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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의 먹향이 배어있는 집

서리나 조선비즈 인턴기자 mycitystory.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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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가지 뒤 뒤뜰 바위에 자리잡은 석파랑의 분위기가 고즈넉하다.

서울 미술관을 지나 상명대 방면으로 길을 따라 10분쯤 걸어가면 석파랑(石坡廊)이라는 현판이 눈에 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붉은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감나무가 손님을 맞는다. 150년 나이에 걸맞게 듬직하고 풍성한 모습이다. 그 뒤에 보이는 나무 계단을 따라 오르면 단아한 자태의 석파랑이 있다.

석파랑은 대원군 별장인 석파정(石坡亭)에 딸려 있던 별당이다. 사랑채에 속해 있던 이 건물은 1958년 서예가 소전 손재형(孫在馨) 선생이 집을 지으며 뒤뜰 바위 위로 옮겨왔다. 현재 복원 된 석파정에서 파손이 심했던 네 채 중 하나다.

동북향의 기역(ㄱ)자 구조로 된 집은 대청방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큰 방, 오른쪽에 건넌방이 있다. 큰 방이 흥선대원군의 거처였고 건넌방은 손님 맞이용이었다고 한다. 대청방은 대원군이 사군자의 난초를 그릴 때 머물렀던 곳이다. 이 집의 특징 중 하나는 둥근 창문이다. 큰 방 측벽에 반원형, 건넌 방 벽면에 동그란 창문이 달렸다. 조선 말기 중국 청나라 건축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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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랑에서 내려다 본 정원 모습. 붉은 감나무와 노란 은행나무가 조화롭다

이 집은 1994년 9월부터 한국궁중요리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개인 소유 식당이지만 석파랑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돼 일반인이 자유롭게 들어가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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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섭, 추억이 깃든 서울미술관

서리나 조선비즈 인턴기자 mycitystory.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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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미술관 전경

서울미술관은 석파정을 소유한 석파문화원이 올해 8월 개관한 곳이다. 유니온약품그룹 안병광 회장이 운영하는 곳으로 지상 3층 규모의 미술관 전시 공간은 1653㎡ (약 500평) 에 이른다. 국내 사립 미술관 중 삼성미술관 리움 다음으로 크다.

미술 애호가로 알려진 안 회장은 이중섭 작품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처음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이중섭의 대표작 ‘황소’였기 때문이다. 1983년 제약회사 영업 사원이었던 그는 갑자기 비가 와 명동의 한 액자 가게 처마로 피했다. 그때 자꾸 눈길이 가는 그림 한 점이 있었다. 가게에 들어가 값을 물었더니 당시 가격으로 1만원이라고 했다. 주머니에 9000원밖에 없어 흥정 끝에 7000원에 그림을 받아 나왔다. 물론 당시 그가 산 물건은 그림이 아닌 복제 프린트물이었다.

이후 그림의 멋을 알게 된 안 회장은 ‘황소’ 진품을 비롯해 회화 100여점을 모은 수집가가 됐다. 2007년 사옥을 짓기 위해 사들인 석파정 터에 유형문화재로 등록된 건물이 있어 미술관밖에 짓지 못하게 되자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벌여 석파정을 단장했다. 더불어 미술관을 신축해 전체 4만 3000㎡(약 1만 3000평) 일대를 서울미술관 이름으로 개장했다.

개관기념전은 안병광 회장이 처음으로 그림과 인연을 맺게 해 준 이중섭 작품이 중심이다. ‘둥섭, 르네상스로 가세!-이중섭과 르네상스 다방의 화가들’이 전시 제목이다. 여기서 ‘둥섭’은 이중섭의 서북식 발음이다. 안 회장 개인 소유의 이중섭 작품 36점과 같은 시기 활동했던 한묵, 박고석, 이봉상, 손응성의 작품까지 총 75점의 근대 작품이 전시된다. 이대원, 천경자, 백남준 등의 대작을 볼 수 있는 상설전도 인상 깊다.

미술관 직원 강현우씨(28)는 “평일 300-400명, 주말 700-800명의 관람객들이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며 “가족과 친구끼리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입장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며, 입장료는 어른 9000원, 초중고생 5000원, 어린이 1000원이다. 매주 월요일 휴관, 개관전은 11월21일까지. (02)39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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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의 별장, 석파정의 가을

서리나 조선비즈 인턴기자 mycitystory.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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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소나무와 붉은 단풍이 어우러진 석파정(石坡亭) 전경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집 (巢水雲簾菴 소수운렴암)’. 조선 중기 학자 권상하가 이 곳을 이르는 말이었다. 인왕산 단풍이 그림같이 펼쳐지고 골짜기부터 흘러 내려오는 맑은 계곡과 투명하게 파란 가을 하늘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 석파정(石坡亭)을 두고 하는 말이다. 복 받은 이 집 주인은 조선 말기 세도를 떨치던 흥선대원군이다. 그는 인왕산 기슭 너럭바위에 단단히 자리 잡은 이 집을 별장으로 사용했다.

삼삼오오 모여든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늠름한 위용의 소나무다. 석파정으로 나들이 나왔다는 최원희(60·서울시 압구정) 씨는 “웅장한 느낌의 소나무가 이 집의 역사를 대변하는 것 같다” 며 한동안 그 앞에 머물렀다. 200여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노송은 높이 5m, 그늘의 넓이 만도 67㎡에 이른다. 1968년 서울특별시 지정 보호수 60호로 지정된 반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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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채와 사랑채 사이 항아리가 옛 집의 정겨움을 돋운다

현재 석파정에 남아 있는 건물은 안채와 별채, 사랑채 총 세 채다. 7채 중 네 곳은 소실됐고 개인이 터를 인수하며 남은 건물을 보수했다. 오른 편에 난 중문으로 들어서면 미음(ㅁ)자 모양의 안채가 있다. 그 뒤에 줄지어 선 커다란 항아리들이 집의 정취를 돋운다. 안채 오른쪽 높은 곳에는 별채가 있고 위쪽에는 기역(ㄱ)자 모양의 사랑채가 자리 잡았다. 건물의 앉음새가 주위 풍광과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낸다.

건물에서 나와 산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돌다리 옆으로 앙증맞은 붉은색 중국식 정자가 나온다. 단풍이 숨겨놓은 보물을 발견한 듯 반갑다. 그 위로 골짜기가 흐르고 길이 이어져 산책 코스로도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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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집은 원래 대원군의 소유가 아니었다. 원래 주인은 조선 말기 최대 권력 가문 안동 김씨의 김흥근(金興根)이었다고 한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대원군이 김흥근에게 이 별장을 자신에게 팔 것을 요구했지만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아들 고종과 이 곳을 다녀간 뒤 차지했다고 나온다. 임금이 묵고 간 곳에 신하가 살 수 없다는 관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나무 뒤쪽 바위에 새겨진 ‘三溪洞(삼계종)’ 글자는 원래 소유자인 영의정 김흥근이 살 때 이 곳을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로 불렀기 때문이다. 대원군의 욕심이 지나친 듯 싶지만 둘러보면 그렇게 해서라도 갖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된다.

지인의 추천으로 친구 6명과 석파정을 찾은 홍상희(44, 경기도 안산시)씨는 “이런 곳에 살아보고 싶다” 며 “갑자기 대원군이 부러워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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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도시 속 풍성한 가을 정취를 선물하는 곳

김범수 조선비즈 인턴기자 mycitystory.korea@gmail.com

현대 도시에 살면서 피로를 모르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언제나 도시를 벗어나 일상에서 잠시 탈출하고 싶지만 막상 그러기는 쉽지 않다. 그런 이들을 위해 서울을 벗어나지 않고도 잠시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종로구 부암동이다.

석파정과 세검정, 현통사, 백사실터, 백석동천을 들러 창의문을 통과해 윤동주 시인을 만나고, 청와대를 거쳐 경복궁 길을 따라 내려왔다. 부암동의 가을을 즐기고 역사적 볼거리를 길어 올린다. 유명 드라마 촬영지인 카페골목은 부암동에서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보너스다.

부암동은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버스 정류장 앞에서 1711번, 7212번을 타면 갈 수 있다. 자하문터널을 지나 자하문터널입구 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자하문(紫霞門) 터널은 청운동과 부암동을 잇는 터널이다. 예부터 청운동에서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자하문고개 혹은 창의문고개라 했다. 고개에 자하문이 있어 그리 이름 붙여졌다. 창의문을 속칭 자하문이라 부른 것은 창의문이 자핫골인 지금의 청운동에 있기 때문이다.

정류장에 내리면 부암동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정류장 건너편으로 서울미술관이 보인다. 서울미술관을 통해 뒷편으로 들어가면 석파정에 이를 수 있다. 서울미술관과 석파정을 둘러 본 후 길을 따라 상명대가 있는 방향으로 걷는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걷기에 운치있다. 길을 걷다 주유소를 지나면 검은 기와가 얹어진 예스런 집 한 채가 나온다. 석파랑이다. 정원의 아기자기한 멋을 즐기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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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랑을 지나면 삼거리가 나온다. 상명대를 바라본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길을 건넌다. 세검정으로 가는 길 맞은 편에는 조계종 소림사가 있다. 경내의 탑과 범종이 가을의 정취와 만나 도시 속 작은 절의 편안함이 머물러 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 때 쯤, 세검정이 평평한 바위와 함께 운치를 드러낸다. 세검정 일대와 우체국을 지나 오른편으로 들어가면 백사실계곡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이 길을 통해서 백사실 계곡으로 들어가다보면 현통사가 보인다.

물흐르는 소리와 자그마한 절이 어우러진 곳, 현통사를 지나면 백사실계곡의 물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백사실터를 만날 수 있다. 백사실터를 지나 백석동천을 알리는 바위를 지난다. 백석동천을 지나면 부암동의 아기자기한 주택이 반긴다. 조금만 내려가면 커피프린세스 촬영지인 산모퉁이 까페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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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실터의 단풍

북악산을 바라보며 내려오면 곧 창의문이 나온다. 창의문을 둘러본 후 길을 건너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문학관이 있다. 그대로 언덕을 넘어 길을 따라 내려오면 청와대와 청와대 사랑채를 볼 수 있다. 청와대를 기준으로 좌측 길을 따라 경복궁 뒷길을 걷는다. 노랗게 물든 단풍을 감상하며 삼청동으로 내려온다. 이번 코스의 종착지다.

각 코스의 감상 포인트 및 여러 정보들이 이번 부암동 탐방기에 깊이있고 맛있게 담겨있다. 풍성한 가을을 맛보는 기회가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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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떠나는 아프리카 여행 ‘마르케시 나이트’

– 모로코 대사관 수석 주방장 출신이 만드는 음식

– 이베리아계, 유태계 등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은 모로코 음식

– 한국의 뚝배기와 비슷한 조리 기구 ‘타진(Tagine)’

김기준 조선비즈 인턴기자 mycitystory.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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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식당 간판 불빛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면 이국적인 코끼리 조각상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2층 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서자 붉은 조명과 실크 커튼으로 꾸며진 내부 인테리어가 히잡(아랍권 여성들이 쓰는 이슬람식 머리수건)을 떠올리게 했다. 식탁에는 색다른 모습의 음식이 차려져 있고 다른 한편엔 느긋하게 시샤(물담배)를 즐기는 아랍인 남성이 앉아있었다. 이색적인 아프리카 음식과 여유로운 그들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이곳은 마르케시 나이트(Marakech Night Restaurant)다.

◆ 모로코 대사관 수석 주방장의 ‘마라케시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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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시 나이트는 이태원역 3번 출구에서 엔틱 가구거리 방향으로 5분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기업은행 맞은 편 건물 2층에 위치해 있다. 레스토랑 대표 겸 요리사인 리티 무스타파 (Mostafa Rhiti) (44) 씨는 “2002년 주한 모로코대사관 수석 주방장으로 일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게됐다”다며 “2006년부터 지금까지 6년째 가족들과 함께 식당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부인과 아들이 함께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02년 대사관에서 일하며 이태원에서 거주했던 무스타파씨는 “당시에는 모로코 음식과 문화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이 배타적이었다. 하지만 2006년을 기점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외국 문화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레스토랑을 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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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케시 나이트의 대표 겸 요리사 리티 무스타파

지금은 손님의 60% 이상이 한국인일 만큼 마라케시 나이트의 인기는 내국인들 사이에서도 높다. 무스타파씨는 성공 비결을 “옛날엔 전통 모로코식 메뉴가 훨씬 다양했었는데 지금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위주로 메뉴를 바꾸고 취향에 맞게 오일 사용을 줄였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수입해온 재료를 써봤지만 맛이 떨어져 직접 모로코에서 가져온다고 했다. 한남동에 사는 김명준(29)씨는 이 식당의 단골이라며 “처음에는 샤프란(향신료의 일종), 고수향이 어색했지만 지금은 없어서 못 먹을 지경”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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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케시 나이트의 인기메뉴 레몬치킨 타진

한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레몬치킨 타진’이다. 타진(Tagine)은 한국의 뚝배기와 유사한 모로코의 전통 조리기구다. 물이 귀한 아프리카 모로코에서는 점토 찰흙으로 만든 원뿔 모양의 냄비에 소량의 물과 식재료의 수분만으로 음식을 조리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무스타파씨는 모로코의 음식문화에 대해 “음식 재료의 차이는 있지만 조리기구, 조리방식, 바닥에 앉아서 먹는 음식문화 등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은 모로코 음식

모로코는 동쪽으로는 알제리, 남쪽으로는 모리타니, 서쪽과 북쪽으로는 대서양과 접하고 있는 아프리카 서북쪽에 있는 나라다. 지브롤터 해협(대서양과 지중해 사이의 해협)을 건너 20분만 가면 스페인이고, 과거 프랑스의 지배를 받기도 한 모로코는 다양한 국가와 문화의 영향을 받아 풍성한 음식문화를 갖고 있다.

무스타파씨는 “모로코 음식은 세계 5대 요리에 들 만큼 서양에서는 인기가 높다”며 “한국에서는 아직 이태리, 프랑스 음식에 비해 낮은 인지도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쿠스쿠스(세몰리나 밀로 만든 곡식)의 경우 재료는 모두 같지만 모로코 지방마다 시간이나 재료 조합이 달라 다양한 맛과 레시피를 지니고 있다”며 맛도 있고 영양도 고려한 모로코 음식을 한국에 많이 알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태원이란 어떤 곳이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모든 외국인들이 이태원을 통해 한국을 느끼고 이해한다. 그래서 이태원은 ‘한국의 심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한국을 두 번째 고향으로 생각한다.모든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좋을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한국의 심장인 이태원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마지막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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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젊음과 50대의 연륜이 깃든 정장, 테일러블

– 27세 곽호빈 테일러블 대표와 대통령 옷 만든 57세 윤춘국 기술 이사의 만남

– 영화 ‘부당거래’, ‘도둑들’ 의상 제작

조선비즈 인턴기자 허미연 mycitystory.korea@gmail.com

이태원 제일기획에서 한남동주민센터 방향으로 내려가는 골목길, 흰 색과 파란색으로 깔끔하게 칠한 가게가 시선을 끌고 쇼윈도에 걸린 멋스러운 정장이 발길을 붙잡는다. 바로 2007년 처음 문을 연 맞춤 정장 숍 ‘테일러블 블루라벨(Tailorable for blue label)’이다.

지난 25일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남성이 옷을 주문하기 위해 치수를 재고 있었다. 매장 안쪽에는 아틀리에(작업실)가 보였다. 다른 옷 가게에서는 본 적이 없는 공간이다. 아틀리에가 상징하듯 테일러블 옷들의 대부분 공정은 손바느질로 이뤄지며, 이 모든 봉제 과정에 30년 이상 경력을 지닌 장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곽호빈 테일러블 대표(27)는 “저희처럼 매장 안에 아틀리에가 있는 가게는 거의 없다”며 “다른 가게들과는 포맷부터 많은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대사관 사람들부터 해외,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테일러블 관계자는 “프랑스 모델이 온 적이 있다”며 “그 모델이 프랑스에서도 이곳처럼 옷을 자신의 몸에 딱 맞춰 사 입기란 쉽지 않다고 하면서 매우 만족해 했다”고 했다. 또 “한 손님은 해외로 이민을 갔는데도 저희 옷을 원한다며 연락이 와서 해외 배송을 해주기도 했다”고 했다.

10평 남짓에서 시작한 테일러블은 약 5~6년이 지난 지금 많은 발전을 이뤘다. 영화 관계자의 제안으로 영화 ‘부당거래’, ‘도둑들’의 의상을 테일러블이 직접 맡기도 했으며, 작년 5월에는 ‘테일러블 와인라벨’이라는 명칭으로 청담동 매장도 열었다.

◆ 30년 재단 경력 윤춘국 기술이사

“사회에서 은퇴할 나이에 젊은 사람들이 손을 내민 거죠.”

테일러블의 마스터테일러 윤춘국(57)씨는 ‘테일러블에서 일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윤 씨는 “일반 회사에서는 은퇴할 나이라고 할 때, 청년들이 나를 찾았다”며 “젊은이들과 나이 많은 기술 원로들이 함께 일하게 된 거니까 극과 극의 만남 아니냐”며 반문 했다. 이에 대해 곽호빈 대표는 “좋은 맞춤복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30년 이상 현장에서 옷을 만든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누나들 속에서 자란 윤 씨는 이른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게 되면서 학업을 포기하고 취업을 택해야 했다. 그는 열 일곱 나이에 북창동의 한 양복점에 들어가 재단 일을 시작했다. 1992년부터 2009년까지 18년 간 서울 소공동 체스타필드 양복점에서 재단실장으로 일했으며 올해 8월 테일러블 블루라벨에 기술이사로 영입됐다.

이명박·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의 옷도 그의 손을 거쳤다. 윤 씨는 “소공동에 있을 때부터 대한민국에 유명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았다”며 “모 기업 회장님은 15년 째, 또 다른 분은 20년 넘게 나한테서 옷을 맞추고 있을 만큼 꾸준히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손님들도 많다”고 했다. 그만큼 윤 씨에 대한 신뢰가 두텁게 쌓였다는 의미인 셈. 그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점도 이 직업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윤 씨에게 ‘테일러블’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주로 중·장년층 정장을 만들어온 그가 20대~40대가 선호하는 젊은 스타일의 정장을 재단하게 되면서 그는 가장 먼저 자신부터 바꿨다.

윤 씨는 자신의 옷을 가리키며 “나도 젊은 사람들처럼 옷을 몸에 타이트하게 입는다”며 “젊은 사람들의 트렌드를 따라가면서 나도 많이 배울 수 있고 젊어지는 기분도 들어 기쁘다”고 했다. 그는 “열린 마음으로 변화하는 패션 경향을 읽어내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또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윤 씨는 “늦은 시간까지 일해도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며 “과거 소공동에서 일할 때보다 늦게 퇴근하지만 즐겁다”고 말했다.

지금 그의 꿈을 무엇일까. 그는 “건강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오래해야죠”라며 “곽호빈 사장이 잘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잘 되어가는 것을 보니 참 좋다”며 “이들이 잘 되도록 열심히 해주는 것, 그게 내 꿈”이라고 했다.

◆ “맞춤 정장의 가치 알리고 싶어” , 20대 곽호빈 블루라벨 대표

“좀 더 잘 만든 옷이란 어떤 것인지 탐구하면서 맞춤 정장의 가치를 깨달았다.”

곽호빈 테일러블 대표(27)는 “원래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다”며 “고민하고 탐구하면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장인들이 손 바느질해 만들어진 옷이 잘 만들어진 옷이라는 것을 알게 돼 맞춤복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고 했다. 그는 “맞춤 정장의 가치와 매력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986년 12월에 태어난 20대 청년 곽호빈 대표. 젊은 나이에 시작한 사업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있지 않았을까. “그는 지금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고, 경험을 통해 부딪쳐보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경험을 쌓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곽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맞춤 정장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 패션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패션과 정장은 또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장은 어떻게 하면 몸매의 단점을 감출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우면서도 품위를 지킬 수 있는지 연구해 만드는 옷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더욱 멋지고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는 옷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정장은 사회성을 띄는 옷”이라며 “그저 멋있기만 한 옷이 패션이라면, 정장은 상황과 장소, 드레스 코드에 맞춰 입는 하나의 사회적인 약속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단순히 멋이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인 관계, 격식과 품위까지 고려해 입는 문화가 더욱 풍부해졌으면 한다”고 했다.

곽 대표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 “사업적인 확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맞춤복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그 가치를 알리는 데 더 노력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들이 결혼할 때 비싼 해외 명품 브랜드 기성복을 많이 구입하는데, 오히려 맞춤복이 기성복보다 질이나 완성도 면에서 더 강점이 있다”며 “이를 잘 모르거나,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사람들을 ‘양복쟁이’라고 비하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인식을 바뀔 수 있도록 맞춤 정장이 갖는 가치와 매력을 많은 사람들에 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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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의 변신, 영어를 배우며 즐기는 파티장

전효진 조선비즈 인턴기자mycitystory.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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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6일 할로윈 파티 입장을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매주 금요일 이태원 해밀턴 호텔 뒤 클럽 거리는 곳곳에서 화려한 조명과 고막을 찌르는 기계 음으로 가득 찬다. 사람들은 저마다 북적이는 거리를 돌며 ‘불금!’을 외친다. 금요일 밤은 불태워 늦게까지 놀아도 된다는 뜻이다.

클럽에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이재현씨(30)는 이태원 클럽 문화에 대해 “청담동의 고급스러움과 홍대의 젊음이 적절하게 섞여있다”고 설명했다.

10월 마지막 주 금요일(26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할로윈 데이를 앞둔 만큼 클럽 거리 인테리어와 사람들의 복장은 평소와 달랐다. 마녀 고깔 모자를 쓰기도 하고 만화에 나오는 복장을 입는 등 스타일에 신경 쓴 사람들로 북적였다.

서양의 할로윈 데이는 10월 31일로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 출몰하는 날을 뜻한다. 귀신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 사람들은 유령이나 괴물 복장을 하거나 실제 혈흔으로 얼굴을 분장하기도 한다. 서울 속 ‘작은 지구촌’ 이태원도 할로윈 데이를 맞이하여 축제 준비로 한창이었다.

비가 온다는 예보로 이태원 지역 전체 할로윈 파티는 취소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태원 클럽에서는 자체적으로 할로윈 파티를 열었다. 개별 홍보전으로 이어지다보니 전문 파티 프로모션 업체가 행사를 주관하게 되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입장료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태원 클럽은 할로윈 데이를 비롯, 여러 파티를 개최하며 테이블 예약가나 양주 가격을 높여 이윤 창출의 찬스로 활용했다.

이태원 역 1번 출구로 나와 KFC 골목으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클럽 네이키드가 나온다. 할로윈 데이 축제를 준비하는 다른 클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파티를 개최하는 중이었다. 일단 입장료가 5000원이다. 다른 곳에 비해 4분의 1 수준이었다. 또 바로 옆의 비원(B1NE) 클럽과 비교했을 때 입장하는 손님의 국적이 다양했다. 클럽 네이키드 앞에는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 다국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보다 많았고 복장도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났다. 해골 분장부터 마법사, 요정까지 외국에서만 보던 할로윈 파티의 모습이었다.

클럽 안에서는 친목 도모를 위한 파티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있었다. 다음 카페 ‘나의 외국인 친구들’과 ‘프렌즈인코리아’가 주최하는 이번 ‘외국 친구와 함께하는 파티’ 는 이미 매주 이태원과 홍대, 강남에서 꾸준히 개최된 전통 있는 파티였다. 2004년부터 시작된 이 파티는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하며 친구를 만들고 싶은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싶은 국내 거주 외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 교류 파티로 자리 잡아왔다.

요정 분장을 한 미국에서 온 첼시(25)는 파티에 대해 “페이스 북을 통해 알았다”며 “ 주위의 다른 클럽보다 사람들이 분장도 잘하고 대화가 많아 흥겹다. 미국 파티 문화와 흡사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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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외국인 친구와 영어로 놀아라’ 저자이자 프렌즈인코리아 대표인 김명호씨(31)는 “가볍게 맥주를 마시면서 다양한 문화 출신의 사람들과 새롭게 친구를 만드는 건전한 파티 문화를 정착 시키고 싶다”며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서로의 문화와 언어를 교류하고 만남이 이루어지는 자리”라 말했다.

김대표와 개인적인 친분으로 정기적인 파티를 개최하게 됐다는 크리스 클럽 네이키드 대표(38)는 “퇴폐적인 클럽 보다는 대화가 있는 건전한 파티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대화를 나누는데 불편함을 최소화 하기 위해 음악도 적당히 튼다”고 말했다. 클럽 음악이 크지 않아서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주최 측은 대의를 선택했다.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볼륨을 유지했다.

“친구를 사귀러 오는 파티기 때문에 일회성 클럽 문화와는 다르다. 추가적인 정기 모임도 있고 동아리 같다” 대학생 박민지씨(23)의 말이다. ‘외국 친구와 함께하는 파티’ 에 처음 와봤다는 최용식씨(28)도 “단순히 마시고 노는 것보다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열린 느낌”이라고 파티의 첫 인상을 전했다.

한 파티 관계자는 “ 한국 사람들은 클럽 하면 소위 ‘작업을 거는 곳’이라며 좋지 않게 보지만 이 곳은 말을 자연스럽게 먼저 건내는 문화라서 그런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다”며 “ 파티를 통해 살아있는 영어를 배우고 외국 사람들은 한국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장”이라고 말했다.

조성욱 파티 관계자(30)는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속적인 친목 도모를 위해 오는 사람도 많다” 며 “단발성이고 정신없는 클럽 문화가 아니라 소통이 있는 파티 문화를 선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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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두렵지 않다”, 콧대 높은 소규모 빵집 ‘오월의 종’

허미연 조선비즈 인턴기자 (mycitystory.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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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오월의 종 2호점(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29)

“패션파이브?! 무슨 옷 파는 데인가요?”

이태원에 있는 빵집 ‘오월의 종(Maybell Bakery)’ 대표 정웅씨(45)는 제과제빵업체 SPC그룹의 베이커리 카페 ‘패션5(passion 5)’가 가게 근처에 들어섰을 무렵, 누군가 그에게 걱정하듯 묻자 이렇게 말했다.

‘오월의 종’과 ‘패션5’ 숫자 5가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두 빵집은 다윗과 골리앗을 떠올리게 한다. 오월의 종은 49㎡(약 15평) 정도 크기의 소규모 빵집으로, 주로 바게트와 무화과빵 등 질감이 딱딱한 식사용 빵들을 판다. 반면 오월의 종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패션5는 매장 넓이가 660㎡(약 200평)에 이르는 대형 빵집이다. 가게 규모로 보나 빵의 종류로 보나 패션5가 훨씬 크고 다양하다. 하지만 정 씨는 “패션5가 뭔지 모를 만큼 신경도 안 썼다”고 말했다.

그는 소규모 빵집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동종 업계 진출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정 씨는 “제빵업의 질적 성장을 위해서 자본이 투입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 조건이 있는데 판매만 위주로 하기 보다는 좋은 빵과 훌륭한 제빵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게마다 빵 종류나 맛이 다르다. 내가 만드는 빵에만 최대한 집중하기 때문에 위기감이나 경쟁 심리는 없다”고 했다.

또 “30년 동안 빵집을 운영했던 사람이 파리바게트가 들어섰다고 매출이 줄고 문 닫는다면, 그건 프랜차이즈 빵집 때문이 아니라 개인이 노력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 “빵은 딸 같은 존재” 정웅 오월의 종 제빵사 겸 대표 인터뷰

– 가게 이름이 오월의 종이다. 무슨 의미인가ptyrgn8PksFkVA05yaKtyh1iOVuLiWNzEa6EdyEFEzmgY0PHRen6sXeugiFdZikmrc7Slg3IEyDw7y-WGokN4haRS1F3iWqIPdGgdj_uazv-mMLxvOE

▲“빵집하고는 상관없는 이름이다. 비지스의 노래 First Of May를 좋아한다. 5월(May)만 하기에는 뒤가 허전한 것 같아서 종을 붙였다.”

– 이태원에 가게 연 이유는

▲“원래 시멘트 회사를 다녔다가 서른이 넘어서야 제빵업에 뛰어들었다. 10년 전 경기도 일산에서 오월의 종과 비슷한 스타일로 빵집을 운영했다. 그 당시는 호밀빵 같은 식사 빵이 사람들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장사가 안됐다.

그런데 이태원은 외국인도 많고, 해외에서 거주해본 사람들도 많아서 빵에 대한 인식이 좀 다를 것 같아 이곳으로 왔다.”

– 일산에서 장사가 잘 안됐을 때 빵 종류나 맛을 바꿔볼 생각은 없었나

▲ “내가 호밀빵, 무화과빵 등 식사용 빵을 만들기 좋아해서 가게를 시작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 오월의 종에서 파는 빵의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 빵에는 설탕, 버터, 계란, 우유가 안 들어간다. 그래서 발효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호밀빵의 경우 천연 효모를 배양해 만들기 때문에 완성되기까지 일주일이 걸린다.

1년에 한번 만드는 빵도 있다. 스톨렌이라는 독일 전통 빵인데 이건 12월 말에 반죽 재료를 럼주에 담아두고, 1년 동안 숙성 시켜 그 양 만큼만 만들어 판다.”

– 빵이 소진되면 문을 닫는다고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콧대가 높은 거다. 당일 생산, 당일 판매가 우리의 원칙이다. 내부적으로 우선순위가 있는데 1순위는 빵이다. 2순위는 만드는 사람, 죄송하게도 그 다음이 손님이다. 우리는 원하는 빵을 원하는 수량만 만든다. 잘 만들 수 있는 양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다. “

– 1호점에 이어 올해 5월 2호점도 생겼다. 3호점 혹은 체인점으로 낼 생각도 있나

▲“그런 생각은 없다. 우리 빵 특유의 제조 과정 상 힘들고, 특히 내가 빵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게 좋다. 2호점에서도 판매를 하고 있지만 1호점과 달리 주로 빵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공간이다.“

– 정 대표에게 빵은 어떤 의미인가

▲“손님들이 할인 안되냐고 할 때 ‘저는 빵을 제 딸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한다. 빵을 제조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빵은 나에게 딸 같은 존재다.”

– 앞으로 포부나 계획은

▲ “원대한 것은 없고 오래하고 싶다. 내 명함에는 사장이 아니라 ‘baker(제빵사)’라고 새겨져 있다. 손으로 빵을 만들 때 느낌과 냄새가 참 좋다. 오월의 종이 사람들에게 ‘빵 만드는 곳’이라는 이미지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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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문화를 기록한 서점

– 아랍어로 씌여진 간판들과 생소한 식료품들의 진열

– 한국어, 아랍어, 영어로 인쇄된 책들이 빼곡

– 인구의 1/4이 믿는 이슬람 종교

김기준 조선비즈 인턴기자 mycitystory.korea@gmail.com

이태원역 3번 출구로 나와 보광 초등학교 골목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이슬람 길’이 나온다. 골목 분위기만 보면 이곳이 한국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아랍어로 씌여진 녹색 간판들과 생소한 향신료와 이름모를 식자재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육점과 식당마다 ‘할랄(Halal)’이란 글씨가 적혀 있는데, 이슬람식 도축법으로 잡은 고기만 판다는 의미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멀리 모스크 건축 양식의 둥근 지붕이 보인다. 1976년 지어진 중앙성원이다. 중앙성원을 중심으로 마트와 음식점들이 생겨나면서 이슬람 종교와 문화, 맛이 어우러진 지금의 이슬람 길이 형성된 것이다.

국내 유일의 이슬람 서점(ISLAMIC BOOK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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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서점 풍경

길 입구에는 국내 유일의 이슬람 서점이 있다. 서점 안에는 한국어, 아랍어, 영어로 인쇄된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고 스피커를 통해 코란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서점 안에서 셰이크 무너 아흐마드(Sheikh Muneer Ahmad)사장은 한 한국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한국인 친구는 “저는 무슬림은 아니지만 친구로 지내며 자주 찾아와 대화를 나눈다”며 “처음엔 호기심으로 찾아왔다가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바뀌었다”고 했다.

2006년 처음 서점을 시작한 아흐마드는 “무슬림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며 “ 타(他)종교에 대해 이해하려는 불교, 기독교 신자도 오곤 한다”고 말했다.

◆ 한국은 한마디로? ‘자유’

주로 팔고 있는 책은 이슬람의 신앙에 대한 책이었다. 아흐마드 사장은 “신념에 대한 믿음을 연구하고 지식을 나누기 위해 서점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점 위층에는 이슬람 도서관도 운영하며 주말마다 무슬림들에게 한국어 교육과 아랍어 교육을 하고 있었다.

아흐마드 사장은 “전문적이진 않지만 이슬람 문화를 알리려 노력한다”며 “기부와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중요한 신념”이라고 강조했다. 일환으로 그는 “아담(ADAM)출판사를 만들어 지금까지 약 15권의 책을 출판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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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서점 내부

이슬람에서 지질학을 공부하던 아흐마드 사장은 한국인 부인을 만나 한국에서 살게 됐다. 그는 “한국은 신앙의 자유가 있고 종교에 대한 타협할 수 있는 열린 마음가짐을 갖고 있어 지금은 고향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슬람 문화와 종교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 무슬림이 말하는 이태원이란 Lifestyle, Culture, Behavior

이태원을 정의해 달라는 다소 난감한 질문에 그는“ 다양한 문화(Culture)와 생활 양식(Lifestule)이 공존하는 동적(Behavior)인 공간이다”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아흐마드 사장은 “이슬람 문화가 다양한 문화가 만나는 공간인 이태원에서 올바른 삶의 기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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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걸을까’ 서울 도심 속 단풍길

– 서울시, ‘아름다운 단풍길’ 83개소 선정

– 29일 낮 소월길 풍경

허미연 조선비즈 인턴기자 mycitystory.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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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오후 소월길 풍경

29일 오후 3시쯤 서울 용산도서관에서 하얏트호텔까지 이어지는 소월길에서 시민들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거리를 산책하며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소월길은 서울시가 선정한 서울 시내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단풍길’ 83개소 중 한 곳으로, 소월길 2.8km 거리에는 은행나무 600그루가 심어져 있다.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차량 통행이 적고 남산 공원과도 연계돼 있어 산책이나 운동을 하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소월길에서 아이에게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주려고 나온 지후 어머니도 만났다. 그가 “지후야, 아까 엄마랑 뭐했지? 소리도 나고 그랬잖아”라고 아이에게 묻자 이지후(6) 군은 “낙엽밟기놀이 했어요” 라며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했다.

한산한 월요일 오후에 도심 속에서 여유를 즐기려 산책을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한남동에 거주하는 장정인(31·회사원)씨는 “오늘 회사 휴가여서 나왔다”며 “평소 앉아서 하는 업무가 많은데, 오랜만에 걸으니까 좋다”고 했다. 이어 그는 “동네에서 이쪽 하얏트호텔 방향으로도 산책로가 있어서 그 길을 따라 걸어왔다”고 말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홀로 산책 중이던 안성준(24)씨는 “집이 이 근처라 나왔는데 한적해서 좋다”며 “시끄럽게 노는 것보다 조용한 음악을 들으면서 가을 풍경도 보고 운동도 하려고 나왔다”고 했다.

차량 운전자들도 은행나무로 물든 길을 지나며 잠시 나마 가을을 느끼는 듯 했다. 택시 기사 김철우씨(45)는 “다른 데 지나갈 때랑 여기 지나갈 때랑 기분이 다르죠”라며 “바빠서 단풍 놀이도 못 가는데 운전하면서 여기 오면, 나무도 많고 경치도 좋아서 기분이 상쾌해진다”고 전했다.

한편, 길거리에 쌓인 낙엽들이 달갑지 않은 사람도 있다. 바로 환경미화원이다. 거리 위 낙엽을 쓸고 있던 한 환경미화원은 “여기 순환도로 쪽에는 하수구가 많은데 어제처럼 비가 올 때 낙엽들이 하수구를 막고 있으면 물이 잘 빠지지 않으니까 낙엽을 좀 쓸어줘야 한다”고 답했다.

서울시는 서울 시내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단풍길’ 83개소 총 153.75㎞를 선정하고, 10월 24일부터 다음 달 중순까지 이들 지역의 낙엽을 쓸지 않고 관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용산구에서는 ‘이태원로’와 ‘소월길’ 두 곳이 선정됐다.