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in그야말로 역사

박현모.태종평전

2022년 5월 30일(음력 5월10일)은 태종 서거 600주년입니다. 박현모 교수는 논쟁적인 인물인 이방원을 ‘태종평전’으로기념합니다. 마침 KBS의 사극 ‘태종 이방원’이 인기를 끌면서, 정치의 계절에 태종도 급부상했습니다.

태종의 훌륭한 점은 위기 극복 능력이라고 합니다. 국가라는 배를 성공적으로 목적지에 도달시키려면 선장이 방향타를 제대로 잡아야 합니다. 정적들의 숱한 공격과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서 그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태종이 정치 세계에 뛰어든 1388년부터 왕위에 오르는 1400년까지, 12년 동안 수많은 진전과 반전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피말리는 12년을 한마디로 ‘선발제지(先發制之)’ 로 태종은 이겨냈습니다. 곧, 먼저 나서서 사태를 제압하여, 위험한 순간을 기회로 바꿔 나갔습니다. 정몽주를 척살할 때(1392년 4월), 그리고 두 차례 ‘왕자의 난(1398년 8월, 1400년 1월)’으로 정도전과 이방간을 제거할 때가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재위 말년에 전격적으로 세자교체를 단행하고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주었고, 세종의 정치 멘토로 노후를 보냈습니다. 이는 세종도 못한 일입니다. 세종이후 왕위 계승과정은 소란스러웠습니다.

박교수는 <태종평전>이 끝이 아니라, 이제 태종 공부를 쇠심줄처럼 끈질기게 해볼 작정이라고 합니다. 북토크를 끝내면서 마지막으로 박교수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을 태종이 다스린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Posted in강연후기

이충렬,아름다운사람권정생

저자 이충렬은 권정생이 생전에 남긴 원자료와 지인들의 기록과 증언을 샅샅이 그리고 충실히 모았다. 그렇게 정리한 그의 연표이다. 저자는 제대로 된 연표를 만드는 것이 전기를 만드는 첫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자료조사에 공을 많이 들인 덕에 권정생의 삶을 복원할 수 있었다.


이충렬선생에게 듣는 권정생의 삶은 그냥 슬프다. 평생을 가난과 병고 속에 교회 종지기로서 살았다. 고단한 한국 근현대의 역사가 그대로 권정생의 삶이고 글이었다. 권정생은 40여 년 동안 창작 활동을 하면서 100권이 넘는 동화집을 남겼다. 그의 작품 세계는 출발부터 독창적이었다.그는 동화 한 편을 쓸 때마다 온몸을 던졌다. 지독하게 가난했기에 원고지 살 돈도 없어 장마당에서 주워온 종이에 동화를 쓰기도 했다. 그는 오랜 습작 시절을 견디며 문학적 좌절과 도전을 오롯이 감당했다. 그의 동화는 가난과 불행, 시련과 고난을 그대로 묘사하고, 딛고 일어서는 삶의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삶을 듣고 그의 동화를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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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1책]팀 마샬의 ‘지리의 힘2’, 호주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왜 침공했고, 무엇을 얻으려고 하나? 이 질문에 역사 정치 경제적 관점에서 다양하게 답할 수 있다. ‘지리의 힘’저자 팀 마샬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지정학적 관점을 제시한다. 러시아 입장에서 ‘신이 우크라이나에 산맥을 펼쳤다면’ 프랑스와 독일의 러시아 침공이 억제됐을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고 나토의 일원이 되면 러시아의 앞마당을 적대 세력에 내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류역사에서 모든 전쟁은 구체적인 이익에 의해 촉발되었다. 구체적인 이익의 핵심에는 잠재적 위협 제거와 교역망의 확대가 자리잡고 있다. 즉, 기득권을 적극적으로 지키려고 하거나 더 많은 이익 창출을 위해 전쟁을 하는 것이다.팀 마샬은 ‘지리의 힘’을 통해 제국의 탄생과 지역 분쟁의 구조와 작동 메카니즘을 지리적 특성을 통해 명쾌하게 설파하였다. ‘지리의 힘2’는 오스트레일리아, 이란, 사우디 아라비아 그리스, 터키, 사헬 등 새로운 지역을 다뤘다. 특히 저궤도, 달 등 우주 공간까지 포함해 지정학적 연구 대상을 확장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지리적 위치와 면적이 강점이자 약점이 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아무데도 아닌 곳의 한복판에 있다가, 매우 중요한 어딘가가 되더니, 이제는 중심 무대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오스트레일리아의 지정학적 조건

세계에서 6번째로 국토가 넓은 나라다. 사막부터 열대우림 눈덮힌 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후와 지형을 보여준다. 국토 70%는 아웃백(outback)이라고 알려진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다.

처음에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주한 유럽인들은 해안쪽에 모였는데 동부해안의 중간 지점인 브리즈먼에서 시작해 초승달 형태를 띠고 있다. 시드니, 캔버라, 멜버른을 거쳐 애들레이드로 내려가면서 해안을 빙 두르고 있는 모습이다.

2.해상 방위의 중요성

나라의 면적과 위치는 강점이자 약점이 된다. 외부의 침략에는 안전했지만 정치적 발전은 더딜 수 밖에 없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장거리 교역망이 필요하고 해상항로 지킬 수 있는 강력한 해군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방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외교 정책 국방 문제에 이르렀을 때 이 나라의 출발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된다. 지리적 조건의 제약을 받는 것이다.

3.봉쇄와 차단의 위험에 노출된 지정학적 조건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리적 조건은 침공하기 어렵게 만든다. 적이 북쪽에서 상륙해도 전체를 장악하기 어렵고, 3천2백킬로미터 떨어진 시드니까지 쳐들어가기도 어렵다.

그런데 봉쇄와 차단에 속수무책이 될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수출입 상품들이 북쪽의 해협을 드나들고 있어 말라카, 순다, 롬복해협을 봉쇄해 버릴 수 있다. 말라카 해협은 인도양에서 태평양으로 가는 최단거리 노선이다. 이 해협이 봉쇄된다면 오스트레일리아는 순식간에 에너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방위전략은 북쪽 해협 봉쇄에 대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원유수송선을 호위할 용도로 전함 잠수함 원거리 해상 초계기를 확보해두고 있다.

4.미국 중심의 우방 전략

오스트레일리아는 해군력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는 것 못지 않게 동맹을 신중하게 고르는 등 외교력에도 힘을 모으고 있다. 이 나라 정부는 누가 해상 주도권을 쥐고 있는가에 늘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2차 대전은 영국간 군사 관계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발발한 것을 기점으로 미국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1943년 15만명의 미국이 오스트레일리아에 배치되었고, 시드니와 퍼스에 미군함이 정박하기 시작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군사력 일부는 제공하고 미 해군은 국제 해상 항로를 열어두게 하면서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다. 그 대가로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전 이라크 전쟁에 자국의 부대를 파견하였다.

미국은 다윈항에 기지를 설치하고 2천5백명의 해병대를 주둔시켜 오스트레일리아를 수호할 의지가 충분하다는 신호를 주고 있다.

5.중국의 부상

오스트레일리아에게 딜레마다 생겼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북쪽에 위치한 중국이 부상한 것이다. 중국 관광객 140만명이 방문하고 해외 유학생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수출 농산품의 3분1을 사들이고 있다. 철광석, 천연가스, 석탄, 금 등 천영자원의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의 큰 관심사는 영유권주장과 영향력 확장이어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이해와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6.중국의 남진 전략

중국은 남중국해의 80%가 지리적 역사적으로 자국에 속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 1천6백여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바위들에게 시멘트를 쏟아붓고 섬(인공섬)이라 부르며 그 위에 활주로를 건설하고 레이더와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다.

중국은 파푸아뉴기니의 다루섬에 대규모 어업단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향후 중군 군함용 항만이 건설될 수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입장에서 언제가 중국의 GDP와 군사비가 미국을 넘어서게 될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중국의 이런 남중국해 군사행보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중국이 일본부터 필리핀까지 내려가는 제1열도선 밖을 타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중국의 전략적 목표가)인도네시아 남부와 필리핀까지 포함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이 범위안에 반다해와 파푸아 뉴기니 해안까지 포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7.중국의 남태평양 전략

남태평양을 둘러싼 싸움도 시작되었다. 바누아투, 피지 등 태평양에 있는 여러 섬을 대상으로 중국과 원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 코로나19사태가 터지자 지원물자를 실은 항공기를 바누아투에 재빨리 보냈다.

중국의 기술력과 힘은 오스트레일리아를 넘어서고 있다. 중국 탄도 미사일의 사정거리 또한 오스트레일리아를 에워싼 바다조차 소용없게 만들어버렸다. 사이버 무기를 갖고 있다면 주요 기반 시설이 사이버 공격을 받으면 전 세계 어느 나라치고 심각한 피해를 입지 않을 나라가 없을 것이다.

8.중국 견제

오스트레일리아는 화웨이를 퇴출시키는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모리슨 총리는 코로나 19 발원지 조사에 전 세계가 참여해주기를 요청했는데 중국은 이를 중국에 대한 공격으로 보았다.이에 중국은 오스트레일리아산 소고기 라벨을 문제삼으며 유통과 수입을 금지했다. 보리와 철광석을 걸고 넘어졌고, 오스트레일리아는 사이버 공격을 받고 배후로 중국을 의심하고 있다.

9.미일 동맹 강화 전략

오스트레일리아는 일본과 합동훈련 상호군사 방문 등 군사협력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쿼드는 동맹국 체제라기 보다 미국 인도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 4개 나라 해군이 태평양에서 협력하는 전략적 협의체라는 측면이 강하다. 늘 해상항로를 열어두고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데 힘을 합치는 것을 지향한다.

뉴질랜드, 한국 베트남가지 포괄해서 쿼드 플러스라는 구상까지 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은 중국의 지리적 인접성때문에 조심스럽게 두드려 보고 있는 입장이다.

10.인도-태평양을 하나로 보는 새로운 시각

인도-태평양을 아프리카 동부해안부터 미국 서부해안까지 뻗어 있는 것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구식으로 여겨졌던 이 관점이 세상이 변하면서 다시 뜨고 있다.

서쪽으로 인도양을, 동쪽으로 태평양을 두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는 북쪽으로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두고 있다. 베이징과 건설적인 대화를 이끌어가고, 미국과는 방위를 비롯한 여러 고리를 유지하는데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지만 어쨌거나 힘든 경기를 치러야 할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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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여인 , 마가렛 대처 등장하다

영국 총리 중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 마가렛 대처(1979~1990)입니다. 그녀는 이른바 영국병을 치유한 혁명가이자,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보듯 수많은 가족을 망가뜨린 ‘마녀’입니다.

마가렛 대처는 소도시 그랜섬에서 식료품 집 딸로 태어났습니다. 대처가 자란 아버지의 모퉁이 가게 위 좁은 아파트에는 수도, 중앙 난방, 실내 화장실조차 없었습니다. 자수성가해 시장이 된 아버지의 연설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심장이 쿵쾅거렸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교훈인 ‘근면한 삶에 보상이 따른다’는 종교적 신념도 함께 믿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승부욕이 강했고, 마침내 소원대로 옥스퍼드대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녀는 하루빨리 직업 정치인이 되고 싶었고, 엘리트 남성들의 전유물인 의회에서지도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1975년 드디어 보수당 대표가 됩니다.

1926년이래 최대의 총파업인 1978~79년 ‘불만의 겨울(The Winter of Discontent)’이 왔습니다. 당시 집권당인 노동당의 소득정책(임금인상률 5% 제한)에 항의하여 공공 부문 노조가 광범위한 파업을 벌입니다. 거리에 쓰레기가 거리에 쌓이는 등 도시 기능이 마비되면서, 여론은 노조에게 등을 돌리게 됩니다. 1979년 5월, 보수당은 압승했고, 마침내 대처가 집권합니다. 1979년 5월 4일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4 May 1979: Britain’s first woman Prime Minister arrives at Downing Street to take up office

총리 대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을 주장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기업 경영이 보장되어야 하고, 복지는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당과 차별점이 분명한 진정한 보수당을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총리 대처가 약속한 것은 재정적자 해소, 공기업 민영화, 공공임대 주택  불하, 세금인하 등이 었습니다. 대처는 당장 약속을 지킬 수는 없었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포클랜드 전쟁

1982년 4월 아르헨티나는 영국령 포클랜드를 점령합니다.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수천㎞ 떨어진 인구 1800명의 조그마한 섬때문에, 영국이 군사작전을 감행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대처는 강력하게 대응했고, 포틀랜드를 되찾았습니다. 이 전투로 영국 구축함이 침몰 당하고 병력 250명이 전사했습니다. 대처는 포틀랜드 전투를 작은 영토 분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대처는 이 전투에서의 승리가 필요했고, 필요하다면 전쟁이라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포크랜드 전쟁의 승리는 경제의 어려움을 잊어버리게 했습니다. 보수당은 1983년 영국 총선 전후최대 승리를 했습니다.

공공임대 주택 매각

전후 영국정부는 막대한 양의 임대주택을 짓고 운영해 왔습니다. 대처는 1980년부터 공영 임대주택을 거주자에게 매각하기 시작합니다. 대처는 원래 임대주택 판매에 반대했지만, 그 효과를 깨닫자 자신의 정치적 신념으로 삼아 주택소유 붐을 일으켰습니다. 임대주택을 거주자에게 시가의 반값 혹은 3분의 1까지 할인하여 불하합니다. 1990년 대처가 물러날 때까지 총 150만 호를 매각합니다. 임대주택을 판매하여 추가적인 재정을 확보했을 뿐만아니라, 임대주택 관리비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과정에서 시장의 주택가격이 상승하면서 금전적 혜택이 중산층에게 돌아갔고, 두터운 보수당 지지자를 만들었습니다.일석 삼조의 정책이었습니다.

공기업 민영화

대처 정부가 들어선 1979년부터 1992년까지 총 415억 파운드어치의 국가소유 주식들이 민간으로 넘어갑니다. 1992년이 되면 이제 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공기업이 해체됩니다. 1989년 10월에 있은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대처는 “일주일에 200만 파운드씩 손해를 입히던 공기업들이 이제 민간부문에서 일주일에 1억 파운드씩 이익을 내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무엇보다 민영화의 마력은 ‘파산할 수 없던 것을 파산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민영화로 부실기업의 적자를 메워주는 재정부담에서 해방되고, 상당한 재정을 확보했습니다. 민영화 덕분에 평범한 사람들이 주식에 직접 투자할 수 있게 됩니다. 대처는 자신이 추진한 이 변화를 ‘대중 자본주의(popular capitalism)’라고 불렀습니다. 대중 자본주의 덕분에 영국은 광범위하게 주식 소유자가 분포된 나라가 되었습니다.

구조조정

반면에 구조조정은 정치적으로 힘든 상황을 만듭니다. 노조면책특권 축소, 노동자 해고가능 등 15개의 노동법 통과됩니다. 1979년 공무원 1/3가량을 감원(73.5만명에서 49.5만명)합니다. 대처는 1984년 전국 20여 개의 국영 탄광을 폐쇄하고, 약 2만 명의 노동자를 해고합니다. 광부들은 장기파업하고 격렬히 저항했지만, 사전 준비된 계획하에 무력화됩니다. 대처는 에너지원을 석유와 가스로 바꾸어 갔고, 국산보다 25%나 싼 석탄 2년치를 수입해서 비축해두었습니다. 대처는 “협상은 없다. 법이 노조의 주장에 굴복할 수는 없다”라고 선언하고 탄광 지역에 경찰병력을 집중 배치했습니다. 이 벼랑 끝 대치는 무려 1년여 동안 지속됐습니다. 마침내 1985년 3월 탄광노조는 대처에게 백기를 들고, 조건 없는 직장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대처는 1987년 6월 선거도 승리 합니다.

성인세(인두세 ) 도입

대처는 1990년 성인세(인두세 혹은 지방세) 도입합니다. 소득세 대신 모든 주민에게 똑같이 부과 (1인당 평균 363파운드부과, 현재 기준 59만원 상당)합니다. 이득 본 사람은 800만명, 손해 본 사람은 2,700만명이 됩니다. 손해 본 사람이 세배 더 많은 정치적 오판입니다. 이에 반발하여 영국 각지의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폭동 사태까지 일어납니다. 가장 큰 규모의 시위는1990년 3월 31일 토요일에 트라팔가 광장 반인두세 시위가 일어납니다. 결국 대처는 같은 해 11월에 총리직을 사임합니다.

공식적으로 ‘주의(主義) ism’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마가렛 대처 총리가 유일합니다. 대처리즘은 영국인들의 삶을 뿌리 채 흔들었습니다.‘대처 세대’ 혹은 ‘대처의 아이들’은 대처의 집권기에 10대를 보낸 영국인들입니다. 그들은 높은 실업과 낮은 임금에 따른 미래에 대한 불안감, 복지정책 축소로 인한 가정파괴를 겪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흡연과 알코올에 의존하며 개인주의적이며 퇴폐적인 특성을 보입니다. 바로 그들이 대처의 죽음에 환호했던 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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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5월 15일,올브라이트 태어나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인 마들렌 올브라이트 (Madeleine Albright )는 1937년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1세였던 1948년, 공산 정권을 피해 외교관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다. 1959년 웰슬리 대학졸업 후, 저명한 신문/출판가문의 올브라이트와 결혼했으나, 23년만인 1982년 “더 젊고 예쁜 여자와 사랑하고 있다” 남편으로부터 이혼통보를 받기도 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이혼 후 커리어의 꽃을 피웠다. 이혼 이듬해인 1983년 부통령 후보였던 제럴딘 페라로 하원의원의 과외 선생으로 성공적으로 데뷰했다.이후 1992년 빌 클린턴이 백악관 에 입성하면서 그는 워싱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클린턴 행정부 1기(1993~1997) 때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2기(1997~2001년) 때는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미국 첫 여성 국무장관 자리에 올랐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이라크 등 분쟁지역에서 독재 정권을 상대로 군사력을 사용까지 허용했다. 그는 재임 중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을 또한 적극 추진했다. 냉전시대 소련 바르샤바조약기구 가맹국이었던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1999년 나토에 신규 가입했다. 2000년 러시아 대통령으로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을 처음 만난 이도 올브라이트였다. 2000년 10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양 땅을 밟은 첫 미국 각료도 올브라이트였다. 20202년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지병인 암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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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작가에서 농군으로, 김탁환

저자 김탁환은 군항 진해에서 태어났다. 마산과 창원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시를 습작하다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박사과정을 수료할 때까지 신화와 전설과 민담 그리고 고전소설의 세계에 푹 빠져 지냈다.

진해로 돌아와 해군사관학교에서 해양문학을 가르치며, 첫 장편『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 이야기』와 첫 역사소설『불멸의 이순신』을 썼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역사추리소설 ‘백탑파 시리즈’를 시작했고,『나, 황진이』『리심』등을 완성했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를 끝으로, 2009년 여름 대학을 떠났다. 이후 역사소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소설과 글을 출간했다.

저서소개_섬진강 일기

오전에는 글밭, 오후에는 텃밭

초록빛 문장을 심다

초보 농부이자 초보 마을소설가 김탁환이

글과 생명이 태어나는 곳, 섬진강 옆 집필실에서

느리지만 성실하게 관찰하고 기록한 하루하루

“때에 맞춰 심고 또 심을 뿐. 우리의 일은 결국 다 심는 일.”

섬진강 들녘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을 보내며

생생히 기록한 김탁환의 제철 마음

책상 앞에서만 글을 쓰던 그의 어깨는 어느덧 단단히 굳었다. 그는 서울에서 곡성으로 집필실을 옮겨, 초보 농사꾼이자 초보 마을소설가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섬진강 들녘에서 글농사와 함께 논농사를 짓고 텃밭도 가꾸고 있다. 익숙한 글감에 젖어 늙어가지 않으려했다. 섬신강 들녁을 살피고 사귀다 보니 글을 날이 서지 않은 다정한 글이 되었다. 섬진강 일기는 그 첫해의 봄여름가을겨울을 겪으며 서툴지만 한 걸음씩 디딘 마음들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곡성에서 그는 몸도 마음도 풀려가고 있다. 그리고 글도….

일주일에 사나흘씩 강과 들녘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생각하며 기록한 일상들과《농민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엮었다. 이 책은 1월부터 12월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가가 마주한 자연의 풍경과 그때 먹은 마음과 해야 할 일을 ‘인디언 달력’처럼 만들었다. 그는 천상 작가다. 시금치를 솎으며 단어와 단어 사이의 적정한 거리를 생각하고, 못줄에 맞춰 모내기를 하며 논바닥에 글을 써보았다.

그 자연에서 태어난 글들은 시, 수필, 판소리 등 다양하고, 그의 문장은 흙내를 머금었다. 자연의 여유와 사람들의 따뜻함이 스며든 작가의 하루하루를 따라가다 보면, 도시의 삶을 사느라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어느덧 풀릴 것이다.

역사책방_관련 글_김탁환 북토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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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호주 전략 분석, 클라이브 해밀턴

호주 찰스스터트대학교 공공윤리 담당 교수로 싱크탱크 오스트레일리아 인스티튜트The Australia Institute의 소장이다.

경제 발전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주제로 오랜 기간 연구했으며, 2016년 호주 정치인의 중국 스캔들이 터진 것을 계기로 중국의 영향력 이슈에 집중해왔다.

현재 중국 관련 문제에서 세계 주요 언론과 싱크탱크가 가장 먼저 의견을 청취하는 학자 중 한 명이다. 호주국립대학교에서 역사학 심리학 순수수학 학위를 받았으며 시드니대학교에서는 경제학 학위를 받았다. 1986년에는 영국의 서섹스대학교 경제학발전연구소에서‘ 한국의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의 대표작인 《중국의 조용한 침공》은 중국 공산당이 다른 나라의 학교, 정치, 기업, 언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어떻게 여론을 선동하고 정책을 바꾸는지 그 영향력을 낱낱이 밝힌 책이다.

책을 출간하기 위해 출판 계약을 맺은 당시, 중국 공산당과 관계자의 압박을 두려워한 출판사들이 연이어 계약을 철회했다.

겨우 세상에 나온 이 책은 호주의 대중국 정책에 영향을 주었으며 미국 정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더 타임스The Times>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등 세계적인 언론에서 추천한 바 있다.

또한 일본에서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아시아 여러 나라에도 큰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저서소개_보이지 않는 붉은 손

때론 은밀하게, 때론 과감하게

자본주의 세계를 물들이는 중국 공산당의 전략과 전술

보이지 않는 붉은 손으로부터 과연 한국은 안전한가?

중국 공산당은 결코 냉전을 끝낸 적이 없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물론 정계ㆍ재계ㆍ문화계ㆍ학계 등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중국의 숨겨진 야욕을 폭로한다!

중국 공산당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

당연한 말이지만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다.

하지만 중국과의 경제적, 사회적 교류가 급증하면서 사람들은 중국을 그저 이름뿐인 사회주의 국가이며 오히려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다운 나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이 책은 타성과 무지에 갇혀 있던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준다. 중국 공산당은 냉전을 끝낸 적이 없으며, 전 세계를 대상으로 여전히 통일 전선 공작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매우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공작을 진행하면서도 겉으로는 평화, 우호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나 국민들이 그 정체를 알아 챌 수 없다는 데 그 심각성이 크다.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에 상대 국가나 국민이 반발하면 경제적 원조나 사회적 관계를 하루아침에 끊어 버린다든지, UN이나 국제기구, 여타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를 등에 업고 결국에는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해 버린다.

사드 사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며 여차 하면 희토류와 같은 자원으로도 협박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그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에 의하면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트럼프, 조 바이든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현직 및 역대 총리들도 모두 직간접적으로 중국 공산당과 연결되어 있거나 작업 대상이었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중공(중국 공산당)은 전 세계를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매일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임을 보여준다.

중공은 미국을 대체할 세계 유일의 패권 국가가 되고 싶어 하며, 현재 전세계가 당면한 문제 해결에 있어서 민주주의보다 중국식 공산주의가 우월함을 세계 각국에 설득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중이다.

그들은 이른바 일대일로 사업을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시키면서 가난한 나라든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 국가든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막대한 자본으로 유혹하거나 협박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혀나가고 있다.

적색 구역, 회색 구역, 흑색 구역

중국 공산당은 세계를 상대로 공작을 할 때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진행한다.

마오쩌둥과 마찬가지로 시진핑도 인류를 세 부류로 나눈다. 적색 구역(중국 공산당이 장악한 구역), 회색 구역(중간지대), 흑색 구역(부정적 여론, ‘적’의 구역)이 그것이다.

시진핑은 적색 구역을 수호하고 회색 구역에 손을 내밀어 이를 적색 구역에 통합시키고 흑색 구역을 상대로 투쟁하라고 당에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국제 관계 또한 중국 공산당은 이미 당에 동조하는 세력, 영향 공작의 주요 표적인 ‘정치적 중립’세력, 그리고 설득이 불가능한 강경 노선 세력으로 구분한다.

이 책은 이런 구분에 따라 이미 매수했거나 협박 또는 설득된 세력들이 서구 사회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미국 유럽 호주 유력 인사들의 사례

이 책에 따르면 현재의 미국 대통령인 조 바이든 일가에도 중공 소유의 기업이 있으며, 이들은 중국과 중요한 경제적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인 닐 부시는 통일전선부와 연계된 기관들이 주최한 친중국 성향의 컨퍼런스 여러 곳에서 연설했고, 2015년부터 상원 다수당 지도자를 맡고 있는 켄터키 주 상원 의원 미치 매코널은 중국 제재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매코널의 아내 일레인 차오는 중국계 미국인이자 현 미국 교통부 장관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중공 고위직들과 십여 년에 걸쳐 관계를 맺고 있다.

호주도 예외가 아니다.

툭하면 불거지던 중국의 인문권제에 대해 전임 호주 총리인 폴 키팅은 인권은 단지 ‘서구적 가치’의 일부일 뿐 중국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중국 정부야말로 “지난 30년 동안 세계에 등장한 정부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정부라는 데 토를 달 수 없다”고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프랑스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전 총리이자 프랑스 부통령을 지냈으며, 국방 외교 위원회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장 피에르 라파렝은 2005년 중국 국빈 방문 당시 중국의 대만 침략을 승인하는 법에 동의했다.

2010년 중국이 이룬 성과를 찬양하는 그의 저서는 중국 공산당의 출판 기관이 중국어로만 발간했다. 실크로드를 열렬히 찬양하는 그는 여러 중국 기업들 임원을 맡고 있고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 포럼을 본떠 중국 공산당이 개최하는 박오(boao, 博鰲) 포럼 이사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은 친중공적 이력이 서구 국가 중 가장 길다. 이미 195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48 그룹 클럽’에는 영향력 있는 사업가와 정치가들이 포진해 있다.

예를 들면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마이클 해즐틴Michael Heseltine 전 부총리, 존 프레스콧John Prescott 전 부총리, 억만장자인 웨스트민스터 공작,

블레어 정부에서 외무장관을 지낸 잭 스트로Jack Straw, 알렉스 새먼드Alex Salmond 스코틀랜드 전 초대 장관,

노동당 막후 실력자이자 유럽 무역 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피터 맨델슨Peter Mandelson을 비롯해 영국은행, 골드만 삭스, JP모건과 밀접하게 연관된 인사들도 있다.

그들은 치졸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작은 일에도 관여한다. 2019년 10월 사드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중국은 뉴욕주에 있는 로체스터 대학교의 이스트먼음악 학교 측에 중국 순회공연이 예정대로 진행되기를 원한다면 학교 교향악단에서 세 명의 한국인 학생들을 배제하라고 요구했다.

공연이 취소되면 학교의 명성에 흠집이 난다는 이유를 들어 이스트먼 학장은 한국인 학생들이 공연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밝혔다가 학생들과 동문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공연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대한민국과 중국의 미래

이쯤되면 ‘과연 대한민국은 안전한가?’ 라는 물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만 검색해 봐도 이미 널리 이슈가 된 ‘조선구마사’, ‘차이나게이트’, ‘나는 개인이오’, ‘춘천차이나타운’ 등의 키워드 외에도 크고 작은 많은 이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러한 문제들이 단순한 선택의 문제라기 보다 한국과 한국인의 자유, 독립, 번영의 유지라는 실존적 문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보이지 않는 붉은 손’ 중국 공산당은 세계 각계각층에 침투해서 그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는 것일까? 저자는 이에 대해 결국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려는 의지가 승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홍콩이나 대만처럼 중국 공산당의 직접적인 폭력에 맞서고 있는 국가부터 서서히 그들의 위험성을 깨닫기 시작한 국가, 단체 등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중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 중 하나이다. 중국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그에 대한 정확한 대비책이 나올 수 있다. 이 책은 중국 공산당의 실체와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 있어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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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5월 19일, 아라비아의 로렌스 사망하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세상에 알려진 TE 로렌스는 가명으로 살다가 퇴역 공군 정비공으로 사망합니다. 로렌스는 1888년 웨일스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했습니다. 고대 히타이트 유적 발굴에 참여하여 아랍어를 배웠습니다. 1916년, 수에즈 운하를 둘러싸고 영국과 오스만제국은 대치하게 되자, 로렌스 중위를 아랍 지역에 파견됩니다. 이후 로렌스는 아랍 해방을 약속하며 오스만제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영웅적 존재로 부각됩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가 당초 약속과는 달리 아랍 지역을 독립시키지 않고 분할 점령합니다. 또한 분파주의가 등장하면서 아라비아 반도의 통일도 물건너가게 됩니다. 지치고 환멸을 느낀 로렌스는 영국으로 돌아가 이름을 숨기고 여생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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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을 부른 유전병

제정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를 패망으로 이끈 주역은 라스푸틴이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가 그를 등용한 계기는 혈우병을 앓던 황태자때문이었다. 황태자는 몇 차례 죽음의 위기까지 맡게 되지만, 당시 최고의 유럽 의사들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오직 라스푸틴만이 병세를 완화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정확히 어떤 방법을 통해 황태자를 치료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심리적 조정을 통해 증상을 완화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형벌같은 혈우병 덕분에 거구의 기인 라스푸틴은 권력까지 잡았다. 시베리아 출신의 자칭 수도승 라스푸틴은 젊은 시절 중동과 지중해 지역 순례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신경쇠약증 환자였던 황후의 총애로 라스푸틴은 각료 인사를 비롯한 권력의 전반을 좌지우지했다.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된 1905년 노동자의 봉기를 총칼과 대포로 짓밟은 배후가 그였다고도 한다. 라스푸틴은 권력에서 소외된 귀족들에 의해 살해됐다. 그 이후 1917년 10월 혁명으로 볼셰비키는 사회주의공화국을 건설했다. 18년 7월에 황제와 황후, 아나스타샤를 비롯한 그들의 4녀 1남은 총살당했다.

결국 러시아 황태자의 혈우병이 왕조의 몰락을 이끌었다고도 볼 수 있다. 유럽 왕족의 병으로도 불리는 혈우병은 19세기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에서 비롯되었다. 유전병인 혈우병을 이해하기 위해 유전자 변이의 메카니즘을 알아보도록 하자.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의 성별은 X와 Y 염색체에 의해 결정된다. 정상적인 여성은 X 염색체 2개를, 남성은 X 염색체 1개와 Y 염색체 1개를 가지고 있다. X 염색체는 다양한 유전자정보를 가지고 있는 반면, Y염색체는 남성의 성별을 결정하는 기능이 거의 유일하다. 따라서 유전병 인자가 있을 경우, 남성과 여성이 다르게 반응하게 된다.

여자는 또 다른 X 염색체에 있는 정상 유전자가 보완해 주기 때문에, 유전병 인자을 보유해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X 염색체만 가진 남성은 유전병인자가 있을 경우, 그 특성이 전면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 X 염색체에 생기는 변이로 인한 유전병은 보인자인 어머니의 아들에게서, 또는 딸을 통해 손자에게서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X 염색체와 연관된 질병이 바로 혈우병(haemophilia)이다. 19세가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은 혈우병 보인자로 유명하다. 남편 알버트 공과 사이가 각별했던 빅토리아 여왕이 둘 사이에 나은 자식이 9명이나 되었다. 아들 넷 중 하나인 레오폴드가 환자였고, 딸 다섯 중 최소한 두 명이 보인자로 판명되었다. 현재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셋째 아들 에드워드 7세의 후손이다. 그는 건강했으므로, 영국 왕실에는 혈우병 변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빅토리아 여왕은 유럽의 여러 왕실과 사돈 관계를 맺었고 혈우병 유전자는 유럽 왕가로 퍼져나갔다. 혈우병은 이러한 이유로 왕족의 병으로 불리게 된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황후는 빅토리아 여왕의 혈우병 보인자를 물려받았고, 네명의 딸을 낳고 마침내 얻은 아들 알렉세이가 혈우병을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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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 혈우병 보인자와 환자(출처: 위키피디아)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래도 만약에 말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정상적인 염색체를 알렉산드라 황후가 물려받아다면, 그래서 황태자의 혈우병이 없었다면 러시아 혁명과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런 상상해보는 것은 꽤 재미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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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의 길 저자, 이정동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현대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및 대학원협동과정 기술경영경제정책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2020~),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2018~)이며 한국생산성학회 회장(2011)과 한국기업경영학회 회장(2017)을 역임했다. 아시아태평양생산성콘퍼런스(APPC)의 운영위원으로서 2018년 서울대회의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2018년부터는 기술혁신 분야를 대표하는 학술지 《Science and Public Policy》(옥스퍼드대학 출판부)의 공동 편집장으로 있으며 기술혁신에 관한 이론적 연구를 바탕으로 기업과 국가의 자문에 성심껏 응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대통령 비서실 경제과학특별보좌관(2019~2021)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축적의 시간』과 『축적의 길』을 펴내면서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2022년 1월 KBS 다큐멘터리 「다음이 온다」를 통해 기술 주권과 최초의 질문에 대한 통찰을 전한 바 있다.

주요저서 : <최초의 질문>,<공존과 지속>,<인공물의 진화>

저서소개_최초의 질문

기술 주권에 대한 이정동 교수의 통찰

문제 해결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질문하라 · 설계하라 · 게임의 규칙을 만들라

문제 해결자의 관행에서 벗어나 질문을 제시하라

화이트 스페이스에서 찾은, 진정한 기술 선진국으로 가는 길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다.

그러나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 산업계는 선진국의 로드맵이 주어진 상태에서 그것을 더 빨리 더 나은 수준으로 달성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여 왔다.

선진국의 로드맵은 정답이 있는 문제였고, 한국은 어떤 국가보다도 뛰어나게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문제를 내는 것과 푸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혁신 생태계에서 로드맵 밖의 질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관행이 여전하다. 로드맵 밖의 ‘다른(different)’ 질문은 자기 검열로 없애 버리고 선진국보다 ‘더 좋은(better)’ 기술 개발에 집중한다. 탁월한 문제 해결자의 습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축적의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한국의 기술혁신 생태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도전적 시행착오을 축적할 방법을 모색해 온 서울대 공대 이정동 교수가 이번 신작 『최초의 질문』에서 던지는 화두는 혁신의 시발점이다.

선진국이 출제한 문제를 잘 해결하는 문제 해결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질문을 제시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진정한 혁신은 도전적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한국이 진정한 기술 선진국이 되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상대적 기술의 틀을 넘어 스스로 ‘게임의 룰’을 제시하며 ‘전 세계에 새로운’ 기술로 나아가야 한다.

이 절대적 기술의 단계에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답이 없고 질문과 시행착오만 가득하다. 기술 선진국들도 길을 몰라 헤매는 경지는 앞선 이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 설원, 즉 ‘화이트 스페이스’와 같다.

과거 한국의 산업과 기술은 선진국의 발자국이 뚜렷이 찍혀 있는 눈밭을 걸었다. 앞사람보다 덜 쉬고 더 악착같이, 더 빠르게 걷다 보니 어느덧 그 발자국이 안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다. 이제는 기술 선진국들이 앞이 아니라 옆에서 길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벤치마크가 없는 이 화이트 스페이스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보이는 발자국을 따르는 방법과 달라야 한다. 아무도 하지 않은 최초의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해 한 걸음 디뎌 지도를 업데이트하고 방향을 수정하면서 길을 만들어 가는 수밖에 없다.

기술 선진국이 지난 200년 동안 착실히 다진 방법이다. 이제 모방이 아니라 창조, 추격이 아니라 개척을 통해 화이트 스페이스에 길을 만들어야 한다.

도전적 목표가 없는 축적은 퇴적이다

축적의 지향으로서 도전적인 최초의 질문이 필요하다

혁신적 개념설계의 씨앗이 되는 최초의 질문은 ‘기존 분야에서 모범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과는 다른 규범을 제시하려는 뜻이 담긴 질문’이다.

따라서 그 해법을 찾는 데도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최초의 질문은 ‘답이 정해지지 않은 질문’이다. 설명되지 않던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 논리의 빈 부분을 채우려고 하거나 서로 다른 이론의 충돌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최초의 질문에 해당한다. 업계에서 통용되는 로드맵을 벗어나는 목표를 제시하거나 시장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 최초의 질문이다.

인텔이 반도체 제국을 이루는 데는 저마다 기능이 다른 칩들을 통합할 수 있겠느냐는 최초의 질문이 있었고, 우주 시장의 개척자로 불리는 스페이스X에는 1단 로켓을 재사용할 수 있겠느냐는 최초의 질문이 있었다.

이 밖에도 즉석 사진, 넷플릭스, 인터넷 등 혁신의 사례로 꼽히는 것들이 탄생할 때는 어김없이 최초의 질문이 있다.

결국 (1)도전적인 ‘최초의 질문’을 제기하고,

(2)그에 대한 답을 찾아 작은 것에서부터 버전을 빠르게 높이는 ‘스몰베팅’,

(3)최적의 답을 위해 외부의 지식과 시각을 도입하는 ‘오픈 네트워킹’,

(4)시행착오의 경험을 쌓아 가는 ‘축적 시스템’, (5)매 단계의 ‘철저한 실행’을 통해 기술혁신이 완성된다.

그런데 제조, 소프트웨어, 제약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그리고 벤처기업, 연구소, 대기업 등 규모와 지향이 다른 여러 조직에서 공통적으로 독창적인 개념설계를 못 하는 이유 중 으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최초의 질문의 부재다.

10여 년간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를 지키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뒤 몰락한 노키아가 주는 교훈이 있다. 노키아에서는 비용이 많이 필요하고 위험부담도 크다는 이유로 스마트폰에 대한 최초의 질문 제기가 저지되었다.

기회가 많을수록 위험부담이 크기 마련이고 그래서 더욱 외부와 손을 잡으면서 스몰베팅으로 작지만 빠른 버전 업을 실행해야 하는데, 아예 질문이 나올 분화구 자체를 막아 버린 것이다.

끊임없이 업계의 룰을 갈아 치우는 세계적 기술 선도 기업에는 도전적인 최초의 질문이 넘쳐 나지만, 한때 혁신의 제국이었어도 최초의 질문이 없으면 소리 없이 스러진다. 예외가 없다.

기술 주권 시대, 한국의 생존 전략

기술 패권과 기술 주권 경쟁의 숨 가쁜 전개는 기술 선진국들이 저마다 내놓은 최초의 질문이 충돌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혁신적 기업이 최초의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핵심 기술을 만들어 내면, 그것을 중심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이 급속히 재편된다.

지금 세계는 가치사슬의 대혼란을 겪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같은 단기적 원인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디지털과 그린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 전쟁 같은 새판 짜기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우리도 산업과 기술의 각 부문에서 크고 작은 최초의 질문을 던지고 해법을 찾아 대체 불가능한 퍼즐 조각을 많이 갖는 것이다.

고유한 최초의 질문이 없으면 전략 기술이 생길 수 없고, 전략적 자립성이 있을 수 없다. 전략적 자립성을 가진 국가들이 서로 등을 기대고 설 때 상호적 기술 주권이 생긴다.

이때 비로소 이인삼각처럼 서로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되고, 그 안에서 경제 안보도 가능해진다. 이인삼각에서 한 사람이 넘어지면 다른 사람도 같이 넘어지고, 퍼즐 판에서 대체할 수 없는 조각이 사라지면 가치 없는 그림이 된다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범용 기술이 등장할 때 국가의 책임이 막중하다.

기술혁신 역사의 교훈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이 각 부문에 도입되어도 한동안 생산성 역설, 즉 그 효과를 보지 못하는 기간이 지속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생산성 역설을 빠르게 극복하는 국가가 새로운 범용 기술 시대를 이끄는 기술 선도국으로 부상하리라는 것이다. 결국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범용 기술을 염두에 둔 도전적 최초의 질문이 많이 나오도록 장려하고, 많은 실험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한국의 궁극적인 지향이 그저 돈이 많은 고소득 국가일 수 없다. 저마다 자신만의 재능을 발견하고 역량을 스케일업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