 탄약과 보급품, 공병, 군함, 심지어 군복마저 궁한 상태였다. 이 모든 것을 마련하는 데는 돈이 필요했고 어린 미국에는 사실상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그렇다고 신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프랑스는 미국을 도울 수도, 돕지 않을 수도 있었다.
미국은 프랑스의 도움 없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미국의 대의에 동참해달라고 프랑스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프랑스는 지난 세기에 영국과 네 차례 식민지 전쟁을 치렀고 루이 16세는 다섯 번째 전쟁에 말려들기를 원치 않았다. 이 전쟁의 목표가 또 다른 군주를 몰아내는 것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미국은 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영국군은 조지 워싱턴의 오합지졸 군대를 롱아일랜드에서 뉴저지까지 완전히 밀어냈다. 전망이 좋지 않았다. 벤은 프랑스의 지원을 얻어내려면 전쟁 소식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2.벤자민 프랭클린은 1775년 영국에서 귀국하여 제2회 대륙회의의 펜실베이니아대표로 뽑혔고 76년 독립선언 기초위원에 임명되었다. 그해 프랑스로 건너가 아메리카-프랑스동맹을 성립시키고, 프랑스의 재정원조를 획득하는데 성공하였다. 1783년 파리조약에는 미국대표의 일원이 되었다.
3.프랭클린은 프랑스-아메리카 동맹을 1778년에 성사시켰고, 이어 1785년에 파리조약을 성사시킨뒤 1785년 미국으로 귀환하였다.
프랑스를 사로잡아 독립전쟁에서 승리할 결코 만만치 않은 일곱 단계
1. 가진 것을 활용하라.
벤은 직원이 없었으므로 윌리엄의 아들인 자신의 손자 템플을 개인 비서로 임명했다. 두 사람의 외모가 꼭 닮았고 둘이 늘 함께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템플을 “작은 프랭클린”이라고 불렀다. 벤은 템플이 “내 오른손”이라고 말했다. 벤은 다른 측면에서도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미국은 아직 국기가 없었기 때문에 벤과 다른 위원들은 프랭클린의 개인 인장과 그가 채택한 문장紋章을 사용해 공문을 보냈다. 미 대사관에 인쇄기가 없었기 때문에 벤이 직접 하나를 설치해 미국 여권과 법률문서, 대사관 연회 초대장을 찍어냈다.
직접 쓴 바가텔을 인쇄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벤은 프랑스 과학계와 비밀조직 프리메이슨Freemason 같은 사회집단에 참여해 자신의 부족한 사회적 입지를 보완했다. 벤에게는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수단이 있었다. 만질 수는 없지만 매우 강력한 그 수단은 바로 명성이었다.
프랑스인이 벤 프랭클린을 사랑했다는 말은 미국인이 푸짐한 양을 사랑한다는 말과 비슷하다. 즉 지나치게 절제된 표현이라는 뜻이다. 프랑스는 프랭클린을 열망하는 광팬들의 국가였다. 벤이 프랑스 의회에 참석하면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명성은 강력한 힘이다. 좋게도 나쁘게도 쓰일 수 있다. 프랭클린은 이 힘을 좋은 곳에 사용했다.
2. 공감하라.
아서 리를 비롯한 미국 위원들은 프랑스 정부를 거대한 현금 인출기로 여겼다. 프랭클린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고 그들의 욕망과 두려움을 이해했다. 그는 미국이 편리한 시기에 돈을 부탁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예산 집행에 맞춰 지원을 부탁했다.
한 역사가는 프랭클린에게 “프랑스를 성가시게 하면 안 된다는 상식적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벤의 공감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의 성장 환경이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다른 건국의 아버지들과 달리 벤은 특권층이 아니었다. 그는 숙련공이었고 가죽 앞치마였다.
인쇄공이라는 직업이 공감 능력을 키웠다. 인쇄공은 다양한 관점을 드러내는 글들을 다뤄야 했다. 게다가 활자는 위아래와 좌우가 뒤집어진 상태로 배열해야 한다. 벤 같은 인쇄공들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 익숙했다.
3. 적을 무시하라.
조롱하면 더욱더 좋고. 프랭클린은 적을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았지만 그들이 프랭클린을 찾아왔다. 조지 3세는 프랭클린을 “음흉한 인간”이라고 칭했다. 이런 날카로운 비난 앞에서 벤은 늘 무시하는 전략을 택했다. 증오에 증오로 맞서면서 원한의 불길을 부채질하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유머로 맞섰다. 주프랑스 영국 대사였던 스토몬트 경은 벤의 두툼한 엉덩이에 박힌 가시와도 같았다. 벤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절대 배척하지 않았다. 늘 문을 열어두었고 다리를 남겨두었다. 이런 태도가 큰 도움이 되었지만 때때로 벤은 사람을 너무 믿기도 했다.
에드워드 밴크로프트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벤의 다정한 친구이자 왕립학회의 동료 회원이었으며 비공식 미 대사관의 비공식 비서였다. 그리고 영국의 스파이기도 했다.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밴크로프트는 매주 화요일 오후 9시 30분에 파리 튀일리 정원에 남몰래 숨어들어 속이 빈 나무 안에 밀봉한 병을 집어넣었고 나중에 영국 첩자가 그 병을 회수해갔다.
4. 도량에 호소하라.
프랭클린은 다양한 방식으로 프랑스를 설득했는데, 그중 하나는 프랑스의 이익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그는 프랑스 관료들과 상인들에게 미국이 독립하면 거대한 시장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일러주었으며, 통상조약을 체결해 미국 항구를 프랑스 선박에 개방할 가능성을 내보였다(미 그 내용은 친구 새뮤얼 쿠퍼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우리의 대의가 곧 인류 전체의 대의이며, 우리가 자신의 자유를 옹호함으로써 인류 전체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이 이곳의 공통된 의견이라네.” 미국을 돕는 것은 돈만 밝히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건 숭고한 행위였다. 그건 “도덕적 아름다움”의 사례였고, 우리가 순수한 이타심을 목격할 때 경험하는 형언할 수 없는 고양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벤이 알았듯 그러한 느낌은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그건 오래전에 벤이 “미덕의 아름다움과 쓸모”를 극찬할 때 머릿속에 떠올린 것이기도 했다. 오늘날 아름다움과 쓸모는 드문 조합이지만 프랭클린의 철학과 삶을 정의한 것이 바로 이 둘의 조합이었다.
오늘날 벤 프랭클린 효과라고 불리는 인간 본성의 기이한 특성 역시 동력으로 작용했다. 벤은 펜실베이니아 의회에서 서기로 일하던 1736년에 이 효과를 우연히 발견했다. 당시 “재력과 학력을 겸비한 신사”였던 의회의 새 권력자가 프랭클린을 미워하며 계속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벤은 이 의원에게 굽실거리며 아첨으로 환심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길을 택했다. 벤은 이 의원이 희귀하고 귀한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의원에게 그 책을 며칠간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의원은 그러겠노라 했고 벤은 며칠 뒤 예의 바른 메모와 함께 책을 재깍 반납했다.
“다음에 의회에서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먼저 내게 말을 걸었고(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태도도 매우 정중했다.” 벤은 훗날 회상했다. 두 사람은 친한 친구가 되었다. 벤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었다. “내가 도운 사람보다는 내게 친절을 베푼 사람이 내게 또다시 친절을 베풀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 사람은 자신을 도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지 않나? 꼭 그런 건 아니다. 프랭클린이 발견하고 최근의 다른 연구들이 입증했듯이 오히려 그 반대다.16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이다. 왜일까? 인지부조화가 한 원인이다.
모순되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품기란 어렵다. 그러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우리는 마음을 바꿈으로써 이러한 긴장감을 가라앉힌다. 나는 조가 싫지만 지금 조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으니 결국에는 조를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 그러나 더 단순한 설명도 있다. 우리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그럴 기회를 주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5. 에너지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라.
벤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의 말과 달리 벤은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하루에 열두 시간씩 일했고 휴가도 거의 떠나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일했지만 영리하게 일하기도 했다. 70대였던 벤은 자신이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절대 추진력을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프랭클린은 언제 발차기를 하고 언제 미끄러지듯 나아가야 하는지, 언제 (미묘하게) 압력을 가하고 언제 힘을 풀어야 하는지를 감지했다.
벤은 영국과 프랑스를 서로 균형을 맞추는 두 개의 힘, 본인들이 알든 모르든 평형상태를 추구하는 양전하와 음전하로 보았다. 그리고 기꺼이 이 관계를 이용해 둘 사이에 긴장을 자아내려 했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 벤은 식민지 미국과 영국 사이의 가짜 평화안을 만들었다.
그는 프랑스 측에서 이 평화안을 보면 불안해할 것이며, 이 안을 이용해 미국을 지지하도록 프랑스를 압박할 수 있으리란 것을 알았다. 그는 만약을 대비해 이 문서를 주머니에 넣어두었지만 결국 사용하지는 않았다.
6. 감사하라.
프랭클린의 동료인 미국 위원들은 프랑스의 도움에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감사를 나약함의 증거로 이해했다. 미합중국이라는 전도유망한 신생 국가에 일찍 투자할 기회를 얻었으니 오히려 프랑스가 미국에 감사해야 했다. 프랭클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프랑스에 감사를 표했다. 프랭클린의 이런 감사 철학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 프랑스의 지원을 받았던 어린 미국뿐만 아니라 벤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프랭클린은 오늘날까지도 프랑스에서 크게 존경받는다. 다른 건국의 아버지들은, 글쎄, 애덤스 거리나 리 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만 해두자.
7. 넓은 시각을 유지하라.
벤은 프랑스에 머물던 시기에 “하루살이”라는 제목의 바가텔을 썼다. 수명이 겨우 하루뿐인 하루살이의 시각으로 쓴 글이다. 하루살이는 말한다. “나는 여러 세대가 태어나고 번성하다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네. 지금 나의 친구들은 젊은 시절 친구들의 자녀와 손주들이라네. 아아, 그 시절의 친구들은 이제 가고 없구나! 나도 곧 그들을 따라가야겠지.
지금 아무리 건강하다 한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내게 남은 시간은 7, 8분이 넘지 않을 테니.” 하루살이는 실의에 빠진다. 결실을 즐길 시간이 없다면 다른 하루살이들처럼 꿀을 모아봐야 무슨 소용인가? 친구들은 이 하루살이를 위로하며 후대에 이름이 남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하루살이에게 명성이 무슨 의미가 있지?” 하루살이는 이렇게 벤의 생각을 대신 전한다. 나는 프랭클린이 이처럼 인생의 무상함을 예리하게 자각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 견디지 못했을 폭풍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위험성이 극도로 큰 동시에 전혀 크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이 시기에 프랭클린의 나이가 무척 많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가 더 어렸더라면 프랑스에서 이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젊은 프랭클린은 너무 풋풋하고 오만했다.
1.인공지능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에서 사람들을 공격하는 악당 컴퓨터 할HAL의 음산한 목소리와 코타나, 시리Siri, 알렉사Alexa 같은 요즘 등장한 개인용 디지털 비서의 더욱 상냥한 목소리 사이 어디쯤에 갇혀 있을 것이다.
2.어떤 사람은 우리가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중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지적 한계가 없는 종이다. 어떤 예언가는 2100년이 되면 특이점singularity, 즉 컴퓨터의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고 예측한다(반면 어떤 사람들은 이런 특이점이 그저 공상과학소설에나 등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3.《축복의 기계Machines of Loving Grace》에서 존 마코프는 이렇게 주장했다.
“똑똑한 기계로 가득한 세상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이렇게 어려운 질문에 가장 정확한 대답을 찾으려면 실제로 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품고 있는지를 이해하면 된다.”
4.우리 업계가 고민해야 할 대단히 흥미로운 관찰 결과다. 대규모 개발자 회의에서 나는 인공지능에 대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접근법을 세 가지 핵심 원칙에 근거해 설명한다.
첫째, 우리는 인공지능으로 인간의 가능성과 경험을 확대할 것이다. 그러려면 인간 대 기계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재능(창의성, 공감 능력, 감정, 신체적 능력, 통찰 등)을 어떤 식으로 인공지능(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더욱 빠르게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을 갖추었다)과 결합시켜 사회를 발전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5.둘째, 우리는 인공지능 기술 자체에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러려면 기술에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투명성과 보안을 확보해줄 안전장치를 주입해야 한다.
6.셋째, 우리가 개발하는 모든 기술은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존중하면서 문화, 인종, 국적, 경제적 지위, 나이, 성별, 육체적・정신적 능력 등의 모든 장벽을 초월해 인간을 도와야 한다.
이런 원칙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더욱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7.2016년 첫 번째 보고서인 <2030년 인공지능과 인간의 삶Artificial Intelligence and Life in 2030>에서 연구팀은 “전 세계적으로 농업과 식품 가공업, 물류업과 제조업처럼 젊은 노동자가 부족한 업계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이 사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눈앞에 닥친 위협이라고 걱정할 만한 징후를 전혀 찾지 못했다. “장기적인 목표와 계획을 수립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가까운 미래에 개발될 가능성도 없다.”
8.컴퓨터 기술의 선구자인 앨런 케이Alan Kay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발명하는 것이다.”라는 재치 있는 말을 남겼다.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케이의 말은 기본적으로 이런 의미다.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예측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원칙에 입각해 미래를 창조하십시오. 나는 케이의 말에 동의한다.
9.“결국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은 의사소통과 협동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와 협력할 기계에 관심이 있다면 인도주의적 접근법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인공지능 설계에 필요한 윤리와 공감에 관한 틀에 합의하는 것이다
10.노스캐롤라이나 주 키티호크(라이트 형제가 세계 최초로 동력 비행을 성공시킨 장소-옮긴이)에서는 기계와 대립하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와 함께하는 인간의 역사가 기록되었다. 이제 우리는 비행을 ‘인공 비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히 비행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기술이 만든 지능을 인공적인 생산품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과 역량을 확대시켜줄 지능으로 생각해야 한다.
CEO는 늘 조직이 창의적이 되길 바란다. 특히 밑에서 자발적으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현실은 늘 반대다. 조직에서 가장 창의적인 사람은 항상 CEO다.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늘 고민하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면서 조직이 안은 과제를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저절로 가장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CEO의 창의성에 의존하는 기업의 미래는 밝지 않다. 따라서 조직 구성원들이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창의성을 발휘하는 기업을 추구해야 한다. 문제는 그런 창의성을 어떻게 구현하느냐다.
우선 창의성에 대한 정의부터 바꿔야 한다. 즉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천재적 발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차선책 찾기를 기업의 창의성이라고 정의해야 한다. 물론 현실적인 차선책이 결과적으로 천재적 발상으로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테아 싱어 스피처는 ‘협업의 시대’에서 현실적인 차선책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시간, 돈, 인력 같은 제약 요인이 존재할 경우 눈앞에 놓인 최고의 대안을 골라 실행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때가 있다. 이를 ‘만족화(satisficing)’라 부른다. 이것은 1940년대에 노벨상을 수상했으며 조직관리 분야의 유명한 전문가인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이 창안한 용어다.
만족하다(satisfy)와 충분하다(suffice)를 합친 이 용어는 최고의 해결책을 찾을 수 없어 현 상태에서에서 최고의 대안을 선택하는 상황을 말한다.”(협업의 시대중에서)
기업 활동에서 만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공통적으로 트레이드오프 속성을 지니고 있다. 성능을 중시하면 비용이 올라가고, 비용을 낮추면 성능이 떨어지는 식이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드물다. 그런 곳이 있으면 그 곳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창의적 문제해결은 트레이드오프 속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성능을 유지하면서 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현실적인 해법은 내부에 반드시 있다. 다만 해법 자체가 조각 형태로 여러 부서에 흩어져 있는 것이 문제다.
대부분 기업에서 문제가 터지거나 이슈가 발생하면 해당 부서만 낑낑거리면서 해법을 찾으려고 하고 나머지 부부는 팔장을 끼고 남의 일 보듯 한다. 내 책임 소관이 아니면 괜히 끼여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해법을 찾으려면 흩어져 있는 조각이 모이도록 해야 한다.
첫번째 방법은 연결 리더십이다. 주오라 창업 티엔 추오는 ‘구독과 좋아요의 경제학’ 에서 “개별 서브 시스템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 부서간 조정을 통해서라는 점이다.(중략)한 부서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결할 수 있는 답은 언제나 조직 전체에 흩어져 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두번째 방법은 내부 아카이빙 시스템이다. 아마존은 아마존 사내 위키를 운영한다.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사내 위키에서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모두 찾아서 스스로 습득한다. 프로젝트, 스크럼 등 회사의 각종 현황 정보를 비롯해 시애틀 맛집 정보까지 사내 위키에 담겨 있다. 아마존은 사내위키에 기여하는 것을 정식을 일하는 것으로 보고 정당한 보상을 해준다.
클라우드 문서 관리시스템을 활용해 정보 보고, 초안, 프로젝트 결과물, 기획서 등 모든 뇌 활동을 클라우드에 자동으로 아카이빙하면 해법을 내부에서 찾는데 결정적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